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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봉우리
유메마쿠라 바쿠 지음, 이기웅 옮김 / 시작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산을 두고도,전혀 동하지 않았던 내가 이 책'신들의 봉우리'를 얘기하려니까 이런 반응들이 돌아온다.
"니가?니가?집 뒷동산에도 안 오르는 니가 뭐어? 에.베.레.스.트?"
근데,난 병에 걸렸다.심한 그리움에 몸부림을 친다.
내 영혼은 에베레스트와 하나였었는데 그동안 깨닫질 못했을 뿐이다.
암튼 산악소설로 분류되는 이 책을 집어들게 된건,순전 '통곡''누행록'의 번역에 빛나는 '이기웅'님 때문이다.
난 그동안 이기웅님의 번역들을 참 좋아했는데,이 '신들의 봉우리'는 저자,역자 뿐만 아니라,내게도 최고의 작품이 될 것 같다.
경험해보지 못한 걸,간접체험 할 수 있는 게 책이 주는 매력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경험한 듯 생생하게 그려내다니 저자의 필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옛날에 암벽등반 하는 사람을 알았었다.
근데 이 사람 자기 몸을 너무 아껴서 외상이 없는 새끼손가락의 불편함을 가지고 한달동안 치료받는 걸 본 적이 있다.
몸이 아주 중요한 건 맞지만,죽을 병도 아니고 새끼손가락 좀 불편하다고 한달씩이나 치료 받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
근데,이 책을 읽으면서...그 사람의 새끼 손가락은 단지 새끼손가락이 아니라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뭐,이 책을 옛날에 읽었다고 해서 그 암벽등반가에 대한 호,오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겠지만...
이런 깨달음으로 이 책을 시작할 필요는 있다.
작가는 후기에서,
전부 토해냈다.
힘이 미치지 못해 아쉬운 대목도 없다.구석구석 온 힘을 다 기울였다.
열 살 때부터 산에 오르면서 몸 안에 쌓아둔 걸 전부 다 꺼내고 말았다.
그것도 정면에서 맞서 싸우듯이 전력을 다해 산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이 이야기에 변화구는 없다.
직구.온 힘을 다 쏟아부은 스트레이트.
이제 산에 대한 이야기는 두 번 다시 쓸 수 없으리라.
이게 최초이자 최후다.
그런 이야기를 쓰고 말았다.이만한 산악소설은 아마 더 이상 나오기 힘들 것이다.그리고 아무나 쓸 수 있는 이야기도 아니다.
이제 항복할텐가.
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내용은 액자소설의 형태를 띄고,시점도 1인칭 주인공 시점과 3인칭 관찰자 시점,전지적 작가시점 사이를 왔다갔다 한다.
어차피 에베레스트를 神과 동일시 하는 소설의 특성 상 ,전지적 작가시점을 배제할 수는 없었겠지만,글이 갑자기 어설퍼진다.
꼭 얘기를 해주던 변사가 배가 아파 화장실을 간 사이,여러차례 얘기를 들은 관객이 기억을 더듬어 가짜 변사노릇을 하는 듯 하다.
내용은 한줄로 요약할 수도 있겠다.
하부 조지라는 청년이 산사나이로 성장해,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과정이다.
더도 덜도 없다.
근데,진한 울림과 감동을 준다.
농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땀냄새 폴폴 풍기는 진솔한 얘기들이다.
인간이란,갖가지 사정을 품고 살아가게 마련이다.이런 사정을 하나씩 결말짓지 못한다면 그다음 일을 시작할 수 없다.그렇게 말해버리면 인간은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인간은 다들 다양한 사정을 품고 과거지사를 마냥 질질 끌다가 정리하지 못한 채 다음의 일로 나아가곤 한다.그러면서 풍화할 것은 풍화한다.풍화되지 않고 화석처럼 마음 속에 한없이 방치되는 것도 있다.그런 것 하나 없어서야 인간이라 할 수 없다.(29쪽)
누구도 믿지 않겠다.사진 속의 중년 남성 내부의 소년이 카메라를 향해 말하고 있다.그 대신 그 누구에게도 신뢰를 사지 못해도 상관없다,라고.
나는 혼자다.
그렇게 마음 깊이 각인한 소년이 사진 속 남자의 내부에 살고 있다.(90쪽)
암벽을 오르는데 위험한가,위험하지 않은가,그런 고려는 그에게 필요하지 않았다.어떤 코스로 가야 정상까지 가는데 가장 가까운가,하부에게는 그런 선택의 여지밖에 없었다.(104쪽)
바위를 오른다는 행위에는 등반자의 노력만으로 다다를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그건 어떠한 이름이 붙은 기술이나 방법도 아니다.재능이라는 모호한 호칭으로밖에 부를 수 없는 것이다.체력에 배포도 있고 기술까지 고루 갖춘 클라이머라면 실수하지 않는 한 별 문제 없이 오를 수 있다.하지만 경력이나 기술,체력 면에서 분명하게 뒤지는 초심자에 가까운 사람이,베테랑도 일정 속도 이상 내기 힘든 암벽을 너무나 가볍게 올라버리는 일이 있다.그건 천성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105쪽)
하부씨,하부 씨 하며 기시는 하부를 따랐다.누군가가 자신을 따른다는 데 하부는 익숙하지 않았다.기시가 따르는 만큼 하부는 기시를 혹독하게 다루는 모양새가 됐다.(119쪽)
그 산에 오르지 못한 건 산 탓이 아니다.산은 그 등산가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는다.그 등산가가 산에 오르지 못했다는 건 그 등산가가 자기 자신에게 졌다는 것이다.그뿐이다.(142쪽)
"인간은 양손에 짐을 든 상황에서 또 다른 짐을 들 수는 없지.일단 양손의 짐을 버리지 않으면 다음 짐을 들 수 없으니까." (335쪽)
지상의 반 이하의 산소 속에 있으면,렌즈 포커스를 맞추고 셔터를 누르는 것만으로 숨이 차온다.셔터를 누를 때 한순간 숨을 멈춘다.그 극히 잠깐의 호흡 정지 상태가 불과 2초 길어진 것만으로 셔터를 누르고 난 뒤 가뿐 숨을 토하게 된다.셔터를 누르고 나서 하악하악 소리 내며 호흡을 한다.결국 고통스러워 눈앞이 캄캄해지고,정상적으로 호흡하기까지 2~3분 동안은 그저 괴롭게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만 한다.(363쪽)
당연히 자연이나 환경문제에 대한 언급이 있고,
이런 언급이 있기에 이 책이 빛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최근 토박이들마저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기가 불편해졌습니다.그런다고 소의 대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서 가스나 석유를 사용하게 됐죠.하지만 가스나 석유는 돈이 듭니다.그걸 외국에서 사 올 돈이 네팔에는 없습니다.그 돈을 벌기 위해 관광객을 이 나라에 불러야만 합니다.이 나라의 관광은 히말라야와 산림,즉 자연입니다.그런 자연이 관광객이 오면 올수록 사라져 갑니다.......이 악순환은 누구도 멈출 수 없지요.장작만의 문제가 아닙니다.네팔이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에 대해 파고들면 종극에는 이 나라의 빈곤과 맞닥뜨리게 됩니다."
위로 오른다는 건,아래에서의 일을 차례차례 저편으로 밀어 지워가는 작업일지도 모른다. 아니,그렇지 않다.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지워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반대로 생생해지는 것도 있다.여러 기억들이 멀어지며 피로 속으로 사라져가는 대신,이때까지 지우지 못한 게,남겨놓은 게,한층 분명히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그건 가요코의 일이라든가 혹은 료코의 일이라든가.(384쪽)
인생도 날씨와 같다.사람은 살아가며 조우하는 모든 일마다 매번 결론을 맺으며 살아갈 수는 없다.대부분은 그대로 미뤄둔 채 살아간다.살아간다는 건 뭔가를 미루며 걸어간다는 것이다.번거롭다고 이러저러한 일들을 다 내버리고 혼자만 고고히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496쪽)
힘내라는 말은 할 필요도 없고 들을 필요도 없다.하부나 후카마치나 이미 온 힘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말은 필요 없다.
이제 어떤 말로도 격려할 수 없다.
도와줄 수도 없다.협력할 수도 없다.
그저 혼자.자기 혼자만의 힘에 의존할 뿐이다.(559쪽)
'인간의 발이 밟지 못한 거인이 세계에 즐비했던 시기의,그 꿈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264쪽)<------이 문장은 도통 해석 불능이다.
이 책에 애착이 간것은,하부 조지가 또 다른 나인 듯 여겨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하부는 모든 인간 관계나 삶의 목표를 산을 통하여 배운다.
인간관계를 인간에게서 배우지 않고 말없는 산을 통하여 배우려고 하니,자연 인간 관계가 삐그덕거린다.
하지만,그를 의심하거나 오해했던 사람들도...그의 우직하고 한결같음을 알고 신뢰하게 된다.
어떤 사람이 좋다,싫다 하는 건 참 애매모호하고 의미없는 말이다.
어떤 일과 관련하여 믿을 만 한가,그렇지 않은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말이다.
일상에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버거울 때 일독을 권한다.
그의 전작들을 찾아 읽겠지만,한동안은 이 책의 여운 때문에 어느 책도 쉽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