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할머니 댁에서 농촌 활동하기  

매주 일요일 하루 일과는 딱 정해져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하루종일 집에 있기, 친구랑 술 먹기 그리고 아버지 따라 할머니 댁에 가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매주 일요일이면 쉬지도 못하고 거의 할머니 댁을 방문하신다.   그 이유는 할머니 홀로 하시는 농삿일을 도우기 위해서다.    

할머니가 살고 계신 곳은 경북 김천이다.  내가 사는 대구와는 거리상으로는 별로 멀지는 않지만 편히 쉬어야할 주말에 농삿일하러 가야하니 그야말로 고역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자가용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혼자 고속버스를 타고 다니신다.   요즘 기름값도 비싸지만 고속버스 왕래하는 비용 역시 만만치가 않다.    어머니가 우리 집안의 경제권을 주도하고 있으시다보니 아버지 입장에서는 일요일에 할머니 댁을 가게 되면 눈치를 봐야 한다.   

더구나 우리 아버지는 장남이라 사실 농삿일을 굳이 아버지 혼자할 필요도 없다. 아버지 밑에 삼촌이 4명이 있는데 삼촌들과 함께 해도 될 일이다.  하지만 삼촌들이 각각 따로 지방에 살고 계신데다 각자 주말에도 일할 정도로 바빠서 결국 아버지 혼자 도맡아하신다.   정말 간혹 삼촌들이 도와주러 오신다지만 아버지 혼자 농삿일을 맡는 모습을 지켜보면 아들로서 좀 씁쓸하기만 하다.      

그래도 다행히 이번 주 일요일에는 막내 삼촌 가족들과 동행하게 되었다.  막내 삼촌은 자가용을 가지고 있어서 덕분에 아버지는 교통비 때문에 어머니 눈치를 안 봐도 되었다. 

나는 일요일에 특별한 약속이 없는 이상 아버지 따라 함께 동행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노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철없는 젋은이다.   실제로 아버지 따라 농삿일 하기 싫어서 거짓말한게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할 때는 정말로 열심히 하는 편이다.  ^^;;  

이번 주 일요일에는 땅콩을 캐기 위해서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땅콩줄기를 다 뽑아내어 뿌리에 있는 땅콩 열매들을 떼어내는데 허리가 안 좋으신 연세 많은 할머니 혼자 하시기에는 무척 힘든 일이다.    그래서 아버지와 막내 삼촌이 괭이로 땅을 파내어 땅콩줄기를 뽑고 나와 할머니는 땅콩 열매를 때어 자루에 담는 일을 하였다.  

다행히도 오늘 날씨는 무덥기보다는 시원한 바람이 불 정도로 날씨가 선선하였다.  그리고 날씨가 흐려서 따가운 땡볕을 피할 수 있었다.  

 

 

 Scene #2  야산에서 열매 채집하기  

땅콩밭에 있는 모든 땅콩을 수확하는데만 네 명이 매달려 하는데만 4시간 걸렸다.  오전에 할머니 댁에 도착해서 시작했으니 조금만 더 늦게 시작했으면 해 떨어질 때 마칠뻔했다.  

이제 땅콩 수확을 다 끝내서 좀 쉴 수 있겠나 싶었는데 아직 할 일은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야산에 가서 열매를 따러 가게 되었다.  이번 주 일요일은 그야말로 흙냄새, 풀냄새 고루 다 맡아보는 하루였다.     그래도 등산을 좋아하는 편이라 군말 없이 아버지 따라 다녔다.  사실 할머니 댁에 혼자 있어봤자 딱히 할 게 없으니까...  할머니 댁에 사촌 동생들이 있는데 오히려 농삿일보다 애들이랑 상대하는게 더 피곤할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사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따라 야산 가는 걸 좋아했다.  아버지, 어머니가 평소에 몸에 좋은 약초나 열매에 워낙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라...    부모님 따라 야산을 돌아다니면서 그 분들이 캐오는 약초, 열매들을 많이 보곤 하였다.     부모님은 항상 열매나 약초를 캐오면 제일 먼저 술로 담근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건강에 좋다는 열매로 담근 약주(藥酒)가 많다.  

 

 

 

그 중에서 부모님이 야산에 갈 때 제일 많이 따오는 것이 오미자다.   어렸을 때 오미자열매를 처음 보는 순간, 앵두 열매인줄 알았다.   한 번 보면 눈에 익을 정도로 강렬한 붉은색을 띄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오미자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매운맛 총 5가지의 맛이 난다고해서 유래된 이름이다.    

정말로 다섯 가지 맛이 나는지 궁금해서 열매를 직접 씹어 먹고 싶은 충동이 들었으나,,,   

그냥 꾹 참았다.  ^^;;       

정말 저 불그스름한 열매를 보라.  씹어먹으면 달콤한 앵두 열매 맛이 날 거 같지 않은가.      

오미자를 차로 달여 마셔본 적이 있는데 오미자차를 좋아한다.  오미자차가 혈압을 낮추게 하고 면역력을 높아주는 효능이 있어서 건강에 좋은 음료라서 그런 것이지만 아시다시피 차맛치고는 맛이 오묘하다.     마셔보는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오미자차 한 모금 입에 대보면 신맛이 강하면서도 약간 쓴맛과 단맛이 난다.   

 

 

 

 

그 다음에 많이 따오는 것이 으름 열매다.    

어머니는 건강에 좋은 야산 열매가 있으면 항상 나에게도 먹어보라고 권한다.  어렸을 때 처음 으름 열매를 봤을 때 어머니가 하신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 먹어 봐라,  이게 산에 나는 바나나란다. " 

  

그래서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속살이 하얀 이 요상한 열매를 먹어보게 되었는데 어머니가 말씀한 것과 달리 맛이 내가 알고 있던 달달한 바나나 맛이 아니라서 적잖이 실망하기도 했었다.   게다가 입 안에 하얀 으름 열매의 속살을 넣은 순간 입 안에 굴러다니는 씨앗이 있어서 먹기가 불편하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입 안에 있는 걸 도로 뱉을 수도 없고...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든(?) 지금은 으름 열매가 보이면 당장 따서 먹는다.   맛은 이상해도 몸에 좋다면 뭐든 먹을 수 있다.     햐안 속살 안에는 수많은 씨앗이 있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쓴맛이 난다.   씨앗만 따로 분리해서 부드러운 햐얀 속살만 먹으면 정말 바나나 같은 달달한 맛이 난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에는 씨앗을 입 안에 분리하는게 귀찮아서 그냥 씨앗까지도 씹어 먹는다.   

으름 열매도 우리 집에서는 술로 담가 먹는데 방금 으름 열매에 대한 정보를 찾는 중에 눈에 띄는 내용은 열매에 비타민 C가 많이 들어있다는 사실이다.   그 전에는 비타민 C가 오렌지, 사과와 같은 평소에 먹을 수 있는 과일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야산에서 자라는 열매에도 비타민 C가 있다는 사실에 으름 열매를 자주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리고 으름 열매를 섭취하는 관련 정보를 더 첨가한다면 열매 속살을 갈아 우유와 같이 마신다면 우유 속에 포함되어 있는 철분의 흡수를 도와준단다.    속살 안에 파묻힌 씨앗만 어떻게 분리하면 쉽게 먹고 좋을텐데...   

  

 

 

 

 

이번에 산에서 채집한 열매 중에서 그나마 먹을 수 있는게 다래 열매이다.    

이름은 들어봤는데 직접 눈으로 본게 처음이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어렸을 때 산에 어딜 가면 나무에 열린 다래 열매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찾아보기가 드물 정도란다.  그리고 소화가 안 될 때 열매를 먹으면 좋다고 하셨다.  

이제 막 열매를 땄을 때에는 딱딱하였다.   시간이 지나게 되면 열매가 익어 물렁물렁해지는데 먹으면 키위 맛이 난다.     열매를 따면서 물렁물렁한 걸 골라서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역시나 다래에 대해서 정보를 찾아봤는데 키위가 다래의 한 종류라고 한다.   그리고 소화불량일 경우에 먹어도 좋고 그 밖에도 열을 내리고 이뇨 작용도 한다.   

 

 

  Sence #3  시골 어린이와 도시 어린이   

이 날 동행한 막내 삼촌 슬하에는 각각 중학교 2학년, 초등학생 6학년인 남자, 여자 아이가 있다.     이 두 아이가 우리 집안 중에서  제일 막내 사촌 동생들이다.   

오늘 오전에 땅콩밭에 가면서 장난으로 "땅콩 캐러 가자" 고 농담을 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진담으로 받아들었는가보다.    가기 싫다면서 손에는 스마트폰을 꼭 쥐고 있었다.  그러고는 다시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항했다.   

어차피 밭에 가도 이 어린 녀석들을 시킬 생각도 없었다.   농담의 의도 뒤에는 도시에서만 자란 이 사촌 동생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즉, 도시에서는 할 수 없는 좋은 경험을 해주고 싶었다.    그 '경험' 이란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것이다.   

요즘 자라나는 도시 어린이들을 보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다루다보니 농촌이나 야산과 같은 곳에서의 체험을 많이 하지 못하는 거 같다.   도시에서 볼 수 없는 자연 속에 살아가는 곤충이나 식물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밭이나 산과 같은 곳이다.       

약초와 열매를 채집하고 난 뒤에 할머니 댁으로 돌아가는 시골길을 지나가던 중, 남매로 보이는 어린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복장으로 봐서는 시골에서 자란 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시골길에는 비록 먹을게 많은 슈퍼마켓도 없고 컴퓨터 게임을 할 수 있는 PC방이 없다.   그런데도 이 아이들은 나무와 밭이 있는 시골길을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뛰놀고 있었다.   '자연' 을 벗삼아 마음껏 뛰노는 시골 아이들의 웃음기 가득한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였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내 사촌 동생들이 걱정스럽게 느껴졌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할 양이 많아지게 되면 자연 속에서의 자유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도 부족하게 된다.    결국에는 풍요로운 생활을 하면서도 정신적으로는 피폐해질 수 밖에 없다.  

하룻동안 시골 어린이와 도시 어린이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면서 이솝 우화에 나오는 '시골쥐와 도시쥐' 이야기가 떠올렸다.   

시골의 쥐가 도시의 쥐를 초대하였는데, 도시쥐가 자신이 사는 곳에는 맛있는 음식이 산처럼 많다고 자랑하였다. 시골쥐가 도시에 가보았더니 치즈, 과일, 벌꿀 등 먹을 것은 많았지만, 사람들과 고양이가 돌아다녀서 매우 위험하였다.  시골쥐는 먹을 때마다 위험의 부담을 안고 살아야한하는 생활보다는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시골로 되돌아왔다.  위험 속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것보다, 검소하지만 마음놓고 살 수 있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정년퇴임을 하신다면 남은 여생을 농촌에서 사신다고 하셨다.    나 역시 안정된 사회생활을 하고나면 아버지 따라 남은 여생을 농촌에서 사는 것이 소원이다.     

그런데 일단은 농삿일과 좀 친해져야 하는데...     신체적으로는 힘들지만 학교에서 하는 '농촌 활동' 을 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농삿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  

  

  

 

P.S>  오늘 땅콩밭에서 일한 수당(?)으로 할머니에게 2만원 받았다.  덕분에 꽁돈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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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9-18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큰 대학생 손주가 주말을 반납하고 밭일을 도우니
연세 드신 할머니께서 얼마나 이쁘셨을까요...^^
또 함께 다니시는 아버님은 말은 안하셨지만 장성한 아들과 어머니 일을 도우러 가시니
여러모로 뿌듯하셨을거예요. 수고하셨어요~멋져요.

cyrus 2011-09-19 14:03   좋아요 0 | URL
아니에요, 아들로써 해야되는 일인데요. 조금이라도 효자 노릇 해야겠어요 ^^;;

yamoo 2011-09-19 0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부럽습니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시루스님은 참 부러운 삶을 살고 계시는 군요!

cyrus 2011-09-19 14:04   좋아요 0 | URL
그래도 아직은 제 심장 속에는 도시인의 피가 흐르고 있답니다. ^^;;
시골에 가면 컴퓨터도 없고 스마트폰이 터지지 않아서 불편했어요 ㅎㅎ

아이리시스 2011-09-19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일찍 자는 거예요? 으름은 글을 읽고나서도 어떤 맛인지 궁금해요. 어쩌면 먹어봤을지도 모르고, 이미 아는 맛일 수도 있는데, 전혀 감이 안잡혀요.

잘자요~ 피곤한 시루스님.

cyrus 2011-09-19 14:06   좋아요 0 | URL
어제는 좀 일찍 잤어요. 밤 1시에요 ^^;;
으름이란게.. 맛의 정의를 내리기가 애매해요. 확실한건 바나나 씹는 것처럼
부드럽고 단맛이 덜한 편이에요.

쉽싸리 2011-09-19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천도 외곽은 산이 깊죠. 그래도 야생오미자,으름은 흔치 않은데요. 저도 주말에 오미자따러갔었는데 거기는 벌써 다 따갔더라구요. 몇송이는 따서 오면서 먹었어요. 한 번먹어 보세요. 그 맛이정말 오묘합니다. 주로 효소로 담궈서 먹죠. 술도 담고요. 그런 술은 약술이라 너무 많이 안좋다고 합니다. 한잔정도씩 장복해야 좋데요.

cyrus 2011-09-19 14:08   좋아요 0 | URL
제가 간 곳은 사람 발길이 드문 산이에요. 그래도 가끔 시골에 사시는 분들이
먼저 열매나 산 속 깊이 자라는 버섯을 따가곤 해요.

blanca 2011-09-19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천, 제 친구 시댁이 있는 곳이라 기억이 나네요. 주말에 아버지 농사일 도우러 가시는 모습. 시루스님이 대견하기도 하고(죄송해요^^;;) 부럽기도 하고 그렇네요. 아이들 상대 ㅋㅋㅋ 제 남동생이 제 딸 이틀 연속 놀아주고는 누워서 애 둘 키우는 사람 정말 대단하다고 그러고 도망가더라고요 ㅋㅋ 할머니와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시루스님이 부러워요. 이미 돌아가신 분에게 잘 못해드린 게 두고두고 자꾸 곱씹게 되고 한이 되는 저로서는...

cyrus 2011-09-19 14:10   좋아요 0 | URL
나이 차이가 많은 편이라 아이들 상대하기가 힘들더라고요. 정말로
어른과 아이가 생각하는게 달랐어요. 그래서 상대하기가 좀 힘들었어요 ^^:;

감은빛 2011-09-19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할머니댁에 농활을 다녀오셨군요! 멋져요!
으름은 처음 들어보네요. 어떤 맛일지 궁금해요.

시골아이와 도시아이 많이 다르겠죠?
사실 우리 아이들만봐도 집주변에서 흙을 밟을일조차 거의 없기 때문에,
자연이란 것을 전혀 접하지 못하고 살고 있어요.
나중에 자라서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
회색 콘크리트 숲에 갇혀 지낸 기억만 떠올릴까봐 걱정되네요.

cyrus 2011-09-19 14:12   좋아요 0 | URL
맛있다라고 보장은 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건 먹으면 건강에 좋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골의 모습도 점점 사라지고
아이들도 많은 학업 때문에 자연에서의 체험할 기회 역시 많이 없을거 같아요.

stella.K 2011-09-19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용돈이 2만원! 좋겠다!
뭐할건지 궁금한데...?ㅋㅋ
요즘 농업도 옛날 같지 않아서 돈 잘 번대더라.
물론 기후가 걱정이긴 하지만,
홍수 때 우리가 tv에서 보는 건 극단적으로 안 좋은 예만 보여줘서 그런 거고,
잘 사는 사람은 아주 잘 산대.
그 대신 뭐든 공짜는 없다고 고되긴 하다던데...

으름 들어보긴 했는데 저렇게 생겼군.
못 생긴 생선 주둥이 같아.ㅋ
맛 없다니 나도 그닥 기대는 안 되는데?ㅎㅎ


cyrus 2011-09-19 14:14   좋아요 0 | URL
지금 2만원 가지고 뭐할까 고민중이에요. 돈만 조금 있다면
알라딘 중고서점 매장에도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이 돈 가지고
술값으로 하기에는 너무 아깝고요 ^^;;

누님!! 맛은 없어도 건강에는 정말 좋은 약이에요. ^^

stella.K 2011-09-20 13:15   좋아요 0 | URL
ㅎㅎ 서울에 살면 내돈 보태서 대작 한 번 하면 좋을텐데 말야.
말마따나 알라딘 중고서점도 가고. 아깝다. 그지?ㅋㅋ

잘잘라 2011-09-19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뭐랄까요, cyrus님다운 글이기도 하고 어떤 면은 좀 생소한 느낌도 나고 그래요. 특히 여기요, 「.. 실제로 아버지 따라 농삿일 하기 싫어서 거짓말한게 한 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할 때는 정말로 열심히 하는 편이다. ^^;;」 ㅋㅋㅋ 거짓말은 안할 것 같은 cyrus님이었는데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하신게 생소하구요, 하지만 할 때는 정말로 열심히 하는 편이라,라고 하신게 cyrus님 다워요. '열심히 한다'가 아니라 '열심히 하는 편이다'라고 하셔서 한참 웃었네요. ㅎㅎ

cyrus 2011-09-19 14:16   좋아요 0 | URL
저도 살다보면 피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거짓말을 한답니다. ^^;;

마녀고양이 2011-09-19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락, 시루스님,,,, 부비부비 (이거 총각에게 이래도 되는건지?)

페이퍼 너무 이뻐요, 정말 따스하구요,
휑한 제 맘이 차분해지는 느낌이예요. 농담 아니구 당장 에세이집에 실어도 되겠어요.
참........ 좋다, 저 열매들과 땅콩 따기라니. 예전에 친정 아버지께서 밭에서
땅콩을 캐내어 즉석해서 불에 구워주셨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는 그 소중함을 몰랐어요.

cyrus 2011-09-19 20:53   좋아요 0 | URL
페이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좀 재미나게 썼어야했는데... 앞으로 일상적인 이야기들도 일기형식으로 쓰려고해요 ^^

순오기 2011-09-20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이런 총각이 어디 또 있겠어요?
공부 열심히 하고 책만 읽는 줄 알았더니 농사일도 마다하지 않는 국보총각이군요!^^
할머니랑 아버지께서 참 든든하고 대견하다 생각하시겠어요.
나는 중학교 2학년까지 촌에서 살았지만, 오미자나 다래, 으름열매도 본 적 없어요. 충청도 산골에는 왜 그런 열매가 없었을까요.ㅜㅜ

cyrus 2011-09-20 16:19   좋아요 0 | URL
아마도 사람 발길이 드문 야산 깊숙한 곳에 자라다보니 못 보실 수 있을거
같아요. 제가 본 열매들은 기후와 지역에 따라 자라는 곳이 다를 수도 있고요. ^^
 

 

  

  때아닌 삼재(三災) 논쟁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인 화요일에 있었던 일이다.   내 친구들 중에는 올해 삼수에 도전하는 녀석이 있다.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삼수생에게 시험 합격을 위한 용기를 북돋기 위해서 작은 동네 호프집에서 친구 여러 명과 모임을 갖게 되었다.    

술과 안주를 벗삼아 즐거운 분위기가 익어갈 무렵에 삼수생 친구가 갑자기 '삼재'(三災) 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의 화제를 돌렸다.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작년부터 삼재라서 과연 올해 수능시험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내심 걱정이 든다고 하였다.   작년에는 홀로 독서실을 다니면서 EBS 문제집을 열심히 풀면서까지 시험에 대한 자신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성적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삼수생 친구는 작년 수능시험의 좋지 않은 결과가 일어난 원인이 다 삼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후부터는 무조건 하는 일마다 꼬인다거나 좋지 않은 일들의 연속이었다고 하였다.   예전부터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시던 아버지의 증세가 더욱 심각해지셨고 올해 모의고사 성적들이 대체로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등 삼수생으로서의 말 못한 고통을 토로하였다.    

그러자 한 친구가 삼재는 1년을 주기로 안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하면서 삼수생을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작년의 기억은 잊어버리라고 하였다.   하지만  잘못된 것을 꼭 짚고 넘어가야하는 성격의 나는 이를 지나치지 않았다.   나는 위로를 그 친구에게 삼재는 1년 주기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나는 삼재는 3년 주기라고 하였다.  사실 나 역시 용띠 삼재이기 때문에 삼재에 대해서 무엇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2009년때부터 올해까지 삼재가 끼어있기 때문에 삼재를 3년 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술기운 탓인지 모르겠지만 모임의 대화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나와 친구들은 삼재의 주기가 몇 년인지 열띤 토론(?)을 하게 되었다.  몇 몇 친구는 자꾸 1년 주기라고 우겼고 나와 삼수생 친구는 3년 주기라고 서로 엇갈린 주장을 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나는 내 지갑 안에 있는 삼재를 예방하는 작은 부적까지 내밀면서까지 '삼재 논쟁'(?)은 약 20분 정도 이어졌다.  

결국 술기운으로 인한 시간을 낭비하는 논쟁답게 마무리는 어정쩡하게 끝나버렸다. 결국 논쟁의 결말은 삼재는 완전히 믿을게 못된다는 속설에 불과하다는 공통의 의견으로 싱겁게 마무리지었다.

 

 

  나에게 삼재란..? 

집에 돌와오면서 포털 사이트에 '삼재' 를 검색해봤다.   생각해보니 '삼재' 의 정확한 뜻을 알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삼재의 뜻을 알고나니 술자리에 했던 삼재 논쟁은 무의미한 허무한 대화였음을 알게 되었다.     

삼재의 '삼'(三)은 3'년 주기' 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일어나는 재앙의 종류를 뜻하는 것이었다.   유명 포털사이트 백과사전에 의하면 삼재의 정확한 의미는 '인간에게 9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3가지 재난' 을 뜻하는 것이다.    결국에는 삼재는 1년 주기도, 3년 주기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백과사전에 소개하고 있는 삼재의 의미가 내가 알고 있던 '삼재' 의 의미와 다르면서도 복잡하였다.   그리고 삼재의 재앙에도 각기 다른 종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종류를 보면 ① 도병재():연장이나 무기로 입는 재난, ② 역려재():전염병에 걸리는 재난, ③ 기근재():굶주리는 재난이 있다. 또 대삼재()라 하여 ① 불의 재난(), ② 바람의 재난(), ③ 물의 재난()을 말하기도 한다. 9년 주기로 들어온 이 삼재는 3년 동안 머무르게 되는데 그 첫해가 들삼재, 둘째 해가 묵삼재(또는 눌삼재), 셋째 해가 날삼재가 되어 그 재난의 정도가 점점 희박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첫번째 해인 들삼재를 매우 겁내고 조심하는 풍습이 있다.

그 대책을 살펴보면 첫째가 매사를 조심하는 방법이요, 두 번째는 부적()이나 양법()을 행하여 예방하는 방법을 썼다.  

① 부적:삼재적을 만들어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출입문의 위쪽에 붙여 둔다. 부적은 머리가 셋, 발이 하나인 매()를 붉은 물감으로 그린 그림인데 이때 물감은 한약재인 경면주사()를 쓰는 것이 원칙이다.

② 양법:삼재가 들 사람의 옷을 태워서 그 재를 삼거리에 묻거나 그해 첫번째 인일()이나 오일()에 세 그릇 밥과 3색 과일을 차리고 빈다. 또 종이로 만든 버선본을 대나무에 끼워 정월 대보름에 집의 용마루에 꽂고 동쪽을 향하여 일곱 번 절하고 축원한다.  

③ 나이와 삼재:사·유·축(··)생은 삼재가 해()년에 들어와 축()년에 나가고 신·자·진(··)생은 인()년에 들어와 진()년에 나가고 해·묘·미(··)생은 사()년에 들어와 미()년에 나가며 인·오·술(··)생은 신()년에 들어와서 술()년에 나간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사실...    백과사전 속 내용이 도통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특히 3번의 '나이와 삼재' 같은 경우에는 십이지신을 한자로 표기하다보니 무척 헷갈린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용띠 삼재다. 올해가 삼재 마지막 년이다.   나는 삼재에 대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그냥 안 좋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시기로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입장은 다른 편이다.   유독 나에게 삼재를 강조하셨기에 지금까지 내가 삼재라는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된 것이다.    한 번은 나에게 삼재가 끼어 있는 시기에는 절대로 집 밖으로 멀리 나가지 말라고 충고 아닌 충고를 하셨다.    어머니가 가끔씩 다니시던 절의 큰 스님 말씀으로는 삼재가 끼여 있는 시기에 내가 먼 곳으로 이동하게 되면 안 좋을 일이 생긴다나...     그리고 삼재의 재앙을 막을 수 있는 부적까지 구입하면서 지금 내 지갑 안에 모셔두고 있다.    

 

  

  삼재의 시기 때 있었던 일들  

 

 1) 2008년, 삼재 이전

그런데 2009년, 2010년 그리고 올해까지 삼재가 끼여있던 시기들을 회상해보면 그렇게 좋지 않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재수생 친구처럼 갑자기 좋지 않은 일들이 연이어 일어나 일상이 꼬이는 정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안 좋은 일들은 가장 재앙이 심하다는 들삼재가 있는 2009년이 아니라 삼재와 관련이 없는 2008년에 일어났다.  

일단 2008년, 나에게 가장 안 좋은 일은 바로....    군 복무이다.   이건 뭐,,, 많은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기억하기 싫은게 군인이 되어 훈련소로 향하는 것일게다. ^^;;   

그 다음으로 안 좋은 일이 그 해 이병이었을 때 유격훈련 행군 도중에 오른발에 골절상을 입었던 것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골절상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 인생에서 가장 큰 부상이었다.  군 생활 잘 하다가 한순간에 발을 다치게 되어 3개월동안 군 병원에서 생활을 했으며 그 곳에서 일병 계급을 달게 되었다.   

이제 막 자대 생활에 정착하려는 이등병에게 오랜 기간동안 군 병원 생활을 하게 되면 퇴원 이후에도 제대로 군 복무를 할 수 없다.  군인들에게 군 병원 생활은 마음껏 편하게 먹고 놀고 잘 수 있는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다.   그래서 편한 생활에 익숙하다보면 퇴원 이후 군 생활이 쉽지가 않다.    머릿속에는 자대에 배치되었을 때 배우기 시작한 병기본, 훈련 내용과 같은 군사적 지식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 대신에 어여쁜 간호장교님의 얼굴만 남게 될 뿐이다.  

이런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나는 군 병원에서의 생활을 그저 침대에서 누워 잠만 자는 것이 아니라 자기계발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었다.   배우고 있었던 병기본 공부는 물론이고 평소에 하고 싶었던 자격증 공부도 틈틈이 하였다.  (내가 군 복무하고 있었던 당시 이등병들은 자대에서 자격증 공부는 아직 해서는 안 될 금기사항이다. 부대 내무반 생활 환경마다 다르지만 자격증 공부를 할 수 있는 건 상병 때부터 가능하다)     그리고 이 때만큼 독서도 할 수 있었다.  다행히 군 병원 안에는 환자 장병들을 위한 독서실이 마련되어 있어서 덕분에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 때 한창 밖에서 베스트셀러라고 읽혀지던 책들을 읽을 수 있었는데 병원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을 읽었던 기억이 잊혀지지 않는다.  부모님이 병원에 면회오시면서 사오신 책이 바로 <신> 1, 2권이었다.  (그 당시에는 1, 2권만 출간되었다)    그래서 침대에 누워 편안히 읽기도 했었는데 군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바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였다.  같은 병실에 만난 다른 부대 장병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군 병원에 복무 중인 친한 의무병까지 이 책을 읽고 싶을 정도로 나름 책이 인기가 있었다.   

 

 

 2) 2009년, 들삼재의 시작   

2009년, 삼재의 시작을 들삼재라고 하는데 재난의 정도가 가장 강한 해이기도 하다.   

사실 이 때가 일명 '군 생활이 꼬였다' 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몇 개월동안 힘든 시기를 보내야했다.    

2009년 2월에 군 병원에서 퇴원하고 드디어 자대에 복귀하게 되었는데 이등병 생활의 반을 병원에서 보낸 일병에 대한 주변 선임병과 동기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하필 복귀하던 시기가 소속 소대가 다른 지방으로 파견 중이라서 나는 어느 소대에도 소속되지 않은, 전투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그야말로 잉여 병력이었다.   

내가 자대에 배치되면서 주어진 주특기가 특성상 많이 뛰어야하고 걷어야하기 때문에 당시 중대장님과 행정보급관님들 그리고 소대 간부님들 사이에서 나의 향후 소속에 대해서 많은 말들이 오고 갈 정도였다.    나는 꼭 에전 소대에 소속되고 싶다고 강력하게 의사를 피력하였으나 당시 부대 일정 때문에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한 2개월동안 본부 소대와 함께 지내면서 무소속 소대 일병으로 생활하게 되었다.  본부 소대 사람들이 성격이 착하고 입원 전에도 원만한 관계를 맺어서 생활하는데 큰 지장은 없었지만 그래도 제일 힘들었던 것은 바로 주변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었다.   발을 다치기 전과 군 병원 생활 이후 주변 선임병과 동기들의 시선과 반응이 너무나도 달랐다.    

 한 때 '소대를 짊어나갈 수 있는 유망한 이등병' 에서 한 순간에 '아무짝도 쓸모 없는, 어중간한 일병' 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몇몇 선임병과 동기들은 내가 군 병원 생활을 은근히 시샘하였다.   이등병 주제에 상, 병장도 하지 못한 편한 생활 다 누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내가 병원 생황을 어떻게 했는지 보지를 못했던 것이다.   단순히 '병원 생활' 을 '놀고 먹고 자는 생활' 로만 알고 있었다.   

 

 

 

 

  

 

 

  

 

2009년에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기억 남은 책이라면 강상중 교수의 <고민하는 힘>이었다.  처음으로 강상중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책을 읽었던 당시 그 어떤 소대에도 소속되지 않은 잉여 전투병에게는 한국인도 아닌, 그리고 일본인이라고 할 수 없는 재일교포 2세의 입장이 가슴 속 깊이 와닿았다.    비록 정신적으로 힘든 시련의 시간이었지만 그 때의 경험 그리고 강상중 교수의 책을 접하지 않았더라면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 로서의 고충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3) 2009년, 시련의 군생활 속에 피운 긍정의 꽃

결국, 우여곡절 끝에 다시 예전 소대로 복귀하게 되었지만 상병 마크를 군복과 군모에 오버로크를 해도 여전히 '군 병원 생활' 이라는 부정적인 꼬리표 역시 나의 이미지에 오버로크 되어 있었다.   말과 생각은 '후임병들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선임병' 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소대 생활을 빠르게 적응하는게 쉽지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평소에 나를 좋게 봐주던 소대장님이 다른 부대로 전임하시게 됨으로써 군 생활은 그야말로 '꼬이게' 되었다.   새로 온 부임한 소대장님은 평소에 나에 대해서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낸 간부 중의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분은 나를 '소대 내에서 열등한 장병' 으로만 생각했다.   

한 번 찍힌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못하는게 군대의 현실이다.  결국 간부의 눈 밖에 난 이미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 해 8월, 나는 다른 부대로 파견으로 복무하게 되는 다른 소대로 강제적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 당시 부대의 파견 복무는 맞은 편 북한 부대와 대치할 수 있는 압록강 주변에 근무하는 것이다.   특히 겨울이 되면 야간 근무 시 춥기로 유명하였다.   그래서 그 당시 내가 파견 근무 소대로 옮긴다는 사실에 주변 선임병과 동기들은 내가 군 생활을 제대로 꼬인 대표적인 케이스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도 파견 근무 소대원들과 친분이 있어서 다행이었지 완전 친하지도 않은 소대였다면 정말 군 생활이 꼬였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친숙한 소대였다고 하더라도 그 쪽 소대원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보여야하는 것이 내가 먼저 해야할 첫번째 일이었다.  그 곳에서도 안 좋은 소리 듣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소대 생활에 적극절으로 임하였고 무엇보다도 절대로 다른 소대로 강제적으로 옮겼다고해서 풀 죽은 모습을 하지 않았다.  그들 앞에서 최대한 웃으려고 하였고 훈련 때에는 최대한 뛸 수 있을만큼 뛰었다.    

그리고 오랜 노력 끝에 좋은 일들도 찾아오기 시작하였다.  파견 근무에 임한 노고가 소대 간부님과 소대원들에게 인정되어 부대장 표창장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군 생활 처음으로 포상 휴가라는 것을 받게 된 순간이었다.     좋은 일은 계속 찾아왔다.  부대에서 시행 중인 한자 자격증을 따게 되어 또 포상 휴가를 이어서 받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소대원들은 드디어 내 군생활에 '꽃이 피었다' 라고 할 정도로 나를 예전보다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   

  

 

 4) 2010년 묵삼재, 알라딘과의 만남  

삼재의 두 번째 시기인 2010년에는 머리 아플 정도로 힘든 일이 없었다.  오히려 2010년은 나에게 좋은 일이 많았다.  

그 해 5월에 전역하게 되면서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알라딘 서재 블로그를 하기 시작하였다.  군 입대 전에는 블로그에 관심이 없었는데 군 생활하면서 갑자기 해보고 싶은 경험들 중에 하나가 바로 블로그 활동이었다.    사실 알라딘 블로그를 하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바로 땡스투 적립금이었다.     군 입대 전에도 간간이 알라딘에서 책을 구매했었지만 땡스투 적립금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블로그에 리뷰나 페이퍼를 남기면 적립금을 모을 수 있다는 제도 자체가 평소 책을 많이 구입하지 않는 나에게는 참으로 획기적인(?) 제도였다.  (지금은 땡스투 적림금의 폐해를 알고 있지만.. ^^;;)       그래서 하게 된 것이 서재 블로그 활동이었다.  적립금을 모으되 리뷰나 페이퍼만큼은 정성껏 쓰려고 노력했다.   

역시 노력한만큼 그에 따른 좋은 결과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비록 처음으로 7기 신청할 때는 탈락되었지만 운 좋게도 8기 신간평가단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알라딘이나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리뷰 이벤트에 참여하여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알라딘 덕분에 나의 독서를 위한 재정적(?) 지원만 얻은 것이 아니었다.  비록 온라인상이지만 나처럼 독서를 좋아하는 좋은 서재 이웃분들도 만날 수 있었다.  

지금도 서재 블로그에 처음으로 댓글을 다셨던 분을 기억하고 있다. 만약에 그 분이 아니었다면 서재 블로그는 무척 썰렁했었을 것이다.   그 분의 댓글 덕분에 나도 다른 이웃분들의 서재 블로그에 가게 되면 댓글을 남기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다.    

  

 

 5) 올 해, 날삼재  

삼재의 마지막 시기인 날삼재는 재앙의 정도가 가장 희박하다.   아직 2011년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재앙' 이라고 말할 정도로 심각한 일은 겪지 않았다.  

올 해가 3년 만에 복학하게 되어서 성적장학금을 받는 것을 목표로 삼아 학업에 열중하게 되었는데 비록 2등이지만 그동안의 걱정을 훌훌 털어버리고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그동안 2009년부터 올해까지 쭉 삼재의 시기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의 앨범에 꺼내보니 그저 불행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그 때가 좋지 않을 일들이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경험인 것도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 몰래 독서모임으로 한 달에 두 번 서울을 왕래했던 사실을 돌이켜본다면 나는 정말로 이번 삼재를 억세게 운 좋게 보낸 것이다.  이게 다 부적의 효험 탓인지 모르겠지만.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 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모든것은 한 순간 사라지지만
가버린 것은 마음에 소중하리라 

- 알렉산드르 뿌쉬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2연 -

 

 

'긍정의 힘' 이라는 말이 있듯이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럽다고 할지라도 참고 견딘다면 즐거운 날은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기억과 경험마저도 언젠가는 미래, 곧 나에게 다가올게 될 긍정적인 현실의 '열매' 로 이루어지는 소중한 씨앗이 될 수 있다. 저 유명한 뿌쉬낀의 시 구절처럼 말이다.  
   

 

  

P.S>

'삼재' 를 검색하게 되면서 우연히 '액년' 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액년이란 '운수 사나운 해' 를 뜻하는데 속설상 보통 남자는 25, 42 , 61세, 여자는 19, 33, 37세를 액년의 시기로 보고 있다.     

이런,,,   내년이면 나 25인데...   심지어 2012년은 전세계적으로 지구 종말의 해로 운운하고 있다.    

과연 내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내심 걱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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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사랑하는현맘 2011-09-16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재라는 말을 어릴적 할머니께 들은적이 있어요. 솔직히 뜻은 들어도 잘 모르겠지만요 ㅎㅎ 근데 주어지고 짜여진 운명같은 것보다는 엄마 몰래 서울 다니신 cyrus님의 모험이 인생을 만드는건 아닐까도 싶어요 ㅎㅎ

cyrus 2011-09-17 21:15   좋아요 0 | URL
최근에 어머니께 그런 말씀을 듣게되니 속으로 얼마나 찔리던지.. ^^;;
지금도 제가 서울에 돌아다니는걸 모르시거든요 ㅎㅎ

순오기 2011-09-17 0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삼재 공부를 하는 새벽이네요.^^
어머님이 들삼재 날삼재 얘기를 하셨지만 그땐 잘 모르고 지났고~ 지나서 생각하니 그랬었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받아들이고 생각하기 나름이다고 결론지었어요.^^

cyrus 2011-09-17 21:1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나중에 과거 경험을 되돌아보면 그렇게 최악의 경험이 아니었던거
같아요, 만약에 제가 삼재를 미리 알고 있었다면 오히려 부정적으로
생각했었을거에요. 제가 삼재라는 것을 작년에 처음 알게 되었거든요 ^^;;

마녀고양이 2011-09-17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알라가 용띠예요, 안 그래도 시어머님이 말씀해주시던데,
코알라 올해 초반은 좀 힘들었지만, 지금은 꽤 좋은 상태인지라..
그래도 천기란게 무서워서 함부로 말하면 안 되겠지요.

여하간 9년 주기의 세가지 액운이라는 해석을 첨으로 알았네요.
시루스님, 서재 활동 즐거우신가요? 다행이예요,,, 그래야 오래 같이하지요~ ^^

cyrus 2011-09-17 21:19   좋아요 0 | URL
맞아요, 그런데 저는 올해가 끝나려면 3개월 남았는데,, 너무 함부로
서재에 글로 남긴거 같아요 ㅎㅎ 괜찮..겠죠..? ^^;;

아마도 9월 말부터 되면 학업 때문에 바빠질거 같아요, 중간고사가
10월 중순에 있으니까요.

stella.K 2011-09-17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멀리가지 말랬다고 하지만 서울 정도쯤이야...?!
그것도 바다 건너 가는 정도가 되야하는 거 아닌가?
뭐 이런 거 미신이라고 믿지 말라고는 말은 못하겠다만,
매사 조심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결국 우리가 가저야할 삶의 자세라고
말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여자의 액삼년을 다 지나왔는데 특별히 해당사항은 없었던 것 같아.
나쁘다면 작년, 올핸 것 같아.
몸이 안 좋아졌으니까.
하지만 이때 또 리모델링을 받고 있으니 오히려 다행이다 싶더라.
더 나빠지기 전이니까. 신호를 보내는 거였더라구.ㅎ

그런데 시루스 이런 말하면 싫어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젊구나. 올해도, 내년도.ㅋ
또 모르지 내년에 더 좋은 일이 있을지.
바라는대로 된다잖아.^^


cyrus 2011-09-17 21:23   좋아요 0 | URL
ㅎㅎ 이러다가 저 유학도 못갈까봐 걱정이에요. 뭐 지금 상황으로서는
유학 갈 형편은 안 되지만요 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누님은 액년에 아무 탈이 없었다니 다행이네요.

내년이면 20대가 꺾이네요. 여기서 껶이다라는게 군대에서 특정 기반의 절반을 지났을 때 사용하는 단어에요, 정말로 젊었을 때 가장 좋은 시기라고
하던데 후회하지 않는 젊음의 시기를 보내고 싶네요 ^^;;


2011-09-20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20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군이 이미 교과서를 통해서 알고 있는 것이지만, 이것 역시 입학 시험과는 상관 없는 이야기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 주기 바란다.  면에는 안과 겉이 있다.  예를 들자.  종이는 앞뒤 양면을 갖고 지구는 내부와 외부를 갖는다.  평면인 종이를 길쭉한 직사각형으로 오려서 그 양끝을 맞불이면 역시 안과 겉 양면이 있게 된다.   그런데 이것을 한 번 꼬아 양끝을 붙이면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즉 한쪽 면만 갖는 곡면이 된다.   이것이 제군이 교과서를 통해서 잘 알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이다.  여기서 안과 겉을 구별할 수 없는 곡면을 생각해 보자.  

- [뫼비우스의 띠] 중에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수록, 조세희 -

   

 

  두 명의 나폴레옹  

 

 

 

 

 

  

    

 

 

1804년 7월 국민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프랑스의 황제가 된 나폴레옹(1769~1821)은 같은 해 12월 2일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성대한 대관식을 거행했다.  나폴레옹은 이 역사적인 행사를 기록하여 후대에 남기고 싶었는지 자신의 밑에서 전속 화가로 활동하고 있었던 자크 루이 다비드(1748~1825)에게 맡겼다.  

자크 루이 다비드는 프랑스 혁명이 발발할 때 자코뱅 당원 소속으로서 혁명에 가담하였으나 당시 자코뱅당의 지도자인 로베스피에르(1758~1794)가 처형당하여 권력이 몰락당하자 투옥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급직적인 혁명파들이 하나씩 숙청당하는 피바람 속에서도 다비드는 기사회생하였다.  제1통령 시절이었던 나폴레옹에게 종용되어 전속 미술 감독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다비드의 인생은  커다란 반전을 겪게 되었다.   언제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르는 자코뱅파의 화가였다가 이제는 프랑스 전 지역을 다스리는 절대왕권의 권력자에게 총애를 받는 '왕의 화가' 가 되었던 것이다.   나폴레옹이 황제로서 절대권력을 누렸듯이 다비드 역시 미술계 최대의 권력자가 되어 프랑스 화단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자크 루이 다비드 <나폴레옹의 대관식>  1807년 

  

나폴레옹은 다시 다비드에게 그의 승리의 행진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1804년 12월의 노트르담 대관식을 그려달라고 요청했다.   이것은 화려함이 극치에 이른 행사였다.  프랑스의 내로라하는 인물은 모두 이 성당에 모였다.   교황 피우스 7세도 참석했고,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대표를 보냈으며, 장-프랑수아 르쥐외르는 특별히 음악을 작곡했다.  교황은 나폴레옹을 축복하여 고요한 성당 안에서 "황제 만세" 를 외쳤다.   다비드는 이 장면을 <조세핀의 성사 1807>라는 제목으로 1807년 11월에 완성했으며, 이것을 "나의 탁월한 주군에게" 바쳤다.  나폴레옹은 환호작약하여 '예술에 기여한 공로로' 다비드에게 레지옹 도뇌르 훈위를 수여했다.  그는 다비드의 가슴에서 훈장을 꽂아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 당신 덕분에 프랑스에 고상한 취향이 되살아 났소. "  

- 알랭 드 보통 <불안> 중에서 -  

  

그러나 다비드는 이 대관식 장면을 한 장의 스냅 사진을 촬영한 것처럼 즉석에서 바로 그려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그 당시 승리의 도취감이 하늘에 찌를 정도로 위풍당당하였지만 주변 유럽 국가들과 교황은 나폴레옹의 등장에 썩 달갑게 여지기 않았다.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의 대관식 장면은 막강한 권력을 가진 영웅, 단 한 사람을 위한 성대한 잔치에 불과했다.  

 

 <나폴레옹의 대관식> 일부  

   
 

중앙에 특별히 마련된 좌석에 앉아 있는 귀부인이 나폴레옹의 어머니이다. 

그러나 그녀는 실제로는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왕관을 씌우려고 하는 나폴레옹의 뒤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당시 로마 교황 피우스 7세(1742~1823)이다.   

 
   

 

프랑스의 '영웅' 이자 '절대권력자' 는 장엄한 대관식을 생생하게 묘사하기 위해서 다비드에게 특별한 요구를 하게 되는데 실제로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는 자신의 어머니를 중앙에 그려넣으라고 하였고 자신보다 연상인 황후 조세핀을 우아하고 젋은 '영웅' 의 아내로 미화하여 묘사할 것을 주문하였다.  

그리고 다비드가 그린 대관식 장면 속에 압권은 나폴레옹의 모습이다.  황제를 상징하는 왕관을 쓴 나폴레옹이 부인 조세핀에게 직접 왕관을 씌워주고 있다.  양손에 왕관을 쥔 나폴레옹의 모습에는 황제로서의 위엄이 묻어나 있다.   

나폴레옹 뒤에 앉아 있는 사람은 당시 로마 교황이었던 피우스 7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기존의 대관식 장면을 그린 그림들은 교황이 직접 황제가 될 사람에게 왕권을 수여하는 장면이 그려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다비드의 그림에는 교황은 그저 황제 뒤에 앉아 있을 뿐이다.  

피우스 7세는 프랑스 혁명 이후로 프랑스와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나폴레옹과의 종교협약을 맺음으로써 프랑스에 로마 가톨릭교를 부활시키는 동시에 화해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종교협약은 유럽 왕권에 대한 교황의 지위가 한 단계 격하되는 계기가 되었다.  나폴레옹의 등장은 곧 왕권이 교황의 지배권으로부터 독립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준 사건이었다.   그림 속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황은 나폴레옹의 원맨쇼를 앉아서 지켜볼 수 밖에 없는 대관식을 참관만 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대관식이 치뤄진 뒤 2년 뒤에 나폴레옹은 교황의 교회령에 대한 세속적 지배권을 제한하는 정책을 취하여 교회령의 병합을 선언, 교황 피우스 7세를 체포함으로써 오랫동안 유럽 왕권을 군림하였던 교황권의 지위를 굴복시키는데 성공하고 만다.  

 

<프랑스 초대 황제 나폴레옹의 대관식 행렬> 제임스 길레이, 1805년  

  

실세를 잡은 나폴레옹 황제는 자신의 권력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반동적이거나 풍자 신문을 폐간할 것을 명하고 심지어 자신의 외모에 풍자하는 것까지도 허용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이 왕권을 잡고 있었던 시기에 다비드를 비롯한 화가들은 그를 신격화하는 그림들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힘이 미치지 않는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젋은 영웅을 마음껏 조롱하고 풍자할 수 있었다.   영국의 풍자화가 제임스 길레이(1756~1815)는 다비드가 대관식 장면을 제작하고 있었던 무렵에 마찬가지로 똑같은 주제의 장면을 그렸는데 다비드의 그림과는 다르게 대관식 장면을 희화화하였다.   길레이는 단순히 영웅인마냥 자아도취에 빠진 황제만 비난한 것이 아니라 속으로는 불만에 가득차 있으면서도 나폴레옹의 등장에 환호를 하는 당시 유럽 국가와 교황의 이중적인 태도까지도 조롱하였다.   

 

제임스 길레이는 추종자, 아첨꾼, 죄수를 이끌고 점잔빼며 걸어가는 황제의 모습을 그렸다.  황제는 잔뜩 부풀어 올라 우쭐거리고 있다.  교황 피우스 7세도 등장하지만 다비드의 그림에서와는 달리 길레이의 교황은 가운 밑에 성가대의 소년을 감추고 있는데, 이 소년은 가면을 벗고 악마의 얼굴을 드러낸다.    (중략)   행렬을 나폴레옹이 정복한 프로이센, 스페인, 네덜란드의 대표들이 이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자발적으로 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들 뒤에는 족쇄를 찬 병사들의 행렬이 따라온다.   따라서 나폴레옹은 백성이 자발적으로 권력을 내준 황제가 아닌 것이다.    

- 알랭 드 보통 <불안> 중에서 -  

 

길레이의 풍자화가 유럽 곳곳에 유행하기 시작하자 나폴레옹은 자신의 희화화한 그림을 프랑스로 반입하는 자를 재판없이 수감하도록 강력한 지시를 내렸다.   영국 출신의 풍자화가가 그린 단 한 점의 그림 때문에 나폴레옹은 얼마나 심기가 불편했던 것일까?    그는 또 영국을 침공하여 정복하게 된다면 반드시 제임스 길레이를 찾아내겠다고 엄포를 할 정도였다.  

 

 

  거짓말같이 오고 만 해방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이 1943년 들어 연합국의 우세가 확실해짐에 따라 연합국측은 전후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943년 카이로 회담을 열었으며, 한국에 대해서는 적당한 시기에 독립시킬 것을 결의하였다. 1945년 2월 얄타 회담에서는 신탁 통치가 거론되었으며, 1945년 7월 포츠담 선언에서는 카이로 선언이 재확인되었다. 1945년 8월 6일 일본의 나가사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8월 9일 얄타 협정에 따라 러시아가 대일선전포고를 한데 이어 38선 전역을 점령하였다. 러시아의 남하를 우려한 미국이 38선 분할안을 제기하였으며,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하였다.   

1945년 8월 15일,  미국의 뉴욕 타임즈의 1면 헤드라인에는 '일본 항복, 전쟁 끝!' 이라고 간결하게 알림으로써 연합군의 승리를 선포하였다.  그리고 기사에는 '1943년 12월 카이로 선언에서 "위험과 욕심으로부터 지배당했던" 영토들도 해방될 것이다. 한국의 독립 또한 약속되었다. ' 라고 게재함으로써 한국의 독립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재미교포단체들이 발간하는 항일 민족 기관지 신한민보에는 미국의 대통령 트루먼,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 중국의 주석 장제스 그리고 소련의 서기장 스탈린이 보낸 한국의 독립에 대한 축전까지 게재되었다.   

  " 한국은 당신들의 승리를 얻었고 한국의 자유가 속히 올 것을 위하여 축하합니다. " 

 

하지만 광복의 기쁨을 먼저 만끽해야할 한반도에서는 외세 언론 속의 반응과는 다르게 분위기가 달랐다.   그리고 그 날의 1면 역시 상반되는 내용이었다.  

조선총독수 소속 기관지인 매일신보경성일보는 일본의 항복에 대한 소식을 전파하기보다는 여전히 천황제를 존속할 것을 알리는 내용들을 게재하였다.    그리고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공식적으로 한반도에 알리게 된 것은 경성중앙방송국의 라디오 중계를 통해 히로히토 천황의 항복 선언 방송을 통해 뒤늦게 알 수 있었다.  

히로히토는 "항복" 이란 말은 쓰지 않았지만, "짐은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 영. 소. 중 4국에 대하여 그 공동선언을 수락할 뜻을 통고케 하였다. " 는 말이 곧 항복 선언이었다.  

- 강준만 <한국 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1> 중에서 - 

 

엄명하게 말하자면 일본의 항복 선언은 곧 조선의 독립을 알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라디오 방송을 청취한 조선인들은 해방의 감격을 길거리에 나와 만끽하였지만 라디오를 소유하지 못했다거나 '항복' 이라는 단어를 표현하지 못한 천황의 항복 선언에 시민들은 여전히 광복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와 같은 친일 언론들은 실제로 벌여진 일제의 몰락 사실을 전 국민들에게  알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2~3일 후에야 해방을 알게 된 지역이 많았다.  (강준만, <한국 근현대사 산책 1940년대편 1> pp 30)  

원로 여류 시인 홍윤숙의 표현대로 8월 15일의 해방은 '참으로 거짓말같이 그날은 오고 만 것' 이었다.  (강준만, pp 25)   36년 간 일제의 억압에 시달려야했던 조선인들은 갑자기 찾아온 해방에 반신반의하였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찾아온 조선의 해방은 또다른 강대국들의 등장으로 인해 광복의 기쁨은 단 하루, 잠시뿐이었다.   이북 38선 전역을 점령한 소련의 남하를 우려한 미국은 38선 분할을 제기하였고 남한에 미 군정이, 북한에는 소련이 점령하였다.  광복을 맞이하였으나  조선인들로 이루어진 자주적 정부 수립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미국은 조선의 자주성 존재마저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광복을 맞은지 66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의 극우파들은 조선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뫼비우스의 띠로 이루어진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안과 겉' 구분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수록된 첫번째 단편 '뫼비우스의 띠' 에서 수학 교사는 뫼비우스의 띠라는 수학적 개념을 학생들에게 알림으로써 안쪽과 바깥쪽이 구별되지 않은 이 요상한 형체와 같이 우리가 진실이라 여기는 뜻이 그렇지 않을 때가 있음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앞에서 소개한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지금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흑백 논리,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채 왜곡된 사고와 사회적 시선들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상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겉으로 구분을 할 수 없듯이 하나의 사건만을 가지고 무조건 옳다,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도리어 왜곡되고 고집된 생각을 형성할 수 있는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잘못된 방식이다.  

다양한 이면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물과 현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버려야 하며 올바른 판단력과 비판적 태도를 통해 현상을 바로 인식할 줄 알아야 한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아는 것이 힘이다' 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그러나 인간이 '이성' 을 가짐으로써 다양한 학문을 안다고 해서 그 경험만으로도 세상을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볼 수 있을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과 현상 속에서 숨겨진 그 내면의 진실을 왜곡하지 않은채 뚜렷하게 볼 수 있다는 것.   이제는 '아는 것' 이 힘이 아니라 '진실을 왜곡하지 않은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 이야말로 복잡다단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가장 요구되는 진정한 힘인 것이다.   

'뫼비우스의 띠' 에서 교사가 수업을 마무리하는 장면을 끝으로 이 글 역시 마무리하고자 한다.

 

" 끝으로 내부와 외부가 따로 없는 입체는 없는지 생각해 보자. 내부와 외부를 경계지을 수 없는 입체, 즉 뫼비우스의 입체를 상상해 보라.  우주는 무한하고 끝이 없이 내부와 외부를 구분할 수 없을 것 같다.   간단한 뫼비우스의 띠에 많은 진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중략)   차차 알게 되겠지만 인간의 지식은 터무니없이 간사한 역할을 맡을 때가 많다.   제군은 이제 대학에 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제군은 결코 제군의 지식이 제군이 입을 이익에 맞추어 쓰이는 일이 없도록 하라. " 

 

  

 

* 관련 동영상  

EBS e지식채널 <두 개의 시선> (다비드와 길레이의 그림) 

                    <그날의 기록> (8.15 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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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09-10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아주 유익합니다. 아무튼 우리는 지금 뫼비우스의 띠 어딘가에의 바깥, 혹은 안쪽에서 반대편을 못 보고 있겠지요?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그 띠를 걷다보면 지금 반대쪽에 있는 것을 언젠가는 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되는 거겠지요.^^

cyrus님 그간 여러 좋은 글 읽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추석맞아 전합니다. 추석 잘 보내세요.^^

cyrus 2011-09-10 18:19   좋아요 0 | URL
<한국정부론>이라는 수업 첫 시간에 보여준 동영상에 대해서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그 수업은 매주 수업내용을 피드백해서 정리해서
교수님 홈페이지에 올려야하거든요. 동영상을 보면서 하나의 현상을
한쪽면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추석 인사 댓글을 읽으면서 맥퍼님의 서재를 들리지 않은게 오히려
맥거핀님께 송구스러운 마음이 드네요, 영화는 제가 관심 있는거만 보는
편이라 맥거핀님 서재에 댓글을 남지지 못한 것도 있었습니다. ^^:;

맥거핀님도 추석 잘 보내세요 ^^

노이에자이트 2011-09-10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차세계대전은 1939년 9월에 독일이 폴란드를 공격한 날을 시작으로 잡습니다.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한 전쟁은 태평양전쟁이라고 하지요.단,통칭 2차세계대전은 태평양전쟁을 포함하여 말합니다.독일이 1945년 5월 항복하지만 일본은 8월에 항복하기 때문에 이 날을 2차대전이 끝났다고 하지요.물론 그날을 태평양 전쟁이 끝났다고도 합니다.

cyrus 2011-09-10 18:21   좋아요 0 | URL
사실 저는 2차세계대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발발하고 진행되었는지 몰랐어요.
그저 영화에서 소개된 유명한 전쟁 이외에는 모르는게 많아요.
댓글이나마 노자님께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자님도 추석 잘 보내세요 ^^

2011-09-10 1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9-10 1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cene #1  버스 통학의 어려움

이번 주는 개강 수업이 많다.  수업 첫 날에는 수업 소개를 하는 OT를 하는 편이라 학교 갈 때 가방이나 책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  교수님들마다 성향이 다르겠지만 의외로 첫날부터 수업 진도를 나가시는 교수님은 꼭 한 명씩 있다.   지금까지 몇 몇 첫 수업을 들으면서 다행히 첫 수업에도 열정적인(?) 교수님은 없었다.    

개강한지도 얼마 안 되었고 수강변경 기간도 아직 남아 있는 상황이라 요즘에는 거의 빈 손인 채 즐기는 마음으로(?) 학교를 간다.   추석 연휴가 끝나자마자 열공 모드에 돌입해도 충분하니까.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집에서 출발하교 학교에 도착하는데만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위치상 학교가 거리가 먼 편이다.   그래서 버스 타고 타니는 것만 해도 고역이다.   운이 없으면 만원버스를 탈 수도 있고 그렇다고 손님이 없다고해서 좋은 점도 없다.  혼자서 버스를 타는데 1시간 내내 앉아 있으면 너무나 지루하고 졸립다.   전날에 일찍 잠을 잔다고해도 버스에 앉기만하면 서서히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버스를 타다보면 꾸벅꾸뻑 졸 때도 있지만 선잠에 불과하다.    

더구나 버스 안에서 잠을 안 잘려고하는 가장 큰 이유는 꾸벅꾸벌 졸다가 머리가 창문에 부딪히거나 자신도 모르게 벌어진 입술 사이에 침이 흘릴 수 있는... 아주 난감한 상황이 연출하게 된다.   버스에 타고 있는 주위 사람들이 제대로 보지 않는다면 괜찮겠지만...

그나마 잠을 깰 수 있는 방법으로는 스마트폰이다.  음악을 듣는다거나 게임을 한다.  하지만 버스 타는 내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기에는 시간 낭비이며 건강상으로는 좋지 못하다.  스마트폰을 자주 이용하다보면 시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나중에 사용하다보면 목이 뻐근하기 때문이다.      

  

 

 Scene #2  나, 이런 사람이야...

그래서 항상 버스 통학을 하면 가방 안에 읽을 책 한 권은 꼭 가지고 다닌다.  통학 이외에도 수업 마치고 집으로 귀가할 때도 스쿨버스를 타게 되는데 주로 이 시간 때 읽는 편이다.   

요즘에는 무거운 전공교과서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서 학교를 가게 되면 읽을 책 한 권을 들고 다닌다.  달랑 책 한 권만 들고 학교를 다려보니깐 편하고 좋다.     하지만 버스 안에서 책을 읽는다고 해도 잠이 안 오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흥미롭고 집중 몰입을 할 수 있는 내용의 책이라면 괜찮은데 대부분 몇 페이지 정도 읽고나면 졸리기 시작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흔들림이 잦은 버스나 지하철, 기차 내에서 책을 읽게 되면 시야 초점이 맞춰질 수 없기 때문에 눈이 피로해진다.  그러니 책을 읽어도 당연히 졸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시력을 떨어지게 만드는 습관이기도 하다.

그래도 버스 타는 내내 멍때리거나 온종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것보다는 독서가 낫다고 본다.  적은 시간을 통해서도 책 한 권을 통해서 새로운 지식과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비어 있는 시간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의미로운 행위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즘 버스에서 읽고 있는 책이 조세희의 <난쏘공>이다.   이 책을 중학교 3학년 때 구입해서 처음 읽어봤는데 그 이후로는 읽지 않은채 책장에 꽃혀 있다가 8년 만에 드디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책을 오랜만에 펼치게 된 이유는 이번 주 월요일에 '한국정부론' 이라는 수업에 조세희의 <난쏘공>을 소개하는 EBS 'e 지식채널' 동영상을 본 이후로 오랜만에 읽어보고 싶었다.  (조세희의 <난쏘공>에 대한 지식채널 동영상에 대한 감상은 내일 안으로 페이퍼로 작성하겠다)  

그래서 그 수업을 듣고 다음 날인 화요일, 그러니까 어제 <난쏘공>을 한 손에 쥔 채 학교에 갔다.   아무래도 월요일에 있었던 수업에도 소개된 책이라 주위 친구들의 반응을 기대한 의도도 있었다.    

대학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만난지 올해만 포함하면 2년이다.  군대 2년을 제외하면 오랫동안 사귄 편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보니 내가 독서를 좋아하는 것을 잘 모른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만난 꽤 친구들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다보니 내가 독서를 좋아하는 것까지 취미, 습관을 다 꿰뚫고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대학교 친구들은 오히려 나라는 사람을 말 많고 먹는데 엄청 밟히며 특히나 술 좋아하는 과탑이라는 존재로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대학교 친구들 앞에서 나의 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 스스로 과장한 것도 있지만 우리나라 사회문제를 다룬 소설을 읽는 사회의식이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대학생으로 보이고 싶었다.   

하지만 평소 독서와는 거리가 먼 대학생 친구들에게 괜한 큰 기대감을 가졌다. 정말로 책에 대해서 무관심한건지 아니면 일부러 안 보는 척 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루동안 만난 친구 10명 중에 아무도 내가 들고 있는 책 한 권에 단 한 명도 관심을 쏟지 않았던 것이다. 

그날따라 오히려 한 손에 달랑 쥐고 있는 <난쏘공>이 더욱 허전하게 느껴졌다. 

 

 

 Scene #3  책을 알리는 나만의 방법   

친구들이 나의 새롭고도 지적인 면을 보지 못한게 아쉽다기 보다는 이런 좋은 책이, 그것도 곧 사회라는 거대한 세상을 알아야 할 대학생들이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더욱 아쉽게 느껴졌다.  200쇄를 돌파한 우리나라 최대의 문제작이며서도 한 때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추천될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들이아면 꼭 기억해야할 책인데도 말이다.   대학생들이 그저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권력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빼앗기는 철거민들의 생활에 대해서 안중에 없듯이 <난쏘공>의 내용도 대학생들에게는 자신의 삶과과 거리가 먼 그저 '남 이야기' 에 불과한 것이다.  

나는 어떻게든 <난쏘공>이라는 이 좋은 책의 가치를 딱 한 사람이로도 알려주고 싶었다.  물론 그런 좋은 의도 뒤에는 지적인 면모를 어떻게든 알리고픈 졸속한 마음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  

 

그래서 이런 방법을 써봤다.     

 

 1) 평소에 성격이 어른처럼 성숙하고 진지한 면이 있는 마음씨 착한 친구 한 명을 지목한다.  

    꼭 진지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이런 사람이 의외로 책을 읽을 줄 알기 때문이다. 

 

 2) 그 친구가 가방을 들고 다니는지 확인한다.  

 

 3) 가방을 들고 다닌 것을 확인한 후, 내가 지금 책 한 권 들고 다니니가 불편하니 잠시만  

     가방에 넣어줄 것을 부탁해본다.  마음씨 착한 친구는 이런 작은 부탁에도 잘 들어준다.

 

 4) 그러고는 친구에게 책을 건네주면서 살짝 책에 대한 정보를 알려준다.  <난쏘공>이  

     어제 수업에 소개된 책인데,,  교수님이 소개하길래 다시 한 번 읽어보려고  

     한다는 식으로..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이 정말 좋다고 찬사의 미사여구를 늘어놓는다.  

 

 5) 책이 친구의 가방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 난 후에는 

    일부러 책을 받으러 가지 않는다. 즉,  모르는 척 하는 것이다.

     그 친구는 나중에 집에 도착하고 난 뒤에서야 가방 안에 맡기고 있었던  

     책을 확인하게 되는데 90%는 이런 경우에도 다음 날에 책을 안 돌려주는 편이다.  

     왜냐하면 책을 돌려주고 싶어도 굳이 학교까지 가는데  

    가방 안에 들고다니기가 은근히 귀찮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자주 만나니깐 나중에 돌려줘도 된다는 식으로 미루게 되는  

    일종의 귀차니즘적 생각을 하게 된다.

 

대충 이런 시나리오(?)를 예상하면서 실행을 하게 되었는데 딱 맞아떨어졌다.  오늘 그 친구가 나에게 책을 가져가지 않은 사실을 알려주었는데 본의 아니게 책을 자기 집에 놔두고 왔다고 하였다.

나는 겉으로 까맣게 잊어버린 척하면서 괜찮다고 대인배 모드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내가 맡긴 그 책, 좋은 책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시간이 나면 집에서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한다.  그리고 다 읽고나면 천천히 돌려줘도 된다고 말한다.    

그 친구는 <난쏘공>을 읽어보겠다고 대답은 했긴 했는데 그 친구가 정말로 읽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대답만 하고 책을 방치해두고 있다가 기간이 좀 지난 뒤에 돌려줄 수도 있기 때뭉이다. 

그래서 농담삼아 그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   

 

  

" 천천히 돌려주는 대신에 원고지 200자 이내로 <난쏘공> 독후감 써 와라.  

  독후감 안 써오면 책을 안 읽는걸로 간주할께" 

 

그 친구에게 농담삼아 책 읽어보라고 권했지만 내 마음의 진심이 그 녀석이 통하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이렇게 해도 안 읽는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만약에 이런 경우에는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한 페이지조차도 읽어보지도 않으면서 책을 돌려주지 않는 것.   이런 행위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다.   정말로 읽어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독서 행위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는 좋은 의미로 그냥 넘어갈 수는 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쭉 지켜봐야할 듯하다.  <난쏘공>이 영영 못 받게 되는 최악의 상황이 안 일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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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시스 2011-09-08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돌려받기란 돈 돌려받기만큼 힘든 것 같아요. 어쩌다 띄엄띄엄 읽다가 본인 눈에 우연히 띄어 좀 빌려줘, 해서 빌려준 책은 더더욱.ㅋㅋㅋ 사람들이 책은 돌려줘야 한다는 전제를 까먹고 빌려가는 것 같더라구요. 안 빌려주면 괜히 치사한 사람 되고, 빌려주고 나면 못 받고 그래요. 히히. <난쏘공>은 꼭 돌아오길 빌어줄게요.^^

cyrus 2011-09-09 22:09   좋아요 0 | URL
몇 년전에 여자애한테 책 빌려줬는데 못 받은 적이 있었거든요,
그 책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였어요. 그 때 못 받은 책이
요즘에 나온 표지랑 다른 흰 색 바탕의 구판이였거든요.
그래서 헌책방에서 흰 색 구판을 다시 구했어요 ^^;;

그 친구는 이번 학기동안까지 계속 마주쳐야하기 때문에 학기가 끝날 땎자ㅣ
책을 받을 수 있을거 같습니다. ^^;;

교고쿠도 2011-09-08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저랑 비슷하시네요. 외출할 때는 꼭 어떤 책이든 갖고 나갑니다. 멍때리고 있는걸 싫어하기도 하고, 엉덩이 붙이면 무조건 책!이에요. ^^심지어는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의 책읽기가 집이나 여타 다른 장소에 비해 더욱 집중이 잘 되는듯도 합니다.

저는 얼마전 친구를 만날 때마다 한두권씩 빌려줬던 책들을, 몰아서 택배로 한꺼번에 반납받았습니다. ^^(마치 도서관의 택배대출서비스를 연상케 하는...)

cyrus 2011-09-09 22:11   좋아요 0 | URL
아 근데 저 오늘 학교 가는 버스 타면서 책 읽다가 졸았어요. 웃긴건
너무 졸다가 읽고 있던 책을 바닥에 떨어뜨렸어요, 그 때 얼마나 부끄럽던지,,
^^;; 택배로 받아내시다니,, 그런 방법으로 반납도 가능하는군요 ㅎㅎ

조선인 2011-09-08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전 '난쏘공' 못 돌려받길 기대할게요. =3=3=3

cyrus 2011-09-09 22:11   좋아요 0 | URL
좋은 책을 그 친구가 읽는다면 못 받아도 상관 없어요. ^^

잘잘라 2011-09-08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난쏘공 못돌려받으시길~ 흐흐흐

잘잘라 2011-09-08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고요 저는 '의외로' 수업 첫날 진도 빼시는 교수님이 의외로 기억나고 대체로 좋은 분이었다는 기억이 나요 의외로^^;;

cyrus 2011-09-09 22:12   좋아요 0 | URL
의외로 못 받기를 바라는 분들이 계시네요 ^^

맞아요, 포핀스님 말씀대로 그런 분이야말로 정말로 학생들을 위해서
열정적으로 수업을 하고자하는 좋은 교수님이에요.

stella.K 2011-09-09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사귀고 싶은 이성친구 있으면 슬쩍 그 방법 써도 좋을 것 같아요.
이래서 CC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니까요.
그래서 연애도 젊을 때 하는 거구요.ㅋㅋ
근데 독후감 쓰라는 거에서 쫌 깨는데요? 갑자기 교수님 모드.ㅎ
저는 초등학교 때 좋아하는 남자애 눈길 끌려고 책을 일부러 코높이까지 올려서
읽어 본적 있는데.
그래도 나름 성공했어요. 빌려 달라고 했으니까.ㅋㅋ

cyrus 2011-09-09 22:13   좋아요 0 | URL
저도 이 글을 쓰고나면서 문득 떠올렸어요. 정말로 이 방법, 써보려고 해요.
그런데 상대방 이성이 책을 안 좋아하면, 어쩔 수가 없고요.. ^^;;


yamoo 2011-09-08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그런데, 그런 방법이 성공하려면 어느정도 친구가 책이라는 매체에 가까워야 하는데...대학 친구들이건 고교 동창들이건 시루스니믜 방법이 먹힐만한 친구는 제게 없네요..ㅎㅎ

스텔라님 말마따나 사귀고 싶은 이성친구에게 이 방법은 서로 가까워 질 수 있는 좋은 수단 같습니다만..ㅎ

시루스님, 참 멋지신데요^^ 그런 의미에서 추천 쾅~

cyrus 2011-09-09 22:13   좋아요 0 | URL
저도 제 주위에 책이랑 가까이하는 친구 한 명도 없어요. 아무래도
나이가 먹고 바쁜 세상을 살다보니 책이랑 멀어지는거 같아요 ^^;;
 

 

 

 

 

 

 

 

 

  바틀비, 그는 왜 그랬던 것일까?   

미국의 소설가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은 독특한 인물이 등장하고 일반 소설과 다른 독특한 전개가 있는 흥미로운 단편소설이다.  짧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독자들뿐만 아니라 들뢰즈, 지젝 등의 철학자들까지 멜빌이 쓴 단편소설의 매력에 꽂혔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비유처럼 <필경사 바틀비>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을 연상시킨다.  <변신>의 첫 장부터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가 느닷없이 바퀴벌레로 둔갑하여 독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듯이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는 필경사라는 직업을 가진 바틀비라는 사내는 "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 라는 말만 늘어놓는다.  도대체 바틀비라는 인물에게 무슨 사연이 있는걸까?

<필경사 바틀비>는 월가의 변호사인 화자가 바틀비란 인물을 회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자신을 나이가 꽤 지긋하며 직업의 성격상 흥미롭고 다소 특이한 집단의 사람들을 제법 깊이 접한 사람이라고 소개한 화자는 바틀비에 대해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이상한 필경사’ 라고 말한다. 화자인 ‘나’ 는 부자들의 채권, 저당증서, 부동산 권리증서 등을 쌓아놓고 수지맞는 일을 하는 야심 없는 변호사인데 업무가 증가하자 바틀비란 필경사를 새로 고용한다.  

하지만 이 필경사는 평범하지가 않다. 필사에 굶주린 사람처럼 밤낮으로 필사를 하다가 사흘째 되던 날 이상한 기미를 보이기 시작한다. 필경사의 업무는 필사를 하고 그것을 원본과 대조하는 것인데 바틀비는 서류를 대조해보자는 ‘나’ 의 요청에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한다.

소설 속에서 바틀비는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원문으로는 I prefer not to). 이 말을 반복함으로써 오늘날까지도 바틀비의 기이한 행동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고 있다. 

바틀비의 존재를 죽음의 잠재성과 싱명의 잠재성을 동시에 접해 있다고 보고 있거나(조르조 아감벤) '하지 않겠다' 는 행위는 단순히 어떤 행위를 거부한다기보다는 '하지 않음' 의 가능성과 이에 대하여 선택할 수 있는 권리까지 동시에 강조하기 위한 의미로도 보고 있다. (역자, pp 101)   그 밖에도 월 스트리트가 번성함으로써 도시화가 되어가는 19세기 말 미국 사회에 팽배해온 고립과 소외, 계급투쟁, 허무주의, 기독교적 알레고리가 담긴 메시아론까지 다양한 해석이 있다.   

역자는 이 작품을 '프로테우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변신 능력이 뛰어난 신)처럼 다양한 모습을 가진 소설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만큼 읽는 독자들마다 받아들여지게 되는 소설의 주제 및 바틀비의 행위에 대한 의미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관료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본 바틀비 

가르치는 주제와 범위마다 차이가 있지만 행정학 과목 중에는 '관료제' 에 대해서도 다루게 된다.   관료제의 '관'(官, 벼슬) 자 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관료 즉 행정가가 국민에게 행하는 통치제도를 일컫는 말이다.   

관료제의 전형적인 특징으로는 관료기구 내부의 상급자와 하급자 사이에도 엄중한 신분상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래서 상사에 대한 복종의 체계로 이루어진 위계질서가 존재한다.  이와 같은 관료제의 특권적 지배로 인해 수많은 폐단이 존재하게 되는데 이런 병리적 문제를 '관료주의' 라고 부른다.   오늘날에도 관료주의는 관료제의 폐단을 가리키는 부정적인 용어로 간주되고 있다.    

<필경사 바틀비>도 관료주의적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관료주의는 정치적 직무를 담당하는 집단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무직, 노동직과 같은 경영 집단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멜빌은 도시화와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있던 19세기 말 미국인의 모습을 '평일에는 상점이나 공장, 사무실 등 외얽고 회반죽 친 벽 안에 갇혀 계산대나 작업대, 책상에 꼼짝없이 붙들려 있는 사람들' 이라고 비유하였다.   멜빌이 비유한 '사람들' 에는 <바틀비>에 등장하는 화자 그리고 화자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모습과 유사하다.  

'필경사' 의 원어는 Scrivener 이다.  1828년 판 웹스터 영어사전에서는 '계약서나 기타 문서를 작성하는 일이 직업인 사람' 으로 정의되어 있다.   말 그대로 필경사는 책상에 앉아서 문서를 작성해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관료제' 의 원어는 Bureaucracy 이다.  Bureaucracy는 '책상과 사무실' 을 뜻하는 Bureau와 '통치' 를 뜻하는 cracy가 합쳐진 단어이다.  그래서 관료주의가 '사무실에 틀어박혀 책상에만 앉아서 탁상공론에만 매달리는 관료' 의 단점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필경사 바틀비> 속에 등장하는 인물 역시 관료주의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1) 형식주의, 관료의 방해행위    

관료제는 형식적인 규칙과 절차에 집착하게 된다.  그 결과 조직 내의 목표 달성보다는 규칙을 더 중요시되는 형식주의에 빠지게 된다.   형식주의가 심화되면 '문서주의'(레드 테이프 현상)로 발전됨으로써 조직목표의 달성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화자의 사무실에 일하는 인물 중에는 '진저 너트' 라는 별명의 소년이 있다.  자신의 아들이 판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아버지로 인해서 소년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소원과는 반대로 진저 너트는 판사가 되기 위한 업무와는 다른 엉뚱한 임무만 하고 있을 뿐이다.

사무실 직원 중에서 담당하는 임무의 비중이 적지만 그의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직원들은 소년에게 '진저 너트' 라는 이름의 생강 과자를 자주 사오도록 하고 있다.   이 소년이 특이한 점은 자신이 일하는 사무실에 개인 책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만 그의 책상 서랍 안에는 온갖 종류의 견과 껍데기가 가득하게 있을 뿐이다.    

진저 너트는 정작 자신이 하고 있는 임무의 목표 및 당위성을 알지 못한 채 그저 시키는대로 과자를 사오고 사무실을 청소하는 잔심부름꾼이다.  과자를 사오고 사무실 청소만 하는 임무가 어린 진저 너트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규칙' 이다.     그런 규칙적 임무에 매달리다보니 자연스럽게 '진저 너트' 라는 별명이 생기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진저 너트는 사무실 안에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잉여 노동력일뿐이다.  감독자가 시키는 일만 기술적으로 처리하고 그 밖의 임무에는 일체 행동하지 않는다거나 또는 임무에 투여할 수 없는 비생산적인 결과를 낳게 된다.   이는 결국 조직 목표의 달성에 방해가 되는 장애를 초래한다.

  

 2) 책임 회피  

업무에 대한 규정과 절차가 정해지면 이에 따른 책임 역시 결정된다.  그러나 관료적 책임은 업무의 능률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인만큼 쉽게 책임을 회피하는 경향이 발생하게 된다.  

터키는 업무중에도 진저 너트가 사온 과자를 먹고 하다보니 업무상 실수를 자주 발생하게 되는데 그들은 이에 대해서 어떠한 책임을 지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능글스럽게 자신이 행한 실수를 무마시키려고 한다.  

그리고 사무실 업무를 총체적으로 담당하고 이끌어나가는 화자의 태도에서도 집단 내 문제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이 있다.   

 

정말 이상한 일이야.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하지만 업무가 나를 재촉했다. 나는 이 문제를 다음에 한가할 때 처리하기로 하고 일단은 잊기로 했다.  

- pp 30 -

 

화자는 바틀비의 알 수 없는 거절 행동에 이내 화가 치밀어 올라 흥분한다. 그러나 서류 대조를 안하겠다는 바틀비의 의지를 꺾지 못하는데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바틀비의 거부가 계속되면서 화자는 단순히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일종의 무력감을 느끼면서 바틀비의 행동을 개선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런 행동의 원인을 살펴보게 된다는 점이다.  한가할 때 바틀비의 문제점을 해결하겠다는 화자의 안일한 생각은 정작 해결해야할 문제점을 회피하려는 주관적 변명으로 포장되고 있다.

소설의 전개는 바틀비가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라면서 거부하는 일의 범위는 점점 넓어진다. 우체국에 들러서 우편물이 와 있는지 봐달라는 부탁도, 옆방의 직원을 불러달라는 부탁도 거부한다. 

   

  '방황하는 기계' 로 남은 사내, 바틀비

관료제는 형식적인 규칙과 절차를 중요시하고 조직 구성 운영 능력이 경직화되어 있어서 변화에 대한 저항성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제도의 변화를 유도하거나 촉진하기가 대단히 힘들다. 

바틀비의 알 수 없는 거부 행동 속에는 '현상유지적' 관료주의를 주체적으로 거부하려는 의지가 담겨져 있다.    월 스트리브의 회반죽 벽 그리고 사무실 안의 칸막이 벽으로 상징되는 폐쇄적이면서도 수동적인 관료제'국' 앞에서 홀로 외롭게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   

바틀비의 조용한 거부는 무엇보다도 ‘안정’을 가장 중시하며 월 스트리트를 움직이고 있었던 관료적 체제에 순응하고 살아왔던 화자와 그 밖의 인물들에게는 큰 혼돈과 충격일 수 밖어 없었을 것이다.  돈으로 꼬드기기도 하고, 으름장도 놓아보면서 화자는 바틀비가 자신의 자선을 거부하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온갖 궁리를 다하지만 그때마다 듣는 대답은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일 뿐이었다.  

왜 업무를 거부하는 행위를 택할 수 밖에 없었는지 바틀비의 사연을 알 수 없다.  그만큼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은 바틀비의 행위에 대해서 독자적미면서도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다만 사무실에 입사하기 전에 워싱턴의 사서 우편물을 담당하는 하급 직원으로 일하다가 갑작스럽게 해고된 적이 있는 그의 짤막한 경력을 추정하면 이미 관료제의 수동적인 폐해의 실체를 몸소 경험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지금 우리는 똑같이 숭고한 인간을 이윤을 위해 마음대로 모욕하고, 마음대로 해고하면서 기계부품처럼 취급하는 비인간적인 고용체제에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그 벽 안에 들어가기 위해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 하라고 세뇌시키는 사회적 체제 속에 살고 있다.  특히나 제도의 안정성과 수동성에 익숙해지게 되면 자연히 변화와 개선 의지가 줄어들게 된다.   관료주의로 이루어진 사회적 집단 내에서 관료주의로 인한 사회적 문제만 늘어날 뿐 체제의 문제점을 인식하면서도 정작 개선하려는 의지를 가진 관료나 행정가를 찾기란 하늘에 별 따기다.

바틀비의 1인 거부 시위(?)는 관료제라는 접착제로 만들어진 월 스트리트의 벽을 무너뜨릴 만큼 너무나 미약했다.   한 때 관료제가 만들어낸 '기계'였던 바틀비는 견고한 제도를 거부할 줄 아는 자유로운 '인간' 이 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면서 관료제도 앞에 '방황하는 기계' 로만 남고 말았다.  

 

 

* '관료제' 내용 참고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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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9-05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대단해요. 이렇게 연결시키다닛!
이 책이 카프카의 변신과 비견이 되는군요.
정말 비교해서 읽어보면 좋겠어요.^^

cyrus 2011-09-05 23:55   좋아요 0 | URL
네, 꼭 한 번 읽어보셔요. <바틀비>는 창비에서 나온 세계단편소설집 시리즈
에도 수록되어 있는데 제가 읽은 건 일러스트가 있는 문학동네판이에요.

yamoo 2011-09-05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틀비를 봐야 겠군요~ 멜빌의 <백경>토론회할 때 누군가 바틀비 얘기를 하면서 관료제 문제를 꺼낸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생각이 나네요^^

cyrus 2011-09-05 23:56   좋아요 0 | URL
정말이요? 갑자기 소름이 확 돋네요. ㅎㅎ 나의 생각이 그전에 누군가가
먼저 했다는 사실이 신기해요 ^^;;


아이리시스 2011-09-05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쨌거나,
댓글은,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cyrus 2011-09-05 23:57   좋아요 0 | URL
언젠가는 댓글로 바틀비의 대사를 넣어주면 되겠어요 ^^

비로그인 2011-09-05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올리신 글이 넘 재밌습니다. 나중에 누군가를 가르치실 일이 있다면 이렇게 섞어서 얘기해준다면 쏙쏙 머리에 들어올 것 같네요 ㅎㅎ

올리신 글이 꼭 재닜고 웃기기만 한건 아니지만, 그래도 웃음이 먼저 나는건 어쩔 수 없네요 ㅎ

cyrus 2011-09-05 23:59   좋아요 0 | URL
가끔은 행정학을 공부하면서 행정학 내용을 관점으로 문학을 접한다면
재미도 있겠고 공부하는데 더 수월하지 않을까 종종 생각했을 때가 있었어요.

<바틀비>가 내용이 독특하면서 재미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많은 생각을
제공해주는 정말로 훌륭한 소설인거 같습니다. ^^

잘잘라 2011-09-06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yrus님과 알고 지내다보면 '하늘의 별'을 딸 날이 오겠지요? 그렇지요?
제발 부탁이예요. 우리 하늘의 별이 되어주세요. cyrus님 화이팅!!!

cyrus 2011-09-06 11:25   좋아요 0 | URL
하늘의 별이 되기를 너무 과분한데요. ^^;;
그래도 포핀스님과 같은 분들을 위해서 좋은 사람이 되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

blanca 2011-09-06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에서 보니 바틀비 같은 사람은 왕따나 고문관인 것처럼 소외시켜 버리더라고요. 그만큼 체제라는 게 사람의 자율성을 침범하고 겁쟁이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아요. 현실 안에서 안주하느냐, 고독한 행동가가 되느냐, 이 두 개 사이 어느 지점에서 항상 방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책, 좋은 리뷰,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1-09-08 00:41   좋아요 0 | URL
군대에도 그런게 있죠. 제가 근무한 부대에서도 바틀비처럼
아예 명령을 거부하는 관심병사가 있었거든요.
그 병사가 그런 행동을 보인 이유가 개인적인 문제도 원인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회 집단 체제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고 봐요.
모든 사람이 다 특정 사회 집단 체체에 적응하는게 아니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