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늦가을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입동이나 소설 등의 절기를 생각하면 초겨울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하긴 마음 가난하기로 따지면,초겨울도 아니고 한겨울이지만 말이다.

왜 한정옥을 꺼내들었는지 모르겠다.
한정옥의 시들은 내게 버겁다. 
<내 몸에 가시>이 시집은 나무에 관한 연작시집인데,
비록 두께는 얇지만 갈피갈피,구절구절,연마다,행마다 멈춰 쉬이 읽히지는 않는다.

격렬함에 대하여 
----나무 10

그리움이 깊으면 애 마르고
생각이 깊으면 사무쳐서
배롱나무에까지 불이 붙었다
꽃이라 해도 가슴만 할까
잘 탄다는 말은 부질없는 분별이라
무엇이 되고자 하는 마음조차 놓자
궁하면 통하는가
불덩이처럼 솟았다
쪽빛 하늘 터졌다 
몸을 쓰니 주변이 환했고
마음을 쓰니 하늘에 닿았다

  

옹이 박힌 슬픔 
----나무 19 

그립다 하기 전에 마음 먼저 떨리어
언제 한번 슬픔 만만했던가
맺힐 때 보석이요 흐를 땐 이미 슬픔이어서
논바닥 쩍쩍 갈라져도 소리내어 울지 못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서는 그리움
노염도 집착도 아름다웠던 힘
풀어져 잠이 올 땐 누울 일만 남았다고
옹이 박힌 슬픔 호되게 이마를 치니
둠벙에 비친 버짐나무는 온몸이 후들거렸다 

 

산이 울었다
----나무 34

몸이 아프면 약으로 다스리지만
마음이 결릴 땐 옴짝도 못한다
자주 깨니 꿈길도 토막
혓바닥에 눈물이 고였다
슬픔은 마음을 울리게 한다
울리는 대로 골짜기로 들어가 보니
골짜기에는 놀랍게도 계절이 바뀌고
툭 터진 하늘 하루 길어
갈꽃 다 보았다
어혈이 풀리는 듯
산이 울었다
숲에 물이 빠지고 있었다
산은 말이 없지만
마음을 움직인다 

Wynton Marsalis 한곡 들으며 숨고르기를 해야겠다. 
11월엔 내 템포를 회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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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0-11-01 11:31   좋아요 0 | URL
한정옥 시인의 이 시집이 너무 좋은데요.

덕유산에서 '물푸레나무'를 몇 번씩이나 살펴보다 왔는데, 한정옥 시인의 '한마디'에도 그 나무가 등장하네요.
* * * * *
나무는 스타일이 없다. 내게도 그것을 일렀다. 나무는 실바람에도 몸을 떨었다. 내게도 그것을 바랐다. 나무는 썩어서 사라졌다. 내게도 그것을 원했다. 어제의 믿음으로 오늘을 살 수 없듯이 어제 본 나무를 말할 수 없었다.

말을 하자면 빛이 들어간 필름처럼 노출된 영혼이 하얗게 질렸다. 눈깜짝할 새 이파리 하나 솟고 눈돌리면 이파리 우수수 졌다. 내 생각에 싹이 트고 내 눈길에 이파리 지는 것을 알아채고는 숲속에 불을 질렀다. 삭정이 솔가지 훌렁 태우고 도끼자루로 쓸 단단한 물푸레나무 기둥 하나 남지 않도록.

sslmo 2010-11-02 11:19   좋아요 0 | URL
그쵸?
님이 적어주신 이 시도 좋구요.
님 블로그의 덕유산 자락들도 다 좋았어요~^^

쟈니 2010-11-01 12:21   좋아요 0 | URL
어제 동네 뒷산에 올랐는데, 여기저기 나무들이 월동준비를 하는 듯 잎을 떨어내고 있었어요. 나무에 기대어 도시를 바라보니, 맘이 짠하더군요. 도시인의 삶.. 직장인의 삶.. ^^ 산 가까이 살고 싶다는 욕심이 자꾸 듭니다. 나무는, 언제 보아도 언제 느껴도 참 좋아요.. 나무에 관한 시라니 더욱 궁금해집니다.

sslmo 2010-11-02 11:26   좋아요 0 | URL
집 뒤에 산을 두고 한번도 안 오르고,
출퇴근길 가로수 단풍든 걸 보면서,세월무상함 따위를 느끼긴 하지만,
나무가 고맙다 이런 신통한 생각까지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뭐~ㅠ.ㅠ
공기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는 거랑 같겠죠~

이 시집 좋은 데,좀 아파요~

순오기 2010-11-01 14:13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꾸님, 시를 참 많이 알고 소개를 잘 해줘서 좋아요~~ ^^
인용된 시가 다 우리네 아픈 인생을 얘기하니 버겁기도 하겠어요.

sslmo 2010-11-02 11:30   좋아요 0 | URL
시를 많이 알지는 못하고,시집은 좀 읽어요~^^

'우리네 아픈 인생'이란 표현 딱인걸요.
어쩜 인생이란 말,삶의 굴곡이랑 동의어 일지도 모르겠어요.
웃고있어도 눈물이 난다는 노래 가사처럼요~^^

hnine 2010-11-01 14:35   좋아요 0 | URL
따라 읽어보니 리듬이 느껴져 ('운'이라고 해야하나요?) 더 좋아요.

산은 말 없이도 마음을 움직이는군요.
11월은 참 시리고도 따스한 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sslmo 2010-11-02 11:33   좋아요 0 | URL
님 말씀듣고 따라 읽으니,그러게요~
리듬감과 운이 느껴지는 걸요.^^

벌써 너무 시렵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꿈꾸는섬 2010-11-01 15:04   좋아요 0 | URL
늦가을이라도 좋고 초겨울이라도 좋아요.
그리우면 그리운대로 쓸쓸하면 쓸쓸한대로 사색하기 좋은 계절이에요.^^

sslmo 2010-11-02 11:34   좋아요 0 | URL
우와~
너무 예뻐요.
한편의 시 같아요.

2010-11-01 2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1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2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느린산책 2010-11-01 20:04   좋아요 0 | URL
시월도 가고..
이제 낼부턴 겨울인가봐여 ;ㅅ;

sslmo 2010-11-02 11:37   좋아요 0 | URL
저 아침에 얼어죽는 줄 알았어요,아웅~;ㅅ;

마녀고양이 2010-11-01 21:10   좋아요 0 | URL
11월 첫날 하늘이 파~~~~~~~아래. 진짜 파아~~~~래.

11월은 특징이 없다고, 무시당하는 달이라잖아.
그런데, 11월이 난 좋아.
11이라는 숫자가 너무 단정해서 좋아. 그지그지?

올려준 시집은.. 한방에 훅가서.. 그냥 장바구니로. 땡큐!

sslmo 2010-11-02 11:39   좋아요 0 | URL
11월말까지는 몬 사는 거 아녜요?^^

난 어제 11시11분에 디지털 시계를 보면서 희열을 느꼈는데,말이죠.
11월11일날 한번 더 경험할 수 있으려나?

비로그인 2010-11-02 01:10   좋아요 0 | URL
11월, 그리고 게다가 첫 주.

양철님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오늘을 포함해서 이번 주엔 좀 의미 있는 일을 해볼까 하는 참입니다. ^^

sslmo 2010-11-02 11:41   좋아요 0 | URL
전 요번 주 뿐만이 아니고,11월엔 제 페이스를 찾으려구요.
그러지 않아도,연말이면 시간들이 몇배속으로 흘러가잖아요.
바람결님도 잘 보내고 계시죠?^^

같은하늘 2010-11-02 01:32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그동안 안녕하셨나요? 그리고 너무 감사하다는 인사도 남겨요.
너무 정신없는 일정 때문에 다른분들 서재 방문도 못하고, 필요한 리뷰만 남기고 사라져도 꼭 들려주셔 댓글도 남겨주시고... 앞으로는 좀더 자주 뵙도록 할께요.^^

sslmo 2010-11-02 11:45   좋아요 0 | URL
네,저도 자주 뵙고 싶어요.
님의 글들 덕분에 밤시간이 행복해져서 저도 감사한걸요~^^

세실 2010-11-02 09:06   좋아요 0 | URL
제 몸도 마음도 가난해요. 한겨울이예요. ㅠㅠ

sslmo 2010-11-02 11:47   좋아요 0 | URL
실은 어제가 유재하 기일이었어요~
시랑 유재하의 노래를 올리려다가 너무 가난 모드로 가는 것 같아서,행진곡 모드로 바꿨구만~~~
이 노래 들으시면 좀 위안이 되실지도~~~

세실 2010-11-03 16:48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해요 님. 땡큐~~~~
따뜻해요^*^

sslmo 2010-11-03 22:30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