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쪽의 얇은 책인데다 여러 챕터들로 나눠져 있어서 한 편의 소설을 읽는다기보다 여러 장의 쪽지, 스케치, 기억의 단편들을 화자와 함께 더듬는 느낌이다. 병원에서 9주 동안 있던 경험으로 시작해서 화자의 어린시절로 돌아가는데, 하나씩 꺼내 "생각하고" "느낀" 기억들은 아프고 슬프다.

 

Lucy는 글을 적어 내려가면서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자신이 만나서 '관계'를 만든 사람들을 기억하고 자신의 인생, 글쓰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미국 중서부 옥수수밭 돼지농장 옆에서 자라던 소녀가 뉴욕에 가서 자리잡는 인생성공담이 아니라 소녀가 만난 사람들, 책 속에서 만난 인물들, 성장기에 만난 사람들과의 단편적인 기억들이 모여서 책을 엮어나가고 있다. 그 결과가 이 책이고, 자신의 인생이고, 자신의 이름 Lucy Barton을 또박또박 적는 일이다. 작년에 읽은 아룬다티 로이의 책이 전통, 여러 세대의 업보와 역사가 겹겹이 무겁게 쌓여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폭발한 이야기였다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책은 여러 인물들 각자의 사연이 주인공과 만나 생기는 인연과 에피소드들이 하나하나 작은 구슬처럼 엮여 반짝거린다. 얇은 책이라 금방 읽었지만 다시 읽어야만 할 책이다. 이제 나는 첫 장부터 화자를 Lucy 라고 불러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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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1-31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잠실 교보에서 이 책 찾아보려 검색했는데 재고 없대요 ㅜㅜ

유부만두 2016-01-31 13:31   좋아요 0 | URL
교보 온라인으로 찾으셔야하나봐요... 그래도 교보는 17000원대에요. 알라딘은 3만원 넘고요;;;
이 책 읽으세요~ 문장이 수월하고요 천천히 읽으시면서 생각하기 좋아요♡

nodiggety 2016-07-13 1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짧아서 하루 안에 읽었는데 정말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작가의 다른 책들도 꼭 읽어보고 싶어요.
 

예전에 표지가 예뻐서 사둔 영어 하드커버 책들을 읽고 있다. 그런데 같은 주제 (헨리 8세의 부인들)로 우려내기를 하는 앨리슨 위어의 책은 문장이 평이해서 빨리 읽을 수는 있지만 재미가 없다. 중학 영어 수준 정도. 인물의 심경 묘사도 단순하고 사건은 이미 아는 것들이라 마음은 자꾸만 달아난다. 그래서 책을 덮고 (!) 새 책을 시작하기로 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My Name is Lucy Barton". 얇고 넉넉한 편집에 울퉁불퉁한 페이지 단면은 의도된듯 예쁘다. 표지 그림 대로 뉴욕이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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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1-30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어책 독후 기대하겠습니다~

유부만두 2016-01-31 09:02   좋아요 0 | URL
네~ ^^
 

과거로 돌아가 끔찍한 사건을 막아낼 수 있다면, 그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 직전으로 돌아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여행 관련 영화나 책을 볼 때면 종종 상상하곤 한다. 내가 했던 멍청한 결정들, 그래서 벌어진 끔찍한 일들. 하지만 이젠 어쩔 수 없지.

 

이 책에서 네 명의 초등 6학년 어린이들은 신기한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시계를 받고, 과거로 돌아간다. 그 끔찍한 일이 막 벌어지려는 순간에. (스포는 나쁩니다요) 어린이가 주인공이니 고민도 어린이의 수준에 맞추었겠지만, 초등 3학년생인 우리집 막내가 흥미진진해 하며 읽는걸 보니 6학년생들에게는 조금 시시할지도 모르겠다. 자기 잘못이라는 생각, 어린이들이 가족 문제에 갖는다는 죄책감이 유난히 강조되는 이야기들이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고 무슨 힘이 있다고 6학년 아이들이 더 어릴 적 자신의 행동을 곱씹는다. 부모의 눈으로 읽자니 울컥하게 되는 부분이 많다. 특히 희주 이야기. 하지만 세은이의 경우, 왕따, 라는 문제는 조금 더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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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작가 설터의 '인본주의'라는 '광고'를 믿지 말았어야 했다. 태평양전쟁 중 긴급한 상황의 배 위에서 시작한 청년 필립 보먼의 인생은 그를 아껴주었던 이모의 장례식장을 나서는 산책길에서 연인과의 대화까지 이어진다. '그'라고 지칭하지만 주인공 필립의 '1인칭 주인공 시점' 소설이다. 작년에 읽은 <스토너>가 생각났는데, 곧 머릴 흔들었다. 어딜 감히.

 

청년기부터 중년기까지, 이제 무릎 아래 빈약한 다리를 연인 앞에 보이길 꺼려지는 나이까지 이어지는 팔자 좋은 한 남자 이야기다. 한 문장에 인생의 큰 사건이 하나씩, 사망과 이별이 툭툭 실릴만큼 시크한 소설이지만 계속 이어지는 여인과의 만남과 밀월에는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런데 설레지는 않는다는 게 함정) 새로운 인물이 등장할 때면 집안 배경과 결혼 이력, 그리고 재산 정도가 두세줄 이력서 처럼 따라온다. 대화는 짧고 (역시) 툭툭 끊어져서 인물들 사이의 교감은 없다. 역시 시크함. 이런게 노작가 설터의 인생 회고 방식이려나. 60, 70, 80년대의 뉴욕의 (소위) 지성인 혹은 출판인들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기대했는데, 멍한 표정의 표지 여인 만큼이나 답이 없는 소설이다. 중반부 부터는 돌림노래 가사를 읽는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끝까지 읽었으니 할 말 없다. 그저, 인생무상? 눈을 씻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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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6-01-2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바마 대통령이 읽는다고 한 소설이 이것이던가요????

유부만두 2016-01-27 18:29   좋아요 0 | URL
글쎄요. 몰랐어요. 전 광고 문구랑 별점만 보고 샀던 책인데 완전 속은 기분이에요. ㅠ ㅠ. 100자평 다시 보니 성의없는 별다섯이 많네요...
 

비슷한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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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6-01-26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표지 진짜 많아요ㅠㅠ

유부만두 2016-01-27 16:59   좋아요 0 | URL
그렇죠?

껌정드레스 2016-01-27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제 사라마구의 <카인>과 르네 지라르의 민음사판 <희생양>도 비슷해요. 같은 화가의 그림을 바탕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유부만두 2016-01-27 17:00   좋아요 0 | URL
같은 그림을 표지로 하는 경우는 많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