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일은 만우절이어서 '사회적 독서'의 목록을 올리는 일이 멋쩍더니 이달은 또 메이데이(노동자의 날)인지라 이런 노동이 머쓱하다. 하지만 시간강사는 이런 휴무와 무관한 예외적 노동자인지라 5월의 리스트도 올려놓기로 한다(이 또한 예외적 노동인가?).
사실 리스트에는 스스로를 닦달하는 의미도 포함돼 있지만 3월에 학기가 시작된 이후에는 1,2월에 사회적 독서를 처음 구상할 당시에 예기치 않았던 '저항'에 직면하고 있어서 '닦달'의 의미가 무색해지고 있다. 지날달에도 기본 목록으로 내가 꼽은 책은 강경애의 <인간문제>, 리오 휴버먼의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그리고 헤겔의 <정신현상학>(서문) 등이었지만 이 책들에 대한 리뷰나 페이퍼를 쓰지 못했다(물론 대학 신입생들을 겨냥한 목록이었지만). 그건 3월의 목록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굳이 (스스로에게) 변명하자면 이 달 안으로 <인간문제>와 <어머니>에 대한 글을 포함해서 몇 가지 아이템에 대한 페이퍼를 쓸 계획이라는 것.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다 보니 아무래도 좀 만만한 책들을 리스트에 올려야겠다는 계산이 선다. 그래서 가정의 달에 꼽은 '사회적 독서'의 목록은 강준만의 <한국인 코드>(인물과사상사, 2006)로부터 시작된다. 사실 '가정의 달'이란 것 자체가 한국적 발상이자 '한국인 코드'에 부합하는 게 아닐까? 여하튼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도 있고, 또 지난 90년대 이후 한국사회에서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지식인으로 강준만을 빼놓을 수 없겠기에(나는 '강준만의 시대'란 표현에 동의한다) '우리시대의 볼테르'에 대한 예우도 갖출 필요가 있겠다. 내가 굳이 군소리를 붙이지 않아도 그의 책들은 많이 읽히고 있지만서도.
<한국인 코드>와 함께 내가 읽어보려는 책은, 며칠전 경향신문의 설문조사에서도 확인이 됐지만 지난 7-80년대 한국사회를 이끈 대표적인 지식인 리영희 선생을 다룬 <한국 현대사의 길잡이, 리영희>(개마고원, 2004)이다. 강준만의 편저로 돼 있는 책인데, '당신이 없는 사이에' 출간된 책이라 미처 눈길을 주지 못한 인연이 있다(눈길을 주지 못한 인연?). 이미 이 책들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프리'다. 역시나 베스트셀러들인 진중권의 <호모 코레아니쿠스>(웅진지식하우스, 2007)나 스콧 버거슨의 <대한민국 사용후기>(갤리온, 2007) 등을 들춰봐도 좋겠다. 요는 이러한 '거울'들을 통해서 한국인으로서의 우리 자신을 좀 들여다보자는 것이니까.
두번째 책은 경향신문의 설문 중 한국사회에 영향을 준 국내저술 목록에서 단독 저작으로는 다섯번째로 꼽힌 임지현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소나무, 1999)이다. '미시적 파시즘'과 '대중독재'라는 화두를 통해서, 그리고 한동안 <당대비평> 지면을 통해서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에 준하는 활동을 펼친 바 있는 저자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백낙청-리영희-최장집-김우창 등의 뒤를 잇는 대표적 지식인의 자기반성적 성찰에 나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이념과 이데올로기의 '속살'을 만지는 게 그의 주특기이다). 개인적으론 그가 민족주의 운동의 전공자이면서 동유럽(특히 폴란드)과 러시아의 사정에 밝다는 점도 호감을 갖게 한다. 사회주의 인텔리겐챠들에 대해서 그보다 더 많이 공부한 사람은 많지 않다.
세번째 책은 한국사회에 영향을 준 해외저술 가운데 다섯번째를 차지한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나남출판, 2003)이다(강원대출판부본은 절판되었다). 그래도 푸코의 저작들 가운데서는 가장 많이 팔린, 가장 대중적인 책이기도 하다. '푸코'란 이름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먼저 떠올리는 독자라면 먼저 크리스 호록스의 만화책 <푸코>(김영사, 2003)로 몸을 푼 다음에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다. <감시와 처벌> 정도는 이미 독파한 분이라면 미란 보조비치의 <암흑지점>(도서출판b, 2004)과 대결해보는 것도 좋겠고, 벤담-푸코의 판옵티콘의 응용이라고 할 홍성욱의 <파놉티콘 - 정보사회, 정보감옥>(책세상, 2002)을 디저트 삼아 읽어볼 수도 있겠다.
끝으로 네번째 책은 민족문화연구소에서 엮어낸 <소설 이천년대>(생각의나무, 2007)이다. 영화 <박하사탕>에서처럼 '나 다시 돌아갈래!'를 속으로 외치면서 <소설 구십년대>, <소설 팔십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되겠다(80년대에서 끝난다면 지옥일 테지만). 가정의 달 '5월'이 갖는 또다른 의미를 되새기기에 적합한 여정이 아닐까 싶다.
<소설 이천년대>에 대응할 만한 시집으로는 '젊은 시인 49인 자선 대표작' 모음집인 <21세기 우리 시의 미래>(실천문학사, 2007)가 눈에 띈다. 아무리 문학판이 '일류(日流)' 일색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의 시의 영토는 보전되고 있다. 그 영토에서 젊은 시인들이 각자 무슨 구멍들을 파고 있는지 잠시 엿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만한 계절이다. 5월은...
07. 05. 01.
P.S. 이런저런 사정으로 5월의 사회적 독서를 6월까지 연장한다. 내가 따로 고려했던 몇 권의 책은 최상천의 개정판 <알몸 박정희>(인물과사상사, 2007), 그리고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창비, 2000)과 황광우의 <젊음이여 오래 거기 남아있거라>(창비, 2007)이다. 지난 년대에 대한 기억으로 며칠쯤은 채워져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