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7월에 '벤야민을 좋아하세요?'(http://www.aladin.co.kr/blog/mylibrary/wmypaper.aspx?PaperId=706506)란 페이퍼를 쓴 적이 있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을 읽다가 의문이 나는 한 구절을 자세히 검토해본 글이었다. 그때 참조한 것은 독어를 모르지만 참고로 복사해놓은 독어본 텍스트 외에 2종의 영역본과 러시아어본, 그리고 5종의 우리말 번역본(반성완, 차봉희, 이태동, 강유원, 김남시)들이었다. 오늘 우연히 시립도서관에서 문제가 된 대목의 우리말 번역이 눈에 띄기에 참고삼아 다시 확인해둔다. 먼저 2년전에 적어둔 걸 잠시 리와인드해서 따라가본다...

당신은 벤야민을 좋아하시는지? 만약에 그렇다면,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그의 '실제' 모습이 어떤 것인가 정도는 확인해보고픈 생각이 들지 않을까? 아는 만큼 사랑한다지만, 사랑한다면 어느 만큼은 알 필요도 있다. 물론 그 '어느 만큼'의 내용은 남들도 다 아는 '윤곽'이 아니라 소소한 '디테일'이다. 등짝이나 배꼽 아래에 난 점 따위야 그 사람의 인격과 무관하지만, 그걸 인지하는 건 애정지수와 거리를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해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의 #2, #3에서 정의되고 있는 '아우라'는 이 글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기본'에 불과하다. "당신, 아우라가 뭔지 말해봐?" 정도의 질문으로는 애정을 판가름할 수 없는 것. 대신에 물을 수 있는 건, (#2의 끝머리에서 벤야민이 인용하는바) 아벨 강스가 무슨 얘기를 한 거야, 같은 질문이다. 어젯밤에 침침한 눈으로 텍스트를 읽다가 아무래도 미심쩍어서 온갖 번역본을 다시 확인해본 대목인데, (이상하게도) 별 차이는 없지만 5가지 국역본을 차례로 제시한다.

-1927년 아벨 강스는 다음과 같이 열광적으로 말한 바 있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반성완)

-아벨 강스는 1927년 이미 이렇게 외쳤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은 영화화될 것이다..."(차봉희)

-1927년 아벨 강스는 다음과 같이 열광적으로 외쳤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이태동)

-1927년 아벨강스가 열광적으로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은 영화화될 것이다..."고 외쳤을 때...(강유원)

-1927년 아벨 강스가 다음과 같이 열광적으로 외쳤을 때 -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김남시)

이에 대한 영역본은 (2종 모두) 대략 "When Abel Gance fervently proclaimed in 1927, 'Shakespeare, Rembrandt, Beethoven will make films..."라고 옮기고 있다. (사소하지만) 무슨 차이인가? 영역본은 형태상 능동문인 'will make films'가 의미상으론 수동문인 'will be made films'의 뜻을 갖지 않는 한(국역본들에 따라서 처음에 나는 그런 게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영문법 박사도 아닌지라, 나는 남들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줄 안다) 내용은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를 만들/찍을 것이다..."이다(*이후에 내가 구하게 된 영역본은 하버드대출판부에서 나온 영역본 벤야민 선집의 제4권 페이퍼백으로 작년에 출간된 책이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의 세번째 판본이 수록돼 있다).

벤야민의 독어본에서 인용문은 "Shkespeare, Rembrandt, Beethoven werden filmen..."이다. 이 역시 아벨 강스의 불어 텍스트를 벤야민이 옮겨온 것이므로 '원문'으로서의 지위를 갖는 건 아니다. 구문은 단순한데,  추측하자면 werden이 미래시제 조동사이고(사전에는 werden이 '-가 되다'란 뜻도 갖는 걸로 돼 있다), filmen이 동사원형(부정법)이어야 영역본에 대응한다. 러시아어본도 같은 식이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화될 것이다"와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영화를 만들/찍을 것이다..."가 의미론적으로 동치가 아닌 이상(물론 아니다) 어떤 해석이 맞는 것일까? 안타깝지만, 나는 5종의 국역본 대신에 영어와 러시아어본이 맞다고 본다. 그건 의미의 논리상 그렇다.

앞 대목에서 벤야민의 대중운동의 가장 유력한 매체(대리자)로서 영화가 갖는 사회적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고, 그런 맥락에서 아벨 강스를 인용한다. 그리고 아벨 강스가 열광적으로 외치고 있는 바는 바야흐로 현대(1927년)는 '영화의 시대'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대에는 과거 문학의 천재(셰익스피어), 미술의 천재(렘브란트), 음악의 천재(베토벤)도 (그런 거 다 물려놓고) 모두 영화를 찍게 될 거라는 것(가자, 영화로!). 즉, 내가 보기에 이 대목에서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은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대명사이다. 국역본의 역자들은 이들을 모두 고유명사로 보았고, 그럴 경우 이미 죽은 사람들이 영화를 찍을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역시 논리상!) '영화화될 것이다'라고 옮긴 것이다(직역을 강조하는 이들까지 이 대목에서는 '의역'에의 유혹에 굴복한 것일까?)...

벤야민이 인용하고 있는 아벨 강스(1889-1981)의 글은 '이미지의 시대가 온다!'이며, 벤야민이 밝힌 출처로는 <영화예술(L'art cinematographique)> 제2권(1927)에 수록돼 있다. 그는 두어 페이지의 내용을 발췌하고 있는데, 우연히 들춰본 김성태의 <영화 - 존재의 이해를 위하여>(은행나무, 2003)에는 처음 시작 대목이 아벨 강스의 원문으로부터 이렇게 번역돼 있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벤토벤은 영화를 만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왕국은 이전과 같으면서도, 동시에 훨씬 더 넓어졌기 때문이다. 예술적 가치들은 온통 소란스런 전복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며, 게다가 지금까지 있어온 어떤 것보다 위대한 꿈들이 환상적이고도 급작스럽게 꽃을 피울 것이다. 단순한 인쇄기계를 넘어서, 모든 심리적인 상황을 변조할 수 있는 꿈의 공장이요 왕수(금이나 백금 따위를 녹이는 화학용액)요 리트머스 용액이기도 한 영화. 이미지의 시대가 온 것이다!"(236쪽)

딴은 이래저래 대조해볼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한편, 프랑스의 저명한 영화감독이자 제작자로서 무성영화 시대의 거장인 아벨 강스의 영화로는 마침 1927년에 만들어진 대표작 <나폴레옹>이 국내에 출시돼 있다(프란시스 코폴라가 1981년에 재상영한 버전이다). 재작년인가 할인매장에서 3,000원 주고 사둔 걸 조금 전에 확인했다(감독이 아벨 강스였다는 것도 지금 확인했다!). 요컨대, 아벨 강스가 '영화화'될 거라고 열광적으로 외쳤던 이는 따로 있었으니, 국역본의 역자들이 지목한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아니라 바로 '나폴레옹'이었다...  

07. 06.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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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벨 강스는 이렇게 말했다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04-24 18:08 
    서점 두 곳에 들러 이주의 관심도서 두 권을 사들고 왔다. 둘다 이론서라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윤영 교수가 엮은 <사유 속의영화>(문학과지성사, 2011)은 영화이론 선집이고, 호미 바바가 엮은 <국민과 서사>는 '네이션'에 관한 탈식민주의적 성찰들을 묶은 것이다.두 책을 모두 갖다놓은 서점이 없어서 한권씩 구하면서 발품을 팔아야 했다(알라딘에는 <국민과 서사>가 아직도 입고돼 있지 않다).그중 <사유 속의 영화&g
 
 
천재뮤지션 2007-06-06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벤빠에게 낼 퀴즈문제가 정답지까지 대동한 채 좀 더 확실해진 것 같네요.^^

로쟈 2007-06-06 2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어본을 검토한 분들이 김성태씨의 번역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기도 하므로 '확실해진' 건 아니구요, 좀더 지켜볼 문제입니다...

로쟈 2007-06-07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이견들 덕분에 생각을 다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드는 생각은 모든 번역이 다 맞는다는 것이고 다만 뉘앙스들이 달라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이 고유명사가 아니라는 게 제 기본적인 입장이며 그것들은 각각 최고의 문학, 미술, 음악으로 다시 씌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영화는 종합예술이니까) 이 최고의 다른 예술장르들이 영화를 구성하게 될 거라는 뜻으로 제 이해를 정정합니다. 제 초점을 '최고의 예술가들'에서 '최고의 예술작품'으로 옮겨가는 것인데, 이 경우에 현재 제시된 번역들이 모두 타당성을 가질 수 있을 듯하네요...

yoonta 2007-06-07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먼저의 로쟈님의 해석이 맞다고 생각했는데요..문맥상으로 보아도 저명한 예술가들의 이름이 나열되고 그런 유명한 예술가들이 오늘날 살아있다면 영화라는 종합예술의 영역에서 활동할 것이다라고 보는게 더 자연스러운것 같은데 말이죠. 독일어로 보아도 그게 자연스럽고.. 먼저의 생각을 폐기하신다면 불어원문을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 김성태씨의 번역이 신뢰하기 힘들다는 이야기가 되는데..김성태씨 책에서의 문맥으로 봐도 먼저의 로쟈님의 해석이 맞는것 같은데.. 말이죠.

로쟈 2007-06-0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부 불어 전공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것인데, 그에 따르면 '셰, 렘, 베가 영화화 될 것이다'가 맞다는군요. 영어나 러시아어는 그냥 '영화를 만들 것이다' 정도라서, 왜 그런 차이가 빚어졌는가 생각해보다가 '셰, 렘, 베'가 그런 수준의 '작품'을 가리킬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불어 전공자들이 주장하듯이 김성태씨의 번역이 오역인 것도 아니고, 독역본 번역자들의 잘못도 아니란 결론이죠. 다만 '셰, 렘, 베가 영화화 될 것이다'란 번역에서 '영화화'란 표현이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게 제 잠정적인 결론입니다. 일역본은 '셰, 렘, 베가 영화에 등장하게 될 것이다'라고 했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