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사회(과)학계에는 오래전부터 베버의 지적 세계를 카를 마르크스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고 이 두 거장을 비교하려는 시도가 일종의 '전통'이 되었다. 아니 그것은 어찌 보면 일종의 '강박관념'이다. 이러한 '전통'과 '강박관념'의 근저에는 마르크스냐 베버냐 또는 베버냐 마르크스냐 하는 양자택일적 태도와 베버의 지적 세계는 마르크스의 '망령'과 싸우는 과정에서 발전했다는 지성사적 전제가 깔려 있다.

 

물론 베버를 마르크스와 비교하는 것이 역사적 측면과 이론적 측면 모두에서 좁게는 베버 연구에 그리고 넓게는 사회(과)학 연구에 결정적으로 기여해온 사실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마르크스냐 베버냐 또는 베버냐 마르크스냐 하는 논의의 축이 사회(과)학 연구의 가장 중요한 틀이라고 말하는 것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두 거장의 비교는 사회(과)학적 인식과 사유를 더할 나위 없이 풍요롭게 해주었고 해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그러한 방식의 접근에는 베베의 지적 세계를ㅡ그리고 사회(과)학적 발달 과정을ㅡ지나치게 단순화하고 도식화할 위험ㅡ 이른바 '베버의 마르크스화'ㅡ이 도사리고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베버의 마르크스화는 그의 진정한 이론적·실천적 문제의식이 무엇이며 그의 지적 세계가 구축되는 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철학적·과학적 조류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린다.

 

베버의 마르크스화가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물론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자본: 정치경제학 비판(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ben Ökonomie)을 비교하는 경우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대한 유뮬론적 해석을 제시했으며 베버는 자본주의에 대한 이상주의적 해석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자 시도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러나 실상 베버가 보기에 상품, 가치, 화폐, 자본 등을 인식 도구로 해서 근대 사회의 경제적 운동 법칙, 즉 자본주의의 생산양식과 생산관계를 분석하는 『자본』은 매우 탁월한 과학적 업적이었다. 사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자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두 고전 중의 고전을 비교하는 것이 의의가 없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이보다 더 사회(과)학을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비교연구를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아 베버는 유물론이 방법론적 측면에서 매우 생산적인 원리라고 확신해 마지않았다. 그는 다만 도그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즉 형이상학이나 세계관 또는 역사철학적 예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베버는ㅡ그의 제자이자 역사학자이며 사회학자인 파울 호니스하임(Paul Honigsheim, 1885∼1963)에 의하면ㅡ독일의 역사학자이자 정치가인 한스 델브뤽(Hans Delbrück,1848∼1929)이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제시된 칼뱅주의·자본주의 이론을 반(反)마르크스주의적, 즉 이상주의적 역사관으로 해석한 데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거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밖에 없다. 나는 델브뤽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유물론적이다.

 

아무튼ㅡ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ㅡ「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자본』과 전혀 다른 문제 영역과 문제 의식 및 문제 해결 그리고 전혀 다른 지성사적 맥락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자본주의 연구에 자극을 주거나 영향을 끼친 것은 마르크스가 아닌 다른 여러 지식인들로서, 우선 이미 앞에서 논한 에버하르트 고트하인, 베르너 좀바르트, 게오르그 짐멜, 게오르그 옐리네크, 에른스트 트뢸치를 언급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신학자 알브레히트 리츨(Albrecht Ritschl, 1822∼89),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 제자 마르틴 오펜바허(Martin Offenbacher, ?∼1942) 그리고 부인 마리안네 베버 등이 거론될 수 있다.

 

(중략)

 

1902년 좀바르트의 주저 『근대 자본주의』가 출간되었다. 이 저서는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권 제목은 구체적으로 『자본주의의 기원』(Die Genesis des Kapitalismus)과 『자본주의 발달 이론』(Die Theorie der kapitalistischen Entwicklung)이다. ······ 좀바르트의 『근대 자본주의』에서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곳은 제1권 제3부 「자본주의 정신의 기원」(Die Genesis des Kapitalistischen Geistes)이다. 이는 다시 '영리욕의 싹틈'(Das Erwachen des Erwebrstiebes)을 다루는 제14장과 '경제적 합리주의의 형성'(Die Ausbildung des Ökonomishen Rationalismus)을 다루는 제1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서 좀바르트는 자본주의 정신을 돈을 벌고자 하는 욕구로 파악하고 있다. 즉 그에게 자본주의 정신은 좀바르트에 따르면 중세 말경부터 일종의 집단 현상이 되었으며 주로 유대인에 의해 발전했다. 그리고 좀바르트는 근대 자본주의의 토대를 특정한 종교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찾는 것을 불충분하다고 보며, 또한 프로테스탄티즘이 자본주의 정신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인과관계를 주장할 수 있고 이는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 의해 경험적으로 입증할 수 있으리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처럼 좀바르트는 종교가 자본주의 정신의 형성에 끼치는 영향에 별로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어떤 의미에서 좀바르트가 『근대 자본주의』에서 제시한 자본주의 정신과 그 형성 과정에 대한 답변과 비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베버가 전적으로 좀바르트의 테제를 논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논문을 썼다는 식으로 생각해서는 물론 안 된다. 다만 베버는 동일한 주제에 대해 좀바르트와 상이한 테제를 내세웠으며, 또한 이 과정에서 좀바르트를 비판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 좀바르트가 비판적으로 응답하고 다시 베버가 그에 반론을 제기하는 과정이 지속되면서 두 거장은 아주 풍요로운 논쟁을 전개했다. 아무튼 베버의 '주적'은ㅡ적어도「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관한 한ㅡ일반적으로 표상하는 바와 다르게 마르크스가 아니라 좀바르트였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한 연구의 전체적인 실마리가 되는 근대 자본주의 정신을 "윤리적으로 채색된 생활양식의 준칙이라는 성격"이라고 정의하면서 이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이 글의 문제설정이 좀바르트와 다른 근거이다. 그 차이점이 갖는 아주 현저한 실제적 의미는 후술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좀바르트도 자본주의적 기업가의 이러한 윤리적 측면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미리 말해두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사유 맥락에서는 이 윤리적 측면이 자본주의에 의해 야기된 결과물로 나타나는 반면, 우리는 우리의 연구 목적상 그와 상반되는 가설을 고찰하지 않을 수 없다. 최종적인 입장은 연구가 마무리되어야 비로소 결정될 수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베버에게 자본주의 정신은 좀바르트와 근본적으로 달리 영리욕, 이윤 추구 또는 돈을 벌려는 욕구가 아니라 윤리이고 의무 이행이자 금욕적 생활양식이다. 그것은 오히려 좀바르트가 말하는 욕구의 합리적 조절이자 억제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본주의 정신의 형성에는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 그중에서도 특히 칼뱅주의가 인과적 요소로 작용했다는 것이 베버의 견해이다.

 

그후 좀바르트는 다양한 저작을 통해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자본주의 테제에 응답했다. 이 두 거장과 더불어 『사회과학 및 사회정책 저널』의 공동 편집인이던 에드가 야페에 따르면, 좀바르트는 베버의 비판에 자극을 받아 1911년 『유대인과 경제적 삶』(Die Juden und das Wirtschaftsleben)을 그리고 1913년 『부르주아: 근대 경제인간의 정신사에 대하여』(Der Bourgeois: Zur Geistesgeschichte des modernen Wirtschaftsmenschen)를 썼다. 이들 저서와 또 다른 일련의 저작에서ㅡ이를테면 1912년에 출간된 『사치와 자본주의』(Luxus und Kapitalismus)등에서ㅡ좀바르트는 베버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그리고 광범위하게 비판했다.

 

베버와 근본적으로 다르게, 좀바르트는 유대교가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인과적 요소임을 광범위하게 입증하고자 시도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돈을 벌려는 욕구인 자본주의 정신은 바로 유대인들의 특성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려면 인간의 정신이 자연적인 상태를 벗어나고 합리적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획득해야 한다. 즉 '모든 경제적 가치의 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바로 이 같은 정신적 단계의 인간이 '자본주의 인간'(homo capitalisticus)인데, 이 유형의 인간은 '유대인'(homo Judaeus)과 '동일한 종'에 속한다. 양자는 '인위적인 합리적 인간들'(homines rationalistic artificiales)인 것이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생활양식이 합리화한 데는 유대교가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결국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가장 중요한 인과적 요소는 베버가 주장하는 바와 달리 프로테스탄티즘이 아니라 유대교라는 것이 좀바르트의 확신임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좀바르트는 사치 등의 경제적 행위가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테제를 내세우는데, 이는 금욕적 생활양식에서 그 결정적 요소를 찾는 베버의 입장과 근본적인 대조를 이룬다.

 

이에 대해 베버는 『종교사회학논총』제1권, 『경제와 사회: 이해사회학 개요』, 『경제사: 보편 사회사 및 경제사 개요』등에서 좀바르트를 비판했는데, 그 강도가 1904∼1905년보다 훨씬 더 커졌다. 예컨대 베버는 『부르주아: 근대 경제인간의 정신사에 대하여』를 좀바르트의 "가장 보잘것없는 책"이라고 혹평했다. 그리고 유대교에 의해 발전한 자본주의는 합리적 근대 자본주의가 아니라 천민자본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베버의 확고한 입장이었다. 유대교가 근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해 갖는 결정적인 의미는 기독교에 주술에 적대하는 태도를 정신적 유산으로 물려주었다는 사실에 있었다. 즉 탈주술화 과정의 종교사적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근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한 유대교의 문화의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베버와 좀바르트가 자본주의 정신을 둘러싸고 거의 20년에 걸쳐 주고받은 비판은 논쟁인 동시에 '일종의 대화'이기도 했다. 즉ㅡ역사학자 오토 힌체(Otto Hintze, 1861∼1940)의 표현을 빌리자면ㅡ"보다 르네상스적 색채를 띤 좀바르트의 자본주의 정신과 보다 종교개혁적 색채를 띤 베버의 자본주의 정신" 사이의 논쟁이자 대화였던 것이다. 양자는 이 장기간의 논쟁을 통해 상대방에게 통렬하고 파멸적인 비판을 가한 동시에 자신의 입장을 방어하고 그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자신의 지적 세계를 보다 풍요롭게 만들 수 있었다.

 

이 맥락에서 매우 흥미로운 점 한 가지는,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제2세대를 대표하는 학자 가운데 한 명인 루요 브렌타노(Lujo Brentano, 1844∼1931)가 1916년에 출간된 자신의 저서 『근대 자본주의의 기원』(Die Anfange des modernen Kapitalismus)에서 베버와 좀바르트를 동시에 비판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브렌타노는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의 제3세대를 대표하는 두 학자를 비판했던 것이다. 먼저 브렌타노에 따르면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카톨릭이 근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해 갖는 의미를 간과했다. 그리고 브렌타노는 좀바르트의 『유대인과 경제적 삶』을 독일 과학의 가장 불행한 현상 가운데 하나라고 혹평했으며, 자본주의 발전에서 유대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좀바르트의 주장을 논박했다. 베버는 브렌타노의 비판에 대해 1920년판의 여러 곳에서 답했다. 금욕적 프로테스탄티즘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근대 자본주의와 선택적 친화력을 가진 정신과 행위에 끼친 심리학적 동인 때문이라는 것이 베버의 논지였다. 또한 베버는 중세 가톨릭 수도회의 문화의의를 잘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비세속적인 수도승적 금욕주의와 세속적인 직업적 금욕주의 사이의 내적인 연속성을" 강조했다. 사실 그의 전체적인 논의가 깔고 있는 기본 전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 둘 사이의 연속성이었다. "즉 종교개혁은 합리적인 기독교적 금욕주의와 조직적인 생활양식을 수도원에서 끌어내어 세속적인 직업 생활의 영역으로 전파했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베버는 브렌타노가 자본주의를 화폐 획득 및 화폐경제와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좀바르트와 같은 범주로 분류했다. 베버가 보기에 게오르그 짐멜의 철학적 주저 『돈의 철학』(1900)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 우리의 존경하는 스승 루요 브렌타노와 ······ 견해를 달리한다. 우선 용어상 그러하다. 그러나 더 나아가 실제적인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내가 보기에 전리품의 획득을 통한 영리와 공장의 성과를 통한 영리처럼 아주 이질적인 개념들을 동일한 범주에 넣는 것은 유용치 못하다. 그리고 화폐 획득에 대한 모든 추구를 자본주의 '정신'으로ㅡ다른 영리 형태들과 대비하면서ㅡ표현하는 것은 더더욱 유용치 못하다. 왜냐하면 나의 생각으로는 전자에 의해서는 모든 개념적 엄밀성이 상실되고, 후자에 의해서는 무엇보다 서구 자본주의가 다른 영리 형태들에 비해 지니는 특성을 뚜렷하게 드러낼 수 있는 가능성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또한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에서도 '화폐경제'와 '자본주의'가 너무나도 동일시되어 객관적 논증을 손상시킨다. 베르너 좀바르트의 저술들, 그중에서도 특히 그의 탁월한 주저인 『근대 자본주의』최신판에서는ㅡ적어도 내 문제의 관점에서 보자면ㅡ서구의 특수성, 즉 합리적 노동조직이 지나치게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는 반면 세계 도처에서 작동한 발전 요소들이 중시되고 있다.138)

 

역자 주

138) 베버의 생각과 달리 짐멜은 실제로 자본주의를 화폐경제와 동일시하지 않는다. 『돈의 철학』은 돈이라는 외적이고 개별적인 현상이 현대 사회, 현대 문화 그리고 현대인의 삶과 숙명에 끼치는 영향, 즉 현대 세계에 대해 가지는 문화적 의의를 형이상학적으로 고찰한 책이다. 이 책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돈과 영혼의 관계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의 책 『게오르그 짐멜의 모더니티 풍경 11가지』78쪽 이하, 354쪽 이하 참조.

 

이렇게 보면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한 연구에서 싸워야 했던 '망령'은 자본주의를 유물론적으로 분석한 마르크스가 아니라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정신을 화폐 획득 및 화폐경제와 동일시한 좀바르트와 브렌타노 그리고 짐멜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베버는 1920년의 『종교사회학논총』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영리욕', '이윤 추구', 화폐 취득, 그것도 가능한 한 많은 화폐 취득을 추구하는 것 자체는 자본주의와 전혀 상관이 없다. 이러한 추구는 웨이터, 의사, 마부, 예술가, 매춘부, 부패한 관리, 군인, 도적, 십자군, 도박사, 거지들 사이에 존재했고 또한 존재한다. 이는 그러한 추구의 객관적 가능성이 어떻게든 주어졌고 또한 주어진 동서고금의 "모든 종류와 상황의 인간들" 사이에서 그래왔다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이와 같은 천진난만한 개념 규정은 이미 육아실에서 배우는 문화사 수준에서 영원히 불식되어야 할 것이다. 무제한적으로 영리를 탐하는 것은 자본주의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자본주의 '정신'과는 더더욱 그러하다. 자본주의는 오히려 이러한 비합리적인 충동의 억제, 또는 적어도 합리적 조절과 동일할 수 있다. 물론 자본주의는 지속적이고 합리적인 자본주의적 경영을 통한 이윤 추구, 즉 끊임없이 재생되는 이윤인 수익성의 추구와 동일하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반드시 그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즉 경제 전체가 자본주의적인 질서 안에서는, 수익성을 획득할 수 있는 기회를 지향하지 않는 자본주의적 개별 기업은 몰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와 그 정신에 대한 베버, 좀바르트, 브렌타노 그리고 짐멜의 이론과 이들 상호 간의 영향과 수용 그리고 비판과 논쟁을 체계적으로 연구해보면 좁게는 근대 자본주의와 그 정신을, 넓게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문화과학과 사회과학의 판도를 보다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베버는 마르크스의 '망령'과 싸우지 않았다.「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자본』은 근대 자본주의에 대한 이론으로서 상호 배척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바로 이런 한에서 그리고 오직 이런 한에서만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근대 경제에 대한 유심론 또는 이상주의로 보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베버가 마르크스의 '망령'과 싸우지 않았지만 다른 '망령들'과는 싸웠다는 사실이다. 즉 마르크스의 위대한 과학적 업적을 폄훼하거나 부정하고자 하는 '망령', 자신의 연구를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의 유산을 극복하고 청산하려는 시도로 보고자 하는 '망령', 그리고 유물론을 엄격한 사회과학적 연구 방법이 아니라 형이상학과 세계관 그리고 예언의 수단으로 만들고자 하는 '망령'과 싸웠다. 그리고 특히 자본주의 및 자본주의 정신과 관련해서는 이를 화폐 획득 및 화폐경제와 동일시하려는 '망령'과 싸웠다. (588∼599쪽)


 - 막스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옮긴이 해제 <종교·경제·인간·근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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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보론: 프로테스탄티즘의 분파들과 자본주의 정신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21
막스 베버 지음, 김덕영 옮김 / 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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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근대적 직업노동이 일종의 금욕주의적 특성을 갖고 있다는 생각도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인간의 삶을 전문 노동에 한정하는 것 그리고 그 결과로 다방면에 걸친 삶을 살려는 파우스트적 인간성을 포기하는 것은 오늘날의 세계에서 가치 있는 행위를 위한 일반적인 전제 조건이 되며, 따라서 '행위'와 '체념'은 오늘날 불가피하게 서로를 조건 짓고 제약한다. 시민계층적 생활양식의 이러한 금욕주의적 기조─이 생활양식이 무(無)양식이 아니라 어떻게든 양식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러한 기조를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는 이미 괴테도 그 삶의 지혜가 절정에 이른 시기에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를 통해 그리고 희곡의 주인공 파우스트의 삶의 마지막 단계에 대한 묘사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했던 것이다. 괴테에게 이러한 인식은 완전하고 아름다운 인간성의 시대로부터 체념 어린 작별을 고하는 것을 의미했다. 고대 아테네의 전성기가 되풀이될 수 없듯이, 그러한 시대 역시 우리의 문화 발전 과정에서 되풀이될 수 없을 것이다. 청교도들은 직업 인간이 되기를 원했다 ─ 반면 우리는 직업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금욕주의가 수도원의 골방에서 나와 직업 생활 영역으로 이행함으로써 세속적 도덕을 지배하기 시작했고 또 공장제·기계제 생산의 기술적·경제적 전제 조건과 결부된 저 근대적 경제질서의 강력한 우주를 건설하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우주는 그 추진력에 편입된 모든 개인들의 생활양식을 ─ 비단 직접적으로 경제적 영리 활동에 종사하는 자들의 생활양식뿐만 아니라 ─ 엄청난 강제력으로 규정하며 아마도 그 마지막 톤의 화석연료가 다 타서 없어질 때까지 규정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스터의 견해에 따르면, 외적인 재화에 대한 염려는 마치 "언제든지 벗어버릴 수 있는 얇은 외투"처럼 성도들의 어깨 위에 걸처져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운명은 이 외투를 쇠우리로 만들어버렸다. 금욕주의가 세계를 변형하고 세계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이 세계의 외적인 재화는 점증하는 힘으로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마침내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힘으로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는 역사에서 결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오늘날 금욕주의의 정신은 그 쇠우리에서ㅡ 영구적으로 그런 것인지 아닌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ㅡ사라져버렸다. 아무튼 승리를 거둔 자본주의는 기계적 토대 위에 존립하게 된 이래로 금욕주의 정신이라는 버팀목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 정신을 웃으면서 상속한 계몽주의의 장밋빛 분위기도 마침내 빛이 바래가고 있는 듯하며, 또한 '직업 의무' 사상도 옛 종교적 신앙 내용의 망령이 되어 우리 삶을 배회하고 있다. '직업 수행'이 최고의 정신적 문화가치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질 수 없는 경우ㅡ혹은 역으로 말하자면 직업 수행을 심지어 주관적으로는 단순히 경제적 강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경우ㅡ현대인들은 대개 직업 수행이 지니는 의미의 해석을 완전히 포기한다. 그 종교적·윤리적 의미를 박탈당한 영리 추구 행위는 그것이 가장 자유로운 지역인 미국에서 오늘날, 드물지 않게 그것에 직접적으로 스포츠적 특성을 각인하는 순수한 경쟁적 열정과 결합하는 경향이 있다.111 미래에 누가 저 쇠우리 안에서 살게 될는지,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발전 과정의 끝자락에 전혀 새로운 예언자들이 등장하게 될는지 혹은 옛 사상과 이상이 강력하게 부활하게 될는지, 아니면ㅡ둘 다 아니라면ㅡ일종의 발작적인 자기 중시로 치장된 기계화된 화석화가 도래하게 될는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만약 기계화된 화석화가 도래하게 된다면, 그러한 문화 발전의 '마지막 단계의 인간들'41)에게는 물론 다음 명제가 진리가 될 것이다. "정신 없는 전문인, 가슴 없는 향락인ㅡ이 무가치한 인간들은 그들이 인류가 지금껏 도달하지 못한 단계에 올랐다고 공상한다."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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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주

 

111 "그 노인은 연 7만 5천 달러의 수입으로 만족하고 은퇴할 수는 없는 것일까?ㅡ없다! 상점의 전면을 400피트 확장해야 한다. 왜?ㅡ그는 말하기를, 그것으로 만사가 잘 될 것이다.ㅡ저녁에 부인과 딸들이 모여서 독서를 하면, 그는 한시라도 빨리 잠자리에 들고 싶어한다. 일요일에 그는 이제나저제나 하루가 저물기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5분마다 시계를 쳐다본다ㅡ이 얼마나 잘못된 삶인가!"ㅡ이렇게 오하이오 강변에 위치한 한 도시의 (독일에서 이주해온) 어떤 굴지의 포목상(dry-good-man)의 사위가 장인에 대한 평가를 요약했다ㅡ이 판단은 그에 반해 '노인'의 입장에서는 분명 조금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독일인의 무기력이 표출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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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41) 여기에 언급된 '마지막 단계의 인간들'(die letzten Menschen)이라는 용어는 프리드리히 니체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용한 것이다. 니체가 사용한 die letzten Mensch와 그 복수형인 die letzten Menschen은 철학계에서 지금까지 '마지막 인간(들)', '최후의 인간(들)', 또는 심지어 '인간 말종(들)'이나 '말종 인간(들)' 등으로 번역되어왔다. 이 가운데서 '인간 말종(들)'이나 '말종 인간(들)'이 주는 메시지가 가장 강력한 것이 사살이다. 그리고 니체의 철학적 사유가 시적이고 문학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충분히 의미 있는 번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가치중립적 문화과학과 사회과학을 추구하는 베버의 경우에는 '인간 말종'이라고 옮기는 것에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연구가 근대적 직업윤리와 노동윤리, 그러니까 근대의 합리적 문화와 정신의 발달사임을 감안해 '마지막 인간들'이나 '최후의 인간들'보다는 '마지막 단계의 인간들'로 옮기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장기간에 걸친 서구 합리화 과정의 마지막 단계에 나타날 (수도 있는) 인간 유형이라는 의미가 확연해진다.

 

니체의 저서에서 '마지막 인간들', '최후의 인간들' 또는 '인간 말종'에 대한 부분을 우리말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

 

"보라! 내 그대들에게 마지막 인간[최후의 인간, 인간 말종, 말종 인간]을 보여주리니.


'사랑은 무엇인가? 창조는 무엇인가? 동경은 무엇인가? 별은 무엇인가?'ㅡ마지막 인간은 이렇게 묻고는 눈을 깜박인다.


그런데 대지는 작아졌고, 그 작아진 대지 위에선 만물을 왜소화하는 저 마지막 인간이 날뛰고 있다. 그 족속은 벼룩과도 같아서 박멸할 수가 없다. 마지막 인간이 누구보다도 오래 사는 것이다.


'우리는 행복을 찾아냈다'ㅡ마지막 인간들은 이렇게 말하며 눈을 깜박인다.

 

저들은 살기 힘든 고장을 버리고 떠났다. 따스함이 필요해서이다. 게다가 아직도 이웃을 사랑하며 이웃의 몸에 자신의 몸을 비벼댄다. 따스함이 필요해서이다.

 

병에 걸리거나 의심하는 것이 저들에게는 죄악이 된다. 그리하여 조심조심 걸어다닌다. 아직도 돌이나 사람에 걸려 넘어지는 자는 바보일 뿐이다!

 

이따금씩 얼마간의 독을 마시고는 아늑한 꿈을 꾼다. 그리고 끝내 많은 독을 마시고 아늑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저들은 여전히 노동을 한다. 노동 자체가 일종의 소일거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 소일거리로 인해 몸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한다.

 

저들은 더 이상 가난해지거나 부유해지려 하지 않는다. 둘 다 너무나도 번거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다스리려는 자가 있는가? 아직도 복종하려는 자가 있는가? 둘 다 너무나도 번거로운 일이다.

 

돌보아줄 양치기는 없고 가축떼만 있을 뿐! 모두가 평등하기를 원하고 모두가 평등하다. 그 누구든 자신이 특별하다고 느끼는 자는 제 발로 정신병원으로 가기 마련이다.

 

'옛날에는 세상이 온통 미쳤었지'ㅡ더없이 명민한 자들은 이렇게 말하고는 눈을 깜박인다.

 

저들은 영리하여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조소에는 끝이 없을 수밖에 없다. 저들은 다투기도 하지만 이내 화해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위에 탈이 나기 때문이다.

 

저들은 낮에는 낮대로 밤에는 밤대로 조촐하게 즐긴다, 그러면서도 건강은 끔찍이도 챙긴다.

 

'우리는 행복을 찾아냈다'ㅡ마지막 인간들은 이렇게 말하며 눈을 깜박인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4∼15쪽)

 

 

42) 이 구절은 그동안 베버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철저하게 조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출처가 밝혀지지 않았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고, 미학자 프리드리히 테오드르 피셔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다.

 

베버가 인용한 구절 Fachmenschen ohne Geist, Genussmenschen ohne Herzen은 우리말로 "정신 없는 전문인, 가슴 없는 향락인"이 아니라 "영혼 없는 전문인, 감정 없는 향락인"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사실 이러한 표현이 한국인의 언어 감각에는 더 잘 와 닿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한국어에서 '정신없다'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경황이 없다' 또는 '몹시 바쁘다'의 의미를 지니며, 또한 영혼은 인간 내면의 저 깊은 지층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버가 이 논의의 맥락에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인간의 본원성, 내면성, 순수성 등을 뜻하는 '영혼'(Seele,soul)이 아니라, 각 개인이 이 세상에서 주관적으로 입지를 정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삶과 행위를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조직하고 영위하며 또한 그에 대해서 주관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의지와 능력을 뜻하는 '정신'(Geist, sprit 또는 mind)임을 감안해 이렇게 옮기기로 했다. 사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대한 베버의 연구는 바로 이러한 정신이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삶과 행위의 영역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라는 종교적 이념에 의해 형성되고 발전되는 과정을 문화사적·사회학적으로 추적한 것이다. 그리고 Henzen은 감정, 정서 그리고 마음을 모두 포괄하며 이를 상징하는 '가슴'으로 옮기기로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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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보론: 프로테스탄티즘의 분파들과 자본주의 정신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21
막스 베버 지음, 김덕영 옮김 / 길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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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따라서 시간 낭비야 말로 모든 죄 가운데 제일가는 그리고 원칙적으로 가장 무거운 죄가 된다. 또한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각자의 소명을 '굳게 하기'에 너무나도 짧고 소중하다.9) 사교, '쓸모없는 잡담', 사치를 통한 시간 낭비 그리고 심지어 건강 유지에 필요한 시간ㅡ6시간에서 아무리 길어도 8시간ㅡ이상의 수면에 따른 시간 낭비도 절대적인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된다. 아직 프랭클린의 경우처럼 "시간은 돈이다"라는 명제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정신적인 의미에서는 어느 정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즉 시간이라는 것은 무한히 귀중한 것이다. 왜냐하면 낭비한 모든 시간은 신의 영광에 봉사하는 노동의 기회를 상실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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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주

 

14 "시간을 아주 존중하고 네 시간을 조금도 낭비하지 않으려고 매일같이 보다 주의한다면 너는 너의 금과 은을 조금도 잃지 않을 것이다. 만일 헛된 오락, 치장, 축연(祝宴), 쓸모없는 잡담, 아무런 이익도 없는 사교 또는 수면, 이 가운데 어느 것이라도 너의 시간을 빼앗으려고 유혹한다면 더욱더 주의하라." 박스터, 앞의 책, 제1권, 79쪽.ㅡ"시간을 마구 낭비하는 자는 그 자신의 영혼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매튜 헨리는 말했다(「영혼의 가치」,『청교주의 신학자 문집』,315쪽). 여기서도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는 예로부터 검증된 길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없다'는 것이 현대 직업인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하며, 또한 예컨대ㅡ이미 괴테가 자신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52)에서 그랫듯이ㅡ자본주의 발달의 정도를 시계가 매 15분마다 종을 치는지 여부에 따라 측정한다(좀바르트도 자신의 저서 『근대 자본주의』에서 그리했다).ㅡ그러나 우리는 (중세에) 분할된 시간에 따라 산 최초의 인간은 수도승들이었고, 교회의 종은 원래 시간을 분할코자 하는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켰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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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9) 이 문장에서 '굳게 하기'(festmachen)에 인용부호가 있는 것은 이 단어를 성서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베드로후서 제1장 10절).


52)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교양소설(Bildungsroman)을 둘 썼는 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1795∼96)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가 바로 그것이다. 전자에서 괴테는 개인의 주관적·인격적 유일성에 토대를 둔 세계를 문학적 형식을 빌려 형상화하고 있다. 거기에서 개인이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고 혼동할 수 없으며 교체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후자에서 괴테는 사회적으로 분화되고 직업적으로 전문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숙명을 문학적 형식을 빌려 형상화하고 있다. 베버가 보기에 괴테가 문학적으로 묘사한 세계, 즉 직업적 전문가의 행위와 체념의 조합 위에 기초하는 세계는 베버 자신이 이 연구에서 문화사적으로 추적한 바로 그 세계이다. 이 두 거장은 상이한 경로를 통해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 밖에도 베버는 1917년에 행한 강연 '직업으로서의 과학'에서 괴테같이 위대한 예술가의 경우에도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려고 한 시도는 예술에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하면서 행위와 체념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베버에 따르면 예술가의 인격도 이 행위와 체념에서 나온다. 베버, 『과학방법론 논총』, 591쪽

 

그리고 괴테의 대표적인 희곡 『파우스트』는 모든 학문을 연구했지만 만족하지 못한 주인공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메피스토펠레스의 힘을 빌려 24년 동안 온갖 체험을 한다는 것이 그 줄거리이다. 파우스트는 우주의 신비를 탐구하고 부자가 되어 향락을 누리며 잠시나마 신에 비견될 강력한 자가 되기도 한다. 이로부터 '파우스트적'(faustisch)이라는 형용사가 파생되었는데, 이 형용사는 '끊임없이 새로운 체험과 자극 및 지식 등을 추구하는' 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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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 엘리엇의『황무지』와 사랑 받았던 여자 시뷜라

 

죽은 자의 매장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도 라일락은 자라고

추억과 정욕이 뒤섞이고

잠든 뿌리가 봄비로 깨어난다.

차라리 겨울은 따스했거니

대지를 망각의 눈으로 덮고

메마른 구근으로 작은 목숨을 이어줬거니.

 

 - T.S.엘리어트의 '황무지 <1> 매장(埋葬)' 중에서

 

 

 * * *

 

 

또 한 번의 4월이 지나갔다. 그 누군가에게는 틀림없이 '내 삶에서 가장 잔인한 달'로 각인된 채로...

 

T.S. 엘리어트가 『황무지(荒蕪地)』를 쓰지 않았더라도 우리가 이토록 자주 4월을 잔인한 달로 묘사할 수 있었을까.

 

어느새 4월은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서 앗아간 듯하다. 라일락 향기에 잠시 정신이 아득하던 순간들도, 찔레꽃 꺾으러 아지랭이 피어오르던 덤불숲들을 헤치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추억들도, 찔레꽃 너머로 살포시 겹쳐지던 어릴적 동네 여자 친구의 꽃처럼 예쁘던 동그란 얼굴도, 어린 아가의 손처럼 앙증맞게 돋아난 새잎들 위로 촉촉히 내리던 봄비의 추억들마저도...

 

4월이 잔인한 이유는 너무도 많다. 굳이 천재 시인이 93년 전에 쓴 '심오한 뜻'까지 헤아리지 못한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사실 그 시인이 그 시에서 말하고자 했던 바는 그가 '죽은 자의 매장' 앞에 끌어다 놓은 다음 몇 줄로도 충분하다.

 

한번은 쿠마에 무녀가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는 것을 직접 보았지.

아이들이 '무녀야, 넌 뭘 원하니?'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했어.

"죽고 싶어"

 

그토록 오래 살았던 쿠마에의 무녀가 저토록 처절한 소원을 내뱉게 된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로마 신화에 따르면 이 무녀는 꽃처럼 피어오르던 아리따운 처녀 시절에 아폴론 신으로부터 구애를 받을 때 말했던 '한 가지 소원'이 화근이었다. 그녀는 결국 자신을 사랑한 아폴론 신으로부터 '먼지 알갱이 수만큼 많은 생일'을 선물로 얻었지만 '그 세월이 줄곧 청춘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그만 깜빡하고 말았다. 그 바람에 그녀는 항아리 속에 매달려 있을 만큼 쪼그라든 채로 제때에 죽지도 못하는 슬픈 운명에 빠지고 말았다.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천장에 그려 넣은 쿠마에 무녀는 결국 늙었으나 여성스러움을 잃어버리고 남성처럼 우람한 근육과 힘을 갖춘 모습으로 뒤바뀐 채 아직도 그곳에 남아 있다. 지나친 과욕은 해마다 돌아오는 4월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전체를 해소할 수 없는 영원한 고통 속으로 빠트릴 수 있다는 교훈과 함께.

 

 


[쿠마에의 무녀], 도메니키노(Domenichino 1581∼1641), 1610년경, 피나코테카 카피톨리나, 로마

 

T.S. 엘리어트가 '찬란한 4월'을 보며 떠올린 건 바로 '고통스런 삶의 반복'이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고 다시 태어나야 하는 '자연'에게도, 죽을 만큼 괴로워도 어쨌든 삶이 끝날 때까지는 또다시 살아가야만 하는 우리 인간들에게도 4월은 그래서 늘 잔인하게 다가오고 또 잔인하게 지나간다.

 

그런데 자연과 닮은 인간이 유독 자연과 틀린 점 하나가 이 대목에서 불쑥 도드라진다. 자연이 창조한 존재 가운데 유독 인간만이 '탐욕과 절제'를 모른다는 점이다. 인간의 탐욕은 그래서 늘 비극의 씨앗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목적'이 '특정한 쾌감을 산출하는 데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카타르시스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비극에서 얻는 쾌감은 '위험 부담을 남에게 전가하고 얻는 경험의 쾌감'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이나 이웃에 불행과 고통을 주지 않고는 배출될 수 없는 격렬한 감정의 스릴'을 비극이라는 안전판 위에서는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비극에 빠진 사람들의 형편이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로 전환되는 순간 우리는 곧장 깊은 연민으로 빠져들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우리에게 내재된 '공감하는 능력'이 불러일으키는 '확대되는 원' 때문이다.

 

고대의 시인들이 다룬 비극들은 거의 대부분 '왕가의 비극'이나 '영웅들의 비극'이 많았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과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와 『헬레네』등 비극의 제목만 살펴봐도 이 점은 쉽사리 알 수 있다.

 

그런데 현대의 비극은 오히려 '대중들'에게 주역을 떠맡겨놓은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굳이 세월호의 비극이나 네팔 대지진의 참극을 예로 들 필요조차 없다. 사람들이 좀 더 풍요롭게 살기 위해 고안해 낸 '증권시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비극들만 살펴봐도 '대중이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자명해 보인다.

 

인간 탐욕의 역사를 살펴 보면 아주 오랜 옛날에는 주로 '전쟁을 통한 이민족 지배'가 탐욕을 만족시켜줄 주된 수단이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모든 걸 얻게 된다. 단지 영토와 재물과 노예만 얻는 것이 아니라 승리에 뒤따르는 드높은 영광과 명예까지도 송두리채 차지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것' 가운데 전쟁보다 더 빠른 수단은 없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를 고찰해 보면 아주 오랜 옛날부터 가장 최근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역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이 금세 드러난다. 우리는 아직도 '전쟁이 남긴 비극'과 '전쟁에 대한 사죄 문제'가 여전히 우리의 코 앞에서 벌어지는 가장 뜨거운 뉴스임을 매일 확인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과학이 진보하고 지식이 축적됨에 따라 이 모든 걸 뒤바꾸어 놓았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무역이 활발해 지면서 곧 '경제와 돈'이 인간의 삶을 급속도로 빠르게 지배하기 시작했다.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 또한 거의 전적으로 '경제력'에 따라 판가름날 정도가 되었다. 이른바 '자본'이 모든 걸 좌지우지하는 '자본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주식회사가 빠르게 생겨나고 암스테르담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증권거래소'가 곧 전세계 여러 도시에서도 재빠르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부 자본가가 독점하던 주식회사는 곧 '주식'으로 잘개 쪼개져 '일반 대중들'에게도 급속하게 공급되면서 '기업의 소유권'이 널리 분산되기에 이르렀다. '주식의 대중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탐욕스런 일반 대중들의 손에 주식이 쥐어졌으니 주가가 급등락을 겪는 일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했다. 어느새 '금융투기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 만큼 흥미를 끌기 시작했다.

 

'투기의 역사'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게 바로 '튤립'이다. 그 무대 또한 증권거래소가 처음으로 생겨났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었다.

 

1624년 황제튤립은 당시 암스테르담 시내의 집 한 채 값과 맞먹는 1,200플로린에 거래되었다.

튤립뿌리 1파운드가 단 1주일만에 20길더에서 1,200길더까지 치솟기도 했다.
당시 노동자 1달 봉급수준에서 5년치 연봉에 상응하는 값으로..

튤립 한뿌리를 위해 지불한 2,500길더로 27ton의 밀과 50ton의 호밀, 살찐 황소 4마리,
돼지 8마리, 양 12마리, 포도주 2드럼, 맥주 2큰통, 버터 10ton, 치즈 3ton, 린넨 2필,
장롱하나에 가득찬 옷가지, 은컵 1개 등을 살 수 있었다.

마침내 1637년 2월 3일 튤립시장이 붕괴했다.

 - 에드워드 챈슬러, 『금융투기의 역사』중에서

 

 

인간의 탐욕이 얼마나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내는지도 늘 흥미롭지만 그보다 더욱 흥미를 끄는 점은 '인간의 탐욕'은 결코 꺼질 줄 모른다는 점이다. 마이클 더글러스가 주연으로 나섰던 『월스트리트 2』의 제목도 그래서 'Money never sleeps'였다. 돈은 결코 잠드는 법을 모른다.

 

2015년 4월을 가장 잔인한 달로 기억하게 될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몸에 좋다는 '비타 500'을 한 박스나 선물받은 것으로 전해지는 전직 총리에게만 4월이 잔인했던 건 물론 아니다. 갱년기 여성들에게 더할 나위없이 좋다는 '백수오'를 건강기능식품으로 만들어 판 사람들과 그 회사의 주식을 사들인 수많은 사람들에게도 올해 4월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충분히 잔인했을 듯하다.

 

'백수오' 하나로 빅히트를 치면서 2013년 10월에 증시에 데뷔한 내츄럴엔도텍이라는 회사는 상장 이후 1년 반 동안에 시가총액이 무려 1조 7,633억에 달할 정도로 뻥튀기에 성공했다. (19,334,232주 × 91,200원=1,763,281,958,400원)

 

뒤늦게나마 이 회사를 살펴보기 위해서 주식을 공모할 당시 내놓은 '투자설명서'를 뒤져 보니 2012년말 종업원수는 고작 26명이었고, 매출액은 약 316억, 순이익은 약 44억 규모에 불과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유형자산은 15억(토지 약 12억, 기계장치 약 3억)에 불과했다.

 

사정이 훨씬 나아진 2014년 결산 시점으로 바꾸어 살펴봐도 사정은 그리 썩 나아보이지 않는다. 직원수는 고작 76명으로 늘어나는 데 그쳤고, 매출액은 1,241억, 영업이익 259억, 순이익 208억 수준이다. 자산에서 부채를 뺀 자기자본은 716억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회사를 두고 목표주가 10만원(시가총액으로 환산하면 1조 9,334억)을 그리도 당당하게 외치는 애널리스트가 어떻게 한꺼번에 여럿 등장할 수 있었는지 나는 오히려 그게 궁금하다. 심지어 한국을 대표하는 재벌 계열 증권사에서는 '백수오 가짜 파문'이 불거진 이후에도 줄곧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10만원'을 계속 고집하는 만용을 부렸다. 건전한 일반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그 애널리스트의 말을 순진하게 곧이곧대로 믿고 행동할 만한 어리석은 투자자가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마는 혹시라도 그 애널리스트의 '투자의견'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아서 그 이후에라도 그 회사의 주식을 매수한 투자자들이 아예 없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고, 한국 증권시장을 둘러싼 제반 환경의 한심스러운 처지를 제 스스로 드러내는 추악한 몰골을 엿보는 듯해서 여간 입맛이 씁쓸하지 않다.

 

이번 '백수오 가짜 파문'을 보면서 꼭 1년 전에 벌어진 참극인 '세월호 침몰'과 다를 게 무엇이냐는 자조 섞인 반응이 나오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세월호 기내 방송에서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주장이나, '백수오가 가짜일 지도 모른다'는 한국 소비자원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목표주가 10만원에 매수하라'는 주장은 닮아도 너무 닮았다.

 

'백수오 가운데 이엽우피소가 섞여 있으니 자진 폐기하고 회수하라'는 소비자원의 권고에도 아랑곳없이 회사는 오히려 한국 소비자원을 상대로 이엽우피소 검출 사실에 대해 '발표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고, 그 와중에 어떤 임원은 '동작 빠른 놈이 장땡'이라는 식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빠져 나가기 바빴고, 어떤 임직원들은 스톡옵션을 행사하느라 분주했고, 또 어떤 임원들은 주식을 내다팔기에 바빴다.

 

대표이사는 소비자원의 발표가 잘못되었다며 오히려 뒤집어씌우기에 나서는 한편 일간지에 대대적으로 광고를 내고 '자사주 매입'에 나설 만큼 '자신들의 혐의'에 대해 '극렬하게 저항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게 다 '자신들의 안전한 탈출을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이 모든 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결국 '인간의 탐욕' 때문에 생겨난 일이 아닌가 싶다.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행동하는' 인간도 결국 언젠가는 죽기 마련이다. 그리고 꼭 오래 산다고 해서 행복이 그에 비례하는 것도 결코 아니다. 심지어 '천 년을 살았던' 쿠마에의 무녀는 '죽고 싶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가 오래 전에 남겼던 충고는 여러모로 다시금 음미해 볼 필요를 느낀다. 그는 자신이 경제학자로 남기 보다는 오히려 도덕 철학자로 남기를 더욱 바랬다. 그가 자신의 묘소를 찾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도덕감정론』의 저자, 여기에 잠들다."였다. 그가 오래 전에 책 속에 남겨놓은 말을 5월의 첫날에 다시 한 번 음미해 보고 싶다.  어쨌든 5월은 가정의 달 아닌가. 헛된 탐욕으로부터 벗어나 딸린 식구들을 먼저 생각할 때다.

 

어느 한 사람의 묘비에 새겨진 글

역사의 기록들을 검토해 보고, 당신 자신이 경험한 범위 내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을 회상해 보고, 당신이 책에서 읽었거나 이야기를 들었거나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로서 자신의 개인생활에서건 사회생활에서건 극히 불행했던 모든 사람들의 행위가 어떠했었는지를 주의를 기울여 고찰해 보라. 그러면 당신은 그들 중 절대다수 사람들의 불행은 그들이 자신의 한창 좋은 때가 언제인지, 조용히 앉아서 만족하고 쉬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즉, 만족하고 멈추어야 할 때를 몰랐던 데 있는 것이다). 온갖 약을 복용함으로써 건강한 자신의 신체를 더욱 건강하게 만들려고 노력했던 어느 한 사람의 묘비(墓碑)에는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나의 몸은 건강했다. 나는 더욱 건강해지기를 원했다. 그리고 지금은 여기에 있다"라고.

 - 아담 스미스(Adam Smith),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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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freyja 2015-05-01 14:57   댓글달기 | URL
꺼질 줄 모르고 팽창하기만 하다 터져버리는 풍선처럼 인간의 탐욕이 화를 불러오는 허다한 일들 앞에서 도덕감정론의 인용글은 일침을 놓네요. 오렌님의 정돈되어 숙성된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oren 2015-05-01 18:17   URL
정말 오랜만이네요. 프레이야 님~

요즘 다른 곳들은 사정이 어떤지 몰라도 주식시장만큼은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답니다. 그러다보니 호황기만 되면 어김없이 꼭 나타나는 부작용들이 벌써부터 하나둘씩 터져나오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갱년기 여성들에게 특히 좋다는 그 `백수오로 만든 건강기능식품들`이 그토록 불티나게 팔릴 줄도 몰랐지만, 이토록 다방면에 걸쳐 `고약한 부작용`을 몰고올 줄은 정말 몰랐네요.

cyrus 2015-05-01 16:26   댓글달기 | URL
5월이 시작되는 날에 엘리엇의 `황무지`를 읽으니 느낌이 새롭습니다. 4월이 되면 언론에서는 `잔인한 달`이라는 관용어를 남발했었는데 자고 일어날수록 세상이 하수상해서 그런지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집니다. 이번 달에도 잔인하게 느껴지는 사건들이 생길까봐 걱정도 됩니다.

oren 2015-05-01 18:21   URL
cyrus 님 오랜만이네요..

더없이 화창한 5월의 첫날에 다소 우울한 얘기를 꺼내놓고 보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네요. 아무쪼록 나쁜 일들은 어서 빨리 좋은 방향으로 수습되고 앞으로는 기분좋은 일들이 좀 더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램뿐입니다.

unun1718 2015-07-11 16:12   댓글달기 | URL
경제학수업때 교수님께서 아담스미스가 살아있다면 신자유주의자들의 신봉자가 되기를 싫어 했을 거라는 이야기가 얼핏 생각이 나네요~ 그가 추구한 것은 인간의 무한한 탐욕이 아니라 인감의 양심을 바탕으로 한 자유였다는 것을 책을 읽어보면 안다고 하셨던 기억이~ 예전에 그 기억을 가지고 다시 국부론을 시작해볼까~ ㅋ 잘 읽었습니다

oren 2015-07-16 11:56   URL
unun1718 님 안녕하세요? 님의 댓글을 읽어 보니 그 경제학 교수님께서 제대로 가르치신 듯합니다. ㅎㅎ

아담 스미스에 대해서는 사실 `성급한 오해`가 너무나 만연되어 있어서 그를 조금만 더 알게 되더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존경받는 철학자가 되었으리라는 생각조차 듭니다. 그가 쓴 (케인즈의 표현을 빌리자면) `단 하나의 불후의 경제학 명저`인 『국부론』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 책을 읽고 나신 후에는 물론 그보다 훨씬 더 심오한 책인 『도덕감정론』까지 읽으시길 바라겠고요. 아무튼 건투(?)를 빕니다.
 

 

(아주 오랫만에 '투자'에 대해 길게 써 본 글이라 여기에도 남겨 봅니다. 투자에 관심 있는 분들만 읽어보세요~)

 

 

"높이 오르라. 멀리 오르라. 여러분의 목적지는 하늘이다. 여러분의 목표는 별이다."

 - 윌리엄스 대학 기념비에서

 

* * *

 

까마득한 옛날인 1930년에 태어나 어느새 우리 나이로 여든여섯에 접어든 '워렌 버핏' 할아버지를 모르는 사람은 이제 드물지 싶습니다.

 

그토록 명석했던 그가 세계 최고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으로부터 오랜 기간 동안 대학원 강의(컬럼비아 대학원)와 회사 업무(그레이엄&뉴먼 투자회사) 등을 통해 '위대한 가르침'을 온몸으로 전수받은 뒤에 고향인 오마하로 돌아가 소위 전업 투자를 시작한 게 그의 나이 이십대 중반이던 1956년쯤이었을 겁니다.

 

그토록 걸출한 투자자가 마침내 1988년에 '코카콜라' 회사에 투자하면서 자기 스스로를 자책했던 말은 다름아닌 '이 한심한 화상아' 였답니다. 그가 꼭 그처럼 표현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셰익스피어 희곡의 대사에 나온다는 그 유명한 말이 마침 떠올라 '멍청한 버핏 할아버지'가 그토록 뒤늦게 코카콜라에 투자하고 난 직후에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할 때 자책하듯 내뱉었다는 그의 말을 재미삼아 살짝 비틀어봤습니다. 어쨌든 그의 말뜻은 셰익스피어가 표현하고 싶었던 바로 그 심정과 조금도 다를 게 없었을 테니까요.

 

그가 전업투자를 막 시작했을 무렵에 한국에 살던 사람들 가운데 '코카콜라'를 마셔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요? 1956년 쯤에 말입니다. 얼마 전에 개봉된 영화 《국제시장》을 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눈보라가 휘날리던 바람찬 흥남부두'를 떠나 무작정 남쪽으로 내려온 이북 사람들만 가난한 게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땅 위에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전쟁으로 모든 게 무너져내린 '폐허' 위에서 하루 하루 힘겨운 삶을 살아내야 했던 시기가 바로 195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심지어 '제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날'을 떠올려 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1960년대 중후반 말이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코카콜라'는 커녕 '보리쌀 한 톨 조차' 구경하기 어려워 온갖 구황 작물로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고, 새봄이 돌아오면 진달래 꽃잎을 따먹기 바빴으며 한창 물이 오르는 소나무의 여린 껍질을 벗겨 먹으며 허기를 달래기 일쑤였습니다.

 

사정이 그러했으니 '너 코카콜라 먹어봤냐'는 질문 조차 극소수 사람들에게나 주고받을 법한 얘기였음에 틀림없을 듯합니다. 어쨌든 누구나 태어나서 난생 처음으로 먹어본 그 짜릿하고 달콤상쾌하기 그지없는 '코카콜라 맛'은 누구도 평생 잊지 못할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워렌 버핏이 전업투자를 막 시작하던 당시만 하더라도 전세계 인구의 대부분은 코카콜라의 바로 그 유명한 맛을 꿈에도 알지 못했다는게 '정설'입니다.(세계 인구의 대부분은 중국, 인도 등 아시아와 브라질 등 남미에 훨씬 많이 살고 있으니까요.) 그때는 이미 코카콜라가 탄생한 지 70주년이 다 되었을 무렵이었는데도 말입니다.(코카콜라는 1886년 약제사였던 존 펨버튼 박사(Dr. John Pemberton)가 맨처음으로 만들었답니다. 어느새 코카콜라의 나이가 므두셀라를 따라기가 시작했군요...)

 

그런 까마득한 옛날 옛적에, 스물여섯에 불과한 청년이, 미국 중부 내륙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오마하라는 시골에 살면서 그 당시로서는 그저 '머나먼 미래'였던 '70억이 넘는 인구가 실시간으로 거의 모든 소식들을 주고 받으며 살고 있는 기가 막힌 오늘날의 세계'를 온전히 내다본다는 건 꿈에서조차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그로서도 그저 코카콜라를 시도때도 없이 즐겨 마시기만 할 뿐 그 회사의 '먼 미래'를 내다보는 일에는 능력이 미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능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물론 아주 가끔씩은 '투자 대상'으로 잠깐씩 스쳐 지나가듯 고민해 보았으리라는 짐작도 아예 배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겠지만요. 아마 그 당시에도 '70년 역사를 지닌 코카콜라'가 남겨 놓은 '엄청난 거부들의 탄생 스토리'가 틀림없이 시중에 시끌벅적하게 떠돌아다녔을테니까 말입니다.

 

제가 여기서 '코카콜라' 이야기를 하다가 지쳐서 이쯤에서 그만 '수정' 버튼을 누르고 이 창을 빠져나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제 글에 조금씩 속도를 좀 올려보겠습니다. 그래야 우리 각자가 원하는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일로 제때에 되돌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어쨌든 '오마하의 청년' 워렌 버핏은 '코카콜라'를 살지 말지를 두고 '환갑'이 다 되도록 계속 '고민'을 하며 살게 됩니다. 그보다 훨씬 아둔한 우리가 보더라도 그는 참 '멍청한 넘'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현재는 매순간 빠르게 과거로 뒤바뀌면서 영원히 닫혀 버리지만 우리는 기억을 통해 거의 모든 과거의 일들을 명쾌히 밝혀내며 '누가 맞고 누가 틀렸는지' 언제나 명쾌한 판결을 내릴 수 있으니까 하는 말이지요. 그렇지만 또한 우리가 미래를 향해 얼굴을 돌리기만 하면 그 즉시 우리는 거의 대부분 '바보 멍청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는 언제나 활짝 열려 있으면서 매순간 쏜살같이 우리에게로 가까이 다가오지만 언제나 어김없이 '알 수 없는 상태로만' 다가올 뿐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결국 그토록 총명했던 워렌 버핏도 '먼 미래에는 새로운 경지가 개척될 것이다. 코카콜라는 전세계 어디서나 누구든지 즐겨 마실 것이다. 비록 지금은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일부 유럽 사람들만이 즐겨 마시지만 말이다....' 라는 사실을 아주 늦은 나이에 '어느날 문득'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가 다짜고짜로 '허겁지겁 달려가서' 코카콜라 주식을 마구 쓸어담았을까요? 그는 결코 그렇게까지 서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과연 오마하의 현인 다웠고 운도 참 좋았습니다. 1987년 10월에 느닷없이 뻥 터진 블랙먼데이가 바로 그에게 30년 이상이나 앓아왔던 해묵은 고민을 마침내 속시원히 해결해 주었기 때문이지요. 어릴 때부터 그토록 마시기를 즐겼고, 미수( )를 코앞에 둔 아직까지도 여전히 즐겨 마시고 있는 '코카콜라'를 만드는 회사에 마침내 마음껏 투자할 기회를 바로 그때 얻었던 것이지요. 그때 그 시절에 쓸어담은 코카콜라 주식 때문에 그는 마침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세계 최고의 부자에 오르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제 말머리의 결론을 아직까지도 여전히 맺지 못하고 있군요. 글을 쓰다보니 자꾸만 제 얘기의 물줄기가 '워렌 버핏'이라는 거목이 자라게 된 '토양'을 거쳐 땅 속 뿌리까지 적시고 말겠다는 꼴이라고나 할까요. 이쯤에서 다시 물줄기를 바로잡아야겠습니다. 제가 묻고 제가 답하고 싶은 '서론 부분의 결말' 같은 질문은 바로 다음에 있습니다.

 

워렌 버핏이 코카콜라를 사들이는 데 왜 그토록 오랜 세월이 필요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올바른 대답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투자에 대한 많은 비밀'을 이미 얼마쯤 터득한 사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투자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세상 이치에는 무척 밝은 사람'임에 틀림없을지도 모르겠구요. 물론 정답은 헤아릴 수 없이 많겠지요. 그가 코카콜라를 사기 전까지는 제법 멍청했다거나, 그조차도 '예측불가능한 먼 미래'는 온전히 내다볼 수 없었다거나 하는 말들도 결코 조금도 틀린 말은 아닐테니까요.

 

제가 좀 더 현실적으로(이 게시판 사정에 맞게) 떠올려본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합니다. 무엇보다도 우선, 코카콜라는 너무 비싸 보였습니다.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의 가르침에 의하면 '코카콜라는 PER과 PBR이 너무나 높아 보였던' 게 사실이지요. 또 하나의 이유는 소위 'Invisible asset'이라고 불리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무형의 자산'으로부터 창출되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완벽하게 파악하는 일은 워렌 버핏에게서도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지 싶습니다.

 

그는 이미 오랜 투자 경력의 거의 대부분을 언제나 '무형의 자산'을 중시하는 투자를 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코카콜라'에 투자하는데 그토록 애를 먹었던 모양입니다. 그가 투자했던 종목으로 널리 알려진 회사들은 대략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워싱턴 포스트, 버팔로 뉴스, 네브라스카 가구, 보쉐하임(보석회사), 월트 디즈니, 맥도날드, 질레트(면도기 회사) 등인데, 이들 회사의 대부분은 '예측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미래가 훤히 내다보이는 특징을 지니고 있지요. 그랬던 그도 '코카콜라'를 사는 데 그만큼 오래 걸렸다니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가장 최근 뉴스로는 이미 보유종목인 케첩업체 하인즈가 미국 대형 식품업체 크래프트와 합병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인수를 성사시켰다는 사실입니다. '크래프트 하인즈'는 세계 5위 식품 기업이 될 예정이라고 하지요. 아 참... 세계 굴지의 철강회사로 꼽히던 'POSCO'를 전량 매도했다는 뉴스도 있었네요...)

 

서설이 너무나 길었네요. 어쨌든 저뿐만 아니라 여러 투자자들이 최근 몇 년 동안에 가장 놀란 건 아마도 아래 표에 실린 몇몇 기업들의 '엄청난 주가 상승'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시가총액이 저토록 엄청나게 불어났을까요? 한 종목 한 종목을 유심히 뜯어보시고 살펴보시면 뭔가 공통된 점들이 조금씩 수면위로 붕 떠오르는 게 느껴질 겁니다. 이들 기업들은 무엇보다 오랜 업력을 쌓아오는 동안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해자'를 구축해 온 내수 기반의 불황을 모르는 기업들이며, 세상이 (교통과 통신의 발달과 여행의 확산 등으로) 점점 더 빠르게 좁혀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영업의 외연'을 좁은 한국땅을 벗어나 해외로 꾸준히 확장해 온 기업들입니다.(물론 몇몇 예외도 있긴 합니다만..)

 

이들이 이토록 엄청난 시총으로 불어나고 영업이익의 20∼40배, 순이익의 30∼70배에 이르는 엄청난 멀티플을 대접받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이미 오래 전에 워렌 버핏이 그토록 고민했듯이 말입니다.(맨 끝에 '비교'를 위해 덧붙여 놓은 대상홀딩스는 아직까지는 '참 착한 멀티플'을 가지고 있네요.)

 

 

 

이 글이 오래도록 머물게 될 공간은 결국 '대상홀딩스 종목 게시판'일 수밖에 없으니, 여러 지주회사들도 함께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표를 작성하면서 저는 대략 두세 가지 생각을 떠올릴 수 있었답니다.

 

첫째, 제일모직은 역시 엄청나게 비싼 주식임에 틀림없구나. 영업이익의 88.9배, 순익의 41.7배 멀티플은 과연 합리적인가? 외국인은 왜 꼴랑 2.5%만 투자하고 있을까? 저 주식이 액면가 5,000원으로 환산하면 7,025,000원에 달한다는 사실은 제대로 살피고 투자하는 것일까? 저 회사의 오너는 '투자 원금 대비 1,405배(주가 140,500원/액면가 100원)'로 뻥튀기했다는 사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등등.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던 속담이 그냥 생긴 게 아니더군요.

 

둘째, '업력 60년'을 자랑하는 대상그룹의 지주회사 시총이 '저 위치'에 있는 게 과연 얼마나 합리적일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한번 꼼꼼하게 '지주회사들의 실적과 투자 지표와 '현위치' 등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가급적 '명백한 사실들'만 말하고자 할 뿐 굳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근거없는 '장밋빛 전망'까지 보태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어차피 판단은 언제나 각자의 몫일 테니까요.

 

 

'대상홀딩스의 미래'를 전망하는 일이 그리 어렵진 않을 듯합니다. 단기적으로는 2014년 2/4분기와 3/4분기에 '일회성 비용 계상' 때문에 나타났던 일시적인 실적 하락이 딱 그만큼 반전될 여지를 미리 예약해 두고 있기도 하고, 최근까지도 비우호적이었던 환율 흐름도 반전 가능성을 보이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주된 원재료인 '옥수수 시세'가 아직까지도 말이 아니게 헐값에 머무르고 있으니 '당분간의 실적 호전'은 따놓은 당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 국제 옥수수 가격 추이

 

 

무엇보다도 먼 미래에 대한 전망이 중요합니다. 그 얘기를 빼놓을 순 없겠지요.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초강력 브랜드인 '종가집 김치'는 이제 더이상 한국 사람들만 먹는 식품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여러 나라로 수출될 게 뻔한 가장 확실한 먹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거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놀라운 위력'을 드러내기 시작한 드넓은 중국으로의 수출은 아직 제대로 시작도 못해본 채 이제 다시 막 열리기 직전이구요.

 

세계적인 발효기술을 통해 만들어 내는 식품 소재 분야의 사업 전망도 여전히 밝아 보입니다. 서양인들이 빵을 비롯한 수많은 음식에 캐첩과 마요네즈를 즐겨 곁들여 먹듯이 꼭 그렇게 한국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마다 고추장, 된장, 쌈장, 간장을 빼놓지 않고 곁들여 먹습니다. 비빔밥을 먹는데 고추장이 빠질 수 없고 삼겹살을 먹을 때 쌈장이 없을 순 없겠지요. 그 분야에서 '최고의 맛'은 누가 뭐래도 '순창 고추장, 된장, 쌈장'과 '햇살 담은 간장' 브랜드가 가지고 있습니다.

 

'카레 여왕'과 '맛선생'의 놀라운 활약도 빼놓을 순 없겠지요. 최근 식품업계의 놀라운 변화 가운데 하나는 1인 가구의 빠른 확산과 아울러 라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는 간편식의 빠른 성장세인데, 대상 청정원 브랜드의 선전이 돋보입니다.

 

앞으로 소득수준이 더욱 향상되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수록 점차 확산될 게 분명한 유기농 식품 사업을 영위하는 초록마을의 전망도 매우 밝습니다. 식자재 유통 사업과 오랜 해외 조림 사업 끝에 이제 막 생산을 개시한 인도네시아 팜오일 사업도 장기적으로 매출 성장과 수익 확대에 크게 기여하리라 믿습니다. 아직도 빠진 것들이 더러 있겠지만 이쯤에서 마무리하지요. 회사의 주요한 사업 내용과 미래 전망에 대한 보다 자세한 힌트들은 이미 '사업보고서'에도 상세히 나와 있으며, 동네 이마트 매장에 가서 여러 제품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볼 수도 있을 테니까요.

 

 

결국 먼 미래에는 모든 게 여러모로 지금과 달라져 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기업이나 주가나 사람이나 무엇 하나 변하지 않는 건 아무 것도 없을 테니까요. 아무쪼록 '좋은 방향으로' 변해 있길 바랄 뿐이지요. 아래의 그림들을 얼마쯤이라도 닮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래 기업들은 '환골탈태'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답니다.

 

3년 3개월 만에 30배가 오르다니요!
3년 10개월 만에 15.9배가 오르다니요!

 

그게 주식이랍니다.

 

 

* 삼립식품의 최근 1,000일 동안의 주가 추이

 

 

* 한샘의 최근 1,000일 동안의 주가 추이 

 

그러고 보면 벤저민 그레이엄이 1949년에 세상에 맨 처음으로 내놓았던『현명한 투자자』의 맨 끝 구절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우리는 평소 신중하면서도 기민한 자세로 대처하는 모든 현명한 투자자에게 이와 유사한 화려한 경험을 약속할 수는 없다. 우리는 시작할 때 우스개 소리로 했던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J.J.Raskob의 슬로건으로 끝맺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증권시장에는 흥미로운 가능성들이 넘쳐나니, 현명하고 적극적인 투자자는 이 떠들썩하고 즐거운 서커스에서 즐거움과 이익을 모두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흥분의 도가니를 보장한다.

 

두서도 없는 기나긴 글을 함께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무쪼록 모든 분들께 크나큰 행운이 따르기를~

 

Good 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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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클 2015-04-05 00:45   댓글달기 | URL
한참만에 뵙습니다 oren님 ^^
안그래도 삼립식품은 요즘 제가 놓친 아쉬움에 땅을 치고 있는 종목이라 관심있게 읽었네요.` 기본적` 분석에 충실해야 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늘 망각하니 그런가 봅니다.

oren 2015-04-05 12:40   URL
정말 오랜만이네요. 야클 님~

저도 삼립식품은 관심만 가져봤을 뿐 침도 못 발라봤어요. ㅎㅎ

어느날 문득 4만원대까지 오르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 재무제표도 몇 번씩 들여다보고, 동네 편의점에 가서 `삼립식품`에서 나온 제품들 가운데 인기를 끌고 있는 상품들이 어떤 게 있는지도 물어봤구요. 그런데도 좀 더 깊이 연구하지 못해 결국 30만원이 되도록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답니다.

허니버터칩이 그렇게 인기가 좋다고 해서 크라운제과도 한참 들여다봤는데 결국 손도 대지 못했구요. 어제 자주 가는 동네 도서관 앞 편의점에 가서 ˝허니버터칩 있어요˝ 하고 알바 여학생한테 물어봤더니 ˝이런 데까지 허니버터칩을 깔아주지는 않는다˝는 요상한 대답을 하더라구요. 이른바 감질나게 공급하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한다나요.. 그래서 전 여태까지 허니버터칩은 구경도 못해봤답니다. 참 맛있다던데 말이지요..

요즘은 마침 `실적 발표 시즌`이라 기업들의 변화된 실적을 들여다보느라 눈이 아플 지경이네요. 숫자로 빼곡한 재무제표를 들여다보는 일도 `눈이 벌개서` 할 때가 있긴 있더라구요. 돈이 되니까 말이지요. ㅎㅎ

yamoo 2015-04-06 18:29   댓글달기 | URL
캬~~ 저 곡선들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줄창 보낼 때가 있었지요. 떨어지는 칼날은 받는 게 아니라던 말을 새기면서도 멍청한 짓을 한 것도 생각나고...그래도 주식해서 손해 보지는 않았던 거 같습니다. 마지막에 손해를 좀 보긴 했지만 평균적으로 30퍼센트의 이익은 보았던 거 같습니다. 마지막에 너무도 큰 투자를 했기에 손실이 커서 그렇지 전체적으로는 괜찮은 투자를 했다고 평하며, 주식은 빠이빠이 했습니다.

근데, 오렌님 페이퍼에서 주식 그래프를 보고 엔날 생각이 잘 줄이야...^^;;

주식 하면서 참 많은 걸 배웠던 거 같습니다. 제가 마지막(2009년 무렵)에 관심가졌던 종목이 LED였었는데, 최근에 보니 관련 종목들이 많이 뛰었더군요. 어쨌든 오랜님의 전문 분야의 페이퍼를 보니 의외로 반갑네요!ㅎ

oren 2015-04-07 16:28   URL
yamoo 님 반갑습니다. yamoo 님께서 이런 뜻밖의 댓글을 달아주실 줄이야...ㅎㅎ

주식은 참 `양날의 검`인 듯해요.. 잘만 투자하면 여간 흥미롭고 스릴 넘치는 게 아니죠.. 돈까지 벌면서 말입니다. 저야 뭐 전공이 경영학이다보니 자연스레 <투자론>도 배우고, 학창 시절부터 `명동 증권가`를 들락거리며 일찌기 실전 투자를 경험했고, 졸업 이후엔 투자신탁회사로 들어가 애널리스트도 해 보고, 펀드매니저도 해 봤으니, 사실상 `전문 투자자`나 마찬가지인 셈이지요만.. `지식과 경험`이 뒤따르지 않으면 참으로 성공 확률이 낮고 위험천만한 곳이 `주식 투자 영역`이 아닌가 싶어요..

지금에 와서 문득 지난 과거를 되돌아 보니 한국증시의 시가총액이 100조원 남짓 할 무렵에도 증권시장에 발 담그고 있었고, 그 땐 저도 1조 6,000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거금을 굴리며 제법 힘깨나 쓰던 시절도 있었구나 싶어요. 그런데 그게 벌써 20년 전 옛 일이네요.. 그 시절에 비하면 요즘엔 그저 누가 뭐라든 오로지 나의 판단과 분석에만 오롯이 의존하는 `은둔형 투자자`가 된 듯한 느낌도 든답니다.. ㅎㅎ

rudwnd 2015-05-28 11:48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오렌님.
오렌님께서 쓰신 글 좋아요^^

워렌 버핏이 코카콜라를 사들이는 데 왜 그토록 오랜 세월이 필요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코카콜라는 먹으면 톡 쏘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 맛을 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먹고나면 트림도 나오니깐... 소화도 잘되는 것 같고요. 또한 강력한 마케팅으로 햄버거나 피자를 먹을 때 콜라하고 안먹으면 안되는것 같은... 소비자에게 알게 모르게 각인시키는 점진적인 마케팅... 대단한 회사가 코카콜라인 것 같습니다.

오늘 알았습니다. 워렌버핏이 코카콜라를 블랙먼데이 때 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