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7/400. 호밀밭의 파수꾼 (JD 샐린저)

 

사두고 읽지 않은 책 중 한 권. 그동안 안 읽은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다. 내 특별한 상황이 책에 더 몰입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고등학교에서 네 번째 퇴학을 당한 홀든, 그가 학기말보다 며칠 먼저 토요일 밤에 학교 기숙사를 나와버린다. 집에는 가기 싫고, 어디론가 떠나버리고 싶은데, 그 전에 귀여운 막내 피비를 만나야만 했다. 주위엔 온통 위선을 떨고 멍청한 인물들 뿐이고 모든 것이 싫고 혐오스러운 주인공 홀든. 그가 혼자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 혼자 체크인 하는 호텔, 찾아가서 만나는 옛 학교 선생님, 모든 상황이 아슬아슬하다. 몇 번이나 홀든이 가방을 뺏기고 얻어맞을까봐, 총에 맞거나 사고에 연류될까봐, 피비까지 다치게될까봐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홀든의 심경은 달라진다. 지금 큰 아이의 나이인 홀든의 이야기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나는 우울증을 앓는 그 아이의 엄마인지도 모르겠고 버럭거리는 아빠인지도 모른다. (얼마전 읽은 Goldfinch에 나오는 Andy네 가족과 매우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허세떨며 어른 행세를 하는 큰 형일지도. 퇴학이 뭐 대수겠어, 넌 겨우 열여섯인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얘야, 그 술집에서 나와라, 얘야, 그 밤거리를 혼자 걷지마라, 그 엘리베이터 보이의 말에 걸려들지 말아라..... 그러다보니 구부정한 등으로 책상에 앉아 수학문제를 푸는 내 아이가 보였다. 그깟 수능, 그깟 대학. 다시 가슴이 갑갑하다. 하지만 이건 하나의 과정이지 종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들은 계속 그 자리에 두어야만 한다. 저렇게 유리 진열장 속에 가만히 넣어두어야만 한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잘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난 계속 이런 생각을 하면서 걷고 있었다. (165)

 

그리고 나서 난 그곳을 나왔다. 그런데 정말 웃긴 일은 그 여자가 내게 <행운을 빌어요>라고 말한 것이다. 펜시를 떠날 때 스펜서 선생이 내게 한 말과 똑같았다. 어딘가를 떠나는 사람에게 <행운을 빌어요> 같은 말을 하는 건 정말 싫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우울해지고 만다.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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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5-10-17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대입이 인생의 과정일뿐이란 생각이 들어요. 공감해요. 학교 그만두겠다고 하는 놈이라,, 대학은 커녕 고등학교 다니는 것도 감지덕지합니다!

유부만두 2015-10-17 21:52   좋아요 0 | URL
아... 이제 이십여일 남은 수능. 지겹지만 통과의례라고 생각해. 힘들지만 버텨보려고.
 

346/400.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오래전 이탈리아 영화 '일 포스티노'속 메타뽀레를 이야기하던 노시인과 순박한 시골 우편배달부의 장면을 기억하고 있다. 그 원작인 소설을 처음 읽었다. 노래처럼 리듬감있게 흐르는 대화, 슬프지만 해학적으로 그려낸 장면들이 칠레의 어두운 정치사와 함께 펼쳐진다. 잠시 검색해본 칠레의 역사는 어째 낯설지가 않다. 검은차를 타고 끌려가는 마리오라니. 영화의 우편배달부는 모태솔로 노총각인데 소설 속 마리오는 열일곱 피끓는 청년이다. 그가 한눈에 반해 온갖 메타뽀레로 사랑을 구하는 상대는 베아트리체. 이 두 연인의 사랑이야기 만큼이나 네루다와 마리오의 우정도 아름답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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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5-10-15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 포스티노>는 정말 너무 아름다운 영화였죠. 마리오 역을 했던 배우가 잊혀지질 않네요. 그 영화 찍고 얼마 안있어 세상을 떠났다 하니 더 슬픈것 같았어요.
영화보고 너무 좋아서 책을 구입했는데 아직 못읽고 있었어요. 근데 며칠전 김영하의 책읽는 시간 팟캐스트에서 이 책을 읽어주길래 다시 새록 새록 기억이 돋아난 참에 유부만두님 리뷰를 만났네요^^

유부만두 2015-10-15 13:16   좋아요 0 | URL
저도 김영하 낭독 듣고 생각나서 읽었어요. 뒷부분은 기억에 남지 않았는데 좋네요. 추천이요~ ^^
 

345/400. 엄마 사용법 (김성진)

 

불편한 동화다. 엄마 없이 아빠와 둘이 사는 현수는 생명장난감으로 '엄마'를 주문한다. 엄마는 감정이 없이 청소,빨래,아이 뒷바라지를 하는 용도로만 쓰일 장난감으로 제작되었다. (그럼 인간 아빠와 생명 '장난감' 엄마는 어떤 사이가 되는건가?)  하지만 이 엄마는 제작 과정에서 현수의 핏 방울이 스며들어 감정을 가지게되었다. 결국은 해피엔딩이라지만, 역시나 불편하다. 장난감으로 여기고 반려동물을 험하게 다루는 사람들도 연상되고, 불량품을 수거해 생명을 끝내버리는 나치같은 파란 경찰관들은 '깡통소년'에도 나온다. 소년으로 읽을 때보다 더 불편한 건 왜일까. '엄마'의 용도를 너무나 적나라하게 그려내서 그럴까. 아니면 과격한 설정과 급한 전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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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400. 읽는 인간 (오에 겐자부로)

작가의 인생을 채워준 중요한 책들과 그 소중한 인연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 독서경험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작가와 우정을 나눈 사이드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어서 책의 후반부는 별 느낌 없이 천천히 겨우겨우 읽어냈다. 오에 겐자부로는 철저히 읽고, 공부하고, 쓰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조금 무섭다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책맥은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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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5-10-14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갑자기,치맥이,먹고 싶어지네여,,,책맥에서,치맥을 읽다니^^;;;

유부만두 2015-10-14 16:55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런데 오에 센세는 책읽을 땐 술을 마시지 않는다네요
 

343/400. 마법사 똥맨 (송언)

 

우리집 막내가 읽고 읽고 또 읽으면서 키득거리는 책. 송언 선생님의 재미있는 꾸러기 이야기다. 똥맨 귀남이는 더할 수 없이 악동이다. 수업방해는 물론이고 도가 지나친 장난도 쳐서 이 아이는 상담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 동화에서 선생님의 역할은 최소한이다. 교훈이나 깨달음이 아니라 위안과 이해를 위한 책이란 것을 저자의 후기에서 알았다. 어른들의 눈으로 가만 다시 귀남이를 보면 그 아이의 팍팍한 삶이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만일 동수 엄마라면 귀남이랑 노는 동수가 못마땅하겠지만, 고마운 마음이 드는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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