모든 책이 다 독자들만큼 따분한 것은 아니다. 어떤 책에는 어쩌면 우리의 현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들이 들어 있을 가능성도 크다. 만약 우리가 이 말들을 정말로 듣고 이해할 수만 있다면 아침이나 봄보다 우리의 삶에 더 큰 활력을 줄 것이며, 우리에게 사물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줄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 권의 책을 읽고 자기 인생의 새로운 기원을 마련했던가! 우리의 기적들을 설명해주고 새로운 기적들을 계시해줄 책이 어쩌면 우리를 위하여 존재할 가능성은 크다. 지금 내가 말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어느 책에 표현되어 있을지 모른다. 우리를 당혹하게 하고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며 우리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문제와 똑같은 문제들이 일찍이 모든 현명한 사람들에게도 제기되었다. 한 문제도 빠짐없이 말이다. 그리고 이들 현인들은 저마다 이 질문들에 대해 해답을 제시했다. 자기 능력에 따라, 또 자기 고유의 언어와 생활 방식으로.

 

 - 헨리 데이빗 소로우, 『월든』

 

 * * *

 

나는 밑줄긋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늘상 펜을 들고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 게 어느새 버릇이 되었다. 때때로 펜을 손에 쥘 수 없는 환경에서 책을 읽을라치면 마음 한구석이 조금 불편할 정도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책을 읽는 시간의 대부분을 펜과 함께 보낼 수 있는 형편에 놓여 있다. 펜조차 붙잡을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책을 읽는 경우는 좀체로 드물기 때문이다.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는 습관이 붙은 게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하기 어렵다. 되돌아 보면 나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책을 무척이나 '아끼며' 읽었던 세월이 있었다. 책에다 밑줄을 긋는 일이 마치 책을 더럽히거나 학대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동안은 줄을 긋더라도 연필로 조심스레 밑줄을 그으며 책을 읽었다. 연필이 아닌 볼펜으로 밑줄을 긋더라도 극히 조심스럽게 책을 대했다. 그 증거가 바로 아래 사진이다.

 

(1978년에 초판으로 사서 읽었던『불확실성의 시대』라는 책이다. 고1때 산 책이 아직도 용케 내 수중에 있다.)

 

언제부턴가 책을 읽으면서 뭔가 좀 더 능동적인 책읽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책을 그토록 아끼며 읽는다고 해서 내게 무슨 특별한 보답이 따르는 것도 아니고, 내가 다 읽은 책을 남에게 팔 생각도 없는데, 굳이 내가 스스로 나서서 책을 읽은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애쓸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적인 변화는 그 무엇보다도 인터넷 서재에서 글을 쓰게 되면서 자연스레 찾아왔다. 글이라는 하나의 건축물을 짓는 데 필요한 건축재료나 장식물로 쓰기 위해서라도 '밑줄'을 책 속에 뚜렷하게 새겨넣을 필요가 있었다.

 

책 속에 밑줄을 적극적으로 긋기 시작하자 차츰 거기에 더해 내 생각을 조금씩 덧붙여 써넣는 일도 자연스레 뒤따랐다. 어떨 땐 아예 책의 말미에 '책을 읽고 난 직후의 생생한 느낌'을 직접 써놓을 때도 있었다. 어떤 책을 읽든지 그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난 직후의 느낌이 가장 생생하기 마련인데, 그 느낌들을 따로 리뷰나 페이퍼로 쓸 때도 있었지만, 그런 작업을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어느새 '생생한 느낌'이 차츰 퇴색되고 변질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몰론 오래 전에는 이런 감상들을 기록하는 일들이 대부분 '독서 노트'를 통해서 이뤄졌었다. 책에서 발견한 인상적인 구절들도 마음껏 옮겨 적을 수 있고, 책을 읽는 동안에 수시로 떠오르는 온갖 느낌과 생각들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공간 가운데 '독서 노트'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다.

 

 

(2003년쯤부터 작정하고 쓴 독서노트들. 대학노트를 한꺼번에 마련한 덕분에 외관이 가지런한 편이다.)

 

 

(『몽테뉴 수상록』을 읽는 동안에 써내려간 독서노트. 단순히 옮겨 쓰는 일조차도 나는 즐겁다.)

 

 

(내 스스로 만들어 본 일종의 '색인 자료'다.『몽테뉴 수상록』에 담긴 내용을 인용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

 

 

(작년에 카프카의 『성』을 읽으며 끄적거렸던 내용이다. 언젠가는 꼭 '독후감'을 남기고 싶은 소설이다.)

 

 

 - 나는 '독서 노트'뿐만 아니라 다종다양한 '수첩'들도 평소에 애용하는 편이다. '기록'은 늘 중요하니까...

    저 수첩들도 나를 따라 많이도 돌아다녔다. '산행수첩'은 '백두산'은 물론 '히말라야'에 오르기도 했고,

   '여행수첩'은 이집트의 사막과 실크로드를 함께 다녀오기도 했다.

 

 

( '여행수첩' 속 내용이다. 이집트 여행때 기록했던 내용들이다. 이걸 펼치면 그때의 기억들이 확 되살아난다.)

 

 

(2009년 5월에 가족들과 함께 미국 동부와 캐나다 지방을 여행하는 동안에 기록했던 내용들이다.)

 

 

이렇게 옛날 일들을 돌이켜 보니 문득 내가 밑줄긋기에서 필사로 한걸음 더 내디딘 때가 생각난다. 그건 바로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하고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언젠가는 꼭 한번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계속 미뤄두었던 『월든』을 그때 마침 읽기 시작했는데, 그만 그 책이 온통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나는 그 책을 읽는 동안 어느 한 페이지도 도무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온통 밑줄긋기와 '내 생각 써 넣기'로 가득 채우고야 말았다. 그토록 나를 매혹시킨 책이 언제 또 있었나 싶었다. 이 책은 결코 한 번 읽고 말 책도 아니고, 그저 밑줄긋기로만 그칠 책도 아님을 직감했다. 그래서 그 책을 다 읽은 직후에 곧장 그 책을 다시금 펼쳤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 마음에 드는 대목을 중심으로 필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 증거가 바로 다음의 글이다.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무슨 일에든 첫 발을 내딛기가 힘든 법이다. 한 번 책을 베끼는 데 재미를 들이기 시작하자 도무지 겁날 게 없었다. 그 이후로는 어떤 종류의 책이든 내 마음에 쏙 드는 책만 만나면 '밑줄긋기' 뿐만 아니라 '필사'까지도 기어이 끝내야 직성이 풀렸다. 그런 책들을 읽을 땐 이미 '독서노트'에도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을 옮겨 적는 일도 허다했는데 말이다. 필사를 하지 않으면 늘 뭔가가 허전했다. 그 책 속에 담긴 인상적인 대목들이 생각날 때마다 언제 어디서든 다시 찾아 읽기 위해서, 그리고 가끔씩 필요할 때마다 내가 원하는 대목들을 재빨리 '인용'하기 위해서는 '디지털화된 필사'가 최고였다. 그렇게 밑줄긋기와 함께 '필사까지 마친' 책들은 다음과 같다.

 

(『몽테뉴 수상록』은 1,33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필사'를 통해 큰 보람을 느낀 책이기도 하다.)

 

 

(『증권분석』은 초판본(832쪽)과 제3판(943쪽) 두 권 모두 필사했다. 저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다가서고 싶었다. )

 

이들 말고도 내가 끊임없이 '필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책들도 있다. 그 책들을 필사하고 싶은 욕망과 새로운 책을 읽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갈등할 때도 적지 않았다. 이런 책들이 앞서 이미 필사를 마친 책들과 비교해서 어디 하나 뒤떨어지는 것도 아니었고, 그 책들이 나에게 감명을 덜 줬다고 말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그런 책들을 베껴쓰는 일을 중도에 포기하기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는 얘기다. 단지 그런 책들은 내 감정의 변화에 따라 늘상 오르내리기 마련인 필사의 열망에 때맞춰 부응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내 스스로 합리화할 때도 있다.

 

얼마나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지

 

어느 이름 모를 필사자는 8세기 어느 때인가 필사를 끝내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손가락 3개는 열심히 옮겨 적고, 두 눈은 끊임없이 보고, 혓바닥은 말을 하고, 온몸은 산고(産苦)를 치른다"고 적고 있다. 필사자들은 일을 할 때 자신이 옮겨 적는 단어를 하나하나 발음함으로써 혓바닥으로 말을 했던 것이다.

 

 - 알베르토 망겔, 『독서의 역사』

 

그런 책들 가운데 특히『돈키호테』는 내가 소설을 읽고 나서 처음으로 필사의 열망을 잠시나마 품었던 작품이다. 그만큼 감명 깊게 읽었고 기억해 둘 만한 놀라운 대목들도 정말 많이 만났었다. 하지만 필사하기엔 그 소설이 너무나 두꺼웠다. 다른 한편으로는, 나는 아직도 소설 보다는 다른 분야의 책들을 더 많이 필사하고 싶은 희망도 있었다. 내가 장차 소설을 쓸 일도 없는데, 소설 작품을 읽으면서 아무리 밑줄을 많이 그었다고 하더라도, 그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한 페이지씩 넘겨 가며서 고된 필사를 할 엄두를 내기도 힘들었다.

 

 

 

어쨌든 이제까지 필사를 마쳤거나 어느 정도로까지 필사를 진척시켰던 책들을 이번 기회에 한꺼번에 불러내 봤더니 그 책들의 분량이 결코 적지 않았다. 많은 시간들을 아낌없이 투자하며 필사를 하는 현장은 내 방 컴퓨터 책상 앞이다. 바로 그 위에 내가 필사한 책들을 쌓아 올리고 보니, 모니터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책의 두께가 불어났다.

 

(왼쪽 두 줄이 필사를 마친 책들이고 오른쪽 한 줄은 필사를 끝내지 못한 책들이다.)

 

저 책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필사를 하는 동안에 느꼈던 힘들었던 순간들'이 떠오를 때도 없지 않지만, 도대체 저 책들이 언제 나한테 붙들려 와서 저런 고생을 하고 있나 싶은 측은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저 책들이 내가 필요로 할 때면 아무 때나 끌려 나와, 나의 손가락의 움직임과 키보드의 동작과 모니터의 감시를 거쳐 통신선을 타고 저 멀리 어느 깊숙한 저장고 속으로 들어가 곤히 잠자고 있다가, 내가 어디서라도 부르기만 하면 순식간에 달려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갑자기 알베르토 망겔이 말했던 '전자 미로' 생각이 떠오른다. 망겔이 쓴 글이 언젠가 내 손가락의 힘에 의해 전자 미로에 붙잡혔다가 이렇게 여기서 다시 느닷없이 불려나와 민낯을 다 드러내 놓고 있는지를 저자는 아마도 새까맣게 모르고 있으리라.

 

끼르륵 끼르륵 낮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전자 미로

 

내 경우를 말하면, 책을 읽다가 남기게 되는 해설이나 메모는 타인의 기억력을 대신해 주는 워드 프로세서에 보관한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신만의 기억의 궁전을 떠돌며 인용구나 이름을 끌어낼 수 있었던 르네상스 시대의 학자처럼, 나도 화면 뒤편에서 끼르륵 끼르륵 낮은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전자 미로로 들어간다. 워드 프로세서의 기억력의 도움으로 나는 저 유명한 나의 선조들보다 더 정확하게(정확성이 중요하다면) 그리고 더 많은 양을(양이 가치있는 것이라면) 기억할 수 있지만, 수많은 해설 가운데서 중요도를 판단하고 결론을 도출하는 일은 여전히 내 몫으로 남아 있다.

 

 - 알베르토 망겔, 『독서의 역사』중에서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에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불려나온 책들은 이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거짓말이다, 그들은 벌써 제자리로 돌아갔다!) 어떤 책들은 예전에 TV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거긴 그저 아무런 벽도 없는 들판 같은 곳이어서 저 책들은 사람으로 말하자면 거의 노숙인 신세나 마찬가지다. 최근에 사들인 책일수록 그 책들은 내게 푸대접을 받는 셈이다. 저 책들을 볼 때마다 나는 항상 그들에게 미안하다.

 

 

 

오래 전부터 내게 사랑받았던 책들은 좀 더 확고한 자리를 차지한 채 물러날 줄 모른다. 나 또한 저런 책들을 달리 낯선 곳으로 옮길 생각이 별로 없다. 저들은 내 방에서도 터줏대감 노릇을 단단히 하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저 책들 가운데 내가 이 방에 들어앉은 15년 전 바로 그때 나와 함께 '동시 입주'를 했던 책들은 사실 별로 없다.

 

 

 

그러고 보니, 내가 그동안 거주지를 옮길 때마다 나와 함께 동행하면서 몇 차례씩이나 나와 '동시 입주'의 영광을 누렸던 '오래된 책들'은 이미 대부분 자리를 떠나고 없다. 그런 책들 가운데는 심지어 '대학교재'들도 있었다! 다시 들춰보지도 않을 책들을 내가 왜 그토록 오랫동안 질질 끌고 다녔는지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몸소 펜으로 꾹꾹 눌러 쓴 '노트'들은 아직까지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차지하는 면적이라도 좁으니 아직은 넉넉히 봐줄 만하다. 그 옆자리가 바로 앞서 불려 나왔던 독서노트들이 늘상 머무는 곳이다.

 

 

방금 보았듯이, 나는 이런저런 책들을 읽는 동안 나름대로는 밑줄긋기를 꽤나 열심히 해왔다. 그와 동시에 독서노트도 열심히 쓰고, 마음에 쏙 드는 책들은 필사까지 해봤다. 그와 더불어 나는 이런저런 잡다한 글을 쓰면서 '여러 작가의 글'을 내 글 속에 직접 여러번 옮겨 보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씩은 그 내용들을 한꺼번에 올려 놓느라 '밑줄긋기'로 도배를 하다시피 한 적도 많다. 이런 일들은 어쩌면 내가 지금보다 조금이나마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애쓰는 하나의 방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그래서 나는 500쪽이나 혹은 1,0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책마저도 통째로 필사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그토록 두터운 분량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조리 다 베낀다는 얘기는 아니다. 내가 판단하기로도 너무나 좋은 글들이고, 남들한테도 언젠가 한번쯤은 꼭 보여주고 싶은 욕심마저 드는, 그런 문장들만 고르고 골라서 베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애써왔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쓰는 글들은 언제나 저런 위대한 작품들 속에 담긴 글을 조금도 닮지 못한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류가 낳은 비범한 천재들이고 나는 기껏해야 수많은 둔재들 가운데 한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나는 항상 인식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앞으로도 '필사의 욕망'을 좀체로 버리지 못할 듯하다. 왜냐하면 내가 글을 쓰는 동안에, 비록 먼 발치에서나마, 저 위대한 천재들이 쓴 글의 향기나마 희미하게 맡으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나로선 너무나도 행복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좋은 글을 많이 읽고, 또 그들의 글을 많이 베껴쓰는 일이 '글쓰기'에 얼마쯤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함부로 부인하기는 어렵지 싶다. 그런데 좋은 글을 열심히 읽고 또 열심히 베껴 쓴다고 해서 내 몸에 벤 고약한 버릇까지 쉽게 고칠 수는 없다는 사실도 나는 차츰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퇴고도 없이 그냥 단번에 쭉 써내려간 글을 두 번째로 읽을 때에는 '무수히 얼굴을 붉히며' 다시 고쳐 쓴다. 수없이 반복된 동어반복은 그나마 고치기라도 쉽다. 만연체로 길게 늘어쓴 글들은 '주어'와 '술어'조차 서로 뒤영켜 있어서, 그들을 서로 온전히 분리해 내기가 몹시 힘들 때도 많다. 제대로 선택하지 못한 어휘들도 수두룩하다. 니체의 말대로 '언어 오류, 혼란스러운 비유, 불명료한 생략, 상스러운 언행, 부자연스러운 문체' 등이 가득하다. 물론 이런 표현들 조차도 내 글의 결함 가운데 아주 조금만을 말했을 뿐이다.

 

다시 읽을 때에는

 

내 작품은 내게 기쁨을 주기에는 너무나 모자라서 다시 음미해 볼수록 더욱 화만 치민다.

 

나는 다시 읽을 때에는 얼굴을 붉힌다.
왜냐하면 많은 문장이 작가인 내가 판단하기에도
마땅히 삭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비디우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중에서
 

 

내가 이렇게 '밑줄긋기'와 '필사'에 대해 기나긴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분명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도 '책을 너무 아끼지만 말고' 과감하게 책 속에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도 좀 적어보는 시도를 해보라는 권고를 하기 위해서다. 나는 책에다 밑줄을 긋고 내 생각들을 직접 책 속에 적어 넣는 일을 나이 사십이 넘도록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그게 무슨 큰 허물이 된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이왕이면 책을 좀 더 적극적이면서도 능동적으로 읽자는 얘기다. 물론 이미 오래 전부터 자신만의 훌륭한 방식으로 책을 읽는 분들껜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하겠지만...

 

끝으로, 내가 이 글 속에 많은 사진들을 포함시킨 건 물론 그 속에 담긴 책들에 대해 내가 깊은 애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내 책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베껴쓴 책들 이야기'를 하느라고 이 글을 이토록 길게 늘려간 일조차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애정으로 떨리고 있는 증거'라고 말한다면, 그에 대해 딱히 달리 변명할 말은 없다. 다만, 이 글 속에서 혹시라도 나를 지나치게 평가하거나 경멸하는 모습들이 은연중에 숨어들었다면, 제발 그 부분만이라도 제대로 숨어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애정으로 떨리고 있는 증거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어리석게도 나는 내 책 이야기를 하느라고 내 책을 늘겨 간 것인가! 어리석고말고, 이와 같은 일을 하는 다른 자들을 두고 나도 똑같은 말을 한다. "그들이 자기 작품에 그렇게도 자주 곁눈질하는 것은 그들이 자기 작품을 위한 애정으로 떨리고 있는 증거이고, 자기 작품을 경멸하며 박대하는 것까지도 모정다운 뽐내는 애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자기를 평가하거나 경멸하는 일은 흔히 똑같은 오만한 태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할 이유만으로도 그렇다.

 

  -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접힌 부분 펼치기 ▼

 

* 밑줄긋기와 필사를 함께 했던 책들. 

  예전에 찍어둔 사진도 있고 이 글을 쓰느라 새로 찍은 사진들도 있다.

  사진을 찍은 후에 내다버린 사진들은 조금이다. 많은 사진들을 이 글에 그대로 실었다.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560쪽)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676쪽)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712쪽)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900쪽)

 

 

(몽테뉴, 『몽테뉴 수상록』,  1240쪽)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600쪽)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650쪽)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722쪽)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776쪽,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도 나오는 대목이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810쪽)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838쪽)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918쪽)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956쪽)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696쪽)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768쪽)

 

 

(스티븐 핑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862쪽)

 

 

(스티븐 핑커, 『빈 서판』, 466쪽)

 

 

(스티븐 핑커, 『빈 서판』, 732쪽)

 

 

(찰스 다윈,  『종의 기원』, 462쪽)

 

 

(아담 스미스,  『국부론』, 322쪽)

 

 

(아담 스미스,  『국부론』1186쪽)

 

 

(케인즈,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238쪽)

 

(케인즈,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370쪽)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초판, 390쪽)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초판, 392쪽)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초판, 546쪽)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초판, 590쪽)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초판, 614쪽)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초판, 724쪽)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제3판, 586쪽)

 

 

(벤저민 그레이엄, 『증권분석』제3판, 804쪽,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에도 나오는 호라티우스의 <시론>)

 

 

(찰스 P.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238쪽)

 

 

(찰스 P.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272쪽)

 

 

(찰스 P. 킨들버거,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 400쪽)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258쪽, 다른 책들에서 무수히 언급되었던 유명한 대목이다.)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 460쪽)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528쪽)

 

 

(니체, 『비극의 탄생 · 반시대적 고찰』, 214쪽)

 

펼친 부분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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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2-01 16:48   댓글달기 | URL
우와! 빼곡한 독서노트!!!
적재적소에 맞는 고전 인용글은 이런 노트를 써 오신 힘이군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필사까지!

좋아요 100개 드리고 싶어요~~ㅎ
넘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oren 2016-02-01 16:52   URL
늘 성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과분한 `좋아요`도 잘 받겠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2-01 18:44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 진짜 야뮤 님 말씀처럼 좋아요 101개 드리고 싶은 글이군요..
서재 풍경에 감동하고, 필사 공책에 두 번 감동하고 갑니다..


저도 밑줄긋는 것이 버릇이 되어서 이제는 노란 색연필이 없으면 아예 읽기를 포기하는 상태에 이르기도 하고..
언젠가는 날이 좋아서 종로 밴치에 앉아서 책을 읽으려다 색연필이 없어서 모닝글로리 가서 산 후,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은 적도 있습니다.


oren 2016-02-01 22:26   URL
곰발 님께서도 노란 색연필이 없으면 책 읽기가 불편하실 정도군요. 저도 충분히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저도 가끔씩 전철이나 기차를 타면서 책을 읽을 때가 있는데, 어쩌다 하는 수 없이 서서 책을 읽어야 할 때조차 펜을 꺼내 밑줄을 그은 경험도 있었으니까요... 습관이 참 무섭긴 무서운 듯합니다.^^

cyrus 2016-02-01 18:57   댓글달기 | URL
꾸준한 노력과 인고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소중한 결과물은 마음껏 자랑해도 됩니다. ^^

oren 2016-02-01 22:34   URL
읽었던 책을 나중에 다시금 살필 때에는 `밑줄`조차도 아예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조금 더 반갑더군요. 물론 그보다는 책의 여백에 가끔씩 끄적거려 놓은 `그때 내가 떠올렸던 생각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게 훨씬 더 반갑고, 심지어 고마울 때조차도 있고요. cyrus 님께서 책들을 읽고 나서 꼬박꼬박 글로 남기시는 작업도 쌓이고 또 쌓이다 보면 먼 훗날엔 틀림없이 커다란 자산이 될 꺼라 믿습니다.^^

크사나 2016-02-02 08:18   댓글달기 | URL
커다란 감동과 울림을 받고 갑니다. 정말 대단한 꾸준함이시네요!!

oren 2016-02-02 09:37   URL
크사나 님 안녕하세요? 크게 공감해 주시고 격려 말씀까지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붉은돼지 2016-02-02 12:03   댓글달기 | URL
저는 좋아요 200개입니다.!!!!

어제는 정민의 <책벌레와 메모광>을 읽었는데요...여기도 필사와 메모 이야기가 많이나오더군요...사실 저도 책을 읽으면서 인상적인 구절, 의문나는 구절, 신기한 이야기 등등을 메모 좀 해두고 또 어떻게 분류를 잘해서 다음에 어디 써먹었으면 하는데 그 메모가 잘 안되더라구요....책 읽다가 중간에 노트 펼쳐서 적고 하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요.. 더 나아가서는 메모를 어떻게 분류를 잘해서 필요한 것을 금방금방 찾을 수 있도록 해야하는데 그게 또 어렵기도하고......뭐 모두 제가 게으른 탓이죠 ㅜㅜ

oren 2016-02-02 16:27   URL
책 속에서 발견하는 문장들을 어디에 따로 메모하는 일도 쉽지 않은데, 나중에 메모한 내용들이 너무 쌓이다 보면 정작 필요한 내용을 재빨리 되찾기도 어려워지더라구요. 그래서 `밑줄긋기`를 하고 난 뒤에 틈틈이 페이퍼나 리뷰 형식으로 `밑줄긋기` 내용을 글로 따로 저장해 놓으면 좋더라구요. 서재에서 `검색 기능`이나 `태그 기능`을 활용하면 아주 빠르게 원하는 내용을 찾아낼 수 있으니까요. 붉은돼지 님께서도 나중에 언젠가는 `내가 진작에 그 문장을 좀 갈무리해 둘 걸~` 하고 느끼실 때가 틀림없이 찾아오리라 믿습니다~

2016-02-02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02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02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2-02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2-02 17:26   댓글달기 | URL
저는 좋아요 300개입니다.^^

저는 예쁜 노트에만 마음이 가서 열심히 메모를 해놓고도 나중에 메모해둔 내용을 찾지 못할 때가 많은데, oren님의 노트를 보다보니 제가 메모도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필사노트랑 서재풍경 열심히 구경하고 갑니다.

<몽테뉴 수상록>과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읽어봐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가 완전 두꺼운 책이라는 얘기를 왜 안 해주셨나요?
oren님에게는 보통 두께일지 모르나, 저에게는 1년 프로젝트급이예요. T.T


oren 2016-02-02 17:36   URL
아이고.. 페이퍼 하나 쓰고 이렇게나 많은 `좋아요`를 한꺼번에 받아보기는 이번이 처음인 듯싶네요..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스티븐 핑커의 마음 3부작(<빈서판>이 2부,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가 3부) 가운데 가장 쉬운 책이어서 `두께` 때문에 너무 겁을 내실 필요는 없는 책이랍니다. 저 책 한 권을 다 읽으시는 동안 정말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두루 읽는 듯한 독특한 성취감도 맛보실 수도 있고, 나중엔 오히려 `두께` 때문에 더 뿌듯하실 수도 있답니다.
 
책과 영화 사이

 

 

알라딘이 가끔씩 놀라운 마법을 부리는 건 나도 이미 몇 차례 겪어 봐서 조금쯤은 안다고 생각한다. 북플도 그럴까? 물론 그 요물(?)을 쓰기 나름일 것이다. 아직까지도 스맛폰을 무슨 '병맛'처럼 여기고 2G폰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SNS는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니, 북플을 무슨 밥상 끄트머리에 붙은 밥풀떼기처럼 취급하는 사람들도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병맛'이 무슨 뜻이냐고? 나도 정확한 뜻을 몰라 이번에 백과사전을 찾아보고 나서야 확실히 알았다. ㅋ

 

병맛대한민국의 인터넷 유행어로, 정확한 의미를 규정하기는 어려우나,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없음'을 뜻하는 신조어이다. '신 같은 맛'의 줄임말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주로 대상에 대한 조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위키백과)

 

내가 북플을 쓰면서 이번에 잠깐 놀랐던 건 순전히 내 스스로 '자가 발전'을 너무 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내가 스스로 발전소를 돌릴 생각까지 품은 건 아무래도 북플을 사용하는 동안에 내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감시관의 시선을 너무 크게 의식한 탓으로 돌려야 마땅할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하등 그런 쓸데 없는 짓을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직결된 문제가 바로 북플에서 내가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 하나와 오래도록 연결되어 있었다. 그 코너에 가면 북플 소속 감시관이 자꾸만 나를 구석으로 몰아붙인 채 따지듯 묻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감시관은 나만 보면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고 항상 다음과 같은 질문만 반복한다.

 

'당신이 읽은 책은 도대체 몇 권이오?'

 

그래서 나는 그 코너에 가기가 싫다. 내가 읽은 책이 너무 보잘 것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나도 모르게 가끔씩 그 구석을 또다시 살핀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고민한다. 뭐, 좀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고. 그래서 나는 맨 처음엔 '내가 읽은 책이 이것 말고 또 뭐가 없을까'를 한동안 열심히 찾아보았다. 연목구어가 따로 없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봐도 내가 읽은 책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너무 적었다. 이래 저래 끌어 모아봐도 사백 권이 채 되지 않았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라는 말도 있는데 그것밖에 안 되다니! 정말 내가 생각해 봐도 너무 억울했다. 그렇다고 여태 읽지도 않고 빼곡히 쟁여둔 책들한테까지 낮짝도 붉히지 않고 '읽음 표시'를 떡하니 붙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느날 가만히 살펴 보니 북플은 고맙게도 '영화'에 대해서도 '읽은 책'에 포함시켜주는 놀라운 아량을 베풀고 있었다. 옳커니! 그래서 '내가 본 영화들'을 끙끙거리며 겨우 떠올리고 나서 착실히 '읽음 표시'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을 진척시키고 나서 겨우 '오백 권 남짓' 읽었노라는 새로운 성적표를 감시관에게 내밀 수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뭔가 좀 부족했다. 내가 보고도 '읽음표시'까지 진척시키지 못한 '나머지 영화들'도 결코 적지는 않을 텐데, 도대체 그 녀석들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가 큰 문제였다. 그렇다고 그런 시시한 작업을 위해 죽기 전에 꼭 1001가지 시리즈까지 사 볼 엄두는 차마 내지 못하겠고 말이다.

 

누가 말했던가.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고. 아무튼 나는 매우 원시적인 방법으로, 그러니까 그물코가 매우 엉성한 그물을 들고 고기잡이에 나선 한심스러운 어부와 같은 심정으로, '어떤 막연한 참조'를 살펴가며 내가 본 영화들을 조금씩 더 발굴해 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엉성한 작업으로도 내가 당초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짭짤한 소득을 올렸다. 그 작업의 증거가 바로 다음 사진이다.

 

 

검은 볼펜으로 쓴 영화들은 이미 내가 옛날에 '읽음 표시'를 붙여 놓았던 작품들이다. 대충 떠오르는 대로, 그러니까 내 머리속의 지우개가 아직까지도 손 대지 않고 내버려둔 영화들이라고나 할까. 청색 플러스펜으로 쓴 영화들은 이번에 새로 고된 작업(?)을 한 끝에 간신히 건져올린 작품들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나는 매우 놀랍고도 쓸 만한 물건(?) 하나를 발견했다. 그 물건을 본 순간, 나는 마치 요정이 튀어나오는 요술램프를 그물로 건져올린 심정을 맛보는 듯했다. 춘원 이광수의 원작 소설을 신상옥 감독이 영화로 만들고 최은희씨가 그 영화의 주연 여배우로 등장했던 《무정》이라는 아주 오래된 물건(?)이 내 눈에 번쩍 뜨인 것이다. 아... 나는 《무정》이라는 그 영화는 미처 보지 못했지만, 같은 소설가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유정》이라는 작품을 아주 오래 전에, 그것도 매표원이 버젓이 입구에 버티고 앉아 있는 영화관에서 본 적이 있었다. 아... 그 영화를 본 게 도대체 언제였던가. 북플은 참으로 '별 일'을 다 새삼스레 나에게 떠올려주는구나 싶었다.

 

내가 어릴 때는 우리 마을엔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가 몹시도 어려웠다. 그래도 읍내에 올라가면 허름한 극장이 하나 있긴 했지만 그게 어디 꼬맹이가 쉽사리 다가설 만한 장소던가. 언감생심이었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가끔씩 우리 마을에도 영화가 상영되는 날이 있긴 있었다. 어릴 때 내가 살던 마을을 지금 다시 떠올려 보면 마치 <웰컴 투 동막골>의 배경과도 조금은 겹칠 정도로 매우 한적한 시골이었다. 그땐 '영화차'라는 게 있었다. 영화가 상영되는 날엔 오후부터 영화차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오늘 저녁에 영화가 상영될 예정임'을 미리 알려줬다. 말하자면 관객에게 직접 다가가 호소하는 놀라운 홍보작전을 펼쳤던 셈이었다.

 

우리는 그 영화차를 무척이나 반겼더랬다. 영사기를 싣고 다니던 그 영화차는 참으로 볼거리가 많았다. 그 영화차가 영화를 상영할라치면 커다란 바퀴 같은 걸 꺼내 놓고 치르르르~ 소리를 내면서 그걸 돌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눈부신 빛을 바퀴 바로 뒤에서 커다란 천을 향해 비추기 시작하면 '별천지 같은 세상'이 눈 앞에 펼쳐졌다. 일 년에 고작 한두 번 찾아 오는 그 영화차를 발견하는 날이면 우리는 너무나 신이 나서 그 영화차의 꽁무니를 온종일 졸졸 따라다녔다. 스크린은 광목으로 만든 엄청나게 큰 천이 대신했다. 어떨 땐 마을 분교에 있는 교실 한 쪽 벽면에 그 광목천이 펼쳐졌고, 또 어떨 땐 마을 한복판에 있는 잔디가 무성한 풀밭 한켠에 서 있는 전봇대를 한쪽 기둥으로 삼아서 펼쳐지기도 했다. 그 때 본 영화들은 주로 박노식, 김희갑, 황정순씨가 단골로 출연했던 <팔도강산> 같은 작품들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대형 화면으로 봤던 그 영화들은 내용이야 어쨌든 나에겐 너무나 신기하고도 흥미진진한 볼거리였다. 갑자기 또 생각났다. 허장강이 등장하는 영화도 두엇 봤던 듯하다. 입소문 빠른 형들한테서 그런 정보가 미리 돌고 있는 게 내 귀에까지 닿을 때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 밤엔 허장강이 나온대~ 무지 재밌겠다"는 식이었다. 그 형들은 그때마다 '허장강식 액션'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걸 잊지 않았다. 그가 바로 우리에겐 헐리웃 액션 스타였던 셈이다. 그 분이 바로 64년생 영화배우 허준호의 선친이니 참 까마득한 옛날 얘기다.

 

이야기가 자꾸만 옆길로 샐려고 몸부림을 친다. 다시 돌아가자. 영화 《유정》을 본 날은 중간고사가 끝난지 며칠 지나지 않은 따스한 봄날 늦은 오후였다. 학교에서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희망자에 한해서 자율적으로 '단체 영화관람'을 시켜줬는데 그때 본 영화가 바로 《유정》이었다. 내가 '성인들'만 드나드는 곳인 줄로만 알았던 '영화관'을 난생 처음으로 들어가 본 것도 바로 그날이었다. 영화관 앞에서 시커먼 교모와 교복 차림으로 줄을 서 있는 동안에도 괜히 흥분되고 가슴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그것도 일종의 가슴떨리는 첫경험이었으니 당연지사였다.

 

읍내에서 시오리나 떨어진 시골 농촌 마을에 살았던 나는 도저히 혼자서는 그 영화를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영화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일이 태산처럼 험난했기 때문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금새 날이 저물 테고, 읍내에서 우리 마을까지 가는 길은 자갈 투성이 신작로를 따라 가더라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 그나마 지름길을 택해서 간다고 하더라도 '갈 길'이 험난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름길이라고 해봐야 읍내에서부터 걸어가자면 신작로를 반쯤은 걷고 난 뒤에야 겨우 고를 수 있는, 별반 사정이 나을 것도 없지만 그나마 시간만 조금 덜 걸리는 산길일 뿐이었다. 그 길은 중간에 보(湺)를 한 번 건너야 했고, 야트막한 산길을 따라 휘돌아 걷노라면 중간에 '늘 겁이 좀 나는' 공동묘지 옆을 지나가야했다. 가슴을 졸이며 간신히 그 무서운 길을 지나가더라도 또다시 길게 이어지는 논둑길을 지나야 했고, 다시 한번 돌다리로 된 징검다리를 건너야 했다. 그러고도 또다시 자갈이 잔뜩 깔린 신작로를 얼마쯤 더 걸어야 겨우 마을에 도달할 만큼 그 길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물론 그 지름길은 훤한 대낮에는 우리가 콧노래를 부르며 다녔던 등하교길이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우리는 내내 그 길로 학교를 다녔었다. 봄철 하교길엔 더러 참꽃도 따 먹었고 보리둑도 따 먹었다. 가을엔 더러 콩서리도 해 먹었고, 아주 가끔씩은 점심도시락도 등교길에 미리 까먹을 때조차 있었다. 그런 낭만들은 모두 그 '지름길'에서만 가능했다. 신작로는 온통 자갈길이었고 온통 먼지투성이였으니 그럴 여지가 별로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그 지름길을 가로등도 하나 없고 인적조차 완전히 끊어진 캄캄한 밤에 홀로 지나가는 일은 참으로 대담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동행을 구할 수밖에.

 

영화 <유정>을 함께 보자는 내 꼬드김에 넘어간 그 친구는 흔쾌히 나와 동행해 주었다. 다른 친구들은 아예 관심도 없었지만 그 친구는 나처럼 호기심도 많고 죽이 잘 맞는 친구였다. 이미 그 친구와는 '비슷한 전례'를 만든 일도 한 번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니던 분교를 졸업하고 5학년부터 읍내에 있는 본교(本校)로 학교를 다닐 때였다. 읍내엔 전기도 들어왔고, 우리반 아이들 중엔 몹시 드물긴 하지만 자기네 집에 TV가 있다는 녀석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유정>을 같이 보게 된 그 시골 친구와 함께 'TV가 있는' 읍내 친구 녀석의 집으로 'TV 자체를 구경하러' 가게 되었다. 그것도 어느날 갑자기 이뤄진 일이었다. 물론 TV는 저녁 무렵부터 방송이 나왔고, 우리 둘은 부잣집 친구 녀석의 집에 가서 맛있는 저녁까지 얻어 먹고 어린이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어른들이 즐겨 보는 '연속극'까지도 난생 처음으로 '구경'했었다. 그리고 밤 늦게 깜깜한 밤길을 걸어서 무려 밤 9시가 넘어서야 우리 마을에 돌아왔다. 물론 우리 둘은 어른들로부터 엄청나게 혼이 났다. 동네에서 '애들 둘이 학교에 갔다가 밤이 늦도록 집에 오지 않고 있다'면서 온통 난리가 났었던 모양이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깜깜한 밤에 '횃불'을 여러 개 만들어 동구밖을 벗어나 읍내 쪽으로 다가오던 길에 우리 둘을 찾아냈으니 사정이 오죽 했겠는가.

 

어쨌든 그 친구와 나는 컴컴한 영화관으로 들어가서 영화 <유정>을 감상(?)했는데, 그 내용이 도대체 우리에게는 영 다가오질 않았다. 지금에서야 다시 '내가 봤던 최초의 극장 영화'를 자세히 살펴 봤더니, 그 영화는 1976년 4월 24일에 개봉된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가 맞았다. 아, 그러고 보니 그 때가 바로 중2 때 봄이었구나 싶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의 일이다. 그러고 보니 '그해 여름방학때' 일이 또하나 불쑥 떠오른다.

 

그해 여름방학때 국어 선생님은 '방학 숙제'로 '독후감'을 한 편씩 써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숙제로 내 주신 작품들이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한국 단편 문학 전집에 단골로 나오는 작품들인 김동인의 <감자>, <발가락이 닮았다>, <광염 소나타>,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이효석의 <메밀 꽃 필 무렵>, 주요섭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이 '숙제 범위'였다. 그런 작품이 실린 책조차 가진 게 없는데 어떻게 독후감을 쓰란 말인가. 참으로 난감했다. 마침 내 짝이 '박사 마을'로 유명한 주실마을에 사는 아이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 친구는 조지훈 시인을 배출한 바로 그 마을에 살았고 성씨도 마침 한양조씨여서 시인과는 '같은 집안'이었다. 자기네 친척집에 가면 '책이 많다'고도 하였다. 그런 소설들이 실린 책들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다. 나는 그해 여름 방학도 다 끝나갈 무렵이던 광복절 즈음에 <유정>을 함께 봤던 그 친구와 함께 '책을 빌리러 주실마을을 함께 다녀오자'고 꼬드겼다. 그 친구도 흔쾌히 동의했고, 그 친구와 나는 거의 '삼십 리'나 되는 길을 걸어서 다녀왔다.

 

<감자>와 <표본실의 청개구리> 등이 실린 단편문학전집을 빌리기 위해 아침 나절에 길을 나선 우리는 앞서 얘기한 바로 그 '지름길'을 통해 읍내까지 걸었고, 거기서 다시 시오리쯤 더 떨어진 주실 마을까지도 내내 걸어서 갔다. 그 마을에 도착할 때쯤에는 거의 한낮이 되어 있었다. 마을 입구에 도착하니 아이들이 깊은 소(沼)가 딸린 절벽에서 벌거벗은 채 강물로 텀벙텀벙 뛰어내리는 모습들이 먼발치에서도 훤히 보였다. 동네 어귀 느티나무 그늘 아래서 더위를 피해 한가로이 앉아 계시는 동네 어르신들께 길을 물어 내 짝의 집을 찾았고, 그 친구는 친척집에서 빌려 놓은 책을 내게 선뜻 빌려주었다. 우리 둘은 대여섯 권이나 되는 두툼한 그 책을 두세 권씩 나눠 안고 다시 우리 마을까지 걸어서 되돌아왔다. 기진맥진해서 집에 돌아와 보니 우리집 마당에는 작두로 썰어 놓은 풀들이 산더미처럼 한마당 가득 쌓여 있었다. 어르신들이 합동으로 퇴비를 만들기 위해 풀베기 작업을 하셨던 모양이었다. 그 친구와 나는 빌린 책들을 마루 위에 아무렇게나 내던져 놓고 나서 곧바로 풀더미 위로 맘껏 몸을 내던졌다. 코끝으로 가득 밀려드는 풀향기가 그때만큼 달콤하게 느껴지던 때도 없었다. 그렇게 뜨겁던 한여름 무더위도 차츰 식는 중이었다. 친구와 나는 풀더미 위에서 아예 큰 대자로 팔을 벌리고 누운 채 어느새 물들기 시작하는 저녁 구름 노을들을 기분좋게 감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해 여름 방학은 끝나가고 있었다.

 

아, 또다시 내 이야기가 옆으로 길게 새고 말았다. 다시 <유정>으로 돌아가자. 그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 내 친구와 나눈 말은 다음과 같았다.

 

"영화가 하나도 재미없다, 그치?"

"응, 나도 그렇더라."

 

그 친구와 나는 더 이상 '영화'에 대해 할 얘기가 별로 없었다. 우리는 서둘러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그날 나는 아버님으로부터 떨어지는 불호령을 감수해야만 했다. 학생 주제에 공부는 안 하고 무슨 '영화'를 본다고 밤이 늦도록 집에도 오지 않느냐고 불같이 화를 내셨다. 부모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지극히 당연한 꾸지람이었다. 물론 나도 그런 호된 질책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다행히 나는 공부를 매우 잘하는 모범생 이미지를 착실히 쌓아 온 덕분에 더 이상 크게 혼이 나지는 않았다. 나도 애시당초에 그쯤은 혼 날 각오를 미리부터 해놓고 영화를 봤었다. 극장에서의 첫 영화 관람은 그렇게 비참한 결말로 끝난 셈이었다.

 

내 생애 두 번째로 봤던 영화는 서부극 <돌아온 쟝고>였다. 도내에서도 입시 커트라인이 가장 높았던 고등학교에 입시 원서를 냈던 나는 안동에 사시던 작은 외삼촌네 집에 머물며 고입 시험을 봤었다. 어쨌든 '고입 시험'을 보고 나서 내 머리에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은 '안동까지 나왔으니, 무슨 영화라도 한 편 볼까' 하는 것이었다. 안동시내는 과연 시골 읍내와는 영 달랐다. 크고 깨끗한 영화관에서 본 <돌아온 쟝고>는 고입 시험이 끝나고 난 뒤의 후련함을 맛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영화였다. 시험을 마치고 난생 처음으로 대중 목욕탕까지 다녀온 후였으니 그런 기분이 훨씬 더했다.

 

우리 마을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내가 중2때였다. 그러고 보니 중2때 참 여러가지 일들이 많이 있었구나 싶다. 그때까지도 희미한 호롱불에 의지해서 앉은뱅이 책상에서 공부를 했던 나는 60 촉짜리 전구에 처음으로 불이 들어온 그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 전구에서 쏱아져나오는 불빛은 한낮의 태양보다도 더 눈이 부실 지경이었으니까. 전기가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종갓집부터 들여놓기 시작한 'TV'가 차츰 동네 아이들과 어른들을 저녁때마다 엄청나게 끌어모으기 시작했던 것이다. 구경거리라고는 당최 구경하기가 힘든 시골 마을이었으니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어느 시골인들 안 그랬겠는가. 백여 호 가까이 살던 우리 마을에 TV가 고작 몇 대밖에 없다 보니 저녁을 먹고 조금만 어영부영하다 보면 'TV' 앞에 앉을 자리가 없었다. 그땐 TV에도 다리가 달려 있었다. 바로 그 TV의 다리 옆, 그러니까 거의 사각지대에서 TV를 보는 일도 잦았다.

 

차츰 소득이 늘어나면서 TV가 두세 집 건너 한 대씩 깔릴 무렵에 마침내 우리집에도 TV가 들어앉았다. 다리도 달리고 미닫이 문까지 어엿이 딸린 이코노 테레비였다. 그 때 즐겨봤던 프로그램은 최불암씨 주연의 <수사반장>과 이미 오래 전에 고인이 된 라시찬씨 주연의 <전우>였다. 나는 그 프로그램들 말고도 MBC '주말의 명화'와 KBS '명화극장'을 아주 즐겨 봤었다.

 

 

주말에 가까울 무렵만 되면 이미 작고한 영화평론가 정영일씨가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나타나서 '영화 소개'를 잊지 않았는데, 그 짧은 예고편의 말미에 그가 항상 덧붙이던 상투적인 코멘트인 "이 영화, 절대 놓치지 마세요" 하던 말이 어찌나 강력하게 다가오던지 그런 영화를 놓치면 평생 다시는 못볼 줄 알았다. 그 당시 TV로 봤던 그 많은 영화들은 도대체 얼마만큼이나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채 내 기억 속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버티고 있는지 나로서는 짐작조차도 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의 영화들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는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내가 까마득한 옛날에 봤던 그 흑백 TV는 매달 사용료를 내야 하는 비싼 공청 안테나를 달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여간해서는 화면이 깨끗하게 나오지 않았고, 화면뿐만 아니라 소리마저도 치지직 거리면서 애를 먹일 날이 많았다. 그래서 허구헌 날 안테나가 매달려 있던 우리집 뒷켠에 있던 감나무에 기어 올라가 그걸 붙잡고 '형! 잘나와?' 하면서 연신 안테나를 이리 저리 돌려대기 바빴다. 그렇게 고생을 하며 겨우겨우 봤던 영화들 가운데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과 같은 작품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 있다.

 

지금에서야 문득 돌이켜 생각해 보니 내가 고등학교때 봤던 영화는 아예 단 한 편도 없었던 듯하다. <돌아온 쟝고>는 엄밀히 말하자면 '중3과 고1 사이'에 본 영화였다. 대학교를 다니기 위해 서울로 올라 오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영화를 정말 마음편히 볼 수 있었다. 물론 성인영화까지도. 그런 얘기들까지 마저 길게 늘어놓게 되면 내 얘기가 끝이 없을 듯하다. 무슨 <1001 야화>를 흉내낼 일도 아니고, 내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지 않으면 세헤라자데처럼 목숨이 위태로울 일도 아니니 대략 이쯤에서 서둘러 글을 마무리지어야 옳지 싶다. 어느새, 그 '사이'에 시간이 참 많이도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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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아, 참, 글 제목이 왜 '무정과 유정 사이' 냐고요? <무정>이라는 영화는 이제사 알고 보니 무려 1962년에 나온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였더라구요. 그해는 마침 제가 태어난 해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유정>은 그보다 14년 뒤인 1976년에 나온 '12세 관람가' 영화였고요. 그러니 그 두 영화 사이에는 단 하나의 공통점, 말하자면 춘원 이광수의 소설이 원작으로 쓰였다는 점 말고는 대체로 '뭔가 적잖은 차이'부터 인식되기 마련이라는 점이 우선 저를 자극했지요. 그건 단순히 두 영화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차이, 즉 무슨 정(情)이 얼마나 있고 없고를 넘어서는 다른 많은 문제들을 함축할 수도 있는 제목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고요. 그러니 저 제목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이미 '제법 많은 여러 현실적인 사이 혹은 차이들'까지도 두루 담아낼 수 있겠다는 주제넘은 욕심까지도 부려볼 수 있었던 셈이지요. 

 

제가 오로지 북플 때문에 아주 오랜 옛날에 봤던 영화들까지 '엄마 찾아 삼만리' 식으로 찾아 나선 끝에, 마침내 내가 태어나던 해에 태어난 영화 <무정>을 발견한 걸 계기로 다시 <유정>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고, 거기서 또다시 까마득한 옛날에 있었던 온갖 추억들을 무슨 케케묵은 보따리를 풀어헤치듯 여기에 한꺼번에 쏟아내 놓은 일들도, 결국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한 느낌의 <무정>이라는 영화와, 도리어 나와는 절실한 관계를 맺고 있는 듯한 느낌의 <유정>이라는 영화 사이에 느껴지는 '어떤 기묘한 사이' 또는 '어떤 상당히 동떨어진 거리'가 발판이 되어 이뤄진 일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들을 품었다는 얘기입지요.

 

달리 말하자면 북플은 제게는 어쩌면 <무정>에 가까운 사물이지만, 북플이 떠올린 과거의 여러 추억들은 <유정>과 더욱 닮은 사물이라고나 할까요. 어쨌든 이 글은 <무정>이라는 다소 엉뚱한 영화가 촉발한 이야기이고, 주된 재료는 어디까지나 <유정>이라는 영화라는 점, 그리고 그런 옛 추억을 떠올리는 일에 있어선 꽤나 여러 '사이'들이 존재한다는 점도 저런 글제목을 선택하는데 적잖은 영향을 끼쳤음도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지요. 가령 <유정>이라는 영화를 함께 봤던 나의 오랜 고향 친구와 저와의 '사이' 또는 그와 나와의 '친구 사이' 자체의 변화, 즉 '과거와 현재 사이에 알게 모르게 저만치 벌어진 사이' 또한 저로서는 결코 빼놓기 어려운 또 하나의 고려 요소였다는 점도 저 '사이'를 글제목에서 도저히 배제하기 어렵게 된 요인이라는 말이지요.

 

이 글의 내용과는 어딘가 맞지 않는 듯한 저 애매모호하고도 미흡하게만 느껴지는 제목을 제가 굳이 이 글의 제목으로 최종적으로 선택하기까지에는 물론 이것보다 더 많은 고민이 있었음을 여기서라도 털어놓지 않고는 베겨나기 어려울 듯하네요. 저런 엉성한 제목을 달기 전부터 다른 유력 후보가 아예 없었던 건 결코 아니었답니다. 마침 예전에 한번 '책과 영화 사이'라는 글을 쓴 일도 떠오르고 해서, 이번엔 또다른 뜻으로 '책과 영화 사이 '라는 별반 흥미도 없을 듯한 속편 성격의 글까지도 써 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는 얘기이지요. 그렇지만 이런 글들이 무슨 흥미로운 영화의 속편도 아닌 주제에 감히 그런 턱도 없는 흉내를 낸다는 것 또한 우스운 꼴에 지나지 않는다 싶더군요.

 

그래서 결국 적잖은 방황 끝에 저런 황당하면서도 글 내용을 미리 가늠하기도 어려운, 더군다나 글을 다 읽고 나서도 왜 도대체 저런 제목을 달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계속 머릿속에 남게 되는, 그런 한심스런 제목을 달게 되었다는 변명을 이토록 길게 늘어놓고 있는 셈이지요.

 

아무튼 요즘 제가 카프카에 푹 빠져서 그의 소설들을 붙잡고 좀처럼 놓질 못하고 있는데, 이번에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 하나도 마저 알려드리고 싶군요. 아니, 글쎄, 카프카가 쓴 놀라운 장편소설인 <소송>뿐만 아니라 아예 소설가 <카프카>를 두고도 누가 이미 영화를 만들어 놓았더라구요. 정말로 북플 때문에 별의별 희한한 사실까지도 다 알게 되더군요. <카프카>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영화를 만들 생각을 다 하다니... 도대체 누가 그런 놀랍고도 엄청난 발상을 한 걸까요?

 

그러고 보니 북플이 '책과 영화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진작에 미리 알아차리고 책에만 클릭이 가능한 줄로만 알았던 '읽음 표시'를 '영화'에도 허용한 조치는 나름대로 '납득'이 가는 측면도 있더라구요. 어찌되었든 '북플'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그 누가 나더러 '책과 음악과 영화'의 대차대조표를 작성해 보도록 강요할 수 있었겠느냐는 거지요. 그래서 북플이 마법을 부린다는 말도 그다지 설득력이 영 떨어지는 얘기는 아닐 테지요. 그리고 제가 저토록 '자가 발전'에 심혈을 기울인 결과 북플의 '읽은 책' 코너가 마침내 '1001'을 넘어섰다는 사실도 무슨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1001' 시리즈와 '1001 야화'와도 그리 크게 동떨어진 '사이'도 아닌 듯하구요...

 

('읽은 책'에 보이는 '1007'이라는 저 숫자는 결코 '책의 권수'가 아니다. 영화와 음악까지도 두루 포함된 수치다.)

 

아주 한가한 독자들이라면 별 쓰잘 데 없이 그저 시시껄렁하기만 한 제 얘기를 용케 중도에 '되돌리기' 버튼도 클릭하지 않고 줄기차게 끝까지 따라와 주셨으리라 철석같이 믿습니다요. 아무쪼록 독자분들께서도 북플이라는 요물(?)을 부디 유용하게 활용하시는 데 있어서 제 글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저도 더 바랄 게 없습니다요. 날이 저문지도 오래 지났으니 저도 그만 이쯤에서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눠야 할 듯싶네요. 왜냐하면 저는 이제 다시 영화를 떠나 책 속으로, 말하자면 '소송'에 걸린 골치 아픈 주인공 '요제프 K'를 만나러 가야 하니까요. 그럼 안녕히...

 

"그런 다음에 내가 자유로워지는 것이군요." K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화가가 말했다. "하지만 그건 단지 겉보기로만 자유롭거나 혹은 좀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일시적으로만 자유로운 것입니다. …… 외부에서 보면 모든 것이 오래전에 이미 다 잊히고 서류도 어디론가 사라져 무죄 판결이 완전히 확정된 것 같은 인상을 줄 때도 더러 있습니다. 그러나 법원 내부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어떤 서류도 분실되는 법이 없으며, 법원에서는 잊어버리는 일 같은 건 없습니다. 어느 날,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어떤 판사가 그 서류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그 사건의 기소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깨닫고는 즉각적인 체포를 지시하는 겁니다. 여기서 나는 외견상의 무죄 판결과 새로운 체포 사이에 오랜 시간이 경과하는 경우를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능한 일이며, 그런 사례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 법원에서 집에 돌아와 보니, 벌써 위임을 받은 자들이 그를 다시 체포하기 위해 와 있는 일도 역시 가능합니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자유로운 삶도 끝나게 되지요." "그러면 소송이 새로 시작되나요?" K가 거의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물론입니다." 화가가 말했다.

 

 - 프란츠 카프카, 『소송』중에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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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6-01-25 23:46   댓글달기 | URL
오, 북플이 그런 기능을!!

빼곡하게 적어 놓으신 영화 목록들을 보니 저도 수첩에 적었던 때가 생각이 납니다.

헌데 올해 들어 저두 영화 무쟈게 봤는데, 적어 놓지 않아서 기억이 하나두 나지 않아요...ㅠㅠ

작년 9월부터 매달 10편 이상씩은 봤는데 말이죠..아흑..

오렌 님의 영화 이야기 잼나게 잘 봤어요~ 앞으로 영화 이야기 많이 많이 올려주시길!
 
콩밭과 모닥불

 

 

 

* 고 드 름 *
 
시린 밤 내내
네 집앞 기웃거린 죄로
하 많은 세월
물구나무서기 해서 살아도
 
그대 앞에선
결코 얼굴 붉히지는 않겠다.
 
이 겨울, 날카로움의 끝을
그대에게 들이대고 있지만
내 뜻은 그게 아님을
투명하게 보여주고 싶다.
 
그대 안에
꽃 피우기 위해서라면
가장 양지 바른 날
열렬함의 이름으로
깨끗이 녹고 말겠다.
 
똑,또옥
그대 가슴만 몇 번
두드려 보고

 
 - 석청 신형식

 

 

 * * *

 

 

매서운 추위다. 이럴 땐 아무래도 어린 시절의 여러 추억들이 절로 스르르 떠오르기 마련이다. 추억은 무슨 실마리를 닮았다. 하나를 끄집어 내면 그 다음부터는 술술 저절로 풀려 나온다. 옛날 추억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엄청나게 매서운 날씨도 마다 않고 꽁꽁 싸동여 매고 동네 한복판에 있던 종갓집 연못이나 강가로 달려나가 썰매를 타던 일, 썰매를 타러 나서기 전에 몰래 부엌으로 숨어 들어가 다 쓴 통성냥 껍데기와 성냥개비 몇 알을 잊지 않고 챙기던 일, 썰매를 타다가 너무나 추워 '모닥불'을 지피며 언 발을 녹이다가 그만 양말까지 눌도록 익혀 먹은 일 등은 겨울만 되면 수도 없이 떠올렸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다.

 

추억이 스멀스멀 기어나오기 시작하면 나는 그 추억을 무슨 칡넝쿨인양 단단히 붙잡고 늘어진다. 그걸 붙잡고 놓지 않으면 조금이라도 더 먼 옛날로 쉽사리 되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썰매를 만들기 위해 툇마루 뒤쪽까지 뒤져 굵은 철사줄을 장만하던 일, 썰매를 새로 만들기 위해 널판지를 톱으로 설컹설컹 자르던 일도 생생히 떠오른다. 반들반들 은빛이 나는 새 못과 녹이 슬어 구부러진 못들 가운데 쓸만한 놈들을 연장통 속에서 골라 내던 일, 장도리를 들고 줄을 맞춰 널판지에 못들을 땅땅 박아넣던 일, 썰매에 딸린 창을 만드느라 못대가리를 두드려 없애고 창으로 쓸 매초롬한 나무에 거꾸로 박아 넣은 뒤에 끝을 뾰족하게 열심히 갈던 일도 떠오른다. 썰매 이야기만 하더라도 여러 쪽을 채울 듯 추억이 춤을 추며 넘실댄다.

 

그보다 더 어렸을 땐 찬바람 쌩쌩 부는 날이면 집안 뒤켠 담벼락에 매달아놓은 수수타리에서 수수깡을 잘라 나르기 바빴다. 가늘게 벗겨낸 껍질은 안경테와 안경다리가 되었다. 껍질을 다 벗은 수수깡은 안경 코다리가 되었다. 수수깡을 벗겨내고 안경 다리를 만들다가 연한 살이 자주 베이기도 했지만 수수깡은 겨울날 방안에서 놀 수 있는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바람이 많이 불면 시도 때도 없이 연을 만들어 놀기도 했다. 튼튼한 나일론 줄은 일부러 읍내까지 나가서 '낚시점' 같은 델 들러 일부러 돈을 주고 사야 했기 때문에 벽장을 뒤져 굵은 바느질 실을 훔쳐다가 연을 띄우곤 했었다. 주로 꼬리연을 만들었는데 싸리나무를 휘게 한 다음 종이에 단단하게 고정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 풀이 따로 있을 리 없어 부엌에서 꺼내 오는 밥알을 대신 썼는데, 휘어진 싸리나무가 좀처럼 굽은 상태로 붙어주질 않아서 아주 애를 먹었다. 그럴 때마다 부엌으로 달려가 커다란 철솥 뚜껑을 열고 '밥알'을 더 가져오는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더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 내가 살던 집이 '초가지붕'이었던 시절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새마을 운동이 1970년에 시작되었고 그 무렵 어느날 갑자기 '엄청나게 무거운 기와'가 우리집 지붕 위로 올라가는 바람에 잠시 동안 어색했던 느낌도 없지 않았다. 초가집은 추수때 타작을 하기 전까진 칙칙한 재색으로 빛이 바래서 마치 늙은 노인네 머리털마냥 보기가 흉했다. 가을만 되면 그런 모습을 벗어던지고 '황금빛깔' 새옷으로 갈아 입었는데, 나는 그 푸근하고도 넉넉하면서 은근히 화려한 그 느낌이 참 좋았었다. 그리고 한 여름에 비가 쏟아지면 초가지붕 처마 끝으로 떨어지는 빗줄기가 마당으로 또르륵 떨어져 내리면서 만들어내는 흙빛깔 물방울이 좋았다. 비가 올때면 우리 형제들은 마루 앞에 쪼르르 모여 앉아 마당에서 연신 생겨나는 그 물방울들이 퐁퐁 터지면서 사라지는 모습을 오랬동안 즐겼다. 물론 가끔씩은 빗속으로 뛰어들어가 놀다가 부모님께 혼이 나기도 했다. 마당은 농가에서는 늘 중요한 생산설비 가운데 하나였다. 그게 아이들 발자국 때문에 제멋대로 들쑥날쑥 패여 있으면 비가 그치고 땅이 마를 땐 언제나 어른들이 나서서 고르게 펴 주어야 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추운 겨울에 초가집은 특별한 선물을 내놓는다. 지붕 위에 쌓인 눈이 한낯의 짧은 햇살 덕분에 조금씩 녹기 시작하다가 갑자기 날씨가 얼어붙게 되면 다음날 아침엔 틀림없이 고드름이 장관을 이룬다. 고드름이 무슨 특별난 장식처럼 처마끝마다 빈틈없이 가득 채우는 날엔 그걸 꺾고 따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었다. 길고 단단한 놈들을 꺽어다가 총놀이를 즐길 때도 많았다. 장갑도 벗은 채 맨손으로 그 매끈매끈한 몸뚱이를 붙잡고 조막손에서 빠져나가지 않도록 애를 쓰며 놀 때가 더 좋았다. 초가지붕에 얽힌 갖가지 추억들은 거세게 일어난 새마을 운동 때문에 한순간에 다 옛날 일이 되고 말았다. 새벽종이 울리고 새아침이 밝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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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6-01-23 11:06   댓글달기 | URL
초가지붕의 고드름! 생각만으로도 정감있네요. 고드름을 주제로한 시 참 좋아요.
`똑, 또옥/ 그대 가슴만 몇번/ 두드려보고`라니....하~~~

oren 2016-01-23 11:33   URL
저도 이 시를 발견하고 깜짝 놀랬어요. 어쩜 이리도 내 마음을 툭툭 기분좋게 두드려주는지 말이지요.
시인이 제 또래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싶은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시인의 서재도 있더라구요... ☞ http://cafe.daum.net/kmashiin

五車書 2016-01-23 11:34   댓글달기 | URL
고드름은 추위의 상징인데 … 정겹기도 하다는 것은, 공감하면서도, 기묘한 이야기 같아요~ ^^;

oren 2016-01-23 11:35   URL
그게 바로 저런 시를 써내는 시인이 부리는 마법이겠지요...

cyrus 2016-01-23 16:13   댓글달기 | URL
저는 고드름만 보면 괜히 부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이런 행동을 어린 아이 특유의 폭력성으로 봐야 할까요? ㅎㅎㅎ

oren 2016-01-23 16:17   URL
손과 발을 마구 휘둘렀겠네요. 아니면 주변에 널린 막대기를 줍거나, 그것도 모자라면 돌멩이까지도?
누구나 다 마찬가지 아니었을까요? 그래도 우리집 초가지붕 처마 끝마다 길다랗게 달렸던 고드름만은 고이 고이 따던 기억이 많아요. ㅎㅎ

프레이야freyja 2016-01-23 16:17   댓글달기 | URL
아‥이제 고드름도 추억의 물상이 된 듯해요. 도심에선 보기 드물게요. 똑 분질러서 깨물어 먹곤 했는데요.

oren 2016-01-23 16:18   URL
맞아요, 프레이야 님. 저도 고드름 본 지가 언제인지 도무지 기억에 없어요. ㅎㅎ
 
서평이 뭡니까?

 

 

노력은 항상 그 필요성에 비례한다

 - 아담 스미스

 

 * * *

 

저도 좀 강하게 주장해 보고 싶습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서평'은 그야말로 '서평꾼'이 대체로 '직업적인 필요'에 의거해서 쓰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부 전문 블로거들이 인터넷 공간에 '거의 프로에 가까운 솜씨로' 쓰는 글들도 어쩌면 '서평'이라고 부르는 게 맞지 싶고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책을 읽고 나서 쓰는 글'은 그게 리뷰든 페이퍼든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이든 또다른 어떤 형식의 글이든 상관없이 대체로 '책에 대한 감상문' 즉 '독후감'을 쓰는 경향으로 자연스레 흐르게 마련이라고 봅니다.

 

요즘 알라딘 서재에서 블로거들이 쓰는 ('페이퍼'가 아닌) '리뷰' 또한 예전에는 꽤나 오랫동안 '서평'이 주류였다고 기억됩니다. 그래서 글의 구성요소나 스타일이나 분량들이 쳔편일률까지는 아니었더라도 대체로 '어떤 범주'를 크게 벗어나는 일이 없었던 듯하고요. 저 또한 알라딘에 들어온 초창기(대략 2003년 ∼ 2008년? 또는 2010년?) 여러 해 동안에는 철저히 '서평'만 썼더랬습니다. 소위 서평꾼도 아니면서 서평꾼이 되려고 노력했었던 셈이지요. 그러다가 '페이퍼'가 점차 활성화되면서 저도 언제부턴가 용기를 내어 '페이퍼'를 쓰기 시작했더랬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알라딘의 분위기 또한 점점 더 '서평'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알게 모르게 어느새 '페이퍼'와 '리뷰'의 경계가 모호할 정도로 '독후감'이 대세를 점하게 되더군요.(이건 제 판단입니다.)

 

 

잠행성 정상 상태, 풍경 기억 상실

 

불규칙한 변동으로 인해 느리게 진행되고 있는 변화가 잘 드러나지 않는 현상을 정치학자들은 '잠행성 정상 상태(creeping normalcy)'라고 부른다. 경제 문제, 교육 문제, 교통 체증 문제, 혹은 그 어떤 문제가 매우 천천히 악화되고 있을 경우 한 해의 평균 수준이 그 전 해에 비해 아주 약간 낮아졌다는 사실을 깨닫기 힘들며, 따라서 미세하지만 한 사람이 정상(normalcy)이라고 생각하는 기준도 매년 조금씩 변동하게 된다. 이와 같은 변화는 사람들이 깨닫는 순간까지 수십 년간 계속 진행되어 어느 순간 몇십 년 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상태였으며, 현재 정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태가 사실은 악화된 상태임을 알게 되고는 갑자기 놀라게 되는 것이다.

 

'잠행성 정상 상태'와 관련 있는 또 다른 용어는 '풍경 기억 상실(landscape amnesia)'이다. 이는 변화가 매년 매우 느리게 진행됨으로써 50년 전의 풍경이 지금과는 얼마나 달랐는지 깨닫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몬태나 빙하 및 설원의 용해 현상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 재레드 다이아몬드, 『문명의 붕괴』중에서

 

 

저도 과거에 '서평'만 쓰던 시절에는 '리뷰'를 쓸 때 다음의 '네 가지'를 항상 염두에 두고 글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1. 전반적으로 무엇에 관한 책인가?

2. 무엇을, 어떻게 자세히 다루고 있는가?

3. 전반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볼 때 그 글은 맞는 이야기인가?

4. 의의는 무엇인가?

 

최소한 서평을 쓰자면 '서평의 기본'은 반드시 글에 담겨야 한다고 여겼거든요.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에서 배운 걸 실천하려는 의미도 있었고요.

 

그런데 '페이퍼'가 차츰 활성화되면서부터 '리뷰'를 쓰는 일이 점점 힘겹게 느껴지기 시작하더군요. 정작 '서평'을 쓰기 위해서는 '정해진 틀'에 대충이라도 맞춰야 하는데 그게 싫어지기 시작한 거지요. 더군다나 글에 쏟아 넣고 싶은 온갖 재료들을 '억지로' 빼는 일도 참기 어려웠고요. 그래서 차츰 '페이퍼' 위주로 글을 쓰면서 '책의 생김새'를 비롯한 온갖 '다양한 이미지'들을 넣을 수 있게 되고, 심지어 '음악'과 '미술'까지도 넣을 수 있으니 정말 좋더군요.

 

어느덧 알라딘 블로거들이 올리는 페이퍼나 리뷰는 '과거의 잣대'로만 재단하기에는 너무나 힘들 정도로 빠르게 변모하고 진화하는 듯합니다. '북플' 서비스도 그런 경향을 심화시킨 요인 가운데 하나인 듯하구요. 이런 변화와 경향들을 무시하고 굳이 다시 옛날 스타일로 되돌아가서 '서평' 다운 '서평'을 써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그 점이 제일 궁금합니다. 서평꾼이라면 서평을 써야 되겠지요. 서평가를 지향하시는 분들도 서평을 열심히 쓸 필요가 있겠지요. 혹은 '서평'이 아니면 '리뷰'도 아니라고 여기는 분들도 계속 '서평' 형식으로 글을 쓸 테지요. 그러나 '영혼이 자유로운' 수많은 일반 블로거들까지 굳이 '서평가'를 흉내내어 그런 형식과 내용에 걸맞는 '서평'을 쓸 필요가 있을까요?

 

그리고 한가지만 더 언급하자면, '리뷰'나 '페이퍼'에 '인용문'이 많냐 적으냐 하는 건 '서평'을 쓸 때 제기될 만한 문제이지 '독후감'이나 '책에 대한 자유로운 글'을 쓸 땐 전혀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 스스로는 글을 쓸 때 '인용문'을 최대한 많이 집어 넣기 위해서 일부러 애를 쓰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제 판단으로는, 제가 쓰는 글보다는 '인용문'이 훨씬 더 강렬하게 독자들에게 와닿는 경우가 많을 지도 모르고, 제가 쓰는 허접한 글보다는 제가 다루는 책 속에 담긴 '빛나는 문장들'을 독자분들이 꼭 한번 눈여겨 봐주십사 하는 마음 또한 쉽게 포기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는 심지어 다른 분들이 쓴 글 속에서도 가급적 '인용문'이 많은 글을 일부러 더 열심히 찾아서 읽는 편입니다. 그런 글들을 읽으면 '아하, 그 책 속에는 저런 빛나는 문장들이 실려 있구나' 하는 걸 단번에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누구든지 자신이 갖고 있지 못한 책이나 읽어 보지 못한 책에 대해서는 궁금해 하기 마련인데, 그 책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려고 하면 '책 속 문장들'을 직접 내 눈으로 살피는 일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심지어 '인용문'이 거의 없는 글들은 아예 지나치기도 합니다. 어떤 책에 대해서 '소감'을 밝히는 글이라면 그 책 속에 담긴 가장 명백한 실체라고 할 수 있는 '책 속 문장들'은 얼마쯤 보여주는 게 좋다고 여기기 때문이지요.  책 속에 담긴 절묘한 문장들을 조금도 보여주지 않은 채 혼자서 아무리 훌륭한 책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어봐야 도무지 '납득'이 안 될 경우도 있거든요. 인용할 게 아무리 없더라도 '단 한 줄' 정도는 인용할 수도 있지 싶은데, 오로지 자기 자신의 느낌과 주장만 장황하게 늘어놓은 글은 아예 읽기조차 싫어질 때도 있더라구요. 뭐, 각자의 스타일이 있겠지요. 두서없는 글이 자꾸만 길어지네요. 그럼 이만 총총...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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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yrus 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속 여러 구절들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제 고약한 버릇이 또다시 발동된 셈이지요. 님의 용기있는 '문제 제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원인과 결과의 혼동

 

한 사람은 부유하고 그 이웃은 가난한 것은 외출할 때 한 사람은 마차를 타고 그 이웃은 걸어다니기 때문이 아니라, 한 사람은 부유하기 때문에 마차를 탈 수 있고 그의 이웃은 가난하기 때문에 걸어다니는 것이다.

 

 

분업을 야기하는 원리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의 자비심에 호소하지 않고 그들의 자애심에 호소하며, 그들에게 우리 자신의 필요를 말하지 않고 그들 자신에게 유리함을 말한다. 거지 이외에는 아무도 전적으로 동포들의 자비심에만 의지해서 살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거지조차도 전적으로 타인의 자비심에 의지하지는 않는다.

 

 

버릇을 고칠 만한 용기

 

하인의 수를 대폭 줄이거나 식탁의 음식차림을 매우 호화로운 것에서 매우 검소한 것으로 바꾸는 일, 호화로운 마차를 만들어 놓고는 타지 않는 것은 주변사람들의 이목을 피할 길 없는 변화이며, 이전의 나쁜 행동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변화이다. 그러므로 한때 이러한 종류의 지출에 빠져들만큼 불행했던 사람들은, 파멸·파산으로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는, 그런 버릇을 고칠 만한 용기를 내지 못한다.

 

 

상인들의 궤변

 

어떠한 나라에서든 대다수의 국민들로서는 자기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가장 싸게 파는 사람들로부터 사는 것이 가장 이익이 되며 실제 그러함에 틀림없다. 이 명제는 너무나 명백해서 그것을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상인·제조업자들의 사리(私利)에서 나온 궤변이 인류의 상식을 혼동시키지 않았던들, 그 명제는 결코 문제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 점에서 그들의 이익은 국민 대다수의 이익과 정반대이다. 주민들이 자기들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을 저지하는 것이 동업조합원의 이익이 되듯이, 국내시장의 독점권을 확보하는 것이 상인과 제조업자에게 이익이 된다. 따라서 잉글랜드나 대부분 유럽 나라에서는 외국상인에 의해 수입되는 대부분의 재화에 특별관세가 부과된다. 또 자기 나라의 제품과 경쟁할 수 있는 모든 외국제품에 높은 관세와 금지조치가 부과된다. 무역수지가 자국에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나라, 즉 국민적 반감이 가장 격렬히 타오르는 나라로부터 수입되는 거의 모든 종류의 상품에 대해 특별제한을 가한다.

 

 

상인들의 허풍

 

나는 공공이익을 위해 사업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실 상인들 사이에 이러한 허풍은 일반적인 것도 아니며, 그런 허풍을 떨지 않게 하는 데는 몇 마디 말이면 충분하다.

 

 

우둔하고 황당한 사람의 수중에 있을 때

 

자기의 자본을 국내산업의 어느 분야에 투자하면 좋은지, 그리고 어느 산업분야의 생산물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해, 각 개인은 자신의 현지 상황에 근거해서 어떠한 정치가나 입법자보다 훨씬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민간인들에게 그들의 자본을 어떻게 사용하라고 지시하려는 정치가는 스스로 불필요한 수고를 할 뿐만 아니라, 어떤 한 개인에게 안심하고 위임할 수 없으며 어떤 위원회나 참의원에게도 안심하고 위임할 수 없는 권력을, 또한 자신만이 이와 같은 권력을 행사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우둔하고 황당한 사람의 수중에 있을 때 가장 위험해지는 그런 권력을, 자신이 멋대로 휘두르려는 것이다.

 

 

노력은 항상 그 필요성에 비례한다

 

어떤 직업에서도 그 직업을 수행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노력은 그 노력을 해야 할 필요성에 항상 비례한다. 이 필요성이 가장 큰 것은 자기 직업에서 받는 보수가 그들이 획득하기를 기대하는 재산 또는 일반수입이나 생활수단의 유일한 원천인 사람들의 경우이다. (중략) 어떤 특정 직업에서의 성공으로 달성할 수 있는 위대한 목표는 물론 특별한 의지(spirit)와 야심(ambition)을 가진 소수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노력하도록 분발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최대의 노력을 끌어내는 데 반드시 위대한 목표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비천한 직업에서도 경쟁과 대항의식이 남보다 성적이 뛰어나는 것을 야심의 목표로 하여 최대의 노력을 경주하도록 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이에 반해, 목적이 위대하긴 하나 노력해야 할 필요성이 별로 절실하지 않은 경우에는 크게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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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1-21 09:25   댓글달기 | URL
2010년 알라딘 블로그에 첫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의 북플까지 쭉 보면서 사람들의 글 형식이 조금씩 변화하는 걸 느꼈습니다. 저도 처음에 서평을 쓸 때 기준이 있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기준을 유지하면서 쓰는 일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런데 인용문을 넣는 글에 대한 저의 입장은 oren님의 입장과 다릅니다. 오늘 곰곰생각하는발 님의 글에서 발견한 인용문입니다.

내용 중의 일부를 따다가 원고를 채우면서 서평자와 원저자 사이의 입장 차이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도 서평이랄 수 없다. (< 과학서평의 위치와 갈 길 > , 최종덕 / 상지대 교수)

아무리 감상문을 자유롭게 쓰더라도 작성자가 인용문에 의존하듯이 지나치게 많이 인용하면 가독성을 방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제 인용문이 많은 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독자가 읽기 편한 인용문만 찾아 읽으면 글 작성자 본연의 생각을 외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종덕 교수의 지적처럼 잘못된 인용이 글의 주제를 모호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oren님의 글과 최종덕 교수의 글을 종합해서 제가 얻은 결론은 인용문이 많은 글은 장단점이 있습니다. 글에 쓸 때 인용문을 어디쯤에 넣어야 하는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oren 2016-01-21 16:08   URL
`리뷰`를 옛날처럼 `서평`의 형식으로 쓰는 글들을 점점 찾아보기 어렵게 된 점에 대해서는 저로서도 몹시 안타깝게 여기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평`은 어쨌든 `책이 중심이 되는 글들`이기 마련인데, 여러 환경변화(포토리뷰, 밑줄긋기, 100자평 활성화, 북플 등)와 사용자들의 취향 변화(`딱딱한 서평 쓰기`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독후감` 또는 `책에 대한 느낌을 강조하는 글쓰기` 확산) 등에 따라 갈수록 `책에 대한 날카로운 안목과 비판`이 담긴 깊이 있는 서평을 점점 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어쨌든 깊이 있는 서평을 쓰자면 `품`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그런 고된 노력을 들여야 할 이유가 점차 희박해지기도 했구요.

인용문의 과다 여부 문제는 획일적인 잣대로 재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어쨌든 글을 쓰는 사람은 건축에 비유하자면 설계도와 함께 온갖 재료들을 써서 건축물을 지을 텐데, 인용문은 그런 건축물에 들어가는 일종의 건축 재료 혹은 장식물과도 비슷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런 재료나 장식물이 너무 넘쳐나서 어디가 `토대`이고, 어디가 `기둥`이고 어디가 `박공`인지 `지붕`인지조차 구별되지 않는다면 문제는 심각해지겠지요.

물론 건축물 가운데서도 `창고형 건축물`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인용문`이라는 건축재료 혹은 장식물만 가득 담기 위해 쓴 글이 그런 경우이겠지요. 혹은 `전시관` 같은 건축물도 생각해 볼 수 있겠구요. 물론 저도 그런 `창고형 건물`이나 `전시관`을 미리 염두에 두고 `인용문`으로만 가득 채우는 글을 쓸 때도 있답니다.(`창고형 건물`은 때로는 비공개글로도 잔뜩 써놓습니다. 다른 건축물을 지을 때 혹시나 필요할까 싶어서요. 창고를 들락거리며 그런 건축재료나 장식을 찾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답니다.)

`인용`을 얼마나 할 것인가는 결국 글쓴이의 의도와 글의 용도에 따라 판단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알베르토 망겔이 쓴『독서의 역사』나『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읽어 보면 숨돌릴 틈도 없이 이어지는 기나긴 `인용`이 수도 없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렇다고 그 책이 `인용`이 너무 지나치다고 비판받을 일은 없다고 봅니다. 그런 책은 `인용`이 많을수록 더욱 풍성해지기만 할 뿐이지요.)

cyrus 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처럼, 서평이랍시고 `내용 중의 일부를 따다가 원고를 채우면서` 쓰는 글이나, `글쓴이 본연의 생각조차 희미해지고 마는` 글들은 단점이 단번에 드러나고 마는 글이어서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겠지요...

yamoo 2016-01-21 11:16   댓글달기 | URL
이 논의는 관점의 차이가 매우 큰 것 같습니다.

대체로 오렌 님과 같이 생각하시는 분, 사이러스 님과 같이 생각하시는 분, 아니면 그런 거 필요없이 난 독후감이 좋아 독후감을 쓸래...이런 분들...

그냥 답은 없는 듯해요.

단지, 매체에 서평이라는 글을 기고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형식에 맞는 글이 필요한데, 이때에는 글쓴 사람의 주관적인 감상은 최대한 배제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oren 2016-01-21 15:35   URL
좋은 책을 많이 읽고, 그와 더불어 좋은 서평까지도 꾸준히 쓸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 `책에 대한 감상글`이 점점 더 득세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상으로 받아들여야만 할 듯해요. `서평`은 꼭 이래야만 하고, 독후감은 꼭 저래야만 한다는 `명확한 구분이나 규정`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테니까 각자 `자신의 능력에 걸맞게` 글을 쓸 수밖에 없는 노릇이라고도 생각되고요.

어쨌거나 `서평다운 서평`을 쓰고 싶은 욕심은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폭넓게 잠재되어 있는 뜨거운 욕망일 터이니, `서평` 자체가 너무 뒷전으로 밀려나거나 차츰 사라지는 건 아닐까 지레 걱정할 필요까지는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transient-guest 2016-01-23 10:08   댓글달기 | URL
서평인지, 독후감인지 뭔지 모를 글을 계속 써오고 있는 저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보다는 그저 좀 잘쓴 글이 나왔으면 하는 맘이 더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책의 이야기를 정리하는건 뭔가 스포일러 같아 꺼려지구요.ㅎㅎ 딱 free writing정도가 제 현재의 수준인 듯 합니다.

oren 2016-01-23 11:14   URL
저도 한 때는 `서평 쓰는 일`이 미뤄둔 숙제처럼 느껴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좋은 책, 감동받은 책들은 나 자신을 위해서나 다른 분들을 위해서나 `서평`은 꼭 남겨 보자는 욕심과 그걸 해소하지 못하는 현실 사이를 오래도록 방황했었던 셈이지요. 그런데 시간이 차츰 흐르면서 그런 부질없는 욕심을 차츰 버리게 되더군요. 어쨌든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단순한 사실에만 시선을 돌렸다고나 할까요. 이번 논쟁을 보면서 저는 `책보다는 느낌이 강조되는 작금의 글쓰기 경향`에 대해서 은근히 반기를 들고 (마치 숨어서라도) `옛 영토 복원`을 꿈꾸는 듯한 희망이 남아있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물 흐르듯 흘러가는 `서평이냐 독후감이냐`에 대한 변천의 흐름을 그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구요.

감은빛 2016-01-31 16:01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는 책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써야 최소한 서평 비슷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책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글이 서평이 아닐까라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언젠가부터 책의 줄거리나 내용을 주로 쓴 글이 별로 재미가 없더라구요.
대개 책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출판사에서 제공하기 때문에 굳이 서평에서 그런 정보를 써야할까 싶구요.
`나는 왜 이 책을 읽었는지, 어땠는지, 왜 이 책에 대한 글을 남기는지`
이런 내용이 들어가야 제대로 된 서평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 저는 왜 굳이 서평과 독후감을 구분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책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 재밌고,
다른 사람이 이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궁금하고,
그런 여러 생각들을 살펴보고 교류하는 것이 그저 좋은데,

왠지 이 논의가 한 편으로
`이건 서평이고, 이건 독후감이야. 제대로 된 서평을 써야해`
같은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절대 오렌님의 글이 그렇게 읽힌다는 뜻은 아닙니다.
전반적으로 그런 경향이 느껴진다는 말씀입니다.)

oren 2016-01-31 16:51   URL
`서평과 독후감`을 구분짓고자 하는 열망 같은 게 누구에게나 알게 모르게 잠재되어 왔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 과거 오랜 시간 동안 `서평`만이 `리뷰 카테고리`에 적합하고, `독후감에 가까운 감상문들`은 `페이퍼 카테고리`에 적합하다는 암묵적 구분이 있어왔다고나 할까요? 이제는 그런 구분마저 희미해진 게 사실이지요. 그래서 제가 이 글에서 `서평은 서평꾼들이 쓰는 전문적이고도 직업적인 글`이라고까지 범위를 확 좁혀서 말씀드리게 된 것이구요.
 
마침내 잠에서 깨어난 저주의 소설


마태우스 님께서 소설을 쓰셨다는 사실만 하더라도 너무나 놀라운데, 그 기이하고도 저주스러운 소설을 끝까지 추적하고 찾아내어 기어이 작가님께 들이미는 데 성공하신 cyrus 님의 여러 행적들도 참으로 기이하고도 놀랍습니다. 차제에 마태우스 님께서 겪고 계시는 놀랍도록 기묘한 처지를 살펴 보니 문득 황당무계하면서도 포복절도할 만큼 웃기는 놀라운 소설『돈키호테』를 쓴 세르반테스가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걸작 소설에 대해 혹여나 뒤따를지 모를 '후세의 비난'을 미리 방비할 목적으로,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온갖 자질구레한 변명들을 마음껏 펼쳐 놓은 기나긴 '서문'도 다시금 떠오릅니다.

 

'서민' 님께서도 아무쪼록 그 독특한 소설에 딸린 기나긴 '서문'을 한번쯤 읽어보시면 황당무계하면서도 기이한 소설 『마태우스』를 쓰신 일에 대해서 결코 적지 않은 위로를 받으실지 모르겠다 싶어 이렇게 머나먼 댓글을 통해 그 소설의 '서문'을 옮겨봅니다. 이 서문은 너무나도 흥미롭고 재미있는 글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생충처럼(?) 너무나도 긴 서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서문'이든 '서민'이든 '기생충'이든 아무튼 매우 특별한 사물이나 인물이나 동물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독자분들만 읽어보시길 권유합니다. 그럼 이만 총총...

 

 * * *

 

한가로운 독자여, 제가 제 지혜의 산물인 이 책이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사려 깊고 가장 멋진 책이기를 원한다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하지만 만물은 자신과 닮은 것을 만든다는 자연의 순리를 저 역시 어길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재주도 없고 배운 것도 없는 제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하는 잡다한 망상에 휩싸여 제멋대로 사는, 주름투성이에 삐쩍 마른 작자가 온갖 불편함이 자리를 잡고 모든 슬픈 소리가 거주하는 감옥에서 탄생시킨 이야기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평온하고 평화로운 장소와 들판의 쾌적함과 하늘의 고요함, 샘물 소리로 인한 영혼의 평안이라면 아무리 메마른 예술적 영감이라도 풍요롭게 하고 세상을 경이와 만족으로 채울 자식을 낳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겠지만요. 그러나 추하고 아무 매력도 없는 아들을 가진 아비도 때로는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눈에 콩깍지가 씌어 자식의 허물은 전혀 보지 못하며 오히려 그것을 신중함이나 사랑스러움이라 여기고 친구들에게 자식 놈이 영민하고 멋지다고 자랑하곤 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제가 이 돈키호테의 아버지 같기는 하지만 철저히 계부의 입장에 서서 그와 같은 오류는 범하지 않으려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처럼 이 자식 놈에게서 만날 수 있는 실수들을 용서해 달라거나 모른 척 넘어가 주십사 눈물로써 애원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독자여, 당신은 그의 친척이나 친구가 아닐뿐더러 당신의 육체에 영혼과 가장 훌륭한 자유 의지를 갖고 계시고, 왕이 거둬들인 세금이 그의 것이듯 당신도 당신 것의 주인 되시니, <내 망토 밑에서는 왕도 죽인다>라는 말처럼 편할 대로 하십시오. 당신은 이 책에 대한 어떠한 종류의 존경심이나 의무에서도 자유롭습니다. 그러니 보시는 대로 무슨 말씀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나쁘게 말한다고 당신을 비방할까 혹은 좋게 말한다고 당신에게 상을 줄까, 두려워하거나 고민하지 마십시오.

 

저는 흔히들 책 앞에 붙이는 서문이니 소네트니 경구니 찬사 같은 목록이나 수두룩한 장식 없이 그저 있는 그대로 당신에게 이 책을 바치고 싶었습니다. 이 책을 쓰는 데 힘이 들긴 했지만, 실은 당신이 읽고 있는 이 서문을 쓰는 게 가장 힘듭니다. 서문을 쓰려고 펜을 잡았다가도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다시 놓기를 수차례 반복했습니다. 그렇게 종이를 앞에 놓고 펜은 귀에 꽂고 팔꿈치를 책상에 괴고 볼에 손을 댄 채 무엇을 쓸까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주 재미있고 명철한 제 친구가 들어왔습니다. 생각에 잠겨 있는 저를 보자 친구는 그 이유를 물었고 저는 굳이 숨길 필요가 없어서, 돈키호테 이야기에 쓸 서문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을 쓰고 싶지 않기도 하고 그토록 고귀한 기사의 업적을 서문 없이 세상에 내놓을 수도 없는 일이라 고민 중이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법을 결정하는 어른은 세상 사람들이라고 하지 않는가. 오랜 세월 동안 망각의 침묵 속에 잠들어 있다가 이 나이가 되어 세상에 나가면 사람들이 나를 두고 할 말이 많을 것인데, 그것이 나를 얼마나 혼란스럽게 할 것인지 자네는 모르겠는가? 기발하지도 않고 문체도 빈약한 데다 어떠한 박식함이나 교리나 개념도 부족하여 아프리카수염새 풀처럼 무미건조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말일세. 비록 터무니없고 이교도적이기는 하나, 아리스토텔레스니 플라톤이니 온갖 철학자들의 금언들로 가득하여 독자들이 그 말에 감탄하고 그 작가들을 박식하고 책을 많이 읽는 달변가로 여기는 그런 책들에 있는 마지막 부분의 해설이나 여백에 단 주석도 없는 이 책에 대해 말일세. 다들 성서까지 인용하더구먼! 자기들이 성자 토마스이거나 교회의 박사들이라는 말이겠지. 그리고 아주 기발한 장식들을 하고 있더군. 한 줄에는 사랑에 빠져 딴 데 정신이 팔린 연인을 그려 놓고 다른 줄에는 기독교 설교를 하고 있으니 듣기나 읽기에는 재미있겠어. 내 책에는 이런 것들이 일절 없을 걸세. 여백에 인용할 것도 없고 책 말미에 해설할 것도 없다네. 다른 사람들이 하듯 ABC 순서로 책 앞에 이름을 놓을 작가들도 난 모른다네. 그들은 아리스토텔레스로 시작해서 크세노폰이나 조일로나 제욱시스로 끝내고 있다네. 조일로는 악담을 내뱉는 자이고 제욱시스는 화가인데도 말일세. 내 책에는 책 처음에 붙이는 소네트도 없을 걸세. 적어도 공작이나 후작이나 백작이나 주교나 귀부인이나 유명한 시인들이 작가인 그런 소네트들 말일세. 비록 내가 두세 명의 전문 시인 친구들에게 부탁하면 에스파냐에서 가장 이름 있다는 작가들과도 비교가 안 될 만큼 훌륭한 작품을 써줄 것을 알지만 말일세. 그러니 친구여 …….」저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습니다. 「나는 차라리 『돈키호테』를 라만차의 문서 보관소에 파묻어 두기로 마음먹었다네. 물론 부족한 만큼 그것을 장식할 누군가를 하늘이 줄 때까지 말일세. 나는 학문이 짧고 부족하여 그것을 메울 수가 없을뿐더러 천성적으로 게을러서 내가 써도 될 것을 대신 써줄 작가들을 부지런히 찾아다니지도 못하기 때문일세. 그래서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골똘히 생각에 빠져 있었던 걸세. 이만하면 그 이유를 충분히 알 걸세.」

 

이 말을 듣자 친구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치며 한바탕 웃어 젖히더니 말했습니다.

 

세상에, 이 친구야, 내가 오랫동안 자네를 알아 오면서 자네는 늘 모든 일에서 진중하고 신중함을 다하는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알겠구먼. 지금 보니 내가 알던 자네와 지금의 자네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거리가 있네. 아니, 아주 짧은 시간에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 때문에, 다른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해서야 무너질 만한 자네가 그토록 성숙한 천재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망설일 수 있단 말인가? 분명 이건 재주의 문제가 아니라 게으름이 지나치고 방법이 부족해서 그런 걸세. 내 말이 맞는지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잘 들어보게. 눈 깜짝할 사이에 자네가 어렵다고 하는 문제가 모두 아무것도 아님을 밝히고, 모든 기사의 거울이자 광채인 자네의 유명한 돈키호테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 일을 주저하게 만든다고 말한 그 부족한 점들을 몽땅 해결할 테니 말일세.」

 

「말해 보게.」그의 말에 저는 대답했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자네는 내가 주저하고 있는 그 틈을 메울 생각이며, 갈피 없는 나의 이 혼돈을 말끔하게 정리할 생각인가?」

 

그는 말했습니다.

 

「먼저 자네는 고관대작들의 소네트니 경구니 찬사를 책 처음에 싣지 못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지. 이 문제는, 수고스럽겠지만 자네가 직접 원하는 이름을 지어 세례를 주면 해결될 일일세. 인도의 아비시니아 왕이나 트라피손다 황제가 쓴 거라고 하면서 말일세. 내가 알기로 이들은 유명한 시인들이었다네. 혹시 이들이 시인이 아니거나, 박식한 척하는 자들과 학사들이 자네를 물어뜯기 위해 이 일로 뒷말을 내더라도 모두 두 푼어치 가치도 없는 놈들이니 신경 쓰지 말게나. 또한 자네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들, 그것을 쓴 자네 손을 자를 일도 없지 않겠나.

 

자네 이야기에 쓸 금언이나 경구가 실린 책들이나 작가들에 대해 여백에 주석을 달아야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자네가 기억하고 있는 것들 혹은 적어도 찾는 데 별로 힘이 들지 않을 금언이나 라틴어를 적절하게 사용하면 되지 않겠는가. 가령 자유와 포로 생활에 대해서라면, 이렇게 쓰면 되지.

 

 

자유는 황금으로도 살 수 없다.

 

 

그러고 나서 주석에다 호라티우스라든가 다른 누가 그런 말을 했다고 밝히면 되잖겠는가. 그리고 죽음의 힘에 대해 말하고 싶다면, 이렇게 쓰면 된다네.

 

 

창백한 죽음은 왕의 궁궐에나 가난한 자들의 초막에나 똑같이 찾아온다.

 

 

만일 하느님이 명령하신 대로 원수에 대한 사랑과 우정에 대해 다루고 싶다면 즉각 성서로 들어가서 약간의 호기심을 가지고 그것을 행할 수도 있으며, 그땐 적어도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써야겠지.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나쁜 생각에 대해 다루는 경우에도 복음서에 도움을 청하면 되지 않겠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 증언, 모독과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이다.> 그리고 우정의 불확실성에 대해 다룬다면 카톤의 2행 대구 시가 있잖은가.

 

 

네가 행복할 때는 친구가 많을 것이나

어려워지면 혼자 남게 될 것이다.

 

 

이처럼 라틴 구절이나 그런 부류의 것들을 쓰면 사람들은 자네를 문법학자로 알 걸세. 요즘 세상에 문법학자라면 명예와 이득이 적지 않지.

 

책 끝에 해설을 다는 것에 대해서는 말일세. 이런 식으로 하면 문제없을 걸세. 자네 책에 어떤 거인을 언급하고 싶다면 골리앗이라고 하는 걸세. 단지 이것만으로도 자네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멋진 해설을 붙일 수 있을 걸세. 이렇게 말일세. <거인 골리아스 혹은 골리앗은 필리스틴 사람이었는데, 「열왕기」에 의하면 목동 다윗이 테레빈 계곡에서 큰 돌팔매로 죽였다>라고 쓰고는 그게 몇 장인지는 자네가 찾아보면 된다네.

 

그다음, 자네가 인문학과 우주 형상에 조예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려면 타호 강을 자네 책에 들먹이게나. 그러고는 이런 식으로 유명한 해설을 달게. <에스파냐 왕들이 타호라고 이름 붙인 그 강은 아무개 장소에서 발원해 유명한 리스본 도시의 성벽들을 감싸 흐른 뒤 대양으로 흘러들어간다. 그리고 강변 모래가 황금이라는 말도 있다, 운운.> 만일 도둑에 대해 다루고 싶다면 내가 외우다시피 알고 있는 카쿠스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네. 만일 창녀들에 대한 이야기라면 몬돈녜도 주교가 있지 않은가. 그분 책에서 라미아와 라이다, 그리고 플로라를 끌어다 쓰면 독자는 자네를 무조건 믿을 걸세. 잔인한 자들에 대해 다루고 싶다면 오비디우스의 메데이아를 인용하고, 마법사나 마녀 이야기라면 호메로스의 칼립소, 베르길리우스의 키르케가 있지 않은가. 용감한 장군에 대한 이야기라면 바로 카이사르가 자신의 전기에서 스스로를 빌려 줄 걸세. 플루타르코스는 수천 명의 알렉산더를 얘기해 줄 것이고 말이야. 사랑 이야기는, 토스카 언어를 조금만 알면 레온 에브레오에서 충분히 건질 수 있을 걸세. 만일 낯선 땅으로 돌아다니기 싫으면 우리 나라에 폰세카가 있지 않은가, 그 사람의 『신의 사랑에 대하여』에는 자네나 기발한 사람이 볼 만한 사랑에 대한 내용이 모두 들어 있다네. 결론적으로 자네는 내가 여기서 언급한 이름들이나 이야기들을 자네 책에서 다루기만 하면 된다네. 주석이나 설명을 다는 일은 내게 맡기게. 맹세코 내가 책의 모든 여백을 주석으로 메워 주고 책 마지막은 넉 장 분량의 해설로 마무리해 줄 테니 말일세.

 

이제 다른 책들에는 있는데 자네 책에는 없다는, 작가들의 이름을 다는 문제를 생각해 봄세. 아주 쉽게 해결할 방법이 있지. 자네가 말한 대로 A에서 Z까지 작가들의 이름을 써놓은 책만 찾으면 될 걸세. 그 이름 목록을 자네 책에 그대로 옮기면 되잖겠는가. 그 작가들이 자네 책에는 별 쓸모가 없는 것들이라서 거짓 같아 보여도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혹시 모르지, 너무 순박해서 그 작가들을 모두 자네의 단순하고도 소박한 책을 쓰는 데 이용했다고 믿을 자가 있을지도. 적어도 다른 데는 소용이 없을 지라도, 생각지도 못했는데 자네 책을 권위 있게 보이게 하는 데 그 긴 작가 목록이 한몫할 수도 있고 말이네. 자네가 그 작가들을 인용했는지 아닌지, 자기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에 골몰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무엇보다도, 내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사실 자네가 필요하다고 말한 그런 것들이 자네 책에는 하나도 필요치 않네. 자네 책은 기사 소설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니 말일세.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사 소설을 알 리가 없고 성 바실리오도 그것에 대해 말한 적이 없고 키케로도 그렇지 않겠나. 더군다나 기사 소설의 황당무계하고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진리의 정확성이나 천문학적 관찰이 필요할 리 없고 기하학적 측량의 중요성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며 수사학을 잘 아는 자들의 반론이 들어가야 하는 것도 아니지. 머리가 제대로 된 기독교인이라면 결코 해서는 안 될 장르의 혼합, 즉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섞어 누구에게 설교하기 위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단지 사실을 모방하면 되는 걸세. 모방이 완벽하면 할수록 글은 더욱 좋아지지. 그리고 자네 책이 이 세상과 속인들 사이에서 차고 넘치며 권위를 갖는 기사 소설을 무너뜨리는 데 목적을 둔 것이라면 굳이 철학자의 금언이나 성경의 충고나 시인들의 우화나 수사학자들의 문장이나 성자들의 기적들을 구걸하고 다닐 핅요가 없지 않은가. 그저 의미 있고 정결하며 잘 정돈된 단어들로 평범하게 자네의 단문과 복문을 울림이 좋고 유쾌하게 만들어 자네가 의도한 바를 가능한 한 잘 묘사하도록 하게. 자네가 말하려는 개념을 헷갈리게 하거나 난해하게 하지 말고 말일세. 또한 신경 쓸 일은, 자네 이야기를 읽으면 우울함이 웃음으로 바뀌고 웃음은 더 큰 웃움으로 바뀌게 하여, 어리석은 사람은 화를 내지 않고 신중한 사람은 그 기발한 착상에 감탄하고 심각한 사람은 경멸하지 않고 진중한 사람은 칭찬하도록 만드는 걸세.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증오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찬양하는 기사 소설의 잘못된 점을 무너뜨리는 데 주안점을 두게나. 여기까지만 달성해도 적잖은 성과가 아니겠는가. 」

 

친구의 이러한 말을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하나하나 참으로 인상적이고 좋았기에 저는 군소리 없이 받아들여 이 서문을 쓰고자 했습니다. 그러니 다정한 독자여, 이 서문을 통해 당신은 제 친구의 신중함과 절실할 때에 그런 조언자를 찾은 저의 행운과 더불어, 유명한 돈키호테 데 라만차의 이야기를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진지하게 만날 수 있게 된 당신 자신의 위안을 맛보시게 될 것입니다. 돈키호테 데 라만차에 대해서는, 몬티엘 지역 주민들 말에 따르면 그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그 지역에서 나왔던 가장 순수한 연인에 제일 용감한 기사였다고 하더군요. 그토록 품위 있고 명예로운 기사를 소개하는 제 노고를 알아 달라고 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의 종자인 그 유명한 산초 판사를 아시게 된 점에 대해서는 제게 감사하셨으면 합니다. 제가 보기에 쓸데없는 잡동사니 기사 소설들에 흩어져 있는 종자들이 지닌 모든 매력들이 그자에게서 한꺼번에 보일 테니 말입니다. 이만 하느님의 가호가 당신에게 있기를 바라며, 안녕히 계십시오.

 

 -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서문' 중에서

 

 * * *

 

그렇다고 하여도 그것을 자랑한 적은 없는 산초 판자는 세월 가면서, 저녁 시간 밤 시간들에 기사소설 도적소설들 한무더기를 곁에 둠으로써 후에 그가 돈 키호테라는 이름을 준 그의 악마를 자신으로부터 떼어놓는 데 성공하였는데, 그 악마가 그 다음부터는 그침 없이 미친 짓, 그러나 미리 정해진 대상, 바로 산초 판자였을 대상이 없음으로 해서 아무에게도 손해를 끼치지 않은 미친 짓만 골라 하게 하는 식으로였다. 자유인인 산초 판자는 태연하게, 어쩌면 얼마만큼은 책임감에서 원정에 나서는 돈 키호테를 번번이 따라갓으며 거기서 유익하고도 큰 재미를 맛보았다, 그의 생애 끝까지.

 

 - 프란츠 카프카, 「산초 판자에 관한 진실」 (全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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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1-16 14:06   댓글달기 | URL
oren님의 글을 읽으면서 《소설 마태우스》에 대한 제 느낌의 의미와 비슷한 문장을 발견했습니다.

˝우울함이 웃음으로 바뀌고, 웃음은 더 큰 웃음으로 바뀌게 하여, 어리석은 사람은 화를 내지 않고, 신중한 사람은 그 기발한 착상에 감탄하고...˝

oren 2016-01-21 15:37   URL
《소설 마태우스》를 읽어보지 못해서 뭐라 딱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어도, `황당무계하면서도 기발한` 소설이라는 측면에서는 《소설 돈키호테》를 무척이나 닮지 않았을까 싶어요. ㅎㅎ

pek0501 2016-01-16 23:54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들렀습니다.
새해에도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oren 2016-01-21 15:40   URL
pek 님 반갑습니다. 알라딘에만 오면 책도 열심히 읽고 글도 열심히 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데, 이 마을을 벗어나기만 하면 그런 생각들도 싹~ 사라질 때도 많답니다. 참 신기한 일이에요. pek 님께서도 좋은 글 많이 쓰시길 바랄께요~

yamoo 2016-01-21 11:16   댓글달기 | URL
저도 마태우스 님의 첫 소설집, 작년 여름에 알라딘 강남점에서 건졌습니다..ㅎㅎ

oren 2016-01-21 15:42   URL
열심히 발품을 팔며 `책 사냥`에 나서시는 분들은 저런 희귀한 소설책도 너무나 쉽게 습득하시게 되는군요. 암튼 오래 오래 보관하시다 보면 나중엔 몹시도 귀한 책으로 바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