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위화 지음, 조성웅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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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화라는 작가의 글로는 두 번 째, 소설의 형태로는 첫 만남이다. 다섯 단편 소설의 묶음과 저자의 말, <나의 문학의 길>이 실려 있다. 전에 읽은 수필집도 작가가 편집에 공을 들인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 그는 각 나라의 번역서 마다 새로운 저자의 말을 쓴다 - 이번 <나의 문학의 길>도 그런 배려가 보인다. 

각기 다른 단편들이 (배경이 항상 여름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의미의 원제 <炎熱的 夏天>의 오늘날 중국을 사는, 또 한국을 살아 내는 우리 모습을 보여준다. 이야기 마다 메마른 일상 속, 범부들이 두려워하는 (하지만 동경도 하는) 흔들림이 찾아온다. 소심한 속물들을 비꼬는 내용이 대부분이지만 다행히 그 시선이 잔인하거나 매섭지 않다.

 

간결한 문장은 독자의 시선과 상상력을 편안하게 다그치지도 않고 마냥 늘어지지도 않는다. 구질구질하게 감정에 호소하거나 끈적거리는 미사여구가 없다. 이 무더운 여름 날, 읽고 나니 내 마음 속 시원한 바람이 분다. 당연히 아직 못 만났던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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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무렵
정양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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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매일의 시간, 책 읽는 짬짬이, 살림하는 짬짬이, 아이들 커가는 속도에 놀라고, 내 늙은 몸에 놀란다. 그리고 한결같은 세월과 계절에 놀란다. 겨우 마흔에, 허, 하고 시인 정양 선생님은 웃으실지도 모르겠다.

첫 부분에는 세시풍속을, 뒷 부분에는 잘 여문 인생의 시간에 대한 명상을 담았다. 무거운 인생의 시인데도 수월하게 소리내어 읽을 수 있고 여러번 읽을 적 마다, 그때 그때 다른 감동으로 남는다. 한 동안 내 가방 속, 잠드는 배게 속에 품어야겠다. 내년 복날 때 까지 일년 동안 두고 읽으면서 세월 속에 나를, 아직 철이 덜 들어 나잇값 못하는 나를 다독이고 싶다. '입추'에서 시인이 말했듯 나도 '한평생 헛것에 매달려 산다는 걸 나는 영영 깨닫지 못할 것만 같다. 하지만, 뭐 어떠랴, 곧 단풍으로 온 산이 물들고, 온몸이 성감대 였다는 그 불타는 산을 바라보면서 '상강2'를 읊을 수만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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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 문학동네 동시집 7
김륭 지음, 홍성지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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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시집 읽기가 당황스럽고 내 속을 들킨 것 마냥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시치미 뚝 떼고 읽어야지. 이건 시집이거든. 이미 세상에 찌든 아줌마의 딱딱한 머리를 들켜서는 안 돼. 이번 기회에, 초등학생 아이와 통하는 엄마가 되고 싶어. 자, 마음을 비워보리라.

시집 제일 첫 머리에 시인은 어려운 시라고 했다. 여러 싯구에서 힘이 빠지기도 또 긴장이 되기도 했다. 엄마가 없는 딸 아이에게 엄마, 아빠가 다 되어 주었다는 시인 김륭 선생님의 설명 탓인지, 아니면 팥쥐 어멈 저리가라고 고약을 떠는 (특히 방학 때면 그 정도가 울트라 캡숑 특급이다) 내 양심이 찔리는 건지, 이번 시집에선 유독 생활에 또 삶에 쩔어 있는 엄마, 어머니들의 얼굴이 많이 보인다. 본디 동화나 동시에서는 자상하고 너그러운 엄마나 어머니만 있는 법 아니었나? 하지만 김륭 시인의 세상은, 지금 여기, 우리가 사는 곳이다. 나무도 풀도 과일이랑 개구리, 고양이, 개 ...모두 있지만, 다들 우리 식구가 사는 작은 집을 둘러싸고 있다. 자연도 인간이 사는 곳의 연장이고, 인간의 옷을 입고, 인간의 말로 장난질을 친다. 억지로 예쁜 척을 안하는데도, 예쁘다. 시를 쓰는 눈과 입도, 아이의 눈일까, 아니면 아이와 함께 읽는 부모의 눈일까, 삶과 생활을 함께 담고 있다. 정겹고 친근하다. 완벽한 추억과 깨끗한 자연이 아니라서 좋다.  

시집 속의 엄마들은 잔소리가 많다. 그래서 ‘잎이 많은 풀’이 된다. (밥풀의 상상력) 엄마는 집안일로 종종거리다 강아지가 마당에 똥을 싸는 꼴을 보자면 ‘누렇게 신문지처럼’ 얼굴을 구기고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낸다. (맛있는 동화) 나른한 오후, 엄마는 아이들이 장난감이나 게임기를 사내라고 졸라도 대꾸도 없이 누워있다. 엄마 뱃속에서 나는 꾸루룩 소리를 들으면서 아이들은 그 ‘산 만한 배를’ 베고 논다. 엄마는 아침부터 돼지고기, 점심에는 고등어를 챙겨 먹고, (아니, 아이들에게 챙겨 먹이고) 잠시 누웠겠지. 그덕에 아이들은 원기충천해서 엄마 배를 타넘고 장난도 친다. (게임기) 엄마가 벌떡 일어나 혼이나 내지 않을까 웃음이 났다. 사이좋게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외출한 날, 장난감 가게 앞을 지나자면 무당벌레 푸르르 거리듯 발랑 뒤집어 지면서 떼를 쓰는 아이들이다. (무당벌레) 하지만 엄마와 아빠가 손잡고 다니면서 매일 사이가 좋은 건 아니다. 둘은 ‘따로국밥’ 이고 ‘심심하면 티격태격’ 싸운다. (부부 안경점) 아빠의 퇴근이 늦는 날이면 엄마는 ‘엄청 열 받’아서 칼등으로 동생 머리통을 쥐어박을 지도 모른다. (수박이 앉았다 가는 자리) 늘 방 한 가운데 앉는 아빠 앞에서 엄마는 부엌칼을 들고 과일 앞에 선다. (수박 대통령)  왜, 엄마는 ‘아빠가 지겹다’고 할까. (3학년 8반) ‘하루빨리 전셋집 벗어나고 싶은 엄마 가난한 마음’ 탓인가 보다. 아빠가 술에 취해 늦은 밤, 아빠의 신발은 뒤집어져 있는데 엄마는 그냥 놔 둔다. 그리고 양말도 못 신고 나서는 아빠의 발가락은 애벌레 마냥 처량하다. 힘은 세겠지만 말이다.(애벌레 열 마리) 얼핏,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하는 노래가 생각난다. 그런데, 그 노래를 아이들 옆에서 같이 부르는 엄마의 눈초리가 매섭다. 아빠가 외박이라도 하면 엄마는 밤새 눈에 불을 켠다. (낮달)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날이면 아이는 ‘엄마 아빠 눈빛 마주칠 때마다 털이 빠지는 미운 오리 새끼’ 가 되 버리고 만다. (미운 오리 새끼). 이 오리가 백조가 되어 훨훨 날아갔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미운 오리 새끼는 아직 어린 아이일 뿐이고, ‘꽁지 빠지도록 새끼들 찾아’ 가는 어미새를 기다려야 한다. 자식들 먹이려 벌레 잡는 어미새는 훌쩍 떠나버린 엄마 대신 그려보고 싶은 모습이었을까. (달려라! 공중전화) 601호 코흘리개 새봄이는 6층에서 1층으로, 또 6층으로 엄마만 기다리면서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린다. 코도 닦지 않고 엄마만 기다리는 꼬마는 잔소리 하는 엄마라도 그립겠지. (코끼리가 사는 아파트) 월말이면 이런 저런 세금 고지서를 안고 은행으로 향하는 엄마, ‘노란 잎사귀 무성할수록 걱정도 많겠지만 몸은 무겁고 머리 복잡하겠지만 씩씩한 우리 엄마’ , 두 아이를 은행알 처럼 품고 찬바람에 맞서는 엄마의 든든한 품 속을 그리고 있겠지.(은행나무) 그래서, 툭하면 잔소리에 무서운 눈을 뜬 엄마지만 ‘수진아’ 하고 부르면 발이 보이지 않게 데굴데굴 구르며 뛰며 달려온다. (소리로 만든 운동화) 

재미있는 시,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은 시, 아름다운 시, 귀여운 시, 중에서 요즈음 내 생활을 가장 잘 그려내 주는 시는 단연 <여름방학>이다. 시인의 모기와 매미에 해당하는 꿀벌 두 마리가 우리 집에서 붕붕 날아다닌다. ... 오늘 하루만이라도 소리지르지 말아야지, 저 어린 꿀벌들에게 못된 대마녀가 되지 말아야지, 다짐해본다. 그리고 커다란 부엌칼을 집어 든다. 냉장고에 든 수박을 쩍 갈라서 두 아이들에게 먹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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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의 여왕
백영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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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칙릿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번 <달콤한 나의 도시>를 너무 진지하게 즐겼기 때문에, 그리고 제목 속의 신비의 단어, <다이어트>에 흔들려서 읽기 시작했다. 나, 왕년에 한덩치 했었기 때문이었고, 다이어트와 심각한 부작용으로 힘든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을 나 혼자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은 안 하지만.  

글이 빠르다. 그리고 내 예상을 비웃듯 미끄러진다. 뭣보다, 재미있다. 숨가쁘게 나를 끌고 갔다. 그래서 아이들과 남편 눈을 피해 하루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아, 이게 칙릿이라고? 그래서 심각한 생각 안 하는 젊은 여자들이 드라마 보듯 읽는다고? 하지만, 거들먹거리면서 온갖 실험정신으로 난해한 문장을 쏟아내는 것 보다는 절감,공감,통감하는 소설이 더 낫지 않을까. 물론 각자의 존재 이유가 있겠지.  

거구의 여자 쉐프, CIA 출신, 서바이벌 게임등은 한동안 미국에서 서바이버 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The Biggest Loser 라는 쇼를 기억했기 때문에 놀라지는 않았다. 다만 이 과격한 설정이 나름 설득력 있게, 앞뒤 재거나 따질 여유를 주지 않고 다부진 글과 이야기의 힘으로 독자를 밀어부친다. 그리고 세상사에 마냥 너그러운 듯 싶었던 우리의 주인공도 실은 힘들게 오늘을 살아내는 just a girl 이란거다. 거식증과 죄의식을 연결시키는 시도는 멋졌지만 소설 초반의 총명이 흐려지는 듯 해서 아쉽다. 그리고 주인공 연두의 죄의식이라는 게 좀 불분명하다. 뭐가 그리 죄스러울까, 그녀의 착한 주인공 역할일까, 아니면 고양이를 부탁해, 설정 탓일까. 하지만, 드라마 최종회 스러운 마지막 부분, 백작가는 연두의 죄의식을 싹 씻어주기로 했다. 우리 모두의 가식, 그리고 솔직함을 보여준다. 자, 이런거야, 연두씨, 너무 괴로워마. 그리고, 너무 솔직해 지지도 마.  

밤 늦게 끝낸 이 한 권의 책. 부작용이 만만찮다. 제목엔 다이어트를 달고 나왔지만, 내용엔 감칠맛 나는 음식 묘사가 넘쳐난다. 읽으면서 먹은 간식의 칼로리를 계산하자면...음...난 한강변을 왕복해야 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자꾸, 주인공 연두를 만두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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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불빛의 서점 - 서점에서 인생의 모든 것을 배운 한 남자의 이야기
루이스 버즈비 지음, 정신아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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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동네에는 서점이 없다. 아이 손 잡고 오후 산보를 나갔다가 들러서 그림책 한 권 같이 읽을 서점이 없다. 제일 가까운 서점은 차를 타고 가야하는 수험서와 참고서 전문점이다. 조금 더 멀리 체인형 대형 서점이 있긴 하지만 앉아 있을 의자는 없고 세일 전문 가판대만 빽빽히 들여 놓은 곳이다. 아이를 데려 가면 급하게 다시 나올 생각만 든다. 내 기억에, 또 이 책의 저자의 추억 속에 있는 한가롭게 책을 고르는 서점이, 우리 동네에는 없다.  

책 제목과 표지가 은은하게 또 따스하게 불러 일으키는 서점과 책향기를 추억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저 책을 사랑해서 그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 뿐이 아니다. 이 책은 그런 아마츄어 적인 책사랑을 넘어, 프로페셔널한 책사랑을 얘기한다. 저자는 책이 너무 좋아서 서점에서 수년간 일하다가 출판사 판매부서에도 몸담았고 (번역자는 '외판원'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영 어색했다. 그게 그 뜻이기는 하지만 역자의 단어 선택은 참 독특하다. 예로 '도붓장수' 라는 표현을 쓰는데 많은 사람들에겐 봇짐장수나 행상인이 더 익숙하지 않을까? 부사 '좋이' 도 '족히'대신 서너번 나온다. 아마 내 어휘가 부족해서인지 어색해서 혼 났다. - - ;; ) 자신의 소설도 냈던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책과의 장구한 역사를, 책과 출판인의 역사와 버무려 가며 써 내려갔다. 그래서 훈훈한 추억담을 기대했다가 당황하기도 했지만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책과 인쇄업의 역사 강의는 추억담 보다 유익하기는 하지만 딱딱하니까. 

저자는 솔직한 문장으로 서점이 어떻게 성장했으며, 인터넷 서점 덕으로 망해갔고, 새로운 형태의 책이 나올까 의견을 내놓기도 했고 정부와 극단적인 독자들의 "검열"에 대해 열렬히 성토한다. 덤으로 서점과 출판 쪽의 전문용어도 설명해 주는 자상함도 보인다. 무엇보다 책이 비싸다는 편견을 버리라고 강력하게 외친다. 진정으로 말이다.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라 무진장 찔렸다.  

그래도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는, 서점에서 우리는 만나기 때문이다. 저자 개인에서 시작해서 출판사, 판매직원, 서점, (내 경우에는 일 주일 세번 만나는 배송 아저씨),독자를 통과하는 긴 여로가 중간 지점인 서점에서 그 모두가 만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서점을 "도시"로 비유한다. 이 도시에서 길을 잃고 헤맬지언정 우리는, 독자, 저자, 역자, 혹은 출판인, 누구던 책을 사랑한다면, 밖으로 나갈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는 이런 서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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