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도둑 한빛문고 6
박완서 글, 한병호 그림 / 다림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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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완서 선생님 책은 이것 저것 조금씩 읽었는데, 동화집이 따로 있는 것은 이번에 알았다. 실린 단편 중 "달걀은 달걀로 갚으렴"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작품이다. 표제작 "자전거 도둑"은 중학교 교과서에 전문이 실렸다. 동화집이라지만 내용이나 (고생하는 주인공 때문이 아니라) 어휘가 만만하지 않다.    


자전거 도둑이라해서 배달하는 주인공 수남이의 자전거를 누가 훔쳐가는, 중국 영화 "북경 자건거"의 한국판 쯤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근본적인 양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바람이 몹시도 불던 날, 배달과 수금을 하고 돌아오던 수남이 자전거가 고급 승용차와 부딛힌다. 그리고 (아마도) 작은 흠집을 그 차에 만들고 만다. 차 주인은 자전거에 자물쇠를 채워 놓고는 돈을 가져와야 자전거를 돌려주겠노라 하고, 수남이는 구경꾼들이 "들고 튀어!"라는 응원(?) 속에 자전거를 "도둑처럼" 들고 뛰어 가버린다. 

하지만, 수남이는 자기 속에 일었던, 뭔지 모를 쾌감과 자물쇠를 끊어주는 가게 주인 아저씨의 똥빛 얼굴이 역겹다. 그리고, 진짜 도둑이었던 형을 생각했다. 고향에선 시원하고 멋지게 불던 바람마저 더럽고 불편한 것이 되어버리는 서울, 뜻모를 은행 이야기로 돈을 안 주고, 받으려고 버티는 장사치들, 그들의 욕심어린 똥빛 얼굴, 그리고 도둑질의 쾌감... 정말 수남이가 도둑질을 한 것일까. 교과서 내용을 보자면 "갈등의 해결법"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쉬운 글이 아니다. 박완서 선생님은 이제 막 어른이 되려는 열여섯 수남이에게, 깨끗한 청년의 밝은 마음을 지켜주기를 간절히 바라셨나보다. 그래서 이런 양심의 경계선에서 벌어지는 사건에다 "도둑"이라는 강한 제목을 붙이셨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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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조선의 영웅들 - 시대를 풍미한 도적인가, 세상을 뒤흔든 영웅인가
이희근 지음 / 평사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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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아이와 함께 홍길동전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의적"과 "영웅"이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 주인공 홍길동이 실제로 존재했었지만  그는 민중을 위한 의적이 아니라 불량잡배와 다름 없었다는 해설을 읽고 나자, 역사상의 영웅들이 더 궁금해졌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영웅들 중 홍길동, 임꺽정, 홍경래, 전봉준, 박지원, 그리고 대원군을 역사적 기록에 근거해서 파헤친다. 영웅의 전설(?)은 그들의 행적이나 철학이 아니라 영웅을 간절히 바라던 시절 덕에 만들어 졌단다. 부패한 관리들과 양반들 아래에서 숨통을 틔여준 소설 속의 장길산이나 홍길동은 도적이 아닌 민중 영웅이고, 양반 사회의 질서 옹호를 주장한 박지원이 양반 사회를 비판한 신분해방자가 되는 식이다. 하지만 서론에서부터 여섯 영웅들의 실체를 밝히고자 하는 저자의 욕심은 글의 흐름을 조절하는데 방해가 되는 듯하다. 두어 단락만 읽어도 저자의 주장은 알겠는데 글을 읽는 재미가 떨어지고 책 전체를 아우르는 "영웅 신화 깨기" 같은 큰 울림은 찾을 수가 없다.  

차라리 전반부의 세 도적 혹은 영웅에 집중해서 그 시대 고달팠던 민중들의 삶을 더 파해쳤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절로 우리도 영웅에 박수를 보내고 있을까. 책 후반부로 갈수록 역사 기록과 동떨어지는 설명이 많고 결론 부분도 없이 갑작스레 책이 끝나고 나자 허무감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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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서 31쪽 하단에 나오는 임꺽정 무리에 대한 비판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공권력에 대한 모든 도전 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임꺽정 무리가 가령 프랑스혁명처럼 어떤 새로운 사상을 가지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모르거니와 단순히 도둑질의 대상이 국가기관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의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 것이다."  
   

저자가 비판해 마지 않는 기존 질서 옹호, 양반 신분 제도 보호의 한계야말로 프랑스 혁명도 가졌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영웅의 가면 벗기기가 주제였지만 우리 영웅들에게 대는 잣대가 매우 엄격해서 진정한 신분질서 해방과 민중 사랑을 실천하는 영웅이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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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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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 국민당 군대에 끌려가서 우왕좌왕하는 주인공의 모습까지 본 다음 책을 접고, 영화를 먼저 봤다. 그리고 잊어두었다. 그리고 오늘 오후, 도서관 책이기에 부지런히 읽어내려갔다.

휴전 상태인 곳을 찾아 열어보니 그새 푸커이는 친구도 만들었고 얼렁뚱땅 해방군에 합류한다. 
아이들에 대한 퉁명스러운 말과 행동이 그만의 자식사랑이라 생각하니 마음 한 켠이 짠했다. 그리고 영화의 비극이 적어도 책에서는 덜하겠거니, 하는 소망이 있었다. 아, 그런데, 유칭이 종종 거리면서 뛰어다니는 시골길, 그 아이가 양을 먹이고, 달리기하고, 사탕을 먹고, 앞장서서 헌혈을 하는 .... 그리고 푸커이에게 안겨 돌아 오는 장면 들에서 나는 엉엉 울어 버렸다. 
 
위화의 인물들의 계속 인생에 (운명에) 당하기만 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지만, 나는 그 속에서 어쩌면 더 깊은 슬픔과 진한 인생 철학을 보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아이가 죽었고, 그 어미 아비의 마음에 곁다리로 슬픔을 나누었다. 

너무 울어서 눈이 쓰라리다. 머리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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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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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안소영씨가 스물한 살 난 이덕무라는 선비의 자서전 <간서치전 (看書痴傳)>을 중심으로 그와 책 사랑을 나누고, 서자라는 신분의 제약과 좁은 양반 사회의 편견 속의 답답함을 나누었던 그의 벗들에 대해 적은 책이다. 

 초반부 그의 책 사랑 이야기는 재미있게 읽을 수도 있었지만 뒷부분으로 갈 수록 늘어진다. 이 책이 청소년 독자를 겨냥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책의 구성이나 내용을 이해하기 쉽다. 지금, 그들의 갑갑함, 그들의 울분을 책으로 글로 참고 풀어낸 옛사람들을 기억하자는 뜻일게다. 특히 우리 땅을 사랑했던 선비들 아니었나. 하지만 얼마전 읽은 <만들어진 조선의 영웅들>이 꼬집었듯, 18세기 중반의 선비들이 바라던 문명과 변화는 서자들을 용인하고 기회를 주는 정도였다. 북학파 선비들의 한계를 그저 책사랑과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포장하는 듯해서 갑갑하다. 

 독한 책 사랑을 보이는 선비들을 보고나니, 나는 바보 축에도 못 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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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 - 천 년의 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 키워드 한국문화 1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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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고등학교 시절, 미술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실려 있던 그림, 세한도.
어설퍼 보이는 붓질과 구도가 맞지 않는 집 그림은 "문인화"의 정형으로 꼭 시험 문제에 나왔다. 색채와 유려한 구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신을 보아야 한다던 선생님의 말씀은 이 그림을 남긴 추사 김정희 선생을 다른 그림들 (특히 풍속화)을 낮추어 깔보는 양반의 대명사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애석하게도.

 다시 만난 세한도는 나의 단순한 이분법이 얼마나 성급했나를 차근차근 깨닫게 해 주었다. 세한도의 어설퍼 보이는 구도의 집과 그 주위를 감싸는 네 그루의 나무들을 붓을 놀려 그리고 정성껏 글을 짓는 추사의 상황과 마음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먼저, 추사는 누구였을까. 왕족의 일원이었으나 누명을 쓰고 귀양살이를 했던 인물. 과거 시험 공부보다는 노자를 읽고 실학 사상에 관심을 두었으며, 단 한번의 연경여행으로도 청나라 학자들 사이에서 이미 열린 차세대 조선 선비로 이름을 알린 사람. 역관 이상적과의 우정을 통해, 어려운 처지의 자신을 위해 책을 구해주는 그에게 세한도를 남긴 사람. 책을 좋아하고 글을 사랑하고, 학문을 통해 맺어진 친교는 국경과 거리를 불문하고 중요하게 여겼던 사람. 

 추사는 머나먼 제주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벗 김유근과 부인의 부고를 듣는다. 게다가 서울에서 평안할 적엔 찾아들던 그 많은 문인들이 멀어지는 '세상의 이치'도 몸소 겪는 중이었다. 이렇게 황량하고 추운 시절, 그에게 변치않는 우정으로 책과 소식을 전해주는 이상적이야말로 매일 매일 살아가는 이유였을 게다. 

 친절하고 꼼꼼한 문장으로 이뤄진 이 책은  저자 박철상 선생의 연구와 노고를 발판으로 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림의 종이질과 화법 (서양 유화에만 겹쳐그리기가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그리고 인장에 대한 해설은 세한도를 그저 의미만 따지는 '문인화'가 아니라 그 너머를 찾아보게 만든다. 또한, 세한도에 곁들인 추사의 글, 청나라 문인들의 제영 (그림에 덧붙인 지인들의 감상문), 더해서 일본에 건너 다녀온 세한도를 다시 만난 오세창, 정인보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 감동은 더해만간다. 이들의 세상사를 초월한 글 사랑, 학문 사랑, 우정에 나도 묻어만 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그렇다면 이 힘든 세상, 나도 힘이 솟을 것만 같다. 비록 내가 창문 하나만 달린 쓰러져 가는 오두막에 있더라도 말이다. 창 밖의 소나무와 잣나무가 흰 눈위에 청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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