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얘기가 나온 김에 오래전에 쓴 자작시를 한 편 옮겨놓는다. 공장에 대한 기억은 오지 않을 미래처럼 아득하고 아련했다. 꽃나무 공장들, 그런 얘기를 써보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멀리 공장들이 보인다 

꽃나무에 꽃이 핀다
동정 없는 세상에 굴뚝같은 마음으로 꽃이 핀다 

공장들, 멀리 공장들이 보인다 그것들은 단단한 벽돌로 세워졌다
낮에도 밤에도 공장으로 가는 길은 복잡하다 공장으로 가는 길은 막다른  
골목이다 비둘기들은 한쪽 눈을 가리고 공장으로 간다
한때는 나도 공장에 가고 싶었다 

꽃잎이 눈처럼 쌓인다 폐차장에 버려지는 낡은 타이어처럼
꽃잎이 눈처럼 쌓인다 주인 없는 사진 속 시간의 먼지처럼

공장들, 멀리 공장들이 보인다 연기에 가려 희끄무레하다
아버지는 내게 기름때 묻은 행복을 가르쳤다 너는 물위에 뜬 기름이다 너는  
이 세상 아름다운 빛이다 나는 구역질이 났다
그후 간간이 내겐 희끄무레한 일들이 일어났다

공장들, 멀리 공장들이 보인다 어렴풋이 공장들만 보인다
아름드리 벚꽃나무 아래에서 네모 반듯하게 나는 반생을 살았다
이젠 고백한다 곧게 뻗은 전깃줄만 보면 나는 자꾸 매달리고 싶어진다
그때마다 감정의 소켓에서 전구를 갈아끼운다

한때는 나도 공장에 가고 싶었다……

꽃나무에 꽃이 핀다 굴뚝같은 마음으로 꽃이 핀다
낮에도 밤에도 공장으로 가는 길은 복잡하다 공장으로 가는 마음은   
막다른 마음이다 비둘기들은 오늘도 절뚝거리며 공장으로 간다  



10. 0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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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30 0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30 0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지 2010-04-30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비바람 지나가는 봄날밤, 비장하고도 비장한 시로군요...
로쟈님의 서재에서 많은 도움 받으면서, 새롭게 정신의 긴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무겁고 단조로운 북소리에 맞춰 꽃들이 굴뚝들로 세워지는 밤의 시대...


로쟈 2010-04-30 08:19   좋아요 0 | URL
너무 비장하게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비온새벽 2010-04-30 0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래 사진의 공장(?)은 어디있는건가요?

로쟈 2010-04-30 08:17   좋아요 0 | URL
Abandoned Mill, Ripley, Michigan 1997, photo by Bill Schwab. 입니다.

펠릭스 2010-05-01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다른 마음','절뚝거리며','비둘기'->'공장'은 대량생산(공급),속도, 닫힌 공간,,,,낮은 산에 올라보면 강줄기가 구분되지 않습니다. 강둑 주위 논에 비닐하우스(식물공장,도시인에게 공급)가 많아 들판이 물에 잠긴듯 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전자제품 생산라인을 견학적이 있었는데, 쉴틈이 없었습니다. 소음하며 일정한 작업시간 등 개인의 생각은 없는듯 했습니다. 노동운동의 필요성을 느꼈지요. 대량생산용 공장이 없던 시대의 지식인들이 조금은 이해되던데요. 시어중에 '막다른 마음'이 제게 들어옵니다.

로쟈 2010-05-01 10:07   좋아요 0 | URL
생산(production)공장과 생식(reproduction)공장을 둘다 암시하기 위해서 '꽃나무'와 '공장'을 병치시켰습니다. '막다른 마음'은 공통적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