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 - 곽재구의 달빛으로 읽은 시
곽재구 엮음, 지성배 사진 / 이가서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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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여행가방

 

 

김수영(金秀映)

 

 

 

스무살이 될 무렵 나의 꿈은 주머니가 많이 달린 여행가방과 펠리컨 만년필을 갖는 것이었다. 만년필은 주머니 속에 넣어두고 낯선 곳에서 한번씩 꺼내 엽서를 쓰는 것.

 

만년필은 잃어버렸고, 그것들을 사준 멋쟁이 이모부는 회갑을 넘기자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아이를 낳고 먼 섬에 있는 친구나, 소풍날 빈방에 홀로 남겨진 내 짝 홍도, 애인도 아니면서 삼년 동안 편지를 주고받은 남자, 머나먼 이국 땅에서 생을 마감한 삼촌···

추억이란 갈수록 가벼워지는 것. 잊고 있다가 문득 가슴 저려지는 것이다.

 

이따금 다락 구석에서 먼지만 풀썩이는 낡은 가방을 꺼낼 때마다 나를 태운 기차는 자그락거리며 침목을 밟고 간다. 그러나 이제 기억하지 못한다. 주워온 돌들은 어느 강에서 온 것인지, 곱게 말린 꽃들은 어느 들판에서 왔는지.

 

어느 외딴 간이역에서 빈자리를 남긴 채 내려버린 세월들. 저 길이 나를 잠시 내려놓은 것인지, 외길로 뻗어 있는 레일을 보며 곰곰 생각해 본다. 나는 혼자이고 이제 어디로든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신이 최초의 일주일 동안 창조한 것은 빛이 아니라 여행이었다"고 말한 이는 그리스의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 풀러스이다. 한 인간은 한 생애 동안 하나의 여행가방을 지닌다. 길 위에서 여행가방은 점점 낡아가며 때로는 쓸모없는 욕망의 꿈들로 부푼다. 점점 누추해져 가는, 점점 비릿해져 가는 여행가방이 아닌, 꽃향기가 솔솔 풍겨 나오는 여행가방, 구름이나 바람이 한참 머물다 가고 싶은 여행가방, 지혜와 신념과 헌신의 시간들이 묵은 때 속에 반질반질 드러나는 여행가방··· 길 위에서 오래 아파하며 그 여행가방의 주인이 된 이의 영혼이여, 축복 있으라.

 

 

            - 곽재구 엮음,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중에서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 - 곽재구의 달빛으로 읽은 시
곽재구 엮음, 지성배 사진 / 이가서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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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고무줄에는

 

 

김영남

 

 

 

내복의 검정 고무줄을

잡아 당겨본 사람이면 알 겁니다

고무줄에는 고무줄 이상이 들어 있다는 것을

그 이상의 무얼 끌어안은 손, 어머니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것으로 무엇을 묶어본 사람이면 또 알 겁니다

어머니란 늘어났다 줄더들었다 한다는 것을

그래야 사람도 단단히 붙들어 맬 수 있다는 것을

훌륭한 어머니일수록 그런 신축성을 오래오래 간직한다는 것을

 

그러나, 그 고무줄과 함께

어려운 시절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겁니다

어머니란 리어카 바퀴처럼 둥근 모습으로도 존재한다는 것을

그 둥근 등을 굴려 우리들을 큰 세상으로 실어낸다는 것을

 

그리하여 이 지상 모든 고무줄를 비교해본 사람이면 알 겁니다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고무줄이 나의 어머니라는 것을

 

 

 

어머니가 내복의 검정 고무줄 속에 앉아 계신다.

검정 고무줄 속의 어머니는 환히 웃으시며 새벽밥을 짓고, 바느질을 하고, 들에 나가 농사일을 하기도 한다. 오랜 세월 굽은 등으로 삶의 리어카 바퀴를 끝없이 굴려가면서 한 줄 검정 고무줄로 삭아 가는 어머니.

지신이 지닌 모든 피와 땀과 뼈를 기꺼이 내주고 한 줄 검정 고무줄로 남은 어머니.

다음 생에도 또 다음 생에도 고무줄의 삶을 살아갈 어머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가장 아름다운 고무줄인 아, 우리들의 어머니!

 

 

            - 곽재구 엮음,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중에서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나의 고전 읽기 1
손택수 지음, 정약전 원저 / 아이세움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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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얼과 말을 지키기 위해 활동한 백석의 시에 김이 나온다.

 

 

옛날엔 통제사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귤 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 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 냄새 나는 비가 내렸다.

 

                                                                                                                 - 백석, 「통영統營」

 

백석의 시에서 천희라는 여성은 통영이라는 지리적 공간과 겹쳐져서 형상화되고 있다. 시인은 어촌의 풍경을 그리듯 천희를 그린다.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는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여성의 외모를 보여 주는 동시에 나라를 잃어버리지 않았던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통제사가 우리의 바다를 지킬 수 있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강탈당한 모국을 떠올리면서 슬픔의 정서를 낳는다. 그래서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 껍데기 같은 방에서 흘러나오는 등불 빛 아래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 비는 통제사와 나라를 잃어버린 통영의 울음이기도 하고, 순정을 저버리지 못하는 천희의 울음이기도 하고, 통영과 천희와 잃어버린 나라를 겹쳐서 생각하는 시인의 울음이기도 하다. 시인은 여기서 이 비를 "김 냄새 나는 비"라고 했다. 김 냄새가 묻어나는 비, 어쩌면 이 특별한 이미지는 마루방에 둥글게 모여 앉아 김에 밥을 싸서 먹던 가족들에 대한 향수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시는 민족 공동체와 가족 공동체가 깨어져 버린 시대에 대한 비애를 한 여성과의 만남을 통해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백석의 시에서 '천희'를 비유하고 있는 시어 중의 하나가 미역이다. 김처럼 미역은 우리 민족의 밥상을 장식하는 친숙한 해조류이다. 이 친숙함이 천희를 보다 살갑게 만든다. 그렇다면 정약전은 미역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길이는 열 자 정도로서 한 뿌리에서 잎이 나오고

그 뿌리 가운데에서 한 줄기가 나온다.

또한 그 줄기 양쪽에서 날개가 나오는데,

날개 안은 단단하고 바깥쪽은 부드럽다.

주름이 쌓여 있는 부분은 도장을 찍은 것과 같다.

그 잎은 옥수수 잎과 비슷하다. 1∼2월에 뿌리가 나고

6∼7월에 따서 말린다. 뿌리의 맛은 달고 잎의 맛은 담박하다.

임산부의 여러 가지 병을 고치는 데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모자반과 같은 지대에서 자란다.

 

 

『초학기』라는 옛 문헌에 보면 새끼를 낳은 고래가 미역을 뜯어먹는 모습을 보고 산모에게 미역을 먹이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미역은 정약전이 말한 대로 아기를 낳은 고통을 달래 주는 산후 최고의 건강식으로 통한다. 생일날 우리는 싫든 좋든 상에 오르는 미역국을 먹어야 한다. 생일 밥상에 미역국이 오르는 것은 나의 생일이 어머니의 출산일이기도 함을 기억하라는 뜻이 아닐까. 미역국을 먹으며 우리는 아기를 낳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한 어머니의 사랑을 함께 먹는다.(199∼202쪽)

 

 - 손택수,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김과 미역과 어머니> 중에서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나의 고전 읽기 1
손택수 지음, 정약전 원저 / 아이세움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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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곳 같은 부리, 칼날 같은 이빨, 까마득한 절벽에서 태연하게 잠을 자는 담력 ······. 정약전은 가무우지를 '물고기의 매'라고 표현했다. 매처럼 가마우지는 실제로 한번 노린 먹잇감을 웬만해선 잘 놓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감탄스런 낚시 솜씨가 자신에게 노예의 올가미를 씌우리라곤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어부의 배에 실려와

나는 망망한 바다 위로 내던져졌다

어부가 내 발목을 잡아메고 있다는 것도

나는 한순간 깜박 잊어버리고

다만 물속의 고기떼를 쫓아 두리번거린다

넓은 갈퀴로 물살 헤치며

발밑으로 달아나는 저 물고기를 향해

온 힘을 다해 자맥질한다

내 큰 부리는

곧 한 마리의 물고기를 물고 떠오른다

눈부신 햇살에 어깨 으쓱이며

나는 내가 잡은 물고기를 대뜸 삼키려 한다

그러나 가늘고 긴 내 목에는

이미 노끈이 조여져

그 고기 결코 목구멍을 넘어가지 못한다

이때 어부는 재빨리 줄을 당겨

내 목에 걸린 고기를 뽑아 바구니에 담는다

나는 또 빈털터리가 되어

막막한 바다 위로 내던져진다.

 

 - 이동순, 「슬픈 가마우지의 노래」

 

 

가마우지의 뺴어난 물고기잡이 광경을 사람들이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사람들은 그래서 '가마우지 낚시'를 고안해 냈다. 「슬픈 가마우지의 노래」는 이 낚시 법을 아직도 애용하고 있는 중국의 구이린(桂林)과 일본의 이누야마(犬山) 지방의 낚시 장면을 보고 쓴 시이다.

 

(······)

 

가마우지 똥이라니 좀 머쓱했지만, 가마우지 똥은 한약재로도 쓰고 외국에선 양질의 질소 비료로도 쓴다고 한다.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의 단편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 가마우지 똥이 나온다.

 

 

새들이 왜 먼 바다의 섬들을 떠나 리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 와서 죽는지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 주지 못했다. 새들은 더 남쪽도 더 북쪽도 아닌, 길이 삼 킬로미터의 바로 이곳 좁은 모래사장 위에 떨어졌다. 새들에게는 이곳이 영혼을 반환하러 간다는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 같은 곳일 수도 있었다. (···) 어떤 새들은 아직 모래 위에 앉아 있었다. 새로 도착한 새들이었다. 그들은 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먼 바다의 섬들은 새똥으로 덮여 있었다. 가마우지 한 마리가 평생 만들어 내는 새똥으로 같은 기간 동안 사람의 일가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으니 수지 맞는 사업이다. 그렇게 지상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새들은 이곳에 와서 죽는다

 

 

가마우지는 죽음조차 남다르다. 로맹 가리는 자신의 똥까지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한 뒤 지상에서의 임무를 마친 가마우지들이 죽음을 맞는 해변을 그리고 있다. 이 해변이 실재하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모든 예술가는 지상의 가난한 영혼들이 쉴 수 있는 상징적 공간을 창조한다. 이 해변은 그런 점에서 영혼의 안식처라 할 수 있다. 인간들을 위해 평생 낚시를 하고, 자신의 분뇨마저 질소 비료로 쓸 수 있게 만든 다음 외롭게 죽어 가는 가마우지들의 바닷가 묘지가 우리들 마음 어닌가에도 있을지 모르곘다. 조용히 죽어 가는 가마우지를 가슴에 안고, 내 심장 박동 소리로나마 그를 위로하는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중국 구이린 지방에서는 가마우지들이 숨을 거둘 시간이 오면 어부들이 술잔을 들고 가마우지들의 마지막을 지킨다고 한다. 가마우지와 어부는 그들이 함께 한 강물을 내려다보며 함께 술을 마신다. 가마우지가 없었다면 어부의 삶은 곤궁을 면치 못했으리라. 이 가난한 어부를 위해 가마우지는 고통스러운 노예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노역을 통해 어부의 집안을 넉넉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부가 부어 준 마지막 술을 마시며 가마우지는 조용히 눈을 감고, 어부의 눈에선 비로소 눈물이 떨어진다.(185∼190쪽)

 

 - 손택수,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가마우지, 페루에 가서 죽다> 중에서

 

 

 

 

 

 



 
 
 
니코마코스 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강상진.김재홍.이창우 옮김 / 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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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는 행복한 사람의 모습을 잘 그려낸 것일 터이다

 

물론 행복한 자도 인간이라 외적인 유복함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관조를 하기 위한 자족성을 갖추고 있지 못하며, 오히려 [관조를 하려면] 육체도 건강해야 하고 음식이나 여타의 보살핌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비록 외적인 좋음들이 없이 지극히 복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장차 행복하게 되기 위해 많고 큰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족이나 행위는 지나침에 의존하지 않으며, 비록 땅과 바다를 다스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고귀한 것들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적당한 정도의 외적 조건들로부터도 탁월성에 따라 행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백하게 관찰될 수 있다. 보통 사람들도 권력을 가진 사람에 못지않게, 아니 오히려 더 많이 훌륭한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 정도만 가지면 충분하다. 탁월성에 따라 활동하는 사람의 삶이 행복할 것이니까. 솔론이, '행복한 사람'이란 외적인 좋음들이 적당하게 주어져 있었으나 자신이 가장 훌륭한 행위들로서 여기는 것을 행했으며, 또 절제 있게 [자신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34, 아마도 그는 행복한 사람의 모습을 잘 그려낸 것일 터이다. 사람은 외적인 조건들을 적당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해야만 하는 일들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낙사라고스 역시 행복한 사람이 많은 사람들[다중]에게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지라도 그는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행복한 사람이 부자나 권력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외적인 것들만을 지각하며 그것을 가지고 판단하니까. 따라서 지혜로운 사람들의 견해도 우리의 논의와 일치하는 것 같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들도 물론 일종의 신뢰(pistis)를 갖긴 하지만, 실천적인 문제들에 있어 진실은 실제의 삶으로부터 판단된다. 중요한 것은 이것 안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서 이야기된 것들을 실제의 삶에 적용하면서 살펴보아야만 한다. 실제와 부합하는 것은 받아들여야 하지만, 일치하지 않는 것은 말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지성에 따라 활동하며 이것을 돌보는 사람이, 최선의 상태에 있으면서 신들로부터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사람인 것 같다. 만일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듯 신들이 인간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다면, 신들이 가장 뛰어나고 가장 그들을 닮은 것(지성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에서 기뻐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신들이 무엇보다 지성을 사랑하고 가장 영예롭게 여기는 사람들을 신들에게 사랑스러운 것을 아끼는 사람으로, 또 옳고도 고귀하게 행위하는 사람으로 생각해서 응분의 보답을 한다는 것도 이치에 맞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지혜로운 사람(sophos)에게 가장 많이 속한다는 것은 명명백백하다. 따라서 그는 신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받는 사람이다. 동일한 그 사람이 가장 행복하기도 하다는 것은 그럴 듯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런 방식으로도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보다도 더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376∼377쪽)

 

 

주석

34 헤로도토스, 『역사』1권 30∼32행에 나오는 솔론과 크로이소스의 대화를 참고하라. 솔론과 크로이소스는 이미 1권 10장 46번 주석에서 언급되었다.

 

 

 -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제10권 제8장 <정의된 행복과 통념의 부합> 중에서

 

 * * *

 

 

크로이소스가 이들 모두를 복속시켜 뤼디아 왕국에 합병하자, 당시에 살아 있던 헬라스의 모든 학자들이 번영의 절정에 있던 사르데이스를 방문했는데 때로는 이 사람이, 때로는 저 사람이 찾아왔다. 아테나이의 솔론도 그중 한 명이었다. 솔론은 아테나이인들의 요구에 따라 입법을 해주고 나서 10년 동안 외국에 머물렀다. 그는 세상 구경차 외유 중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자신이 만든 법을 폐기하도록 강요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왜냐하면 아테나이인들은 솔론이 만든 법을 10년 동안 지키겠다고 엄숙히 맹세한 터라 자기들만으로는 법을 폐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론은 견학도 할 겸 외유 중이었다. 그는 여행 중에 아이귑토스에서 아마시스를, 사르데이스에서 크로이소스를 방문했다. 크로이소스는 솔론을 맞아 궁전에서 환대했다. 솔론이 도착한 지 2,3일 뒤 크로이소스는 시종들을 시켜 그를 자신의 보물창고들로 데리고 다니며 보물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굉장하고 값진 것인지 보여주게 했다. 솔론이 꼼꼼히 모든 것을 살펴보았을 때 크로이소스가 기회를 엿보다 그에게 물었다. "아테나이에서 온 손님이여, 그대의 지혜에 관한 소문은 우리도 익히 들어 알고 있소. 우리는 또 그대가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세상을 구경하고자 여러 나라를 방문했다는 말도 들었소. 그래서 나는 그대가 이 세상 누구보다도 더 행복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지 진심으로 묻고 싶소이다." 크로이소스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그러나 솔론은 그에게 아부하지 않고 진실을 말했다. "전하, 아테나이의 텔로스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옵니다." 뜻밖의 대답에 깜짝 놀라 크로이소스가 다급하게 물었다. "어째서 그대는 텔로스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여기시오?" 솔론이 대답했다. "텔로스는 번성하는 도시에 살며 훌륭하고 탁월한 아들들을 두었는데, 그 아들들에게 빠짐없이 아이들이 태어나 모두 살아있사옵니다. 그리고 그는 우리 기준에서 보아 살림이 넉넉할 때 장렬한 죽음을 맞았사옵니다. 그는 아테나이인들이 엘레우시스에서 이웃 나라들과 싸울 때 전투에 참가하여 적군을 패주케 하고는 더없이 아름답게 죽었던 것이옵니다. 그래서 아테나이인들은 그가 전사한 곳에 국비(國費)로 그를 매장해주고 그의 명예를 드높여주었사옵니다."

 

이처럼 솔론이 텔로스를 기리는 말을 자꾸 늘어놓자, 크로이소스는 궁금증이 생겨 그에게 텔로스 다음으로는 누가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크로이소스는 자신이 두 번째로 행복한 사람은 되리라 믿었던 것이다. 솔론이 말했다. "그 다음은 클레오비스와 비톤이옵니다. 아르고스에서 태어난 이들 형제는 살림도 넉넉하고 체력고 뛰어났사옵니다. 둘 다 경기에서 상을 탄 적이 있는 이들에 관해서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사옵니다. 아르고스에서 헤라 축제가 개최되었을 때 이들 형제의 어머니는 소달구지를 타고 급히 신전으로 가야 하는데, 들판에 나가 있던 소들이 제때에 돌아오지 못했사옵니다. 시간이 촉박하지 두 젊은이가 몸소 멍에를 쓰고 어머니가 타고 있는 달구지를 끌었사옵니다. 그리고 45스타디온을 달려 신전에 도착했답니다. 그들은 축제에 모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런 일을 완수한 다음 가장 훌륭한 죽음을 맞았는데, 신들께서는 그들의 죽음을 통해 인간에게는 삶보다 죽음이 더 좋은 것임을 보여주셨던 것이옵니다. 아르고스인들이 둘러서서 남자들은 두 젊은이의 체력을 찬양하고, 여인들은 그런 자식들을 두어 행복하겠다고 어머니를 칭찬했사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의 행위와 명성이 너무나 기뻐 여신의 신상 앞으로 다가가, 어머니의 명예를 그토록 높여준 두 아들 클레비오스와 비톤에게 여신께서 인간이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베풀어달라 기도했사옵니다. 그리고 그 기도가 끝나자 두 젊은이는 제사와 회식에 참가한 뒤 쉬기 위해 신전 안에 누웠다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사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죽음을 맞았던 것이지요. 아르고스인들은 그들이야말로 가장 휼륭한 장부(丈夫)들이라 보고, 그들의 입상을 제작해 델포이에 봉헌했나이다."

 

솔론이 두 번째로 행복한 사람으로 이들 젊은이를 이야기하자 화가 치민 크로이소스가 말했다. "아테나이에서 온 손님이여, 나를 그런 평범한 자들보다 못하다고 여기다니 그대는 내 행복은 완전히 무시하는 거요?" 솔론이 대답했다. "크로이소스 전하, 전하께서는 제게 인간사에 관해 물으시지만, 저는 신께서 매우 시기심이 많으시고 변덕스러우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나이다. 인간은 오래 살다 보면 보고 싶지 않은 것도 많이 보고, 겪고 싶지 않은 것도 많이 겪어야 하나이다. 저는 인간의 수명을 이른 살로 잡는데, 70년은 윤달을 빼고도 25,200일이나 되옵니다. 계절이 역월(曆月)과 일치하도록 거기에 한 해 걸러 한 번씩 한 달을 덧붙이면, 70년에 35개 윤달이 추가되는데, 이 윤달들은 1,050일이 될 것이옵니다. 그러면 70년은 모두 26,250일이 되는데, 그중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 일은 단 하루도 없사옵니다. 따라서 크로이소스 전하, 인간이란 전적으로 우연의 산물이옵니다. 보아하니, 전하께서는 거부(巨富)에다 수많은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이시옵니다. 하지만 저는 전하께서 행복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전하의 물음에 답할 수가 없사옵니다. 큰 부자라도 운이 좋아 제가 가진 부를 생을 마감할 때까지 즐기지 못한다면 그날그날 살아가는 사람보다 더 행복하다 할 수 없기 때문이옵니다. 많은 거부들이 불운했는가 하면, 재산이 넉넉하지 못하더라도 운이 좋은 사람도 많사옵니다. 재산이 많지만 불운한 사람은 단 두 가지에서 후자보다 유리하지만, 가난하지만 운이 좋은 사람은 여러 가지에서 유리하나이다. 부자는 자신의 욕구를 쉽게 충족시킬 수 있고 재난을 견디기가 수월하나이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은 그리 쉽게 욕구를 충족시키고 재난을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운이 좋으면 피할 수는 있사옵니다. 그는 또 몸이 온전하고, 건강하고, 시련을 당하지 않고, 자식 복이 있고, 잘생겼을 수도 있사옵니다. 게다가 그가 훌륭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면, 그런 사람이야말로 전하께서 찾고 계시는 사람, 곧 행복하다고 불릴 자격이 있는 사람이옵니다. 누군가 죽기 전에는 그를 행복하다고 부르지 마시고, 운이 좋았다고 하소서. 물론 한 사람이 그런 복을 다 타고날 수는 없사옵니다. 한 나라도 필요한 것을 다 갖추지 못하고, 어떤 것이 있으면 어떤 것이 없나이다. 가장 휼륭한 나라는 가장 많이 가진 나라이옵니다. 사람도 자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무엇인가 부족하기 마련이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한 복을 가장 많이 타고나고 그것을 끝까지 누리다가 편안하게 죽는 사람이야말로 제가 보기에 행복한 사람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것 같나이다. 전하! 무슨 일이든 그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눈여겨보아야 하옵니다. 신께서 행복의 그림자를 언뜻 보여주시다가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뜨리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니까요."

 

솔론의 이런 말이 크로이소스에게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크로이소스는 솔론을 냉담하게 떠나보냈다. 그는 현재의 행복을 무시하고 무슨 일이든 그 결말을 눈여겨보라는 솔론을 아는 척하는 바보쯤으로 여겼던 것이다.

 

솔론이 떠나간 뒤 크로이소스에게 무서운 신벌(神罰)이 내렸는데, 아마도 그가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여겼던 탓인 듯하다. 그 뒤 곧 그는 자기 아들에게 닥칠 불행을 거짓 없이 사실대로 미리 알려주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크로이소스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은 농아(聾啞)로 불구자였고, 다른 아들 아튀스는 또래 중에서도 출중했다. 크로이소스는 다름 아닌 아튀스가 무쇠 창끝을 맞고 죽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크로이소스는 꿈에서 깨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그는 먼저 아들을 장가들였고, 다음으로는 지금까지 늘 군대를 싸움터로 이끌곤 했던 아들의 출진을 막았으며, 투창이며 창이며 그 밖에 다른 무기들을 남자들이 기거하는 방에서 규방으로 옮겨 쌓아두게 했으니, 벽에 걸려 있던 무기가 아들의 머리에 떨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 헤로도토스, 『역사』 제1권 29∼34

 

 

한편 크로이소스에게는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의 아들들 중에 한 아들은 다른 점에서는 정상이었지만 말을 못하는 벙어리였다. 행복했던 지난날 크로이소스는 그런 아들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주었고, 그에 관해 묻고자 델포이로 사절을 보내기까지 했다. 그러자 퓌티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많은 민족을 다스리는 뤼디아 왕이여, 아둔한 크로이소스여,

궁전에서 그대가 오랫동안 고대하던, 그대 아들의 목소리를

듣기를 바라지 마라. 그러는 것이 그대에게 훨씬 좋으리라.

그가 처음 말하는 그날이 그대에게는 재앙의 날이 되리라.

 

 

성채가 함락되었을 때 한 페르시아인 병사가 크로이소스를 알아보지 못하고 죽이려고 다가갔다. 크로이소스는 그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으나 자신의 불행에 압도되어 내버려두었다. 칼에 찔려 죽더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페르시아인 병사가 아버지에게 다가가는 것을 본 그의 벙어리 아들은, 두렵고 괴로운 나머지 말문이 터져 소리를 질렀다. "이봐, 크로이소스를 죽이지 마!" 이것이 그가 맨 처음 한 말이었고, 그 뒤로는 살아 있는 동안 계속 말할 수 있었다.

 

그렇게 페르시아인들은 사르데이스를 점령하고 크로이소스를 포로로 잡았다. 크로이소스는 14년간 통치했고, 14일간 포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신탁이 예언한 대로 대국을 멸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대국이었다. 페르시아인들은 그를 붙잡아 퀴로스에게 데려갔다. 퀴로스는 거대한 화장용 장작더미를 쌓게 하더니 결박된 크로이소스를 14명의 뤼디아 소년들과 함께 그 꼭대기에 올라서게 했다. 퀴로스가 그렇게 한 것은 어떤 신에게 승리의 첫 제물로 그들을 바칠 의도였거나, 전에 자신이 서약한 어떤 것을 이행할 의도였거나, 그도 아니면 크로이소스가 경건한 삶을 살았음을 알고 그가 산 채로 불타 죽게 함으로써 위급한 순간에 어떤 신이 나서서 구해주는지 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무튼 퀴로스는 그렇게 했다. 장작더미에 올라선 크로이소스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직면해 "인간은 살아 있는 한 그 누구도 행복하지 못하다"는 솔론의 영감 어린 말이 생각났다. 이 말이 생각나자 그는 오랜 침묵을 깨고 깊게 탄식하며 "솔론!"이라는 이름을 세 번 불렀다. 이 말을 들은 퀴로스는 그가 대체 누구를 부르는지 통역들을 시켜 물어보게 했다. 통역들의 물음에 크로이소스는 처음에는 대답하지 않다가 통역들이 대답을 다그치자 마침내 실토했다. "모든 왕들이 천금을 주더라도 반드시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인물이지요." 그의 대답이 모호해 무슨 뜻인지 통역들이 다시 물었다. 그렇게 통역들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자 크로이소스는, 전에 솔론이라는 아테나이인이 사르데이스에 온 적이 있는데 온갖 재물을 다 보여주었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 특별히 그에 관해서 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행복하다고 여기는 인간들과 인생 일반에 관해 말했는데도 솔론의 예언은 모두 적중했다고 말했다. 크로이소스가 대답하고 있을 때, 어느새 장작더미에 불이 붙었고 가장자리는 타오르는 중이었다. 그런데 통역들에게서 크로이소스가 한 말을 전해 들은 퀴로스는 자신도 한갓 인간이면서 자기 못지않게 행운을 누렸던 다른 인간을 산 채로 불태우려 했던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그는 또 응보가 두려웠고, 인생이 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타오르는 불길을 되도록 빨리 끄고 크로이소스와 소년들을 끌어내리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불길은 이미 걷잡울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 헤로도토스, 『역사』 제1권 85∼87

 

 

 



 
 
pek0501 2014-11-06 11:46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그동안 글을 많이 올리셨네요. 다 읽으려면 한참 걸릴 듯하네요.
좋은 글들만 엄선해 올리셨겠지요. 덕분에 편히 읽습니다.

˝인간은 살아 있는 한 그 누구도 행복하지 못하다˝
- 아마 살아 있는 한, 근심이 끊이지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oren 2014-11-06 16:22   URL
책을 읽고 난 뒤에도 `책 속 구절들`을 어딘가에 꼭 붙들어 두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가 많아요. 그럴 땐 `알라딘`에 이런 식으로라도 올려 두는 게 여러모로 유용하더라구요. 가끔씩 `어디선가 읽은 듯한 바로 그 대목들`이 다시금 떠오를 때, 알라딘에 접속하기만 하면 금방이라고 그 책 속 구절들을 금세라도 되찾아 읽을 수도 있고, 또 `미지의 독자들`한테도 제가 읽었던 책 속 구절들의 일부분을 (의도했든 안 했든 상관없이) 이렇게 보여 드릴 수도 있고 말이지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읽어 보니,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차이를 들여다 봄으로써 `인간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어 보는 혜안이 정말 남다르다 싶더군요. 이 철학자로부터 특히나 많은 영향을 받은 후세의 철학자들 가운데 몽테뉴를 비롯해서 쇼펜하우어와 베르그송 또한 아리스토텔레스와 유사한 통찰을 드러낸 걸 많이 봐왔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런 후세 철학자들의 `생각의 뿌리`를 아리스토텔레스의 책 속에서 재발견하는 느낌이 정말 남다르게 다가오더군요. pek 님께서 말씀해 주신 부분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방식으로 풀어본다면, `인간만이 현재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듯싶어요. `살아 있는 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