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한길그레이트북스 58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지음, 이기숙 옮김 / 한길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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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드디어 이해했는가? 이해하기를 원하는가? 그리스도교적 가치의 전도이자, 모든 수단과 본능과 천재들을 가지고 수행되었으며, 그 반대되는 가치고귀한 가치를 승리하게끔 했던 시도를 ······ 위대한 싸움은 이제껏 바로 이것밖에 없었다. 르네상스의 문제 제기보다 더 결정적인 문제 제기는 이제껏 없었다.
 - 니체, 『안티 크리스트』중에서

 * * *


이 책의 저자 부르크하르트는 '르네상스'에 관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역사가다. 그는 개신교 성직자 집안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신학 공부가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이내 역사학 분야로 눈길을 돌렸고, 주로 역사학, 예술사, 문헌학, 고전학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원 클럽 맨'처럼 학자로서의 경력 대부분을 바젤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데 바쳤다.


1858년에 역사학 정교수로 부임한 그는 10년 후 고전문헌학 교수로 처음 그 대학에 부임하는 청년 니체를 만났고, 저자보다 스물여섯 살이나 어렸던 니체는 저자로부터 큰 영향을 받게 된다. 니체는 교수 생활 10년 만에 철학에 전념하기 위해 바젤 대학을 미련없이 떠나지만, 저자는 니체가 떠난 후로도 오랫동안(1893년까지) 그 대학에 남아 역사 강의에만 몰두했다. 저자는 니체로부터 '야콥 부르크하르트 때문에 인문학이 발전했다'는 극찬을 받을 정도로 역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정말 진귀한 그 예외 중의 한 명이 바로 바젤 대학에 있는 나의 경외하는 지기인 야콥 부르크하르트이다 : 바젤 대학이 인문학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그의 덕택이다."  - 니체, 『우상의 황혼』)


이 책은 저자가 바젤 대학의 역사학 정교수로 부임한지 불과 2년 만인 1860년에 발표한 책이지만, 저자가 이미 오랜 기간 이 책의 저술을 철저하게 준비했기 때문에 발표 즉시 기념비적 대작이 되었다. 이 책은 제목에 이미 세 가지 범주가 명백히 규정되어 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때는 르네상스이고, 장소는 이탈리아이며, 다루는 주제는 문화사다. 르네상스가 무엇이며, 그것이 왜 하필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났는지, 또한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의 문화, 더 나아가 유럽 전체와 근대 세계를 어떻게 광범위하게 변화시켰는지가 이 책이 다루는 핵심 주제이다.


이 책과 저자에 대한 명성은 굳이 니체의 몇몇 철학책 후미진 구석에서 그의 이름을 찾기 위해 애쓸 필요가 정도로 광범위하게 계속 확산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르네상스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창조물이다."(독일에서 편찬된 『세계사 대계』)라는 웅변적 문장이 단적으로 말해주듯이, 저자가 이 책에서 펼쳐놓은 르네상스 연구는 학계에서 하나의 정설로 통념화된지 오래다.


그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대한 최초의 생각'을 떠올린 건 1847년에 로마를 방문하였을 때였다. '고대의 부활'을 통해 '중세의 미망'에서 깨어나 '인간의 재발견'으로 이어진 문예부흥이 르네상스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저자가 '로마'에서 '르네상스'를 떠올렸던 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오래 전부터 '폐허의 도시 로마'는 숱한 시인들과 역사가들에게 '특별한 명상'에 잠기게 만든 도시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물인 페트라르카와 단테는 물론, 훗날『로마제국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이나 니부어에 이를 때까지도 '폐허의 도시 로마'를 휘감던 공기와 저녁 노을은 '불현듯' 천재들로 하여금 웅편거작들을 쓸 결심들을 계속 불러일으켰다. 단테의 말대로, "로마 성벽의 돌들은 당연히 경외심을 품고 대해야 하고, 이 도시를 떠받치고 있는 대지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 이상으로 귀중하다."


사실 부르크하르트 이전에도 르네상스라는 용어와 개념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이 개념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들은 바사리, 마키아벨리, 에라스무스, 클로드 졸리, 볼테르, 괴테 등이 꼽힌다. 이 가운데 볼테르와 괴테는 거의 '르네상스의 역사'를 쓸 뻔했던 인물로 꼽힐 만큼 '르네상스 개념'에 정통했던 인물들이다. 훗날 네덜란드의 역사가 호이징가는 볼테르가 『르네상스의 시대』또는 그와 유사한 제목의 역사서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볼테르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는 잘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결정적으로 '이탈리아'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오늘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는, 부르크하르트야말로 르네상스 개념을 가장 먼저 학술용어로, 또 일반적인 교양언어로 만든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애초에 부르크하르트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르네상스 시기의 예술사와 문화사를 결합하고자 하는 웅대한 구상을 품고 방대한 연구에 착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토록 야심찬 연구 작업이 끝내 완결에 이르지 못찬 채 교착 상태에 머물던 중, 그는 결국 예술사 부문(회화,건축,조각)을 따로 떼어내고 문화사를 다룬 책으로 체계를 바꿔 이 책의 출간에 이른다. 그 과정이 몹시도 지난했던 모양이다. 저자 스스로 이 작품을 두고 '역경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별칭으로 부를 정도였다. 그는 이 작품에 특별히 시론(試論)이라는 부제를 붙였는데, 그 이유는 그가 언제나 스스로 비전문가임을 자처하면서 전체에 대한 조망 능력을 지닌 '딜레탕티즘'을 강조하는 성향을 지녔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이 작품 초판본을 두고 고교 은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표현한 대로, '기존의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은, 마치 거친 들에 피어난 야생화와도 같으며, 저자가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할 기회를 가졌고 사료의 기록을 멋지게 활용하고 있다고 믿을 만큼'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은 지녔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역사서라고까지 내세우는 듯한 태도를 취할 순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부르크하르트가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은 자신의 사후 출간된 작품인『세계사적 고찰』에서 제시한 포텐츠론(Potenzenlehre)으로 설명된다. 즉 역사는 국가 · 종교 · 문화라는 세 개의 잠재력들(Potenzen) 사이의 규제 · 견제 · 대립 · 포괄 · 보완 등 변증법적 상호작용 속에서 하나의 통일적인 상을 형성해간다는 내용의 역사이론이다. 이 책에서 크게 6부로 나눈 구성 또한 저자의 역사 서술 방식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정치 상황은 '제1부 '인공물로서의 국가'에서 다루고, 문화 상황은 제2부에서 제5부에 이르는 '개인의 발전' '고대의 부활' '세계와 인간의 발견' '시교와 축제'에서 다룬다. 당시의 사회 풍습과 종교 상황은 제6부 '관습과 종교'에서 다룬다.

이 책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들은 주로 '문화'를 다루는 장들에 담겨 있다. 고전과 고대의 부흥을 통한 인간의 자아와 세계의 발견, 그에 따른 개성의 성장, 자유주의와 인문주의의 발전 등은 우리가 흔히 르네상스에 대해 갖고 있는 기본 개념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부르크하르트의 서술이 빛나는 점은 '르네상스의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당시의 정치 상황과 도덕적 풍조와 윤리 관념을 포함한 '관습과 종교'를 함께 고려하여 입체적으로 세세히 조명한다는 점이다. 수많은 교황과 황제가 끊임없이 반목과 견제를 주고 받으며 대립하는 당시 이탈리아의 특수한 정치 상황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연구와 묘사는 독자들을 단번에 르네상스 시대의 궁전과 교황청 안으로 바싹 끌어당길 만큼 자세하고 생생하다. 굳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나 단테의 『신곡』가운데 유명한 대목들을 따로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당시 이탈리아의 극도로 혼란스럽고 드라마틱한 정치적 격변 상황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메디치 가문에 대한 숱한 암살 음모, 교황의 사생아였던 체사레 보르자의 상상을 초월하는 잔악무도한 학살극, 온갖 잔혹한 군소국가 폭군들의 횡포와 만행, 용병대장들의 천인공노할 배반과 찬탈 등은 셰익스피어의 역사극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르네상스의 문화가 봄을 맞은 자연처럼 사방에서 화려한 꽃을 피우던 시대에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의 정신적인 풍토와 사회적인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도 중요하다. 언어와 관습, 사교와 축제, 가족과 결혼, 음식과 질병 등 아주 디테일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사회상을 그대로 들여다 보는 듯한 저자의 설명은 '관습과 종교'에 더없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배우자의 부정에 대한 복수극, 수도사와 참회 설교사들의 타락, 점성술과 마법이 만연하던 풍조,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확산, 갈수록 타락하는 종교에 대한 불신과 세속화 등은 숱한 풍속화와 전기(傳記) 또는 문학 작품 속 묘사 등에 대한 설명과 전거 자료를 통해 탄탄하게 뒷받침되어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핵심으로 내세우는 주제는 '이탈리아인들의 내면 세계에 대한 탐구'로부터 주로 도출된다. 왜 하필 이탈리아 사람들이 르네상스의 주역으로 등장하여 '유럽의 근대를 탄생시킨 원동력'으로 이어졌느냐 하는 문제를 단순히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몇몇 천재들, 가령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마키아벨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문예활동을 적극 지원한 몇몇 탁월한 교황과 군주들의 존재 덕분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극도로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은 개인이 권력을 얻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자신의 능력과 재능에 의지할 수밖에 없던 환경을 만들었다. 전통적 기준이나 권위로부터의 해방이 곧바로 개인주의가 싹트고 성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었다. 개인의 가치가 중시되면서 수많은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과 개성 넘치는 다양한 인간들이 자신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기회와 자극이 그들에게 비로소 주어졌던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내면 깊숙하게 자리잡은 '개성 강한 민족성'이 이런 경향을 다른 인접국가 사람들보다 더욱 예민하게 자극했음에 틀림없다.

사실 중세 암흑시대에 교회 건축물의 무게에 깔려 땅속에 묻히고 질식했던 수많은 고대 그리스·로마 고전에 대한 재발견 만으로도 이탈리아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라틴어가 광범위하게 학습된 점도 이점이었다. 빛나는 로마 시대를 장식했던 인물들, 가령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키케로, 리비우스 등이 남긴 탁월한 작품들도 '개성의 발견'에 중요했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에겐 '고대 로마'가 그들의 영광스러운 과거였다는 '끈끈한 유대감'부터 남들과 달랐던 셈이다. 제노바 사람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일로 대표되는 지리적 탐험 외에도 갈릴레오로 이어지는 자연 과학의 진보 또한 이탈리아에서 유독 눈부셨다.

부르크하르트의 '세계와 인간의 발견'은 일견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쓴『총·균·쇠』의 일부 대목들을 연상시킬 때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부르크하르트가 이탈리아 국민들의 '세계와 인간의 발견'에 대한 선구자적 역할을 다이아몬드 교수와 유사한 방식으로 쉽게(?) 결론을 도출하지 않는 점은 도리어 매력적이다. 주로 '이탈리아의 지리적 이점'에 힘입어 이탈리아인들이 그런 식으로 움직였던 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 가령 베네치아와 나폴리, 피렌체와 제노바 등이 지중해를 가까이 끼고 있는 덕분에 일찍부터 드넓은 세계와 활발히 접촉할 수 있었다는 점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부르크하르트는 줄곧 이탈리아 사람들의 내면 세계에 자리잡은 독특한 민족성과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심리 등을 보다 더 근본적인 '르네상스의 원동력'으로 예민하게 포착한다.

사실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 에 대한 연구는 너무나 방대하고 세세한 문헌 자료까지 모조리 들춰보는 방식으로 치밀하게 이뤄졌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에 대한 예비 지식을 미리 어느 정도 갖추지 못한 일반 독자들에겐 저자가 쓴 평범한 문장들을 읽을 때조차 편안한 호흡으로 따라가기 벅찰 때가 많을 정도로 전문적이다. 그래서 저자가 경쾌한 속도로 가볍게 서술하는 문장들을 읽을 때조차 우리에게는 몹시 생경한 인물이나 지명 혹은 낯선 용어들 때문에 방해받고 당황할 때도 많다. 또한 문장들과 행간 곳곳에 숨겨진 의도적인 생략과 압축뿐 아니라 다양한 함축과 비약들도 독자들이 쉽게 흡수하기 벅찰 때가 있다. 이런 측면들은 아무래도 독자와 저자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지식 수준의 현격한 차이' 때문이니 결국 어쩔 수 없는 문제다. 때로는 저자가 수십 권 혹은 수백 권의 책들을 샅샅히 찾아 읽고 연구한 내용들조차 불과 몇 줄의 문장 속에 뭉뚱그려 간략하게 짚고 넘어갈 때도 적지 않은 듯하다. 숱하게 옆길로 샐 수 있는 '군더더기 설명의 유혹들'을 저자는 매번 단호하게 뿌리치고 잘도 넘긴다. 그럴 때마다 저자는 우리에게 친절한 안내를 덧붙이곤 한다. 그런 부분들까지 세세하게 탐구하고 분석하는 일은 이 책의 과제가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저자가 읽은 책이 족히 수백 권을 넘어 수천 권에 이를 정도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생긴다.

가령 다음과 같은 대목을 읽고 저자의 끝모를 탐구심과 놀라운 상상력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독자가 몇이나 될까.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만사를 이룰 것이니, 그는 수고도 위험도 손해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나 자신을 통해 시험해본 결과 다음의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강렬한 원동력에서 출발하지 않는 인간의 행동은 헛되고 무의미하다고." 물론 구이차르디니의 일생을 기록한 다른 문헌들을 읽어볼 때, 그가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명성이 아닌 명예심이라는 점을 덧붙여두어야 하겠다.

그러나 이 문제를 그 어떤 이탈리아인보다 날카롭게 지적한 사람은 라블레이다. 물론 나는 이 이름을 우리의 연구에 끌어대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 이 비상하고 언제나 괴이쩍은 프랑스인이 남긴 글들은 형식과 미가 없는 르네상스가 어떤 모습일지를 대략이나마 알게 한다. 하지만 텔렘 수도원의 이상향을 그려낸 그의 글은 문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서, 여기에 들어간 최고의 상상력이 없었다면 16세기의 모습은 불완전했을 것이다.

라블레의 작품에 나오는 자유의지의 수도회 남녀들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의 규칙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그것뿐이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훌륭한 친구와 사귀는 자유로운 사람들은 덕을 행하고 악을 피하는 본능과 충동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리켜 그들은 명예라고 불렀다."

이것은 18세기 후반기를 고무하여 프랑스 혁명에 길을 터준, 인간 본성의 선함에 대한 바로 그 믿음이었다. 이탈리아인도 저마다 자기 안에 있는 고귀한 본성에 눈을 돌렸다. …… (519∼520쪽)

결국 이 책은 전체적으로 일반화해서 얘기하자면 '무엇에 대해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몹시 전문적인 책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 책이 다루는 핵심 주제인 '르네상스'가 인류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한번쯤 심각하게 고려해 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실망시키지 않을 만큼 '르네상스'에 대해 충분히 방대한 연구와 예리한 관찰들을 놀라운 필치로 그려낸 작품이 바로 이 책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 책이 전문적이면서도 방대하고 예리하지만 읽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는 점은 이 책의 단점이자 또한 장점일 수밖에 없다. 인류의 '생각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놀라운 시기였던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대한 숱한 놀라운 이야기가 이 책에 거의 다 담겨 있다고 봐도 좋다. 무려 1,167개에 달하는 방대한 주석은 부르크하르트의 연구의 깊이를 방증하고도 남는다.(이처럼 방대한 주석이 딸린 책으로는 막스 베버의『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도 빼놓기 어렵다. 그 책에 딸린 저자와 역자의 주석을 모두 합하면, 내가 읽은 번역본으로는 1,242개다. 막스 베버도 그 책에서 부르크하르트의 이 책을 인용했다. 베버는 '이 한 줄이 너의 해석을 천 년 동안 기다려 왔다, 라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학문을 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물론 그 말은 부르크하르트에게 적용해도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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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정략론 동서문화사 월드북 9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황문수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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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마키아벨리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피렌체에서 태어나 거기서 삶을 마감한 피렌체 토박이였다. 그래서 피렌체의 역사는 마키아벨리의 생와와 사상에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피렌체는 봄의 도시이자 꽃의 도시다. 토스카나 주의 북방에 위치하여 북으로는 알바노 산맥을 끼고, 서쪽으로 완만하게 흐르는 아르노 강이 피렌체를 적신다. 이 지역은 고대 로마 시대에는 에트루리아가 세력을 떨치던 곳인데, 수세기 동안 이탈리아에서 가장 강대한 도시국가였던 그들도 결국 BC 4세기 무렵에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만다.


피렌체는 흔히 '세계 최초의 근대국가'라는 이름이 붙는다. 마키아벨리가 활동하던 시절은 인간의 정신이 바야흐로 '중세의 미망'에서 막 깨어나던 시기였다. 고대 로마가 멸망하고 난 이후,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확고하게 다져 놓은 '그리스도교가 모든 삶을 지배하는 세계관'에 비로소 사람들이 질문을 품고 강력하게 반기를 들던 때였다. 르네상스에 도화선을 붙인 건 페트라르카였다. 그가 나타나기 전에 단테가 마중물을 부었다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니다. 단테는 처음으로 '고대'를 문화생활의 전면에 힘차게 밀어넣었던 인물이었다. 페트라르카는 고전들을 예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안목으로 바라보았다. 중세 학자들이 고전들을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통합하려 애썼지만, 그는 고대의 시나 역사, 철학 등을 그 자체로 고대 문명의 '빛나는 본보기'로 이해했던 것이다. 인간을 만물의 척도로 보는 그리스와 로마의 세계관이 '1천 년 동안이나' 맥이 끊겨 있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은 사람도 페트라르카였다.


마키아벨리가 그런 시대적 분위기를 이어받아 피렌체에서 태어났으니 온갖 고전 작가와 작품들이 그를 자극했음은 당연했다. 1486년 그의 나이 17세 때, 그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를 제본했는데, 그 우연한 일 때문에 그는 리비우스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또한 그는 뛰어난 문헌학자였던 포조 브라치올리니가 1417년에 발견한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직접 필사할 정도로 고대 로마의 철학에 매료되기도 했다. 바티칸 국립 도서관에 현재 남아 있는 그 책의 필사본은 마키아벨리가 쓴 것으로 뒤늦게 확인되었다고 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쓸 때만 하더라도 이탈리아는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다. 피렌체 공국도 공화정에서 메디치 가문의 지배로, 다시 소델리니 정권에서 메디치 가문의 재집권으로 여러 차례 정치적 변화를 겪었다. 주변의 강대국들인 프랑스, 에스파냐, 신성로마제국(독일)의 침입도 잦았다. 복잡하게 전개되는 국제정세 속에서 피렌체와 이탈리아의 동향을 예민한 감각으로 살필 수 있게 만든 건 그가 피렌체 정청에서 내정과 군사를 담당하는 서기관으로 일하게 되면서 '정치 현장'을 몸소 겪었기 때문이다. 그는 직접 외교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프랑스, 독일, 로마 교황청 등으로 동분서주했으며, 14년 동안 공화정부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체사레 보르자와 만나기도 하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궁정에서 머물기도 했다. 특히 그가 열정을 쏟은 분야는 '군사위원회'의 사무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피렌체는 군사력을 '용병부대'에 의존했는데, 그는 언제나 '자국민으로 구성된 군대'를 창설할 것을 끊임없이 주창했다.


그가 『군주론』을 집필한 동기는 소델리니 정권의 붕괴와 함께 찾아온 자신의 면직이었다. 18년 만에 메디치가가 정권을 되찾게 되자 새 정부는 마키아벨리를 모든 직위에서 해임하고 피렌체로부터 추방시켰다. 로마 근교의 허름한 집으로 거처를 옮긴 그는 서재 책상 앞에서 고대 로마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이 직접 겪고 관찰해 왔던 현실 정치와 접목시키는 일에 몰두했다. 지리멸렬한 조국의 현실과 찬란했던 고대 로마 공화정과의 간극이 너무나 컸고,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구체화함으로써 국가를 위해 훌륭한 타개책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사실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공들여 쓴 책은 『로마사론』(일명『리비우스에 관한 담론』)이었다. 그 책을 통해 그는 로마 공화정의 온갖 훌륭한 법률과 제도와 군대와 인물들을 무수히 살폈다. 또한 로마가 멸망한 이후 여러 나라로 쪼개진 이탈리아와 피렌체의 현실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깊이 생각한 온갖 책략들을 현실에 투영시키기 위해서도 자신이 '활약할 무대'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군주론』이라는 더없이 솔직하고도 대담한 책을 써서 권력을 잡고 있는 줄리아노 데 메디치 전하를 위해 바쳤다. 그 짧은 책에는 국가의 성격, 그 종류, 유지 방법, 상실 이유 등에 대해 전례가 없을 정도로 현실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권력'이라는 마신(魔神)을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 그 책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합리주의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실 정치가의 냉혹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른바 '마키아벨리즘'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국가'의 개념이나 '정치학'의 원리는 상당 부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고대 철학에 뿌리를 둔 것이었지만, '근대 국가의 탄생'을 재촉시킨 마키아벨리즘이 오래된 전통적 국가관을 한 순간에 쓸데 없는 소리에 가깝도록 몰아부친 셈이었다. 이 책은 메디치 가문에 헌정하려 했으나 그마저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마키아벨리가 죽은 지 5년이 지난 1532년에 인쇄된 이 책은 로마 교황청이 서둘러 금서에 올릴 정도로 파급력이 대단했다. 혹자가 말한 대로,『군주론』이 겪은 역사가 그대로 유럽 정치의 역사라고 말할 정도였다. 수많은 국가들이 '자국 군대'를 강화하고, 무력을 앞세워 이웃 약소국가들을 강제로 삼키기 시작하였고, 서유럽 열강들은 멀리 아프리카와 아시아에까지 손길을 뻗쳐 식민지 확대에 열을 올렸다. 모스크바까지 점령했던 나폴레옹에 뒤이어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독일의 히틀러 정권이 등장하기에 이르렀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까지 겪었던 것도 마키아벨리즘의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마키아벨리의 영향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런 군비 경쟁과 군사력의 극대화에 기반한 열강들의 세력 다툼은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지나친 확대 해석'일 뿐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다. 『군주론』의 끝부분만 보더라도 그런 증거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야만적 지배는 누구든 자랑할 만한 것이 못된다. 그렇기 때문에 명예 높은 당신 일가가 정의의 싸움을 일으킬 때의 그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이 책무를 담당하기 바란다. 그리하여 당신이 내건 기치 아래서 조국이 고귀하게 빛을 발하고, 당신의 편달 아래서 페트라르카의 그 말이 현실이 될 수 있기를. 미덕은 광포에 대하여 무기로써 맞서지 않느니. 싸움은 조용히 그만두라."고 썼으니 말이다.

『군주론』과 그 책의 저자인 마키아벨리에 대한 오해는 수많은 학자들 사이에는 오랫동안 논쟁 거리였다. 그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들까지 일반 사람들이 살필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평범한 독자들이 마키아벨리와『군주론』을 둘러싼 오해를 쉽게(?)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법도 있다. 그가 쓴『로마사론』을『군주론』과 함께 읽는 일이다. 오랜 시간의 연구와 노력끝에 완성한 그 책을 읽어보면 마키아벨리의 참모습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놀랄만큼 성실하게 티투스 리비우스의『로마사』를 공부했다. 아쉽게도 리비우스의 방대하고도 탁월한 역사서인『로마사』는 지금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다. 마키아벨리와 리비우스의 책과 함께 읽으면서 서로 직접 비교할 수 없는 아쉬움은 있지만, 마키아벨리의『로마사론』만 읽어도 마키아벨리의 진면목은 물론 리비우스의 위대함을 동시에 느끼기에 별로 부족함이 없다. 『로마제국쇠망사』라는 불후의 대작을 남긴 에드워드 기번이 마키아벨리를 그토록 칭송했던 이유 또한 그가 남긴『로마사론』때문이었으리라.

마키아벨리가 쓴『로마사론』은 전3권(제1권 60장, 제2권 33장, 제3권 49장)에 이른 방대한 저작이다. 그 책의 핵심 주제는 '인민의 자유를 보장하는 공화정 체제의 수립 및 발전 전략'이라고 요약하고 싶다. 그는 이미 『군주론』에서 군주정 체제에 관한 이론과 책략들을 충분히 서술했기 때문에, 자신의 진정한 전공 분야인 '로마 공화정'을 바탕으로 '공화정 체제의 우수성'과 '저해 요인 및 발전 전략'을 더없이 치밀하고도 풍성하게 펼쳐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로마의 역사를 이끈 숱한 인물들에 대해서라면 마치 그 사람들의 마음 속까지 훤히 꿰뚫는 듯한 마키아벨리의 명민(明敏)한 관찰은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경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숱한 장(章)에서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서』를 인용하는 대목들은 마키아벨리의 칼날처럼 예리한 분석 포인트와 절묘하게 결합한다. 수많은 군대지휘관들의 촌철살인과 같은 '명연설'은 전장의 생생한 현실로 거듭 독자들을 이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명성을 얻는 법, 평판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법, 위험에 대처하는 법,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는 법, 상황에 대한 오판이 초래하는 영향들은 훌륭한 처세술을 전수받는 느낌도 갖게 만든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긴 장인 <음모에 대하여>를 읽으면 마치 제갈공명을 앞에 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다. 군대의 규율과 훈련이 얼마나 중요한지, 군주 자신의 태만과 통찰력 부족을 한탄해야 할 때는 언제인지, 나가서 싸울 것이냐 적을 끌어들여서 싸울 것이냐의 선택 문제, 진지의 구축과 요새의 필요성, 대포의 효용 등등은『전쟁론』을 쓴 클라우제비츠를 훨씬 더 능가할 정도로, 그가 얼마나 탁월한 전술가요, 책략가인지를 느끼게 해준다.

『로마사론』을 통해 마키아벨리가 주장하는 핵심은 '공화정에 대한 뜨거운 옹호'와 '민중의 자유 수호'였다. <민중의 잘못은 군주의 잘못에서 생긴다>는 주장이나, '백성의 소리가 곧 하늘의 소리'라는 표현을 마주하면 그가 과연 『군주론』을 쓴 그 사람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이다. 로마가 발전을 거듭했던 이유도 훌륭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 집정관으로 뽑히는 구조와 민중의 권리를 강력하게 보호할 수 있었던 호민관 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고 보았다. 마키아벨리는 '군사령관의 지휘권 연장'을 로마 공화정 붕괴의 '시발점'으로 보았다. 참으로 놀라운 탁견이다. 임기 1년의 두 집정관 체제가 '현장의 필요성' 때문에 '지휘권 연장'을 편법으로 용인함으로써 그 지휘관에게 맹목적 충성을 다짐하는 장교들이 등장하게 되고, 결국 군대의 사병화가 시작되었다. 마리우스와 술라가 집정관을 맡게 된 이후에 나타난 결과는 참혹한 내전이었다.

그 이후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폼페이우스와 경쟁하게 되었고, 소(小) 카토나 브루투스와 같은 고결한 인물들이 나타나 '공화정 수호'를 위해 분기했지만, 끝내 카이사르에게 무너지고 만 것도 결국 시대가 너무 타락했기 때문이었다는 게 마키아벨리의 진단이다. 카이사르야말로 마키아벨리에게는 '로마 인민의 자유'를 끝장내고 로마를 '노예 상태'로 전락시킨 원흉이었던 셈이다.("이 카이사르가 로마에서 첫 번째 참주가 되고, 그에 따라 로마의 자유는 다시 되살아나지 않게 되었다.")

『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어찌보면 '권력의 진실'을 한 치의 거짓도 없이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었다. 그는 합리적이고 덕성 높은 사람이었으며, 인간을 미워하지도 않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낸 지극히 성실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권모술수와 음모와 책략의 대가로만 인식되는 게 현실이다. 마키아벨리의 참모습을 발견한 많은 전공자들이 그 점에 대해 억울해 해도 충분한, 그런 인물이 마키아벨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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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03 15: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키아벨리는 사리분별이 뛰어난 인물이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군주론>을 쓴 것조차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절호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 본인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으로 보고 싶습니다. 뇌물로 아부 떠는 것보다는 글로써 자신의 생각을 상부에게 어필하는 마키아벨리의 선택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oren 2017-03-03 15:27   좋아요 2 | URL
마키아벨리처럼 철저한 현실주의자도 보기 드물겠지요. 피렌체 공화정청에서 14년간 밤낮 가리지 않고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한 죄밖에 없는데, 하루 아침에 피렌체에서 추방당했으니 그때 그의 심정이 얼마나 억울했을까 싶어요.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불과 서너 달만에『군주론』을 후다닥(?) 완성해서 출사표를 냈지만 그게 ‘전달‘조차 되지 못했으니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그런 불운들이 도리어 불후의 명저를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으니, 후세 사람들로서는 불행 중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3-04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분열되었던 이탈리아 통일을 위한 단기처방이라 생각됩니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그의 주된 사상은 <로마사론>에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대로 <군주론>과 <로마사론>을 같이 읽어야겠습니다. 한편으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다시 생각하니, 케인즈가 생각나네요. ‘유효수요‘ 창출을 위해 ‘정부의 재정확대‘를 주창한 그의 경제관을 생각해보면, <군주론>과 <로마사론>의 관계가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Oren님 좋은 책과 독서법 소개 감사합니다.

oren 2017-03-04 13:42   좋아요 1 | URL
『군주론』과『로마사론』의 관계를 잘 살펴보는 일이야말로 마키아벨리를 좀 더 깊게 이해하는 첩경임은 분명한 듯합니다. 두 작품에서 다룬 ‘군주정‘과 ‘공화정‘은 어쨌든 서로 모순되는 사상이니까요. 사실 그는『로마사론』을 먼저 집필하다가, 사정이 다급한 바람에 그 책 가운데 ‘군주정을 논한 부분‘만 따로 떼어내어 『군주론』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추론하는 학자들도 많은 듯합니다.(그래서 마키아벨리는『로마사론』의 여러 곳에서 ‘군주정‘에 관한 부분은 이미 ‘다른 책‘에서 충분히 언급했다는 말을 자주 내세우고 그냥 넘어갑니다. 『로마사론』에서 느껴지는 탄탄한 구조를 갖춘 건축물 같은 느낌이, ‘군주정‘을 다루는 부분이 나올 때마다 ‘텅 빈 공간‘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칠 때처럼 휑한 느낌으로 뒤바뀌는 건 저만의 느낌일까요?) 어쨌든『군주론』은 ‘격동하는 정세‘ 탓인지 몰라도 그 논조가 매우 격렬한데 비해,『로마사론』은 ‘리비우스의『로마사』를 바탕으로 로마의 흥망을 마치 커다란 강줄기를 따라 내려가듯이‘ 유려하게 논하고 있어서, 전혀 다른 스타일의 마키아벨리를 만나는 느낌도 강하게 든답니다^^
 


(밑줄긋기)

마치 시계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는 느낌


피렌체의 신국가 조직에 관한 마키아벨리의 완벽한 계획안은 교황 레오 10세에게 바친 건의서에 들어 있다. 이것은 그의 『군주론』을 헌정받은 우르비노의 공작 소(小) 로렌초 메디치가 죽은 뒤(1519년) 씌어진 것이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어 상황은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그가 제안한 수단과 방법도 모두 도적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공화국을 세워 메디치 가를 계승시키고자 한 것, 그것도 온전한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고자 한 것을 관찰해보는 것도 무척 흥미롭다. 교황과 그의 특별한 추종자들과 피렌체의 각종 이해관계에 대해 이보다 더 정교히 만들어진 방책은 생각하기 힘들다. 마치 시계의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다.(153쩍)


 - 야콥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 *


거기에는 찬란한 섬광과 같은 탁견들도 있다


그밖에 그가 피렌체를 위해 제안한 많은 원칙과 세부적인 설명과 비유와 정치적인 관측은 『로마사론』에 나오는데, 거기에는 찬란한 섬광과 같은 탁견들도 있다. 예컨데 그는 단속적이나마 진보를 계속하는 공화국의 발전법칙을 인정하면서, 국가는 유동적이고 변신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만 갑작스러운 사형선고나 추방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비슷한 이유에 따라, 다시 말해 개인의 폭력과 외국의 간섭("모든 자유의 죽음")을 차단하려면 미움받는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사법상의 고소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피렌체에는 지금까지 그 자리를 대신해 비방만이 있었다. 그는 또 공화국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큰 역할을 하는 부득이하고 때늦은 결단도 빼어나게 기술한다.(153쪽)


 - 야콥 부르크하르트,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 * *


보기 드문 위대함


마키아벨리가 날카로운 관찰가라는 것, 그것은 그의 사무가 기질이나 재능과 떼어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냉소적인 사람이었던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영국의 시인 비평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T.S. 엘리엇(1888∼1965)은 마키아벨리의 진수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견유가(세상을 비꼬고 냉소적으로 보는 것)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마키아벨리에게는 견유주의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생활이나 성격에는 그의 견해의 명석한 거울을 흐리게 할 만한 한 점의 약점이나 결점도 없다. 분명 세세한 점에서는 언어의 의미가 조금 달라지면 의식적인 냉소로 느껴지는 것도 있지만 그의 견해 전체는 그와 같은 감정적인 색채로 더럽혀져 있지 않았다. 마키아벨리 같은 인생관은 순진한 상태라고 표현해야 할 영혼의 상태를 포함하고 있다. 그의 정직성과 일반적으로 인간의 심정이 지니는 허위, 부정직,변절 등과 비교해 보고 그 차이가 막대하다는 것을 느낄 때 비로소 우리는 그의 보기 드문 위대함을 깨닫는 것이다."(《다른 신을 찾아서》) (604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로마사론)』, <마키아벨리의 생애>


 * * *


옛 현인의 오래된 궁정에 들어갑니다


그 편지들 가운데 1513년 12월 10일 것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당시의 생활상을 이보다 더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다.


"요즘은 아침에는 태양과 함께 일어나서 늘 나무를 하는 나의 산으로 가서 그곳에서 그럭저럭 2시간가량을 어제의 일을 정리하거나 나무꾼과 시간을 보냅니다. 숲을 나서면 나는 샘으로 갔다가 전에 장치해 두었던 새 올가미로 갑니다. 반드시 단테나 페트라르카의 시집을, 때로는 티브루스나 오비디우스 그 밖의 시인의 시집에 이르기까지 뭔가를 들고 가서 그들의 연정과 사랑을 읽고, 그리고 나의 경험과 함께 떠올리면서 한동안 즐거운 추억에 잠깁니다. 그런 다음 길가의 주점에 가서 길을 지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그 나라의 진기한 이야기를 듣고, 여러 가지 것들을 알고, 인간의 다양한 취미와 발상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어느덧 식사시간이 됩니다. 나는 가족과 함께 이 누추한 별장과 나의 보잘 것 없는 재산이 제공해 주는 식사를 합니다. 식사가 끝나면 주점으로 돌아가지요. 해가 저물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서재로 들어갑니다. 입구에서 먼지와 진흙이 묻은 평상복을 벗고 예복으로 갈아입어 위엄을 갖춘 다음 옛 현인의 오래된 궁정에 들어갑니다. 그 사람들은 나를 맞아줍니다. 그리고 오직 나만의 것이고 나만을 위한, 나에게 익숙한 음식을 나에게 줍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그들이 취했던 행동의 동기를 묻습니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친절하게 대답해 줍니다. 4시간 동안 나는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도 않고 고통도 잊고, 가난을 두려워않고, 죽음마저도 개의치 않게 되어 이 사람들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고 마는 것입니다."(606∼607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로마사론)』, <마키아벨리의 생애>


 * * *


운명의 신은 여신이기 때문에


마키아벨리의 역사관을 특징짓는 '포르투나' '네체시타' '콰리타 디 템피' '비르투' 등은 반드시 엄밀한 개념구성을 보이고 있지 않다. 이곳저곳의 문장에 삽입되어 있는 것을 정리하면 이렇다. 대체로 '시류'라는 것은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것이므로 대응하는 방식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나설 수밖에 없다. 즉 일반법칙을 세우기가 어렵다. 다만 마키아벨리는 한편으로는 포르투나와 네체시타, 다른 한편으로는 콰리타 디 템피와 비르투가 있어서 그것들이 함수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통찰한 것은 무척 독창적인 생각이다. 독창적이라고는 하지만 현대의 역사철학자가 말하는 그런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것들이다. 만약 마키아벨리가 서재에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한 것이라면 보다 정교하고 치밀한 이론구성과 분석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그럴 짬이 없다. 그의 사색은 항상 현실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이론 따위는 관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다음의 《군주론》25의 맺음말은 그의 역사관이라기보다는 인생관에 가깝다.


"나는 용의주도하기보다는 오히려 과단으로 흐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운명의 신은 여신이기 때문에 그녀를 정복하고자 한다면 때려눕히거나 들이받거나 할 필요가 있는데 운명은 냉정한 방식으로 가는 사람보다 이런 사람들에게 순종하게 되는 것 같다. 요컨대 운명은 여성과 비숫하고 젊은이의 벗이다. 즉 젊은이는 사려는 깊지 않고, 거칠기 짝이 없으며, 지극히 대담하게 여자를 지배하기 때문이다."(644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로마사론)』, <마키아벨리의 사상>


 * * *

그 자신의 인품이 손바닥을 뒤집듯 갑자기 변해 버린 점은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피우스가 전제 권력을 유지하려고 사용한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수단 가운데서도 그 자신의 인품이 손바닥을 뒤집듯 갑자기 변해 버린 점은 도저히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피우스는 교활하게도 자기가 인민 측을 편들고 있는 사람처럼 꾸미고 있었다. 그가 이런 짓을 한 것은 십인회에 재선을 노렸기 때문임이 틀림없다. 그뿐만 아니라 자기를 귀족을 반대하는 측의 우두머리로 추대시키기 위해서도, 또 자기를 뜻대로 지지하는 여당을 만들기 위해서도 그 특유한 수법이 빈틈없이 사용되었다.


여기까지는 아피우스도 잘해 냈으나, 내가 이미 말해 둔 경위로 갑자기 성격을 확 바꾸고, 평민의 벗에서 평민의 적으로, 인간미 넘치는 사람에서 오만한 인물로, 그리고 친밀감 있는 인물에서 손도 댈 수 없는 간사한 인물로 돌변하자, 그 순간에 거짓으로 굳혀진 그의 마음속은 그만 누가 보아도 훤히 내다볼 수 있게 되고 말았다. 잠시 동안이라도 선인으로 통하던 사람이,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의 길로 접어들려고 할 경우에는 조금씩 그 태도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러다가 정세가 유리하다고 짐작이 갈 때는 재빨리 변신해야만 한다. 그러면 본성이 드러나 그 때까지의 인망이 없어져 버리기 전에 새로운 지지자를 얻을 수 있으므로, 본래의 권위를 조금이라고 덜 손상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가면이 벗겨지는 바람에 지지자도 없어지고 파멸의 길을 걷게 되리라.(263쪽)


 - 마키아벨리, 『정략론(로마사론)』,

   제1권 제41장 <겸양에서 오만으로, 동정에서 잔혹으로 갑자기 변하는 것은 생각이 얕고 무익한 짓이다>


 * * *

손바닥을 뒤집듯 그 성격이 바뀌어 버리는 존재


십인회를 둘러싼 이상과 같은 문제를 검토해 보면, 사람이란 제아무리 선량하게 태어나고 제아무리 훌륭한 교육을 받았다 해도, 아주 쉽게 타락해 버리고 또 손바닥을 뒤집듯 그 성격이 바뀌어 버리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은 아피우스가 자신의 신변 호위를 위해 그의 주위에 모은 청년들을 예로 들어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들이 약간의 단물을 빨아먹을 수 있다는 조건만으로 참주 정치를 지지하게 되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판단이 될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십인회의 멤버였던 퀸투스 파비우스도 그 좋은 예일 것이다. 그도 본래는 아주 뛰어난 인물이었는데, 사소한 야심 때문에 분별을 잃은 데다가 아피우스의 악덕까지 물들어서 타고난 미덕도 내동댕이치고 극악무도한 행동을 하게 되어 아피우스와 똑같이 되고 말았다.(263∼264쪽)


 - 마키아벨리, 『정략론(로마사론)』,

   제1권 제42장 <인간이란 얼마나 타락하기 쉬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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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17-02-25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인간미 넘치는 사람에서 오만한 인물로, 그리고 친밀감 있는 인물에서 손도 댈 수 없는 간사한 인물로 돌변하자, 그 순간에 거짓으로 굳혀진 그의 마음속은 그만 누가 보아도 훤히 내다볼 수 있게 되고 말았다. 잠시 동안이라도 선인으로 통하던 사람이,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악의 길로 접어들려고 할 경우에는 조금씩 그 태도를 바꾸어 나가야 한다. 그러다가 정세가 유리하다고 짐작이 갈 때는 재빨리 변신해야만 한다. 그러면 본성이 드러나 그 때까지의 인망이 없어져 버리기 전에 새로운 지지자를 얻을 수 있으므로, 본래의 권위를 조금이라고 덜 손상시킨다. 그렇지 않으면 가면이 벗겨지는 바람에 지지자도 없어지고 파멸의 길을 걷게 되리라.˝(606∼607쪽)

- 마키아벨리, 『군주론/정략론(로마사론)』, <마키아벨리의 생애>

저 또한 저렇게 행동했던 적은 없었는가, 흠칫 놀라게 됩니다. 헌데 진화심리적학적 시각으로 볼 때 모든 인간은 저러한 추궁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진화는 도덕, 윤리, 양심적 측면도 번식과 생존에 이용하고 동시에 부도덕, 비윤리, 비양심, 교활함, 간교함도 번식과 생존에 이용하니까요. 근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두 범주 간의 길항작용 때문에(덕분에) 지금 여기까지 번식하고 생존해왔다고 봅니다. 문제는 우리가 번식과 생존에 불리하더라도 뇌 전두엽의 기능에 매사를 조회해야 된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고 보니 변신과 변절의 치밀한 계산과정도 뇌 전두엽의 기능에 해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역설에 마주치는군요. 정말 딜레마 중의 딜레마 같습니다.

oren 2017-02-25 12:57   좋아요 0 | URL
제가 저 대목을 인용했던 이유는, 이번 국정농단 사태가 밝혀지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보여준 ‘변신 과정‘이 생각나서였답니다. 어느덧 탄핵을 코앞에 두고 있는 지금까지의 과정을 내내 지켜보면서, 어느새 ‘가면‘이 완전히 발가벗겨지고 만 여러 정치인들의 추악한 몰골도 함께 떠올랐고요. 그런데, 그런 변신 또한 개체의 생존이라는 입장에서 본다면 ‘살기 위한 몸부림‘에 다름아니라고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처절하기도 하더군요. 사태가 어쩔 수 없이 파멸로 다가갈 때 온갖 추악한 자구책을 총동원하는 것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겠습니다만, 그게 결국은 자신의 명예만 더 더럽히는 꼴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3 동서문화사 월드북 245
플루타르코스 지음, 박현태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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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정의로움


모든 미덕 가운데에서도 으뜸은 정의로움이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용감한 사람을 존경하고 지혜로운 사람에게 감탄하지만, 정의로운 사람에게는 그것 말고도 사랑과 믿음이 더해진다. 사람들은 뻔뻔한 사람을 두려워하고, 영악한 사람을 믿지 않는다. 용기와 지혜는 타고나는 성품에 속하지만, 정의는 그 사람의 의지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자기 의지로 정의를 선택한 사람은, 부정한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죄악이라 생각하며 혐오하는 법이다.(1403∼1404쪽)


 - <소(小) 카토 편>


 * * *


법을 잘 지켜라


본디 라케다이몬 사람들은 '공포'뿐만 아니라 '죽음'과 '웃음', 그 밖의 다른 감정의 신을 모시는 신전을 두었다. 그들이 '공포'를 숭배하는 것은 그 초자연적인 힘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공포로 법과 질서가 유지된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 책을 보면, 에포로스는 관직에 취임할 때 사람들 앞에서 '모든 시민은 수염을 깎고 법을 잘 지켜라. 그러면 법은 어느 누구에게도 가혹하지 않을 것이다' 선언했다고 한다.(1449쪽)


 - <클레오메네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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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와 불명예를 두려워할 줄 아는 것


옛날 사람들에게 용기란, 단순히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닌, 수치와 불명예를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었던 듯하다. 법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 전쟁에서 가장 용감하게 싸우며, 정당한 비난을 두려워하는 사람일수록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런 속담은 진리라 할 수 있다.


존경에는 언제나 공포가 뒤따른다.


호메로스 시에는, 헬레네가 프리아모스에 대해 노래한 다음 대목이 있다.


사랑하는 아버지시여,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두려워하고 또한 존경할 것입니다.


(1449∼1450쪽)


 - <클레오메네스 편>


 * * *


더 중요한 것


의사가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질병에 대해 연구해야 하듯이, 음악가는 아름다운 화음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 먼저 불협화음에 대해 충분한 연구를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가장 완벽한 화음을 이루는 최고 예술이라 말할 수 있는 절제, 정의, 지혜 등을 분별하고 선택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선과 정의 또는 좋은 수단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악과 불의 그리고 나쁜 수단에 대해서도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까지 한 번도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순수한 고백만을 칭찬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이것은 그저 단순한 진리를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의롭고 명예로우며 유용한 것과 사람들에게 해가 되고 정의롭지 못하며 부끄러운 것을 구별하는 것이다.(1598∼1599쪽)


 - <데메트리우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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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1-17 0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oren님의 오늘 글이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구속수사 논란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기에 맞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

oren 2017-01-17 10:32   좋아요 1 | URL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까마득한 옛날에도 당연히 ‘법대로‘ 처리해야 할 일들인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큼은 ‘법보다 다른 사정들을 먼저 고려해야 한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주장들이 아직까지도 태연하게 쏟아져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문명화된 국가 가운데 어디에서 과연 이런 ‘뇌물죄‘를 ‘다른 사정 때문에‘ 봐줘야 한다고 버젓이 주장할 수 있는지 그게 도리어 궁금할 지경입니다.
 
율리시스 - 제4개역판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어문학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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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매장하는 거다. 우리는 카이사르를 매장하러 왔소. 그의 3월인지 6월의 재앙일(災殃日). 그는 여기에 누가 와 있는지를 알지도 못하고 상관하지도 않지.

 

그런데 저쪽 비옷 입은 홀쭉하게 보이는 녀석은 누구야? 글쎄 누군지 알고 싶군. 글쎄 돈을 몇 푼 주어서라도 그가 누군지 알아보았으면. 꿈에도 결코 생각해 본 일이 없는 녀석이 언제나 불쑥 나타나거든. 인간은 자기의 일생을 내내 혼자 외로이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그렇지, 할 수 있어. 그렇지만 자신이 무덤을 팔수는 있어도 죽은 다음에 그를 묻어 줄 사람은 있어야 할 게 아냐. 우리 모두가 묻어주지. 단지 인간만이 매장하는 거다. 아니야, 개미들도 그래. 누구에게나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생각. 죽은 자를 매장한다. 예컨대 로빈슨 크루소는 인생에 충실했다 지. 글쎄 그런데도 프라이디가 그를 매장했지. 그걸 생각해 보면 모든 금요일(프라이디)은 언제나 목요일을 매장하는 셈이다.

 

 

오, 불쌍한 로빈슨 크루소!

어떻게 그대는 어쩌면 그렇게 할 수 있었나?

 

(90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그런데, 죽음은 너무나 긴 휴식이야. 이젠 아무런 느낌도 없지. 느끼는 것은 단지 한순간에 지나지 않아. 경치게도 불쾌한 순간임에 틀림없어. 처음에는 그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틀림없이 잘못일 거야: 다른 사람일 거야. 맞은편 집을 알아 봐. 가만있자. 난 살고 싶었어. 아직 죽지 않았단 말이야. 그러자 어두컴컴해진 죽음의 방. 빛을 그들은 원한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서 사람들이 중얼거린다. 사제를 불러올까요? 그러자 떠들어대며 우왕좌왕. 한평생 감추었던 정신착란이 온통 쏟아진다. 죽음의 투쟁. 그의 잠이 순조롭지 못하다. 아래쪽 누꺼풀을 눌러 봐요. 코가 불쑥 나오고 턱이 내려앉고 발바닥이 노랗게 되었나 살펴보는 것이다. 운명(殞命)했으니 베개를 빼버리고 마루 위에 반듯이 눕혀요. 죄인의 죽음을 그린 저 그림 속에 악마가 그에게 한 여인을 보여 주고 있다. 그의 셔츠 품속에 그녀를 포옹하고 싶어 애태우고 있는 것이다. <루치아>의 마지막 장면. "나는 그대를 더 이상 볼 수 없나요?" 쿵! 그는 숨이 끊어진다. 마침내 가버렸다. 사람들은 당신에 관해서 조금 이야길 한다: 잊어버린다.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말아요. 당신의 기도 속에 그를 기억해요. 심지어 파넬도. 담쟁이 날은 기억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이어 그들이 뒤따른다: 구멍 속으로 떨어지며. 차례 차례로.

 

(91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27일에 엄친의 무덤에 성묘하러 가야지. 묘지기에게 10실링. 그는 묘에 잡초가 자라지 않도록 해주지. 그 자신도 늙었어. 두 겹으로 몸을 구부리고 가위로 풀을 깎는 것이다. 죽음의 문 가까이. 죽어버린 자. 이승을 떠나버린 자. 마치 그들이 자발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기나 한 것처럼. 떼 밀렸던 거다, 그들 모두. 목숨을 빼앗긴 자. 만일 그들이 과거에 무엇을 하던 사람인지를 스스로 말한다면 한층 재미있을 거야. 모모(某某) 차바퀴 목수올시다. 나는 코크 리놀륨을 주문 받으러 다녔지요. 나는 한 파운드 당 5실링을 지불했어요. 또는 소스 팬을 든 한 여인. 저는 맛있는 아일랜드 스튜를 요리했어요. 시골의 교회묘지를 읊은 송시(頌詩)는 당연히 그런 시(詩)여야 할거야 누구의 시더라 워즈워드였던가 아니면 토머스 캠벨이던가. 영원히 잠들면 신교도들은 시(詩)를 쓰지. 노(老)머렌 박사의 무덤. 위대한 의사(神)가 그를 집으로 불렀던 거다. 그렇지 여기는 죽은 자들을 위한 하느님의 땅이야. 참 좋은 시골의 주거. 새로이 벽토와 페인트칠을 했군. 조용히 담배를 피우며 『교회시보(敎會時報)』를 읽을 수 있는 이상적인 장소. 혼인 광고를 사람들은 결코 미화하려고 애쓰지 않아. 손잡이 위에 걸려 있는 녹슨 금속 꽃다발, 청동 빛 금박 화환. 돈으로 따지면 그것이 더 가치가 있지. 하지만, 생화(生花)가 한층 더 시적이야. 전자가 오히려 싫증이 난단 말이야, 결코 시들지 않으니. 아무 표정도 없고. 불사(不死)의 것들.


(93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 * *



여기는 누가 누워 있지? 로버트 에머리의 유해가 놓여 있다. 로버트 에메트는 횃불에 의해 여기 매장되었지, 그렇잖아? 저놈의 생쥐가 빙빙 돌고 있군.

 

방금 꽁지가 사라졌다.

 

저따위 놈 같으면 시체 하나쯤은 얼른 해치울 거야. 그것이 누구든 간에 뼈를 깨끗이 추린단 말이야. 그들에게는 보통 먹는 식사지. 시체는 상한 고기야. 그렇지 그런데 치즈란 건 뭐야? 밀크의 시체지. 나는 저 『중국 항해기』에서 중국 사람들이 백인(白人)한테서 시체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걸 읽었어. 화장(火葬)이 보다 나아. 사제들은 그걸 한사코 반대하지. 다른 화장회사의 하청을 맡아 일하는 거다. 도매 화장회사와 네덜란드식 가마(釜) 상인들. 페스트가 만연할 때. 페스트를 소독해 버리는 생석회 열갱(熱坑). 무통치사실(無痛致死室). 재(灰)에는 재. 아니면 수장(水葬)을. 그 배화교(拜火敎)의 침묵의 탑(塔)은 어디에 있는고? 새들에게 먹힌 채. 흙, 불, 물. 익사가 최고 안사(安死)라고들 하지. 눈 깜짝할 사이에 전(全)생애가 떠오르는 거다. 그러나 생명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지. 그러나 공중에다 매장을 할 순 없잖아. 비행기로부터. 새로운 시체가 떨어질 때마다 뉴스가 사방에 퍼질지 몰라. 지하 통신. 우리는 그걸 두더지들한테서 배웠지. 놀랄 것도 없어. 저놈들에게는 규칙적인 맛있는 식사야. 사람이 채 북기도 전에 파리가 먼저 찾아오지. 디그넘을 냄새 맡는다. 저놈들은 시체 냄새를 조금도 상관하지 않아. 소금기 하얀 후물거리는 연한 시체 덩어리: 하얀 생(生) 순무 같은 냄새, 맛.


(94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4개역판), <제6장. 장례 행렬과 묘지(하데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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