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의 <트랜스크리틱>을 참조할 필요가 있어서 들춰보다가 관련기사를 검색해봤다. 두달 전 기사 가운데 흥미를 끄는 것이 있어서 스크랩해놓는다. 가라타니가 인용하고 있는 저작들이 대부분 일역본이며, 이것은 자국 번역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의 표현이라는 지적이다. 그의 책을 즐겨 읽는 독자에겐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지만, 우리 학계/비평계의 현실과는 사뭇 거리가 있는 일이기도 해서 음미해볼 여지를 남긴다.  

조선일보(09. 06. 01) [일사일언] 번역에 대한 자신감 

한국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일본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은 매우 익숙한 이름이다. 3~4년 전 '근대문학은 끝났다'라는, 듣는 이에 따라서는 다소 황망한 선언을 앞세워 한국에 상륙한 가라타니는 문단에 그야말로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다. 일부는 그를 따라 오늘의 한국문학에 무차별한 사망 선고를 내렸고, 또 다른 이는 문학에 대한 그의 이해 폭이 협소하다면서 반감을 피력하였다. 가라타니에 대한 한때의 뜨거운 열기는 이제 어느 정도 가셨지만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언급이 간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톺아보면, 최소한 그가 일본이라는 국경을 넘어 세계적 지식인으로 발돋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얼마 전 그를 세계적인 지식인으로 알리는 데 공헌한 주저 《트랜스크리틱》을 다시 읽다가 새삼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는 칸트와 마르크스 등 서양 철학자들을 활용하는 대목에서 버젓이 일본어 번역판을 인용하고 있음을 각주로 알렸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원어(原語)에 대한 강박은 일반의 상식을 초월한다. 그래서 실제로는 번역서에 의존하여 글을 읽는데도, 특정 대목을 자신의 글에 인용할 때는 가능한 한 원서의 내용을 참조했다는 사실을 알리려 애쓰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라타니는 어떻게 해서 이러한 강박으로부터 벗어난 것일까. 무엇보다도 자국어에 대한 애정과 메이지(明治) 시대부터 본격화된 일본의 150여년 번역사에 대한 깊은 자신감 때문일 것이다. 가라타니에 호의적이지 않은 나 자신도, 자국어에 대한 그의 저 도저한 자부심 앞에서는 난연(赧然)해질 수밖에 없다.(강동호_문학평론가) 

09. 08. 08.   

P.S.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런 자신감은 우리의 현실과 너무 거리가 멀다. 당장 <트랜스크리틱>(힌길사, 2005)만 하더라도 이런저런 번역상의 오류를 적잖게 포함하고 있다. 예전에 '자세히 읽기'를 시도하다가 그만둔 적이 있는데(밥벌이가 아니잖은가!) 그때 마저 지적하지 못한 대목도 다시 보니 아직 많다. 가라타니의 대표적인 저작인 만큼 다시 손을 보아 개정판이 나왔으면 좋겠다(현재 품절상태다).  

개인적으론 지젝의 <시차적 관점>과 함께 필독해볼 만한 '우리시대의 고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최근엔 한 설문에 추천도 했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젊은 대학(원)생이라면 이 두 권을 독파함으로써 사고의 높이를 두 단계 이상 높여놓을 수 있을 것이다. 도전해보기를 권장해마지 않는다. 물론 가급적이면 원서와 같이 읽는 게 좋겠다. 그게 원문에 대한 독해력도 키워줄 뿐더러 다른 책들을 읽을 때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런 오류들을 피해갈 수 있도록 해준다.   

가령, "칸트가 보편성을 일반성과 엄격하게 구별한 것은 코페르니쿠스 이후이 근대과학이 초래한 문제에서 나왔다. 그것은 베이컨(Roger Bacon, 1214-94)으로 대표되는 실증 귀납의 중시와는 다르다."(83쪽)에서는 무엇이 잘못됐을까?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을 엉뚱하게도 13세기 사람 '로저 베이컨'으로 탈바꿈시켜놓은 것이 오류다. 일어판의 오류인지 한국어본 편집자의 부주의인지는 모르겠으나 애꿎게도 독자만 골탕을 먹는다. 

이보다 더 문제적인 건 물론 오역이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확실히 하나의 주관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른 주관을 무시했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주관과의 합의 또는 공동 주관성이 보편성을 가져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85쪽)라는 대목 같은 것. 영어본으론 이렇다. "Critique of Pure Reason begins by describing a single subjectivity, to be sure. This does not mean, however, that Kant neglected the existence of the multitude of other subjects. Rather, he did not even dream that univesality could be attained by an agreement among plural subjectivities, that is, by intersubjectivity."(43쪽)  

요즘 우리의 번역관행을 보면 'subjectivity'는 '주관'보다는 '주체성'이라고 옮겨질 가능성이 높은데, 가라타니의 용례를 따라서 뒷부분(뒷문장)을 다시 옮기면 "실상 칸트는 보편성이 복수의 주관들 간의 합의를 통해서, 곧 상호주관성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으리라곤 꿈도 꾸지 않았을 뿐이다." 정도다. 일어본과 영어본의 편차를 감안하더라도 부정문을 긍정문으로 옮긴 건 가장 안 좋은 종류의 오역이다. 이렇게 되면 '번역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실제로는 번역서에 의존하여 글을 읽는데도, 특정 대목을 자신의 글에 인용할 때는 가능한 한 원서의 내용을 참조했다는 사실을 알리려 애쓰는" 허황한 작태가 관행적인 현실이 된다. 번역자들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아직 '주마가편'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번역에 흠이나 잡자는 것이 아니다. 번역본만 인용하면서 한국어로도 <트랜스크리틱> 같은 이론적 저작이 쓰여질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무망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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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i 2009-08-08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아쇠를 누가 당기냐가 관건일 거 같아요. 번역을 학위논문으로 인정해주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듯요. <번역비평>을 적어도 계간으로만 바꿔도 좀 활기가 생기지 않을까요?

로쟈 2009-08-09 12:10   좋아요 0 | URL
계간지가 나온다고 사정이 달라질 것 같진 않지만(팔리는 책은 아니니까요) 문제의식을 확산시킬 순 있을 듯해요. 먹거리나 읽을거리나 마찬가지라고 하면 좀더 관심을 두어볼 만한데요...

2009-08-08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09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PhEAV 2009-08-09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석사학위 논문 정도라면 정말 번역으로 대체될만 할텐데요...

로쟈 2009-08-09 12:07   좋아요 0 | URL
분야에 따라선 박사논문도 번역과 주해로 대체될 수 있겠죠. 미국 등지에선 실제로 그렇게 하는 걸로 압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8-09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탕화면은 어느 나라 경치인가요? 멋지네요.

Sati 2009-08-09 20:47   좋아요 0 | URL
당나귀 등에 책 한 짐 싣고 저기 들어가서 한 십 년 썩으면 행복하겠어요 :)

펠릭스 2009-08-10 06:26   좋아요 0 | URL
그리스의 수도원입니다. 수도원에는 책이 많이 있는데요.
줄타고 올라가서 희귀본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습니다.

로쟈 2009-08-11 09:36   좋아요 0 | URL
네, 그리스의 수도원이랍니다...

베토벤 2009-08-09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3~4년 전 '근대문학은 끝났다'라는, 듣는 이에 따라서는 다소 황망한 선언을 앞세워 한국에 상륙한 가라타니는 문단에 그야말로 뜨거운 논쟁을 일으켰다. "

태클을 걸자면 '상륙'이라는 단어도 그렇고 위의 문장도 그닥 맘에 들지 않네요. 가라타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저 문장과 이후의 문장들로 인해 '근대문학의 종언' 이전의 작업들이 그닥 제대로 취급받지 못한 인상을 줄 수 있을 듯 합니다. 제가 과민한 건가요.

로쟈 2009-08-11 09:37   좋아요 0 | URL
네, '상륙'은 그보다 먼저죠...

2009-08-10 0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11 0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울프심 2009-08-14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트랜스크리틱을 거의 다 읽어가고 있는데, 직장인이 읽기에는 조금 부담감이 있더군요. 더불어서, 고진이 언급하는 각 책들을 잘 읽어보지 않았기에 뭐라 말할 수 없지만, 각 사상가들을 가로지르면서 언급하는 대목과 앞서의 서평에서도 언급했듯이, 번역서만으로도 자신의 사상의 토대를 이룰수 있는 환경이 무척 부럽네요. 조금씩 조금씩 읽어가고 있지만,215페이지의 키에르케고르의 인용구 중 「사랑의 기술」은 조금 의아합니다. 키에르케고르의 역서로는 국역으로「사랑의 역사」가 있고 영문으로는 「Work of Love」는 있어도 이것이 일본의 번역본인지 잘모르겠네요. 아마존과 일본아마존을 조금 살펴보았는데 그런 책은 없는 것 같은데..

로쟈 2009-08-14 21:50   좋아요 0 | URL
네, <사랑의 기술>도 오역입니다. 말씀대로, <사랑의 역사>가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