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듀이의 프래그머티즘과 철학의 재구성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키워드>(민음사, 2010)와 같이 소개해놓고 역시나 손에 들지 못하고 있는 책은 존 듀이의 <철학의 재구성>(아카넷, 2010)이다. 이제보니 책장 1단에 나란히 꽂혀 있다. 교수신문에 역자 이유선 교수의 존 듀이 소개기사가 실렸기에 옮겨놓는다. 어지간한 '미국식'은 다 수입하고 또 숭배하면서 "철학은 우리가 당면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가 돼야 한다"는 듀이의 미국식 철학은 왜 방기하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교수신문(10. 10. 18) 존 듀이, 프래그머티즘을 미국 민주주의의 실천적 도구로 삼다  

“지나친 요구가 아니라면, 제 논문이 쓸모가 있는지에 대한 편집장님의 의견을 알고 싶습니다. 제 논문이 과연 이런 종류의 주제에 제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보여줄 만한 것인지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퍼스와 제임스 등이 ‘형이상학 클럽’이라는 독서 모임에서 시작한 새로운 철학적 사고방식으로서의 프래그머티즘은 듀이라는 뛰어난 사상가를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도 명실상부한 미국철학으로 자리 잡지 못했을 것이다. 퍼스와 제임스가 본질주의적인 형이상학을 비판하면서 ‘프래그머티즘의 격률’을 의미론적 기준이나 인식론적인 문제를 해결할 도구로 활용했다면 듀이는 그것을 사회·문화·정치 영역의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획기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듀이는 프래그머티즘을 미국의 민주주의를 위한 실천적 도구로 삼고자 했으며, 실제로 다양한 실천과 실험에 나서기도 했다.

듀이는 1894년 시카고대의 철학, 심리학, 교육학 과정을 합친 학부장으로 취임하면서 대학에 ‘실험학교’를 설립해서 자신의 교육철학을 실천했으며, 1904년에는 컬럼비아대 교수로 자리를 옮겨 활동하다가 1930년 71세의 나이로 교수직에서 은퇴했다. 듀이는 1919년부터 1921년까지 일본, 중국 등지를 돌며 강연을 하기도 했다.

또한 듀이는 미국의 ‘교원조합’과 ‘미국대학교수협의회’를 조직하기도 하고, 교육정책에 대한 자문을 위해 1928년 소련을 방문하고 사회주의에 대한 인상기를 쓰기도 했다. 특히 듀이는 스탈린 정권을 피해 망명한 트로츠키가 도피생활을 하다가 암살당한 후, 1937년 멕시코에서 열린 조사위원회의 의장을 맡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당시 듀이를 수행한 사람은 리처드 로티의 아버지였다. ‘네오프래그머티즘’이라는 이름으로 듀이의 철학을 복권시킨 리처드 로티는 듀이의 철학을 미국 민주주의 프로젝트의 완성을 위한 희망의 철학이라고 규정한다.  

 

듀이는 앞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민주주의 사회라는 목표는 현재의 사회를 재단하는 고정된 기준이 아니라 우리의 실천을 조직하는 수단이라고 보았다. 우리의 실천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는 바뀌게 될 것이며, 무엇이 과연 바람직한 사회인가에 대한 전망도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이렇게 우리의 목표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의 실천과 유기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더 나은 사회의 모습을 끊임없이 상상해야 할 것이다. 미국을 상상을 통해서 만들어가는 한 편의 시로서 보고자 한 듀이의 관점에서는 상상력이 풍부한 창조적 지성이 살아 숨 쉴 공간이 우선적으로 확보돼야 한다.

듀이에게 있어서 자연과 인간, 수단과 목표, 경험과 도덕적 삶은 서로 동떨어져 있거나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규율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론적이며 유기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 이런 그의 관점은 진리를 위한 진리를 부정하는 프래그머티즘의 관점, 인간적인 것을 초월하는 모든 가치를 부정하는 낭만주의적이며 세속주의적인 관점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고 정당화될 수 있다.

철학이 천상의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어서는 안 되며 인간의 삶을 개선시키고, 인간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돼야 한다는 것이 듀이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철학이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창조적인 지성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내야 하고, 개성을 갖춘 개인들의 비판적 사고를 길러낼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는 동경제국대학의 강연을 묶어 『철학의 재구성』이라는 책을 펴내면서 철학은 우리가 당면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런 요구는 지성인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이유선 서울대 기초교양교육원·철학)  

10. 10. 21.  

P.S. 듀이와 직접 관련은 없지만, 이번주 관심도서는 미국의 '생물철학자' 마이클 루스의 <진화의 탄생>(바다출판사, 2010)이다(진화론 관련서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아마도 작년에 기획된 책들인가 보다). 원제는 '다윈 혁명'. 루스의 책은 <다윈주의자가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청년정신, 2002) 등이 더 소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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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10-21 22:28   좋아요 0 | URL
프랑스 사태에 대하여: 저는 과격하고 파괴적인 것은 무서워서 못하는 사람인데요. '프랑스 혁명'이 생각날 정도입니다. 그 현상을 변증법(헤겔인가요?)의 기본법칙 중 '양질변화의 법칙'을 들어 설명하고 싶어요. 물(문제의 법안)이 끓게 만들려면 40도, 50도 가지고는 안되죠. 100도까지 가야 형질변화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보는 것 같은 '정년연장'에는 저도 반대하며, 저는 적절한 표현을 하지 못함이 답답합니다.

로쟈 2010-10-22 08:35   좋아요 0 | URL
프랑스는 시위도 자기들의 역사적, 문화적 전통이 있는 거니까 막바로 비교는 안되겠죠. 혁명이란 전통의 '힘'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드팀전 2010-10-22 09:35   좋아요 0 | URL
뭐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물이 100도에서 끓는 것은 1기압이라는 보편적이라고 알려진 그러면서도 특정한 조건하에서 입니다. 기압이 낮아지면 물의 비등점은 함께 낮아집니다. 80도 정도에서도 끓게 됩니다. 기압이 높아지면 100도가 되어도 안끓지요.

레닌이 러시아혁명에 앞서 부르주아 혁명이 없는 러시아에서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은 요원하다는 기계론적인 사적유물론에 단절을 선언하고 사건이라고 할만한 결단을 통해 돌파한 것은 이 개념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요...당시 러시아사회의 모순과 민중의 응축된 힘이라는 기압조건을 읽었기때문에..

지젝과 화학의 결합이겠군요.^^


비로그인 2010-10-22 12:03   좋아요 0 | URL
드팀전님! 지젝과 화학의 결합 좋습니다! 우리는 통섭하며 기압을 제대로 읽을 줄 아는 역사유물론적 누군가가 필요할 것 같군요! ^^

빵가게재습격 2010-10-22 21:24   좋아요 0 | URL
'어지간한 '미국식'은 다 수입하고 또 숭배하면서 "철학은 우리가 당면한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구가 돼야 한다"는 듀이의 미국식 철학은 왜 방기하는지'에 추천 누르고 갑니다. 농담/진담/불만만 해서 말하자면 미국유학은 한국사회에서 상류층/하류층을 구별짓는 '필수코스'이어서가 아닐까요...

로쟈 2010-10-26 08:28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냥 그렇게들만 얘기하면 좋겠어요. 둘러대지 말고...

루쉰P 2010-10-23 10:59   좋아요 0 | URL
미국의 4대 정신적 보배라고 한다면 듀이의 교육 철학, 에머슨의 문학, 마틴 루터 킹의 인권 투쟁, 재즈라고 읽은 기억이 나는데요. 듀이의 철학을 잘 알고 싶은데 저런 책이 나오니 참으로 좋네요.^^ 여전히 로쟈님은 책을 많이 읽으시네요~~

로쟈 2010-10-26 08:27   좋아요 0 | URL
책에 대한 정보를 많이 읽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