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지난 1995년 성탄절에 세상을 뜬 프랑스 철학자 엠마누엘(에마뉘엘) 레비나스(1906-1995)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것만으로도 그에 관하여 몇 마디 해야 할 의무감을 갖게 되지만, 며칠전 레비나스의 저작들에 관한 간단한 리뷰를 청탁받기도 한지라 두주 정도 레비나스에 관한 이야기들을 간헐적으로 늘어놓을 참이다. 이건 그 첫번째 이야기이다.

먼저, 지난해 말에 출간된 강영안 교수의 <타인의 얼굴 - 레비나스의 철학>(문학과지성사, 2005)은 레비나스로 가는 여정에 있어서 여러 모로 유익한 길잡이이다. 국내 레비나스 수용에 있어서 '중간결산'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저작인데, 모아놓은 논문들의 절반 정도는 학술지나 문예지 등에 발표된 형태로 미리 읽었기에 나로서(그리고 아마도 일반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운 건 제1장 '레비나스, 그는 누구인가' 같은 총론격의 글이다. '네 문화의 철학자'란 이 글 제목의 인용문구도 거기서 얻어온 것이다. 그에 대해 몇 마디 하기 전에 먼저 간단한 레비나스 수용사. 이하의 인용쪽수는 모두 <타인의 얼굴>의 것이다.

저자가 서론에서 밝히고 있지만 국내에 레비나스를 최초로 소개한 이는 '레비나스의 철학 - '다른 이'의 얼굴'(<문학과지성> 1974년 봄호)이란 글을 발표했던 손봉호 교수이다. 이 글은 <현대정신과 기독교적 지성>(성광문화사, 1978)에 재수록됐다고 하는데, 나는 레비나스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던 지난 94년쯤에 찾아서 읽었더랬다. 손봉호 교수의 바톤을 이어받은 이는 제자이기도 한 강영안 교수이다. 1989년경부터 레비나스 철학에 대한 강연과 논문 등으로 가장 왕성하게 레비나스 수용에 앞장 선 공로가 있다.

레비나스 저작 중 최초의 국역본인 <시간과 타자>(문예출판사, 1996)이 또한 강영안 교수의 손을 거쳤다. 그리고는 그의 제자인 서동욱 교수가 그 바톤을 또 이어받게 되는데, <존재에서 존재자로>(민음사, 2003)를 번역출간했을 뿐더러 그의 <차이와 타자>(문학과지성사, 2000)나 <일상의 모험>(민음사, 2005) 같은 저작은 레비나스적 영감에 많은 부분 빚지고 있기도 하다.

세 사람은 모두 (후설 아카이브가 있는) 벨기에의 루뱅대학에서 수학한 경력을 갖고 있기도 해서(김형효 교수도 루뱅대학교에서 학위를 마쳤다) 얼핏 보아도 끈끈한 학연을 이어가고 있다(또한 모두 칸트 전공자/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만하면 '루뱅 마피아'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 이 '루뱅 마피아'가 국내 레비나스 연구를 주도하게 된 건 레비나스 연구가 "네덜란드 언어권에서 가장 먼저 시작된 다음, 영어권과 독어권에 이어 마침내 프랑스에서 뒤늦게 진행된다"(13쪽)는 사정과 연관이 있다.

네덜란드와 가까운 벨기에의 루뱅대학에도 일찍부터 레비나스 연구가 진행되었던 것인지라(레비나스는 생애의 50년간을 무명의 철학자로 지냈다) 루뱅 유학파들이 가장 먼저 그 수혜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최근에는 국내 대학에서도 레비나스에 관한 박사학위 논문이 나오고 있고, 젊은 연구자들의 논문들도 '상대적으로' 넘쳐나고 있으므로 한국의 '레비나스 텃밭'은 앞으로 풍성한 수확을 기대해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그 기대는 아직까지는 기대에 머문다. 일단은 기본이 되어야 할 레비나스 저작의 국내 번역본이 지극히 소략하기 때문이다(대담집을 포함해서 고작 4종이다). 게다가 그의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꼽히면서 전공 논문들에서는 수없이 인용되는 <전체성과 무한>(1961)과 <존재와 다르게 또는 존재 사건 저편에>(1974), 두 권의 철학적 주저가 아직 번역/소개되지 않았다. 그러니 일반 독자들에게 레비나스는 아직 '풍문'에 불과하며 '레비나스 텃밭'은 '그들만의 텃밭'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알렝 핑켈크로트의 <사랑의 지혜>(동문선, 1998) 같은 일급의 에세이를 좋은 번역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 적어도 일반 독자들이 '철학'에 대한 부담감을 다소간 지우면서 '레비나스의 지혜'를 맛보게 해주는 데 아직까지는 가장 좋은 책이 아닌가 싶다(물론 이런 책은 만만한 '에세이'인지라 <타인의 얼굴>의 부록으로 실린 방대한 2차문헌 서지에는 빠져 있다). 더불어 꼽자면, <현대 사상가들과의 대화>(한나래, 1998)에 실린 리처드 커니와의 대담.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서 왜 '네 문화의 철학자'인가? 그의 태생에 대해서는 이미 적었지만, 그가 타계하고 나자 프랑스의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그를 '네 문화의 철학자'라 일컬었다는데, "리투아니아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히브리어 성경과 러시아 문학을 읽으면서 자랐고 독일철학자 후설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에 정통하였으며 1923년 스트라스부르 대학 철학과에 입학해서 1930년 프랑스에 귀화한 뒤 줄곧 프랑스 철학과 함께 숨쉬고 생각해" 온 이가 바로 레비나스였기에, 그리고 "히브리어러시아어, 독일어프랑스어로 책을 읽고 그 문화와 함께 숨을 쉬면서 작업한 철학자였기에" '네 문화의 철학자'라고 부른 것이고 그건 설득력 있는 호명이다. 레비나스의 전체상을 압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그러니까, 독일과 프랑스 철학의 테두리 안에서만 레비나스를 독해하는 것은 그를 '두 문화의 철학자'로 축소시키는 것이다).

레비나스는 누구인가? 1906년 1월 12일 리투아니아의 카우나스(코우노)에서 태어나서 1995년 12월 25일 새벽에 프랑스 파리에서 세상을 떠난 프랑스 철학자이다(폴란드, 라트비아, 벨로루시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리투아니아는 발틱 3국 중 하나로 수도는 빌니우스이고, 카우나스는 두번째로 큰 도시라 한다). 리투아니아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기 이전이라 그의 모국어는 러시아어였으며, 여섯 살때부터 히브리어를 교습받고 그가 처음으로 읽은 책은 히브리어 성경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히브리어 성경(과 탈무드), 그리고 러시아문학이 그의 유년기를 채운 수프였던 것.

 

 

 

 

"자신의 철학적 관심이 히브리어 성경과 톨스토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스토예프스키와 푸슈킨을 읽으면서 형성되었다고 말하는 데서 보듯이 성경과 더불어 문학작품도 (그의)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준 바탕이 된다. 만일 철학이 '인간적인 것의 의미' 또는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라면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 셰익스피어와 같은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일은 칸트와 플라톤을 공부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준비가 될 수 있다고 레비나스는 말한다."(20쪽, 이 인용문은 <윤리와 무한>(다산글방, 2000)에서 재인용된 것이다) '철학은 모두 셰익스피어에 관한 명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도 레비나스의 것이다.

그러니까 레비나스를 이해하기 위해서 칸트나 하이데거에 대한 독해 못지 않게 필요하고 또 중요한 것은 도스토예프스키와 셰익스피어에 대한 독해이다(최근에 '레비나스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다룬 논문들이 영어권에서는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 레비나스의 철학을 신학적으로 접근하려는 몇몇 시도에도 불구하고 레비나스가 남긴 상당한 분량의 '탈무드 강의'에 근거하여 그의 철학을 이해해보려는 시도는 아직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도스토예프스키 등 러시아문학과의 연관성도 전혀 조명되고 있지 않다(레비나스는 특히 자신이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진 빚을 인정하고 있다). 이런 것이 레비나스 '중간결산'이다. '네 문화의 철학자'로서 그의 크기가 제대로 밝혀지고 그의 철학이 풍족하게 음미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많은 과제들을 남겨놓고 있는 셈...

06. 02. 10 

 

 

 

 

P.S. 자크 데리다와 레비나스의 철학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이미 데리다 생전부터 충분히 주목되어온 바다. 레비나스 연구사에 대해 다루면서 강영안 교수가 던지는 코멘트. "프랑스어권에서는 가장 고전적인 연구로는 역시 데리다를 들 수 있다. <전체성과 무한>에 대해 데리다는 '폭력과 형이상학'이라는 장문의 논문을 써 <형이상학과 도덕평론>(저널)에 두 차례 나누어 싣는다. 이 글은 1967년 데리다의 <글쓰기와 차연>에 약간 개정된 형태로 다시 실린다. 후설과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사유를 극복하려는 레비나스의 시도에 대해 철학을 하는 한 결코 존재론적 사유를 벗어날 수 없음을 데리다는 지적한다."(301쪽) '글쓰기와 차연'은 '글쓰기와 차이'의 오기이다. 참고로, 휴 실버만의 <데리다와 해체주의>(현대미학사, 1998)에서도 한 꼭지를 이 '폭력'의 문제를 둘러싼 데리다와 레비나스의 '싸움'에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데리다는 말년에 갈수록 초기 비판보다 훨씬 더 레비나스 철학에 가까이 다가간다. 레비나스 장례식 때 데리다가 했던 조사와 1주기 추모 강연을 담고 있는 <에마뉘엘 레비나스여 안녕>을 보면 데리다가 얼마나 가까이 레비나스에게 다가섰는지 드러난다.(...) 데리다의 후기 철학은 전적으로 레비나스의 영향 아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환대에 관하여>(1997)는 레비나스와 클로소프스키의 환대 개념을 데리다가 자기 식으로 수용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법의 힘>(1994)에서는 타인에 대한 무조건적 환대라는 레비나스적 '정의'를 세속적인 '법'에 대립시키고 있다."(302쪽)

보다 자세한 논증이 필요한 주장이긴 하지만, 여하튼 데리다를 읽는 데에도 레비나스는 필수적이다. 그리고 거꾸로 레비나스를 읽는 데에도 데리다의 <레비나스여 안녕>은 기꺼이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이 또한 신속히 번역되기를 기대한다(그러니 아직도 구만리이다. 우리는 레비나스에게 '아듀'를 건네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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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shot 2006-02-10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되는군요...

로쟈 2006-02-10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많은 과제들을 남겨놓고 있는 글입니다...

비로그인 2006-02-1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사진을 보니 지젝이 화장실에서 바지를 입고 똥을 싸네요. 대략 난감.

yoonta 2006-02-11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쓰기와 차이에서의 차이를 차연의 오기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듯..데리다는 차이 la diffe'rence를 차이/차연 la diffe'rance로 표기함으로써 음성중심주의적 동일성이 해체되는 효과를 표현하기위해 저런 신조어를 만들었죠. 소리로는 구분되지는 않지만 문자로는 구분되는 문자의 효과를 보여주기위해서인걸로 알고있습니다. 이것의 한글표기를 차이로 할것이냐 차연으로 할것이냐는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요.. 차이로 해야된다는 사람들은 음성적으로는 차이와 차연이 구분이 없다는 점에 착안하는 것이고 차연으로 하는 사람들은 철자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으로 압니다...때문에 어느쪽이 옳은 표기냐라는 문제라기보다는 어디에 강조를 두느냐는 문제라고 봅니다..


로쟈 2006-02-12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알기에 책의 원제가 'L'ecriture et la difference'입니다. 'la diffe'rance'가 아니므로 '차연'이라 옮겨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yoonta 2006-02-12 2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고보니 제가 님 글을 약간 잘못봤네요..
저는 동문선에서 나온 번역본의 제목<글쓰기와 차이>의 제목해석을 '오기'라고 말씀하신것으로 봤는데 그게 아니네요..

님 글을 다시 읽어보니..강영안씨의 저서(301쪽)을 인용하면서..그 글속의 오기를 지적하시는 거군요..^^


로쟈 2006-02-12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데리다의 책명을 <글쓰기와 차연>으로 표기했는데, 그게 오기라는 얘기였습니다.

yoonta 2006-02-12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지금 다시 봤어요..지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