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 섣부르게 말을 더하기가 조심스럽다. (바보 소리 들을까 겁남)  다만 나보코프가 권말에 한 말을 인용.


이 강의에서 나는 문학적 걸작이라는 놀라운 장난감들의 메커니즘을 드러내려고 애썼습니다. 여러분이 자신과 등장인물을 동일시한다는 유아적인 목적이나 삶의 지혜를 배운다는 청소년 같은 목적이나 일반화에 푹 빠지고 싶다는 학문적인 목적을 위해 책을 읽지 않는 훌륭한 독자가 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순전히 책의 형식, 비전, 예술만을 위해서 책을 읽는 법을 가르치려고 애썼습니다.  [...] 중요한 것은 어느 방면에서든 생각이나 감정의 설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설렘을 느끼는 법을 알지 못한다면, 인간의 정신이 내어놓은 예술이라는 귀하고 잘 익은 과일의 맛을 보기 위해 자신을 평소보다 조금 더 높은 곳으로 감아올리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인생의 가장 좋은 것을 놓쳐버리기 십상입니다. (663-664)



이 책은 강의록이니 만큼 언급되는 각 문학작품 들을 '미리' 읽고 자신의 생각을 (어차피 나보코프 선생님께서 다 깨부셔주시겠지만) 어느정도 정리한 다음에 읽는 것을 권한다. 나는 이 도서 목록 중 중요한 세 권은 읽지 않고 책을 만났고, 어버버버 하면서 따라 갔지만, 그래도 소설 읽기와 내 인생의 아직은 '가독성' 있는 시간에 감사했다. 2020년 이 *같은 시간에 이 책을 만나서 다행이다. 난 롤리타를 읽고 (그것도 영문, 번역본 두 편이나) 나보코프를 저주하고 있었지만 이런 두뇌의 인간이라면 조금은 살려두기로 (내 마음 속에서) 했다. 그리고 .. 내가 뭘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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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9-01 16: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지킬박사와 하이드씨> 부분만 읽었거든요. 저도 그 책들을 읽고 나서 나보코프의 감상을 읽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더랬습니다. 문제는 그 책들을 다 읽을 수 있겠느냐에 있겠습니다.
율리시스랑 맥주, 넘 근사하네요.... 뭐랄까요, 도전을 부르는 책두께라고 할까요? ㅎㅎ

유부만두 2020-09-01 17:01   좋아요 1 | URL
도전을 부르죠?!!!! 제가 저 책을 12년 전에 샀더라고요?!!!
충분히 숙성됐으니 이제 읽어볼까, 어쩔까, 생각하고 있어요.

나보코프의 문학 이해(향유) 방식이 유일한 길이라고는 생각 안하지만 중요한 점을 짚어주고 있어요. 역시 똑똑한 사람이에요. 수록작품들 읽고 다시 나보코프 읽고 싶어요. 결국 인생을 멋지게 즐기는 거!!!! 이런 느낌이 들어요.
 

<어린이 청소년>

스티커 별, 오카다 준/이경옥 역, 윤정주 그림, 보림, 2018

연동동의 비밀, 이현, 오승민 그림, 창비, 2020

아몬드, 손원평, 창비, 2017


<만화 그래픽노블>

은수저 1-14 세트, 아라카와 히로무, 학산문화사, 2017 

고래별 1, 나윤희, RHK, 2020 

책 좀 빌려줄래?, 그랜트 스나이더/홍한결 역, 윌북, 2020

나는 죽는 것보다 살찌는 게 더 무서웠다, 라미, 마음의 숲, 2019  

조지오웰, 피에르 크리스탱/최정수 역, 세바스티앵 베르디에 그림, 마농지, 2020

어제 뭐 먹었어? 1-6, 요시나가 후미, 삼양출판사, 2012 


<비문학>

Intimations: Six Essays, Zadie Smith, Penguin Books, 2020

삐삐 언니는 조울의 사막을 건넜어, 이주현, 한겨례출판, 2020 

여름 교토, 최상희, 해변에서 랄랄라, 2019

세계 학교급식 여행, 오진희, 안드레아 커티스/박준식 역, 소피 캐손 그림, 이본 데이폰푸어딘 사진, 내 인생의 책, 2013 

문학을 홀린 음식들, 카라 니콜레티/정은지 역, 매리언 볼로네시 그림, 뮤진트리, 2017

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김명남 역, 열린책들, 2016

나보코프 문학강의, 나보코프/김승욱 역, 문학동네, 2019  



<문학>

저주토끼, 정보라, 아작, 2017

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민음사, 2020

라이팅 클럽, 강영숙, 민음사, 2020

돌이킬 수 있는, 문목하, 아작, 2018



<영화 드라마>

인간실격 

겟 아웃 

인스턴트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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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09-01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대단하세요!!

유부만두 2020-09-01 12:25   좋아요 1 | URL
전 완독 기준으로 올려서요, 많은 책들은 예전에 시작해서 조금씩 읽다가 이번 달에 완독한 것들이에요. ^^

단발머리 2020-09-01 1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아~~~ 많이 읽으셨어요! 전 나보코프 시작은 했었는데... 쩝...

유부만두 2020-09-01 17:01   좋아요 0 | URL
잘 보세요. 만화책이 많다요?
 

이정호 작가 그림책과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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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안아키 카페로 시끄러웠을 때 막내가 이미 초등 고학년이었던 나는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뉴스를 봤다. 왜 과학을 불신하고 엉뚱하게 휘둘리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과학과 이성의 시대에.


이 책은 면역, 백신 주사에 대한 그러한 '일부' 사람들의 불신과 행동의 현상과 그 역사를 짚어보는 책이다. 저자가 자신의 아이를 출산하고 키우면서 숱한 불면의 밤, 숱한 고열과 병치례, 알러지 반응과 응급실 행을 함께 이야기한다. 내 경험도 소환되었다. 아이가 둘이면 곱하기 2. 


그래서 이 책은 무엇이냐. 


백신거부는 단순히 물질적인 문제만도 아니고, 인간의 면역계라는 개념은 언어적 철학적 비유로 고찰할 때 끝없이 심오해지며 백신의 역사는 문명과 학식 혹은 종교에서 무와 유 사이를 오갔고, '자연'이라는 것과 '화학', 혹은 '오염'이라는 개념은 전혀 반대의 이미지로 소비될 수 있으며, 의학 돌봄의 손은 여자에서 남자로 옮아 왔는데 그 속에서 세균과 바이러스 존재가 서서히 드러났으며, 침묵의 봄이 몰고온 후폭풍과 경제 불평등 속에서 질병 지도의 문제와 백신 음모론과 마녀와 어머니, 여성의 역사도 짚어보고, 드라큘라와 아킬레스, 캉디드 까지 우리가 아는 문학 예술이 실은 면역 이야기로 이해될 수 있는데 그래서 백신 주사를 맞히는 게 얼마나 중요하냐면...!!!! 


이런 책이다. 


나 자신은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지만 나의 경계를 신중하게 고려해야한다고. 나는 언제나 '우리' 안에 있으며 그 나, 우리, 그리고 타인에 대한 선을 긋는 것에는 더욱 그러하다고. 배웠다고, 읽었다고, 안다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이라고, 아니면 낙관적이라고 '자만'하지 말라고 말한다. 과학자라고, 의사라고 그 학위를 전적으로 믿을 수도 없다고 한다. 


이 책은 매우 재미있고 유려하며 설득적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다보면, 특히 아이 키우며 가슴을 천만 번 쥐어짰던 기억들이 되살아나고 아는 책과 역사 이야기에 반가워 하다보면, 잠깐, 나 지금 이렇게 어버버버 따라 읽어도 되는걸까? 나 이렇게 쉬운 독자였나? 하는 자기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놓을 수가 없다.


저자의 유려한 말솜씨에 끌려다니다보면 아버지가 의사고 본인은 공부 많이한 작가인 환자, 그가 보호자로 아이를 안고 (그것도 난산을 했던 첫 아이) 마주했던 소아과 의사는 얼마나 당혹스럽고 긴장될까 상상할 수 있다. 


지금 코로나 시대에 이 책을 읽으니 (책 안에도 이 바이러스 이름이 나온다) 나는 어디에 서있나, 생각하게 된다. 이 바이러스의 전염성과 위험을 알고 숙주나 전파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집 안에 머문다. 양심과 선의, 신념이 무엇이라 할지라도 몸이 하는 물질의 세계에서 세균과 바이러스는 다른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내가 어디까지 내 의지로 결정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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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8-28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의 경계에 대한 고민이 두드러지네요. 방역을 거부하고 동선을 거짓으로 말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오직 자신만의 ‘자유‘ 같아서요. 그 자유는 물론 나만의 자유겠죠.
예전부터 눈독 들였던 책인데 유부만두님이 유려한 글솜씨라 칭찬하시니 더 미루지 말아야겠다, 생각을 해봅니다. 밀려있는 책들이 많긴 하지만요 ㅎㅎㅎ

유부만두 2020-08-28 16:51   좋아요 0 | URL
밀려있는, 숙성된 책들이 한가득입니다. 그런데도 계속 책을 주문하는 건, 제 헛헛한 마음 때문이겠지요. 이 세상이 붙잡을 수 밖에 없는데, 어이 없게도 제겐 그 이유가 글쎄, 책이더라고요? 뎬당. 무슨 금요일이 팔월말이 나의 이어 트웬티 트웬티가 이래요. 엉엉엉.
 

내일 막내가 개학을 한다. 

개학인데 진짜 같지 않은 개학.

등교는 하는데 온라인 줌 등교를 한다. 

몸은 집에 있지만 정신과 마음은 (걸어서 십 분 거리의) 중학교 2층 3분단의 그 자리에 앉겠지.


거리를 두고 친구들이랑 팔꿈치 악수도 하고

쿨하게 턱짓으로 '카트 좀 했더라, 너?' 안부도 전하겠지. 


시간은 간다. 이 시절도 다 지나갈거다. 

나도 언젠간 이 업보 같은 점심 밥상에서 놓일 날이 있겠지.

그날을 위해 기록을 남겨 둔다. 


널 위해 내가 그 귀한 애호박전도 만들고 그랬다?

마지막 사진의 피처럼 붉고 맵던 비빔국수도 기억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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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8-24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유부만두 2020-08-24 15:59   좋아요 0 | URL
사진 잘 찍었죠?

잠자냥 2020-08-24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하나에 4천 5백원이라는 그 귀한 애호박전!

유부만두 2020-08-24 16:00   좋아요 0 | URL
저 땐 3천원 대였어요. 호방하게 한 개 다 부쳐버렸지 뭐에요!

수이 2020-08-24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날 똑같은 것만 해먹이는 제가 너무 부끄러워지는 화려한 음식들!!

유부만두 2020-08-24 16:00   좋아요 0 | URL
사진을 자세히 보세요. 메뉴가 돌고 돕니다.
제 비법은 한그릇 음식하기! 사진은 일단 찍어둔다!

단발머리 2020-08-25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아름답고 화려한 밥상이에요. 물개박수를 칩니다. 👏🏻👏🏻 👏🏻👏🏻👏🏻

유부만두 2020-08-26 07:36   좋아요 0 | URL
사이 사이 배달음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했습니다.
벗.뜨.
오늘 발표로 9/11까지 온라인 수업이네요. 다시 한 번, 기합을 넣고 식단 궁리 (한그릇 음식! 주기적 반복과 잔반 없기!)를 시작해야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