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프리젠테이션 발표를 했다.  

지난 주에 작성한 '진보와 보수 관점에서 바라본 한국정부사' 라는 과제였다. 과제 관련 수업은 한국정부론이었는데 이번 주 월요일에 발표를 했었다.    

처음에 작성했을 때는 논란이 많은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를 중심으로 비교, 정리를 했었는데 발표를 위해서 제1공화국부터 현 이명박 정부까지 모조리 조사하게 되었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 주 토요일, 집에서 주말을 잘 보내고 있던 중에 교수님께서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말에 그것도 한밤중에 교수님이 나에게 전화를 걸다니...   처음에는 전화의 목적을 알지 못했다.    교수님이 나에게 전화를 했던 이유는 월요일에 과제 발표를 할 터이니 내용을 좀 더 보충하라는 것이었다.     교수님의 요청에 너무 쉽게 동의는 했지만 주말동안 과제를 보충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주말에는 시험 공부를 할려고 했었다. 

토요일, 일요일.  단 이틀동안 내용 보충에다가 발표를 위한 프리젠테이션까지 준비를 해야만 했다.  이틀동안 잠 한 번 제대로 자지 못한채 과제 발표 준비에만 몰두하였다.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완성하고 난 뒤에 발표할 때 내용을 수월하게 설명하기 위해서 일종의 발표문을 따로 정리하였다.    발표문을 작성하고 나니 한국정부사와 관련된 주요 내용은 알게 되었다.  덕분에 제대로 한국정부사를 공부한 셈인 것이다.

 

과제를 완성하고 나서 발표 준비 연습도 해보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처음으로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데도 전혀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80명의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발표를 해야되는데 말이다. 오히려 발표가 잘 될 것 같다는 긍정적인 기대감만 들었을 뿐이었다.  ^^;;   

 

그런 긍정적인 마음 덕분이었을까...?    

어쩌면 발표문을 완벽하게 준비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애초부터 준비했던 발표문 그대로 읽으려고 작정했었기 때문이다.   

막상 강단에 오르고 나니 오히려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준비했던 모든 것들을 교수님과 많은 학생들에게 어필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다.

비록 발표 시간은 30분 정도 걸렸던 것 그리고 발표 준비를 많이 하지 못해서 따로 준비한 발표문에 너무 의지한 채 발표했던 점만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나의 발표에 대해서 교수님과 학생들의 평이 좋았다.    아무래도 내가 준비한 과제의 주제와 프리젠테이션 자료가 그 날 나와 같이 발표했던 학생들과는 다르게 참신했기 때문에 좋은 평을 받을 수 있었던거 같다.  

 

처음으로 파워포인트 발표를 하면서 부족한 점이 많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프리젠테이션 발표에 대한 자신감이 더 생겼을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훌륭한 프리젠테이션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번 학기에 듣고 있는 수업들 중에는 조별 발표가 많이 있는 편이다.  두 세번 정도 발표에 참여하게 될거 같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번 중간고사 끝나고 난 뒤에는 프리젠테이션 스킬에 대해서 따로 공부를 할 예정이다. 

프리젠테이션 스킬 공부하랴, 과제 준비하랴 그나마 한가할 것만 같았던 11월도 바빠질거 같다.   

 

덤으로 프리젠테이션 발표문을 올려본다.  내용은 10월 1일에 블로그에 작성했던 내용을 좀 더 수정, 내용을 첨가한 것이다.    갑작스런 발표 일정 때문에 이틀동안 부랴부랴 자료를 찾아 정리한 것이다.   재1공화국에서 현재 이명박 정부까지 역사순으로 배열하여 정리하였지만 발표 시간 한계상 한국정부사에 관련된 주요 내용을 제외했고 잘못된 부분도 있을 수 있다. 

한국정부사와 관련하여 좀 더 보충해야 할 내용 또는 참고하면 좋은 자료와 내용이 있다면 언제든지 환영이다.

     

 

 

 

 하나의 나라, 두 개의 역사

제가 발표하려는 내용은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두 개의 한국정부의 역사에 대한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언급한 두 개의 역사라는 것은 북한과 남한처럼 하나의 땅덩어리에 갈라진 두 나라의 역사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즉 남한에서 알려져 있는 역사를 뜻하는 것입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은 정권에 따라 변화해왔습니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까지만 해도 반공 이데올로기 시각에서 현대사를 이해했지만,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화면서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다양한 역사적 관점이 제시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관점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대사는 크게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이 되어버렸습니다.   

 

 

 진보와 보수

그렇다면 여기서 제가 언급한 진보와 보수는 무엇일까요?   진보와 보수를 또 다른 말로 좌파와 우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하면 진보는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고 이와는 반대로 보수는 새로운 변화를 반대하고 전통적인 것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래도 분단의 역사를 경험했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 간의 대립이 다른 나라에 비해 갈등이 치열합니다. 진영진보 좌파를 친북 인사(북한 정권 체제를 따르는 인사) 또는 속된 말로 빨갱이로 비하되기도 하며 보수 우파는 변화를 거부하기만 하는 머리가 나쁜, 즉 꼴통 보수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초창기 이명박 정부 시절에 정부 부처와 민간단체들이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한국 근. 현대사 교과서의 ‘좌파적’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교육과학기술부에 건의해,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이념 논쟁이 불거진 적이 있었습니다.  보수적인 입장의 여당인 한나라당은 근. 현대사 교과서가 대한민국 건국 과정과 산업화, 경제 발전, 민주주의 확립 등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적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고, 청소년들에게 부정적인 역사관을 심어준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진보적인 입장의 야당인 민주당은 현행 역사 교과서는 역사학계 등의 검증을 통해 확인된 내용으로써, 전체적으로 균형을 갖추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뉴라이트의 실체 역사를 둘러싼 보수와 진보 간의 대립은 자신들의 역사적 관점을 반영한 교과서를 출간하게 되면서 대립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주축이 된 교과서포럼에서 출간된 대안교과서입니다. 

뉴라이트는 말 그래도 직역하면 ‘신우익, 신보수주의’ 입니다. 20세기 중후반에 나타난 새로운 성향의 보수를 뜻합니다. 뉴라이트의 기원에는 1980년대에 등장한 신자유주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영국의 대처 여사나 미국이 레이건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경제 성장을 우선적인 목표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PPT 바탕화면에 있는 커다란 마크가 뉴라이트전국연합 로고입니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보수 진영 인사들로 구성된 대표적인 사회단체입니다. 

그래서 제가 뉴라이트, 즉 보수 진영의 역사학자들이 바라보고 있는 한국정부의 역사를 진보 진영의 관점을 비교해서 정부가 수립된 제1공화국부터 노무현 정부까지 역사적 순서대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제1공화국 (이승만, 1948~1960)   

 


 

며칠 전에 KBS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생애를 소개한 특별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이승만 정권의 과오를 덮어주거나 4.19 혁명의 의미를 왜곡된 내용을 소개해서 다큐멘터리의 공정성에 대해서 논란이 있었습니다. 특히 진보 진영의 학자들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에 대해서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진보 입장에서 이승만 정권은 남북 분단의 원인을 초래했으며 경제적 빈곤에 시달린 독재정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이 대체적으로 많은 편입니다. 12년 간 이어진 정권 유지로 인해 민주주의의 발전을 더디게 했다고 보고 있으며 정권 인사 편성에 친일파를 등용해서 정치적으로 큰 오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보수 입장에서는 이승만 정권을 두둔하고 있습니다. 이승만 정권 때 실시한 농지분배 덕분에 남한이 경제성장을 할 수 있었던 계기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단독 정부 수립을 통한 한미 동맹 강화 덕분에 한반도가 안정적인 안보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 정부가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족특위를 해산시켰으음에도 불구하고 KBS 이승만 다큐멘터리에서는 친일파 청산을 하기 위한 인재 부족을 이유 때문에 하지 못했다고 이승만 정권을 변호하는 입장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제2공화국 (장면 내각, 1960~1961)

  

 

윤보선 제2대 대통령(左)와 장면 국무총리(右)

 

화면에 서로 악수를 하고 있는, 왼쪽에 있는 사람이 제2대 대통령 윤보선입니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장면 국무총리입니다. 일반적으로 제2공화국을 국무총리 이름을 따서 장면 내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여기서 내각이란 내각책임제를 말합니다. 내각책임제는 대통령은 의례적으로(형식상으로는) 국가의 우두머리이지만 실질적으로 국무총리가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는 정권 체제입니다. 

장면 내각은 빈곤한 국가의 형편을 극복하기 위해서 경제제일주의를 내세워 이승만 독재정권으로 인해 시들어진 민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경제개발5개년계획안을 완성하게 되었는데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경제개발계획이 박정희 정권이 제일 먼저 계획을 구상하고 실시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것은 잘못된 사실입니다. 박정희 정권이 계획을 추진한 것은 맞지만 계획안을 제일 먼저 구상한 것은 장면 내각부터 입니다. 장면 내각이 경제개발을 추진하지 못했던 것은 미국의 반대로 무산되었기 때문입니다. 장면 내각은 이를 추진하기 위한 경제적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미국의 원조에 기대려고 하였지만 미국 측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장면 내각은 이승만 정권 및 부정선거 처리문제 등 독재정권의 잔재를 청산하는데 해결하지 못하고 맙니다. 

그래서 진보, 보수 진영의 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실질적인 집권자나 다름없는 장면 총리의 리더십을 비판하는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수 진영 학자들은 경제개발5개년계획안 추친 실패를 4.19 혁명 이후 정치적 갈등(집권당 민주당 내 신. 구파 간의 갈등)과 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어 실현되지 못했다고 국내적인 요인만 설명하고 있을 뿐, 계획 추친하는데 실패하게 만든 외부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반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장면 내각은 미숙한 국정 운영을 거듭하다가 1961년 5월 16일, 한 무리의 군인들이 총과 탱크를 앞세우고 수도 서울을 한순간에 장악해버리고 맙니다. 

 

  

 제3공화국 (박정희, 1963~1972)

  

 

그들이 바로 당시 육군사관학교 소장이었던 박정희의 주도로 육군사관학교 8기생 출신 군인들이 군사력으로 정권을 장악해버리고 맙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5.16 군사정변을 실질적으로는 군사력을 동원한 불법적인 정권 장악, 즉 쿠데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에 장면 내각에 대해서도 설명했듯이 박정희 정권의 경제계발계획은 장면 내각 때 수립된 것을 그저 모방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경제성장 이후에도 빈부 격차는 여전했고, 정계 내 정격 유착 등의 부작용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베트남 파병 결정은 실제로는 전쟁에 참정하는 국제적 명분의 설득력이 없었으며 ‘미국의 용병’ 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보수 진영의 역사학자들은 5.16 쿠데타는 무능한 국가권력을 장악한 근대화 혁명의 출발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은 박정희 소장이 자신이 일으킨 쿠데타를 군사혁명으로 포장하기 위해서 내세운 혁명공약의 내용과 비슷합니다. 혁명공약에는 총 6개의 조항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그 속에는 이전 정권의 부패와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서 반공을 국시로 삼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1963년에 박정희 소장이 실질적으로 정권을 잡게 되면서 실시한 경제개발은 경제 성장으로 인한 국가의 발전을 가능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특히 베트남 전쟁 파병 이후로 경제적 이익을 획득할 수 있었으며 이는 곧 경제개발계획 추진을 위한 재원이 될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제4공화국 (유신체제, 박정희, 1972~1979)

박정희 정권의 유지는 유신체제가 성립된 제4공화국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진보 입장에서는 유신체제는 집권 능률의 극대화라는 명분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무려 18년 동안 절대 권력을 누릴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국정원에 해당되는 국가정보원을 기반으로 야당과 당파 저항세력에 대해서 24시간 감시하고 통제했습니다. 이 때문에 박정희 체제의 통치방식을 ‘정보정치’ 또는 ‘공작정치’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수 입장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단순히 개인적 권력욕 때문에 유신체제를 허용한 것이 아니라고 보고 있습니다. 유신체제가 단행된 1960년대 후반에는 남한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 공세가 강화되었고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와 상의 없이 주한 미국군의 3분의 1를 철군할 계획을 발표했었기에 박정희 정권이 급변한 국제정세에 대응하기 위해서 자주국방 체제, 즉 유신체제를 선포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비록 대의제적 민주주의 정치 원리는 소멸되었지만 권위주의적 통치 덕분에 냉전 시대동안 국가 안보가 유지될 수 있었으며 이를 기회삼아 대한민국이 경제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79년 10월 26일 자신의 동지나 다름없었던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박정희 대통령은 암살당함으로써 종신권력의 꿈은 사라지는 동시에 18년이라는 박정희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제5공화국 (전두환, 1981~1987)
 

 


10.26 사태

 

 제6공화국 (노태우, 1988~1993) 

 

  

 

하지만 전두환 정권도 시민들의 민주화 바람을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제5공화국 헌법을 고수하여 정권의 연장을 획책하려는 정권에 대항하여 대다수 시민들이 6월 항쟁을 전개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대통령직선제 개헌 등이 포함된 6·29 선언을 하게 됨으로써 제5공화국 종식의 계기를 마련하였고 처음으로 여야합의에 따라 대통령직선제, 5년 단임제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국민투표에 의해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 역시 12.12 사태에 참여한 신군부 세력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 다음에 노태우라는 또 다른 신군부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총선에 맞붙게 될 야권의 3후보인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이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어쨌든 대통령에 당선된 노태우는 국민들의 민주화 열풍을 인식했는지 과거 신군부의 행적 처벌과 5.18 광주민중항쟁 진상규명을 위한 5공청문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민주화를 촉진시키는 데 기여를 했지만, 신군부 비리의 진상을 완전히 규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사실 보수 진영에서도 노태우 정권이 신군부 세력을 계승했다는 사실을 인정은 하고 있습니다만, 뉴라이트 대안 교과서에는 5공청문회에 대한 내용이 누락되어 있습니다.
 

  

 

 문민의 정부 (김영삼, 1993~1998) 

 


문민의 정부라고 불리기도 하는 김영삼 정부는 과감히 개혁정잭을 폈습니다. 공직자 재산등록 의무화와 금융실명제(금융기관에서 거래를 실명으로 해야함)를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방자치선거를 실시하게 됨으로써 민주화에 기여했습니다. 

신군부의 핵심이었던 하나회 소속 군인들을 숙정하기 시작하였고 그 일환으로 전두환, 노태우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을 광주항쟁 내란 목적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유신체제에 대해서만큼은 전혀 단죄하지 않았고 여전히 광주학살, 12.12 사태 관련 진상 규명도 미흡했습니다. 결국 무거운 징역형을 선고받은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은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 직후 석방되었습니다.

 
김영삼 정부는 후반기로 갈수록 실정을 거듭하게 됩니다.  

김영삼 정권 하의 최대 비리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한보철강 부도사태는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이 관련되어 있어서 정부의 권위가 급격히 추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보철강 부도 이후 대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부도를 맞게 되면서 외환위기까지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형에 처해졌음에도 석방되었듯이 김영삼 정부가 군부 내의 정치 세력을 완전히 청산했을지는 몰라도 과거 행적에 대한 확실한 진상 규명과 처벌을 제대로 이루었다고 평가하기에는 논란이 있는 부분입니다.  더욱이 외환위기를 오게 한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한보철강 부도사태에 대한 내용이 누락된 점에서는 보수 진영의 역사 기록의 옥의 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민의 정부 (김대중, 1998~2003)  

 



김대중 정부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노벨 평화상과 그리고 햇볕정책입니다. 그 중에 햇볕정책은 처음 도입된 김대중 정부 시절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정책의 실효성을 둘러싸고 호불호의 반응으로 엇갈리고 있습니다.

진보 진영에서는 햇볕정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햇볕정책은 남북한 사이의 긴장관계를 완화시켰으며 화해와 포용을 통해 북한을 개혁, 개방으로 유도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가 남긴 잊어서는 안 될 또 다른 공적은 재정 및 금융 긴축을 통한 경제개혁을 단행한 끝에 IMF 외환위기를 조기에 극복한 것입니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지금까지도 김대중 정부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햇볕정책을 통해 실시한 대북 원조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던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나 연평해전 발발 그리고 북측에 5억 달러가 송금된 대북 송금 사건 논란으로 인해 정책의 목적인 북한 개혁, 개방 유도는 실패였음을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지 얼마 안 된 1998년에 일본이 기존의 한일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자 정부는 일본의 입장을 수용한 새로운 한일어업협정을 맺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보수 진영 학자들은 이 협정으로 인해 한일 간의 독도 영유권 문제를 야기시켰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노무현, 2003~2008) 

 


 

노무현 대통령은 인터넷 선거 혁명을 통해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고, 참여정부를 표방한 노무현 정부에 있어 ‘온라인 국민 참여 포털’ 구축은 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전임 대통령이었던 김대중의 뒤를 이어 햇볕 정책에 이은 대북 포용 정책을 계승하여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2000년 6.15 공동선언을 계승한 10.4 선언을 이끌어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전시 작전 통제권 환수를 추진하여 2012년 4월 17일에 환수받기로 했습니다. 이는 한국 전쟁 이후 군사 작전 통제권을 전적으로 행사하지 못하여 자주 국가로서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해온 것을 시정하게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임기중 대통령 선거에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신행정수도 이전' 에 대하여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내림으로써 타격을 입게 됩니다. 이라크 파병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여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는 결과를 낳았으며, 유력 일간신문을 비롯한 언론과 대립하여 임기 내내 언론으로부터 호의적 반응을 얻지 못하는 등 보수 진영으로부터는 친북 좌파라는 비난을, 진보 진영으로부터는 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에 시달렸습니다. 그래서 보수 진영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권력 기반이 취약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북한 문제를 외교적으로 잘 관리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반면에 일각에서는 대북 저자세 외교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다. 민간 차원의 북한 반대 운동을 탄압하여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였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보수 성향 민간단체의 인공기 소각 퍼포먼스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북한에 사과한 것에 대해서도 대북 굴종 외교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전시작전통제권을 단독으로 행사한다는 것은 오랫동안 이어진 한미 동맹 파기를 의미하며 북한에게 군사력으로 흡수통일 될 우려를 표하기도 합니다.

  

 

 현재 이명박 정부는... 

 


 

그러면 마지막이자 현재 두 진영이 바라보는 이명박 정부의 모습에 대해서 남았는데요....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대한 상반된 입장으로 충돌되고 있는 최대의 논점이라면 아무래도 4대강 사업일 겁니다. 진보 진영에서는 국민들의 세금만 축내고 있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하고 있고요... 정부의 미디어 및 언론통제에 대해서는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현 정부에서의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 간의 대립이 팽팽한데요...

 
최근에 정부 부처와 보수 진영 민간단체들이 고등학생들이 배우고 있는 한국 근. 현대사 교과서에 ‘민주주의’ 를 ‘자유민주주의’ 로 수정해달라고 교육과학기술부에 건의해,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이념 논쟁 중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 라는 용어의 의미에 대해서도 지금도 상당한 정치적 논란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군사독재 정권이 권위주의적 반공주의를 미화하기 위해 이와 같은 단어를 사용한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래서 진보 진영에서는 일부 보수 진영이 쓰는 '자유민주주의' 라는 단어에 지금도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냥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선호합니다.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대한민국 정체성을 이유로 ‘자유민주주의’ 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저 만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입니다. 뉴라이트 교과서들을 담은 꾸러미에는 임시정부 법통 무시, 독재 미화, 이명박 치적 홍보 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뉴라이트 역사 교과서에 실려 있는 것들이며 훗날 미래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 뉴라이트 교과서에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만 소개될 수도 있습니다.  

  


 끝나지 않은 이념 대립  

지난 10년간 교과서가 바뀔 때마다 정권의 ‘이념적 성향’ 에 맞는 내용을 넣기 위해 각자 목소리를 높이며 충돌했습니다.  편향 교과서를 비판하겠다는 교과서포럼은 대안 교과서를 출판했지만 편향 논란을 극복하겠다는 의도를 부합시키지 못했습니다. 제가 한국정부사를 조사하고 공부하면서 교과서포럼에서 만든 역사교과서를 쭉 훑어보면서...

역사적으로 맞는 내용도 있었지만 제가 보기에도 확실하게 검증이 되지 않는, 좀 애매모호한 내용도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학술적으로 논쟁이 될 정도로 결론이 나지 않은 내용은 다양한 관점을 같이 비교, 소개했으면 좋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내용의 관점을 인식하고 이해하면 좋을텐데 보수, 진보 이 두 진영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신념을 그대로 유지하고 고수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생각과 다른 입장을 전혀 알아보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말이 무조건 맞다면서 상대방을 무시하고 헐뜯고 욕하기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보수는 진보에게 북한에 넘어가서 아부나 떨 줄 아는 빨갱이라고 부르고 진보는 또 보수에게 앞뒤 꽉 막힌 꼴통이라고 비난합니다.  

하지만 저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이념 간의 대립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지금도 좌. 우 이념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가 나름대로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고정적이면서도 자신에게는 익숙한 현상에만 주목하고 그것만 가지고 사회를 인식하려고 합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난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 온전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철수 作)

이제 한국정부사를 조사하면서 느낀 저의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면서 발표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여기에 커다란 독수리 한 마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독수리에게 한 쪽 날개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국, 한 쪽 날개가 없는 독수리는 제대로 하늘을 날지 못한 채 땅바닥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작년에 돌아가신 리영희 한양대 교수는 진보와 보수 이념의 틀에 갇힌 지식인과 시민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

 

즉, 이 말 속에는 세상을 균형 잡힌 시각을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 쪽 날개가 없는 새는 하늘을 제대로 날 수가 없듯이 인간 역시 한 쪽 시선에만 바라볼 줄 아는 외눈박이가 된다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역사를 둘러싼 이념 논쟁은 끝낼 수 있는 것은 역사를 기록하는 객관적인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져야하는 역사가의 임무도 중요하지만 더욱 더 중요한 것은 기록된 역사를 바라보고 공부하는 학생과 시민들의 태도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정부론 1주차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도 말씀하셨던 것처럼 '아는 것' 만이 힘이 아니라 '진실을 왜곡하지 않은 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 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요구되고 있는 힘입니다. 저는 지금과 같은 우리 사회에 필요하는 힘이라는 것이 이념으로 덧칠된 역사를 제대로 알고 볼 줄 아는 균형적인 시각을 가진 안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부족한 자료에다가  긴 시간의 발표임에도 끝까지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후 국무총리였던 최규하가 대통령 권한대행 자격으로 얻게 되었고 그 해에 바로 정식으로 제 10대 대통령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하지만 최규하 대통령의 권한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노태우 9사단장을 주축으로 한 하나회라는 신군부 세력이 일명 12.12 사태를 일으켜 군사력을 장악하고 맙니다. 이렇다보니 최규하 대통령은 신군부 세력에 의해서 제대로 된 권한 한 번도 행사하지 못한 채 이듬해 1981년에 역대 가장 짧은 임기 기간(약 8개월 정도)이라는 기록을 남긴 채 사임하게 됩니다. 정식으로 사임하기 전까지는 최규하 대통령은 신군부 세력에게 휘둘린 그저 허수아비 대통령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군부, 즉 군인들이 주축이 된 세력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면 박정희 대통령의 5.16 군사정변과 유사하면서도 전두환 정부는 유신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경제성장을 최우선 정책으로 추구한 점이 유사했으며 반대 정치세력을 탄압했고 저항하는 광주 시민의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5.18 광주민중항쟁은 민주화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보수 입장에서는 유신체제의 연장은 전두환 정권의 원인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원집정제를 시도한 최규하 대통령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원집정제란 대통령 중심제와 의원내각제의 요소를 절충한 정부형태를 말합니다. 대통령은 국방과 외교에 관한 권한을, 총리는 내정에 관한 권한을 나누어 가지다가 국가 비상시가 되면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두환 정권 시절 때 이루어진 시민, 학생 주도의 민주화 운동들은 급진적 좌파 세력이 참여, 주도했고 이를 계기로 독자적 정치 세력으로 두각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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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1-10-14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난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 온전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감동.. 새 그림 퍼갑니다.

cyrus 2011-10-15 19:29   좋아요 0 | URL
네~~ ^^

마녀고양이 2011-10-14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오늘 해야할 부분이 산더미라 장문을 다 읽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금방 쉽게 읽혀지네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자체도 사실 주관적(현상학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흔히 fact만 보라는 충고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과연 fact의 짜집기는 fact가 맞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의 의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양날개로 중도를 거쳐 날아야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한 일이죠. 저는 시계추와 비슷한게 역사가 아닐까 싶어요.
역사 뿐 아니라 모든 분야의 이론이 모두 그렇죠. 정-반-합. 그러나 합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정으로 변질되고, 그러면 또다른 반이 나오겠죠...
융통성있게 흐르는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최근 많이 해봅니다.

아........ 시루스님이나 저나 공부 산더미인데, 털썩!

cyrus 2011-10-15 19:32   좋아요 0 | URL
ㅎㅎ 글이 길어서 그런지 발표했을 때도 시간이 길어버렸어요.
원래 20분 정도 잡았는데,,, 해보고나니 30분 걸리더군요. ^^;;

참고로 저는 다음주 목요일부터 시험 시작이랍니다. 며칠동안 공부하느라
잠 한 번 제대로 못 잤어요 ^^;;

아이리시스 2011-10-14 1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그 [영원한 라이벌 김대중 vs 김영삼] 추천 받고는 사려는 중인데, 한국 근현대사 이 책도 기억해둬야겠어요. 그래서 모든 한국사책 처음 시작할 때, 절대주의,상대주의,사실로서의 역사, 기록으로서의 역사. 이런 것들이 나오잖아요. 믿고 안믿고는 우리의 자유지만, 그 뒷배경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반드시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데 훗날 누군가가 내가 이렇게 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는 진짜 사실과 의도를 모를까봐 걱정이 돼요.

아........ 시루스님이나 마고님이나 공부 산더미, 안녕~~~~~~~~~~~~~~

cyrus 2011-10-15 19:34   좋아요 0 | URL
참고로 한국정부에 관한 책은 강준만 씨가 쓴 한국현대사도 추천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노무현 정부와 관련된 내용의 책이 나왔더군요.

아이리시스님도 공부 산더미에 마주하고 있는거 아닌가요? ^^
 

 

 

 

 

 

 

 

 

  

  

  욕설의 리얼리즘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욕설의 리얼리즘' 이라는 제목의 편지글이 수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욕설은 부정적인 것이며 순화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신 교수의 '욕설의 리얼리즘' 에서는 그러한 통념을 뒤집으면서 욕설의 긍정적인 가치를 발견하고 있다.  이 글을 쓴 시기였던 1982년은 통혁당 사건으로 인해 교도소에서 복역중이었다.  신 교수가 욕설을 긍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오랜 교도소 생활을 했던 특수한 상황에서 기인하고 있다. 

즉, 교도소에서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욕설을 자주 사용하게 되는데, 그로부터 욕설에 대해 새로운 가치와 기능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욕설이 서민적 전통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추상적 언어만을 고집하는 인텔리들의 언어와는 차원을 달리한다는 전제 아래, 욕설을 통해 세상의 사실적 모습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바로 신 교수가 욕설에서 발견한 '리얼리즘' 이다. 

   

 

 싸운 것도 아닌데...  학생 1명이 4시간동안...

욕설(비속어)이란 상스럽고 거친 말로 어떤 대상을 아주 얕잡아 보고 경멸하는 태도로 하는 말이다.  신 교수의 말대로 욕설을 사용함으로써 인간은 심리적 쾌감을 느낄 수 있지만,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며 정서적인 면에서도 나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하지만 욕설이 상대방을 불쾌감을 줌으로써 인간 관계를 해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의바른 말보다 욕설을 통해서 오히려 상대방에 대한 친근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게 되는 특수적인 기능도 있다.  신 교수는 '욕설의 리얼리즘' 에서 이를 '감정의 비상함이 역설적으로 강조되는 시적 효과' 라고 표현하고 있다.  

욕설을 통해서 친근감을 표현하는 대화 방식은 여자보다는 남자들 간의 관계에서 볼 수 있다. 

친구를 만나면 이름을 먼저 부르는 대신에 '이 새끼' 라는 욕설이 나오면서 대화가 시작된다. 그리고 대화에 몰입하게 된다면 입에 담지 못할 욕설들이 쏟아진다.   대화의 주제나 내용의 분위기에 상관없이 욕설로 시작해서 욕설로 끝난다.  그리고 조그만 일에도 화를 내거나 짜증이 날 때도 욕설이 나온다.   이렇듯, 욕설은 부정적인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상 생활 속에서 절대로 빠질 수 없는 너무나 친숙한(?) 어휘가 되어버렸다.       

 

필자 역시 일상 생활에 욕설을 조금(?) 하는 편이다.   

정말로 화가 날 때는 나도 모르게 'ㅆ' 이 들어간 욕이 튀어나올 뿐, 친구들이랑 대화할 때는 욕설을 안 쓰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예전에 대화하는 도중에 말해선 안 되는 욕설이 나와 크게 지적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고치지는 않았지만 만약에 그런 지적을 받지 않았다면 욕설이 나오는 언어 습관이 사회 생활하는데 악영향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최근에 한 언론에서는 초, 중,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룻동안 대화를 하면서 욕설을 몇 번 하는지 실험을 하였다.   등교 시간부터 점심 시간까지 단 4시간동안 학생들의 대화를 녹취하였다.  그 결과 일상에서의 학생들의 언어 사용 실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싸운 것도 아닌데… 학생 1명이 4시간동안 385번 욕설] 

조선일보  2011년 10월 3일자 

 

 학생들은 왜 욕설을 하는가?   

 
이처럼 요즘 청소년들은 성별이나 성적, 생활태도에 상관없이 욕설을 자주 한다. 욕을 하는 아이나 듣는 아이나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을 보면 뜻도 제대로 모를뿐더러 욕설을 하면 왜 안 되는지조차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학생들의 언어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욕설이 심한 학생들은 학교생활기록부 비교과 영역에 기록하고, 대학 입시의 학교장 추천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한다.     

글쎄...   무조건 벌을 준다고 학생들이 욕을 덜 하게 될까?

학생들이 자신의 언어 습관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않는 이상 쉽게 고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제도가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교사들이 수많은 학생들의 대화를 일일이 듣지도 못할뿐더러 욕 하는 정도를 기준을 잣대 삼아 평가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다.     

 

 


  

 

 

 

 

   

 

 

 

'욕설' 과 관련된 신문기사를 보면서 J.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 가 머릿속에 떠올려졌다.    

세상 어른들의 가식과 허위, 탐욕을 견뎌내지 못하고 감수성 예민한 이 열여섯 살 소년은 말만 하면 욕설이 나온다.  지금은 샐린저의 소설은 청소년에게 권장하는 추천도서가 되었지만 출간 당시만 해도 소설 속 주인공의 거침없이 내뱉는 욕설 때문에 미국의 많은 학교에서 금서로 지정된 적도 있었다. 

홀든 콜필드는 네번째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뉴욕의 거리를 헤맨다. 퇴학사유는 성적불량이지만 그 심층에는 소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성장과정의 혼란이 자리하고 있다. 부유한 계층에 속했지만 주인공은 현대사회의 추악한 속물 근성과 지식인 계층의 위선에 염증을 느낀다.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조차 없는 홀든이 혼란스러운 정신을 달래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줄 수 있는 자극적인 욕을 해댈 수도 있다.  타이트한 입시 교육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공부 스트레스를 욕설 대화로나마 해소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청소년들의 비뚤어진 언어 습관과 문화가 좀체 고쳐지지 않는 것은 홀든이 겪고 있는 현실처럼 비이상적인 사회적, 심리적 환경이 배경에 있기 때문이다. 집이나 학교, 사회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는 인식을 받거나 혹은 자신에게 펼쳐질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되면 그 불만이 욕설이나 비속어로 발전하게 마련이다. 

'언어는 사회의 거울' 이라는 말처럼 청소년들의 욕설문화는 청소년들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정, 학교, 사회의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고 함께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대화의 재미를 더하는 추임새나, 또래 집단에서 남보다 강해 보이려는 화법 정도로 알고 있다면 욕설을 하지 말아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들어 단호하게 지도해야 한다. 듣는 이의 처지에서 생각하게 하거나 서로 높임말을 쓰도록 규칙을 만드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올바른 언어습관로 개선되는 것은 단기간에 되는 것이 아니다.  가정, 학교, 사회에서 어린 시절부터 관심을 가지고 올바른 방향을 잡아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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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10-09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쩐다>라는 말을 우리 아이들도 써요. 그게 좋게 들리지 않는데도 아이들 사이에선 그런게 그냥 문화처럼 여겨지나봐요. 어제는 딸이 야리는게 뭐냐고 묻대요.
정말 습관이란건 오랜 시간 걸려 들여지는 건데, 아이들은 나쁜건, 금방 배워요. 튀어 보이고 싶은 마음, 또래에 속하고 싶은 마음, 이런 것들 때문인 것 같은데, 저도 요새 고민이 많은 부분이라 잘 읽고 가요~

cyrus 2011-10-13 17:21   좋아요 0 | URL
역시 어느 지역에 가도 그런 말을 쓰는군요 ㅎㅎ 사실 저도 일상적인 대화를
하다보면 '쩐다' 라는 말이 나오거든요 ^^;;

stella.K 2011-10-09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걸 이제야 다루고 있다는 게 참 그래.
그렇지 않아도 지난 금요일이던가? 한글날을 맞아
우리말 실태에 대해서 나왔는데 청소년은 한단어 걸러서 욕 아니면 비속어를 한다고 하더군.
이제부턴 아이들의 언어 습관도 성적에 반영을 한다니 욕이 좀 줄어들까?
늦었지만 다행이란 생각이 들긴하는데 실효성이 얼마나 있을지 그것도 의문이야.

cyrus 2011-10-13 17:23   좋아요 0 | URL
한글날 오기 전부터 조선일보에서만 청소년들의 욕설 실태에 관한
기사문이 나왔더군요. 정말로 청소년이나 제 또래의 대화는
욕부터 시작해서 욕부터 끝나요. ^^;;
그런데 욕을 한다고해서 제제를 가해도 쉽게 고쳐지지 못할거 같아요.

맥거핀 2011-10-10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청소년들 말하는 걸 들어보면 욕설이 많기는 많아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 보면, 제가 예전에 중고등학교 다닐때도 얘들이 그 정도는 썼던 것 같기도 하니까 이것이 그 나이때만의 일시적인 현상일까..? 뭐 그런 생각도 들구요. 나이가 들면서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또 대체로 욕하는 것이 결국 자기를 깎아먹는다는 걸 아니까..뭐 그렇겠지요. 어떤 기사에서보니 청소녀들한테 그 욕의 어원을 자세히 설명해줬더니 안 쓰게 되는 효과가 있더라 그런 것도 있더라구요.

cyrus 2011-10-13 17:24   좋아요 0 | URL
네, 우리가 사용하는 욕설의 의미를 알게 되면 정말로 좋지 않는 의미가
많아요.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나 요즘 청소년들은 욕설의 나쁜 의미를
모른채 사용한다는게 문제죠. ^^

마녀고양이 2011-10-12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솔직하게 욕설까진 아니더라도
비속어를 말하다보면, 잼나긴 해요. 저는 한때 (지금도?) '쌩깐다' 라는 말에 재미들려서.

버스 타다보면 정말 중학생들은 장난 아니더라구요.
여학생이고 남학생이고 'X발'이 안 들어가면 문장 형성이 안 되더군요.
머... 저는 한때이고 패거리 문화가 한창인 사춘기라 그렇다고 생각은 하지만,
말이 험해지면 행동도 역시 험해지기 쉬워진다는게 문제라는 생각은 들어요.

시루스님, 요즘 바쁘시죠? ^^

cyrus 2011-10-13 17:2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실 대화하는데 욕설이 없으면 뭔가 이상하고요 ㅋㅋㅋ
저는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데 욕설은 안 하는데, 정말로 화가 나고
짜증나면 욕설이 튀어나와요. 기분이 안 좋을 때 욕설이라고 하면
화가 좀 풀리거든요 ^^;;

다음주부터 시험기간이라 뒤늦게서야 댓글 확인하게 되었어요. ^^;;
 

 


한국정부론 3주차 수업에서는 청와대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청와대는 파란 지붕으로 된 대통령의 관저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과연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는 청와대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으며, 홈페이지를 즐겨찾기 설정하여 자주 방문하는 사람이 있을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청와대 공식 트위터와 페이스북도 개설되어 있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몇 몇 국민들 중에는 청와대에 공식 홈페이지가 있다는 사실도 모를 수도 있겠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현직 대통령의 모든 일정, 국정뉴스, 국정자료 그리고 역대 대통령들의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료들까지 확인할 수 있다.  며칠 전에 시작한 한국정부사 관련 과제를 하는데 청와대 홈페이지 속 자료들 덕분에 금방 끝낼 수 있었다.

홈페이지 속 수많은 사진과 자료 중에서 가장 눈여겨 본 것은 5대 국정지표 였다. 국정지표란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 정부가 지향하려고 하는 일종의 국가적 청사진 혹은 비전(vision)이라고 할 수 있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앞으로의 국정 운영을 위한 지향점을 제시하기 때문에 정부에 따라 국정지표의 내용에 차이가 있다.  

글로 밟히기기에는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지 올해 4년째 되어가는데 정부의 국정지표를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5대 국정 지표는 다음과 같다.


1. 섬기는 정부, 2. 활기찬 시장경제, 3. 능동적 복지, 4. 인재대국, 5. 성숙한 세계국가


이명박 정부가 지향하는 ‘섬기는 정부’ 는 지방분권을 확대하여 지방경제를 살리고, 나라살림을 알뜰히 꾸려나갈줄 아는 유능한 정부의 모습이다.   ‘시장경제’ 에서는 신 성장동력과 서비스산업을 키우는 동시에 ‘녹색성장’ 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추구한다. ‘능동적 복지’ 는 모든 국민, 특히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맞춤형 복지 마련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정부가 바라는 ‘인재’ 는 과학기술 발전에 필요한 핵심 인재이며 이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교육복지의 확태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성숙한 세계국가’ 의 모습은 한. 미 동맹 관계를 구축하면서 굳건한 안보체제를 확립하며 국익을 우선하면서 세계에 기여하는 실용외교를 표방하고 있다.

5대 국정지표 내용 속에는 국정을 올바르게 운영하기 위한 20가지 전략과 그 전략에 대응하는 100개의 과제를 포함하고 있다. ‘친 서민 중도실용’과 ‘공정 사회’ 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표현할 수 있는 정부 국정 운영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정지표 속에는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지향점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으며 훗날 이 국정지표 속 전략과 과제들을 통해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새롭게 제시되는 국정지표, 정부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국민이라면 꼭 확인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국정지표 속 과제와 전략들 중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공감할 수 있으며 국가의 발전을 위해서 정부가 꼭 나서야하는 중점적인 내용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정부의 국정지표 속 내용들은 분야별 편차가 매우 크다는 점다. (지금도 이에 대한 현재 여론과 국민의 평가는 극명한 상황이지만) 한-미 공조회복과 G20 서울 정상회의 등을 통한 국제위상 제고 등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 중에서 좋게 평가를 받아야 할 부분이다.

반면 첫 번째, 두 번째 국정지표인 ‘섬기는 정부’ , ‘활기찬 시장경제’ 와 관련된 빈부격차 해소, 국민통합, 정치개혁, 물가 등 서민생활 안정과 일자리 창출 분야에서는 매우 부족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국정지표 속 내용과는 상반될 정도로 많이 부족한 부분은 ‘국민통합과 소통’ 과 ‘신뢰사회 구축의 미완성’ 이다. 소통의 부재는 이 대통령 취임 이후 3년간 계속 되어온 과제이면서도 여전히 난제로 남아 있다. 광우병 사태, 구제역, 동남권신공항 문제 등 국론 분열이 심각한 대형 현안에 관해서 대처가 미흡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리더십의 부재다. 국민과의 소통 부재는 곧 국민들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신뢰정부’ 완성에 마이너스가 되는 요인이 되었다.
 

 

李대통령 "우린 선거때 돈 안받아 도덕적으로 완벽" 

조선일보  2011년 10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은 30일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우리 정권은 돈 안 받는 선거를 통해 탄생했다는 특성을 생각해야 한다"면서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므로 조그마한 허점도 남기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임태희 대통령실장 주재로 열린 확대비서관회의에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당당하게 더 적극적으로 일하자"며 이같이 말했다. 월 1회 대통령실장이 주재해서 열리는 '청와대 조회'같은 행사에, 이 대통령이 전례 없이 참석한 것이다. 최근 청와대·측근 출신들이 잇따라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한 경계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생활이라는 게 (높은 도덕적 기준이 요구되는데), 고통스러운 기간을 통해서 긍지와 보람을 찾아야 다 끝나고 나서 힘들게 일한 보람이 생기는 것 아니냐"면서 "국가 내에서도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데 가진 사람들의 비리가 생기면 사회가 좌절한다. 그중 (가진 사람)에서도 가장 높은 (도덕적)기준이 적용되는 게 청와대"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임 실장은 "청와대는 최종 책임을 지는 곳이고 무한 책임을 지는 곳"이라며 "(최근 일련의 일들을)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으로 삼자"고 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정권이 ‘도덕적으로 완벽하다’ 라고 자찬한 발언이 무색하게 할 정도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기 전부터 이명박 정부를 이루고 있는 대통령 측근들의 권력형 비리들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 정권을 보면 임기 2년여 남겨놓은 시점부터 친인척, 측근들의 대형비리가 터져 나왔다.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자신의 정치적 업무를 스스로 섣불리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보다는 레임덕 현상에 유념해 임기 후반 기강확립에 한층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과거의 잘못된 일에 대해서 스스로 반성하기보다는 정부의 명예를 흠집내는 불미스러운 일을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대로 척결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민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리더십으로는 여러가지 자질이 필요하지만 만 기본적으로 갖춰야하는 것이 역사적 안목이라고 생각된다.  단기적 업적 치중보다 100년 뒤 역사가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해 거시적으로 바라볼 줄 알고 실현가능한 장기적인 국정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남은 임기 기간에도 정부가 물가관리 등 경제문제, 소통 강화를 통한 국민통합과 더불어 통일에도 철저히 대비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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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1-10-05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도서관에서 국정지표를 담은 책자를 받았어요. 여러모로 필요이상으로 공을 들인 책자였는데 뭐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역시 빈깡통이 요란함을 또 한 번 느꼈습니다.
역사적 사명을 갖고 이 땅에 태어나신 그 분께서 소명소명하는데 오로지 손에 잡히고 눈에 당장 보이는 것에만 소명을 다하시니...이 어인 일일까요?....
역사에 이름 석 자 남겨두실라고 업적에 너무 목을 매시는 것 같아 보기 안 좋아요. 거기다 변명까지 늘어 놓으시니....전과 14범께서....
우리가 뭘로 보이시나?... 눈 가리고 아웅을 다 하시게... 도덕은 입에 올리시면 안될 것 같은데....참 세상은 주객이 전도되어도 그냥그냥 잘도 돌아가니...

cyrus 2011-10-07 17:29   좋아요 0 | URL
책자도 있군요. 뭐 아직 임기는 남았지만 그 사이에 국정지표 속 과제와
전략들을 실현시키기에는 늦은 감은 있네요. ^^;;

이화 2011-11-28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디로 어가는지 몰라서 여기에글을 올려봅니다 제가전화하니 좀있다 문자가왔는데 접수하라고하는데 어디서어떻게 들어가 접수를하는지 아직컴에익숙치않아 잘모르겠고 그래서 전화번호를 남겼 거든요 꼭접수되었으면하는데요...

cyrus 2011-11-29 12:28   좋아요 0 | URL
댓글 내용이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네요 ^^;;
 

  

 하나의 나라, 두 개의 역사

이번 주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창하고 사실은 '한국정부론' 이라는 수업에서 내준 과제를 하고 있다.    과제의 주제는 이렇다.  '내가 만드는 한국정부사 ' 다.   

우리나라 정부의 역사는 1948년 제1공화국 수립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63년나 되었다.  짧으면서도 긴 그 세월의 역사를 정리한다는 게 쉽지 않게 느껴지지만 생각보다는 어렵지가 않다.  나 같은 경우에는 제1공화국에서 오늘날 이명박 정부까지 일어난 굵직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연표식으로 정리하였다.   시간적 순서로 배열된 단순나열식 연표보다는 각 정부 시기 때 일어난 사건들을 다시 정치, 사회, 경제면으로 분류하여 나름 입체적으로 한국 정부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게 구성하였다.  

지금 과제가 80% 정도가 완성되었는데 연표만 해도 A4 용지 8장 정도를 차지한다.  이번 과제에는 형식의 기준이 정해진 것이 없다보니 아마도 연표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과 과제 결론까지 첨가한다면 10장 이상은 거뜬히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과제의 제목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두 개의 한국정부사' 로 선택했다.   왜냐하면 보수진보 입장에서 바라보는 한국정부사의 쟁점에 대한 내용을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역사를 둘러싼 보수와 진보 간의 팽팽한 대립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은 정권에 따라 변화해왔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까지만 해도 반공 이데올로기 시각에서 현대사를 이해했지만,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변화면서 반공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다양한 시각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양한 관점이 등장했는데도 현대사는 크게 보수와 진보 진영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는 쟁점 가운데 하나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정부 부처와 민간단체들이 고등학교 2~3학년이 배우는 한국 근. 현대사 교과서의 ‘좌파적’ 내용을 수정해달라고 교육과학기술부에 건의해,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이념 논쟁이 불거졌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근. 현대사 교과서가 대한민국 건국 과정과 산업화, 경제 발전, 민주주의 확립 등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묘사하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고, 청소년들에게 부정적인 역사관을 심어준다고 주장한다. 반면 야당인 민주당은 현행 역사 교과서는 역사학계 등의 검증을 통해 확인된 내용으로써, 전체적으로 균형을 갖추고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검정교과서 개정 문제 과정에서 ‘자유민주주의’ 용어 표기에 대해서 또다시 진보와 보수 사이에서 정치적 논란을 불러오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현재에도 상당한 정치적 논란을 불러오고 있는데, 이는 과거 군사독재 정권이 권위주의적 반공주의를 미화하기 위해 이와 같은 단어를 사용한 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진보 진영에서는 일부 보수 진영이 쓰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에 지금도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그냥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일부 보수 진영에서는 대한민국 정체성을 운운하며 ‘자유민주주의’ 를 강조하고 있다.     

 

 

 

 

 

 

 

 

 

 

역사를 둘러싼 보수와 진보 간의 팽팽한 갈등은 자신들의 역사적 관점을 반영한 교과서를 출간하게 되면서 첨예한 대립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주축이 된 교과서포럼에서는 좌파적 내용을 담고 있는 교과서의 문제점을 개선한 '대안교과서' 가 출간되었다.

지금도 한국정부론 과제를 위한 자료를 찾기 위해서 보수 진영을 대변하고 있는 역사교과서로 교과서포럼에서 나온 '대안교과서' 와 반대로 진보 진영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출간한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 이 두 권의 책을 참고자료로 읽고 있다.  

현국현대사를 다룬 이 두 권의 책을 같이 읽어보게 된다면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사의 주요 쟁점들이 서로 상반된 내용으로 기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 대한민국 건국의 정당성과 분단 책임     

진보 진영 역사학자들은 1948년에 좌익과 중간파의 통일정부 수립 노력이 있었으나 미군정과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고집하게 되었고 중립화 통일 노선을 택하지 못한채 분단노선을 결정한 것은 분단을 고착화되는 원인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미. 소 공동위원회가 실패되기를 바랐던 이승만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가장 먼저 단독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일명 '정읍 발언' 을 발표하였다.   

 

 

 

이승만의 '정읍발언' 이 게재된 신문기사   

   
 

이제 우리는 무기 휴회된 미소공동위원회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될 것이다.    

(<대안교과서 pp 40)

 
   

 

그는 통일정부 수립이 여의치 않으니 남한만이라도 임시적으로 단독정부를 수립하자고 연설했다.   그러나 민족주의 보수세력이 집결한 한국민주당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은 이승만의 주장을 반대했다.    그리고 이승만의 판단과는 다르게 오히려 미군정은 좌우합작을 추진하는 김규식 등의 개혁적인 중도파 정치인을 지원했다.   하지만 미국과 좌우합작위원회 간의 의견 차이로 인해서 좌우합작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와는 반대로 보수적 역사학자들은 대한민국이 분단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승만의 독단적인 남한 단독정부 수립이 아닌 오히려 남침을 준비하기 위해서 소련의 스탈린의 지시로 남한보다 먼저 일방적으로 단독정부를 수립한 북한의 김일성에 책임이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에 비판적인 정치 세력은 지금까지도 이승만의 이 발언(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시사한 이승만의 '정읍발언')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과 그에 따른 남북분단의 단서를 연 것으로 비판하고 있다.    (중략)     무엇보다도 이러한 비판의 가장 큰 문제점은 당시 사실상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활동을 개시한 쪽이 북한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략) 

이처럼 사실상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공산주의 체제의 건설을 목적으로 사유재산을 몰수하는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의 토지개혁을 단행함으로써 남북 분단의 단초를 연 것은 북한의 소련군과 그에 협력한 공산주의자들이었다.    (<대안교과서> pp 140)



 

 2)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   

 

  

박정희 대통령 다음으로 지금까지도 극명한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는 

우남 이승만 (1875~1965) 

  

보수 진영에서 말하고 있는 이승만의 정치이념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자유민주주의, 반공주의, 반일정책. 북진통일로 요약할 수 있다.  특히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삼은 정치이념에서 비롯된 비타협적 반공주의는 대한민국 발전의 기틀을 잡는데 중요한 공훈을 세웠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수많은 후진국의 정치적 지도자 가운데 이승만처럼 철저한 자유민주주의의 신봉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의 비타협적 반공주의는 신생 대한민국을 정치적으로 통합하고 동질적 국민의식을 배양하는 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반공의 이름으로 반대파가 탄압되거나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인권이 부정되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었다.   (중략)    이러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라시한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한 공산주의 국제세력의 공세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하고, 대한민국의 기틀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올바로 잡는 데 동시대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커다란 공훈을 세웠다.   

(<대안교과서> pp 158)

 

하지만 이에 대한 입장에서 진보 입장의 역사학자들은 이승만 정권은 분단과 빈곤으로 점철된 독재정권이자, 권력 연장을 위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으며 정권 인사 편성에 친일파를 등용해 민족 정기를 훼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회 프락치 사건에 연루된 김약수 국회부의장    

1949년 5월 20일 이문원 등 세 명의 현역 의원을 시작으로  

15명의 국회의원은 외국군대철수안, 남북통일협상안 등  공산당의 의견과 일맥 상통하는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역사문제연구소, pp 92)  

 

무엇보다도 여기서 눈여겨 볼 점은 대안교과서에서는 반공주의 노선의 부작용을 간략하게 언급한 부분이다.     이승만 정권의 긍정적인 평가를 지면 한 장으로 할애한 정도에 비하면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은 턱없이 부족하다.    

역사문제연구소에 기획한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에서는 좌익과 반대파에 대한 이승만 정권의 대대적인 탄압의 예로 국회 프락치 사건반민특위 습격사건 등을 언급하고 있지만 대안교과서에는 국회 프락치 사건이, 그리고 그 사건에 연루된 김약수의 이름마저도 단 한 줄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 

 

  

 3) 박정희 정권 시절의 경제 성장에 대한 평가  

 

 

경부고속도로 개통을 기념하기 위해서 도로에 샴페인을 뿌리는 박정희 대통령 

(사진출처: 한국경제)  

 

대안교과서에는 박정희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한국 사회에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성장의 잠재력을 최대로 동원하는 역설적 결과' 를 낳았다고 정의하고 있다. (pp 186)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 성장 정책은 그 당시로서는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 성정과 분배는 병행이 불가능했으며, 파이를 키우는 정책이 당시로서는 현실적이었다고 시사하고 있다.   전태일 분신사건 등과 같은 박정희 정권 시절의 경제 성장의 어두운 그늘이라 할 수 있는 역사적 기록들도 소개하고 있지만 경제개발제체의 전개 및 성과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진보 진영의 역사학자들은 성장 중심의 박정희 시대의 경제 정책은 장기 집권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이고, 경제개발계획은 장면 내각 정부에 수립된 것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며 경제 정책의 달성 결과에 치중한 편협된 평가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박정희 정권의 통치방식에 대한 교과서포럼과 역사문제연구소에서 바라보는 평가도 엇갈린다.  교과서포럼은 서양식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선 민족적 또는 행정적 민주주의를 수립을 기여한 점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반면에 역사문제연구소는 일체의 민주적 행차를 무시한 '정보. 공작 정치의 최고봉' 이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두 차례의 큰 전쟁 과정에서 군인으로 교육받고 입신한 그(박정희)의 정신세계는 타협과 조정의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었다.    (중략)    그는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데 소수 엘리트의 지도적 역할을 중시하였다.  그는 민주주의에 관해 개인의 이기심에 기초한 민주주의로서 민족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하는 데 도움이 되는 민족적 또는 행정적 민주주의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대안교과서> pp 186) 

 

박정희는 철저하게 중앙정보부를 정치 통제의 가장 중요한 도구로 사용했다.  정보부는 박정희 체제를 유지. 강화시키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거의 모든 문제에 개입했다.  이 때문에 박정희 체제를 '정보정치', '공작정치' 라고 부르기도 한다.    (중략) 

박정희는 국회나 행정부를 통한 정치운영과 같은 일체의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했다.  그는 유신 선포 직후에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은 도리어 안정을 저해하고 비능률과 낭비만을 일삼아왔으며 정략과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 라고 말할 정도로 민주적인 토론과 합의 절차를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한국현대사> pp 257)


   


 올바른 역사인식 확립의 중요성 

지난 10년간 교과서가 바뀔 때마다 정권의 ‘이념적 성향’ 에 맞는 내용을 넣기 위해 각자 목소리를 높이며 충돌했다.    

편향 교과서를 비판하겠다는 교과서포럼은 대안 교과서를 출판했지만 편향 논란을 극복하겠다는 의도를 부합시키지 못했다.   일제시대에 대한 긍정적 기술과 여순 사건과 제주 4.3 사건을 ‘좌파세력의 반란’ 으로 규정,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 체제 옹호론 등 또 다른 편향성 시비를 불러 왔을 뿐이다.   무엇보다도 문제는 대안교과서 집필진들이 역사학 전공을 단 한 사람도 없다는 점이다.  과연 이들이 역사를 공정한 기준과 관점으로 서술했을지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교과서에 담기는 내용은 논란이 없을 정도로 학술적 검증이 마무리된 것들이 실려야 한다. 적어도 학술적으로 논쟁이 될 정도로 결론이 나지 않은 내용이라면 적어도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수록되는 점에서 보류을 한다거나 다양한 시각에 따라 교과서를 만들고 투명하게 임명된 검정위원들이 이를 검정하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해당 교과서로 공부해야만 하는 학생들이 항상 이 ‘교과서 전쟁’ 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적인 시각으로 역사 교과서를 재단하려고 하면 결국 역사를 배우는 학생들만 혼란스러운 상황만 가중하게 될 뿐이다.      

결국 길고 긴 논쟁을 끝낼 수 있는 것은 교과서, 아니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가의 임무에 달려 있을 뿐이다.  좌. 우 이념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에 벗어나 역사적 소명의식을 가지고 왜곡되지 않은 정확한 사실을 토대로 객관적으로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번 역사 교과서 논쟁을 떠나서 역사를 공부하는 학생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이념으로 덧칠된 역사를 제대로 알고 볼 줄 아는 균형적인 안목 역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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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10-01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한국현대사를 전공한 이가 교수가 된 것은 2000년 이후부터입니다.당연히 한국현대사는 정치학,사회학,경제학 전공자들의 전유물이던 때가 있었습니다.대안교과서 뿐이 아니라 <해방전후사의 인식> 필자들의 전공을 한번 살펴보십시오.사학과 출신이 아닌 사람이 많습니다.현대사는 국사학과에서도 찬밥취급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정치학의 한국정부론이나 한국정당사에서도 한국현대사를 다루잖아요?

그리고 근대사에서는 자본주의 이행논쟁을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데 이는 경제사 분야입니다.그런데 경제사는 경제학입니까, 역사학입니까...자본주의 이행논쟁을 초창기에 소개한 주종환 씨는 농업경제학을 전공한 경제사 교수입니다.이 분야는 농민층 분해를 다루니까 당연히 주종환 씨가 나선 것이죠.

원로 행정학자인 한정일 씨도 한국현대사에 대한 저작이 있습니다.행정분야를 연구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죠.예를 들어 cyrus님도 한국지방자치제에 대해 연구한다면 당연히 한국현대사를 다룰 것입니다.나는 사학과가 아닌데...하면서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cyrus 2011-10-02 20:50   좋아요 0 | URL
<해방전후사의 인식> 필자들도 사학과 전공이 아닌 사람이 있었군요,
처음 알았습니다. 역사 중에서 현대사가 찬밥 신세라는 사실을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 정도일줄은 몰랐습니다. 행정학을 공부하는 책들을 보게
되면 한국현대사와 관련된 내용이 언급되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서양식
행정학 내용이 많아보니 비중있게 다루지 못하는 점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단점을 역사를 공부하면서 제 스스로 보완하는 길 밖에
없는거 같습니다.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루쉰P 2011-10-02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한국현대사라 '정의란 무엇인가'란 질문처럼 아주 복잡한 것 같습니다. 이쪽도 자신이 정의요, 저쪽도 정의라 하니 말이에요. 결국에 내 자신의 역사관을 지니고 역사를 봐야 하는가라고 생각하면 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결론으로 오게 되고, 무지 복잡해 지는 것 같습니다. ^^
전 교과서로 역사를 읽은 것이 아니라 독서를 통해 한국현대사를 접하다 보니 박정희나 이승만의 독재 정권에 대해서는 아주 분노가 깊어요. 게다가 우리나라 민중들이 정권에 반대해 저항을 한 것은 사실이니 분명 이 정권들에 대한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겠죠. 흠..복잡해요. 복잡해.
시루스님도 과제하느라 복잡하시겠어요. ㅋㅋ 아이, 도움이 안 되네요. ㅋ

cyrus 2011-10-02 20:5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요즘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 가지고 공방전을 펼치고 있으니까요
^^;; 저도 이번 기회에 독서라도 한국현대사를 제대로 알고 싶어요.
위의 노자님 말씀대로 한국현대사는 역사학계에서만 찬밥 신세가 된 것이
아니라 실상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도 상세하게 배우지 않거든요.
막상 한국 근현대사 과목 수능 시험이나 모의고사를 치게 되면
20문제 중에는 한국현대사 관련되 문제가 3~4문제 정도,,?
제 기억으로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현대사보다는 근대사가
많이 나온다는거죠. 댓글 쓰다보니 길어졌네요 ^^;;

ㅎㅎ 과제 오늘 마무리했습니다. 일단 첫 과제는 생각보다 일찍
끝냈는데 그 후로 연이은 과제가 나오게 된다면 여유가 없을거 같아요 ^^;;

2011-10-03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0-03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ene #1  대학교 축제의 모습

어제 학교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맨스필드의 단편선집을 읽게 되었다.  제목은 그녀의 대표적인 단편소설의 동명제목인 '가든파티' 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어제는 학교 축제가 시작되는 첫 날이었다.  축제와 파티는 의미에만 조금 차이가 있을뿐 공통적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즐겁게 술을 마시면서(?) 노는 것이다.  

원래 학교 축제가 있는 날이면 대부분 수업은 휴강을 하게 된다.  학생들이 축제를 마음껏 즐기기 위한 교수님의 배려(?)도 있지만 실제로 축제 기간에 수업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강의실 안까지 들려올 정도로 엠프에서 울려나오는 아이돌 그룹의 흥겨운 노랫소리에다가 축제의 즐거운 분위기에 취해 고성방가하는 청춘남녀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수업을 해본 적이 있는가?    이것은 정말로 참기 힘들 정도로 고역이다.    교수님이 열심히 칠판에 써가는 내용은 안중에 없다. 그저 밖에 나가서 놀고 싶다는 생각만 들게 된다.

하필이면 어제 들은 수업은...      '정치학' 이었다.    

안그래도 원래 수업도 지루한 마당에 어제 같은 날은 나뿐만 아니라 출석한 모든 학생들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리라.  ^^;;

 

아직 축제 첫날인지 모르겠지만 올해 우리 학교 축제는 예전에 비해 간소화하게 진행되었다. 내가 다니는 대학교뿐만 아니라 최근 대학 축제들은 24시간 하루종일 술만 마시고 유명한 가수들을 초청하는 그저 먹고 놀기만 하는 축제에서 탈피하고 있는 중이다.   게다가 요즘 '반값 등록금' 에다가 대학 구조조정 등과 같은 대학교와 대학생들에게는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이슈가 거론되고 있기에 예전과는 다르게 대학교 축제는 '경제적' 이면서도 한편 학생들에게 유익한 취업 및 문화 관련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취업' 과 '진로 선택' 이 무엇보다도 절실하다보니 축제를 즐길 여유가 사라지고 있는 추세다.   어제 잠깐 학교 도서관에 들리게 되었는데 축제 기간 속에서도 열람실에서 공부에 열중한 학생들이 많았다.    

자신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펙을 쌓기 위해서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있는 반면에 도서관 입구를 나오는 순간,  자신의 몸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할 정도로 술에 떡이 된(?) 학생들을 볼 수 있다.  

이렇듯 축제 기간이 되면 대학 캠퍼스 안에는 같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마다 서로 다른 분위기의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이들은 서로 남이 무엇을 하든 간에 관심이 없으며 남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저 자신들이 마주하고 있는 익숙한 현실에 충실히 살아가고 있을뿐이다.

 

    

 Scene #2   인생이라는게... 그런 것이다

같은 하늘을 바라보며 같은 땅 위에 살아가면서도 인간은 자신의 삶과 상반되는 현실을 목도하는 경우가 드물다.  심지어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현실을 마주하게 되면 미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낯선 환경을 이해하고 그 분위기에 익숙해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번에 처음으로 읽는 맨스필드의 단편을 읽었을 때도 그랬다.  

여성 작가의 단편소설이라서 많은 기대감을 안은채 읽게 되었는데 내가 생각했던만큼은 강렬한 인상을 받지 못했다.   과거에 오 헨리와 체호프의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얻게 된 인상의 여운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여성 작가답게 인물 심리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해 일상의 깨달음으로 전환하는 이야기 전개는 읽는 내내 결말까지 집중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특히 그녀의 대표작인 '가든파티' 는 주인공 로라가 끝내 말하지 못한, 형용할 수 없는 여운으로만 남겨진 그녀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초여름의 어느 날, 주인공 로라는 노동자들이 푸른 잔디밭 위에서 천막을 치고 밴드를 옮기며 파티를 준비하는 것을 구경한다. 그러다가 빈촌인 아랫 마을의 스콧이라는
젊은 짐 마차꾼이 교통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파티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오빠 로리만 제외하고, 모두 가든파티와 죽음은 별개의 문제라며 예정대로 파티를 연다. 끝내, 로라는 한 쪽에선 사람이 죽었는데도 파티를 계속한다는 것은 비정하다면서 사치스러운 파티를 떠난다.

파티에서 남은 음식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 죽은 짐 마차꾼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어둡고 누추한 집을 찾은 로라는 마치 잠을 자듯 평화롭게 누워 있는 짐 마차꾼의 창백한 얼굴을 보고 난 후, 흐느끼며 집을 나오게 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서 오빠 로리를 만나게 되는데 로라는 오빠에게 수수께끼와 같은 의미의 말을 하게 된다.

 

“무서웠어?”
 
“아니.” 

로라가 흐느꼈다.

 "그저 대단했어. 하지만 오빠..."   

그녀는 말을 멈추고 오빠를 바라보았다.

“인생이, 인생이...”

그녀가 더듬었다. 하지만 인생이 어떤 것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 그래도 상관없었다. 로리는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정말, 그렇지?”

로리가 말했다.                  

([가든파티] 중에서, pp 114)

  

이 소설은 파티에 들뜬 부유한 사람들과 교통사고를 당한 노동자의 비참함을 비교하며 인생의 한 단면을 펼친다. 하지만 그 방법이 결코 작위적이지 않다. 그저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소녀가 하층 계급 노동자의 죽음을 접한 후 겪는 심리 변화만 따라간다. 사건 뒤에 담긴 의미들은 로라가 마지막에 오빠에게 하는 말, `인생이라는게... 그런 것이다` 라는 말에 모두 압축된다.

 

  

 Scene #3  '현실' 이라는 익숙한 동굴에 갇혀버린 인간

 

피터르 브뤼헐 <이카루스의 추락이 있는 풍경>  1555~1558년경

 

맨스필드의 '가든파티' 를 읽으면서 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그림이다.   

이카로스는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최초로 하늘을 날게 된 인간 1호이면서도 비행을 하다 추락사를 하게 된 불명예스러운 인간 1호이기도 하다.   이카로스는 새처럼 나는 것이 신기하여 하늘 높이 올라가지 말라는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경고를 잊은 채 높이 날아올랐고, 결국 태양열에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버려 바다에 빠져 죽고 만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이카로스를 찾기가 쉽지 않다.  제목과는 다르게 목가적인 풍경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하지만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면 오른편 커다란 배 앞에 바다 속에서 허우적대는 두 개의 다리를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추락하는 이카로스의 최후 모습이다. 너무도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이카로스의 발버둥은 그 비극적 상황에도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아무런 주의를 끌지 못한다. 농부는 여전히 밭을 가는 데 여념이 없고, 배는 자신의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낚시꾼도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그저 고기잡이에만 열중하고 있다. 양치기만이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볼 뿐이다.  

브뤼헐은 '이상' 을 좇는 이카로스보다 열심히 '현실' 을 살아가는 이름 모르는 민중들을 그림의 중심에 놓았다. 더불어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려는 이카로스의 욕망을 무모하고 어리석은 의미로 그렸다.   

하지만 그림 속 민중들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매진하는 현실주의적 삶도 부작용이 있다.   자신을 둘러싼 삶의 환경에 익숙해지고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은 자칫 '현실 안주' 라는 문제점으로 발전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익숙하게 되면 전혀 새로운 미지의 상황 앞에서는 두려움으로 인해 움츠려들게 된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제시한 '동굴의 우상' 처럼 동굴에 오랫동안 생활한 인간은 동굴 밖에 펼쳐져 있는 넓은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결국에는 현실에 대한 무지함에서 비롯된 편견을 낳게 된다.

   

 

 Scene #4   하나의 세상, 두 가지 현실

베이컨은 다른 사람의 감정, 정서 및 경험과 비교함으로써 동굴의 우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였다.  로라가 하층민 가족이 겪은 죽음과 그로 인한 슬픔을 접 목격함으로써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듯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는 이전과는 다르게 잠깐이마나 고개를 돌려본다면 전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상의 이면을 발견할 수 있다.   

며칠 전부터 조세희의 <난쏘공>을 읽고나서부터 항상 느낀 것이지만 하나의 세상 속에는 안과 밖이 서로 다른 모순적인 현실이 공존하고 있다.  '난쏘공' 과 '가든파티' 속 시대적 배경의 모습처럼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으로 구분되는 상반된 인생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한쪽에서는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공장 노동자들은 24시간 투쟁을 벌이고 있고, 정부와 기업의 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사회적 약자들이 존재하고 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호화로운 아파트에 살면서 골프를 하고 신용카드를 남발하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뒤안길에는 실직으로 인한 가난과 좌절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 사회의 이러한 양극화 현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치권에서는 민생 대책에 고심하기보다는 곧 치뤄질 대선의 승리라는 현실에 사로잡혀 어떻게든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한 준비에 여념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세계적 금융 위기라는 찬 바람이 슬슬 불어 오고 있는데도 정부는 경제적 혹한에 취약한 서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따뜻한 옷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 서민들은 올해의 겨울은 지난해처럼, 아니 이보다 더한 혹독한 계절을 맞이하지도 모른다.    

정치권은 연이어 터져 나오고 있는 권력형 비리로 인해 잡음이 일어나고 있고 각 정당들은 대선에서의 승리를 위해서 발빠르게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우리 사회의 그늘 진 곳에서는 또 다른 어느 누가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로라의 애정이 새삼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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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9-28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선거철만 되면 인간 대접을 받으니 다행이죠. 개인적으로는 매일 선거였으면 좋겠습니다.

cyrus 2011-09-29 19:21   좋아요 0 | URL
선거철이 지나도 정말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정치를 했으면
좋겠어요 ^^

stella.K 2011-09-28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제 때 수업을 하는 교수님이 어딨니?
축제를 간소화 할 필요는 있지만 축제는 축제대로 놀아줘야 하는데
그 기간에도 스펙을 쌓기위해 공부하고 일해야 한다니 좀 그러네.
울나라 대학생은 가면 갈수록 불쌍해지는 것 같아.
대학의 낭만이란 게 없는가 보다.ㅠㅠ

cyrus 2011-09-29 19:23   좋아요 0 | URL
원래는 축제 기간 때는 수업을 안 하는데 이틀 전 수업 같은 경우에는
교수님이 다음주에 출장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한거예요.
2학기 같은 경우에는 축제 기간에다가 공휴일이 있어서 1학기보다는
수업 일수가 적거든요.

저뿐만 아니레 제 주변에도 대학의 낭만을 점점 잃어버리는거 같아서
씁쓸해요.

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9-28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제때 수업이라뇨..ㅎㅎㅎ 요샌 정말 분위기가 좀 다르네요.
저희 학교는 축제가 재미없어서 그런지 남학생들이 여학교로 다 놀러가는 바람에
학교에 여학생들만 득실댔었던 안좋은(!) 기억도 있어요.ㅎㅎㅎ
그래도 그때만큼은 공부하는 학생들은 없었는데 정말 세월이 다르네요.

cyrus 2011-09-29 19:24   좋아요 0 | URL
글 쓰면서 언급을 안 했는데,, 교수님이 다음주에 출장이 있어서
학습 진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거예요. ^^;;

blanca 2011-09-28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요새 축제 분위기는 사뭇 다르군요. 다른 학교 축제 원정 가는 일도 이젠 드문 풍경이 되었겠어요. 아, 저도 요새 양극화 풍경을 절감합니다. 인생이라는 게 때로 참 잔혹한 것 같아요. 저 그림에서 이카루스를 한참 찾다 보고 웃었어요^^;; 재미있는 그림이네요.

cyrus 2011-09-29 19:25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 역시 다른 학교 축제 원정이라고 갈려고 했었는데,,
2학기 때는 축제를 안 하는 학교도 있었어요. ^^;;

잘잘라 2011-09-29 1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쪽에서는 축제 한 쪽에서는 수업이라니.. 허어어 우째 그런 일이..
인생이.. 시절이.. 참....

cyrus 2011-09-29 19:27   좋아요 0 | URL
ㅎㅎ 교수님이 다음주에 출장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했던거에요 ^^;;
야간 수업 같은 경우에는 휴강인데 주간에 강의가 있는 몇 몇 교수님은
축제 기간에도 수업을 하기도 한답니다.

맥거핀 2011-09-2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글이 참 좋아요. 맨스필드의 단편으로부터 학교 축제, 그리고 이카로스의 그림, 사회의 조망...(개인적으로는 그냥 쓸데없는 생각들이 드네요. 그때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며, 시끄러운 축제를 원망하는 학생이었으면 지금 좀 나으려나? - 축제 때, 늘 술에 떡이 된 몰골로 본부앞 잔디밭을 굴러다니던 1人이 하는 한탄..;;)

cyrus 2011-09-29 19:29   좋아요 0 | URL
저도 4년 전, 1학기 때 이틀동안 잠 안 자면서 술 마셨어요. ^^;;
특히 3일동안 축제 기간하면 절대로 집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ㅎㅎ

노이에자이트 2011-10-01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라 정도의 적당한 감상주의가 사회안정에 좋지요.거기서 계급간 갈등 운운 하다가 혁명을 해야겠다고 선동하면 글쎄요...혁명 좋아하는 자칭 정통 혁명주의자에겐 이 단편이 불철저한 감상주의를 전파하는 유해한 반혁명적 작품이겠지요.

cyrus 2011-10-01 21:18   좋아요 0 | URL
ㅎㅎ 혁명론자들에게는 소설이 그렇게도 볼 수도 있겠네요 ^^

노이에자이트 2011-10-01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 대학이 제대로 된 낭만을 즐기던 때가 있었나요.1985년 신동아에선가 본 기사인데 요즘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안된다는 내용이었어요.축제기간에도 도서관에서 취직공부하는 대학생들이 요즘에만 있는 게 아니고...그리고 그렇잖아도 방학도 긴데 축제기간까지 강의를 안 하는 것도 정상은 아니죠.시간이 모자라면 축제기간에라도 수업해야죠.

cyrus 2011-10-01 21:19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실업의 역사를 정리한 강준만의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대학생들의 취업난이 최근에 일어난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노자님이 언급하신 80년대 중후반에도 대학생 취업난이
거론되었더군요.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80년대의 대학생들은
졸업만 하면 다 취업이 되는줄만 알았어요 ^^;;

노이에자이트 2011-10-01 22:38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경제구조가 고학력자를 많이 흡수할 수 있는 시기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채만식의 '레디메이드 인생'을 보면 일제시대에도 고학력자들은 실업자기 많았다는 내용이 있고요.

지금의 50대 전후 나이들도 비정규직이나 계약직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