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도 사랑이 있었는가
하면 근거로 대는 게 시경이지
사랑노래 모음집이 경이라니
놀랄 노릇이어서 그게
사랑노래는 맞는가 싶기도 하지
가장 유명한 관저는 첫번째 사랑노래
꾹꾸르 물수리가 관저지
꾹꾸르 물수리는 모래톱에 다정하고
고운 아가씨는 군자의 배필이네
고운 아가씨는 요조숙녀이니
우리도 아는 아가씨
요조는 외모가 예쁜 것을
숙은 마음이 고운 것을 가리킨다 하니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몸도 마음도 착한 아가씨
군자의 배필은 군자호구이니
이 호구가 그 호구가 아니어도
요즘은 같은 호구 신세다
요조숙녀에게 군자는 호구라
아니나 다를까
요조숙녀를 자나깨나 그리는
애타는 마음이 이어진다네
(군자의 마음이 그러한가)
남녀상열지사를 노래했다고
보는 이도 있으나
상사병을 그렸다고들 보지
공자는 즐거우나
방탕함에는 이르지 않았다고 했네
애이불비
슬프나 마음을 상함에 이르지 않는다
그게 관저라네
마음을 노래하되 마음을
다스리기에 시경에 들어 있는지도
그런 군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나 지금이나 물수리는
꾹꾸르 꾹꾸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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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고타 크리스토프의 문맹을 사러
동네서점에 갔다가 헛걸음
일본추리소설이 국외소설 전체에 맞먹는다는 걸
알았네 문맹이 낄 자리가 없다는 걸
대신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손에 들었네 다시 나왔으니 다시
보낸 편지인가 시를 쓰던 젊은 시절에
손에 들었을 텐데 수신자는 내가 아니었지
친애하는 카푸스 씨
에게 릴케가 보낸 답장이지
그게 시작이지
그걸 내가 훔쳐 읽는 건가
문맹을 읽으려고 했었다고
핑계는 마련해 두었어
인생이 당신을 잊지는 않는다는 걸
잊지 말라고 릴케는 쓰네
인생이 당신을 손안에 떠받치고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나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가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릴케는 젊은 시인에게 쓰네
그런데
친애하는 카푸스 씨
에게 20년에 걸쳐 보낸 편지의
마지막 편지를 쓸 때도 나보다 젊다니!
릴케여 누구의 시인도 아닌 시인이여
내게는 젊지 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필요하다오
그런데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의
계산을 치르고 영수증도 이미 버렸지
하는 수 없이
나는 20년 젊은 척하기로 한다
세월의 문맹이 되기로 한다
편지의 수신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므로
누구의 시인도 아닌 시인의 수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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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5-13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내게 온 편지가 아님에도)수신자인척?하며
책을 읽을때마다 생각날것 같은 시~
지금은 D인척하며 D에게 보낸 편지를 읽습니다 ㅎㅎ

로쟈 2018-05-13 20:32   좋아요 0 | URL
본의 아니게 훔쳐보게 되네요.~

모맘 2018-05-16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맹,담담한 산문시를 읽은 느낌입니다 참 아름다운 사람이 많습니다^^

모맘 2018-05-16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릴케 도착~새책 표지가 넘 예뻐서 가진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빛의 눈이 쏙쏙~

로쟈 2018-05-20 14:07   좋아요 0 | URL
^^
 

영국에는 외로움 장관이 있다는군
외로움이 국가적 문제라서
외로움이 장관의 담담업무
장관도 남다른 경력자일까
외로움에 관해서라면 전문가이고
적임자일까 외로움이라면 맡겨도 좋을
맡겨봐도 좋을
적임자라면 저 굳건한 나무들은 어떤가
영국 왕실의 근위대처럼
한치의 요동도 없이 엄살도 없이
제 자리를 지키며 심지어
교대도 하지 읺고 묵묵히
외로움을 견디지
나는 저 나무들이 한눈파는 걸
보지 못했고 잡담하는 걸
보지 못했고 한탄하는 걸
보지 못했어 술 마시는 걸
보지 못했어 담배도
안 핀다고 들었어
(폭풍에 뿌리째 뽑힌 적은 있어)
아 청문회를 통과하기 어렵겠군
과묵해서 게다가
장관의 임무는 견디는 게 아니지
줄이는 거지 경감하고 해소하는 거지
장관은 외로운 사람들을 만나야 할 테지
손을 잡아주기도 하나
사진도 찍어야 할 테고
외로운 사람이 아니라 외로움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
아 결정적으로 영국인!
영국 장관이니 말이야
내가 왜 영국 장관의 경력을
자격을 문제삼는 거야
그건 영국인들이 알아서 하는 거라구
근데 너 지금 혼자서
대화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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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5-13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있는지 검색.
외로움이란 녀석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저 장관의 외로움이 걱정되는~
외로움, 만만하지 않은 강적이기에.

로쟈 2018-05-13 17:32   좋아요 0 | URL
인증샷까지 올렸는데.~
 

무된장국에 밥을 말아먹으며
배춧국 생각이 절실하다 무된장국은
정직하여 오직 무
만 들어 있다 정직은
힘에서 나오는 것
계속 숟가락질해도 무는
줄지 않는다 배추였다면!
(이 세상밖이라면 어디라도?)
그래도 먹을 수밖에 없네 이미
밥을 말아서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는데
더 자주 먹던 배춧국 배추된장국
배추를 사랑하고 싶어지네
무밭에서의 풋풋한 사랑도 있었건만
이젠 무된장국을 타박하네
무도 시절이 있는 법
그런 생각으로 숟가락을 뜨네
이제 겨우 다 먹었네
그래도 한솥이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생수로 입가심하며 인생은
살 만하다고 느끼네
어디로든 나가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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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감으면 안 보이는 나라
우주에 암흑물질이 있는 것처럼
눈 감으면 보인다 안 보이는 나라
안 보이는 나라에 비가 내리는 소리
저건 보이지 않는 비
보이지 않는 나뭇잎을 건드리는 소리
소리는 보이는 나라와 안 보이는
나라를 바삐 오가고
나는 빗방울의 무게를 가늠해본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라고
안 보이는 나라는 떠벌린다
보이지 않을 뿐이라고 이민국은 말한다
빛을 아낄 뿐이라고
태양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안 보이는 나라에 누가 사는가
모두가!
하지만 그건 안 보이는 나라의 일부
안 보이는 나라의 모델하우스
안 보이는 나라는 모두의 베드타운일 뿐
물밑거래는 알지 못한다
매년 일부가 안 보이는 나라로 이민을 떠난다
일부는 추방당한다
앉은 자리에서 누운 자리에서
이민국의 면접을 치른다
안 보이는 나라의 관리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안 보이는 나라는
보이지 않게 모든 일을 처리한다
보이지 않는 서류가 차곡차곡 쌓인다
안 보이는 나라는 시력만 세금으로 챙긴다
안 보이는 나라는 정연하다
안 보이는 나라는 평등하다
안 보이는 나라는 대체로 무난하다
눈 뜨면 아직은 보이는 나라
아침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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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바다 2018-05-13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보이는 나라...
언제쯤 볼 수는 있을까요?

로쟈 2018-05-13 11:34   좋아요 0 | URL
눈만 감으면 맛보기로는 볼 수 있죠.^^

로제트50 2018-05-13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좋네요~~^^

로쟈 2018-05-13 14:35   좋아요 0 | URL
네.~

모맘 2018-05-13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곡의 연옥에서 천국을 건너가는 강앞인데 자꾸만 굵은 빗소리가
끌어당겼습니다 좀더 있어야되나?
그래도 지옥은 아니지 않는가!

로쟈 2018-05-13 17:33   좋아요 0 | URL
제 경험으로는 천국도 아니던데요. 단테의 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