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좋아하는 부모를 갖는다는 건 어떤걸까? 난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환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 환상이 종종 힘들 때도 만든다고 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딸 아이에게 "삐삐 롱스타킹" 책을 읽어주는데, 아이가 화장실에서 넘어져 눈꺼풀이 찢어져서 안대를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속상해했는데 아버지는 이 외눈박이 해적 같은 모습을 위로하기 위해서 해적 아버지를 둔 삐삐 이야기를 읽어준다. 하지만 아이는 의도와는 달리 삐삐에게 압도되어 겁을 집어먹고 만다. 할로윈 땐 옆집의 과한 호러 집 장식에 공포를 느끼는 아이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슬리피 할로의 전설"을 읽어주기도 하는데 이는 아이가 더한 공포를 갖게 했다. 좀더 자란 아이는 하교길에 친구들과 동네의 귀신집으로 소문난 폐가에 들렀다 오곤 했는데 아버지는 그런 아이에게 "안녕, 스카우트, 오늘은 부 래들리 찾았니?" 라고 박자를 맞춰주기도 한다.
어머니는 자신이 어린 시절 좋아했던 "비밀의 화원"을 아이 침대 옆에 두면서 은근 압력을 넣기도 하고 아이들의 정서에 좋지 않다고 판단한 금박 장정의 (그것도 친척 아주머니의 선물이었던) 양장본 그림동화집을 오랫동안 다락방에 숨겨두었다. 파스타를 좋아해서 식사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조리하는 아버지는 가끔 엄마가 국수를 삶을 때 제대로 저으라고 계속 잔소리를 한다. 이에 짜증이 난 어머니는 "알았어, 빅 앤서니!" 라고 받아치는데 빅 앤서니는 동화 스트레가 노나 시리즈에 나오는 마녀의 얼뜨기 도제 이름이다. 저자가 4학년 땐 아이에게 어머니는 집 길건너 건물에 실비아 플라스가 살았었다고 얘기도 해준다. 그게 누군지 아이는 몰랐지만. 고등학생 딸아이가 첫사랑이 끝나고 침대에서 울자 그 옆에 슬쩍 "레베카"를 갖다 준다.
포스팅을 많이 쓰곤 있지만 이 책이 그렇게 아주아주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언급한 책들 중 많은 것들을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이어서 샘이 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