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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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읽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조경란 작가는 대화체를 좋아하지 않나 보구나.' <혀>엔 등장인물간 대화가 거의 없다. 그나마 몇 안되는 대화도 밋밋하다. (애당초 등장인물도 몇 안되지) 남자친구(한석주)와 헤어진, 요리사 정지원이 시종일관 이야기한다. 어릴적 할머니가 해준 이야기와 추억, 등장인물들과의 만남, 그리고 요리이야기. 읽기 힘들었다. 일방적으로 토해내는 정지원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없었다.

<혀>가 '요리'를 소재한 소설임을 알고 큰 기대를 했다. '다 읽고 나면 입에 군침이 돌게 하는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p.345)는 저자의 바램이 내 안에서 간단하게 이뤄질 줄 알았다. 하지만 군침은 돌지 않았다. '요리'는 어디까지나 소재일 뿐이었다.

이 소설을 너무 가볍게 본 거 같다. 깔끔한 양장에 부담없는 편집, 인상적인 표지일러스트. 외양을 보고 즐겁게 손에 잡은, 아주 가볍게 손에 잡은, 이것이 문제였다. <혀>는 요리소설이 아니다. 인간의 오감-특히 미각과 후각-을 근원부터 건드리는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은 예외없이 미각과 후각으로 연결되어 있고-하물며 개 폴리까지-소설 전체를 미각과 후각이 지배하고 있다. 뭘 이야기하려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다.

핵심 서사는 요리사인 정지원의 '노베'(음식점 이름)생활. 뭐 당연하지만. 여기에 정지원-한석주-이세연간 애정문제, 정지원과 삼촌의 관계등이 얽히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뭐낙 소설 전체를 휘감는 미각과 후각이 강렬해 이런 서사구조는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이미지만을 떠올리며 읽어 내려간다해도 뭐 나쁘지 않을 듯하다.

읽다 순간 깜짝 놀라버린 부분이 있다. 바로 한석주와 이세연의 섹스를 묘사한 p.76이하.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녀의 관계를 요리와 교차시킨 이 부분은 충격 그 자체다. '대화가 부족하니 밋밋하니' 이상한 소릴 늘어놓았지만, 조경란 작가의 숨 막히는 묘사력과 이미지 형상화 능력은 탁월했다.

<혀>는 독특한 소설이다. 소재부터, 이야기 전체를 지배하는 후각, 미각까지. 그렇기에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는지 모른다. 하지만, 저런 독특함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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