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머님 생신이시다.
동생들과 연락해서 천안이나 청주에서 생신상을 차려드리려고 계획을 하고 있었는 데 어머니께서 선수를 치셨다. 동생들에게 전화하셔서 절대 형이 불러도 오지 말라고....허걱!!! 이럴 수가...
사유는 형이 요즘 너무 바쁘니까 신경쓰지 않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하여 어머니께서는 오늘 시골에 계시지 않고 친구분들과 별도의 스케줄을 가지고 계신다고 동생들에게 연락을 하셨고, 그리하여 모든 일정이 취소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장남된 도리와 가까운(천안-괴산시골)거리를 고려할 때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 아닌가. 자식으로서 어머님의 생신을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것. 동생들이야 아직 어려서 어머니의 작전에 넘어가고야 말았지만 그것을 훤히 꿰뚫고 있는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 수법(?)이다.
금요일 옆지기로부터 전후사정을 들은 나는 우리만이라도 시골에 가자고 했고, 옆지기는 낮부터 분주하게 방문준비를 마친 듯 전화가 온다. 서둘러 퇴근을 하니 옆지기는 미역국을 끓여서 담아놓았고, 약밥을 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으며, 아이들은 학교로 인해 같이 갈 수 없는지라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드릴 크리스마스카드를 작성하고 있었다. 어머님께서 생신날 일찍 친구분들과 여행을 계획하고 계시기에 우리는 저녁에라도 잠깐 뵙고 오기로 한 것이다.
아이들이 작성한 카드와 아침에 두분께서 드실 미역국 그리고 친구분들과 나눠 드시라고 만든 약밥과 귤한상자, 약간의 용돈을 지참하고 시골에 도착하니 밤 10시 정도가 되었다.
우리가 오지 않을 것으로 알았던 두분께서는 뜻밖의 방문에 깜짝 놀라하신다.
우리의 작전성공!
아이들이 작성한 카드를 먼저 내어놓으니 두분께서 너무 좋아들 하신다.
그리고 늦은 밤이지만 며느리가 해온 약밥을 조금이라도 먼저 드시면서 흐뭇해 하시는 것을 보니 우리들 마음 또한 홀가분하고 가볍다. 부모님의 사랑은 이렇듯 자신들을 희생하시는 것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마무리하고 천안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속도 허전하여 집근처 포장마차로가서 가락국수로 시장끼를 해결하고, 멍게와 쏘주 한잔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비록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가벼운 금요일 저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술한잔하면서 옆지기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떻게 약밥과 미역국 끓여갈 생각을 다 했느냐고 기특한 생각이었던 같다고 말이다.
현명한 판단을 해준 옆지기가 많이 사랑스러운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