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노마드한 대학생활

 

노마드는 머물지 않는다.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므로 노마드는 소유하지 않는다. 언제나 미지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다. 노마드는 정주의 편안함을 버리고 자유의 불편을 택한다. 

 

요즘 대학 생활이 즐거우면서도 흥미진진하다. 작년보다 공부해야 할 양이 많은데다 개강한 지 얼마 안 되어 벌써부터 과제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지만 늘 하루하루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지식을 배운다는 마음으로 자기위안식 위로로 학교 생활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피하고 있다. 아직은 견딜만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팀별 과제가 많아지게 되면 언제 '멘탈 붕괴'가 될 지 모를 일이다.

 

주간에 경영학 수업을, 야간에 행정학 수업을 듣게 되는데 강의실을 여러 번 왔다갔다하는 경우가 많다. 경상대에 있다가, 도서관에, 또 행정학 수업 듣으로 행정대로... 이게 하룻동안 내가 넓은 캠퍼스 내에서 이동하는 경로다. 가끔은 필요한 자료를 찾거나 읽고 싶은 책이 소장되어 있다면 사회과학대나 자연과학대 도서관에도 들리기도 한다. 대학 생활 3년째에 접어들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건물이 있는데 그 곳이 바로 조형예술대다. 조형예술을 전공하는 친구가 있으면 가보겠지만 사실 행정학과 학생이 조형예술대 건물을 간다는 것은 뭔가 어색하면서도 웃기다. 올해는 발길이 뜸하지만 1학년 때는 공대 건물도 많이 드나들었다. 그 곳 건물 사무실에서 친한 동기와 선배들이 근무를 했기 때문에 친분상(?) 그 건물을 자주 찾아갔었다.

 

지금도 그러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캠퍼스에 오면 거의 가만히 있었던 적은 없었던거 같다.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 제외하면 마음 내키는대로 아무 곳이나 이동했다. 혼자든 동기 친구들이랑 같이 가든 이 놈의 몸뚱아리는 가만히 앉아 있지 않았다. 사실 도서관에 오랫동안 앉아서 공부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공부하는 데 있어서 나름 공부할 분량을 집중적으로 암기할 수 있는 특정 시간이 있는데 왠만하면 1시간 이상은 안 하는게 원칙을 삼고 있다. 그래서 공부하고 난 뒤 머리 식힐 겸 도서관 옆에 위치한 매점의 벤치에서 수다 떨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교문 밖으로 나가 당구를 치고 있다거나 볼링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대학생이 되면서부터 어디 한 곳에 정착하거나 안주하는 생활이 줄어든 거 같다. 독서할 때도 그렇다. 책 많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거의 대다수 가지고 있는 독서 습관이지만 한 권만 끝까지 읽는 것보다는 두 권 이상 같이 읽어줘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일주일에 5권을 동시에 함께 읽는 편인데 그 중에서 끝까지 읽는 책은 많아야 두 권이고 아예 완독을 하지 못한 것도 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또 관심 있는 책을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

 

 

 

 

 

 

 

 

 

 

 

 

 

 

 

 

 

자크 아탈리는 정처 없이 방황하며 유랑하는 것이 역마살이 낀 불우한 인간의 역정이 아니라 500만 년 동안 유전자 속에 내장되어 내려온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유랑하는 인간, 호모 노마드가 나오게 된다. 노마드적 삶이 인간의 특수한 생존 양식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삶의 양식인 것이다. 그는 미래의 인류는 하이퍼 노마드, 정착민, 인프라 노마드의 세 부류로 나누어 질 것으로 예언한다. 많은 정보를 창출하고 향유하는 창의적인 직업을 가지고 부유하게 유희적으로 살아가는 극소수의 하이퍼노마드, 농민, 상인, 공무원, 의사, 교사 등의 정착민 그룹 , 반면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동해 다니는 노숙자, 이주노동자 등의 극빈층의 인프라노마드, 이 세 부류다. 하이퍼노마드들은 미래의 상업적 노마디즘의 주역들이다. 그들은 전 세계를 지배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실제와 가상공간에서 새로운 식민지를 찾고 있다.

 

지금의 일상을 아탈리가 제시한 세 가지 유형의 노마드형으로 비추어 본다면 하이퍼노마드다. '창의적인 직업' 정도는 아니지만 많은 정보를 수집한 것을 토대로 거기서 새로운 정보로 도출하여 과제를 준비해야 하는 일과라면 하이퍼노마드의 유형으로 볼 수 있다고 본다. 간단히 말하자면 노마드한 대학 생활이라는 것이다.

 

주간 경영학 수업이랑 야간 행정학 수업 사이에 공강 시간이 있다. 그 시간에는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을 복습을 하거나 책을 읽기도 한다. 그리고 짬이 나면 알라딘 블로그에 글을 남기기도 한다. 요즘 블로그 활동이 뜸한 건 너무 바쁜게 아니라 집의 컴퓨터가 또 다시 맛이 갔다. 얼른 고쳐야하는데 일과 절반이 학교라서 서비스를 부를 시간이 마땅치가 않다. 그래서 요즘에는 공강 시간을 이용해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도서관 컴퓨터에서 알라딘 블로그 쓰기가 여간 불편하다. 항상 집에서만 블로그를 활용하다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도서관 컴퓨터에서 블로그에서 글을 쓰기란 여간 찝찝함을 감출 수가 없다. 더군다나 내가 블로그를 하고 있는 것도 모르는 친구들이 항상 곁에 있기에 지극히 개인적이고도 은밀한(?) 블로그 활동을 하기가 힘들다.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 것을 친구들이 보면 그들은 내가 과제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Scene #2  도서관에서 우리 과 학생을 찾는 방법

 

이런 일상을 지내나보니 개인적이면서도 은둔(?) 활동을 하기에 편하다. 간혹 나를 찾는 동기들의 전화가 오기도 하는데 그 녀석들은 항상 나를 찾지 못한다. 한 곳에 머무르는 성격이 아니라서 항상 특정한 장소에 만나면 서로 엇갈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동기들에게 항상 캠퍼스 도서관에 있을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서 그런지 몇 몇 녀석들은 도서관에 와서 나를 찾게 되는데 허탕만 치는 경우가 많았다. 운 좋으면 도서관 건물 안에서 만나기도 하지만.

 

하지만 나는 도서관에서 내 동기 친구들을 찾을 수 있다.

 

우리 학교 도서관 내부를 설명하자면 2층은 논문들이 보관되어 있는 참고자료실, 3층은 사회과학, 언어자료실(사회과학, 소설 분야 도서 비치), 4층은 인문. 과학자료실(인문학, 과학 분야 도서 비치)로 나뉘어져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2층에서 4층을 주로 사용한다. 2층은 과제와 관련해서 자료를 찾을 때, 3층과 4층은 각 층에 비치된 책들을 읽기 위해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행정학과 학생들은 항상 3층에 만날 수 있다. 왜냐하면 행정학 관련 도서는 3층 사회과학 자료실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히 3층에 있을 수 밖에 없다. 나처럼 과학에 관심 있는 학생이라면 4층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학생들이 많이 오게 되는 시험 기간을 제외하면 4층 과학 자료실에서 우리 과 학생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논문과 학술잡지가 비치된 논참고자료실 역시 자주 애용하는 학생을 찾기가 드물다. 어처구니 없게도 내 몇몇 동기들 중에는 도서관 2층 자료실의 존재에 대해서도 모르는 녀석도 있었다!  2층 자료실에 최고 성능의 프린트 기기가 있는데도 이러한 용도의 사실을 모르는 이가 많았다.

 

요즘 우리 학교에서는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학교 도서관 체험 교육을 하고 있다. 도서관의 내부뿐만 아니라 도서관 컴퓨터를 이용한 정보 검색 방법, 신입생으로서의 독서 경험의 중요성 등 학생들에게 도서관을 애용하여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과에서는 거의 늙어버린 '아저씨'나 다름 없는 우리 동기들도 도서관 체험 교육 좀 받았으면 좋으련만... 이건 뭐, 복학생도 아니고 도서관 안에만 들어오면 어리버리해지는 녀석들 보면 웃기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한다. ^^;;

 

 

 

 

 

....  더 쓰고 싶은 내용이 있는데 방금 폰에서 친구의 카톡 메시지가 떴다.

 

....  배고파 ....   밥 먹으로 가잔다 ....  -_-;;

 

 그래, 일단 밥 부터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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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3-15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럽다. 난 학교 때 학교를 싫어해서 주말과 방학 기다리는 마음으로 다녔다.
그런데 4년 전 시나리오 배우러 다녔을 때 처음으로 공부하러 어딘가를 다닌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거구나 하는 걸 깨달았지.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딱 두 가지만 하고 싶어.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연애하고.ㅋㅋ
얼마 전 김연수 작가 보러 갔다왔는데 그가 그런 말을 하더군.
싫은 책 억지로 읽지 말라고. 좋아하는 책만 읽어도 다 못 읽는다고.
맞는 것 같아. 그런 점에서 넌 아주 잘하고 있는 거야.ㅎㅎ

cyrus 2012-03-16 01:04   좋아요 0 | URL
저는 졸업할 때까지 연애 한 번이라도 해봤으면 좋겠어요. ^^;;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다보면 연애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런 생각만 하면 할수록 정말 암울해지네요 ㅎㅎ


stella.K 2012-03-16 11:33   좋아요 0 | URL
니가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면 돼.
너를 좋아해 줄 사람 기다리지 말고.
별 도움 안 되는 말이지?ㅋㅋ

cyrus 2012-03-16 22:10   좋아요 0 | URL
맞는 말인거 같아요 ㅎㅎ 그런데 쉽지가 않아 보이죠? ^^;;
 

 

 

 모로 가도 학점만 잘 따면 된다?

 

이번 주는 수강변경 기간이다. 듣고 싶은 과목이 있으나 수강인원이 차는 바람에 수강신청을 하지 못한 학생들을 구제하기 위한, 특별하면서도 아주 중요한 기간이다. 원하는 수업을 듣기 위해서는 담당교수에게 수강허가서를 제출해야만 가능하다. 그러나 요즘 대학가에서는 수강변경 기간의 본래 의미가 퇴색되어진 듯하다.

 

이 기간동안에는 취업에 유리한 과목, 학점을 잘 주는 교수의 과목을 파악 할 수 있다. 개강 첫 날에는 수강변경 기간이라고 해서 교수들은 출석 점검을 하지 않는다. 오리엔테이션(OT)를 통해 한 학기동안 배우게 될 교과목의 내용들을 거시적으로 학생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런 시간을 통해서 학생들은 이 과목을 공부할 것인지 아니면 포기하고 다른 수업을 변경할 것인지 고민할 수 있다. 일단 여기까지 과정은 좋다. 자신이 듣게 될 수업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다거나 학점 관리하는 데 있어서 공부할 자신이 없으면 변경할 수 있는 재량적 의지는 모든 학생들마다 있으며 나 또한 그러하다.

 

여기서 문제는 대부분 학생들의 귀가 얇다는 것이다. 자신의 동기 또는 선배들로부터 '모 교수님의 과목은 학점 잘 준다', '이 과목은 공부하기가 쉽고 편하다.'라는 식의 이야기에 혹해 그러한 과목을 수강하는 쪽으로 변경하게 된다는 것점이다. 하긴 학점 관리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학부생 3년차를 경험함으로써 느낀 것은 학과 내에서는 쉬운 과목이란 절대로 없으며 공부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이지 않는 한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서 편의상 학점을 잘 주는 교수님도 없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번 주 내내 동기들로부터 전화, 카톡, 문자들이 수도 없이 찾아왔다. 개강하는 첫 주에는 이런 일이 없었으며 친한 친구 이외에는 전화, 문자 교류도 잘 없는 나에게는 조금은 황당했다. 이런 상황에 더욱 황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대부분 전화나 문자를 보낸 목적은 수강 변경에 관한 사항이었다. 자신이 이런 교수님의 과목을 듣고 싶은데 이 수업, 학점 주는 데 괜찮냐는 식으로 물어봤다. 내가 왠만한 전공 학과 교수님의 수업을 들어봤고 학점도 잘 나왔기에 평소에 전화도 안 하는 몇 몇 동기들이 나에게 조언(?)을 구하고자 한 것이다.

 

나는 동기들의 질문에 친절하면서도 상세하게 답해주었다. 물론 설명하기 전에 먼저 다분히 주관적인 입장이 있다는 단서를 붙이고. 동기들이 물어본 몇 몇 교수님의 수업 스타일이나 수업시간에 내주는 과제 등 정말로 상세하게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을 해도 동기들의 선택은 이미 공부하기가 편할 것처럼 보이는 교수의 과목을 선택하는 것으로 결정나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 과 학생들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공부하기 편한 교수의 수업' 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 과제가 많이 없다. 한 학기동안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세 개 이상 넘어가면 벌써부터 포기하는 생각부터 든다. 둘째, 팀별 과제가 없는 과목을 좋아한다. 팀별 과제 상 낯선 학생들과 한 팀으로 이루어 서로 합심하여 과제의 성과물을 도출해야 한다. 하지만 팀 구성원 능력 부족, 팀 내 단결력이 부족하면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일부 학생들은 팀별 과제를 꺼려한다. 오히려 팀별 과제는 자신과 과 친분이 있는 학생들과 같이 하려고 한다. 셋째, 학생참여형 과목을 싫어한다. 여기서 말하는 학생참여형 과목이란 단순히 교수가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데만 그치는 주입하는 형식의 강의가 아니라 학생들에게 질의를 유도함으로써 학생들도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과목을 말한다. 넷째, 주교재가 없는 과목을 선호한다. 특히 네번째 사항은 학생들이 많이 오해하고 착각하는 내용이다. 학생들은 주교재가 없다고 해서 굳이 3만원 넘는 비싼 돈을 들어가지 않는다고 좋아하는 데 천만의 말씀이다. 주교재가 없는 강의가 공부하는 데 있어서 어렵다. 주교재가 없기 때문에 그 수업내용과 관련해서 스스로 자료를 찾아 공부할 수 밖에 없다. 평소에 수업시간에 했던 공부와 관련해서 좀 더 관련자료를 찾아보거나 더 깊이 공부하려는 습관이 없다면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데 벅차며 결국에는 학점 관리에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다섯째, 오픈테스트로 시험을 치는 과목을 좋아한다. 이 또한 역시 학생들이 많이 착각하는 사항이다. 오픈테스트는 머리 아프게 암기를 안 해도 된다. 그냥 정해진 자료 혹은 교재 텍스트 외부의 자료를 찾아 그 내용을 정리하는 방식이다. 막연하게 주제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해서 정리만 한다고 생각하는 데 말로만 쉽지 실제로는 객관식, 서술형 시험보다 더 까다롭다. 자료를 수집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자료가 많다고 해서 중요한 건 아니다. 그 많은 자료를 한 가지 주제의 통일성에 맞게 결론을 도출할 줄 알아야 한다. 양으로 승부하다가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한다. 내용의 질이 중요하다. 결국에는 글쓰기를 잘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 시험 성적 결과가 판가름 나게 된다. 과제 심지어 논리적 문장력이 요구되는 서술형 답안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학생들이 오히려 오픈테스트를 만만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이 다섯 가지 사항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공통점은 공부하는 과정보다는 공부의 결과에 연연한다. 즉, 그 내용을 학습함으로써 사회에 나가서 써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학점을 잘 받으면 그만이다. 이러한 학습 태도는 매 학년이 올라가면 할수록 혼자서 공부하기가 어려워진다. 남에게 의존하고 너무나 편하게 공부를 했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어려워지고 전문 용어가 많이 등장하는 과목 앞에서 기가 죽어 버린다. 그러면 사회에 나갈 때도 공부를 제대로 할 리가 없다.

 

 

 

 

 쉽게 하는 공부도 그리 좋지만 않다

 

사실 모든 사람이라면 머리가 아프지도 않을 정도로 쉽게 공부하는 과정을 선호하다. 나 역시 그렇다. 어찌 보면 시간 관리적 관점에서 본다면 보다 편리하게, 시간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 편한 공부야말로 무척 실용적인 방법이다. 그러한 추세는 요즘 서점가에서도 그런 유형을 볼 수 있다. 딱딱하고 여러운 고전을 다이제스트 형식으로, 그것도 핵심적인 내용만 발췌해서 소개한 책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오늘은 또 신문에서 보니 2014년 수능 때부터는 문제 난이도가 나뉘어져 수험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제도로 바뀐다는 소식을 접했다. 학생들의 수준을 맞추기 위한 '수준별 수능'이라고는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저 '쉬운 수능'으로만 보였을 뿐이었다. 본 수능을 치기 전에 예비 수험생들은 국어, 영어, 수학 이 세 과목을 쉬운 A형과 어려운 B형 중 택일하여 시험을 칠 수 있다.  새로운 수능 제도에 대한 사전 점검 차원에서 치러지는 것으로, 예비 수험생들은 새로운 출제 유형과 수준을
미리 접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대학별 국영수 난이도 반영 방법이다. 국어와 수학은 인문계열과 자연계열로 A. B 난이도가 나뉘지만 영어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체능계열을 제외한 대부분 대학이 영어과목에서 어려운 B형을 채택, 반영하기로 한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를 보도한 일부 언론의 반응이다. 영어 과목 시험이 난이도가 높다는 이유만으로 난이도가 높은 시험에 학생들이 몰릴 수 밖에 없는 '수준별 수능'의 제도적인 맹점이라고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능시험이 수험생들에게는 공부하기에 많이 부담되고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시험이기도 한다. 고득점을 얻어야만 자신이 원하는 좋은 일류 대학에 다닐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3년동안 열심히 공부해도 결국 소수만이 좋은 성적으로 상위권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 특히 매년마다 수능시험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는 수능 난이도가 쉽다고 항상 공식적으로 발표했지만 실상 수험생들이 체감하는 수능 난이도는 무척 어려웠다. 그래서 이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등장된 것이 '수준별 수능'인데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이 점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개정된 수능시험 제도가 학생들에게 쉬운 공부 방법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조건을 만들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난이도가 쉬운 A형 과목에서 고득점을 받은 수험생이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고등학교와는 다른 교육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까?  문득 그런 걱정이 담긴 궁금증이 들기도 한다.

 

 

 

 

 

 공부를 잘 하기 위해서는...

 

내가 공부 잘 하는 방법을 운운하기에는 내 수준을 스스로 봐서는 많이 어수룩한 면도 있고 나 역시 한창 공부를 해야 할 '학생'이다. 나도 학창 시절에 성적이 좋지 않은 슬럼프를 겪었을 때에는 소위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의 공부 비법을 따라 하기도 하고 그러한 사람들의 수기를 읽음으로써 노하우를 얻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공부'라는 것을 제대로 해보기 시작한 중학교 1학년부터해서 지금까지, 총 10여 년의 경험을 통해서 느낀 것은 이미 공부를 많이 해봤고 그런 과정을 통해 좋은 성과를 이루어 낸 사람들의 면모를 본다면 공통적으로 항상 빼놓지 않은 공부 방법이 있었으며 아무리 공부 잘 하는 사람의 비결이라고 해서 그 사람처럼 100% 통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결국에는 공부 고수들의 비결의 일부를 자신의 능력에 맞는 올바른 공부 과정으로 만들 줄 알며 그것을 체득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강 첫 날에는 교수님들은 과목의 개요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좋은 조언을 해주신다. 매 학기 개강 첫 날만 되면 자주 학생들에게 언급하는 레퍼토리다. 하지만 이런 교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 이미 젊은 시절부터 공부를 많이 해 본 사람이 바로 학과 교수님이다. 이분들도 '인간'인지라 지금의 학생들처럼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봤을 터이다. 그러기에 공부에 대한 교수님들의 말씀이 정말 중요하다.

 

이번 학기에는 주간에는 경영학을 수업을 듣고, 야간에는 주전공인 행정학 수업을 듣는다. 과목의 내용이 다른만큼 강의 환경, 교수님의 학습 스타일이 너무나도 다르다. 하지만 과목이 달라도 교수님들이 첫 강의 시간에 항상 말씀하시고 강조하는 것이 바로 '공부하는 습관 그리고 태도의 중요성'이었다. 이번 주는 경영학과 행정학 수업을 넘나들면서 많은 교수님들로부터 공부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있었는데 나름 도움이 되었다. 내용 면에서는 다르지만 역시 공부를 많이 해 본 분답게 공부하는 과정, 방법 그리고 태도에 대한 사항은 비슷했다.

 

 

 

 

 첫째, 공부를 하고자 하는 열정이 필요하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에 대한 갈망의 자세이다. 이러한 열정은 공부뿐만 아니라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요소이다. 으레 학기 초만 되면 주위 친구들은 입버릇처럼 말한다. '이번에는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지.'

 

그런데 그런 학생들 중 대다수는 학기가 끝나고 나면 절망적인 성적표를 쥐게 된다. 원인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공통적으로는 공부를 하고자 하는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열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에는 공부를 해야하는 어떠한 목표와 목적의식도 존재하지 않는다. 열정 없이 시작하면 중간에 포기하게 되고, 결국에는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고 실패하게 마련이다.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열정이 중요하다. 열정이 있다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게 된다.

 

 

 

 

 둘째,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김득신이라는 학자는 사마천의『사기열전』의 첫번째에 등장하는 '백이열전'을 무려 1억 1만 1천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고 한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정말 무식한 암기식 공부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김득신이 왜 이러한 노력을 한 이유가 따로 있었다. 그와 친분이 있었던 선비들의 증언에 의하면 김득신은 많은 책을 읽은 똑똑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암기력에서는 많이 부족했다는 평이 있다. 그래서 김득신은 '백이열전'만 해도 수없이 반복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사기열전』뿐만 아니라 다른 책들도 무조건 소리내어 읽었으며 1만 번을 반복해서 읽은 책은 아예 읽은 횟수로 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김득신만 이런 공부 방법을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도 훌륭한 위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사람들도 종이가 닳아지도록 반복해서 읽었다.

 

김득신의 사례를 통해 끊임없이 반복하는 공부 방법만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행동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이를 참고 견디는 능력, 바로 인내라는 점이다. 인내심이 강한 사람은 어떠한 시련과 고통이 와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다. 사실, 공부는 결코 쉽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재미가 없는 게 보통이고, 외워야 하고, 이해해야 하는 수많은 정보에 한숨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갈망하는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과 동시에 인내가 꼭 필요하다.

 

 

 

 

 셋째, 두뇌가 제대로 가동되는 시간을 파악해라


집중은 공부 외의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정신을 분산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한가지에 마음을 온전히 쏟을 수 있는 집중하는 능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조바심 내지 말고, 한 자리에 끈기 있게 앉아 있는 습관을 들여야 하며, 한 자리에 앉으면 적어도 2시간 이상은 진득하게 앉아 있어야 하며, 공부하는 중간에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면 집중력이 분산되어 공부의 능률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중력이 요구되는 시간은 사람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어떠한 사람은 2시간 이상 같은 곳이 앉아 있어서 공부가 잘 되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30분동안 공부해야 집중이 잘 되고 공부할 내용의 암기가 잘 되는 경우도 있다.

 

흔히 학생들은 공부 고수들의 모든 비결은 그대로 따라하는 경향이 있는데 자칫 공부하는 흥미를 떨어지게 만들 수도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사람이 뇌를 잘 사용할 수 있는 시간과 방법은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으며 나 역시 그러한 실패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험생 시절에는 쉬는 시간 10분동안 소변이 마리지 않는 이상 책상에 앉아 교과서와 문제집으로 공부를 했다. 주위 학생들이 떠들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당시에는 수능 고득점만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단 하나의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나의 모습에 대단하다고 치켜세우는 친구들도 있는 반면에 쉬는 시간에도 공부만 하녀고 은근히 질투심 섞인 핀잔을 주는, 소위 '열폭'(열등감 폭발)에 휩싸인 공부 못하는 친구들의 불평도 있었다.

 

그 때는 5분이나 10분만 쉬고 한 두 시간 넘게 공부하는 것이 나에게는 최적의 공부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하루에 해야 될 공부 분량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꼭 잠을 미루어가면서까지 해야 했다. 그래서 시험 전날에 새벽까지 뜬눈으로 공부해본 적도 많았다. 말 그래도 수험생 시절은 정말 공부만 죽어라 했던 것이다. (내용 자제만 보면 부모님의 강요 하에 의한 공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로 그런 것은 아니다. 부모님은 그 당시, 온전히 나의 능력을 '과대 평가'했었기에 오히려 공부하라는 강요는 없었다. 오직 내가 필요한 문제집을 구입하는 데 있어서 과감히 투자를 많이 해주셨다)

 

하지만 공부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결과는 영 신통치 않았다. 좋은 결과도 있었지만 수험생 시절만 따로 통틀어 헤아려본다면 오히려 실패한 결과가 더 많았다. 혹자는 공부하는 시간과 노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교훈에서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정해져 있는 시간 내에서 알맞게 노력한 공부 방법 및 과정이라는 것이다. 결국에는 자신의 능력에 맞는 공부 방법을 제대로 몰랐기에 그저 많은 시간에 투자하는 공부를 할수록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무조건 믿게 되는 것이다.

 

대학생이 되면서 수험생 시절의 공부 방법의 문제점을 파악하게 되면서 선택한 공부 방법이 '살라미 공부 방법' 이다. 정치나 외교 용어 중에 '살라미(salami) 전술' 이라는 것이 있다. 이탈리아에서 볼 수 있는 살라미 소시지에 유래되었는데 이 소시지를 오랫동안 보관함으로써 조금씩 얇게 썰어 먹는다고 한다. 이를 외교 용어, 특히 협상 전술의 한 방법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협상하는 데 있어서 단번에 목표를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순차적으로 목표를 성취해나가는 전술 방법이다. 말 그래도 살라미 소지지를 조금씩 썰어 먹듯이 협상 과정도 한 번에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조금씩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전술 방식은 핵 문제를 둘러싼 북한의 외교 태도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는 방식인데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조금씩 풀어 놓으며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전략적인 방식이다.

 

하지만 공부 방법에서는 '살라미 전술'의 방식이 유용하다. 1시간 이상 집중하지 못한다고 해서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령대마다 다르겠지만 평균적으로 사람들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1시간이라고 한다. 공부하는 데 있어서 집중한 시간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집중력을 높여가면서 공부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길어도 1시간, 짧아도 30~40분 내로 공부하고 20분동안 쉰다. 하룻동안 암기해야 할 분량이 있다면 한 챕터당 40분씩 공부한다. 만약에 하나의 챕터에 공부해야 할 내용이 많다면 시간의 양을 늘려야겠지만 왠만하면 1시간 이상은 안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리고 짧은 내용은 짧은 시간에 집중력을 발휘해서 공부하는 것이 내가 선호하고 있는 공부 방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패턴을 통해 암기한 내용은 반복한다. 조금씩, 그렇다고 부족하지 않게끔 공부함으로써 정신적으로 피로감을 느껴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장시간동안 공부하는 시절보다 집중력을 높일 수 있으므로 공부하기가 수월하고 최근에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모든 사람이 이러한 방식이 모두 적용되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이러한 공부 과정이 공부하는 과목 특성상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공무원 고시 공부 할 때 이러한 방법이 먹혀 들지는 스스로 의문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만의 공부 방식까지 설명했던 이유에는 자신에게 적합한 나만의 공부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 라는 속담이 있듯이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 방법을 따라하다간 더욱 좌절감에 빠질 수도 있다.

  

 

 

 

 깊이 있으면서도 폭 넓게 공부를 하라


대학의 영어인 University의 어원이 '다양한 학자들의 집합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것과 같이 대학은 본질상 매우 다양한 가치를 추구한다. 다양한 가치와 사고 체계를 가진 최고의 지성인들이 모여 공동체를 만들고 이들 간의 자유로운 학문적인 교류와 연구가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고 전수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다. 이러한 점에서 대학은 '자유로운 다양성'을 중시하는 시스템과 환경을 갖출 필요가 있다.

많은 대학들이 선택과 집중을 발전전략으로 부각시키고 있지만, 지방대학과 같이 인적, 물적 자원이 한정되어 있어 교육과 관련된 시설 및 학문 분야에 고르게 투자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특히 중요한 이슈로 부각된다. 그러나 선택과 집중은 다양한 학문분야 간의 자유로운 경쟁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수렴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이상적이며, 소수의 사람에 의해 폭넓은 의견 수렴도 없이 반강제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되며, 특정분야에 집중하되 대학의 학문적 다양성의 기반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학문과 연구도 유행의 바람을 타서 특정분야 및 이슈가 단기간에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되기도 하지만 이를 해결할 능력은 학문적 다양성이 존중되는 환경에서 오랜 시간 동안 지식과 경험을 축적한 전문가 집단에게 있다. 대학의 미래는 이러한 다양성과 전문성을 갖춘 인재들을 양성하고 유지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달려 있다.

대학에서 교육받는 학생들은 학문적 편협성에 빠질 위험성을 항상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일부 학생들은 자신들이 대학원에 진학하여 전공할 학문 분야를 미리 정해놓고 이에 관련된 분야만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자신의 미래를 일찍부터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지식의 습득을 특정분야에 편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미래를 계획할 수 있지만 자신의 미래를 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장래에 필요할 것 같은 지식만을 예측하여 습득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앞으로 학문의 추세는 점점 경계가 허물어지고 융합되는 방향으로 간다. 재미있게도 경영학과나 행정학과 교수님들은 똑같이 학문의 '융합'을 강조했다. 용어는 다르지만 요즘 우리나라 사회에서 대두되고 있는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의 의미와는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통섭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통해 지식융합의 미래에 대한 안목을 갖출 수 있다.   

 

오늘 오전에 경영학 수업 첫 시간에 모 교수님의 재미난 일화를 소개하셨다.

 

유명한 모 기업의 직원과 친분이 있어서 한 번은 대학생들의 취업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모 기업 직원에 의하면 수도권 대학생들과 지방권 대학생들의 수준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차이점 때문에 아무래도 지방권 대학생들이 취업에 불리하게 작용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러한 수준의 차이는 면접을 통해서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서 면접에서 수도권 대학생과 지방권 대학생 두 명에게 공통적으로 '개구리'에 대해서 질문을 하게 되면 이에 대한 대답이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이다. 지방권 대학생은 면접관의 질문에 '개구리는 양서류이며..' 식으로 시작해서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며 모든 사람들이 알만한 상투적인 내용들만 대답했다. 그러나 수도권 대학생들의 대답은 달랐다. '개구리'라는 질문에 대해서 과학적인 관점으로 소개한 것이 아니라 문학적인, 사회과학적인 관점이든지 간에 보다 새로운 관점으로 설명한 것이다. 이 두 대학생들의 면접 대답을 비추어 본다면 면접관이 선호하는 학생은 당연히 수도권 학생일 수 밖에 없다.

 

 

 

 

 

 

 

 

 

 

 

 

 

 

 

 

 

 

결국에는 자신이 알고 있는 공부만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편협적인 학문 태도에 갇힌 모습은 비단 학생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작 학문 간의 융합과 교류가 필요하는 학계에서도 예전부터 존재해왔으며 지금도 이과와 문과 간의 장벽은 여전히 굳건하다.

 

영국의 시인이자 과학자였던 C.P. 스노우는 인문과학을 전공한 사람들과 자연과학을 전공한 사람들 사이의 문화적 괴리와 상호 몰이해, 의사소통의 단절을 '두 문화'라고 규정함으로써 현대 서구문명의 중대한 장애물이자 심각한 위협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이와 관련된 강연에서 스노우는 인문과학을 전공한 전문가들에게 아인슈타인의 E=mc2를 알고 있는지 물어봤다고 한다. 그러자 스노우의 질문에 알고 있다고 손을 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스노우는 인문과학 전공자들이 아인슈타인의 공식을 모른다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단 한 권도 읽어보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탄식했다.

 

이러한 스노우의 우려 섞인 탄식은 결국 우리나라 사회 현실에서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 사회는 학문을 구분하는 데 있어서 '이과'와 '문과'로 구별하려고 한다. 하지만 이 구분은 실체가 있는 본질적인 구분이 아니라 지극히 임의적인 구분이다. 문과와 이과 사이의 장벽은 각각에 속하는 분야들 사이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 머릿속에 관념상으로 존재하거나 사회 속에 제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과와 이과 사이에서 우리가 느끼는 뚜렷한 차이라는 것은 양쪽 분야들의 내용과 성격에 실재하는 것이기보다는 이런 관념적, 제도적 장벽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다.

 

일본의 유명한 '지(知)의 거인'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러한 허상의 장벽을 만들어 낸 일본의 공부 환경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대학생들의 학력 저하 문제와 현대적인 교양의 문제에 대해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문부성의 교육 정책에 의해서 정해진 틀과 방향이 결정되는 일본의 고등교육은 학생들의 학력 저하와 교양교육의 붕괴라는 문제를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도쿄대 학부생들을 똑같은 '찻잔'으로 생산되는 것과 똑같다고 비유했다.

 

교양은 세분화돼가는 학문을 통합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눈을 갖는 일. 대학은 교양인을 키우는 게 첫번째 사명이지만 요즘 대학교는 교양 있는 지식인 대신 법률가, 회계사, 행정가, 경영인 같은 스페셜리스트를 만드는 데 골몰해있다.

 

큰 그릇의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지닌 학생은 다양한 학문 분야에 대한 균형된 지식을 습득하고, 다양한 의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사고의 다양성과 보다 넓은 포용력을 지녀야 한다. 현대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단순히 '스페셜리스트'가 아니라 높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이다. 낮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가 기술을 모르는 단순 교양인이라면 높은 수준의 제너럴리스트는 전문분야의 기술에 대한 이해력을 갖추되 사회전체를 보는 안목을 갖춘 교양인이다. 그리고 이런 제너럴리스트를 육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높은 수준의 교양교육이다.

이처럼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다른 특별한 공부비법이 있다기 보다는 위에서 열거한 가장 기본적인 세가지 요소인 열정, 인내, 집중 그리고 다양성을 추구하는 공부 자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중요한 진리를 몸소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공부 방법이 스펙을 쌓는 데 유리하거나 좋은 성적의 결과를 이루어낼 수 있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나를 둘러싼 주변의 세상을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터득할 수 있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논어』 첫 장에 등장하는 '학이편'의 유명한 구절처럼 사람들이 공부하는 데 있어서 괴로움보다는 넓은 세상을 이해하면서 생기게 되는 기쁨을 누려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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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12-03-09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를 하고자 하는 열정이 필요하다' 이 말씀 참 좋습니다.
어느 대학 신입생이 자기네 학교는 서양미술사를 필수교양으로 들어야 한다고 불만이 많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이야~ 니네대학교 짱인데?? 나는야 서양음악, 미술사를 찾아다니면서 들었다야~
좀 좋으니~ 그런 걸 필수로해주고??'
했더니 죽을 맛이라더군요..

페이퍼를 읽으니 대학시절이 떠오르는군요..
어느 학기에는 평소 관심두던 서양철학을 교양으로 선택하고 강의실에 들어가보니...
아 글쎄 Aristotle!! 헉~
500쪽짜리 원서를 턱~ 하고 던져주시더니 하시는 말씀,
'꽈대표~ 복사해서 한 부씩 돌리도록~' 이거 완전 전공철학이었던 것입죠.
그때만해도 국내에 들어온 교재가 아니었던 고로...복사해서 돌렸습니다.

나중에 교수님과 우연히 마주쳤는데 하시는 말씀...
'자네 참 배짱 좋으네~ 영문과가 전공 철학 듣는다고 설쳐대는 꼴은 첨이야~
내 기특해서 이번 학기 학점으로 자네를 실망시키지는 않겠네, 다음 학기에는 오지 말게나'
하시는 거 있죠.. 참 고마우신 교수님 ㅠ.ㅠ

저는 관심 분야라 듣고 싶었던 것인데 이것이 녹록하지가 않더라는 말씀...
여하튼, 학구열 하나로 학점을 버텨내기란 취업의 관문이
학생들을 너무 괴롭게 한다는 현실...

그러나 대학은 인생의 황금기...이 때 안목을 터득하는 기회를 놓친다면 정말...
아까운 시간들입니다..

대학 공부의 적극적고 좋은 태도를 일깨워주는
당신의 페이퍼는 참 짱입니다~

cyrus 2012-03-09 12:15   좋아요 0 | URL
랑공님도 공부를 제대로 하셨네요. 역시 요즘 대학 강의실 풍경이랑 너무 다르네요, 어느 경영학과 교수님 말씀으로는 자신이 경영학과
학부생 시절에는 강의 내내 세미나 형식으로 했대요. 그래서 세미나에
제대로 참여하기 위해서는 직접 자료를 찾아 공부를 했대요.
그래서 자신도 학생들에게 세미나 형식의 수업을 하고 싶었지만,,
학생들이 취업 준비로 인해 힘들까봐 안 한대요 ^^;;

노이에자이트 2012-03-09 16: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과 분야도 재밌는 게 많은데...스노우의 저 일화는 유명하지요.저는 청소년용으로 나온 과학서적도 꽤 갖고 있어요.얼마전에는 과학학습만화로 물리학시리즈가 있어서 구입했어요.동물이나 기후 지질 쪽도 재밌는데 문과 출신들은 영 관심이 없어요.

cyrus 2012-03-14 17:08   좋아요 1 | URL
저도 초등학생 때 읽은 과학학습만화 시리즈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만화라서 내용을 이해하는데 쉽고 재미있는 책이 없을거에요.
가끔 모르는 내용을 공부할 때 과학학습만화를 다시 읽어보기도 해요 ^^
 

 

 

 #1  비 오는 날의 금요일

 

 

 

 

 

 

어제 새벽에 비가 내렸다. 너무나도 조용할 정도로 가느다란 빗방울이었지만 비가 와서 그런지 날씨가 쌀쌀했다. 하필 어제가 개강하는 날이라서 학교를 안 갈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비가 오고 따사로운 햇살을 좀처럼 볼 수 없을 정도로 흐린 날씨였지만 그 날 따라 기분은 좋았다. 기간상으로는 3월의 둘째날이지만 일정상 2012년도 1학기를 시작하는 뜻 깊은 날이다. 그리고 이제 막 3월이 시작되는 날에 내리는 이 비는 이제 곧 봄이 멀지 않았음을 느껴지게 만드는 봄비이기도 하다.

 

때마침 비가 오는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학교 가는 버스 안 라디오에 '비 오는 날의 수채화'가 흐르고 있었다. 강인원, 권인하, 김현식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원곡이었다. 내가 아기(!)였을 때 나온 추억의 노래이지만 SG워너비의 리메이크 곡과 '나가수' 경연 때 부른 박정현 버젼보다 더 좋아한다. SG워너비의 리메이크 곡은 오히려 과한 바이브레이션 때문에 원곡에서 묻어 나오는 비가 오는 날에 느껴질 수 있는 행복한 기분이 나지 않는다. 박정현 버젼은 박정현의 목소리에서만 묻어 나올 수 있는 애절함을 느낄 수 있지만 이 역시 비 오는 날에 느껴지는 유쾌함과는 거리가 멀다. 원곡 같은 경우에는 노래의 도입부과 마지막에 나오는, 높지도 않고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강인원의 음색과 클라이맥스에서 등장하는 김현식과 권인하의 고음은 절묘하게 어울린다. 시작할 때 나오는 강인원의 음색이 이제 막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알려준면서 우리의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준다면 중간에 나오는 김현식과 권인하의 음색은 비 내리는 날에 느껴지는 행복하고 즐거운 기분으로 흠뻑 적셔주게 만들어 준다.

 

 

 

 

음악이 흐르는 그 카페엔 초콜렛색 물감으로
빗방울 그려진 그 가로등불 아랜 보라빛 물감으로
세상 사람 모두다 도화지 속에 그려진
마치 풍경처럼 행복하면 좋겠네
욕심많은 사람들 얼굴 찌푸린 사람들
마치 그림처럼 행복하면 좋겠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 클라이맥스의 노랫말처럼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이런 날을 즐겁고 행복하게 받아들이길 바랬지만 오히려 비가 오고 쌀쌀하기만한 날씨에 대해서 불평, 불만을 늘어놓은 채 얼굴을 찌푸렸다. 비가 오고 있는 이 날에 좋아하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강의실에 드나들게 되면서 비에 젖은 우산을 펼치다가 또 다시 접어야 하는 식으로 보관하는 것조차 귀찮아하는 친구도 있었다.

 

 

 

 

 #2  알라딘, 보고 있나?

 

오늘 아침에 듣었던 강의가 '마케팅원론'이다. 수업 첫 날이라서 간략하게 수업 방식과 추후 하게 될 과제에 대해서 소개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이 과목의 과제다. 과제 주제가 기업의 마케팅에 대한 불평, 불만사항을 직접 편지나 메일로 전달하여 기업으로부터 받은 사항에 대한 답변을 토대로 일종의 보고서 형식으로 작성하는 것이다.

 

처음 과제 주제를 듣는 순간, 벌써부터 난감해졌지만 머릿속에 순간 그 유명한 '기업'이 떠올렸다.  알라딘!!!!!!!!!   유레카~~~   그나마 나에게 친숙한 유일한 기업이라고는 알라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알라딘을 '기업'이라고 말하기에는 그렇지만, 어쨌든 알라딘이라는 온라인 서점도 영리를 위하여 책을 판매하는 조직이기 때문에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아직 마케팅의 '마'자도 모른 상태이고 알라딘 서재 블로그를 시작한 지 이제 막 1년이 지난 터라 알라딘이 펼치고 있는 마케팅에 대해서 모르는 부분이 많다. 간혹 알라딘에 대한 불만, 문의사항을 게시판에 작성할 수 있는 '서재지기 서재'를 확인하곤 하는데 일단은 그 곳에서 알라딘 기업에 대한 고객의 불만사항들을 토대로 계량적인 분석 과정을 통해 공통적인 내용의 표본을 추출하여 조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부터 알라딘 블로그에서만 글만 쓰는 것이 아니라 알라딘의 모든 마케팅 활동을 꼼꼼하게 파악해야 하는 일까지 생기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케팅 수업을 열심히 들을 수 밖에. 마케팅의 기본도 모른 채 불만을 제기하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비록 과제를 위한 목적에서 하는 것이지만 이번 과제를 통해서 알라딘 서점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불만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하나의 발판으로 되었으면 좋겠다.

 

알라딘 서점을 오래 이용해 본 분들에게는 알라딘 마케팅에 대한 불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은 '크게 고쳐져야 할' 커다란 문제점을 경험해보지 못했으며 서점을 이용하면서 이렇다 할 불이익을 겪지 못했다.

 

알라딘 서점을 5년 이상 애용하신 분들 중에 알라딘 마케팅에서 불만사항이나 개선되어야 할 점이 있다면 댓글이나 메일로 보내주신다면 내가 과제 작성하는 데 있어서만이 아니라 알라딘이라는 온라인 서점이 크게 발전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3  '대학교재' 등골 브레이커  

 

 

 

 

 

 

 

 

 

 

 

 

 

 

 

 

 

 

 

나는 항상 주위 동기들에게 이런 말을 한다. '교재를 구입하느냐 안 하는냐에 따라 성적의 결과가 달라진다.'   멋진 명언처럼 보이게 썼지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제대로 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직접 교재를 구입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들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공부하는 데 있어서 교재구입을 강력하게 옹호하는 입장이었다.  이미 학창 시절을 경험한 어른들은 공부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교재를 구입하는 것을 아까워하지 말라고 말하시기도 한다. 나 역시 그런 어른들의 말에 동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대학교재 구입은 어려울 수도 있다. 안 그래도 대학등록금 때문에 학생들이 고생하는 마당에 교재 두, 세 권 사는데 5만원을 훌쩍 넘는 비용은 부담스럽기도 하다. 등록금을 모으기 위해 바쁜 시간 쪼개가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판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 입장에서는 직접 공부할 교재를 구입하면서 배울 수 있는 기회마저도 쉽지 않은 것이다.

 

나 역시 학년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대학교재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작년 학기 때부터는 제본을 하기 시작했는데 직접 교재를 구입하면서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번 학기에 구입해야 할 대학교재는 총 4권인데 알라딘에서 판매되고 있는 가격으로 합산하면 10만 원이 넘는다. 사실 대학교재를 무단으로 복사하거나 제본하는 것은 법적으로는 불법이다. 하지만 경기 불황은 대학가 캠퍼스도 피할 수 없다. 혹자는 불법으로 교재를 제본하거나 일부 복사하는 학생들이 공부를 소홀히 하는 학생들이라고 볼 것이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공부하는 데 싫어서. 교재 사는 비용이 너무나도 아까워서 하는 것이 아니다. 정작 공부를 하고 싶은데 대학교재를 구입하지 못할 정도로 저소득층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4  스터디메이커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가정 형편이 여유롭지 않은 학생일수록 학구열에 대한 열망이 강하며 비용이 아까워더라도 대학교재를 꼭 구입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왠만하면 내가 사용한 교재는 되도록이면 팔지도 않고 보관한다거나 친한 동기들에게 물려주는 편이다. 한 번 배운 강의 교재는 언젠가는 훗날 써먹을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내 방의 서재에 항상 꽂아둔다. 그리고 가끔 행정학을 복습할 기회가 있을 때 요긴하게 사용하곤 한다.

 

작년에 3학년 과목인 '법과 사회' 강의를 미리 듣은 적이 있게 되어서 이번에 이 수업을 듣게 되는  

동기를 위해서 강의 시간에 썼던 교재를 물려주기로 했다. 그 한 권의 교재 덕분에 그 교재를 받게 된 동기뿐만 아니라 가지고 역시 그 수업을 듣게 되는 4명의 동기들도 제본을 할 수 있었기에 교재를 구입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물려준 이 한 권의 교재가 5명의 학생들을 구제했던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는 이 교재를 물려주기에는 조금은 망설인 적이 있었다. 왜냐하면 필기가 워낙 잘 했고 중간, 기말고사 시험 출제 내용까지 너무나도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바로 제본된 교재를 이용하는 공부의 단점이다. 미리 밑줄이나 메모가 되어 있기 때문에 공부를 하려는 학생 입장에서는 자기만의 주도적인 학습을 유발하기가 어려우며 결국에는 남이 먼저 한 공부를 그대로 흉내낸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결국에는 자신이 학습한 내용을 스스로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프로세서가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그러한 문제를 그대로 유지하게 된다면 앞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해야 할 공부들을 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내가 5명의 친구들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이 교재에 중간, 기말고사에 출제되는 모든 시험 범위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더할 나위 없이 공부하기 편한 교재를 사용한다면 당연히 A+를 받아야 되고, 못 해도 최소 A학점은 나와 줘야 한다. 만약에 이 과목에서 B- 학점 이하의 성적이 나오게 된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소원을 들어줘야 한다."

 

이런 내기를 제안함으로써 은근히 친구들이 공부하려는 의욕을 높일 수 있도록 자극을 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학교 다니면서 만나고 있는 남자 동기 20명 중에 한 두명 정도는 달랑 한 과목만 A+ 학점을 받을 뿐 나머지는 B+ 학점 이하를 받거나 심할 때는 F 학점을 맞은 경험이 있다. 정말 오랫동안 공부와 담 쌓은 철 없는 놈들이다.

 

개강 첫 날, 학기를 시작하는 날이라서 그런지 친구들로부터 공부에 대한 의지를 볼 수 있었다. 이들을 지켜본 친구로써 이들의 마음이 제발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들의 바램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는 공부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먼저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시험에 나오는 정보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공부 방법을 전수해주고 싶다. 나도 잘 되면서도 남도 잘 되면 좋지 아니한가. 과연 이들의 노력이 학기 말에는 성과의 결실을 맺으면서 누가 최후의 웃음을 짓게 될지 지켜봐야겠다. 이번 2012학년 1학기의 대학생활, 벌써부터 흥미진진하면서 기대된다.  

 

 

 

 

 

P.S> 알라딘 블로그를 하면서 처음으로 페이퍼에 동영상을 올려 봤다.

 

며칠 전에 유투브 동영상을 올리는 방법을 알려주신 다락방님 덕분에 알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좋은 정보를 알려주신 다락방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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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3-03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렇구나. 유투브 정말 너의 서재에선 처음 보네.
나도 아직 잘 모르는데. 가끔 알고 싶은 때도 있지만 기계에 별 흥미가 없어
알고 싶다가도 그만 둔다.

알라딘을 상대로 마케팅 실습(?)을 하는구나.
서점이 불만이 많아봤자 얼마나 많겠니? 옛날에 동네 서점 이용할 때 마일리지가 있었냐? 적립금 준다는 마케팅이 있었냐? 불만이 있다면 그건 절대적이 아닌 상대적인 개념일 거야.
재작년이던가? 그때 그 사건 알지? 초상권. 물론 1차적인건 그 출판사에 있지만 적극 대응 못한 알라딘에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것. 그리고 난 정신적 보상을 요구했지만 형식에 그친 것. 지금도 그것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 라인이 없으니 애매해.
내가 말하려 하는 건 알라딘 뿐만 아니라 각 기업마다 고객에 대한 그 어떤 정신적 피해 보상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 지 궁금해.

그리고 내가 항상 얘기하는 거지만, 알라딘 이달의 당선작 적립금 제도에 문제점은 없는지. 하는 불만. 더구나 영화 서비스 없어지면서 영화 리뷰에 대한 당선작을 어떻게 할 건지 모르겠어. dvd로 대체되는 건가?
그리고 리뷰대회는 타사에 비해 참 적게 여는 것 같아. 뭐 이건 불만이라기 보단 아쉬움에겠지. 그런 등등.ㅋ

아, 근데 네 서재엔 봄이 왔구나.
나도 뭔가 새로 옷을 입혀줘야 할 것 같은데 마땅한 옷이 없네.ㅋㅋ

cyrus 2012-03-03 14:43   좋아요 0 | URL
아직 과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어요. 그래도 누님이
언급하신 정신적 피해 보상에 관련된 부분은 참고해볼께요. ^^

저도 서재 바탕화면 10분 정도 고른 끝에 바꾼거에요 ㅎㅎ
서재 바탕화면도 새로운 걸로 업데이트되었으면 좋겠어요 ^^

아이리시스 2012-03-03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강했군요! 이번 학기에는 연애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역시 장학금도요.^^

cyrus 2012-03-03 14:44   좋아요 0 | URL
연애는,, 모르겠어요. 올해도 그냥 조용히 지나갈 거 같아요 ^^;;

이진 2012-03-03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그 한글로 인하여 모든 알라디너들이 도움을 받으셨다니 왜 제가 다 흐뭇하고 기쁠까요 ㅎㅎㅎ
이것이 대학의 수준이군요. 알라딘으로 마케팅 실습을 벌이다니 뜻깊은것 같아요. 저도 아직 입성한지 얼마되지 않았기에 그닥 불편한 점은 없는 것 같기도 하구요. 부디 멋진 보고서 써내시길 바라며 ^_^

cyrus 2012-03-03 14:4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블로그를 통해 서로 간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좋고 행복한 일이죠. 특히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모든 사람들에게
소개하면서 함께 듣는 것도요. ^^


카스피 2012-03-03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제 알라딘 마케팅팀은 좀 고생하시겠는데요^^

cyrus 2012-03-05 14:46   좋아요 0 | URL
고생시키려면 제가 마케팅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는데요, 오히려
제가 더 고생할거 같아요 ^^;;

blanca 2012-03-03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교재는 여전히 비싸군요. 제가 대학 다닐 때도 한 권 사는 것도 참 부담이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대학때 산 교재들이 친정에 있답니다.^^;; 알라딘의 마케팅 분석이라니 의미도 있고 여러 모로 잘 선택하신 것 같아요.

cyrus 2012-03-05 14:48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도 대학교재들을 간직하고 계시는군요, 졸업 후에도
언젠가는 다시 들춰보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남에게 팔지 않으려고
해요. 대신에 공부할 의지가 있는 친구나 후배가 있다면 기꺼이
줄 의향은 있어요 ^^

반딧불이 2012-03-04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로그질(?)을 이렇게 학구적으로 하시다니....all A학점 받으실만 하십니다.
마케팅론 수업에 도움이 될만한 불만이 생기면 당장 이리로 달려오겠습니다.

cyrus 2012-03-05 14:48   좋아요 0 | URL
ㅎㅎ 감사합니다. 반딧불이님 ^^

마녀고양이 2012-03-0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하, 시루스님, 이번 학기에는 알라딘을 타켓으로 마케팅 과제를?
넘넘 흥미로운데요. 잼나기도 하고, 우려스럽기도 하고... 머..... ^^
저는 그냥 포기니까요. 큭큭.

여하간 나중에 꼭 결과를 페이퍼를 통해 공개하시기예요. 화이팅!

cyrus 2012-03-05 14:49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우려스러운 마음이 들긴 해요. 괜히 램프 건드리다가는
여기서 퇴출당하는건 아닌지 한편으로는 걱정도 드네요. ^^;;


다락방 2012-03-13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________________^
 

 

 

 

 건축가 루시우스의 황당한 시간여행

 

 

 

 

 

 

 

 

 

 

 

 

 

 

 

 

 

 

 

며칠 전에 IPTV를 통해 재미있는 내용의 만화를 봤다. 야마자키 마리『테르마이 로마이』라는 만화다. 고대 로마 목욕탕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만화의 상상력과 소재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역사물이면서도 개그를 가미한 재미있는 만화다.

 

만화의 줄거리를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로마의 목욕탕 건축가 루시우스가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갑자기 일본의 현대 목욕탕으로 시공간 이동을 했다가 로마로 돌아온 뒤 일본의 목욕문화를 로마에 소개해 대성공을 거둔다는 이야기다.

 

 

 

 

  

 

 

 『테르마이 로마이』일본어판 3권 (알라딘 내 서지검색 불가능)

 

  표지에 등장하는 머리를 감고 있는 남자를 보면서 어디선가 본 듯 낯익더라 했었는데,,

  알고 보니 로마 시대에 제작된 '라오콘 상'일부분이었다.  

  커다란 뱀에 의해 고통스러워 죽어가는 라오콘을 만화 표지에서는 머리 감는 남자로

  만들다니..  만화가의 패러디에 절로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테르마이 로마이』일본어판 4권

   

 

 

내가 IPTV로 본 것은 일본 후지 TV에서 3부작으로 방영된 TV판 애니메이션이다. 원작의 각 한 권당 총 5편의 에피소드가 실려 있는데(일본에서는 4권까지 출간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현재 2권까지 번역, 출간되었음) TV판은 3부작 총 6편의 에피스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 원작에 있는 내용들이다. 만화 원작을 읽어보지 못한 나로써는 TV판으로나마『테르마이 로마이』의 내용 일부만 볼 수 있어서 아쉬운 감이 들었다. (『테르마이 로마이』를 검색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일본에서는 원작을 토대로 실사 영화로 작년부터 제작, 촬영 중이며 내년에 개봉 예정이라고 한다)

 

고대 로마와 일본은 모두 화산 국가이며 온천이 발달했고, 목욕 문화를 즐긴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연결고리에서 시작한 만화는 고대와 현대를 오가며 동서양 목욕 기구와 문화의 차이 등등을 더해 매회 유쾌한 개그 에피소드가 연출되었다. 하지만 픽션이라고 해서 이 만화를 그저 웃음을 유발하는 가벼운 만화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테르마이 로마이』TV판 에피소드 중 장면.  만화 주인공이자 로마의 건축가인 루시우스이다. 그가 쥐고 있는 갈개 모양의 물건은 스트리질이라는 목욕 도구이다. 고대 로마인들이 목욕탕에 들어가기 전에 몸에 묻은 먼지나 때를 벗겨내기 위해 사용한 일종의 '때밀이'다.

 

 

 

 

만화 곳곳에 등장하는 로마의 건축양식과 주변 인물들은 이탈리아에서 유학생활을 한 만화가의 경험과 철저한 자료 고증을 통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남편 역시 이탈리아 유학생활 중에 만난 이탈리아 출신이다.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소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은 황제의 손자이자 『명상록』을 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과거 지나간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면서 황제가 지켜야 할 덕목 등 다양한 이야기들을 고백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직 읽어보지 않은 터라 이 소설에서 하드리아누스가 자신의 동성애적 취향을 언급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테르마이 로마이』에피소드에는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76~138)가 등장하는데 루시우스가 최고의 목욕탕을 만들 것을 주문하는 의뢰인으로 등장하며 만화에서는 미소년을 좋아하는 동성애자로 나온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팍스 로마나를 이룩한 5현제 중의 한 사람으로 로마의 전성시대를 마련한 군주로 평가받고 있지만 실제로 동성애를 즐겼다고 한다. 그 당시 로마에는 동성애가가 보편적인 문화였기에 가능했다.

 

그는 자신보다 어린 미소년을 자신의 궁전에 불러들여 함께 생활을 했는데 그 중에 황제로부터 많은 총애를 받은 자가 안티노오스(안티누스, ?~130)였다. 그는 황제마저도 혹하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청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오랜 수명을 누리지 못한 채 이집트에서 사망하고 말았는데 어느 문헌에 의하면 황제의 제물이 되었다거나 본인 스스로 나일 강에 투신자살했다고 전해진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사랑했던 미소년 안티노오스의 흉상 모작

 

 

 

자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스럽게 여기던 안티노오스가 죽자, 실의에 빠진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로마 전역 곳곳에 안티노오스의 조상을 여러 개 세움으로써 그의 행적과 생전의 아름다움을 추모했다. 오늘날까지도 안티노오스의 조상 또는 흉상 모작이 남아 있는데 로마인들이 극찬했던 전형적인 '꽃미남'의 표상이 되었다.

 

 

  

 

 

 

 목욕을 좋아했던 고대 그리스, 로마인들

 

 

 

 

 

 

 

 

 

 

 

 

 

 

 

 

 

 

 

『테르마이 로마이』만화를 보고나서 문득 로마의 목욕 문화에 대해서 알고 싶어져서 정보를 검색해 본 결과, 로마의 목욕 문화를 보다 쉽게 알 수 있는 책이 캐서린 애셴버그의 『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 (예지, 2010)뿐이었다. 『테르마이 로마이』만화를 보면서 궁금했던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해갈할 수 있었다.

 

로마에는 수많은 공중 목욕탕이 설치되었는데 '테르마이''발네움'으로 구분할 수 있다. '테르마이'는 다양한 기능을 갖추어 있으며 화려하면서도 거대한 '스파'라고 한다면 반대로 '발네움'은 평범하면서도 작은 크기의 일종의 '동네 목욕탕'이라고 보면 된다.

 

 

 

 

 

토마스 쿠튀르 「타락한 로마인들」 1847년

 

 

 

로마 문화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상이 '향락'과 '사치'다. 역사가들은 쾌락을 추구하는 로마인들의 사치스러운 생활이 로마 패망의 지름길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로마제국 쇠망사』를 쓴 영국의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 역시 로마의 사치스러운 목욕 문화가 로마의 멸망을 재촉했다고 봤다.

 

실제로 고대 로마의 테르마이는 이미 어느 정도는 현대식 목욕탕의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옷을 입고 벗을 수 있는 탈의실이 갖추어져 있으며 온탕, 냉탕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만화 에피소드처럼 음식과 음료가 제공되는 간이 식당이 마련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목욕탕 내부 또는 근처에는 정원, 운동장, 도서관 등도 설치되었다. 현대식 목욕탕과 다른 점이 있다면 로마인들은 비누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비누를 사용 안 했다기보다는 일부러 사용하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 그 당시 비누는 오늘날의 비누만큼 제 구실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탈의실에는 입욕자들의 옷을 지키는 노예들이 있었다.  

 

로마인들의 목욕 방법은 일정한 순서로 정해져 있다. 목욕탕 근처에 마련된 운동장에서 운동을 하고 난 뒤에 바로 목욕탕을 향했는데 그들은 땀과 먼지가 묻은 채 탕으로 향하지 않았다. 스트리질로 때와 먼지를 벗겨낸 뒤에 온탕, 열탕, 냉탕 순으로 몸을 담갔다.

 

하지만 이러한 로마인들의 목욕 문화는 로마인들이 스스로 만든 독창적인 문화라고 볼 수 없다. 목욕 문화를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고대 그리스에서 비롯되었다. 로마보다 이미 그리스가 먼저 목욕 문화가 발달되었다.   

 

다만 로마의 목욕문화가 향략적이라고 한다면 그리스 인들에게 '목욕'은 살아가는 데 절대로 빠져서는 안 될 보편적이면서도 예의를 지키기 위한 신성스러운 행위였다. 신에게 기도할 때나 제물을 바치기 전에 먼저 몸을 씻었으며 낯선 사람이나 친구의 집에 도착했을 때도 집주인은 자신의 집을 방문한 손님이나 친구에게 먼저 몸을 씻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는데 그것은 그리스 인들에게는 하나의 '예의'였다.

 

  

 

 

 

 유레카!  

 

 

 

 

 

 

 

 

 

 

 

 

 

 

 

 

 

 

『테르마이 로마이』TV판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루시우스는 '목욕의 힘은 위대하다'라고 말하면서 목욕의 즐거움을 찬미하고 있는데 사실 그저 몸을 씻는 '목욕'이라는 행위 속에는 세계를 뒤흔들고 지금까지도 기억되고 있는 역사적인 사건들이 많다. 그야말로 '목욕의 힘'이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적 장면을 연출할 수 잇었던 것이다.

 

 

만약에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 들어가는 대신에 산책을 했다면 왕관이 금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을까?

 

아르키메데스는 시라쿠사 왕이 쓰고 있던 왕관에 금 대신 은이 섞여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던 중에 머리를 식힐 겸 목욕탕에 몸을 담그게 되는데 자신의 체중으로 인해 욕탕에 넘쳐 흐르는 물을 보면서 왕관을 훼손하지 않은 채 왕관의 성분을 알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된다. 오랜 고민 끝에 찾아 낸 발견이라 기쁨에 겨운 아르키메데스는 벌거벗은 채 거리로 뛰쳐나와 '유레카!'(발견했다!)라고 외쳤다는 이야기는 단골 과학사 에피소드로 너무나도 유명하다.

 

하지만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 일화가 아르키메데스 사후 수백 년이 지난 뒤에야 등장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학자들 사이에서는 허구된 이야기라고 보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더라도 아르키메데스의 일화는 물체의 부피, 질량, 밀도 사이에 성립하는 개념적 상관 관계에서 비롯된 부력의 원리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다.

 

 

 

 

 

 증기탕에서 죽은 철학자 

 

 

 

 

 

 

 

 

 

 

 

 

 

 

 

 

 

『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에는 목욕의 역사만 소개할 뿐만 아니라 목욕과 관련된 재미난 일화들도 소개하고 있다. 목욕을 너무 좋아해서 목욕탕에서 암살당해 그 곳에서 최후를 맞이하고 만 로마 황제들이 있는 반면에 자신의 죽음을 재촉하기 위해서 일부러 목욕을 한 철학자가 있었다.

 

『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죽음도 '목욕'과 관련해서 유명하다.

 

 

 

 

 

자크 루이 다비드 「세네카의 죽음」 1773년

 

 

 

세네카는 로마 황제 네로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세네카는 어린 시절부터 네로를 가르쳤으며 그가 황제가 되었을 때 직접 정치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네로의 폭정이 시작된 이후부터 세네카는 정치에 뜻이 없음을 스스로 밝혀 정계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그 역시 황제의 스승이라고해서 네로의 광기어린 피바람을 피할 수 없었다. 네로는 자신을 둘러싼 암살음모에 스승 세네카도 관련이 있다고 모함을 하기에 이른다. 결국 네로는 자신의 스승에게 스스로 자결할 것을 명하였다.

 

그 당시 로마의 전통에 따라 황제가 명하는 자살은 일본처럼 할복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 발목이나 종아리의 혈관을 끊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칼로 그은 부분에서는 과다 출혈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자 세네카는 출혈을 위해서 물이 담긴 통에 칼로 그은 발목을 담갔다. 역시나 출혈이 심하게 일어나지 않자 이번에는 소크라테스처럼 독약을 마셨으나 이 방법마저도 실패하고 만다. 결국 세네카는 뜨거운 증기탕에 들어갔으며 그 곳에 질식사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급소에 정확히 칼로 찌른다면 단숨에 즉사할 수 있었을텐데 세네카는 죽음을 맞이할 장소를 따뜻한 온기가 가득찬 증기탕으로 선택했다. 목욕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로마인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동시에 자살을 예찬한 스토아 학파의 철학자다운 극적인 죽음이다.

 

 

 

 

 

 가장 극적인 욕실 살인

 

 

 

 

 

자크 루이 다비드 「마라의 죽음」 1793년

 

 

 

몇 몇의 로마 황제들은 욕탕에서 목욕을 즐기다가 비무장된 상태에서 암살자들로부터 불의의 최후를 맞았다고 했지만 수천 년이 지난 뒤에 프랑스에서 발생한 '욕실 살인'에 비하면 시시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프랑스 혁명에는 일세를 풍미했던 인물들이 등장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바로 장 폴 마라(1743~1793)이다. 그는 프랑스 국민들로 인기를 한 몸에 받을 정도로 혁명 과격파인 자코뱅당의 중심 인물로 부각되었다. 하지만 국민들을 선동하는 그의 과격한 정치적 행보에 반대하는 세력들, 즉 지롱드당은 그를 제거하기를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마라는 심각한 피부병 때문에 고생했는데 그 당시에는 피부병을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욕조 속 찬 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 유행했다. 마라 역시 쉬는 날에는 하루 절반을 자신의 집에 설치된 욕탕에서만 지냈다. 마라는 욕조에 물을 담근 상태에서 종종 업무를 보거나 편지와 책을 읽곤 했다.

 

1793년 7월 13일, 마라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욕탕에 몸을 담근 채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떤 여자가 자신을 만나고 싶어한다고 해서 찾아왔다. 그는 여자 손님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채 자신의 욕실로 들어오도록 했다. 이제 곧 자신의 목숨을 앗아 갈 '저승사자'를 스스로 불러들이고 말았다. 마라를 만나고 싶어하던 여자는 자신의 품 안에 숨긴 칼을 반나체 상태인 그의 흉부에 여러 차례 찔렀다. 국민들의 영웅이었던 혁명가는 이렇게 한순간에 욕실에서 최후를 맞게 되었다. 마라를 암살한 여자는 마라를 반대하던 지롱드 당원 소속의 샤를로테 코르데(1768~1793)라는 인물이었다. 마라의 암살 소식을 접한 프랑스 국민들은 혁명 영웅의 죽음을 추모했으며 자객 코르데는 민중의 분노 속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마라의 절친한 친구이자 열렬한 혁명 과격파인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는 '친구'이자 '혁명의 영웅'이었던 마라의 죽음을 기리기 위해서 죽어가는 마라의 모습을 전통적 성화 속에서 볼 수 있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와 같은 자세로 그렸다. 그는 실제로 살인 현장에 한 번도 가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한 사람의 죽음을 '위대한 혁명 영웅'의 성스로운 죽음으로 연출시켰다.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을 실제보다 더 웅장하면서도 다소 과장되게 그려낼 줄 알았던 다비드 특유의 연출력이 만들어 낸 걸작이자 유명한 역사적인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목욕, 덜 깨끗하게 해도 된다

 

KBS 2TV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는 정말 우리와는 좀 다른(?) 특이한 사람들이 '고민'이라고 내세우면서 등장한다. 그 중에는 2년 간 단 한 번도 몸에 물을 대지 않은 일명 '악취남'이 등장한 적이 있었다. 목욕을 안 했다는 그 문제의 악취남은 자취 생활하는 동안 너무나 바쁘게 살다보니 안 씻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좀 더럽게 느껴지지만 1960년대에 안 씻고 다니는 게 '자유해방'의 미학으로 여겼던 히피족을 생각하면 2년 동안 안 씻은 악취남은 새 발의 피다.

 

오늘날에는 안 씻고 다니는 사람을 불결하고 더러운 존재로 취급하지만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목욕을 기피하는 것을 생활의 미덕으로 자리잡은 시기가 있었다. 로마 문화의 영향이 남아 있었던 목욕은 교회의 힘이 강력했던 중세에 들어서부터 '사악한 쾌락'을 추구하는 불경스러운 행위로 변질되었다. 한 마디로 말자하면, 중세인들은 목욕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중세 사람들이 목욕을 하지 않았던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페스트였다. 페스트가 유행함으로써 사람들은 외부 출입을 금하게 되었고 흑사병으로 오염된 물로 몸을 씻으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다. 페스트의 그림자가 완전히 지워지기 시작하는 18세기에 이를 때까지 유럽 문명에서 물로 몸을 씻는 '목욕'이라는 행위는 당분간 사라져야만 했다.

 

하지만 전염병의 유행이 사람들이 물을 멀리 하도록 만든 것은 아니었다. 산업혁명 이후 도시 빈민가 중심으로 콜레라가 유행하게 되자 정부 당국은 목욕을 권장하기 시작했다. 콜레라 유행을 일으키는 원인 대상이 위생상황이 열악한 곳에 살며 일생동안 목욕이라고는 해보지 않은 도시 빈민층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목욕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서 청결함의 기준이 생기게 되었으며 청결하지 못한 사람들은 빈곤층 계급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보다 더럽다고 생각했다. 이 시기 때부터 청결함을 기준으로 문화적으로 우월할 수 있느냐 또는 정상인이냐 비정상인으로 구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은 목욕을 해야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인간의 삶을 크게 변화시켜줄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면 목욕 행위가 또 사라질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연간 물 소비량은 15만 리터에 달한다고 한다. 이 가운데 약 25%가 쓸데없이 낭비되어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몇 몇 국가에서는 '물 부족 국가'로 지정되어 있다.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도 물 부족 현상에 대해서 고심해야 될 현실에 직면했다. 물 낭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욕조에 물을 받아 놓지 말고 샤워기를 사용하는 것이 좋다. 보통 욕조에는 136리터의 물이 들어가기 때문에 욕조에 물을 받아놓는 대신 샤워기만 사용하면 50% 이상의 물을 절약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소한 물 절약 방법을 생활 습관으로 만들지 못하면 어쩌면 먼 훗날 물 부족으로 인해서 깨끗한 물도 제대로 마실 수 없을뿐더러 목욕을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시기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목욕을 금기시했던 중세처럼 청결함보다는 더러움을 흠모하는 일이 생긴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청결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온 몸에 물을 끼얹어 목욕을 해야하지만 거기에 소비하는 물 소비량은 상당하다. 그렇다고 물 절약한답시고 목욕을 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안 씻은 채 더러운 세균과 불결한 악취를 온 몸에 달고 사는 삶은 더더욱 싫어할 것이다. 청결함을 유지하면서 물 절약도 할 수 있는 적당한 목욕 용수와 욕실에서의 목욕 시간. 참으로 애매하다. 애정남한테 물어봐야하나...?

 

청결을 유지해야하는 강박증에 안 걸린 이상 몸 구석구석 깨끗하게 씻되 물을 너무 오래 사용하지 않는 방법 밖에 없는 듯하다. 사실 인간의 몸은 '적당히' 깨끗해야하는 것이 정상이다. 지나치게 청결함을 유지하다보면 정작 우리 몸의 피부에 살아야 할 좋은 세균들마저도 씻겨 나가며 알레르기와 같은 각종 질환에 대응하는 면역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한다.

 

『목욕, 역사의 속살을 품다』에서 저자는 목욕과 과한 약품 소독을 통해 '세균과의 전쟁'을 부르짖는 사고방식에 반대하는 어느 미생물학 교수의 말을 인용하고 있는데 청결함을 이유로 지나치게 목욕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 곱씹어봤으면 하다. "더 더러워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덜 깨끗해도 된다는 말이다." (pp 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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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2-02-24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사람도 목욕을 좋아한다는데 그래서 저런 만화를 탄생시켰을까?
나도 조금 보다 말았어. 역시 만화는 잘 안 보게 돼.
하긴 내가 보는 거라곤 잘 만든 드라마와 영화 밖엔 안 보니까.
근데 이 페이퍼 미끈하게 잘 빠졌다. 추천하고 싶을만큼.
민음사 저 책이 소설이었구나. 난 에세이쪽인 줄 알았다.ㅋㅋ

cyrus 2012-02-24 21:42   좋아요 0 | URL
일본에는 온천이 많아서 목욕을 좋아하죠. 누님도
이 만화를 보셨군요. 사실 TV판은 만화책 전체 에피소드를 다루지 않아서
책을 살까 말까 고민중이에요. ^^;;
그리고 저도 민음사 책 집에 가지고 있는데 아직 안 읽어봤어요.
이번 기회에 읽어보려고 해요. 그런데 장르는 픽션이 강한 소설인데
어떻게 보면 누님 생각처럼 에세이일 수 있다고 봐요 ^^

카스피 2012-02-24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일본 만화가의 상상력은 정말 대단하지요^^

cyrus 2012-02-26 22: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정말 일본 애니는 무시할 수 없어요.
일본의 온천을 로마의 목욕탕과 연결시키다니,, 정말 대단한거 같아요. ^^

노이에자이트 2012-02-24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라 암살자가 젊은 여자라는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죠.

cyrus 2012-02-26 22:53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 그랬어요. ^^
 

 

 

 

 

(짤방) 주인아, 내가 정 때문에 산다

 

 

 

 

 수강신청, 첫 날

 

 

오늘부터 수강신청을 하는 기간이다. 2월 중순, 그러니깐 이 시기 즈음에 모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에 'OO대학교'가 상위권에 있다면 '아.. 오늘이 대학생들이 수강신청하는 기간이구나'하고 생각하면 된다.

 

대학생의 수강신청은 좋은 수업을 듣기 위해서 마우스와 컴퓨터 자판기를 동원하는 '속도전'이다. 빨리 클릭하고, 입력하는 자만이 원하는 수업을 듣을 수 있다. 그래서 이 기간만 되면 아침 늦게 일어나는 학생들도 일찍 일어나게 된다. 일찍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수강신청을 할 수 있는 학교 홈페이지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대체로 수강신청은 아침 9시(학교마다 다를 수 있음)부터 가능한데 그 때까지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너무 일찍 접속한 채 가만히 놔두면 자동으로 로그아웃이 되기 때문이다. 9시가 되는 순간, 바로 수강신청을 한다. 마우스를 빨리 클릭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시간표를 만들 수 있다.

 

오늘 아침 8시 30분~9시 경에 N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에 'D 대학교'가 1위였는데 수강신청을 하기 위해서 미리 접속하려고 하는 수많은 대학생들의 위력이다.

 

수강신청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아시다시피 수업 시간이 한 시간이라도 중복되어도 원하는 수업을 듣을 수 없다. 그리고 학생들이 많이 듣는다는 인기 수업을 듣는 것도 쉽지 않다. 접속한 지 1분도 채 안 되 신청인원이 차서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오늘 같은 경우에도 이미 예비로 신청해두었던 경영학 과목 3과목이 인원 초과되는 바람에 다시 시간표를 편성해야했다. 문제는 2학년 과목을 넣고 싶은데 내가 현재 3학년이라 2학년 과목을 넣지 못했다. 왜냐하면 해당 학년 학생들이 다른 학년 학생들의 신청 때문에 정작 해당 학년 수업을 듣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 오늘은 해당 학년 과목을 신청을 할 수 있고 내일부터는 전 학년별로 과목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원했던 2학년 과목이 인원이 꽉 차는 것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다.

 

오늘 하루종일, 그러니까 수강신청 시간이 마감되는 오후 8시까지 수강계획서 일일이 확인하고 시간표를 다시 만들었다. 복수전공을 겸한 수강신청이라서 그런지 주전공 수업시간만으로 시간표를 만드는 것보다 힘들었다. 주전공 수업 시간에 중복되어서 복수전공 과목을 신청하는 데 여러모로 골치 아팠다. 이미 신청된 주전공 수업 시간을 유지한 채 남은 시간을 복수전공 과목을 신청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시간표가 완성되었다. 내가 처음에 원했던 시간표는 아니었지만 최대한 내가 공부하고 싶은 과목 위주로 편성했기 때문에 만족스러울 따름이다. 게다가 다행히도 수요일은 수업이 없어서 좋다. 하지만 화요일에는 세 과목 수업이 있고 하루에 세 과목이나 시험을 쳐야 한다. ^^;;

 

 

 

 

 등록금 3% 인하했다고 학교 신문을 폐간한다?

 

가뜩이나 오늘 시간표 짜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우연히 학교 게시판을 통해서 씁쓸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학년이 올라가면 갈수록 내가 다니고 있는 D 대학교가 점점 호감이 가지 않다.

 

국가등록금 확충 발표 이후에 성적우수장학금은 저소득층을 위한 장학금 재원 보충이라는 명목으로 수혜 범위를 갑자기 축소시킨 것부터 시작해서 이번에는 등록금 인하 이유만으로 학교 신문까지 폐간한단다. 등록금 인하 이유로 학교 신문을 폐간하는 학교는 우리 학교가 처음일 것이다.

 

지방에 위치한 대학교 내 소식이라서 그런지 전국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듯하다. 직접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해봤는데 관련 소식을 접한 언론매체를 단 한 곳 빼고는 없었다. 대구, 경북에 사는 사람들도 이 소식을 모르리라.

 

학교 측은 등록금 3% 인하에 대한 예산 절감 차원 조치로 학교 신문을 폐간하고 대신에 인터넷 신문 형태로 전환하는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학교 측은 종이 신문을 만드는 신문 편집부 쪽에게 어떠한 의견도 물어보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결정, 통보해버린 것이다. 종이 신문 낼 때마다 드는 비용이 120만원이 드는데 학교가 충당하는 재원치고는 많지 않은 액수이다. 신문 낼 때마다 드는 비용보다 수천만원을 소비하는 건축 공사를 안 한다면 어느 정도 이해하겠다만... 그리고 종이 신문 대신에 인터넷 신문으로 전환하는 데만 적지 않은 비용도 들어가게 된다. 등록금 인하만 가지고 학교 신문을 폐간한다는 학교 측의 주장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문제의 학교를 다니는 일부 혹자의 학부생은 학교신문 폐간이 일종의 언론통제 효과를 노린 거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D 대학교는 몇 년 전부터 사학비리 재단 반대 여론이 들끊었고 최근에는 등록금 인하 문제 때문에 학생들은 학교 홈페이지 내 자유게시판을 통해서 학교의 문제점에 대해서 소신 있게 문제점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교 게시판에 옳은 지적을 한다거나 제안을 해도 학교 측에서는 그런 학생을 달가워 하지 않게 여긴다.

 

게시판에 학교에 대해서 비판적인 글을 많이 남기는 학생에 의하면 학과 사무실에서 직접 전화가 와서 게시판에 글 남기는 것을 자중하라는 일종의 경고도 받았다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현재 학교의 모습은 국민 간의 소통을 소홀히 하는 정부나 MBC의 행태와 다를 바가 없다고 본다.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으며 자신들이 내세운 입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려는 태도가 문제인 것이다.

 

결국, 이 문제가 일파만파 커지자 학교 측과 학교 신문 편집부 간의 회의 끝에 종이 신문 폐지가 아닌 신문 발행 주기 수정 및 온라인 신문 병행으로 결정났다. 끝내 등록금 인하로 인한 예산 삭감 결정은 유지된 채 말이다.

 

 

 

 

 미운 정, 고운 정

 

종종 학교 게시판에는 곧 졸업을 앞둔 학부생들이 글을 남기곤 한다. 인생의 선배로써 아직 학생 신분인 후배들을 위해서 충언의 글도 남기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그동안 쌓고 쌓였던 학교에 대한 실망스러운 마음들과 불만들을 쓰곤 한다.

 

그런 글들을 읽게 되면 올해부터 3학년인 나도 졸업생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만하다. 내가 군대 가기 전 때보타 학교의 이미지가 더욱 나빠진 건 사실이니까. 그리고 대구, 경북에 위치한 다른 4년제 대학교에 비해 발전이 더디고 있다. 아직까지 결론의 매듭 짓지 못한 사학 비리 재단 문제는 학교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최근에 불거진 등록금 문제는 학생들에게는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또 정작 학생들의 마음을 대변해야 할 학생회는 이렇다 할 힘도 쓰지 못한 채 죽만 쑤고 있으니 학생들로부터 신뢰감을 잃은지 오래다. 더욱이 학생들의 진심을 보지 않으며 아예 그들의 소통마저도 차단시키려고 하는 모교의 태도는 학생들 간의 반목의 골을 더욱 깊어지게 만들고 있다.

 

마음 같으면 내가 다니고 있는 모교보다 더 좋은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고 싶다. 한 때 편입을 고려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미운 정 고운 정'이라고 했던가. 편입하기에는 이미 모교에 대한 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학교도 언젠가는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 불투명한 희망이 내가 졸업하고 난 뒤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내 주위에는 친한 동기,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학교 다닐 맛이 난다. 이들과 함께 술잔을 부딪혔고, 함께 공부를 했고, 함께 장래에 관한 꿈을 꾸었다. 서로 챙겨주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 집보다 한 시간이나 먼 학교에 불평, 불만을 늘어 놓으면서도 다니고 있다.

 

이제 겨울방학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오늘도 시간표 때문에 몇 몇 동기들과 전화 통화를 많이 했다. 이제야 개강이 앞두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아직 겨울의 찬 바람은 남아 있지만 내 가슴 속에는 벌써부터 기분 설레게 만드는 봄 기운이 이미 감돌고 있는 듯하다. 얼른 봄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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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2-02-16 0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아들도 어제 아침에 수강신청하고 1받 2일 OT갔어요~
학교에 불만이 있다는 건 애정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재단들이 큰돈을 펑펑 쓰면서 작은 돈에 연연하는 걸 보면 정말 웃기지도 않아요.
내세우는 이유야 허울뿐이고 속내는 따로 있다는 게 다 보이는데...

cyrus 2012-02-16 21:52   좋아요 0 | URL
아드님이 꽤 일찍 수강신청을 하셨네요. OT도 그렇고 새내기 대학생으로서
아드님께서 무척 마음이 설레셨겠어요 ^^ 저도 그 기분 알죠 ㅎㅎ


stella.K 2012-02-17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치 않아도 오늘 아침 뉴스에 대학교들 적립금이 그렇게 많은데
겨우 3% 인하에 그것도 과목을 축소하거나 수업 일수를 줄이는 대학이 글케
많다더라. 참 기가막혀 3%라봤자 16만원 정돈데 한 학기 차비도 안 빠지는
액수잖아?
반값은 멀기만 한 걸까? 이러고 나오는 것 같으면 집단으로 등록금 내는 거 거부
해 보면 안 되는 건가 싶기도 하더라. 그놈의 대학이 뭔지...흐

cyrus 2012-02-16 21:54   좋아요 0 | URL
오늘 제가 본 신문에서는요,, 모 학교는 등록금 인하 핑계로
학교 도서관에 지원되는 경비마저도 삭감했대요. 학생들을 위해서
지식의 장을 만들어줘야할 대학이 발전은커녕 오히려 발전에
역행하는 꼴을 보이고 있으니 씁쓸해요. 반값 등록금 문제는
쉽게 해결할 사안이 아닌거 같아요.

노이에자이트 2012-02-16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의 잔머리 굴리는 소식은 우울하지만 저 강아지는 정말 귀엽네요. 으~ 안아주고 싶어~

cyrus 2012-02-16 21:56   좋아요 0 | URL
ㅎㅎ 귀엽죠, 비글은 강아지 시절이 무척 귀여운데 반려견주 사이에서는
'3대 악마견' 중의 한 종으로 악명 높다죠 ^^;;
TV 동물농장에 봤는데 완전 집 안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더군요ㅎㅎ

차트랑 2012-02-16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아이들이 대학교에 들어갈 때 쯤이면
입학금 등록금이 얼마나 되지
걱정이 앞섭니다.

cyrus 2012-02-16 21:57   좋아요 0 | URL
지금이라도 반값 등록금이 학교와 학생들 간의 합의 하에 이뤄져야하는데
그렇게 쉽게 해결되지 않을거 같네요. 그대로 미온적으로 놔두다가는
다음 세대들에게 되물림될까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합니다.

카스피 2012-02-16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여론의 눈치를 보면서 꼴랑 3~5%정도 수업료 내리는 대학들을 보면 쇼도 그런 쇼가 없단 생각이 듭니다.모 대학은 등록금 3% 내리면서 1주일 수업시간을 없앴다고 하더군요.1주일을 없애면 학교측에서 십몇%가 이득이라고 하니 참 대단한 잔머리지요.이런 뒌장할~~~

cyrus 2012-02-18 14:1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오늘은 또 인터넷 기사에 봤는데 대학교 등록금 줄인답시고
이번에는 대학'원' 등록금을 올렸다는군요. -_-;;

saint236 2012-02-17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학교는 등록금 인하를 핑계로 16주짜리 수업을 15주로 단축했다는 기사도 있더라고요. 어째 이런 쪽으로만 머리가 돌아가니. 저도 졸업한 다음에는 학교에 안가게 됩니다. 간혹 가게 되더라도 학교 서점 주인 아주머니와의 친분 때문이지 학교가 그리워서는 절대로 아닙니다.

cyrus 2012-02-18 14:13   좋아요 0 | URL
요즘 등록금 인하로 학교들 꼼수 쓰는거 보면 웃기면서도 씁쓸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