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나란히 앉아서 가끔 손을 잡았고 스치는 팔꿈치에 서로를 곁눈질 하며 웃었지. 공룡이 쑥 튀어 나와서 무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포효할 때 네가 알려준 악동뮤지션의 노래 '다이노소어'를 떠올렸어. 뜀박질로 도망갈 때면 내 두 발과, 옆의 네 두 발은 함께 달음박질 쳤쟎아. 내가 네 박자에 맞춘거 혹시 눈치 챘니? 팝콘 상자 안에서 살짝 닿은 네 손은, 따뜻했지. 너 영화 보는 동안 두 번, (15분, 그리고 한시간 즈음에) 내 어깨에 기대더라? 내가 모르는줄 알았지?

 

많은 사람들이 일어서서 나가고, 크게 울리는 영화 음악 속에 올라가는 길고 긴 크레딧 영상.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십 초의 보너스 영상. 허무하기도 또 상상과 기대를 해보기도 했어. 저 다음 영화를 너랑 또 같이 볼 수 있을까?

 

내가 얘기 했지? 쥐라기 공원 1탄을 예전에 고속버스터미널 옆 극장에서 봤었다고. 그땐....미안해. 94년인가 95년이야. 다른 남자랑 봤어. 니 아빠야. 아, 물론 결혼 전이라 아마 데이트라는 의식을 했었나봐. 아냐 아냐, 그땐 팝콘 안 먹었어. 진짜야. 새우깡일껄? 하지만 너를 알기도 전의 일이니까, 네가 화를 내도 할 수 없어. 나의 과거를 인정해줘. 진짜 사랑은 그런거 아니니.

 

그런데, 넌 영화관을 나와선 나한테 말도 안하고 갑자기 핸드폰을 켜더라. 그리고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내는 것 같았어.네 카톡 플필엔 금세 공룡 블루 머리랑 남주 얼굴이 올라있네? 나랑 같이 본 건 티 안났어. 괜찮아. 안 섭섭해. 니 아빠도 같은 마음인거 같더라 뭐. 애들 키우니 다 똑 같다고. 다음엔 너 빼고 아빠랑 둘이서 영화 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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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6-15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 남자와 돌아가며 영화볼 수 있는 유부만두님이 저는 그저 부러울 따름입니다. ^^
언제 저와도 영화관 데이트를 해주시겠습니까? 그때는 그 뭐지.. 길어서 달달한 그 과자 먹으면서요. ^^

유부만두 2018-06-16 08:46   좋아요 0 | URL
영화들이 제 취향이 아니란 것이 아쉽기는 하죠. ^^
그리고 새우깡은 짭짤한 맛으로 먹습니다. 설해목님께선 단맛을 더 즐기시니까 캐러맬 맛 팝콘을 준비할게요.

psyche 2018-06-19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과 단 둘이 영화관 데이트라니. 아 달달해~ 울 아들놈은 나랑 영화 안볼텐데 부러워~

유부만두 2018-06-23 09:02   좋아요 0 | URL
둘 아니고요... 막내 양 쪽에 남편이랑 앉았었어요. ㅎㅎㅎ
정신 없는 공룡영화였어요. 아직은 초등학생이니까 데리고 다니죠.
 

나성에 가면~ 편지를 보내세요~ 뚜리뚜바~

이 노래를 아신다면, 그대는 이미 구세대! ^^
하지만 그 구세대의 쿰쿰한 냄새를 버리고 싶다면,
바로 이 베이징 레터를 읽으시라! 

뻥도, 세상에 이런 뻥을!
것도 깜빡 속아 넘어가게 만드는 생생한 디테일에
기하급수적, 아니 구구단 곱배기로 늘어가는 스케일!
거기에 절대 빠지지 않는 라~브 스토리!

오시라, 개봉 이미 하셨음!
쇼핑광이시라면, 한정 판매?!!! ^^

...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 해피 엔딩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단, 이 책을 덮을 때 쯤,
거창한 뻥을 하나 터뜨리고 싶은 부작용이 생깁니다.
주윗분들은 조심하셔야할 듯!

2010.4.

 

팔 년 전에 남겨두었던 짧은 메모를 꺼내어 올려본다. 큰아들 면회 다녀오고 막내랑 공룡 영화 보고 나니 하루 해가 다 갔다. 사전투표를 한 것은 나의 선견지명이었네.

 

어제 만난 '별마당'은 별세상. 많은 사람들이 책을, 진짜 책을 들여다 보고 있다니! 다음주에 열릴 도서전엔 매년 안간다, 하면서 간 것 처럼 또 가서 팔 아프게 이것저것 사모으겠지. 도서전에서 쌓아놓고 정가로 파시는 책들은 개정판이 아닌 것도 섞여있어서 조심해야 하는데, 일단 나는 책 더미에 둘러싸이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지갑을 열어버림. 책이여 오라, 이런 마음이라.

 

지금 바로 여기, 라는 생생함으로 sns에 올리는 사진과 메모들. 마음만 먹으면 다른 장소에서 전혀 다른 상황에서 꾸밀 수도 있겠지. 바로 '베이징 레터' 처럼. 어제의 나는 코엑스 별다방에 들러 사진을 찍었다. 진짜? 지금 나는 우리 집 컴 앞에 앉아있는데.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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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6-14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엑스에서 찍으셨다 생각하는 일인!

라로 2018-06-14 15:36   좋아요 0 | URL
참! 넋이라도 있고 없고,,,보니까 저 시조를 자주 읊는 제 남편아저씨가 생각나네요.ㅎㅎㅎ
이번 여행에도 뜬금이 있든지 없든지 읊더라고요.ㅎㅎㅎㅎㅎㅎㅎㅎ

그나저나 저 책 읽고 싶어욥!!!!ㅠㅠ

유부만두 2018-06-15 10:05   좋아요 0 | URL
‘단심가‘를 외우신다니 절개가 굳으신 분이시군요. ^^

코엑스에 갔었지요!. 딩동댕.
별광장은 정말 대단한데....뭐랄까, 책이 더 멀게 느껴지는 것 같고 어색하고 그랬어요. 하지만 사람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책을 즐기는 거겠죠? ^^

저 책 재미있습니다. 독일작가 소설이니 영어 번역판도 있을거같아요.

목나무 2018-06-1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성에 가면~~~ 계속 노래부르고 있는 일인! ㅎㅎ
저도 간만에 도서전엘 가볼까 하는데...... 과연 그날의 귀차니즘을 어케 해결할지가 미지수네요. ㅋㅋ

유부만두 2018-06-15 10:07   좋아요 0 | URL
해목씨도 내 또래인가 봉가.
벌써 다음주말이네! 난 안가려고...... (정말임)

psyche 2018-06-19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마당 꼭 가야지!

유부만두 2018-06-23 09:02   좋아요 0 | URL
별마당 ..... 가실 때 콜 미 프리즈.
 

'야성의 외침'을 아주 오래전에 읽었는데, 화자가 개였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 착하고 순하게 꼬리를 흔드는 개가 아니라 채찍을 맞고 얼음 위를 지치며 야성을 품은 개.

 

잭 런던의 단편집에서 '삶의 법칙'을 골라 읽었다. 선거 휴일 아침, 인간의 복잡한 삶을 생각한다. 이게 다 뭐람. 어차피 살다 가는 인생. 북아메리카 원주민 코스쿠시도 그렇게 생각한다. 차가운 날, 매서운 바람을 가죽을 뒤집어 쓰고 모닥불 앞에 앉아서 고스란히 맞고 있다. 아들과 손자 손녀들은 천막을 접고 짐을 꾸려 썰매에 동여맨다. 그리고 개들에게 채찍을 휘두른다. 아들이 온기어린 손을 코스쿠시의 머리에 얹으며 이별을 고한다. 그들 방식의 장례. 곁에는 손녀가 준비해준 장작더미. 마지막 잎새가 되는 장작더미와 함께 얼음 위에서 코스쿠시는 커다란 삶의 법칙을 따라야한다.

 

이젠 앞도 보이지 않는 눈은 이미 역사 속으로 앞서 가고, 어린시절 발자욱을 따라가며 보았던 늙은 사슴과 늑대떼의 사투를 기억에 펼쳐놓는다. 두어번 쓰러지고 반격하고 다시 내달린 사슴. 발굽으로 강하게 떨궈낸 늑대를 짓밟은 사슴. 사슴의 발 자국과 눈 위에 남은 자취 위에서 생생하게 떠올리는 삶의 의지. 눈 위에 번진 피. 생생한 기억만큼 지금 코스쿠시도 목숨줄을 붙잡고 한 번 더 싸울텐가. 싸우면 달라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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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따와 덧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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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작가의 단편집 제일 앞에 실려있는 '우리들의 움직이는 성'을 읽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애니매이션이 자동 연상되는 제목은 6학년 봄,자신은 '지극 평범'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현경이의 이야기다. 2학년때 전학갔던 아이 상우가 5학년 2학기때 돌아오고 지금은 한반이다. 예전의 울보꼬마는 없어지고 키도 크고 듬직하며 책도 읽는 멋진 아이가 되어있다. 그런데 상우가 '사귀자'며 문자를 보내고 엉겹결에 그러기로 했다. 둘이서만 비밀로.

 

6학년인 우리집 막내는 지난 겨울방학 이후로 키가 쑥쑥 크고 있다. 형 제대 전에 형보다 더 커버릴것만 같아서 일등병은 나라 지키느라 동생 견제하느라 바쁘다. 손과 발이 비율에 맞지 않게 커서 우스꽝 스럽기도 하지만 (하지현 샘 책 '지금 독립하는 중입니다' 에 보면 그렇게 크는거라고 나옴) 변성기 목소리로 '엄마....' 할 땐 징그럽기도, 섭섭하고 아쉽기도 하다. 아, 이 아이도 이렇게 크는구나. 그럼 그 다음엔.... 중2병과 미친 사춘기구나. 수염도 올라오고 있으니 ... 걱정과 고민이 늘어나지만 안그런척, 아이가 혼자 태블릿 기계로 유툽을 볼 때면 옆에서 슬쩍 엿보거나 나중에 검색기록을 뒤진다. 아이야, 네가 자라는 것이 당연하지만 더럽고 지저분한 걸 네 눈과 머리에 넣지 말아줘.

 

'하울의 움직이는 城'에서 하늘을 걷는 하울과 소피처럼, 그날 오후 소파 위에 나란히 앉은 현경이와 상우. 그리고 깜짝 놀랄 사건. 우리들의 움직이는 性. 엄마와 성애 언니의 참견과 눈치도 힘들고, 변해버리는 자신과 상우의 모습과 관계도 버거운데 봄날 우수수 떨어지는 벚꽃잎 처럼, 한바탕 웃음으로 현경이는 '울보 땅꼬마' 상우를 기억해낸다. 하울이 소피의 모습을 알아봐준 것 처럼. 푸른 봄, 계속 자라나는 아이들, 그 안에 작은 꼬마를 불러낼 수 있다면 그리고 지금 훌쩍 큰 덩치와 만나게 해 준다면 다들 덜 힘들지도 모르겠다. 현경이나 상우의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이 아이들 몫이다. 쑥쑥 크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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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2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3 0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psyche 2018-06-19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J양이 동생 N양이 쑥쑥 자랄때 그랬었지. 너 크려면 나보다 확 커. 어설프게 1인치 이정도 차이나지 말고. 그랬는데 결국 J 랑 N의 키차이가 딱 1인치 ㅎㅎ
이상하게 동성의 형제가 있으면 둘째가 첫째보다 큰 경우가 많더라구. 나도 그렇거든.
중2와 미친 사춘기...그분은 왜이리 자주 오시는지 흑 할말이 많아 ㅠㅠ 딸들이 얼마나 착했는지 뒤늦게 깨닫는 중

유부만두 2018-06-23 09:04   좋아요 0 | URL
하아......사춘기는 ... 네버 엔딩인가요....
이제 시작인 막둥이를 어찌 감당할지 엄두가 안 나요. ㅜ ㅜ
일단 싸우려면 체력을 길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