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뒷세이아 - 그리스어 원전 번역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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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인류의 역사에서 호메로스라는 시인이 없었더라면 세상은 과연 지금과는 얼마만큼 달라졌을까. 단 한 사람의 시인을 두고, 그의 존재 여부에 따라 세상이 얼마나 더 달라졌을지를 상상해 보는 일이 과연 온당키나 한 일일까. 비록 내가 이 시인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들이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고 하더라도, 이 인물에 대해서만큼은 내가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아낌없이 다 바치고 싶다. 그만큼 나는 그로부터 만들어진 단 두 편의 서사시가 후세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이 견줄 데 없이 심원하고도 광대하다고 믿는다.

 

그가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라는 불후의 작품을 남긴 덕분에, 우리 인류의 삶은 그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빨리 앞당기지 못했을 '인간다운 세상'에 보다 일찍 살게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가 지어낸 몹시도 훌륭한 두 가지 이야기 덕분에 우리 인류는 야만으로부터 좀 더 일찍 고상한 쪽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고도 여겨지고, 또 그가 지어낸 『오뒷세이아』라는 매혹적인 모험 이야기 덕분에 우리 인류는 훨씬 더 일찍부터 미지의 세계를 향해 좀 더 두려움없이 용기있게 다가설 수 있게 되었다고 믿는다. 그만큼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오랜 세월 동안 무수한 문학작품과 예술작품에 놀라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끊임없이 지속해 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우리 인류가 지금까지 창조해낸 숱한 이야기들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줄어들었을지 모른다. 또한 그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지금까지 지구 위에서 창조되었던 온갖 그림들과 조각들, 혹은 음악이나 연극작품들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줄어들었음이 틀림없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그가 쓴 불멸의 두 작품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주요한 문학작품들이 얼마나 많았을지를 헤아려 보는 일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마는, 그래도 나는 내가 읽었던 몇몇 작품들만이라도 당장 손에 꼽아 보고 싶다.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들은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작가들의 작품들이다. 그 세 사람의 천재 시인들이 쏟아낸 수많은 걸작들 가운데 상당수는 호메로스의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창조해낸 것들이다. 호메로스의 작품은 무려 8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로마 최고의 시인이었던 베르길리우스의 걸작 서사시 『아이네이스』로 이어졌으며, 거기서 또다시 천 년 이상의 세월을 건너뛰고 나면 단테의『신곡』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불후의 명성을 얻은 문학작품들 말고도 그 사이사이에 호메로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작가와 문학작품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내가 당장 떠올릴 수 있는 작가들만 하더라도 몽테뉴, 셰익스피어, 괴테, 헨리 데이빗 소로우 등을 아주 쉽게 예로 들 수 있다.(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5년 동안 독문학을 공부했던 이 책의 역자 천병희 선생님은 <옮긴이 서문>에서 '괴테의 소설『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괴테가 얼마나 호메로스에 심취해 있었는지 엿볼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한다.) 

 

호메로스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려는 시도는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추앙받는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와 영국의 계관시인 앨프리드 테니슨의 『율리시스』에도 그대로 이어졌으며, 심지어 미야자키 하야오의 에니메이션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와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로까지도 이어졌다.

 

흔히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는 서양 최초의 문학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이 최초의 두 작품이 그 이후의 모든 유럽 문학의 '근원이자 원천'이 되었으며, 새로운 사상으로 향하는 '드넓은 관문'이 되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다. 최근에 들어 서양 철학의 원천을 호메로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연구도 드물지 않다고 하는데,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목숨이 걸린 재판에서 『일리아스』의 구절을 인용한 점이나, 심지어 플라톤이 '호메로스를 능가하기 위해' 애쓴 결과물이 대화편이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이니 그런 연구 성과 또한 조금도 이상할 이유가 없을 듯싶다.

    

 

경쟁자와 싸우듯이 호메로스와 상을 다툰 플라톤

헤로도토스만이 가장 호메로스적이었을까요? 천만에 그 이전에 스테시코로스와 아르킬로코스가 있었고 어느 누구보다도 플라톤이 있었소. 그는 호메로스라는 샘으로부터 그 자신이 사용하기 위하여 수많은 실개천을 냈던 것이오. 나는 그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겠지요. 암모니오스 같은 사람들이 그런 사실들을 간추려 기록해두지 않았더라면 말이오. 그런 것은 표절이 아니오. 그것은 조각이나 그 밖에 다른 예술에 의하여 아름다운 형상들을 재현하는 것과도 같소. 그리고 생각건대, 플라톤은 마치 젊은 전사가 만인이 경탄하는 경쟁자와 싸우듯이 호메로스와, 제우스 신께 맹세코, 온 마음을 다해 상을 다투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철학 이론들을 그렇게까지 꽃피우지 못했을 것이고, 시의 주제와 언어에 그렇게 자주 함께 승선하지 못했을 것이오.
그는 아마도 경쟁심에서 지나치게 투지에 넘쳐 있지만, 그런 다툼은 결코 무익한 것이 아니었소. 헤시오도스에 따르면, "그런 불화는 인간들에게 유익하기" 때문이오. 그리고 선배들에게 지더라도 그것이 불명예가 아닌 곳에서는 명성을 위한 투쟁과 승리의 영관(榮冠)은 정말이지 그 무엇보다도 다투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겠소?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숭고에 관하여〉중에서

 

 

그러니 입심 좋은 몽테뉴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특출한 인물을 골라 보라고 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나게 탁월한 인물' 가운데 첫 번째로 호메로스를 꼽는다고 해도 전혀 놀랍지 않다. 그의 말을 조금 더 들어보자. 

"
아리스토텔레스나 바로가 그만큼 박식하지 못하다는 것은 아니고, 예술에서 베르길리우스가 그에게 비교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니다. 이 판단은 그들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맡겨 둔다. 한편밖에 알지 못하는 나로서는, 단지 내가 아는 한도로 시신(詩神)들까지도 이 로마 시인보다 뛰어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판단에서도 베르길리우스가 그 재질을 주로 호메로스에게서 배워 온 것이었으며, 이 시인이 그의 안내자이며 스승이었고, 《일리아드》의 단 한 줄이 저 위대하고 거룩한 《아에네이스》에 본체와 재료를 제공하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고찰하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

사실 나는 자기 권위로 많은 신들을 세상에 내놓고 사람들을 믿게 한 그가, 자신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 것을 자주 이상하게 여겨 왔다. 앞을 보지 못하며 궁핍한 몸으로 학문이 아직 규칙과 확실한 관찰로 사물들을 기록해 놓기도 전에, 그는 이런 일을 모두 알고 있어서, 다음에 정치를 세우고 전쟁을 지휘하고, 어느 학파에 속하건 종교나 철학에 관한 것을 쓰고, 기술을 다루는 일에 간섭하는 자들을 누구나 다 그를 모든 사물들에 관한 지식의 지극히 완벽한 스승과 같이 보며, 그의 작품을 모든 종류의 능력을 기르는 기초 터전 같이 이용했다."

 

그런데 이렇게 위대한 시인으로 칭송받는 호메로스의 작품을 나는 왜 이토록 뒤늦게 접하게 되었던 것일까? 사실을 말하자면 내가 호메로스의 작품을 꼭 그렇게 늦게 읽은 것만은 아니었다.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온갖 영웅들이 등장하는 그 유명한 이야기를 은연중에 들어서 알게 된 사람들 가운데 그 이야기를 직접 읽어보고 싶어하지 않을 독자가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그래서 나도 대학 입시를 막 끝낸 이후 서울로 상경하기 전까지의 몇 달 동안에 대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붙잡고 읽기 시작했다. 입시 공부에 여념이 없을 때조차,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도서관에서 여러 권으로 이어지는 '완역판'『삼국지』를 대출해서 읽으며, '수학의 정석'에 담긴 오묘한 수학 문제를 푸는 것보다는 영웅호걸들이 말을 타고 내달리며 칼을 휘두르는 무용담이 수천 배는 더 재미있다는 걸 진작에 알고 있었기에 까마득한 옛날에 트로이아의 벌판에서 벌어진 서양 고대의 전쟁을 둘러싼 영웅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작품은 삼국지와는 전혀 다른 낯선 고대의 '서사시'였고,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무수한 지명들이 끊임없이 이어져 나오는 데다가, 수많은 신들과 인간들이 오래 전부터 복잡한 사건들로 깊숙하게 얽혀 있어서, 마치 오랜 세월 동안 같은 나라나 도시에서 살고 있어서 모두들 너무나 당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들을 나만 홀로 까맣게 모르는 나그네가 된 심정과도 닮은 당혹감을 그 책을 읽는 내내 좀처럼 떨치기 어려웠다.

아마도 그때만 하더라도 나의 독서 경험은 정말 보잘 것 없었을 테고, 호메로스의 걸작 서사시에 대해서도 충분히 그 매력을 깨닫지 못했을 게 틀림이 없었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애를 쓰며 꼼꼼하게 그의 서사시를 끝까지 다 읽었다 하더라도, 그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어느 낯선 나라 낯선 도시에 갑자기 발을 내디딘 어느 이방인처럼 느껴졌고, 이국의 풍경과 사람들을 만나는 동안에는 몹시 흥미를 느끼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말조차 제대로 통하지 않아 힘겨워 하는 고달픈 여행자와 다름없는 신세였던 것이다. 
그때 내가 겪었던 일들은 어쩌면 어느 책에서 만났던 하버드의 문학부 졸업생이 학창 시절의 '고전 강의'를 회고하면서 남긴 다음과 같은 모습과 얼마간 똑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일리아스』가 무슨 늪지대라도 되는 양 여기저기 발이 푹푹 빠지면서 호메로스를 그저 읽어내는 게 과제였다. ······ 이 불후의 서사시가 담고 있는 영광과 찬란함과 부드러움과 매력에 대해서는 일언반구가 없었다."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Great Books』을 쓴 데이비드 덴비David Denby(1943∼ )는 "고전은 사람을 기죽게 하는 점령군이 아니라 서로 싸우고, 다시 또 독자와 싸우는, 길들여지지 않는 야수들의 왕국"이라고 말했는데, 어쩌면 내가 그 당시 아무런 무장도 갖추지 않고 너무 일찍 '야수들의 왕국'에 발을 들여놓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나는 그 이후로 호메로스가 꾸며낸 이야기 뿐만 아니라 호메로스라는 인물과 그의 작품에 대해 쓴 이야기들을 여러 책들 속에서 적잖이 마주쳤지만 정작 그의 두 작품을 다시 읽을 시간은 좀처럼 할애하지 못했다. 그건 아마도 얼마쯤은 다음의 두 가지 생각에다 핑계를 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 하나는 아마도 '호메로스의 작품은 이미 꽤 오래 전에 깔끔하게 다 읽었거든...'과 같은 얄팍한 정복감이었을 테고, 또다른 하나는 아마 지금까지도 여전히 '야수들의 왕국'에 섣불리 들어갔다가는 아직도 여전히 다리가 후들거릴 것 같은 일말의 두려움이나 걱정 같은 감정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만큼 흥미진진한 모험담도 드물지 싶고,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특별히 좋아했던 이야기가 바로 '오뒷세이아'를 닮은, 주인공이 낯선 곳을 떠돌며 수많은 모험과 고난을 겪는 바로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어쩌면 내가 어릴 때 완전히 매료되며 읽었던 많은 이야기들, 가령 <보물섬>, <15 소년 표류기>, <80일간의 세계 일주>, <걸리버 여행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알라딘의 요술 램프>, <신밧드의 모험>, <정글북>, <톰 소여의 모험>, <로빈슨 크루소> 등등이 모두 『오뒷세이아』의 머나먼 자식들인지도 모르겠다.

제법 나이가 들어서 이번에야 다시 읽은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 그 둘 중에서도 특히『오뒷세이아』는 까마득한 옛날에 그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보다 훨씬 더 다채롭고도 미묘한 이야기로 내게 다가왔다. 그건 아마 무엇보다도 내가 그저 '옛날의 내가 아니기 때문'임에서 비롯되는 것임이 틀림없다.

우선, 내가 처음으로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두발의 자유'조차 허용되지 않던 시절에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머리카락조차 제대로 기르지 못한 더벅머리 총각이었으나 어느새 나도 이젠 세상 경험을 적잖이 겪은 중년의 나이가 되었고,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에) 어엿한 성년으로 자라났듯이 내 자식들도 어느새 모두 스무 살을 넘긴 나이가 되었을 만큼 '장성한 자식을 둔 아버지'가 되었다. 그러니 오뒷세우스가 '가족'과 '고향'을 애타게 그리는 이 이야기가 단지 애송이에 불과했던 그 까마득한 옛날보다 얼마만큼 더 달리 읽혀지겠는가.

 

그 다음으로, 나는 어쨌든 호메로스의 이야기를 제대로 읽기 위해 필요한 '여러 다양한 사전 지식들'을 예전보다는 훨씬 더 많이 부지불식간에 자연스럽게 습득했으리라 스스로 여긴다. 그래서 내가 경험을 통해 더욱 뚜렷이 알게 된 일이지만, 서양의 다양한 고전들 가운데 특히 '호메로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들의 작품을 어느 정도 미리 읽고 나면 확실히 '늪지대'를 덜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옛날에 늪지대로만 느꼈던 곳들이 어느새 바닥이 단단하게 굳어 있는 땅으로 변했음을 느끼거나 혹은 친숙한 사람들조차 가끔씩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광장처럼 변해 있는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그런 작품들 가운데 호메로스를 다시 만났을 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작품들은 단연 고대 그리스 비극 작가들의 작품이었다. 오늘날까지 온전히 전해지는 총 33편의 작품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천병희 선생님의 각별한 노고에 힘입어 (전세계적으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원전 번역을 다 갖추게 되었고, 그 덕분에 나도 그 작품들을 오롯이 우리말로 다 읽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사실 오뒷세우스가 겪는 모험들은 익히 알려진 이야기들이 꽤나 많으며, 트로이아 전쟁에 참가한 영웅들 가운데 끝까지 살아남은 인물들 중에서는 그리스군 총사령관이었던 아가멤논과 메넬라오스의 두 형제를 빼고는 가장 우뚝했던 그가, 전쟁을 끝낸 직후 자신의 부하들을 데리고 고향 이타케로 돌아오면서 겪게 되는 놀랍고도 눈물겨운 이야기들은 그 하나 하나를 따로 떼어놓아도 훌륭한 '모험 단편'처럼 다채롭고 흥미롭기 그지 없다.

그 이야기들을 굳이 오뒷세우스가 겪은 시간대별로 여기서 다시 길게 나열하자면 대략 다음과 같다.

트라키아 지방 이스마로스라는 도시에서의 해적질, 그 열매를 먹으면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 잊어버린다는 '로토스를 먹는 종족'을 만난 이야기, 외눈박이 괴물들인 퀴클롭스 종족들이 사는 섬에서 폴뤼페모스를 눈 멀게 하고 도망치는 이야기, 바람들의 왕 아이올로스가 사는 아이올리에 섬의 이야기, 식인 거한들의 나라 라이스트뤼고네스족을 만난 이야기, 마녀 키르케의 섬에서 1년 동안 지낸 이야기, 오뒷세우스가 저승으로 내려가 눈 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와 아가멤논과 아이아스 등 트로이아 전쟁에서 함께 싸웠던 '이미 죽은' 영웅들과 만난 이야기, '세이렌 자매들의 섬'에서 밀랍으로 귀를 막으며 노래의 유혹을 견디는 이야기, 떠다니는 플랑크타이 바위들을 피해 괴물 스퀼라가 살고 있는 동굴 옆으로 배를 모는 이야기, 헬리오스의 수많은 암소들과 양들이 있는 트리나키에 섬에서 도망치다가 전우들을 모두 잃는 이야기, 머리를 곱게 땋은 칼륍소에게 붙잡혀 7년 동안 동굴에 갇혀 사는 이야기, 뗏목을 타고 열여드레 동안 항해한 끝에 
나우시카아 공주가 살고 있는 파이아케스족의 나라 스케리아 섬에 당도하여 알키노오스의 궁정에 머문 이야기, 거기서 다시 고향 이타케로 돌아와 '귀향자' 오뒷세우스가 '고향에서 겪는 모험' 이야기 등.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가 무려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오뒷세우스의 모험담은 단지 '기가 막힌 이야기들을 기가 막힌 솜씨로 풀어냈기 때문에' 불후의 걸작으로 떠받들려지는 것일까. 물론 그렇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그 사실이 변함이 없다는 점은 월트 디즈니를 오랫동안 경영했던 마이크 아이스너의 다음 이야기만 들어보아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다.

 

"호머(Homer), 초서(Chaucer), 그리고 세익스피어(Shakespeare) 시대로 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전달 매체가 무엇이건 간에 중요한 것은 스토리와 그 스토리를 전달하는 기술이었다."

 

그런데 호메로스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우리가 단순히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스토리'와 '스토리를 전달하는 기술'들을 훨씬 더 뛰어넘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호메로스가 쓴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사실 트로이아 전쟁을 둘러싼 훨씬 더 방대한 규모의 이야기인 서사시권(敍事詩圈 epikoskyklos)이라는 더 큰 전체의 일부로서, 작시(作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을 무엇보다도 '플롯의 통일'에서 찾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따르면 '그 점에 대해서는 호메로스를 따를 시인이 없다'는 것이며, 트로이아 서사시권 가운데 호메로스의 두 작품 말고는 다른 작품들이 아예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만큼 호메로스가 지어낸 두 이야기가 무엇보다 '스토리와 그 스토리를 전달하는 기술'이 특별했던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통해 '호메로스의 탁월한 점'을 거듭 강조하는데, 다음의 인용문을 살펴보면 그가 왜 10년 동안 벌어진 '트로이아 전쟁' 가운데 단 며칠 동안의 사건만을 다뤘으면서도, 『일리아스』가 영원불멸의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는지 그 연유를 알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 덕분에 '트로이아 전쟁'과 '고대 그리스 비극'과의 관계도 조금 더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호메로스는 앞서도 이미 말한 바 있지만, 이 점에서도 다른 시인들보다 탁월한 것 같다. 그는 트로이아 전쟁이 시초와 종말을 가진 전체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부 다 취급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필시 그 스토리가 너무 방대하여 통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든지, 혹은 그 길이를 제한한다 하더라도 그 속의 사건이 다양해서 너무 복잡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전체에서 한 부분만 취하고, 그 외 많은 사건은 삽화로 이용하고 있다. 예컨데 「함선 목록」이나 다른 사건은 이야기의 단조로움을 덜기 위하여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시인들은 한 사람 또는 한 시기를 취급한다지만, 그들이 취급하는 행위는 하나라 하더라도 그 속에 여러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예컨대 『퀴프리아』와 『소(小) 일리아스』의 작가들의 경우가 그렇다. 그 결과 『일리아스』나 『오뒷세이아로부터는 각각 한 편, 또는 많아야 두 편의 비극이 만들어질 수 있는 데 비하여 『퀴프리아』로부터는 다수의 비극이,  그리고 『소일리아스』로부터는 8편 이상의 비극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즉 『무구 재판』, 『필록테테스』, 『네옵톨레모스』, 『에우뤼필로스』, 『걸인 오뒷세우스』, 『라케다이몬의 여인들』, 『일리오스의 함락』, 『출범(出帆)』, 『시논』및 『트로이아의 여인들』이 그것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제23장

 


흔히들 말하기를, 『일리아스』는 호메로스의 재능이 절정이 달했을 때 쓴 작품이어서, 작품 전체를 극적인 행동과 투쟁으로 가득 채운 반면, 『오뒷세이아』는 호메로스가 노년에 그 작품을 쓴 것으로 추정하며, 그런 특징 때문에 작품의 대부분이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사람들은『오뒷세이아』에서의 호메로스를 '크기는 그대로지만 힘이 없는 지는 해'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하며, '
이미 『일리아스』의 노래들에서와 같은 긴장을 유지하지 못하니, 그곳에는 결코 범용으로 떨어지지 않는 숭고도 곤두박질치며 쏟아지는 격정도, 다재다능함도, 현실성도, 일상생활에서 끌어온 풍부한 심상도 없고, 그것은 마치 오케아노스가 자신 속으로 도로 흘러들어 자신의 경계 안에 조용히 머무는 것과도 같다'고도 말한다.

 

이런 지적은 『평생독서계획』을 쓴 클리프턴 패디먼의 지적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처럼 들린다.

 

『일리아스』를 읽고 나서 『오디세이아』를 집어 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세계로 걸어 들어가게 된다. 작품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조차도 다르게 들린다. 『일리아스』에서는 무기의 충돌로 시끄러운 쇳소리가 나는 데 비해, 『오디세이아』에서는 수많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바다의 속삭임 또는 노호努號가 들려온다.

하지만 두 작품 사이의 차이는 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일리아스』는 비극적이다. 그것은 서구 문학에서 되풀이 되어 온 주제, 우리의 마음속에서 늘 어른거리는 그림자에 대해서 말한다. 그것은 아무리 고상한 정신의 소유자일지라도, 불변의 운명이 지배하는 세상과 맞서서 자기 자신의 한계를 인식한다는 주제이다. 하지만 『오디세이아』는 비극적이지 않다. 이 작품은 우리의 한계가 아니라 가능성을 강조한다. 그 주제는 죽음과 맞선 용기가 아니라, 고난에 맞서는 지성이다. 그것은 지성의 힘이라는 또 다른 주제를 천명하는데, 우리 현대인은 이 주제에 즉각 반응한다. 오디세우스는 용감하지만 그의 영웅적 행위는 지성에서 나온다.


 

『오뒷세이아』를 읽으면서 새삼 '고전의 매력'을 실감하게 된다. 예전에 내가 스무 살을 갓 바라볼 때 읽었던 오뒷세우스의 모험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20년 동안이나 집을 비운 아버지를 기다리는 청년 텔레마코스'의 입장에서 많이 생각했을 듯하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읽어 보니 비로소 나이를 먹은 오뒷세우스의 마음에 훨씬 더 쉬이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귀향'을 애타게 그리는 오뒷세우스의 간절한 처지와 고향에 남겨진 연로한 아버지와 훌쩍 나이가 든 아내와 어느덧 어른이 다 되어가는 아들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이 결코 작품 속의 이야기로만 들리지도 않는다.

지략이 뛰어나고, 꾀도 많고, 참을성도 많은 오디세우스는 천신만고 끝에 결국 '귀향'에 성공할 뿐만 아니라, 귀국하자마자 왕비 클뤼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情夫) 아이기스토스에 의해 무참히 살해된 아가멤논의 사례를 거울 삼아, 온갖 세심한 주의와 노력을 다한 끝에 '20년 동안이나 수절하며 기다리는 페넬로페'를 괴롭히며 오뒷세우스 집안의 재산을 일삼아 축내던 악랄한 구혼자들을 모조리 물리친다. 그런 주인공 오뒷세우스를 통해 호메로스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다름아닌 '수많은 도시를 보고,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된 영웅'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시인 호메로스가 무사(Mousa) 여신에게 드리는 간청이자, 기나긴『오뒷세이아』의 이야기는 바로 이렇게 시작된다.

 


들려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다녔던 임기응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

그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시를 보았고 그들의 마음을 알았으며

바다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전우들을 귀향시키려다

마음속으로 많은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못된 짓으로 말미암아

파멸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 이 일들에 관해 아무 대목이든,

여신이여, 제우스의 따님이여, 우리에게도 들려주소서!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제1권 제1∼10행

 

 

마샤 콜리시(Marcia Colish)에 따르면, 초기 그리스도교도의 습관은 '그냥 사소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에서' 아무 책이나 집어들어 펼쳤다고 한다. 그런데 그 습관은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를 읽던 이교도들의 습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백록』이라는 저서를 남긴 아우구스티누스가 어느 날 정원에서 독서하는 도중 아이들의 노래를 들었는데, 그가 실제로 들은 노랫말은 "집어들고 읽어라"는 구절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바울의 로마서를 펼쳤다고 한다. 호메로스의 이야기가 아무리 훌륭하다 한들 '집어들고 읽지 않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 그러니 나도 그저 다음과 같은 간결한 말로 이 기나긴 리뷰를 끝낼 수밖에.

 

"집어들고 읽어라"

 

 '이 일들에 관해 아무 대목이든' 다 좋으니......

 

 



 
 
LionHeart 2014-09-12 17:37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성들인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는 아직 흉내도 내지 못할 정도로 책에 대한 깊은 이해에 감탄했습니다.
저는 아직 말씀하신 "야수들의 왕국"에 가녀린 나뭇가지 하나 잡고 서있는 수준인 것 같습니다. 실은 지난 읽었던 몇 개의 고전 서적들 모두 종종 공감도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아 인상을 찌그러트리며 책장을 넘긴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좀더 소양을 쌓고, 시간이 지나면 이 책의 또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되겠지요? 그때는 어떤 느낌을 가지게 될지 기대됩니다. :)

oren 2014-09-12 22:01   URL
LionHeart 님께서 남겨 주신 댓글을 읽으니 문득 『오뒷세이아』에서 주인공이 퀴클롭스에게 붙잡혔을 때 자신을 '아무도 아니'라고 소개한 대목이 떠오르네요. 누구든지 상대하기 벅찬 유명한 고전들과 맞닥뜨릴 땐 마치 자신이 '아무도 아닌' 것과 같은 느낌이 들게 마련이라고 생각됩니다. 저 역시 오뒷세우스처럼 '아무도 아니'라는 이름을 달고 퀴클롭스와 같은 괴물과 싸울 때가 정말 많답니다. ㅎㅎ

좋은 책은 좋은 사람과 비슷한 점이 많다고 하더라구요. '사람을 처음 만나면 잘 알 수 없듯이 책도 한 번 읽어서는 잘 알 수가 없다'고도 하고요. 그러나 '여러 번 되풀이하여 읽는 과정에서 그 책을 잘 알게 되고 그리하여 아주 가까운 친구 같은 느낌을 갖게 될 때' 찾아오는 남모르는 기쁨 때문에라도 부지런히 '야수들의 왕국'을 자꾸만 기웃거리지 않을 수 없지 않나 싶습니다.
 
오뒷세이아 - 그리스어 원전 번역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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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소식을 들은 그대의 어머니는 불사의 바다 처녀들을

데리고 바다에서 나왔소. 그리하여 바다 위로 불가사의한 울음소리가

일자 전 아카이오이족이 아랫도리를 부들부들 떨었지요. 그리하여

그들은 벌떡 일어서서 속이 빈 함선들이 있는 곳으로 갔을 것이나

옛 일들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그들을 만류했으니,

네스토르의 조언은 전부터 가장 훌륭한 것으로 판명되었지요.

그들 사이에서 그는 좋은 뜻으로 열변을 토하며 말했소.

'멈추시오, 아르고스인들이여! 도망치지 마시오, 아카이오이족의

젊은이들이여! 저기 저것은 그의 어머니가 죽은 아들을 만나보려고

불사의 바다 처녀들을 데리고 바다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오.'

그가 이렇게 말하자 늠름한 아카이오이족은 도주를 멈추었소.

그러자 바다 노인의 딸들이 그대를 둘러서서 애처로이 울었고

그대에게 불멸의 옷들을 입혀주었소. 그리고 모두 아홉 명의

무사 여신들이 서로 화답하며 고운 목소리로 만가를 부르기 시작했소.

그곳에서 그대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아르고스인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을 것이오. 낭랑한 무사 여신의 노랫소리가 그만큼

힘차게 일었던 것이오. 그리하여 열흘하고도 이레 동안 밤낮으로

불사신들과 필멸의 인간들이 그대를 위해 울었지요.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4권 제47∼64행

 

 

 

아킬레우스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네레이디스들(바다의 요정)

적회식 코린트식 히드리 화병, BC 560 ~ BC 550경, 루브르 박물관

 

 

열여드레째 되던 날, 우리는 그대를 불에 넘겨주었고

그대 주위에서 살진 양들과 뿔이 굽은 소들을 많이 잡았소.

그대는 신들의 옷을 입은 채 많은 연고와 달콤한 꿀 속에서

타고 있었고, 수많은 아카이오이족 영웅들이 무장한 채

불타는 그대의 화장용 장작더미 주위를 더러는 걸어서

더러는 전차를 타고 행진하니 큰 소음이 일었지요.

그러나 헤파이스토스의 불길이 그대를 완전히 없애버리자

우리는 이른 아침에,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백골들을

주워 모아 물 타지 않은 포도주와 연고 속에 집어넣었소.

그러자 그대의 어머니가 손잡이가 둘 달린 황금 단지를 주며

디오뉘소스의 선물로 이름난 헤파이스토스의 작품이라고 했소.

그 안에, 영광스런 아킬레우스여! 그대의 백골들이 들어 있소.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4권 제65∼76행

 

 

 

리코메데스 궁전에서 여인으로 변장한 아킬레우스를 알아본 오뒷세우스

장 밥티스트 카르포(Jean-Baptiste Carpeaux, 1827~1875), 1854년경, 발랑시엔 미술관


 


그러니 그대는 죽어서도 이름을 잃지 아니하고 모든 인간들 사이에서

언제까지나 훌륭한 명성을 누리게 될 것이오, 아킬레우스여!

나는 전쟁을 이겨냈건만 그것이 내게 무슨 즐거움이 되었지요?

귀향하자마자 아이기스토스와 나의 잔혹한 아내의 손에 죽는

끔찍한 파멸을 제우스께서 나를 위해 생각해내셨으니 말이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4권 제93∼97행

 

 

 

오뒷세우스는 불쌍한 거지 노인의 행색을 하고는

지팡이를 짚고 몸에는 누더기를 걸치고 있었소.

그가 이렇게 갑자기 나타났으니 그가 왔다는 것을 우리는

아무도 알지 못했고 우리 가운데 나이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소.

오히려 우리는 그를 욕설로 윽박지르고 물건을 던졌으며,

그는 우리가 욕설하고 물건을 던져도

자신의 홀에서 굳건한 마음으로 참고 견뎠소. 그러나 마침내

아이기스를 가지신 제우스의 마음이 그를 분기시키자

그는 텔레마코스와 함께 더없이 아름다운 무구들을

집어 들어 방에 갖다놓고는 문에 빗장을 질렀소.

그러고 나서 그는 교활하게도 아내를 시켜 구혼자들

앞에 활과 잿빛 무쇠를 갖다놓게 했소.

불운한 우리들의 시합을 위해 그리고 살육의 시작을 위해.

우리는 아무도 그 강력한 활에 시위를 얹을 수 없었으니

우리의 힘은 그에 훨씬 못 미쳤던 것이지요.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4권 제157∼171행

 

 


아트레우스의 아들의 혼백이 그에게 대답했다.

"행복하도다 그대는, 라에르테스의 아들 지략이 뛰어난

오뒷세우스여! 그대야말로 부덕(婦德)이 뛰어난 아내를 얻었구려!

이카리오스의 딸 나무랄 데 없는 페넬로페는 얼마나 착한 심성을

지녔던가! 그녀는 결혼한 남편 오뒷세우스를 얼마나 진심으로

사모했던가! 그러니 그녀의 미덕의 명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고 불사신들은 사려 깊은 페넬로페를 위해

지상의 인간들에게 사랑스런 노래를 지어주실 것이오.

그와는 달리 튄다레오스의 딸은 악행을 궁리해내어

결혼한 남편을 죽였으니 그것은 인간들 사이에서 가증스런

노랫거리가 될 것이오. 그러니 그녀로 말미암아 모든 여인들이,

설사 행실이 바른 여인이라도, 나쁜 평판을 듣게 될 것이오."
그들은 대지의 깊숙한 곳에 있는 하데스의 집 안에 서서

서로 이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4권 제191∼204행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뒷세우스는 이렇듯 노년에 찌들고

마음속에 큰 슬픔을 품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

키 큰 배나무 밑에 가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고 나서 그는 마음속으로 심사숙고했다.

아버지를 끌어안고 입 맞추며 자신이 어떻게 돌아와서

고향 땅에 도착하게 되었는지 낱낱이 이야기할 것인지,

아니면 먼저 아버지에게 물어보고 일일이 시험해볼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에게는 역시 먼저 빈정대는 말로

아버지를 시험해보는 것이 상책인 것 같았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4권 제232∼240행

 

 


 

그가 이렇게 말하자 슬픔의 먹구름이 노인을 덮쳤다.

그래서 노인은 두 손으로 시커먼 먼지를 움켜쥐더니

크게 신음하며 자신의 백발 위에 그것을 쏟아 부었다.

그러자 오뒷세우스의 마음은 감동되었고, 사랑하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그는 가슴이 찡하고 코허리가 저리고 시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에게 달려가 얼싸안고 입 맞추며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여기 있는 제가 아버지께서 물으시는 바로

그 사람이에요. 이십 년 만에 저는 고향 땅에 돌아왔어요.

자, 울음과 눈물겨운 비탄일랑 그만 그치세요.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4권 제315∼323행

 

 

 

구름을 모으는 제우스가 그녀에게 이런 말로 대답했다.

"내 딸아! 그 문제를 왜 내게 따지고 묻는 것이냐?

오뒷세우스가 돌아와서 그자들에게 복수한다는 계획은

네가 생각해내지 않았더냐? 네 뜻대로 하려무나.

하지만 나는 너에게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말하겠다.

고귀한 오뒷세우스가 구혼자들에게 복수한 다음에는

양편이 굳은 맹약을 맺게 하고, 그가 언제까지나 왕이 되게 하라.

우리는 그들이 아들들과 형제들의 살육을 잊게 해주자꾸나.

그리하여 그들이 이전처럼 서로 사랑하게 되어

그들에게 부와 평화가 충만하게 해주어라!"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4권 제477∼486행

 

 

 

 



 
 
 
오뒷세이아 - 그리스어 원전 번역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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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우스와 페넬로페

프란체스코 프리마티초 (wikimedia commons, 1504∼1570), 1563년경, 빌덴슈타인 미술관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그녀에게 대답했다.

"아주머니! 그대가 아무리 아는 게 많기로

영생하시는 신들의 뜻을 다 헤아리기느 어려울 것이오.

아무튼 내 아들한테 갑시다. 죽은 구혼자들과

그들을 죽인 사람을 내가 볼 수 있도록 말이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이층 방에서 내려가며 마음속으로 거듭

숙고해보았다. 떨어져 선 채로 사랑하는 남편에게 물어보아야 할지,

가까이 다가서 머리와 손을 잡으며 입 맞추어야 할지.

그러나 그녀는 돌 문턱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오뒷세우스의 맞은편 다른 벽쪽에 불빛을 받으며 앉았다.

한편 오뒷세우스는 눈을 내리깔고 높다란 기둥 옆에 앉아

착한 아내가 두 눈으로 자기를 보고 자기에게 무슨 말이든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얼떨떨한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줄곧 두 눈으로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만 볼 뿐, 여전히 그를 알아보지 못했으니

그가 몸에 더러운 옷을 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3권 제80∼95행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그에게 대답했다.

"내 아들아! 나는 하도 얼떨떨해서 무슨 말을 할 수도 없고

물어볼 수도 없고 얼굴을 마주 쳐다볼 수도 없구나.

하지만 이분이 진실로 오뒷세우스이시고

자기 집에 돌아오신 것이라면, 우리 두 사람은 더 확실히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은

모르고 우리 둘만이 알고 있는 증거가 있으니 말이다."

그녀가 이렇게 말하자 참을성 많은 고귀한 오뒷세우스가

미소 지으며 지체 없이 텔레마코스에게 물 흐르듯 거침없이 말했다.

"텔레마코스야! 네 어머니께 여기 홀에서 나를 시험하시게 해드려라.

이제 곧 더 잘 아시게 될 테니까. ······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3권 제104∼114행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그에게 대답했다.

"이상한 분이여! 나는 잘난체하지도 않고 업신여기지도 않으며

크게 놀라지도 않아요. 노가 긴 배를 타고 그대가 이타케를

떠나실 때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똑똑히 알고 있으니까요.

에우뤼클레이아! 그이가 손수 지으신 우리의 훌륭한

신방(新房) 밖으로 튼튼한 침상을 내다놓으시오.

그대들은 튼튼한 침상을 내다 놓고 그 위에다

모피와 외투와 번쩍이는 담요 같은 침구들을 펴드리세요."
이런 말로 그녀가 남편을 시험하자 오뒷세우스는

역정을 내며 알뜰히 보살피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당신은 정말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을 하는구려.

누가 내 침상을 다른 데로 옮겼단 말이오? 아무리 솜씨 좋은 자라도

그렇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오. 신이 친히 오신다면 몰라도.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3권 제173∼185행

 

 

 

그가 이렇게 말하자 그녀는 그 자리에서 무릎과 심장이 풀렸으니

오뒷세우스가 말한 확실한 특징을 그녀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울면서 오뒷세우스에게 곧장 달려가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는 머리에 입 맞추며 말했다.

"오뒷세우스! 내게 화내지 마세요. 당신은 다른 일에서도

인간들 중에서 가장 슬기로우시니까요. 우리에게 슬픔을 주신 것은

신들이세요. 우리가 함께 지내며 청춘을 즐기다가

노년의 문턱에 이르는 것을 신들께서 시기하셨던 거예요.

그러니 이제 당신은 내가 당신을 처음 본 순간

이렇게 환영하지 않았다고 화내거나 노여워하지 마세요.

어떤 사람이 와서 거짓말로 나를 속이지 않을까

내 가슴속 마음은 언제나 부들부들 떨었어요.

사악한 이득을 꾀하는 자들이 어디 한둘이어야지요.

제우스의 딸인 아르고스의 헬레네도 아카이오이족의

용맹스런 아들들이 자기를 사랑하는 고향 땅으로

도로 데려올 줄 알았다면, 낯선 남자와 사랑의 잠자리에서

동침하지 않았을 거예요. 확실히 어떤 신이 그런 수치스런 짓을

하도록 그녀를 부추기셨던 거예요. 그때까지 그녀는 결코

그런 비참하고 어리석은 생각을 마음속에 품지 않았어요.

우리의 슬픔도 처음에 바로 그 어리석은 생각에서 비롯되었던

거예요. 그러나 이제 당신과 나 그리고 단 한 명의 하녀,

말하자면 내가 이리로 올 때 아버지께서 내게 주셨고

우리 두 사람을 위해 튼튼하게 지은 신방의 문을 지켜주었던

악토르의 딸 말고는 어떤 다른 인간도 본 적이 없는

우리의 잠자리라는 확실한 증거를 당신이 말씀하시니

마음씨 냉담한 나로서도 당신의 말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네요."

그녀는 이런 말로 그의 마음속에 더욱더 울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리하여 그는 마음에 맞고 알뜰히 보살피는

아내를 울며 끌어안았다. 마치 바람과 부푼 너울에 떠밀리던

잘 만든 배가 포세이돈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 탓에 바다 위를

헤엄치던 자들에게 육지가 반가워 보일 때와 같이

-몇 사람만이 잿빛 바다에서 뭍으로 헤엄쳐 나오고

그들의 몸에서는 온통 짠 바닷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그들은 재앙에서 벗어나 반가이 육지에 발을 올려놓는다-

꼭 그처럼 그녀에게는 남편이 반가웠다. 그녀는

그의 목에서 영영 자신의 흰 팔들을 떼려 하지 않았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3권 제205∼240행

 

 

 

두 사람은 달콤한 사랑을 실컷 즐기고 나서 각자가 겪었던

일을 들려줌으로써 이야기로 서로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었다.

여인들 중에서도 고귀한 페넬로페는 자기에게 구혼하며

소 떼와 힘센 작은 가축들을 죽이고 술통에서 포도주를

마구 퍼내던, 파멸을 가져다주는 구혼자들의 무리들을 보면서

자기가 홀에서 견뎌야 했던 일들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제우스의 후손인 오뒷세우스는 자신이 인간들에게 가져다준

온갖 고통과 자신이 겪어야 했던 고난을 빠짐없이 이야기했다.

그녀는 듣고 좋아했고 이야기가 다 끝날 때까지

그녀의 눈꺼풀 위로 잠이 내려앉지 않았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3권 제300∼309행

 

 

 



 
 
 
오뒷세이아 - 그리스어 원전 번역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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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략이 뛰어난 오뒷세우스는 입고 있던 누더기를 벗고

활과 화살이 가득 든 화살통을 든 채 큰 문턱 위로

뛰어올라가 바로 그곳에서 자기 발 앞에 날랜 화살들을

쏟더니 구혼자들 사이에서 말했다.

"이 무해한 시합은 이것으로 끝났다! 이제 나는 아직

어느 누구도 맞힌 적이 없는 다른 표적을 찾아낼까 한다.

혹시 내가 그것을 맞히면 아폴론이 내게 명성을 주실까 해서 말이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2권 제1∼7행

 

 

 

지략이 뛰어난 오뒷세우스가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 개 같은 자들아! 너희는 내가 트로이아인들의 나라에서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할 줄 알고

내 살림을 탕진하고 강제로 하녀들과 동침하고

아직 내가 살아 있는데도 내 아내에게 구혼했다.

너희는 넓은 하늘에 사시는 신들도

후세에 태어날 인간들의 비난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제 너희 모두의 머리 위에 파멸의 밧줄이 매여 있도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2권 제35∼41행

 

 

 

오뒷세우스는 접근전에서 긴 창으로 다마스토르의 아들을 찔렀고,

텔레마코스는 에우에노르의 아들 레오크리토스의 옆구리

한복판을 창으로 찔러 청동으로 그것을 꿰뚫었다.

그러자 그자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온 이마로 땅바닥을 쳤다.

이때 아테네가 지붕에서 사람 잡는 아이기스를 높이 쳐들자

구혼자들은 마음이 산란해져서 홀 안에

이러저리 흩어지니, 그 모습은 마치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봄날 윙윙대며 나는 쇠파리가 덤벼들면

떼 지어 사는 암소 떼가 이러저리 흩어지는 것과도 같았다.

그러나 네 사람은 마치 발톱이 구부러지고 부리가 구부정한

독수리들이 산에서 나와 작은 새들을 내리 덮치듯이

-작은 새들은 구름에서 내려와 들판 위로 낮게 날지만

독수리들이 그것들을 덮쳐 죽이니 방어도 도주도 불가능하고

사람들은 그 사냥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한다-

꼭 그처럼 네 사람은 구혼자들에게 덤벼들어 온 홀 안을 이러지리

돌며 닥치는 대로 쳤다. 그리하여 그들의 머리가 깨어졌을 때

끔찍한 신음 소리가 일었고 바닥은 온통 피가 내를 이루었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2권 제292∼309행

 

 

 

오뒷세우스는 혹시 아직도 어떤 사내가 검은 죽음의 운명을

피하려고 살아 숨어 있는지 보려고 온 집 안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그는 그 많은 구혼자들이 모두 피와 먼지 속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어부들이 코가 촘촘한 그물로

잿빛 바다에서 만(灣)을 이루고 있는 바닷가로 끌어내놓은

물고기들처럼. 물고기들은 모두 바다의 짠 너울을

그리워하며 모래 위에 쏟아져 쌓여 있고

태양은 빛을 비추어 그것들의 목숨을 빼앗는다.

꼭 그처럼 구혼자들은 겹겹이 쌓여 있었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2권 제381∼389행

 

 

 

"할멈, 마음속으로만 기뻐하시오. 자제하고 환성은 올리지 마시오.

죽은 자들 앞에서 뽐내는 것은 불경한 짓이오. 여기 이자들은

신들의 운명과 자신들의 못된 짓에 의해 제압된 것인즉,

자기들을 찾아오는 사람이 나쁜 사람이든 착한 사람이든

지상의 인간들을 어느 누구도 존중하지 않았던 것이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2권 제411∼416행

 

 

 

그들 사이에서 슬기로운 텔레마코스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나는 우리 어머니와 내 머리 위에 치욕을 쏟아 붓고

구혼자들과 잠자리를 같이한 그런 여인들에게

결코 깨끗한 죽음으로 목숨을 빼앗고 싶지 않다."

이렇게 말하고 그는 이물이 검은 배의 밧줄을 한쪽 끝은

주랑의 큰 기둥에 매고 다른 쪽 끝은 원형 건물의 꼭대기에 감아

팽팽히 잡아당겼다. 어떤 여인도 발이 땅에 닿지 않도록,

마치 날개가 긴 지빠귀들이나 비둘기들이 보금자리로

돌아가다가 덤불 속에 쳐놓은 그물에 걸려 가증스런 잠자리가

그들을 맞을 때와 같이, 꼭 그처럼 그 여인들도

모두 한 줄로 머리를 들고 있었고, 가장 비참하게 죽도록

그들 모두의 목에는 올가미가 씌워져 있었다.

그들이 발을 버둥대는 것도 잠시뿐, 오래가지는 않았다.

이제 그들은 문간과 안마당을 지나 멜란티오스를 데려오더니

무자비한 청동으로 그자의 코와 두 귀를 베고

개들이 날로 먹도록 그자의 남근을 떼어냈으며

성난 마음에서 그자의 두 손과 두 발을 잘라버렸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2권 제461∼477행

 

 

 



 
 
 
오뒷세이아 - 그리스어 원전 번역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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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에서 활놀이 하는 오뒷세우스

프란체스코 프리마티초(Francesco Primaticcio, 1504~1570), 16세기경, 퐁텐블로 성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을 확실히 알았을 때

오뒷세우스는 이런 말로 그들에게 대답했다.

"그분은 벌써 집에 와 있다. 여기 있는 내가 바로 그분이다!

나는 천신만고 끝에 이십 년 만에 고향 땅에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하인들 중에 오직 자네들만이

내가 돌아오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고 있다.
······
나는 자네들이 나를 잘 알아보고 마음속으로 믿도록

확실한 증거를 보여주겠다. 자, 이 흉터를 보라! 이것이 전에

내가 아우톨뤼코스의 아들들과 함께 파르낫소스에 갔을 때

멧돼지의 흰 엄니에 부상당했던 바로 그 흉터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1권 제205∼220행

 

 

 

그러니 자, 반들반들 닦은 그 활은 내게 주십시오. 그대들 앞에서

나는 내 손과 힘을 시험해보고 싶소이다. 전에 나의 나긋나긋한

사지에 들어 있던 것과 같은 힘이 아직도 내게 남아 있는지

아니면 방랑과 영양 부족으로 기력이 이미 쇠진했는지 말이오."
그가 이렇게 말하자 그들은 모두 격분했으니 그가 혹시

반들반들 닦은 활에 시위를 얹지 않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1권 제281∼286행

 

 

 

'진실로 훨씬 못한 자들이 나무랄 데 없는 남자의 아내에게

구혼하지만 반들반들 닦은 활에 시위를 얹지 못하는구나.

그런데 어떤 떠돌이 거지가 오더니 힘들이지 않고

활에 시위를 얹어 화살로 무쇠를 꿰뚫었구나.'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고 우리에게는 치욕이 될 것이오."

사려 깊은 페넬로페가 그에게 대답했다.

"에우뤼마코스여! 어떤 훌륭한 남자의 집을 업신여기며

살림을 먹어치우는 자들이 백성들 사이에서 훌륭한 명성을 얻는다는 것은

어차피 안 될 일이지요. 그대들은 왜 그의 성공을 치욕으로 여기는 거죠?

저 나그네는 키가 아주 크고 체격이 탄탄할 뿐만 아니라

훌륭한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났다고 자랑하고 있지 않소!

자, 누가 이기는지 우리가 볼 수 있도록 그대들은 그에게 반들반들

닦은 활을 주시오. ······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1권 제325∼337행

 

 

 

······ 한편 지략이 뛰어난

오뒷세우스는 큰 활을 집어 들어 두루 살펴보고 나서

마치 포르밍크스와 노래에 능한 어떤 사람이

손쉽게 새 줄감개에다 현을 메우고는

잘 꼰 양의 내장 양 끝을 고정할 때와 같이,

꼭 그처럼 힘들이지 않고 큰 활에다 시위를 얹었다.

오뒷세우스가 오른손으로 잡고 시위를 시험해보자

시위가 감미롭게 노래하니 마치 제비 소리와도 같았다.

······

그는 앉았던 의자에 앉은 채로 그 화살을 줌통 위에 

얹더니 시위와 오늬를 당기며 똑바로 겨누고 쏘아

도끼의 자루 구멍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았으니,

청동이 달려 묵직한 화살이 그것들을 모두 꿰뚫고

지나갔던 것이다. 그러자 그는 텔레마코스에게 말했다.

"텔레마코스야! 홀에 앉아 있는 네 손님이 너에게 치욕을 

안겨주지는 않았구나. 나는 표적을 놓치치 않았고 활에 시위를

얹느라고 지치지도 않았으니까. 나는 아직도 기운이 팔팔하니

구혼자들이 나를 없신여기며 욕하던 것과는 다르지 않은가!

그러나 지금은 아카이오이족을 위해 만찬을 준비할 시간이다,

아직 밝을 동안. 그러고 나서 나중에 춤과 포르밍크스로

다른 놀이를 즐기도록 하자꾸나. 그것들이야말로 잔치의 극치니까."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제21권 제404∼430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