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민음사, 1994)

* 아폴리네르 《알코올》 (문학과 지성사, 2001)

* 아폴리네르 《알코올》 (열린책들, 2010)

* 아폴리네르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 (민음사, 2016)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 시 선집 《미라보 다리》(민음사, 1994)의 초판 발행 연도는 1975년이다. 이보다 더 오래된 아폴리네르 시집 번역본은 1953년에 장만영 시인이 엮은 책이다. 이규현 씨가 번역한 《알코올》(문학과 지성사, 2001)은 ‘품절’ 되었으므로 지금으로는 황현산 교수가 번역한 《알코올》(열린책들, 2010)과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인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민음사, 2016)가 믿고 읽을 만한 아폴리네르 시집 번역본으로 남아 있다.

 

 

 

 

 

 

 

 

 

 

 

 

 

 

 

 

 

 

* 황현산 《아폴리네르》(건국대학교출판부, 1996)

* 유기환 《알베르 카뮈》(살림, 2004)

 

 

황 교수는 아폴리네르 연구에 정통한 불문학자다. 파스칼 피아(Pascal Pia)《아뽈리네르》(열화당, 1983)를 번역하기도 했는데, 알라딘에 검색하면 나오지 않는 책이다. 다행히 네이버에 검색하면 이 책의 생김새와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파스칼 피아는 프랑스의 언론인으로 본명은 피에르 뒤랑(Pierre Durand)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와 함께 레지스탕스 기관지를 운영했다. 장 그르니에(Jean Grenier)가 카뮈의 문학적 성장에 도움을 준 스승이라면, 피아는 카뮈가 글을 마음껏 쓸 수 있게 도와준 후원자이다. 카뮈는 자신의 작품 《시지프 신화》를 피아에게 헌정했다. 살림지식총서 51번째 책《알베르 카뮈》(살림, 2004)에 보면 피아와 카뮈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피아를 ‘커피 애호가’이자 ‘아폴리네르 전문가’로 소개하고 있다. 황 교수가 번역한 《아뽈리네르》와 아폴리네르의 시 작품들을 분석한 《얼굴 없는 희망 : 아폴리네르 시집 알콜 연구》(문학과 지성사, 1990)는 구하기 어렵다. 건국대학교출판부에서 나온 《아폴리네르》(1996)는 분량이 얇고, 아폴리네르의 시 작품들을 중점으로 다룬 책이다.

 

 

 

 

 

 

 

 

 

 

 

 

 

 

 

 

* 아폴리네르 《내 사랑의 그림자》 (아티초크, 2015)

 

 

 

아폴리네르는 ‘상형시집’으로 알려진 『칼리그람(Calligrammes)』이라는 파격적인 형식의 시집을 펴냈다. 칼리그람은 ‘아름다움’을 뜻하는 ‘Calli’와 ‘문자’와 ‘그림’을 뜻하는 ‘gramme’를 합친 말이다. 쉽게 말하면, 칼리그람은 ‘글자로 만들어진 그림’이다.

 

 

 

 

 

 

 

 

아폴리네르는 동료 작가보다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로베르 들로네(Robert Delaunay), 앙리 루소(Henri Rousseau) 등의 화가들과 더 가까이 지냈다. 그는 훗날 입체주의, 초현실주의로 분류되는 화가들의 재능을 일찍 눈여겨 본 전위적인 예술가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아폴리네르의 칼리그람은 활자나 시구의 배치를 통해 하나의 형태를 만들어낸 독창적인 작품이다. 《미라보 다리》와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 그리고 《내 사랑의 그림자》(아티초크, 2015)에 『칼리그람』에서 선별한 재미있는 상형시를 확인할 수 있다.

 

 

 

 

 

 

 

 

 

 

 

 

 

 

 

 

* 프랑수아 라블레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문학과 지성사, 2004)

* 유석호 《라블레, 새로운 글쓰기의 모험》 (연세대학교출판문화원, 2016)

 

 

사실 글자의 배열로 어떤 이미지를 만드는 방식은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독특한 장식문화 중 하나이다. 그리고 문학사 전체를 볼 때 상형시가 처음으로 등장한 작품은 아폴리네르의 『칼리그람』이 아니라 프랑수아 라블레(Francois Rabelais)가 쓴 것으로 추정되는 『팡타그뤼엘 제5서』다.

 

 

 

 

 

 

 

『팡타그뤼엘 제5서』는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문학과 지성사, 2004)의 후속작이며 여기에 실린 상형시는 ‘신성한 술병의 삽화’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라블레가 세상을 떠난 뒤에 나온 『팡타그뤼엘 제5서』는 위작 논쟁이 끊이지 않는 문제작이다. 그래서 라블레가 ‘신성한 술병의 삽화’를 만들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미라보 다리》의 목차가 있는 장 바로 앞에 앙리 루소의 그림이 있다. 그림 밑에 『미라보 다리』의 유명한 시구가 인용되어 있다. 이걸 본 독자들은 루소의 그림에 있는 다리가 그 유명한 미라보 다리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그림 제목이 '미라보 다리'가 아니다. 황 교수는 《아뽈리네르》에서 이 그림 제목을 ‘미라보 다리’로 잘못 소개했다. 루소가 그린 다리는 파리 16구의 명칭을 붙인 ‘파시 다리’이다. 이 다리는 1948년에 ‘비르 아켐 다리(Pont de Bir-Hakeim)’로 변경되었다. 미라보 다리와 비르 아켐 다리는 같은 행정구 안에 있을 뿐, 이름과 모양새가 다르다. 파리에 여행하러 갈 때 미라보 다리를 보게 되면, 다리가 있는 위치를 잘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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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7-04-19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에 갔을 때, 유명한 미라보 다리 보러 갔다가 실망했던 기억이...
애개 쪼끄매..이러면서ㅜ
그나저나 cyrus 님 전방위적인 글, 좋아요!

cyrus 2017-04-19 15:35   좋아요 0 | URL
유명한 다리를 직접 보셨군요. 저는 사진으로 봤을 때 다리가 크게 보였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가 보군요.. ㅎㅎㅎ

꼬마요정 2017-04-19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 좋아요 ㅎㅎ 사실 ㅎㅎ와는 어울리지 않는데 말입니다. 처음 아폴리네르를 만난 건 미라보 다리였죠. 아직도 기억나네요.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딱 여기까지ㅜㅜ

cyrus 2017-04-19 19:50   좋아요 0 | URL
미라보 다리, 정말 유명한 시죠. 시인 이름은 몰라도 제목과 시구를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

임모르텔 2017-10-14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어나 처음 듣는 단어예요! <칼리그람-글자로 그리는 그림>
저처럼 지식이 많지않은 사람이 읽는데에 어려움없게 해주시네요.ㅎㅎ
고리타분한 학교교육들~,~근데 뒤늦게 알아가는 기쁨이 이런거군요.

cyrus 2017-10-15 17:39   좋아요 0 | URL
학교에서 알지 못한 것들, 학교가 가르쳐주지 않은 것들이 없었으면 사람들은 독서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

임모르텔 2017-10-15 20:11   좋아요 0 | URL
학교는 감옥이예요. 제 학창시절때는 5분만 지각해도 여고생 턱을 주먹으로 훅~을 날리는 남자선생이 있어서.. 전 말끼를 못 알아듣고 언어이해력이 짧아서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어요! ㅋㅋ반평균점수 깍으면 여고생들 배를 발로 차고 , 그 트라우마가 지금도 있어요.요즘 같으면 고소감이죠. 등교하면 늘 시범케이스 한명 족치고 가르치던 시절,,,..갑자기 Pink Floyd -The Wall ... 을 듣고싶군요!

cyrus 2017-10-16 10:33   좋아요 0 | URL
네, 옛날에 몹쓸 짓을 하는 선생님들이 한 두명은 있었죠. 장난이라고 해도 제자를 막 대하는 교사는 징계를 받아야 합니다.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sword.” 펜은 칼보다 강하다. 19세기 영국의 소설가 에드워드 불워 리턴(Edward Bulwer Lytton)의 희곡에 나오는 말이다. 글의 힘이 그 어떤 무기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고, 이 말은 오늘날에도 명언으로 전해지고 있다.

 

 

 

 

 

 

 

 

 

 

 

 

 

 

 

 

 

리턴의 대표작은 《폼페이 최후의 날》(황금가지, 2003)이다.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사라진 로마의 대도시 폼페이(Pompeii)의 비극을 생생하게 그린 역사소설이다. 이 작품에 흑마술과 점성술에 능통한 이집트의 대제사장 아르바케스(Arbaces)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소설의 주인공 글라우코스(Glaucus)를 방해하는 악인이다. 글라우코스는 폼페이 최고의 미녀로 알려진 이오네(Ione)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오네를 짝사랑하는 아르바케스는 글라우코스와 이오네와의 관계를 끊기 위해 율리아(Julia, 그녀는 글라우코스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오네에게 질투심을 느낀다)와 함께 사악한 음모를 꾸민다.

 

 

 

 

 

 

 

 

 

 

 

 

 

 

 

 

 

 

 

 

 

 

 

 

 

 

 

 

 

 

 

* 에드워드 불워 리턴 《마법사 자노니》 (창천사, 2006)

*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 《공포 문학의 매혹》 (북스피어, 2012)

* 덩컨 히스 《낭만주의》 (김영사, 2002)

 

 

 

리턴은 불가사의한 마술의 힘을 사용하는 존재가 등장하거나 이를 소재로 한 고딕 소설(Gothic fiction) 몇 편 남겼다. 그는 실제로 마법과 밀교, 신비주의 등에 심취한 오컬티스트(Occultist)였다. 리턴의 오컬티즘(Occultism)이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이 《마법사 자노니》(창천사, 2006)다.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Howard Phillips Lovecraft)는 이 작품의 이야기 전개가 설득력이 부족하지만, 로맨스 소설로서의 훌륭한 능력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러브크래프트의 평을 좀 더 상세하게 풀어보면, 《마법사 자노니》는 고딕 로맨스(Gothic Romance)로 볼 수 있다. 고딕 문학의 특징은 로맨스와 공포 요소가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여기에 파생된 고딕 로맨스는 19세기 신비주의에 대한 낭만이 싹트면서 피어난 장르다. 이때 작가와 예술가 들은 압도하는 초현실적 힘을 재현하며 인간의 유한성을 일깨우고, 무한한 환상의 세계를 그리고자 했다.

 

 

 

 

 

 

 

 

 

 

 

 

 

 

 

 

 

 

*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1》 (자유문학사, 2004)

* 《세계 서스펜스 추리여행 1》 (현인, 2014)

* 에드워드 불워 리턴 《셋집》 (현인, 2014)

 

 

 

1859년에 리턴이 발표한 단편소설 『The Haunted and the Haunters』는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작가의 확고한 믿음이 노골적으로 반영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유령 저택』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1》 (자유문학사, 2004)에 처음 소개됐다. 십년 후 《세계 서스펜스 추리여행 1》 (현인, 2014)『셋집』이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었다.

 

소설의 주인공 영국 신사는 신비학에 박식한 편이지만, 유령의 존재와 초자연적인 힘의 실체를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문제의 저택에 하룻밤 지내게 되고, 그곳에서 불가사의한 현상들을 체험한다.

 

《세계 괴기소설 걸작선 1》의 『유령 저택』은 역자를 잘못 만난 텍스트이다. 『유령 저택』을 옮긴 역자는 책의 말미에 고딕 문학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면서 각각 수록 작품에 대한 해설을 썼다. 하지만 역자는 책의 번역을 위해 리턴의 오컬티즘을 겉핥는 정도로 이해했다. 소설의 주인공이 중세의 연금술사 겸 의사인 파라켈수스(Paracelsus)의 책 구절을 인용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유령 저택』의 역자는 파라켈수스를 언급하지 않고, 그의 책 구절을 주인공이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되는 사례로 임의로 번역했다. 『유령 저택』의 역자가 기본적인 오컬트 지식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원문에 있어야 할 ‘파라켈수스’가 번역하는 과정 중에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 다키하라 나루미 《소환사》 (들녘, 2000)

* 하니 레이 《도해 근대마술》 (AK커뮤니케이션즈, 2012)

 

 

리턴의 오컬티즘에 영향을 준 사람이 엘리퍼스 레비(Eiphas Elvi)이다. 그는 근대마술의 기초를 확립한 신비주의자다. 레비는 각종 고대 마술을 수집하면서 타로, 카발라, 그리고 파라켈수스에 관심을 가진다. 레비는 형태가 없으며 눈에도 보이지 않는 ‘천체의 빛’, 즉 ‘성기광(星氣光, Astral Light)’을 지니고 있으면 물건을 움직이게 할 수 있고, 인간의 영혼을 소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The Haunted and the Haunters』에서 묘사된 초자연적인 현상들은 레비의 ‘천체의 빛’과 연관 지어 볼 수 있다.

 

《세계 서스펜스 추리여행 1》에 수록된 『셋집』은 『유령 저택』의 번역 수준과 비교하면 가독성이 좋다. 그런데 『셋집』은 결말로 이어지는 중요한 내용을 번역하지 않았다. 즉 결말이 포함된 소설의 1/3이 통째로 누락되었다. 『셋집』의 결말은 진짜 결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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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8 17: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4-18 17:49   좋아요 1 | URL
돈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작가는 책이라고 말하기에 민망한 불쏘시개를 만듭니다.. ^^;;

겨울호랑이 2017-04-18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오컬트와 신비주의 관련해서 cyrus님의 리뷰만큼 깊이 있는 리뷰도 드문 것 같습니다^^:

cyrus 2017-04-19 12:02   좋아요 1 | URL
제 글이 깊이 있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책을 읽으면서 확인된 내용들을 연결해서 정리할 뿐입니다. 공포 문학도 장르 문학에 속하는데, 알라딘에는 공포 문학을 상세하게 소개한 글이 많지 않아요. 그리고 추리 문학과 SF, 판타지 문학에 비하면 많이 읽는 장르가 아니에요. 그래서 예전부터 공포 문학에 관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돌아가신 물만두님이 추리문학이 좋아서 열심히 소개하신 것처럼 저도 공포 문학의 매력을 알리고 싶습니다. ^^

transient-guest 2017-04-19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지한 탐구는 모르지만, 오컬트나 신비주의도, 도판도 그렇고 즐기기 위한 이야기감으로 손색이 없어요.ㅎ

cyrus 2017-04-19 12:03   좋아요 0 | URL
저는 회의주의자인데도 오컬트를 즐기려고 합니다. 오컬트를 알게 되면 생각보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많이 발견하게 돼요. ^^

zombie 2017-06-16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계괴기소설 걸작선1권은 직접 보유중이신가요? 1권을 현재 구입하고싶은데 절판이라 간절히 찾고있습니다만....

cyrus 2017-06-16 18:50   좋아요 0 | URL
아니요.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어요. 저도 괴기소설 걸작선 전 3권을 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
 
안목 유홍준의 미를 보는 눈 3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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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은 사물을 볼 때 남다른 시각을 가지고 바라본다.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똑같은 사물도 달리 표현되고 또 어떤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것을 보면 예술가들의 시각이 부러울 따름이다. 그들의 미술작품을 본다는 것은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예술가가 고민하고 호흡한 모든 상념과 숨결을 느끼는 것과 상통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초발심을 유지하며 예술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일은 보통 사람이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작품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도대체 그 속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복잡한 의문들과 궁금증이 인다. 이는 작품에 문외한이란 말이고 모르니 답답하기 그지없다는 토로이기도 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창비, 2011)에 나오는 구절이다. 미술작품은 누구나 볼 수 있지만, 누구나 똑같이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술작품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면 가까이 봐도 제대로 본 것은 없다. 유홍준의 《안목》(눌와, 2017)은 미술작품을 볼 때 필요한 ‘안목’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다. 내용 면에서는 저자의 전작 《국보순례》(눌와, 2011)와 《명작순례》(눌와, 2013)와 짝을 이룬다. 전작이 우리 미술과 한국 미학의 정수를 끄집어냈다면, 이 책은 안목이 어디서 유래했고 어떻게 그런 아름다움을 보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책이 주목되는 것은 학문의 틀 속에 빠져 자칫 ‘전문가의 안목’을 소개하는 것을 피하고, 보통사람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한 점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안목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다. 아예 안 보인다기보다는 오히려 주목을 받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을 발견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뛰어난 미술작품을 지혜로운 안목으로 바라보고 적절하게 가치를 알아주는 것. 그것이 미술작품의 운명을 바꾼다. 오늘날에는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의 추사체를 개성이 넘치는 글씨라고 말한다. 추사체는 추사가 9년간 제주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에 완성됐다. 글 쓰는 일에만 전념했을 만큼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노력이 추사체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당대 사람들은 추사체를 괴이한 글씨체로 봤다. 추사는 자신의 개성을 알아주지 못하는 세상에 하소연을 드러냈다. 그래도 추사의 진가를 알아보는 당대 안목 있는 문인들이 적지 않았다.

     

보는 사람의 안목에 따라 작품과의 교감도 달라진다. 먼저 장점을 찾는 관심이 필요하다.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의 스승으로 알려진 조선시대 문인화가다. 그는 인품이 너그러워서 제자의 작품을 평할 때 제자의 장점을 강조했다. 추사는 표암과 반대로 제자의 작품을 혹독하게 평했다. 그는 작품을 올바로 보려면 ‘금강안(金剛眼)’과 ‘혹리수(酷吏手)’, 즉 부릅뜬 눈과 혹독한 세리(稅吏)의 손끝이 필요하다고 했다.

     

“당대에 안목 높은 이가 없다면 그것은 시대의 비극이다. 천하의 명작도 묻혀버린다. 많은 예술 작품이 작가의 사후에야 높이 평가받은 것은 당대에 이를 알아보는 대안목이 없었기 때문이다.” (《안목》 19쪽)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그렇지만 안목은 예술만큼 길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작품이 언젠가는 사상 최고의 명작이 될지 모른다는 의미에서 안목은 예술보다 더 길 수도 있겠다.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의 안목을 양분으로 삼아 미술작품을 마음껏 즐기는 일은 독자들의 몫이다. 미술작품 속에 녹아든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은 미술을 ‘알고 사랑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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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18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4-18 16:47   좋아요 2 | URL
안목이 부족해서 문화재 관리를 소홀히 하면,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되기 쉽습니다. 미래에 문화유산으로 인정받는 가치가 있는 작품들이 탁월한 안목을 가진 주인을 만나지 못해서 훼손됩니다.

캐모마일 2017-04-20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주목되는 것은 학문의 틀 속에 빠져 자칫 ‘전문가의 안목’을 소개하는 것을 피하고, 보통사람들의 눈높이에 맞게 설명한 점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안목이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다. 아예 안 보인다기보다는 오히려 주목을 받지 못하고 넘어가는 것을 발견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뛰어난 미술작품을 지혜로운 안목으로 바라보고 적절하게 가치를 알아주는 것. 그것이 미술작품의 운명을 바꾼다.˝ 감명 깊게 읽고 갑니다. 책이 사랑받는 이유를 알 거 같네요.

cyrus 2017-04-20 17:24   좋아요 1 | URL
좋은 책도 훌륭한 안목의 눈길을 받지 못하면 알려지지 못한 채 절판됩니다. 저는 좋은 책을 잘 고를 줄 아는 안목을 가지고 싶습니다. ^^;;
 

 

 

알라딘 서재, 북플 활동을 하다보면 인사말 없이 조용히 탈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탈회 회원이 남긴 댓글이나 그분이 눌렀던 ‘좋아요’ 흔적은 그대로 남습니다. 그렇지만, 닉네임은 사라지면서 ‘비로그인’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됩니다.

 

 

 

 

 

 

 

 

이 닉네임을 아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 알파벳님. 이 분 원래 닉네임이 ‘롤리팝’이었습니다. 작년에 ‘알파벳’으로 닉네임을 변경했고, 프로필 사진은 구글(Google) 로고를 따온 것이었습니다.

 

어제 알파벳님이 탈퇴한 사실을 알았어요. 알파벳님은 ‘즐겨찾기가 많이 된 서재’였습니다. 작년 ‘서재 기네스’ 결과를 정리한 서재지기 게시판에 가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알파벳님의 서재로 이동하는 링크를 누르면 ‘해당 서재가 없거나 삭제되었습니다’라고 알리는 창이 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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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4-17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탈퇴하셨군요....왠지 최근에 리뷰가 없더라니....아쉽네요......

cyrus 2017-04-17 16:13   좋아요 1 | URL
알파벳님이 책 속 문장을 인용해서 올린 게시물은 봤지만, 리뷰는 본 적이 없어요. 이분은 글을 쓰는 대신에 다른 분들의 글에 ‘좋아요’를 많이 눌러줬어요. 아마도 그런 모습 때문에 알파벳님의 서재가 ‘즐겨찾기가 많이 된 서재’로 선정된 것 같습니다.

박람강기 2017-04-17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다시 돌아오시길 빕니다.

cyrus 2017-04-17 16:13   좋아요 0 | URL
탈퇴해도 재가입 가능하고, 구 닉네임을 다시 써도 되는 걸로 압니다.

yureka01 2017-04-17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없었나요??우째 기억도 가물가물한지 ㄷㄷㄷㄷ

cyrus 2017-04-17 16:22   좋아요 1 | URL
제가 기억하는 것은 알파벳님이 <어린왕자> 속 문장을 인용한 게시물을 10개 이상 올렸던 일입니다. 며칠 지나니까 그 게시물들을 볼 수 없었어요. 아마도 비공개로 변경했거나 삭제됐을 겁니다.

hnine 2017-04-17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재 생활 오래 하다 보면 이런 분들 꽤 계시고, 어떤 날 문득 이분들 생각이 나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그런날이면 몹시 서운하고 보고 싶고 (비록 얼굴을 뵌적 없지만) 그렇지요.

cyrus 2017-04-17 21:57   좋아요 0 | URL
몇 년 훌쩍 지나고 나면, 예전에 뵙던 분들 그리고 조용히 서재 활동을 접은 분들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정말 허무하면서도 예전 일들이 그리워집니다.

AgalmA 2017-04-17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가끔 인사드리고 했는데... 신변의 우환 같은 사연이 아니시길...

cyrus 2017-04-17 22:00   좋아요 1 | URL
친하게 지내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잘 지내고 계실 거로 생각합니다.

Agalma에서 AgalmA로 살짝 변경됐네요. 양쪽의 A가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

AgalmA 2017-04-17 22:02   좋아요 2 | URL
왠지 웃는 상 같지 않습니까
ㅋgalmㅋ같이ㅋㅋ

cyrus 2017-04-17 22:0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정말 그렇네요. 영어 한 글자를 대문자로 바꾼 건데, 느낌이 확 달라지는군요. ^^

나와같다면 2017-04-19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흔적‘ 님 생각이 나네요..

2017-04-19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월 바다 창비시선 403
도종환 지음 / 창비 / 2016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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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1

 

 

밥을 먹어야만 끼니를 제대로 해결한 것처럼 느끼는 사람들에게도 종종 면발이 당기는 날이 있다. 식당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즉석에서 말아주는 국수를 먹는 것은 소박한 즐거움이다. 나름대로 의미가 담긴 잔칫집에서의 국수는 어떤가. 생일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뜻으로, 혼례 때는 부부가 해로하라는 의미로 대접하는 국수를 마다하는 사람은 없다. 겨우내 곰삭은 묵은 김치를 쫑쫑 썰어서 참기름 넣고 버무려 국수 위에 올려놓아 먹으면 입안이 개운해진다.

 

국수의 맛이 최고라는 생각하는 것은 입안에 감도는 그 ‘맛’이 아니다. 맛있는 국수를 먹을 때 마음속까지 아련해지는 것은 옛날에 여러 사람과 함께 국수를 먹으면서 느꼈던 ‘정(情)’ 때문이다. 소찬이지만 둘레 상에 모여앉아 젓가락을 움직이며 나누는 국수에는 서로를 아우르고 위로하는 힘이 있다.

 

끊어오르며 소용돌이치던 것들을

찬물에 헹구어 채반 위에 얹어놓고 나니

마음도 국수 타래처럼 찬찬히 자리를 틀고 앉았습니다

애호박을 싸박싸박 채 썰어 밀어놓는 동안

마음 한쪽이 그렇게 소리를 내며

잘려나가는 듯한 초저녁

묵은 김치를 더 잘게 썰어 얹어 한그릇의

국수를 비우는 동안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녁산 위로 짙은 쪽빛의 시간이

잉크처럼 번져 내려오듯

무어라 이름 지을 수 없는 아릿한 것이

명치끝을 타고 내려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이승에서 이렇게 애틋함과 슬픔을

한그릇씩 나누어 먹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찔레꽃에게 말하고

한세상 사는 동안

좋은 사람과 함께 호젓한 풍경이 되어

저물 수 있던 날을 고마워하며

찬물에 젓가락을 씻어 물방울을 털어내다가

잠시 뼈와 살 사이가 시큰해졌습니다

 

(『어느 저녁』 중에서, 14~15쪽)

 

도종환 시인의 『어느 저녁』에서 차려진 국수는 평등한 음식이다. 나도 한 그릇, 너도 한 그릇. 누구에게나 평등한 음식이어서 좋다. 굳이 여유를 부리지 않아도 좋은 사람과 한 몸이 되어 말없이 국수를 먹다 보면 그것이야말로 어떤 위로의 말보다 큰 위안이 된다.

 

 

 

 

 

Scene #2

 

 

인생의 본질은 니체(Nietzsche)의 방식대로 말하자면 운명에 대한 사랑, ‘아모르파티(amor-fati)’다. 운명에 대한 사랑이란 단순히 체념을 뜻하는 게 아니라 내 운명이라면 당당히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위버멘쉬(Übermensch)는 타고난 운명에 순응하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운명을 재창조하기 위해 어제와 다른 방법으로 이전과 다른 나를 부단히 재창조하는 인간상이다.

 

모래벌판으로 난 길과 낙타들의 행렬을 따라가다

오늘 수첩을 꺼내 아모르파티라고 적는다

오라 운명이여

한낮의 모래언덕과 초저녁의 푸른 초승달과

내게 오는 운명을 사랑하리라

세상은 오래도록 모래와 바람이 휘몰아치며

열사의 뜨거움과 밤의 냉기가 충돌하는 곳

쓰러질 때까지 내 운명을 지나가리라

선택하고 뉘우치고 또 나아가리라

 

(『아모르파티』 중에서, 58~59쪽)

 

『아모르파티』의 화자는 현재의 정체성에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하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Zarathushtra)를 닮았다. 그는 살아가면서 무엇을 위해서 왜 이런 선택을 하는지 멈춰 서서 성찰한다. 우리는 흔히 목적의식 없이 사는 사람을 한심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목적이 있어야 방향감을 잃지 않고 매진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것을 목적으로 바라보면 그 순간부터 목적 이외에 다른 가능성을 볼 기회를 놓쳐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 있다. 모든 사물과 사람에게 목적의식을 부여하면 그 목적 이외에 다른 목적으로 그 사람과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문이 닫혀버린다. 삶은 우연한 마주침의 연속이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숱한 고뇌와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현실적 삶에 거리를 두는 성찰의 시간이다.

 

 

 

 

 

Scene #3

 

 

세상은 지난 4월 16일에 멈춰버린 괴로운 순간을 털고 일어서자고 한다. 일각에서는 ‘유독 세월호 희생자들에게만 과도한 슬픈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냐’는 냉소적인 의견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러나 내 의견은 다르다. 우리가 남의 일인 사고로 인해 슬픔을 느꼈다면, 그 슬픔은 단순히 희생자에 대한 애도의 수준을 넘어 본인의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감정이입이 된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느끼는 슬픔을 조금은 털어내고 냉철히 현상을 짚어보는 것은 맞다. 하지만 슬픔을 느끼는 것 자체를 집단적 무기력 증세로 보고, 이를 금기시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매년 4월이 다가올 때마다 느끼는 슬픔은 ‘화인(火印)처럼 찍혀 평생 남을 아픔’이기도 하다.

 

비 올 바람이 숲을 훑고 지나가자

마른 아카시아 꽃잎이 하얗게 떨어져내렸다

오후에는 먼저 온 빗줄기가

노랑붓꽃 꽃잎 위에 후두둑 떨어지고

검은등뻐꾸기는 진종일 울었다

사월에서 오월로 건너오는 동안 내내 아팠다

자식 잃은 많은 이들이 바닷가로 몰려가 쓰러지고

그것을 지켜보던 등대도

그들을 부축하던 이들도 슬피 울었다

슬픔에서 벗어나라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섬 사이를 건너다니던 새들의 울음소리에

찔레꽃도 멍이 들어 하나씩 고개를 떨구고

파도는 손바닥으로 바위를 때리며 슬퍼하였다

잊어야 한다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

눈물을 털고 일어서자고 쉽게 말하지 마라

하늘도 알고 바다도 아는 슬픔이었다

남쪽 바다에서 있던 일을 지켜본 바닷바람이

세상의 모든 숲과 나무와 강물에게 알려준 슬픔이었다

화인처럼 찍혀 평생 남을 아픔이었다

죽어서도 가지고 갈 이별이었다

 

(『화인(火印)』, 114쪽)

 

세월호 사고를 기억하는 일은 집단적 슬픔 · 애도의 원인이 아니다. 오히려 ‘계기’였을 뿐이다. 세월호 사고와 연관된 각종 문제점을 자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극우 세력은 세월호 사고라는 하나의 사건이 갖는 사회성을 부정한다. 희생자에 향한 애도하는 행위마저 이념의 색깔을 입혀 깎아내린다. 그들의 시각은 너무나도 오만하다. 우리는 슬퍼하고 추모할 자유가 있다. 잠깐의 슬픔 후에 다시금 일상으로 걸어 들어가 숨죽이며 사는 것도, 그 슬픔을 딛고 느낀 바대로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어 행동하는 것도 개인의 자유이다. 슬픔에서 벗어나라고 너무 쉽게 말하지 마라. 우리가 느낀 대로 고인들을 추모하는 자유를 당신들이 손가락질하면서 왈가왈부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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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4-16 15: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아직 잊을 권리가 없다..

cyrus 2017-04-17 15:18   좋아요 0 | URL
어제 영국 프로 축구팀 맨유 유나이티드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한국말로 세월호 사고 3주기 추모 성명서를 공개했어요. 이 소식을 전한 네이버 뉴스 게시물의 댓글 게시판에 맨유의 추모 성명서에 시비 거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정말 어이가 없고, 화가 났습니다.

영국은 매년 힐스보로 참사를 잊지 않고, 추모를 합니다. 이런 모습은 당연한 건데, 우리나라는 3년이 지난 사고를 추모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4-16 16: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게 가장 맛있는 국수는 80년대 중반 서대전역 기차역에서 먹었던 가락국수로 기억되네요.^^: 기억할 사람은 평생 가지고 갈 사건이 세월호 참사라 생각이 들어요. 물론 잊고 싶은 이들도 있겠지요..

cyrus 2017-04-17 15:23   좋아요 1 | URL
대구 서문시장에 파는 칼국수가 유명합니다. 오늘 같이 비 오는 날에 먹기 좋은 음식입니다. ^^

세월호 사고에 대한 아픈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서 잊고 싶은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건 저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추모하는 일을 사회통합에 저해하는 반국가 세력들이 주도하는 것처럼 매도해서 지나간 일을 덮어버리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싫습니다.

AgalmA 2017-04-17 17: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발달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는 여러 문화권 사람들이 지능으로 여기는 측면을 연구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 같은 사회적 속성을 지능의 한 측면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특히 동아시아와 아프리카 문화권에서 이런 점이 두드러졌다.˝
-리처드 리스벳 <무엇이 지능을 깨우는가> 중

그 분들에게 생각 좀 하고 살고 말하자 그러면 더 욕 들을라나요^^;

cyrus 2017-04-17 22:35   좋아요 0 | URL
차분히 설득을 해도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들은 그런 좋은 말조차 듣기 싫은 적의 말처럼 들릴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