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거 총을 든 할머니
브누아 필리퐁 지음, 장소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현재 102 세의 할머니 '베르트'는 옆집 남자를 총으로 쏘아 부상을 입힌다. 이 일로 경찰서에 가게 되는데 형사와 마주 보고 앉아 그를 왜 쏘았는지를 얘기하다가 결국 자기네집 지하실에 몇 구의 시체가 있음을  자백하게 된다. 그리고 그 시체들이 왜 거기에 쌓이게 된건지에 대해서 차근차근, 자신의 어린시절부터의 인생 얘기를 시작한다.


한 여자가 인생에서 만날 수 있는 나쁜 남자의 총량은 얼마일까? 혹은 좋은 남자의 총량은 얼마일까? 과연, 있기는 있을까?


 


베르트는 젊은 시절부터 숱한 남자를 만나게 되고 여러차례 결혼하게 된다. 여러차례 결혼한다는 건 여러차례 남편과 헤어졌다는 걸 뜻하는데, 놀랍게도 아니 놀랍지 않게도 그 남편들 모두는 괴물이었고, 베르트는 괴물 앞에 참지 않았다. 그들을 그냥 다 죽여버렸다.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에 감탄해 결혼한 남자는, 결혼 후에는 그 몸매 때문에 그녀가 다른 남자들의 관심을 받는 걸레라고 욕을 하며 함부로 대한다. 춤을 잘 추어서 그녀를 매혹시켰던 다른 남편은, 자신의 작은 고추로 만족하지 않는  아내에게 화를 내며 무지막지하게 폭력을 휘두른다. 그녀를 뮤즈라며 따라다녔던 한 화가는 돈벌이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팔리지 않는)예술에 도취되어 그녀가 번 돈으로 먹고 마시며 그녀의 집에서 산다. 그런 주제에 그녀를 가르치려 들어(흥, 니가 보부아르 읽고 기고만장하구나!). 그녀의 옆집 남자는 미성년자만 골라서 성매수를 하고, 전쟁이 한창일 때 그녀의 집에 찾아온 나치는 그녀를 강간한다.



《루거 총을 든 할머니》는 '브누아 필리퐁'이 써낸 프랑스판 '82년생 김지영'이구나, 했다. 김지영이 살면서 겪었던 사소한 사건들을 그냥 읊기만 했을 뿐인데 거기에는 한심한 한국 남자들이 등장한다. 베르트 할머니 역시 그저 자신의 삶을 얘기했을 뿐인데 거기엔 지독한 괴물들이 가득했다. 김지영은 체념과 울분으로 살아가 영혼이 아픈 고백을 시작했다면, 베르트 할머니는 참지않고 그냥 다 쏴죽여버렸다. 


그녀가 직접 총으로 그 나쁜 짓을 응징한 건 비단 전남편이나 자신을 강간한 강간범에게만 향한 건 아니었다. 그녀는 흑인을 집단린치한 남자들에게도 자신의 총을 꺼내들었다. 필요한 상황에서 그녀 곁에 없었던 혹은 그녀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던 경찰이나 형사들 때문에 그녀는 혼자서 이 모든 일을 직접 처리한다. 그녀가 이렇게 다른 사람을 죽이는 연쇄살인범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녀는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돕는 마음이 가득하다. 아이와 여자들에겐 한없이 다정하며 남자들의 폭력으로부터 그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낙태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소녀들의 편이 되어준다. 역시 그녀들 곁에 의사가 있어주지 않기 때문에.




"설마 세상이 공평하다는 헛소리를 주절거릴 만큼 바보는 아니겠지?"

"네, 물론이에요. 그런 흰소리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도 법은 믿는다?"

"법을 수호하며 살아온 지 삼십 년입니다. 네, 전 법을 믿어요."

"그럼 날 지켜줘야 할 순간엔 어디 있었니?"

베르트의 두 눈에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멀리 지나가는 구조선에 필사적인 신호를 보내는 표류자의 씁쓸함이 어렸다.

"그때 전 태어나지도 않았는 걸요."

"능청 떨래? 너나 다른 경찰, 네가 죽고 못 사는 그 헌법을 지키는 모든 자들, 정작 행동해야 할 땐 눈을 씻고 봐도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어. 오래오래 천천히 죽이는 건 살인으로 치지들 않지. 아내를 때리고, 고문하고, 파괴하는 남편은 법으로 처벌받지 않아……."

"증거만 있다면, 처벌받습니다."

"넌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내보일 수 있니? 정의와 법은 정략 결혼처럼 서로 어울리는 상대가 아니야." (p.197)







그녀가 겪었던 그 괴물같은 남자들은 그녀가 유독 운이 나빴기 때문에 그녀의 인생이 끼어들었던걸까?


김지영이 겪었던 삶이 유별난 게 아니었듯, 베르트가 지내온 삶 역시 유별난 게 아니었다. 그녀는 다른 여자들이 늘 만나던 바로 그런 남자들을 만났다. 결혼 전에는 달콤하고 다정했으나 결혼 후에는 돌변하는 그런 남자들. 대화보다는 주먹을 쓰면서 여자를 쥐고 살려던 남자들. 여자의 섹스에, 가사노동에, 감정 노동에 기생하면서 여자를 소유하려던 남자들.



그 와중에 만난 잊지 못할 사랑, 인생 남자, 102세가 되어서도 눈물 흘리는 사랑. 이건 작가가 그녀의 삶이 안쓰러워 보내준건지 혹은 모든 남자가 나쁜 건 아니라는 변명을 하기 위함인건지는 모르겠다.



프랑스판 82년생 김지영 베르트 할머니의 이야기를 쓴 작가는 남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정폭력을 저지르는 남편들을 죄다 쏴죽여버린 이 이야기에 프랑스 남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궁금했다. 이 나라에서 그렇듯이 작가의 SNS 에 달려가서 득달같이 댓글을 달았을까? 모든 남자가 이런건 아닌데 남자를 나쁘게 그려놨다고, 페미 묻었다고 작가를 욕했을까? 이 책을 읽은 연예인들을 가혹하게 비난했을까? 이런 남자들이 어딨냐며 과장됐다고 야유했을까? 설사 그렇게 욕했다한들 이 남자 작가의 커리어에는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이 책은 특별할 게 없다. 82년생 김지영이 그랬듯이 이 책 역시 큰 상상력으로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다. 특별할 건 없는 내용, 귀를 기울이면 누군가로부터든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의 나열일 뿐. 

벤투라 형사가 그랬듯 베르트 할머니의 살인에도 할머니에게 감정적 동의와 공감을 할 수 있는 건, 그녀가 처벌한 남자들은 사실 누군가 대신 처벌해줬어야 할 나쁜 새끼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참지 않는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은가.

별다른 상상력 없이 그저 여자들이 하는 말들을 듣고 썼다해도 충분할 소설이라 별은 셋을 주려고 생각하다가, 그러나 베르트가 서른한살에 인생 남자를 만나서 3.5가 됐는데, 알라딘 별점에는 반개짜리가 없으므로 넷을 준다. 



어쨌든,

베르트 할머니는 참지 않긔!!


"내가 그렇게까지 역겨운데 왜 나랑 결혼한 거야?"
자신의 위선에 말문이 막힌 뤼시엥이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내가 지붕 위에 올라갔을 때 이 굴곡진 몸매에 반했잖아, 아니야? 충분히 당신 취향이었으니까 나한테 청혼까지 한 거 아냐? 그런데 왜 지금은 이걸 감추길 바라는 거야? 내가 당신을 창피하게 하는 거야, 아니면 이런 날 바라보는 당신이 창피한 거야?"
베르트는 당대를 뒤흔드는, 최소한 대화 상대를 뒤흔드는 현대적인 가치관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뤼시엥은 설득력 있는 반대 논리를 펼치는 대신, 보다 충격적인 논리를 선택했다. 즉 베르트의 따귀를 갈겼다. 부족한 지성을 크게 노출시키지 않으면서 여자를 제자리로 돌려놓는 선조들의 방식이었다. 남자들은 늘 그런 식으로 위기를 모면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왜 바꾸겠는가? - P101

"휴! 드디어 자유군!"
베르트는 다시 작업에 착수했다. 상반신이 나체인 채로 삽질에 박차를 가했다. 삽질에 따라 덜렁거리는 젖가슴 사이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음산해보일 수 있는 순간이 어떻게 이토록 도발적일 수 있는 것일까?
"자, 이제 알겠지? 아내에게 응당 자상하게 대하는 대신 구타를 일삼으면, 아내가 당신 무덤을 파면서 신바람이 난다는 걸? 이래도 자기가 얼마나 잘못된 남편인지 깨닫지 못한다면야." - P111

감정을 표현하는 남자라니. 베르트는 절대 믿지 못했으리라. 그 믿음을 위해 루이지애나에서 대서양을 건너온, 독일군의 융단폭격에서 살아남은 남자, 그것도 흑인이 필요했다. 루터는 그녀에게 인간에 대한 믿음을 다시 심어주는 중이었다. 서른한 살에, 생각지도 못한일이었다. 하지만 모든 발견은 받아들이는 것이 이롭다. 특히 그것이 폭넓고 탄탄하다면 더할 나위 없다. 루터의 품처럼 우리를 단단하게 감싸준다면, 그것은 매우 이로웠다 - P145

수프 맛이 고약했다. 베르트가 회복하려고 애쓰며 침대에 못박혀 있던 나흘 이레로 마르셀이 그녀에게 음식을 떠먹이고 있었다. 마르셀은 형편없는 요리사였으나 강력한 주먹꾼이었다. 베르트는 뤼시엥에게 당했던 폭력을 되씹으며 조용히 클클거렸다. 만만치 않은 선수. 마르셀은 상위 그룹에 속했다. 후유증을 남기는 그룹. 베르트는 질이 부어오른 것도 모자라 꽁무니뼈도 부러졌다. 의사에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마르셀은 계단 추락사고라고 둘러대며 잘도 빠져나갔다.
‘아니, 아랫도리는 브로콜리가 되고 엉덩이는 두 동강이 났는데, 계단을 헛디뎠기 때문이라니. 그런데 그 핑계가 먹혔어. 다들 한패인거지.‘
베르트는 불만이었고 속단했다. 지폐 몇 장과 칼바도스가 진단서 작성에 힘을 보탰다. - P220

"어, 그래, 우리 여자들은 말이야, 선택의 호사를 누리지 못해. 우린 무엇보다 애 낳는 기계라고. 물론 그곳도 모든 기능이 정상일 때 얘기지만! 출산과 살림, 우린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해! 하지만 난 달라, 이젠 시대가 바뀌었고 난 평등을 원해. 그러니 당신도 집세를 분담해."
"이 집은 당신 거잖아."
"상징적인 제스처를 하란 거야."
"난 도무지 당신네 여자들이 이해가 안 가. 여자들이 살기가 얼마나 편하냐고. 먹여줘, 입혀줘, 재워줘. 책임은 죄다 남편들이 지고. 거기에 발목엔 어떤 족쇄도 없는데도 오늘날 평등을 떠들어대니."
"은행에 계좌를 트고 자기 돈을 자기가 쓰려고 해도 남편의 동의가 필수적인 건 어떻게 생각해? 그게 발목의 족쇄가 아니면 뭐야? 투표권을 얻기 위해 애걸복걸해야 했던 건, 그건 자유야? 바지를 입으면 벌금을 물어야 하는 건, 그건 어떻게 설명할래? 예술가라고 해서 꼭 바보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잖아?"
"이달에 당신 주기가 언제지?" - P284

베르트가 목제 식탁에 포크를 꽂았다. 열이 올랐다.
"아, 젠장! 나한테 생리 핑계 갖다 붙이지 마. 당신만은 제발!"
"그게 당신 기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인정해."
"내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 건 당신의 너절함이야."
"천박하게 굴어서 이로울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
"여자가 권리만 주장했다 하면 그 즉시 생리대를 들고 나오니, 이거 원. 저질에, 비루하고, 생산적이지 못하기 짝이 없네."
"생산적이지 못한 건, 당신이 잘 알겠구나."
궁지에 몰렸다고 느낀 노르베르가 비겁한 무기를 선택했다.
"그 부분은 건드리지 마, 노르베르, 특히 그건 하지 마."
"난 그저 당신이 보부아르를 읽고서 들떴을지 모르겠지만, 단신은 크게 불평할 처지가 아니란 얘기를 하는 거야. 이렇게 아늑한 집도 있고, 가게도 잘 굴러가잖아. 난 이 도시 저 도시를 떠돌며 내 예술을 팔고 있어. 누가 더 불평을 해야겠어? 이건 남자, 여자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생존자와 그 밖의 사람들의 문제야." - P285

"왜, 당신이 보기에 난 생존자가 아닌 것 같아서?"
방 안의 온도가 핵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당신은 그리 고생스러워 보이지 않는데?"
"내가 어떤 길을 지나왔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해." - P285

"지금 저 협박하러 온 거예요?"
어조가 매서워졌다.
"그럴 리가,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그럼요?"
"제 좋은 평판으로 당신의 나쁜 평판을 희석해주고 싶어요."
‘남자들이란. 죄다 똑같아. 우리의 구세주들. 내가 또 황홀해해야 하는 걸까.‘
"전 당신의 좋은 평판이 필요 없어요, 밥티스트. 전 지금의 제가 부끄럽지 않거든요."- - P308

"너흰 그를 죽여서 얻은 게 하나도 없어. 그런데 난 ……난 모든 걸 잃었지."
그녀의 입에서 말들이 새나왔다. 공허하고 싸늘한, 유령의 말들이었다.
탕! -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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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엔 건강검진을 받고 왔다. 이맘때쯤 건강검진을 받으러 가면 병원에는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역시 연초에 해야해, 그래야 사람들 많지 않을 때 한가하고 여유롭게 할 수 있어, 다음엔 연초에 할거야, 다짐해 보지만, 그 다음이 되면 '음.. 몸무게를 좀 더 줄이고 해야지' 하고 자꾸 미루고 미루다가 별로 줄 생각 없는 몸무게 때문에 다시 연말이 되어버려... 늘 되풀이 되는 못낫이 회전..


사실 6월에 수술도 했겠다, 딱히 건강검진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았다. 안해도 되지 않나, 라고 이백번쯤 생각했다. 하지 말까, 하지말자, 까지도 계속 생각했는데, 딱 하나 걸리는 게 갑상선이었다. 갑상선..갑상선 때문에 해야될 것 같다... 2년전 건강검진에서 갑상선 초음파를 했을 때, 갑상선에 혹이 있다고 했던 터였다. 위험해 보이지는 않지만 6개월마다 한번씩 점검을 받으라 했었는데, 나는 그 뒤로 검사를 받지 않았고... 그렇게 2년이 되어버린 것. 이번에 하자, 이번에. 그래, 귀찮아도 검진 받는거야!


그렇게 아침 일찍 병원을 찾았다. 문진표를 작성하고 일단 닥터를 만나 이것저것 체크를 했다. 닥터는 자연스레 유료 혈액검사를 권했다. 70가지의 검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여름에 수술도 했고, 그 전과후에 이래저래 혈액검사를 차고넘치게 했으니 그건 하지 않겠다 말했다. 그래도 기본적인 혈액검사는 해야했는데, 팔뚝에 주삿바늘 들어가는 걸 보면서, 와, 2019년은 진짜 피검사의 해구나, 싶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피검사를 했는가. 수술 전에는 수술 전이라 해야했고, 수술 직후에는 직후라 해야했고, 퇴원한 뒤에도 몇차례 가서 갈 때마다 피검사를 해야했다.


주삿바늘을 꼽는 건 단지 피검사 때문은 아니었다. 연초에도 곧 쓰러질 것 같은 상태가 되어 병원에 가 수액을 맞았고, 지난 토요일에도 병원을 찾았다가 드러누워 수액을 맞아야 했어. 간호사쌤은 수액을 놓기 위해 바늘을 꽂으면서 "어머, 바늘을 꼽자마자 피부 색이 파랗게 변하네요" 했다. 아직도 수액 맞았던 자리는 누런 멍이 남았는데, 이 상태로 또 오늘 피검사를 한거다. 내 팔에 주삿바늘이 2019년에 정말 많이 들어가는구나. 이것이 바로 나이들어간다는 것인가...



가장 걱정됐던 갑상선 초음파 검사. 크기와 모양의 변화를 본다고 했는데, 하아- 크기가 좀 커졌다고 했다. 그러나 모양이 딱히 변하지는 않은 것 같다고. 그러니 6개월 뒤에 꼭 다시 재검을 하라는 거였다. 알겠다고 말하면서 물었다. 혹시 갑상선암이라면 이 초음파 검사로 알 수 있는거죠? 의심이 되면 조직검사를 하자고 할텐데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고 했다. 나는 꼼짝없이 6개월 뒤에 갑상선 검사를 다시 해봐야겠구나. 혹은 왜 거기에 있고 혹은 그리고 왜 커진 것인가... 혹아...........


모든 검사가 끝나고 병원을 나섰다.

건강검진을 해야 해서 오늘 아침을 굶은 터다. 게다가 갑상선에 있는 혹이 좀 커졌다고 해서 울적했다. 나는 병원 가까이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렀다. 텀블러는 이미 준비해왔지. 그렇게 따뜻한 베이글을 주문했다.





배가 고팠고 울적했는데 베이글은 따뜻하긴 했으나 생각처럼 맛있진 않았다. 여름에 뉴욕에서 먹었던 베이글 생각이 났다. 베이글 먹고 싶어 뉴욕 간거였는데 진짜 맛있게 먹었더랬지. 안에 크림치즈가 꾸덕꾸덕 잔뜩 쳐발라져있고 양파와 토마토와 또 뭐더라.. 아무튼 뭐가 들어가서 정말 맛있게 먹었는데, 스타벅스의 베이글은.. 그냥..... 베이글이었다. 물론 안에 치즈와 햄과 계란이 들어 있었지만... 나는 베이글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구나, 를 깨달았달까.



나는 잘 쉬지도 못하는 사람이고 잘 멍때리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 있는 시간을 잘 견뎌내지를 못하는 사람이야. 회사에 출근했다가 건강검진 받으러간거라 가방은 두고 갔는데, 그래도 나에겐 스맛폰이 있지. 이 맛없는 베이글을 먹으면서 나는 전자책을 펼쳤다. 읽다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이야기를 읽었다. 그렇게 책을 읽는데, 그렇게 책을 읽는 내가 너무 만족스러웠다. 아, 하다못해 스맛폰에도 읽을 책이 있어서 이렇게 뭔가 먹는 시간을 도와준다. 나를 가득 채워주는 느낌. 내가 나를 채워주기 위해 내가 미리 준비하는 나... 이렇게 멋진 나라니. 장난 아니야 ㅠㅠ



그러나 오늘 아침에는 사실 힘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려는데 너무 못일어나겠는 거다. 어젯밤 열두시 넘어 잤으니 너무 당연하지.

아니, 나는 일찍 자려고 아홉시부터 드러누웠단 말이야? 졸려서 누웠는데 으윽 잠이 안온다. 그래, 책 읽다 보면 잠이 오겠지 싶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책이 재미있어서 자기가 싫어지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아니 그런데 몇시나 됐지? 하고 시계를 보니 자정이 넘어버린 거다. 으이크 이런. 내일 피곤하겠군, 하고 그제서야 잠을 청했는데 흑흑 ㅠㅠ 오늘 아침에 알람 한 번 끄고 ㅠㅠ 두번째 알람에 일어났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면서 어찌나 힘들던지. 아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거 진짜 그만하고 싶다고 이천번 생각했다. 나 20년간 돈 버느라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왔어. 딱히 아침형 인간인 것도 아닌데. 그런데 몸이 아침형 인간에 맞춰져버리고 말았어. 싫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제 그만, 그만하고 싶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거 그만하고 싶어.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아.




그렇게 꾸역꾸역 회사를 나왔다가 건강검진을 받고 베이글 먹으러 간 것이다. 갔다가 책을 읽으면서, 언제나 책이 준비되어 있는 멋진 나란 녀자... 하트뿅뿅.....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




여동생과 대화중에 여동생이 그랬다. '언니는 언니가 살고 싶은대로 잘 살고 있잖아, 하고 싶다는 거 다 하면서.' 라고. 엄마가 내게 했던 말도 떠올랐다. '너는 니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잖아.' 내 주변 사람들은 내게 다들 그렇게 말했다.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잖아, 살고 싶은대로 살고 있잖아, 필요한 거 니가 다 가져가며 살잖아, 라고.


그러고보니 그랬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고 있었다. 어릴적부터 뉴욕에 가고 싶었는데 뉴욕에 벌써 세차례나 다녀왔다. 십이년전에 만나 한결같이 좋아했던 남자와 뜨거운 연애도 했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을 낼거야, 라고 오래전부터 말하고 다녔는데, 그것도 했다. 그러고보니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 가고 있었고,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십년간 꼬박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싫다, 중얼거리면서 출근하는 시간들이 필요했다. 졸려 죽겠는데, 그만두고 싶다고 칠만번쯤 부르짖으면서도 꾸역꾸역 직장에 나갔기 때문에, 나는 책을 사서 읽고, 여행을 가고, 풍요로운 연애도 했다. 내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해내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고, 많은 것들을 하지 못했겠지.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 수 있는 내가 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것들을 감당해야 하는 내가 있었다.



이젠 한강이 보이는 아파트에 살기 위해 당분간 아침형 인간의 삶을 더 감당해야지. 동남아 한 달 살기를 하기 위해 아침형 인간의 삶을 좀 더 견뎌내야지. 하나를 내어주어야 하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하기 싫지만 진리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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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10-04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기운 내요.

다락방 2019-10-04 12:13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해요!
지금은 다시 뿜뿜하고 의욕 생겼어요. 게다가 오늘은 금요일! 이 얼마나 좋습니까!!

단발머리 2019-10-04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상으로는 무척 맛있을거 같은데 생각보다 이 베이글은 별로군요. 전 스콘 베이글 둘 다 좋아하거든요.

건강검진 받으셨군요. 바쁜 아침이었겠어요. 갑상선은 잊지 말고 6개월뒤 다시 검사해보셔야겠어요.
이러는 저도 건강검진 안 한지 어언 3년째... ( “)
기운내요, 다락방님 2!!

다락방 2019-10-04 15:37   좋아요 0 | URL
전 베이글은 별로 안좋고요 스콘은 완전 사랑해요. 따뜻한 스콘에 버터 쳐발쳐발하고 딸기쨈도 쳐발쳐발한 다음에 아메리카노랑 같이 먹으면 으앗 거기가 천국입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내일 그렇게 먹어야겠다. 오늘은 베이글 먹었으니까 내일은 스콘 먹으러 가야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이제 건강검진 잘 받고 살아야겠어요. 사실 저 근 십년간 건강검진 안받고 살았거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근데 이제 나이 들고 여기저기 이상이 나타나고 그러니까 검진 잘 받자는 생각이 절로 드네요. 단발머리님도 검진 잘 받고 건강 신경쓰세요. 우리가 건강해요 오래오래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수다도 떨죠!!

다락방 2019-10-04 15: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진짜 졸라 멋진 것 같다.
베이글과 아메리카노 먹으면서 보부아르의 계약결혼 읽는 여자...

blanca 2019-10-04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 와 이것 동감, 공감 천 개 정도 누를 수 있음 좋겠어요. 6개월 혹, 이 여자도 가지고 있습니다. --;; 참고로 저는 두 개입니다. 그게 꼭 육개월마다 검진하라는 그 말, 그리고 그 거 안 지켰을 때 그 껄쩍지근함, 촘파 보고 의사가 말할 때 와, 정말 잘 살아야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야지. 하고 다짐. 그리고 또 잊어버림.

다락방님 아주 잘 살고 있어요. 난 요새 자아성찰 중이랍니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결국 돈벌이가 핵심이구나, 하고 씁쓸한 진실을 깨닫는 중이랍니다. 오늘 저는 자기 작업실을 가진 사람을 보고 왔어요. 너무 부러웠어요. 그런데 나는 작업실이 있음 뭘 작업하지?ㅋㅋㅋ 뭔가 작업을 해야 작업실의 명분이 설 텐데. 말이에요. 무엇보다 우린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한 할머니가 되기 위하여 검진도 게을리하지 말자고요.

다락방 2019-10-04 16:18   좋아요 1 | URL
아니, 블랑카님도 6개월 혹... 을 가지고 계신단 말입니까, 두 개나요? ㅠㅠ
안 지켰을 때 그 껄쩍지근함을 가지고서도 저는 2년이나 안지키고 넘어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면서 오늘 가서는 꼭 해야지, 아 두렵다.. 이러고 있었어요. 그러면 진작에 했으면 됐을 것을... 하아-

저는 매일 자아성찰 중인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돈벌이가 핵심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내가 살아갈 돈을 내가 마련하는 것, 그게 핵심이에요. 그래서 좀 더 능력있는 사람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에 대한 아쉬움도 참 커요.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더 좋은 학교를 나와 스펙을 단단히 쌓았다면, 그러면 지금보다 더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고 그러면 더 좋은 집에 진작부터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하면서요. 그러나 이런 생각은 다 부질없죠. 그저 지금 제가 가진 한도 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돈벌이는, 제가 돈을 벌 수 있는 육체를 가진한 계속해야 할 것 같고요. 결국 저를 끝까지 지켜줄 건 제가 번 제 돈인것 같아요...

작업실..을 갖는 건 저도 꿈인데요. 크- 그런 날이 올까요?
저는 작업실을 따로 갖는 것도 너무 좋을것 같고, 혹여 따로 갖지 못한다면 넓은 아파트에 살면서 한 공간을 작업실로 꾸며두어도 좋을것 같아요. 책과 노트북과 큰 책상이 있는 작업실... 크- 상상만 해도 너무 좋은데, 아아, 그러나 지금의 현실과는 너무 머네요.


블랑카님, 건강검진 게을리하지 맙시다. 건강합시다. 건강한 할머니가 됩시다. 건강한 할머니가 되어서 오래오래 여기에서 책읽고 글쓰면서 살아요, 우리!

건조기후 2019-10-04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은 더할 수 없이 멋진 여자에요! 뭘 더 바라나요? ㅎㅎㅎ

다락방 2019-10-04 17:24   좋아요 0 | URL
아이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조기후님은 정말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19-10-04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남아 한 달살기 응원합니다!

저 가끔 관공서 같은데서 한참씩 기다려야 할 때마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야하나, 그냥 폰으로 SNS나 살필까 고민해요.
책을 읽기도 하는데, 읽다가 중간에 흐름이 끊기고
다음이 궁금한 상태로 다시 몇 시간씩 일해야 하는 거 너무 싫더라구요.

다락방 2019-10-04 21:3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베이글 먹는 동안 읽었더니 얼마 못읽어서 흐름 깨졌어요. 그건 좀 안좋은 것 같아요. 이럴 때 영화를 다운 받아놓고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넷플릭스에서 지금 <툴리> 다운 받고 있답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으흐흐흐흐

동남아 한 달 살기, 너무 해보고 싶어요! 일단 한 달 살아보면서 괜찮으면 두어달쯤 연장해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제가 꿈을 이루게 되면 나중에 잠깐 놀러오세요!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syo 2019-10-0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런 생각을 가끔 해요.
한 번 사는 인생이라면 다락방처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반쯤은 진심이라구요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0-04 21:37   좋아요 0 | URL
음... 반쯤만 진심이군요.. 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은빛 2019-10-04 22:03   좋아요 1 | URL
저는 반이 아니라 온 마음 가득 다락방처럼~

다락방 2019-10-04 22:05   좋아요 0 | URL
아니, 이 분들이 근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술 2019-10-05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란 (여/남)자‘라는 유행어를 듣거나 볼 때마다
주위 사람들에게 이거 어디서 나온거냐고 묻겠다
다짐만 하다가 만날 잊어버리는 사람이 접니다.

검진받아야지 하며 만날 미루는 락방님과 비슷하군요.

혹시 어디서 나온 건지 아세요? 광고? 드라마? 영화? 책?
사람들이 많이 쓰는데 전 어디서 나온 건지 늘 궁금하더라고요.

좋은 주말 되세요.

다락방 2019-10-07 07:49   좋아요 0 | URL
음.. 글쎄요?
저도 어디선가 들어서 쓰는 거겠죠? 그런데 출처는 잘 모르겠네요? 흐음...
아마도, 딱히 그렇게까지 궁금한 건 아니라서 늘 묻기를 미루게 되는 거 아닐까요? 너무 궁금해 미치겠으면 어떻게든 네이버에라도 물었을 것 같아요. 딱히 중요한 게 아니니까 걍 미루고 마는 것 같아요 ㅎㅎ

심술 2019-10-10 13:28   좋아요 0 | URL
아, 다락방님도 모르시는구나. 더 알아보고 알게 되면 락방님께도 알려드릴게요.

다락방 2019-10-10 17:44   좋아요 0 | URL
네 ㅋㅋ

심술 2019-10-11 15:00   좋아요 0 | URL
정확한 출처는 아직 모르겠고
아마 노래 제목에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만
어쩌면 노래도 다른 데서 인용한 것일 수 있습니다.

MC몽의 ‘나란 남자‘가 있고 CN Blue도 동명이곡을 불렀네요.

전 두 노래 다 첨 들어 보고 CN Blue는 가수도 오늘 첨 알았어요.
MC몽은 그런 가수 있다는 것만 알고 뭔 노래 불렀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릅니다.

새천년 뒤 나온 음악 가운데 제가 아는 게 거의 없어서요.

제 음악취향은 아직 지난천년에 머물러요.

다락방 2019-10-11 15:02   좋아요 0 | URL
음.. 그 노래 제목도 원래 출처는 아니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저는 그 둘의 노래를 전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전혀, 전혀요.. 가수들은 알지만 노래는 전혀 모르네요. 그리고 어쩐지 그걸 유행시킬만한 힘이 그들에게 있었을지도 모르겠고요. 흐음..

저도 언젠가부터 신곡을 듣지 않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아 이제 내가 늙었구나, 해요. 심지어 요즘엔 노래를 아예 안들어요. 어릴 적엔 제가 음악을 몹시 사랑하는 줄 알았거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심술 2019-10-12 12:34   좋아요 0 | URL
제 생각에도 ‘나란 (남/여)자‘가 먼저고 두 노래가 뒤따랐다고 생각해요.
제 취향이 지난천년에 머무르지만 요새 흥행한 노래면 가수랑 노래 이름은 몰라도 들으면 ‘아 이거!‘ 하긴 하거든요. MC몽과 CN Blue 동명이곡은 금시초문이었어요.

저도 20대 초반까지 듣던 음악만 그 뒤로도 줄창 듣게 되더군요.

요즘 월드스타 된 방탄소년단도 하도 언론에서 떠들기에
궁금해서 찾아 들어봤는데 방탄에겐 미안하지만
80,90년대 언니오빠들이 더 낫다는 게 제 생각이예요.
이크, 아미가 보면 클날 소릴 제가 했군요.

보슬비 2019-10-05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을 가른 시나몬 베이글을 바삭하게 구워 크림치즈 드뿍바르고 얇게썬 사과 얹어서 쉬원한 스파클링 와인과 마시면 환상 궁합이예여~~ ㅎㅎ 확실히 체중계를 포기하는 맛이 정말 맛있는것 같아요.

동남아 한달살기를 위해 화이팅~!!!!

다락방 2019-10-07 07:52   좋아요 0 | URL
사과를 얹어먹을 생각은 한 번도 안해봤네요.
베이글은 역시 크림치즈인것 같아요. 크림치즈 진짜 넘치게 바르고 거기에 케이퍼,양파,토마토 넣으니까 너무 꿀맛이더라고요. 으윽 또 먹고 싶어요. 베이글 먹으러 뉴욕 가고 싶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남아 한달살기를 꼭 실현하고 싶어요. 그곳에서라면 뭔가 여유로운 일상이 가능할 것 같아요.

치니 2019-10-06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육개월 뒤 제가 지켜봅니다. 재검 꼭 받아야 돼요! 약속!

다락방 2019-10-07 07:56   좋아요 0 | URL
네, 재검 꼭 받을 생각입니다. 이번엔 귀차니즘으로 뒤로 미루지 말아야겠어요. 나이 드니까 챙길 게 많네요. ㅜㅜ

clavis 2019-10-09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동남아 여기로 gogo

다락방 2019-10-10 17:45   좋아요 0 | URL
클래비스님, 저 한 달 살기는 일단 치앙마이... 노려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적어도 몇 년은 지나야 가능할듯요.. 일단은 먹고 사는 게 급해서 돈 벌어야 해요 ㅜㅜ
 
돌이킬 수 있는
문목하 지음 / 아작 / 2018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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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만 해도 나는 한국소설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말도 했었는데 요즘에는 한국 소설 읽는 게 참 좋다. 애초에 나의 모국어로 쓰여진 걸 읽는 재미와 기쁨은 번역서가 결코 줄 수 없는 거니까. 게다가 한국 여자작가들의 작품은 다 저마다의 매력으로 좋은데, '문목하'는 이야기 쪽에서 매우 탁월하다고 생각했다. 와, 우리나라 여성작가들 글 잘쓰네, 라고 이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으며 감탄했다. 며칠전에 '한국문단은 죽었다'고 말하던 누군가도 떠올랐다. 어떤 책을 읽어왔기에 또 어떤 책을 읽을 생각을 하길래 한국 문단이 죽었다는 거야. 이렇게나 생생하게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구먼!!


별 다섯의 0.5 정도는 사실 응원과 기특한(?) 마음 같은 걸로 덧붙이게 된건데, 뭐 아무래도 좋다.



윤서리는 초능력을 가진 비원과 초능력을 가진 경선산성의 싸움이 못마땅하다. 분명 이 깊은 싱크홀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윤서리의 능력을 얘기하는 건 이 책의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말하지 않겠지만, 그러나 사랑이 어떤 부분에서는 해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이야기한다.


사랑은 모든 것의 답이 될 수도 없고 모든 것의 길이 될 수도 없겠지만, 아주 많은 선택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당신이 살아있기를 원하는 마음, 당신이 잘 지내기를 원하는 강렬한 마음은, 모든 선택들을 다시, 다시 뒤로 돌리게 만들기도 하니까. 내가 지금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그것을 감당할만한 타인의 안녕에 대한 바람이 대부분의 이들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이 책의 윤서리가 그랬고 정여준이 그랬고 최주상이 그랬다.



읽다보면 '애쉬톤 커쳐' 주연의 영화 『나비 효과』가 자꾸 생각나는데, 그 영화에서 주인공 애쉬톤 커쳐는 다른 이들에게 일어난 불행을 막기 위해 결국은 자신의 태어나지 않음을 선택하기로 한다. 여기까지만 하겠다.




이 책은 헐리우드에 판권이 팔렸다고 한다.


할리우드에 판권 팔린 토종 SF


기사 중간에 '사랑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가장 로맨틱한' 이야기라는 어느 독자의 평은 적확했다. 읽으면서 서너번쯤 눈물을 닦았다.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하고 또 이렇게 풀어갔을까, 하는 생각을 여러차례 했고, 그래서 와, 우리나라 여자 작가들 글 잘쓰는구나, 했다. 작가가 출판사 아작을 알게 되어 원고를 투고했다는데, 작가의 그 시도와 용기가 감사하다. 이런 글이라면 투고해야함이 마땅하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가영이 …… 윤서리를 저기 살려두려고 왜 그렇게까지 견디는 거야?"

정여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최주상을 보았다. 그리고 먼 바깥에 환영처럼 스쳐 지나가는 윤서리의 모습을 보고, 다시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겠어요?"

정여준은 미소 지었다.

최주상이 그를 완전히 처음 보는 낯선 이로 느낄 만큼 찬란한 미소였다.

"왜겠어요."
- P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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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20-11-24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덧글이 하나도 없다니 ㅠㅠ 저도 중반에 흐느끼면서 읽음 ㅠㅠ 너무 재미있었네요. 글 참 잘쓰고 소재도 이렇게 잘 풀어나가다니.. 아 이 여운!

다락방 2020-11-25 07:57   좋아요 0 | URL
여운 장난 아니죠? 위의 인용문처럼 ˝왜겠어요?˝ 너무나 압권인 것....
저 이 작가의 다른 책(해마.. 뭐였는데 ㅋㅋ)도 사뒀는데 아직 안읽었어요. 그 책도 어렵지만 좋다고 하더라고요!
 

오늘은 퇴근 후에 약속이 있고 가방이 무거워지는 게 싫어 잃던 책을 두고 나왔다. 그래, 스맛폰에 다운 받아둔 영화를 보면서 출근하자, 라고 어젯밤에 생각했는데, 막상 오늘 아침이 되니 그러고 싶질 않은거다. 출퇴근 시간에 책 읽는 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인데, 퇴근 시간에야 지하철 안에 사람도 많고 앉지 못할 때도 있어 스맛폰을 들여다보기도 한다지만, 출근 시간은 너무 집중이 잘된다. 이렇게 집중이 잘 될 때 영화를 보는 것은 아아 어쩐지 시간이 아까워. 책을 보자. 나는 집을 나서기 전 부랴부랴 크레마를 챙겨 가방에 넣었다. 크레마 안에도 책이 많다. 뭐가 됐든 읽을 것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출근길 지하철 안에 자리잡고 앉아 크레마를 딱 열었는데, 아니 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언제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셋트를 사둔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거 읽으면 좋겠구먼, 재밌겠어, 하다가 아아, 나는 보았네,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계약결혼에 관한 책을. 어? 맞다! 나 이것도 사뒀었지!!


















마침 10월, 11월에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가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 아니던가. 좋다, 이걸 읽자. 제2의 성을 읽기 전에 준비과정이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오 재미있다. 이십대 초반에 그들이 도서관에서 처음 만나는데, 사르트르는 항상 같이 다니는 친구 두 명이 있었다. '니장'과 '마외'가 그들인데 이 셋은 몰려다니면서 다른 학생들을 무시하기 일쑤였단다. 또한 보부아르의 소문을 듣고 친해지고 싶었지만 자기들처럼 잘난이들이 보부아르에게 먼저 다가서면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다고. 이야.. 진짜 공부잘하는 남자들이라는 거 하등 쓸모없구나. 너무 찌질 오브 찌질이야.. 하아- 다들 철학교수시험을 준비중인 사람들이었는데 쩝...


자, 이걸 보자.





아주 지랄들을 한다. 지들끼리 있으면서 자기들은 가장 높은 신분 다른 애들은 낮은 신분 눈누난나~ 이러고들 있어. 하아- 철학한다는 사람들이 이러고들 다니고 있다... 철학은 다 무슨 쓸모, 배움은 다 무슨 쓸모인가...


그뿐인가.

이들중 마외가 보부아르와 가장 먼저 친해졌다. 마외는 이미 아내가 있어 보부아르가 좋아도 뭘 어떻게 할 순 없고, 그런데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만나는 순간이 다가오자, 자기 없을 때 만나지 말라며 그 만남을 뒤로 미루라고 한다. 욕심은 똥구멍에 차가지고...

지는 결혼해서 아내도 있으면서 자기 없는 동안에 자기 친구가 보부아르 독차지할까봐 전전긍긍.. 야, 사람이 한 번에 두 가지를 다 가질 수가 없어. 뭔가 하나를 놓아야 한다.. 철학하면서 그것도 모르냐.



아무튼 이 몰려다니는 세 명의 철학하는 남자들 너무 싫고... 하아- 철학하는 남자만 싫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는 둘다 철학 교수 시험에 합격하면서 급속도로 친해지게 된다.




자, 여기서 우리는 며칠전에 읽었던 《미친 사랑의 서》보부아르 편을 떠올릴 수 있겠다. 거기서도 철학교수 자격시험에 대한 언급이 있던 터다. 내가 친히 가져와보도록 하겠다.






스물한 살 때 보부아르는 역대 최연소로 철학과 교수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후보에 올랐는데, 프랑스의 대학 체제에서 교수 자리를 따내려면 반드시 그 시험에 응시해야 했다. 판정단은 보부아르가 철학과 최고의 학생이라는 점에 만장일치로 동의했지만(해당 학위를 받은 여학생으로서는 아홉번째였다), 그녀는 2등으로 만족해야 했다. 최고의 영예는, 아마도 남자라는 이유로, 사르트르에게 돌아갔다. (보부아르)- P155









《미친 사랑의 서》에서는 판정단 모두가 만장일치로 보부아르가 최고의 학생이라고 생각했다는데,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에서는 한두명이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판정단이 몇 명이나 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보부아르가 사르트르보다 뛰어난 학생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에서는 작가가 사르트르 쪽으로 좀 기울어져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철학사 학위를 받은 뒤 교직을 얻기 위해 철학교수자격시험을 준비하던 중이던 1929년 6월, 3살 연상인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 1905~80)를 만났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그해 교수자격시험에 1,2등으로 나란히 합격했으며, 당대의 스캔들이었던 2년간의 계약결혼에 들어갔다. 영혼의 정절과 관계의 투명성을 지키며 서로에게 완벽한 자유를 허용한다는 것이 계약의 내용이었다. 다른 사람과의 사랑이나 일, 앞으로의 계획, 지난 경험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고 전적으로 상대방과 공유한다는 것을 조건으로 한 이들의 관계는 처음에는 2년 기간을 약정한 계약결혼이었지만 2년 뒤에 30세까지로 연장하고, 이후로는 종신계약이나 마찬가지가 되었다. 이후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는 법적인 결혼을 하지 않은 채로 각자 애인을 사귀면서 죽을 때까지 계약결혼을 유지하였고, 지적 동반자로서 서로를 인정하였다. 보부아르는 마르세유, 루앙, 파리의 고등학교에서 12년간 철학 강의를 하였으며,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같은 해 사르트르와 함께 『현대』(Les temps modernes)지를 창간했다. (p.278)





《여성주의 고전을 읽는다》에서 보부아르 부분을 읽다가 저 계약결혼은 그들의 뜻대로 진행되었을까, 를 의문을 가졌었다. 그래서 지금 읽는 계약결혼책을 구입하게 된거고. 그들이 서로에게 좋은 지적 동반자가 되어준다한들, 그리고 상대의 연애의 자유를 인정한다 한들, 그것이 그들을 괴롭히지 않았을까, 내가 생각하기엔 많이 괴로웠을 것 같은데, 했던 것. 그들이 '계약'을 했고 당시로서는 그것이 파격적인 함께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고, 그리고 그들은 서로가 가장 좋은 지적 상대 임을 인정한만큼 헤어지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에게 자유 연애를 허락한다? 사람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자유 연애를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네 사랑을 응원해' 가 과연 될까? 심지어 그들이 '계약'일지언정 '결혼'이란 관계로 맺어진 사이인데?

그건 그들이 아무리 지적인 사람이라 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건 되는 게 아니야.


사람은, 하다못해, 생명이 없고 감정이 없는 사물에 조차도 함께 하다보면 정이 가게 마련이고 내 것이라는 애착이 생기기 마련이다. 아끼는 물건을 누가 달라고 하면 차라리 새 걸 사줄지언정 내가 쓰던 걸 못주겠는 그런 마음 것들이 우리에겐 있으니까. 그런데 심지어 사람이다. 그것도 내가 욕심 냈던 사람. 애초에 욕심내서 가까워지고 싶었던 사람, 나랑 세상에서 대화가 자장 잘 되는 사람. 그런 사람의 자유와 연애를, 자유 연애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지 않을 수 있다고?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을 읽다보니 이 둘은 서로의 자유연애를 인정하는 바람에 여러차례 위기를 겪었다는 걸 알게 됐다. 이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들이 '우리는 서로 함께하지만 서로의 자유연애를 인정해'라고 하면서 가슴 아프지 않으려면, 그러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상대를 사랑하지 않는 것. 상대에 대한 사랑 혹은 애착이 없다면, 그러면 가능해진다. 나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내가 관심없는 다른 사람들이 연애를 하든 쓰리썸을 하든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든지 말든지, 니 마음대로 해라, 하게 되어버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많은 것들이 치고 들어와. 왜 당신과 나 사이에 다른 사람이 이렇게나 자꾸 쑥쑥 들어와야 해? 하는 기분이 되어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뭐 철학으로나 결혼으로나 연애로나 뭐로든, 나는 보부아르처럼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 물론 저서를 쓰는 것에 있어서도.




이 관계는 당사자인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에게만 위기를 가져다준 것도 아니고, 당사자들에게만 고통과 괴로움을 가져다준 것도 아니다. 이들은 계약결혼의 당사자임과 동시에, 그들이 하는 연애상대의 파트너였다. 그들의 연애상대는,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은 다른 사람과 계약결혼 상태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지만 사랑하므로 행복하였네라~'할 수 있을까? 아니. 그들 역시 자신의 사랑이 커지면서 동시에 '이 사람이 그 관계로부터 나와서 내 옆에 있었으면'하는 바람을 너무나 당연히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자신들의 계약결혼 관계를 죽는 순간까지 지켜온 만큼, 몇몇 사람들은 그 관계 때문에 가슴 찢기는 고통을 겪었어야 해. 하아, 계약결혼과 자유연애란 무엇인가.





올그런은 보부아르와 진심으로 결혼하고 싶어했지만, 돌로레스와 마찬가지로 감정적인 삼각관계에 발을 들일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더군다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관계에 굴러들어온 돌 취급당하는 것에 강한 반감을 가졌다. 올그런을 향한 절절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보부아르는 결혼에 반대하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고, 사트르트와 자신의 자유 둘 다 포기하기를 거부했다. 끝내주는 잠자리도 아주 오래전 맺은 계약을 깨뜨리게 만들지는 못했고, 그래서 때를 잘못 만난 두 연인은 결국 이별의 수순을 밟았다. 올그런은 이후 두 번이나 결혼과 이혼을 했지만 끝까지 보부아르를 용서하지 않았고, 죽기 직전에 어느 기자에게 그녀를 심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섀넌 매키넌 슈미트& 조니 렌던,《미친 사랑의 서》보부아르 편, p.163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서로를 괴롭히자고 계약결혼을 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고, 다른 사람을 괴롭히자고 자유연애를 한 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었다.







보부아르는 계약결혼 전에 사르트르와 성관계를 가졌었고, 그 뒤에도 여러차례 다른 연인들과 자유 연애를 했다. 그러나 '앨그렌'을 만나면서 '육체의 쾌락에 눈뜨게' 됐다고 한다. 그를 위해서라면 사는 곳도 옮기고 자신의 커리어도 포기할 생각까지 했을만큼 그를 사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결혼하는 대신 이별을 하고 사르트르의 곁에 머물렀다. 괴로움은 이제 앨그렌의 몫...



그렇다면 보부아르와 사르트르가 그렇게나 오래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지적인 동반자, 그것이 그토록이나 강한 것인가. 육체의 쾌락을 뒤로 넘길 수 있을만큼. 보부아르는 그렇다고 말한다. 나 역시 보부아르에 동의한다.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선택한 사람이 나에게 지적인 동반자이며 동시에 쾌락의 동반자이기도 하다면 너무나 좋겠지만, 그 둘을 모두 가지기는 사실 좀 힘이 들테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적인 것도 쾌락으로도 크게 만족을 주지 못하는채로 그냥 그냥 살고 있지 않나.. 아무튼,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몹시 좋아한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이 자신의 삶에서의 '성공'이라고까지 말을 한다.




쓰여지는 모든 글들이라고 해서 다 좋은 글도 아니고 뱉어놓은 말들 역시 대부분은 무용하기도 할터이다. 그러나 대화와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같다는 것, 결국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무시하지 못할만큼 아주 달콤하고 강력한 매력이다. 사르트르는 앨그런 같은 쾌락을 주지 못한 사람이지만, 그러나 보부아르는 사르트르를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결국은, 모든 사람들이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대화의 상대'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걸 일찍 깨달아 스무살부터 그런 상대를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떤 이들은 칠순에야 비로소 대화 상대를 찾고 만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 정말 중요한 것은 대화였구나, 하면서.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도 결국은 대화를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에, 궁극적 대화상대를 이미 찾았기 때문에 위기의 계약결혼과 가슴 아픈 자유연애들을 끌어안으면서도 서로를 놓지 못했으니까.




나는 항상 '자신'에게 관심이 많다. 그건 '내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당신 자신'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끊임없이 상대에게 묻고 싶다.


너는 좋아?

당신은 괜찮은가?



일전에 MBTI 검사를 해준 친구가 내게 그랬다. 모임에 나갔을 때 자신의 성향은 '이 사람들이 나로 인해 즐거워졌으면 좋겠다'는 거지만, 다락방의 성향은 '이 사람들이 각자 여기서 즐거움을 찾아야할텐데' 라고.


나는 정말 그렇다.


그러니까 만약 보부아르랑 사르트르를 만났다면, 보부아르가 내 친구라면, 나는 보부아르가 계약결혼과 자유연애를 한다고 했을 때 보부아르에게 물었을 것이다.


"그거 너 괜찮아?"


만약 보부아르가 앨그런을 떠나보낸다고 했을 때도 역시 물었을 것이다.


"그게 너한테 좋은거야?"


나는 물론 그런 친구의 결정 자체를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그렇게 물었다고 해서 친구가 갑자기 결정을 번복하지는 않았을테지만, 그러나 그 질문을 받고 친구가 잠깐동안이나마 다시 생각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잠깐동안 자기 자신에게 묻기를 바랐을 것이다.


나는 괜찮은가? 나는 이거 좋은가?



나는 이 물음을 언제나 당신에게 하고 싶다.


당신 괜찮은거야? 다 좋아? 좋아? 오케이? 당신 지금 그렇게 하는 거, 지금 당신의 선택 그거, 좋아? 괜찮아?



당신은 정말 괜찮은건지. 당신은 괜찮은가.

나는 당신의 선택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당신으로 하여금 모든 선택이나 결정에 앞서 한 번 더 생각하게 하고 싶다.

아프지 않을 수 있도록, 가급적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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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10-02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나는 쟤네가 지적 동반자 연애질하는 거 디립다 까놨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쩐지 부끄러워졌다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0-02 14:11   좋아요 0 | URL
가서 페이퍼 봤어요. 깔만합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원래 댓글 수정해버림)

syo 2019-10-02 14:11   좋아요 0 | URL
그치만 쟤네는 후설 이야기해요. 다락방님 초원에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는데 문득 후설의 어디가 끌렸는지 물어오는 사람 좋아요? ㅋㅋㅋㅋ

다락방 2019-10-02 14:12   좋아요 0 | URL
미안해요. 쇼님 댓글 다는 동안에 내가 댓글을 고쳐버렸다.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syo 2019-10-02 14:13   좋아요 0 | URL
이겼다!! 이 영광을 후설에게 돌립니다....

다락방 2019-10-02 14:14   좋아요 0 | URL
나는 심지어 후설이 뭔지 몰라서 검색했어요. 하아-
나는 지적이지 않아....나는 지적인 동반자고 뭐고 다 필요없다. 그냥 혼자 책 읽으면서 살래............

syo 2019-10-02 14:16   좋아요 0 | URL
후후후후후후설과 헤헤헤헤헤겔이 실존주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고 합니다....

다락방 2019-10-02 14:17   좋아요 0 | URL
저는 일단 제가 오늘 점심에 왜 과식을 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먼저 필요합니다.

syo 2019-10-02 14:24   좋아요 0 | URL
그건 이해가 필요없는 부분입니다. 최초의 의식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려는 의지 같은 거 아닌가요??

다락방 2019-10-02 14:26   좋아요 0 | URL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생각에 그게 바로 제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최초의 의식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려는 의지 같은 게 없는가 봐요. 씁쓸합니다.

syo 2019-10-02 14:30   좋아요 0 | URL
아니요, 저는 정반대로 생각합니다.
맛있는 걸 많이 먹는 것이 우리가 가진 최초의 의식입니다.
다락방님의 오늘 점심 과식이 바로 그 최초의 의식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려는 의지의 발현이었던 거죠.

참 흥미롭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0-02 14:35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의식이...욕망하는....모든 대상은.....

밥인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10-02 14:40   좋아요 0 | URL
하하하! 또 말하고 싶었던 건 다락방님이 베트남에 가면 당신은 순대국밥을 몹시 그리워할 거라는 거예요.

다락방 2019-10-02 14:42   좋아요 0 | URL
아냐, 쇼님. 나는 의식이란… 환경에 의해 정의된다고 생각해요. 베트남에 갔다면 쌀국수로 충분할거에요.

syo 2019-10-02 14:46   좋아요 0 | URL
그렇다 해도 ‘삼겹살‘은 육즙, 그 겹겹의 깊은맛의 생산자예요. ‘김치‘가 있어야만 자의식의 문제를 풀 수 있을 거예요.

다락방 2019-10-02 14:47   좋아요 0 | URL
최초의 의식을 향해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가 어디라도, 저는 삼겹살과 김치를 만난다는 거에요?

syo 2019-10-02 14:52   좋아요 0 | URL
아니요. 삼겹살과 구운 김치는 베트남에 갔다고 해서 잊어버리고 살기에는 넘나 맛있는 녀석들이 아니냐는 거죠.....^ㅠ^

다락방 2019-10-02 15:03   좋아요 0 | URL
삼겹살.... 너무 먹고싶네요..................

감은빛 2019-10-04 20:40   좋아요 0 | URL
저도 삼겹살과 김치가 먹고 싶어졌어요!
음, 누굴 불러낼 수 있으려나.
안되면 혼자 가서 먹어야겠군요.

다락방 2019-10-04 21:38   좋아요 0 | URL
삼겹살 혼자 먹는 곳은 좀처럼 없지 않나요? ㅠㅠ 저도 가능하다면 혼자라도 가서 삼겹살 먹고 싶어요. 그렇지만 혼자 고깃집 들어가는 건 어쩐지 잘 안되더라고요. 음.. 가서 2인분 시키면 눈치없이 먹을 수 있으려나요? ㅠㅠ

아무쪼록 제 몫까지 맛있게 드시길 바랍니다. 흑 ㅜㅜ

감은빛 2019-10-04 21:59   좋아요 0 | URL
다행히 담배 피우러 올라간 옥상에서 만난 선배님께 삼겹살 먹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본인은 이미 저녁을 드셨지만 제게 사주겠다고 어서 가자 하셔서, 지금 열심히 삼겹살에 김치를 먹고 있어요.

다락방님과 쇼님 덕분에 맛있게 먹고 있어요
 















드라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장점은 아주 많다. 강간 피해자가 수사 과정에서 얼마나 압박을 받는지도 잘 보여주고 있고, 남자 형사들이 크게 생각하지 않는 강간이란 범죄가 얼마나 심각하게 피해자를 건드릴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여자 형사들의 입을 빌어 얘기해준다. 1화부터 8화까지 가면, 허위진술로 경찰로부터 고발까지 당했던 강간 피해자 마리가 나중에는 시를 상대로 소송을 한다. 허위진술한 사람이라고 알려져 마리는 직장도 잃고 친구도 잃고 3년이라는 시간도 잃었으니까. 그 때 마리가 찾아가는 변호사는 마리에게 그런 말을 한다. 절도의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그 피해 사실을 거짓이라 의심하지 않는데, 성범죄에 대해서만은 피해자를 의심한다고.

수사 과정 자체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이 드라마가 보여준다. 아마 실제로도 그러했겠지만, 여자형사들이 강간 피해자를 대하는 태도는 남자형사들의 그것과 달랐다. 이해받고자 하는 피해자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얘기하려고 할 때, 여자형사 '듀발'은 '네 행동을 나에게 변명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처음부터 마리가 만났던 게 듀발이었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졌을까. 마리의 삶 자체부터 그 후의 범죄들까지, 정말 많은 게 달라졌을텐데.



마리는 강간 피해자이지만 허위진술을 한 나쁜여자가 되어 결국 직장도, 친구도 다 잃는다. 직장을 잃기 전 창고에 배정받아 남자와 둘이 일하게 되었을 때, 남자는 그녀의 앞에 마치 성범죄를 저지르려는 것처럼 선다. 마리는 이에 두렵다. 아무도 없고 이 어두운 공간에 우리 둘만 있는데, 자기보다 큰 남자가 자기 앞을 가로막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니까.

나는 그녀가 이 자리에서 또 강간을 당할까봐 두려웠다. 게다가 그녀가 만약 여기서 강간을 당한다해도 그것이 신고로 이어지지 않을 것 같아 더 두려웠다. 그녀가 강간에 대해 허위진술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남자는 '어차피 내가 강간해도 그녀의 말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테니까'라고 생각할테니까. 그것은 또다시 강간으로 이어질테니까.


그래 어디가서 얘기해봐 니 얘길 누가 들어주기나 하겠어?


만약 마리가 경찰에 가서 신고한다면, 그 때는 형사들이 '이번에는 진짜로구나' 하며 들어줄까? 아마 마리 역시도 '어차피 내 말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거야' 라는 생각과 '형사들이 주는 그 압박감을 견디기 싫다'는 생각으로 신고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강간 피해자를 허위진술자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마리는 이중 삼중의 위험에 노출되는 거다.

그녀를 '거짓말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려서, 그녀가 당한 강간 피해를 '의심해서' 그녀는 아주 많은 것을 잃었는데, 거기에 '또다시 강간을 당할 위험'까지 더해져야 한다.




이런 모든 것들을 잘 보여준 드라마라 충분히 의미있지만, 이 드라마가 아주 좋았던 점을 또 꼽자면, 두 여자형사의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잘 보여진다는 거다. 강간범에게 분노하고, 자신들이 처음 맡았던 강간 피해 수사에 대해 잊지 않고 있으며, 어떻게든 이것을 잡아야 한다고 아주 열심히,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모두 끌어모아 일하는 거다. 무엇보다 자신의 일을 오래 해왔던 사람과 또 오래 하고자 하는 여자 두 명이 정말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진짜 큰 장점이다. 으레 사람들이 '누군가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고들 하는데, 정말 그렇다니까? 드라마 속에서 이 베테랑 여자형사들이 사건을 해결해나가느라 열심인 모습은 얼마나 좋은지.

열심히 일하는 여자들의 모습을 보여준 것도 이 드라마가 가진 진짜 큰 장점이다. 너무 좋았다, 너무. 너무 좋았어.




'듀발' 형사가 레스토랑에서 혼자 밥을 먹는 장면이 있었다. 저 쪽 테이블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그녀를 자꾸만 쳐다본다. 듀발형사도 그의 시선을 느낀다. 잠시후 레스토랑에 다른 여자들이 들어오는데, 그녀들이 포장한 걸 챙겨서 나갈 때까지 그 남자는 그녀들을 끈적하게 보다가, 그녀들이 사라지고 나자 다시 듀발을 그런 시선으로 본다. 듀발은 일어나서 계산을 하려면서 상의를 걷는다. 거기에는 보란듯이 경찰 뱃지와 총이 있다. 남자는 그걸 보고 흠씬 놀라 얼른 시선을 거둔다. 듀발 형사는 계산을 하고 나가면서 한동안 가만히, 그의 뒤에 서 있고, 그는 그녀가 뒤에 서 있음을 느낀다. 그 때의 그는 긴장과 두려움 속에 놓였을 것이고, 듀발 형사는 그것을 의도했다. 그렇게 서있다가, 그녀는 문을 열고 나간다.


나는 이 장면도 몹시, 몹시 좋았다.




드라마의 마지막은 마리가 듀발 형사에게 전화하면서 끝난다. 세상은 자신에게 절망만 안겨줘서 이 세상을 끝내고 싶었지만,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나를 위해 열심히 수사해줬다는 것 때문에 다시 살아갈 수 있다고, 고맙다고. 나는 이 장면도 몹시 좋았다. 실제로 전화를 했는지까지는 모르겠지만,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 그러니까 열심히 일한 형사들이 자신의 일에 그때쯤 한 번 미소지을 수 있게 되는 장면. 크- 너무 좋지 않은가.



어차피 결말을 알고 있는 내용이고 또 드라마를 보기도 했으니 책은 굳이 안읽어도 될테지만, 나는 마리의 그 이후가 알고 싶어 반드시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이 책 리뷰를 읽었는데, 지금 마리는 가정을 이루고 잘 살고 있다고 했던 거다. 그걸 내가 꼭 확인하고 싶다. 그 트라우마들을 극복하고 지금은 괜찮은건지, 지금의 그녀의 삶을 내가 좀 알고 싶은 거다. 물론 그 사건은 그녀에게 큰 일이었고, 그로 인해 죽고싶은 마음까지 들었으며, 또 그것은 아마 오래 잊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삶에 있어서 희망을 놓지 않고 그녀를 신뢰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또 가끔은 절망을 물리치면서 살아가는 걸 보고싶은 거다. 그녀가 그렇다는 걸 내가 알고 싶다. 그래서 책을 읽고 싶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를 끝까지 보느라고 어제 낮에는 책을 읽을 수 없어 저녁에 펼쳐들었다. 펼쳐들자마자 졸린 게 함정... 그렇지만 어쨌든 두 시간쯤 읽었는데 너무 졸린 거다. 출근길에 열심히 읽고 퇴근길에도 읽으면 끝마칠 수 있겠다, 싶을 정도를 남겨두고 불을 끄고 잠을 자려는데, 막상 누웠더니 잠이 안와 한 시간을 뒤척였다. 제기랄..

나는 다시 불을 켜고 일어나 책을 좀 더 읽었다. 그래, 이렇게된 거, 다 읽고 자자!!

그렇지만 또 책을 읽으니 졸려.. 뭐지. 왜지. 왜이러는거지. 왜때문이죠..

그래서 다시 잠을 청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 안에서 책의 남은 부분을 마저 다 읽었다. 다 읽은 것이었다. 만세!!




여성학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갈까 수차례 망설였는데, 회사와 병행할 자신이 없었다. 체력적으로도 안될것 같지만, 시간도 부족할 것 같고. 무엇보다 등록금...........을 생각하면 역시 고개를 젓게 되는 것이었다. 으으.. 그걸 어떻게 내나, 내가...

대학원에 다니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한학기 등록금이 1천만원에 육박했다. 물론 어느걸 공부하느냐에 따라 등록금이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몇백..을 한다는건데,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못한다.

안된다.

한 학기에 어떻게 몇백씩을..

나는 안되는 것입니다.


그런 차에 이렇게 여러사람들과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를 하는 게 너무 도움이 된다. 벽돌같은 두꺼운 책이라도 어쨌든 읽자고 내가 말을 꺼낸 터니 뒤로 물러설 수도, 미룰 수도 없는 거다. 무엇보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므로,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두꺼운 책들도 읽어내는데, 그것들을 읽어내는 것은 당연히 도움이 되는 거다. 물론 그 모든 내용들이 머리에 쏙쏙 박히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읽는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었다. 새롭게 알게되는 것도 있고 읽으면서 또 깊게 생각해보는 부분들도 있다. 게다가 흘려버린 내용일지라도, 다음에 다른 책을 읽을 때, '어, 이건 어디에서도 나온 것 같은데' 하면서 연결지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읽고 있는 지금은 아주 많이 도움이 된다.



한번씩,

만약 누군가가 등록금을 대준다고 하면, 그러면 직장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다닐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곤 하는데,

그래도 직장을 놓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내 돈을 버는 일이 매우 중요하므로.

아마 이 직장을 관둬도 다른 돈벌이를 반드시 구했을 것이다.

그러면 역시 학업과 일을 병행하느라 힘들것이고...

대학원은 포기해야 해..

노노해,

노노.

노노..


일전에도 언급했지만, 나는 너무 멀리온 것 같다. 과거의 나로부터 너무 멀리.

그렇지만 이런 책들을 읽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보면 결국은 여기에 닿을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결국은 여기에 닿을 수밖에 없어, 알면알수록 와야할 곳이 여기가 되어버려.

그런 것이다.



점심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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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oo 2019-09-30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제가 본 드라마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어졌습니다.

다락방 2019-10-01 08:12   좋아요 0 | URL
저도 정말 좋았습니다. 다른 사람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에요. 정신없이 8화까지 봤네요. 매 화마다 울컥이는 장면들이 있고 또 좋은 장면들이 가득했던 것 같아요. 저도 아주 잘 봤습니다.

단발머리 2019-09-30 1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듀발 형사 레스토랑씬 다락방님 설명만 읽어도 넘 통쾌하네요. 그런 시선을 받았을 때의 여자들의 심경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모르죠. 그런 시선을 받지 못한, 그런 시선의 두려움 없이 살아왔던 남자들은 몰라요. 모르는데 너무 당당히 말하죠. 그런게 어디 있냐고.
<저는 남자고, 페미니스트입니다>가 생각나네요.


대한민국에 여성혐오가 어디 있냐며, 이제는 남자가 더 살기 힘든 시대라 주장하는 남자들이 많다. 그런 분들 다 같이 모여 러시아 한번 가보시면 좋겠다. 늦은 밤 길거리를 누비다 생명의 위협을 느껴보도록. 현지인 친구에게 인종차별 때문에 밖에 나가기가 무섭다는 하소연을 했다가 ‘요즘 세상에 인종차별이 어디 있냐’는 핀잔을 들어보도록. 모든 백인이 그런 건 아니니 일반화하지 말라고, 자신을 욕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면, 그럼, 아니 그래야만 당신도 여성들의 공포와 분노에 공감할 수 있을까? (80쪽)


완독의 영광을 그대에게! 한다면 한다!의 다락방님! 엄지척!!!

다락방 2019-10-01 08:16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이 드라마는 시간되신다면 꼭 보시길 추천드릴게요. 매화가 다 충실하게 너무 좋아요. 인상깊은 장면들이 수시로 나오고요.
8화에서 강간범이 잡히거든요. 잡혀서 아직 재판을 받기 전 유치장에 갇혀있는데요, 경찰들이 와서 옷을 다 벗으라고 말해요. 강간범은 속옷을 남기고 벗지만, 경찰은 남김없이 다 벗으라고 하죠. 강간범은 경찰 앞에서 나체가 됩니다. 그리고 경찰은 그의 털들을 몇 가닥씩 부위별로 뽑아야 한다고 말해요. 머리카락을 뽑고 팔의 털을 뽑고, 그리고 그의 음모 털을 뽑아요. 이런 장면들이 보여집니다. 이것도 너무 좋잖아요. 뭐랄까. 피해자들의 강간당하는 나체가 전시되는 게 아니라, 가해자가 수감되기 전에 나체가 되는 거에요. 저는 그 털을 뽑는 장면에서도 마음이 불편했거든요. 아, 너무 인권 보장안되는 거 아닌가, 하고요. 저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되게 복잡했어요.


우앗. 완독하게 되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이 책은 그간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들 중에서 가장 어렵고 힘겹게 읽은 것 같아요. 어쩌면.. 이제 제2의 성이 그걸 넘어설지도 모르지만...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감사합니다!

에곤 실례 2019-09-30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에 다니면서 대학원에 진학 할수있는 방법을 강구해 보세요. 여성학을 전공하시고 가능한한 여자 대학에서 하세요.
자칫 남자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했다간 공부보다 지도교수 갑질에 진절머리를 내는 일이 발생할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강연을 할 원고를 쓰고 강연을 연습하시고 세바시 이런데에 프로필과 데모영상을 보내보세요.
왜냐하면 그동안 지켜 본 바로 님은 목소리도 좋고 좋은 원고를 쓸수있는 재능도 있으세요.
게다가 여자들을 위해서 대중을 이끌어 나갈 기세가 충만 합니다.
강연을 잘하고 차츰 유명세를 타게되면 강연료만으로 돈을 벌수도 있어서 직장을 그만 두고 프리렌스로 활동하며
대학원 공부도 할수 있을수 있어요. 게다가 체력도 좋고 하지만,
이런 생활을 하시려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책을 열심히 보는것 보다 운전을 직접하시는게 좋을것 같아요.
하하하, 내가 너무 진지하게 말했나요? 여성계의 강력한 미래인재를 놓치는것 같아서 대안을 제시해 봤습니다.

다락방 2019-10-01 08:20   좋아요 0 | URL
제가 생각한 대학원도 여성대학의 여성학 과목이었어요. 이걸 가지고 계속 망설이고 있네요. 시도할까 하다가 가로막는 게 숱하게 생각나는데, 그래서 저는 저에게 아마도 절실하지 않은가보다, 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실, 하하하하,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거든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뭐 이건 쓸데없는 정보지만. 하하하하하하하하하. 근데 공부하기 너무 싫어했던 사람이라 그래서 대학원에 대해서 가지 않아야 할 이유만 숱하게 늘어놓게 되는 것 같아요. 으앗 공부하기 싫다, 이러면서요. 하하하핫.

그렇지만 에곤 실례 님의 말씀은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해서 조언해주시고 또 좋은 말씀 너무 많이해주시고 ㅠㅠ 저를 너무 좋게 봐주셔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웁니다 제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감사해요. 좋은 말씀 잊지 않고 새겨두면서 혹여라도 우울해지면 생각해야겠어요.


운전도.. 제가 이십년전에 1종 보통운전면허 스틱으로 따둔 사람이라..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진지하게 생각해보도록 할게요. 후훗. 감사합니다!

마태우스 2019-09-30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학 공부를 여전히 열심히 하고 계시네요! 멋지십니다. 글구 여성의 말을 믿기 힘든 것으로 만들려는 세력이 우글우글하지요. 거짓말 한 적이 없는 여성이라도 일단 꽃뱀으로 몰고...ㅠㅠ 책인줄 알고 읽을까 했는데 드라마네요. 아쉽다 했는데 리뷰를 읽다보니 책이 나왔군요 ^^ 감사합니다.

* 야간 대학원도 있지 않을까요. 어떤 책인지 기억이 안나는데, 결혼한 여성이 대학원에 진학해서 배우는 자전적 에세이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재밌게 읽었는데...

다락방 2019-10-01 08:21   좋아요 0 | URL
마태우스님! 이건 책이 있으니까, 마태우스님이 꼭 읽고 리뷰도 써주세요. 저도 조만간 읽어보려고 합니다. 책도 엄청 좋을것 같아요. 여성의 말을 믿기 힘든 것으로 만들려는 건, 그것이 여성이 당한 성범죄 앞에서 특히 심한 것 같아요.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순간 남성이 가해자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아마도 더 심한 것 같아요. 으, 정말 끔찍한 현실이죠. 이 책은(실화입니다), 그 대표적인 피해 사례에 대한 책이 아닐까 합니다.

결혼한 여성이 대학원에 진학해 배우는 자전적 에세이....가 뭔지 생각나시면 꼭!! 알려주세요. 저도 읽어보고 제 미래에 대해 좀 더 생각해봐야겠어요. 후훗.

단발머리 2019-10-01 08:3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마태우스님~~~
안녕하세요, 다락방님^^
그 책은 <빨래하는 페미니즘>이 아닐까 합니다.

좀 다른 점이라고 하면, 저자가 기혼여성이기는 한데 대학원에 진학해서가 아니고, 여성학 강의를 청강한 걸로 전 기억해요.
페미니즘 고전을 읽으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에세이거든요.
마태우스님이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더욱 그런 것 같구요.
제게도 페미니즘 세계를 열어준 책이라 제가 애정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맞아야 할 텐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9-10-01 08:45   좋아요 0 | URL
네? 빨래하는 페미니즘요? 저 그거 읽었는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왜 당연히 국내서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놔. 그러고보니 결혼한 여성이 육아도 하면서 여성학 강의를 듣는거 맞네요. 빡쳐서 남편 빨래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 책 말씀하신 거구나.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는 왜 그거랑 매치를 전혀 못시켰을까요?

하아- 책 헛읽었어, 헛읽었어 ㅠㅠ

마태우스 2019-10-01 23:59   좋아요 0 | URL
아 맞다 빨래하는 페미니즘이었죠! 나이가 드니깐 기억도 못하네요 이젠. 흑흑. 단발머리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락방님, 언제 페미니즘 강의 한번 하셔야겠어요! 님만큼 열심히 하신 분 안계시잖아요...! 암튼 응원합니다

다락방 2019-10-02 08:41   좋아요 0 | URL
말씀은 감사하지만, 마태우스님, 제가 강의를 할 깜냥은 안됩니다. 그저 읽고 쓰는 것만이 전부인데 무슨 강의까지를 ... ㅠㅠ 어휴 생각만해도 부담스럽고 답답하네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저는 지금처럼 계속 읽고 쓰는 걸 해야겠어요. 그게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하하하하.

2019-10-01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01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psyche 2019-10-0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믿을 수 없는 이야기> 3회까지 봤어요. 저는 원래 범죄드라마 왕팬이라 상당히 잔인한 살인 사건도 아무렇지도 않게 잘 보거든요. 그런데 이 드라마는 1회를 보는 데 한참 걸렸어요. 너무 마음이 아프고 답답해서 몇번이나 멈췄다가 봐야했답니다. 결국은 범인을 잡고 잘 된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너무 힘들었어요. 빨리 범인 잡는 걸 봐야 마음이 좀 편해지겠죠?

다락방 2019-10-01 10:45   좋아요 0 | URL
맞아요, 프시케님. 저도 1화가 너무 힘들었어요. 마리가 형사들한테 취조 당하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어하고 그런데 압박당하고.. 거기에서 정말 답답하고 미치겠더라고요. 그렇게 돌아왔더니 상담사들은 왜 거짓말했냐며 다시 경찰서 가라고 하고.. 하아. 저도 몇 번이나 멈춰가며 1화를 봤어요. 보면서 ‘와 사람들 이거 어떻게 봤지, 이거 이렇게나 힘든데...‘ 했답니다.

그렇지만 캐런 형사와 그레이스 형사가 나오면서부터 유능한 여자형사 둘이 엄청 열심히 수사하는 게 나와서 막 의욕 뿜뿜하게되는 그런 감정도 느끼게 되더라고요.

같이 보니까 좋네요, 프시케님. 흑흑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