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년 반 전에 읽었던 책이라 몇몇 장면만 기억에 남아있다. 특히 불법촬영 범죄가 소재였던 단편 Cracked가 여러 가지 이유로 불쾌하고 찜찜했다.


그 단편만 다시 읽었다. 


Jay는 만만한 여성 피해자를 상대로 덫을 놓았고 그의 집 전체가 기괴한 거미줄 같이 작용한다. 부인 Linda는 방관자라기 보단 적극 가담자로 그 '게임' 범죄에 참여한다. 그러곤 피해자의 이유, 혹은 결점을 찾아 그 틈을 파고 들고 동시에 순수한 자신의 이유, 침묵과 용인의 이유를 나열한다.


그녀가 범죄의 일부가 되는 건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큰 것 처럼 보인다. 어린 시절, 집을 나간 어머니와 범죄자 아들을 두었던 이웃 주민. 이 두 여인이 겪었던 경제적 사회적 격리, 소외를 피하고 싶어서 자신은 다르다고 계속 되뇌인다. 하지만 결국 Linda는 그 둘의 비참한 부분만 골라서 닮아있다.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상황일 뿐 딸로부터 절연당했다. 성범죄 가해자(들)에 연루된 여성 캐릭터(들)을 둘러싸고 (이 단편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가족이 서로를 얼마나 모르며, 그 멀어진 관계를 못본 척해서 치명적인 균열이 생긴 cracked 상태가 되었다...고 정리하기엔 범죄 하나 하나가 너무 강렬해서 모든 인간 관계가 결국 다 부서져 버리는 것 같다. 마을에서 벌어졌다는 과거의 살인사건 보다 Jay의 몰래 카메라 범죄가 더 섬찟하고 생생해 보인다. 


독자의 분노와 걱정을 비웃듯 Jay는 기소되지 않는다. 더러운 덫은 남아있고 Jay의 컴퓨터도 그대로다. Linda에게 어느 정도 연민을 보이는 결말은 그래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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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족에서 두 스타가 탄생하기 힘들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해도, 클래식 음악사에서 유독 여성들이 배제와 차별의 대상이 됐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힘들다. 난네를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1769년부터 남동생 모차르트가 이탈리아에서 눈부신 음악적 성과를 거두는 동안 난네를은 어머니와 함께 잘츠부르크에 남아 있었다. 반대로 1777년부터 모차르트가 어머니와 파리 여행을 할 당시에는 레오폴트와 함께 잘츠부르크에 머물러야 했다. 난네를 역시 작곡을 했고, 동생 모차르트도 편지에서 난네를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레오폴트는 편지에서 난네를의 작품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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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21-01-03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짜르트의 누나도 작곡을 했는지 몰랐어. ㅜㅜ

유부만두 2021-01-04 11:48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에서 알게됐어요.
이 책 강력추천입니다.
 

1일1클래식 책에서 소개하는 오늘의 1기쁨은 <오 가우초>  
by 프란시스카 에드뷔게스 네베스 시킨냐 곤자가



혼혈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의 사생아로 태어나 브라질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의 선구자가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프란시스카 에드뷔게스 네베스 시킨냐 곤자가라는 여성 음악가는 이 힘든 일을 기적처럼 해냈다. 곤자가는 강제로 결혼해야만 했던 남편과 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로서 독자적인 경력을 쌓아나갔다. 독일,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프랑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에서 청중을 놀라게 했고, 브라질 최초의 여성 지휘자가 되었다. 또한 곤자가는 열성적으로 여성참정권을 위해 운동하던 서프러제트였고, 노예 제도에 반대하는 운동을펼쳤으며, 연주자 노조 설립에도 일익을 담당했다. 곤자가는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인 1934년에도 여전히 오페라를 작곡하고 있었다.

곤자가는 1895년, 오페라타 지지냐 마시시〉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오페레타에는 ‘코르타-자카‘라는 곡이 있다. 이 곡은 1860년대 리오에서 등장한 전통적인 브라질 탱고 마시시에 생기 있는 음악을 입힌 것으로, 룬두 같은 아프리카계 브라질인의 무곡을 폴카 같은 유럽 무곡과 혼합한것이다. 40년 후에 태어난 동향의 작곡가 빌라로부스(9월 7일, 11월 17일)와는 다른 성격의 작업이었다.

이 곡의 제목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잭프루트 열매 자르기‘라는뜻으로, 풍자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치열하게 살아왔던 이 독립적 여성에게 잘 어울리는 곡이다. 곤자가는 여러 남편과 파트너에게서 벗어나 마지막에는 36세 연하의 남성과 사랑에 빠졌다. (이 연하의 남성은 곤자가가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곁을 지키며 헌신했다.)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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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12-27 16: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사려고 눈독 들이고 있었어요 예술가들의 생애는 정말 그 자체로 격정적이네요!

유부만두 2020-12-27 17:49   좋아요 1 | URL
이 책은 매일 작곡가와 음악을 소개하고 있어요. 강력추천합니다. 매일 1기쁨, 밀렸다 읽으면서 곡 들으면 몇곱절 기쁨(????) 입니다. ^^

파이버 2020-12-27 17:52   좋아요 1 | URL
몇곱절 기쁨ㅋㅋㅋㅋㅋ 아, 넘 웃겨요ㅋㅋㅋ 꼭 사겠습니다!

유부만두 2020-12-27 18:00   좋아요 1 | URL
읽으시면서 곡 찾아서 들으세요. 제가 음악을 잘 몰라서 거의 모든 곡이 새로운 기쁨이고 그렇습니다. 소개하는 음악사도 꽤 재미있고요. 표지 새로 바뀌었던데 (더 이뻐서 샘나요) ...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책 소개를 여러 곳에서 읽거나 들었고 채식을 시작하기 전 다큐멘터리 영상과 책에서 공장형 농장에 대한 내용을 접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건 다른 경험이었다. 힘들고 갑갑하다. 육식용 개농장이 음식 쓰레기 처리 방법이었다니, 짬밥 뉴스를 들었지만 그 문제가 제일 충격적이다. 동물들의 생명과 복지에 대한 고민 이외에도 '그런 식으로' 사육, 처리되는 동물의 고기를 사람들이 먹었을 때 과연 해가 없을까하는 생각과 여러 농장에서 나오는 폐수와 오물의 어마어마한 양에 대한 걱정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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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0-12-27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기 두렵구만요ㅠㅠ

유부만두 2020-12-27 17:52   좋아요 0 | URL
아... 힘들었어요. 이미 아는 것과 상세하게 노동 현장을 옮긴 글을 읽는 건 다르네요.
열악한 노동환경과 사육환경이 맞물리고요, 이주노동자들 처우 이야기도 큰 부분이에요. 육식이냐 채식이냐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식재료를 생산한다면 적어도 제대로 된 절차대로 유해하지 않은 고기를 다루어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육식용 개농장 이야기는 절망의 끝을 보여주더군요.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똥‘ 이에요. ㅜ ㅜ

그렇게혜윰 2021-01-01 15:28   좋아요 0 | URL
똥이라니!!!!! 전 용기가 없어서 피할게요 ㅠㅠ

단발머리 2021-01-01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을 안 읽고 ㅠㅠㅠ 그냥 채식주의 실천할까봐요. 그래도 ‘읽고 싶어요’ 체크.......

유부만두 2021-01-01 21:58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식재료 고기가 어떻게 생산되는지 아주 적나라하게 쓰고 있어요. 이미 안다고 생각했는데도 계속 충격을 받았고요. ....
 

‘좋게 얘기하면 들어 처먹지를 않는’ 이유는 좋게 얘기한다는 그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복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동물이 보이는 ‘지속적이고 반복적이지만 아무 목적이 없는 행동’을 정형 행동이라고 부른다. 돼지는 지능이 높고 지루한 걸 못 참는다. 동물학자들은 정형 행동이 사회성이 높거나 지능이 높은 동물이 고립되거나 외부 자극이 결핍된 환경에 감금되었을 때 나타나는 정신 장애에 의한 행동 장애라고 설명한다. 주로 동물원의 동물에게서 자주 발견되는데 공장식 축산 시설 속의 돼지에게도 이런 정형 행동을 발견할 수 있다. 유럽연합은 2003년 2월부터 회원국의 모든 돼지에게 의무적으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공이나 천장에 매달아놓은 쇠사슬 같은 것)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과거 소련의 죄수들은 ‘에땅’을 가장 두려워했다고 한다. 에땅은 이송이란 뜻인데 강제수용소에서 다른 강제수용소로 옮겨 갈 때 쓰는 말이었다. 에땅은 수용소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일이었고 실제로 새 수용소가 나은 곳일 수 있었는데도 죄수들은 처음 가는 곳을 더 무서워했다고 한다. 삶의 목적을 모두 잃고 이제 살아남는 것밖에 남지 않은 사람에게 익숙했던 환경을 떠난다는 것은 그만큼 두려운 일이었다.

문제의 ‘세상’은 사장이 제대로 된 사료 대신 음식 쓰레기를 개들에게 먹일 수 있게 해줬고 그가 산과 논을 더럽혀도 그대로 내버려뒀고 노동자들을 혹사시켜도 문제 삼지 않았다. 그가 교묘하게 법망을 피한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법체계 안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 계산에는 아직 동물이 겪는 고통은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그러니 사장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러니 어떡해? 개라도 키워야지. 안 그럼 어쩔 거야? 개장수 천하다고 가족들 굶길 거야? 개 잡는 거 잔인하다고 애들 공부 안 시킬 거야? 만 원이라도 더 벌려면 뭐든지 하는 거야! 그게 인생이야! 그것 말고는 다 드라마고 유행가야.

동물들과 마주하며 지냈던 시간은 나를 약자의 고통에 민감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다. 반대로 나는 무감각해졌다. 지난 몇 년간 내 삶을 관통한 가장 일관된 정서는 분명 ‘무감각함’일 것이다.

사장은 개고기도 고기의 하나일 뿐이라고 했지만 생산 과정을 살펴보면 고기라고도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육식에도 부정할 수 없는 미덕이 있을지 모르고 개고기 업계에도 스스로를 정당화할 여지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날 본 모습 중에 회색 영역에 속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잘못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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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12-27 16: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알면 알수록 육식에 대해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처음 인용하신 ‘좋게 얘기하면 ~‘부분은 예전 직장상사가 떠오르네요ㅎㅎㅎ

유부만두 2020-12-27 17:54   좋아요 1 | URL
어느 곳이나 갑질하면서 으스대는 것들이 있지요.

이 책은 채식 홍보라기 보다는 ‘제대로 된‘ 일터, 먹거리 생산과 처리, 무엇보다 인간이 먹고 쓰고 버리는 존재라는 걸 생각하게 만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