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에 뉴스들을 둘러보는데, '한국어가 소멸된다고?'라는 선정적인 타이틀이 눈에 띄었다. 프레시안 편집자의 말대로, 일부 언어학자들은 소수 부족들의 언어가 급속하게 사멸해가고 있음을 이미 경고한 바 있다. 그 멸종어 대열에 한국어도 포함되는 일이 적어도 당분간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가까운 장래에 이중언어적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은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다. 이미 대학캠퍼스와 강의실에 '영어'를 도입하고자 하는 시도가 '세계화'를 명분으로 맹렬하게 추진되고 있지 않은가. 미국 국적을 얻기 위한 원정 출산 대열이 줄지 않는 데에서 보듯이 '한국인'이 되는 일이 더 이상 자랑할 만한 일이 아니게 될 때, '한국어'의 운명을 낙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한국어 파괴'는 거기에 비하면 부차적인 것이 아닐까 싶다(기사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내용은 '파괴'라기보다는 '오용'에 가까운 것 아닌가? 문법학자의 근심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프레시안(07. 03. 20) 한국어가 소멸된다고?
중국의 마지막 왕조 청(淸)나라를 세운 만주족의 언어인 만주어가 사멸 위기에 놓여 있다고 <뉴욕타임즈>가 최근 보도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세기 말까지 전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6800개의 언어 가운데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한국어도 크게 예외는 아니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한국사회에서 '영어'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제 특정계층에서 영어는 '외국어'가 아닌 '공용어'의 위치를 차지한 듯 보이기까지 한다. 또 인터넷 공간에서 구어체 중심의 '쓰기 문화'가 10-20대 계층에 일반화되면서 한글 맞춤법과 문법의 파괴 속도 역시 가속화되고 있다.
따라서 '만주어 사멸' 뉴스를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수많은 민족어 중 하나인 한국어도 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이를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사라지는 것은 시간 문제다. 굳이 패권주의적인 민족주의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해 온 이들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나 발명된 '과학적 문자'인 한글은 세계 모든 언어를 음성기호로 표기할 수 있는 매우 수용성이 높은 언어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 인하대 국어교육과 박덕유 교수가 기고한 글을 싣는다. 박 교수는 이 글에서 한국어 파괴의 징후들을 거론하면서 이를 막기 위한 교육적 대처 방안 수립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편집자>
인구 규모를 유지하는 데에 필요한 출산율은 2.08명인데, 최근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08명이다. 이러한 출산율이 계속 유지된다면 2050년에 3000만 명으로, 2200년이면 500만 명으로 줄어들다가 2800년이면 완전히 멸종될 것이라는 'UN미래보고서'가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시급한 것은 한국어에 대한 소홀이 지금처럼 진행된다면 한국어가 이 지구상에서 사라질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학생들의 문법 지식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서 서울, 인천, 천안 등 3개 도시의 6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게 하였다. 40분의 시간을 주고 제목은 학교마다 다르게 다양한 주제를 주었다. 아래 예문은 학생들이 쓴 문장 중 일부만 제시한 것이다.
학생들이 잘못 쓴 문장 → 수정한 문장 한국가 일본사이에 애매하게 위치해 있는 독도→한국과 일본 사이에 애매하게 위치해 있는 독도 휴전선을 없에고 통일을 한다면 →휴전선을 없애고 통일을 한다면 올림픽과 월드컵까지 개최한 세계적인 국가가 됬다. → 월드컵을 개최한 세계적인 국가가 되었다(됐다). 노력 할꺼고 좋은 아빠가 될꺼다. → 노력할 것이고 좋은 아빠가 될 것이다 내 서적에도 안돼고 → ? 안 되고 독도는 자기꺼라고 할 때 기분이 나뻤다. → 독도를 자기나라 거(영토)라고 할 때 기분이 나빴다. 독도의 대해 찾아볼것이다. → 독도에 대해 찾아볼 것이다. 저번해 뉴스에서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보았습니다. → 저번에 뉴스에서 이산가족 상봉장면을 보았습니다. 지금까지 꿈은 수도없이 밖였다. → 지금까지 꿈은 수없이 바뀌었다. 그리고우리동뇨는 → 그리고 우리 동료는 독도는 어면히우리땅인데 일본을 그렇게 실어했는데 →독도는 엄연히 우리땅이므로 일본을 그렇게 싫어했는데 그때잘했을껄 → 그 때 잘 했을 걸 원레 1학년 때는 왼쪽무릎의 쓸개골에 염증이 생겨 깊스를 했었습니다. → 원래 1학년 때는 왼쪽무릎의 쓸개골에 염증이 생겨 깁스를 했었습니다. 작년이나 제작년에는 → 작년이나 재작년에는 그집은 자매나 형재고 → 그 집은 자매나 형제나 시험이끊나고 단합대회를 했으면 좋겠어요. → 시험이 끝나고 단합대회를 했으면 좋겠어요. 가장 기뻣던일 → 가장 기뻤던 일 이빨이 않좋은게 아니라 → 이가 안 좋은 것이 아니라 이렇게 나쁜 날은 아마 업을겁니다. → 이렇게 나쁜 날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자기소게 → 자기소개 용서가 돼지 않을만한 것이다. → 용서가 되지 않을 만한 것이다. 뜨거운 포웅 → 뜨거운 포옹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이 않되었을때 →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이 안 되었을 때 언른 나으셔서 오래오래 사시게 해주세요. → 얼른 나으셔서 오래오래 사시게 해주세요. 조은꿈만...조겠다. → 좋은 꿈만 -- 좋겠다. 몇일전 너무나 어이없고 → 며칠 전 너무나 어이없고 무슨일을하던, 무슨꿈을위해달리던 구지 하나만 고집했다가 → 무슨 일을 하든(지), 무슨 꿈을 위해 달리든(지) 굳이 하나만 고집했다가 기술시간의 배운 생명공학이라는 → 기술 시간에 배운 생명공학이라는 일본이 실습니다. → 일본이 싫습니다. 지금 난리라고 함니다. → 지금 난리라고 합니다 채벌을 하지 않겠다. → 체벌을 하지 않겠다. 충격을 바드셨습니다. →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
남학생과 여학생의 차이가 다소 있지만, 남학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30% 정도가 맞춤법을 제대로 모르고 위의 예문과 같이 사용하는 게 현실이다. 이는 무엇보다 문법 지식이 부족한 데서 오는 것으로 보다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문법 지식 학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현상은 20대 이상의 일반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일반인들의 어문규정(맞춤법, 표준어) 인지(認知)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실제 언어생활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는 단어 100개에 대해 서울, 인천 지역에 거주하는 일반인 57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했다. 100문항 중 정답률이 40% 이하인 단어는 모두 29개였다. 이 중 몇 가지를 보면 다음와 같다.
오답 → 정답 (괄호 안은 정답률) 닐리리(15.3%) → 늴리리 쌍용(18.6%) → 쌍룡 오뚜기(25.3%) → 오뚝이 산수갑산(26.1%) → 삼수갑산 서슴치(27%) → 서슴지 풍지박산(27.8%) → 풍비박산 생각컨대(29.4%) → 생각건대 흐리멍텅하다(31.1%) → 흐리멍덩하다 숫소[황소](32.0%) → 수소 개나리봇짐(32.7%) → 괴나리봇짐 우뢰(32.8%) → 우레 숫놈(32.8%) → 수놈 설걷이(32.9%) → 설거지 곱배기(33.6%) → 곱빼기 집에 갈께(33.6%) → 집에 갈게 햇님(34.4%) → 해님 윗층(36.1%) → 위층 삯월세(37.8%) → 사글세 주초(37.8%) → 주추 홀홀단신(38.4%) → 혈혈단신 촛점(38.6%) → 초점 개발새발(39.4%) → 괴발개발 |
연령별로 살펴보면, 나이가 많을수록 성적이 떨어졌다. 20대는 58.1점, 30대는 56.3점, 40대는 54.5점, 50대는 53.9점으로, 1989년 어문규정이 새로 적용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학력별 성적은 반드시 교육적 효과와 비례하지 않았다. 대재 및 대졸자가 57.1점이지만, 중졸이 55.8점으로 고졸 55.0점보다 오히려 성적이 높았다. 따라서 어문규정이 개정된 이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어문규정의 교육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지구상에는 약 1만여 개의 언어가 존재했었다. '에스놀로그(Ethnologue)'에 따르면 현재 지구상에 사용되고 있는 언어는 6912개이며, 이들 언어 가운데 언어 전수 기능이 가능한 언어는 300개 미만으로 세계인의 96%가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도 100년 후에는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며,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 일부 언어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모두 소멸될 것이라고 한다. 과학적으로도 훌륭한 문자라고 자랑하는 우리 한국어도 예외는 아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온통 영어로 난리법석이다. 각종 중고등학교 입학시험이나 평가시험, 대학 입학시험, 취업 시험 등 영어 점수가 낮으면 그 어디에도 들어갈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게다가 앞 다투어 경쟁이라도 하듯이 각 지방자치마다 영어마을 선포식을 갖는 등 영어는 어느새 우리 민족의 얼과 문화를 잠식해 가고 있다. 특히, 2009년부터는 초등학교 1학년에서 영어를 가르치도록 되어 있어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영어공용어 바람이 거세게 불어 한국어의 위기는 갈수록 심각할 것이다.
한글은 실질적 의미를 나타내는 어근에 문법적 의미를 나타내는 형태소가 붙어 문법적 기능을 나타내는 형태적 특징의 언어로 첨가어(添加語) 또는 교착어(膠着語)이며, 자음과 모음 40개의 음소문자로 발음의 전부 또는 일부를 해당글자로 사용하는 표음문자이다. 이 유형에 속하는 언어는 한국어 외에 일본어, 터키어, 몽골어, 헝가리어 등 우랄 알타이어계 언어들이다. 표음문자에는 단어의 음절 전체를 한 단위로 나타내는 문자인 음절문자와 음소적 단위의 음을 표기하는 음소문자(자모문자)로 나뉜다. 전자의 예로 일본의 가나 문자를, 후자의 예로 로마자와 우리 한국어를 들 수 있다.
그런데 한글은 단순히 자음과 모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음운자질을 반영하는 글자이다. 즉, 발음기관을 본 따 만든 기본 글자(ㄱ,ㄷ,ㅂ,ㅈ)에 가획의 원리(ㅋ,ㅌ,ㅍ,ㅊ)와 병서의 원리(ㄲ,ㄸ,ㅃ,ㅉ)로 거센 글자와 된소리 글자를 만들어 냈다. 따라서 로마자가 무성음과 유성음의 2분법적인데 반해 우리 한글은 3분법적의 음운적 특징으로 세계 모든 언어를 음성기호로 표기할 수 있는 아주 우수한 문자이다.
영국과 미국이 50여 개 이상의 연방국가로 세계를 장악하고, 중국이 50여개 이상의 소수민족을 연합하여 거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또한 아랍국이 연합하고 유럽이 연합하고 있다. 이제 언어도 영어, 중국어, 유럽어, 아랍어 등 몇 개 언어로 좁혀질 것이다.
'언어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우리도 남북통일은 물론 일본, 몽골, 중앙아시아, 터키 등을 연결하는 알타이어계의 중심어로 자리 잡아 나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여러 가지 한국어교육 정책이 필요하겠지만 그 중 대외적으로는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연구가 필요하다. 현재 700만 한민족 동포가 180여 개국에 산재되어 있다. 이들을 기저로 한국어교육 정책을 펼칠 전문기관이 필요하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국어교육에 관련된 교재를 정부에 보내달라고 하니 김대중 대통령 자서전을 보냈다는 웃지 못 할 일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어를 사용하는 내국인에게 말하기-듣기 중심의 기능주의에서 벗어나 정확한 언어생활을 할 수 있도록 문자언어 중심의 교육 정책이 필요하다. 언어 소멸 속도는 굉장히 빠르다. 갑자기 한두 세대 만에 사라질 정도로 우리는 '언어 전쟁' 속에 살아가고 있다. 세계의 언어 경쟁력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문법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한국어가 소멸된다'는 가설은 곧 현실로 다가올지 모른다.(박덕유/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
07. 03. 20.
P.S. 지난달에 연재가 끝난 고종석의 칼럼 '말들의 풍경'에서 한국어의 운명에 관한 마지막회분을 참고로 옮겨놓는다.
한국일보(07. 02. 21) [말들의 풍경] <51·끝> 한국어의 미래
수천에서 1만 여에 이른다는 자연언어들 가운데, 그 말을 쓰는 사람 수를 기준으로 한국어의 순위는 어디쯤일까? 개별 언어와 방언의 경계를 긋기가 쉽지 않아서 한국어의 순위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이를테면 흔히 아랍어라 부르는 서남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 언어를 그 고전적 형태(문어 형태)에 주목해 한 언어로 간주하면, 한국어의 순위는 아랍어보다 크게 뒤질 것이다. 그러나 각 지역마다 사뭇 다른 구어 형태의 아랍어들을 서로 다른 언어로 친다면, 한국어는 그 각각의 아랍어들(이집트 아랍어, 알제리 아랍어 등)보다는 큰 언어다.
이렇게 기준이 물렁물렁하긴 하지만, 순위를 얼추 가늠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남북한과 해외의 한인공동체 인구를 7,500만 남짓으로 잡으면, 그 사용자 수로 볼 때 한국어의 순위는 12, 13위 정도 된다. 1억 가까운 사람이 쓰는 독일어보다는 작은 언어지만, 7,200만 남짓 되는 사람이 쓰는 프랑스어보다는 큰 언어다. 수천이 훨씬 넘는 언어들 가운데 12, 13번째로 사용자가 많다는 것은 한국어가 매우 큰 언어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 12, 13위라는 순위만큼 한국어가 위풍당당하지는 않다. 우선, 순위의 앞머리 세 자리를 채우고 있는 베이징어(보통화), 스페인어, 영어의 사용자 수가 3억에서 9억에 이르는 것과 비교하면, 고작 수천만의 화자를 거느린 한국어의 비중은 탐스럽지 않다. 남한 인구가 정체 상태에 있는 데다가 북한 인구는 심지어 줄어드는 추세여서, 적어도 단기적으론 한국어 사용자가 늘어날 것 같지도 않다. 더구나 12, 13위라는 순위가 어떤 자연언어를 제1언어(모어,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 수를 기준으로 매긴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국어의 상대적 위세는 훨씬 더 초라해진다. 사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영어가 베이징어보다 훨씬 작은 언어고 심지어 스페인어보다도 약간 작은 언어라고 할 때, 그것은 이 언어들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 수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3억2,000만 남짓으로 추정돼 3억3,000만 남짓으로 추정되는 스페인어 사용자보다 조금 적다. 그러나 영어를 스페인어보다 비중이 작은 언어로 판단하는 사람은 없을 테다. 영어는 지구 행성의 보편어에서 그리 멀지 않는 국제 교통어의 지위를 이미 확립했지만, 스페인어는 이베리아 반도와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일부에 갇혀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제 모국어에 이어서 배우는 언어는 베이징어나 스페인어가 아니라 영어다. 영어는 스페인어나 (9억인의 모어인) 베이징어보다 비중이 큰 언어인 것이다. 한국어는 모국어 사용자 수를 기준으로 매긴 순위보다 교통어로서의 순위가 사뭇 떨어지는 언어다. 그것은 한국어공동체 바깥에서 한국어가 그리 매력적인 언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제1언어로 한국어를 익히는 사람은 제1언어로 프랑스어를 익히는 사람보다 많지만, 한국어가 프랑스어보다 더 비중있는 언어라고 판단하는 사람은 없을 게다. 프랑스어를 제2언어나 제3언어로 익히는 사람은 수억 명에 이르겠지만, 한국어를 제2언어나 제3언어로 익히는 사람은 아주 늘려 잡아도 수백만 명 정도일 테니 말이다.
교통어로서의 비중만 보면, 한국어는 모국어 화자가 6,000만이 안 되는 이탈리아어보다도 덜 중요한 언어다. 그렇다면 교통어로서 한국어의 미래는 어떨까? 다시 말해, 외국어로서 한국어의 미래는 어떨까? 이 질문은, 자신이 배울 외국어를 고르는 기준으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뭘까라는 질문과 관련돼 있다. 사람들은 우선, 될 수 있으면 많은 사람이 쓰는 언어를 배우고자 한다. 어떤 언어를 쓰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언어의 커뮤니케이션 폭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국어 화자가 가장 많은 베이징어나 교통어 화자가 가장 많은 영어는 이 언어들이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제2언어 후보가 된다.
이미 많은 사람이 쓰고 있는 언어를 사람들은 배우려 들고, 그러니 그 언어를 쓰는 사람은 더 많아진다. 부익부 빈익빈인 셈이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7,500만 남짓의 인구집단은 이 언어를 외국어로 배우고자 하는 욕망을 불러일으키기에 모자람이 없는 규모다. 그러나 모어 화자가 이렇듯 많은 데 비해, 한국어를 교통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매우 적다. 한국어 공동체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힘이 가까운 과거에 이르기까지 그리 크지 못했고, 한국인들이 역사의 오랜 기간 국제교류에 소극적이었다는 뜻이겠다. 이 점이 교통어로서 한국어의 가능성에 제약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어를 외국어로 익히는 사람이 지금 적다는 사실이 앞으로도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고자 하는 욕망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 다음, 첫 번째 조건과 부분적으로 겹치겠지만 중요성에서는 아마 으뜸으로, 사람들은 제게 경제적 이득을 베풀 언어를 제2언어로 배운다. 사람들이 (모국어 화자가 가장 많은) 베이징어를 제쳐놓고 영어를 제2언어로 배우려 드는 것은 영어가 경제활동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어지간한 회사에 일자리를 얻으려 해도 영어를 다소 아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회에서 영어는 각급 학교의 필수 외국어로 지정돼 있다. 고를 권한을 학생들에게서 박탈할 만큼 영어는 온 세상의 교육과정에 깊이 뿌리내렸다. 그것은 미국을 비롯한 영어권의 경제적 힘과 관련이 있다. 북한과 함께 한국어 사용권의 핵심부를 이루는 남한 지역의 경제적 활력은 교통어로서 한국어의 미래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베트남이나 몽골처럼 한국과 경제관계가 긴밀해진 나라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셋째, 사람들은 문화 영역의 자아 실현을 위해 외국어를 배운다. 여기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허영심이다. 이를테면 프랑스어는 스페인어에 견주어 모어 화자가 훨씬 적다. 그러나 아메리카 대륙을 뺀 대부분 지역에서, 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우는 사람이 외국어로 스페인어를 배우는 사람보다 훨씬 많다. 거기엔 프랑스어권에서 축적된 문화가 스페인어권에서 축적된 문화보다 더 풍요롭다는 판단이 개재돼 있다. (거기엔 또 부분적으로 정치적 이유가 개재돼 있다.
한 때 유럽의 중심국가로서 스페인 못지않게 넓은 해외 식민지를 경영했던 프랑스는 오늘날 유럽연합이나 국제연합을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스페인보다 훨씬 더 큰 정치적 발언권을 지니고 있다.) 외국인들의 문화적 허영심을 만족시킬 매력이 한국어에는 넉넉하지 않다. 역사의 대부분 기간에 한반도 문화는 고전중국어로 다시 말해 한문으로 축적됐고, 한국어가 문화의 도구로서 본격적으로 행세하기 시작한 것은 고작 한 세기 남짓 전이기 때문이다.
넷째, 사람들은 배우기 쉬운 언어를 배운다. 다시 말해 제 모국어와 문법 유형이 비슷하거나 어휘가 닮은 언어를 익히려 한다. 일본의 경제력은 프랑스를 포함한 프랑스어권 전체보다 크다. 그렇지만 외국어로 일본어를 배우는 사람 수는 외국어로 프랑스어를 배우는 사람보다 훨씬 적다. 그 이유의 큰 부분은, 앞에서 시사했듯, 프랑스어로 축적된 문화가 일본어로 축적된 문화보다 더 매력적으로 비친 데 있겠지만, 대부분의 언어권 사람들에게 일본어가 배우기 너무 어려운 언어라는 사정도 거기 포개져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일본이 세계적 규모로 행사하는 경제적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사람들 다수는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문화권에 몰려 있다.
최근 들어 그 관계가 뒤집히긴 했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이나 스페인 사람들이 제2언어로 영어보다 프랑스어를 선호했던 것도 영어보다는 프랑스어가 이탈리아어나 스페인어와 더 닮아 배우기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연관효과’라 부를 만한 것도 학습동기 부여에 간여한다는 점을 지적하자. 사람들은, 꼭 제 모국어와 닮지 않은 언어일지라도, 서로 닮은 언어들이 많은 언어를 배우고 싶어한다. 이를테면 프랑스어를 외국어로 익힌 사람이 그 다음에 스페인어나 포르투갈어나 이탈리아어를 배우기는 쉽다.
네덜란드어를 외국어로 익힌 사람이 그 다음에 독일어나 덴마크어나 영어를 익히는 것도 쉽다. 그러나 동아시아 바깥 사람이 일본어를 어렵사리 배워보았자, 그 ‘연관 효과’로 쉽게 배울 수 있는 언어는 한국어 정도다. 그러니 일본어는 동아시아 바깥 사람들에게는 덜 매력적으로 보인다. 한국어도 같은 처지다. 한국어를 익히는 사람들이 그나마 일본에 꽤 있는 것은, 두 나라 사이에 확대되고 있는 교류나 어찌해볼 수 없는 지리적 근접성말고도, 일본사람들이 배우기에 한국어가 비교적 쉽다는 데 그 이유의 한 가닥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로 앞에서 내비쳤듯, 사람들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까운 나라의 언어를 외국어로 배운다. 최근 프랑스어를 제치고 스페인어가 미국인들의 제2언어로 떠오른 것은 미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멕시코를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지역 대부분에서 스페인어를 쓰는 데다가, 미국 사회 안에 스페인어를 쓰는 이민자가 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적 인접 효과가 지리적 인접 효과를 상쇄하는 경우도 있다. 루마니아나 폴란드나 세르비아 같은 중부 동부 유럽 나라들은 지리적으로 프랑스보다 독일과 더 가깝지만, 그 나라 사람들은 외국어로서 독일어보다 프랑스어를 더 선호한다. 그 나라들에 이런저런 이유로 프랑스 애호가 퍼져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최근 늘어난 것도, 일본인들에겐 한국어가 비교적 배우기 쉬운 언어라는 사정에다가, 지리적 문화적 인접성(‘한류’에 대한 친화감을 포함해)이 포개지며 나타난 현상일 테다.
이런 모든 조건들을 따져서 판단할 때, 교통어로서 한국어의 미래는 밝지 않다. 다시 말해,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울 사람이 앞으로 크게 늘 것 같지는 않다. 한국어권 경제의 확장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고, 학습 동기를 유발할 다른 요인들도 그리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래도 간접적으로나마 한국어를 배울 의욕을 북돋을 길은 있다. 그것은 사전을 포함한 한국어 학습 교재를 될 수 있으면 여러 언어로 다양하게 마련해놓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과 대학과 연구소가, 한국어학자와 외국어학자와 교육이론가가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한국어를 익히기 시작한 외국인들이 흔히 투덜거리는 것이 너무 단조롭고 부실한 학습 교재에 대해서다. 일리가 있는 불평이다.
좀더 많은 외국인이 한국어에 매력을 느껴서 이 언어를 배우길 우리가 바란다면, 그런 투덜거림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한국어를 보급하기 위해 세계 여러 곳에 세울 예정이라는 세종학당도 다양하고 효율적인 한국어 학습교재가 마련된 바탕 위에서야 제 구실을 할 것이다. 한국어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조붓한 길이다. 시원하게 뚫린 한길이 아니다. 그러나 정성스레 닦아놓으면 그 길을 산책로로 골라 거닐 사람이 왜 없으랴.(고종석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