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백으로 떠나는 기차를 타기위하여 내가 갔던 쌩라자르 역과 같은 채색 유리창 끼워진 거대한 아뜰리에들 중 하나 속으로 진입하기로 한번 결단을 내리면,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 희망은 깨끗이 버려야 하는데, 쌩라자르 역은 복부 갈라진 도시 위에 황량하며 비극적 흉조가 쌓여 무거워진 광막한 하늘을 펼쳐놓고 있었으며, 그 하늘은 만떼냐나 베로네세가 빠리의 현대적 감각에가까운 기법으로 그린 몇몇 하늘들과 흡사했고, 그 하늘 아래에서는 기차역에서의 출발이나 십자가의 설치 등과 같은 무시무시하고 장엄한 일밖에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 P309
나는 처음으로, 나의 어머니가 나 없이도 살아가실 수 있음을, 즉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삶을 영위하실 수도 있음을 감지하였다. 어머니가 바야흐로, 나의 좋지 않은 건강과 신경과민으로 인해 삶이 아마 조금 까다롭고 서글펐을 것이라 여기시던 아버지와 함께, 당신 나름대로의 삶을 영위하시려 하는 것 같았다. 그 이별이 나를 더욱 비탄에 잠기게 하였던 이유는, 그것을 어머니께서 아마, 일찍이 나에게 내색하시지 않았던 그리고 우리가 휴가를 함께 보내기 어렵게 만들 것이라 여기시던,내가 당신께 안겨 드린 실망들의 연속선상에 찍는 종지부로 여기셨을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아마 또한, 그 이별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연로해지심에 따라 체념하시고 받아들이셔야 할 미래의 삶, 내가 어머니를더욱 띄엄띄엄 뵙게 되고, 나의 악몽 속에서조차 나타난 적이 없던 일이지만, 어머니가 이미 나에게도 조금은 낯선 여인으로 보일, - P313
진실들 이외에 그녀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녀에게는 사유라는 광막한 세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에서 발산되는 빛, 그 코와 입술의 섬세한 선 등, 발군의 기품이나 탁월한 지성의 고결한 초연함을 표징(表懲)하였을, 숱한 교양인들에게 결여된 그 모든 증거들 앞에서,영리하고 착한 어느 개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일체의 개념들에 생소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개의 시선 앞에서 그러듯, 누구든 심한 동요를 느꼈던지라 - P315
우리는 일상 최소한으로 축소된 우리의 존재를 가지고 생활하며, 우리에게 있는 능력들의 대부분은 잠든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것들이 습관 위에서 쉬고 있기 때문이며, 습관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지라 그 능력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행 중에 맞은 그날 아침에는, 내 존재적 타성의 중단과 장소 및 시각의 변화가 그 능력들의 출현을 불가결하게 만들었다. 항상 칩거하며 아침 일찍일어나지 않는 나의 습관이 자리를 비우자, 나의 모든 능력들이, 가장 천한 것으로부터 가장 고상한 것에 이르기까지, 예를 들면 호흡과 식욕과 혈액 순환으로부터 감수성과 상상력에 이르기까지, 자기들끼리 열성을 경쟁이라도 하듯 마치 물결들처럼 일상적이 아닌 어느 수위까지 일제히 치솟으면서 몽땅 달려와 습관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 P325
나의 평온을 위해서는 불행하게도, 나는 그 모든 사람들과 판이하게달랐다. 그들 중 많은 이들에 대하여 나는 조마조마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리하여, 이마에 침울함 감돌고 회피하는 듯한 시선이 편견의 눈가리개와 예의범절 사이로 드러나던, 그 지역의 지체 높은 귀족이라고들 하는 어느 남자로부터 내가 무시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는데 - P359
그동안 나는, 발백을 좋아할 수 있도록 내가 육지의 가장 먼 끝에 와 있다는 사념을 온전히 간수하기 위하여, 더 멀리 시선을 던져 오직 바다만을 바라보며 보들레르가 묘사한 현상들을 찾으려 노력하든가, 식탁용 나이프와 포크와는 반대로, 생명이 대양에 몰려들기 시작하던 태초에도, 즉 킴메리에인들의 시기에도 있었던 바다의 괴물 광어(廣魚)류가 우리에게 제공되는 날에만 식탁 위로 시선을 던지곤 하였는데, 무수한 척추들과 푸르고 분홍색인 힘줄들을 구비한 그 괴물의몸뚱이는, 일찍이 자연에 의해, 그러나 어떤 건축 설계도에 입각하여, 바다의 울긋불긋한 대교회당처럼 축조되어 있었다. - P376
16세 전지적 혼령 시점의 산속 눈폭풍 조난 이야기. 재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이 절반, 사고 이후 후유증 수습과 회복(?)이 후반부 절반이다. 살벌해지려는 찰나 태도를 바꾸는 후반부는 ya 분위기라 달콤하지만 가족, 장애인, 여성에 대한 전형적 표현이 깝깝하다.작가의 ‘서늘한 체험’에서 소설이 시작했다는 후기를 읽고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양심은 뭘까, 나 너 우리, 이렇게 시작하는 옛날옛적 국민학교 국어 교과서도 생각난다.
나는 서글프게도 어떤 존재에 대한 사랑으로서의 우리 사랑은 어쩌면 현실적인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P9
나는 차창 너머 작은 검은 숲 위로 부드러운 솜털 같은 부분이 장밋빛으로 고정되어 꼼짝하지 않는깊게 파인 구름을 보았는데, 그 빛을 흡수하여 물들인 날개의깃털이나 화가의 충동적인 몸짓이 칠해 놓은 파스텔처럼 변하지 않을 장밋빛이었다. 하지만 난 이 빛깔이 무기력하거나 변덕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필연성이자 삶 자체인 듯 느껴졌다. 이내 이 빛깔 뒤로 빛의 공간이 몰려왔다. - P30
그리하여 그녀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삶의 형태에 대한 욕망이나 호기심, 새로운 존재의 마음에들고 싶어 하는 희망을 모두 제거하고 대신 그 자리에 가장된경멸이나 작위적인 쾌활함을 채워 넣었는데, 이러한 제거는만족감의 표지 뒤에 불쾌감을 느껴야 한다는, 또 자신에게 끊임없이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불편함을 초래했으며, 바로 이런 두 조건이 그녀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호텔에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같은 방식으로행동한다고 할 수 있었는데, 그들은 자존심 때문에, 또는 적어도 어떤 교육 원칙이나 지적인 습관을 위해 미지의 삶에 참여한다는 그 감미로운 불안감을 희생했다. - P68
그 시간 호텔 안에는 전기 불빛이 넘쳐흘러 식당은 거대하고 경이로운 수족관이 되었고, 그 유리 벽 앞에서 어둠에 가려 눈에 보이지 않는발베크 일꾼들이나 어부들, 또 프티부르주아 가족들이 유리에 코를 대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낯선 물고기나 연체동물의 삶만큼이나 경이로운 식당 안 사람들의 사치스러운 삶이금빛 소용돌이 속에서 느릿느릿 흔들거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유리 벽이 그 경이로운 동물들의 잔치를 언제까지 보호해 줄 수있을지, 또 어둠 속에서 탐욕스럽게 구경하던 그 신분 낮은 사람들이어느 날 수족관 안으로 들어와 그들을 잡아먹을지를 아는 것은 중요한 사회문제다.) - P73
부인이 과거에 아름다웠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주 희미하게만 그 흔적이 남아 있었으므로 그 망가진 아름다움을 복원하려면 프랑수아즈가 아닌 다른 훌륭한 예술가가 필요할 듯 보였다. 왜냐하면 나이 든 여자가 지난날 얼마나 아름다웠는지를 이해하려면 쳐다보는 것만으로 부족하고 얼굴 모습 하나하나를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 P100
다시 말해 이 두 세계는 발베크 만의 한쪽 끝에 위치한 바닷가 주민들이 또 다른 끝에 위치한 바닷가를 바라보듯이 서로를 허구적이고 거짓된 시각으로 보고 있다. - P110
지금도 엄마는 자기 아들 쪽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확인하고 싶지 않아서 거울을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처럼. 하지만 씁쓸한 진실은, 오즈는 누구보다도 엄마랑 가장 닮았다는 것이다. 연한 황금빛 피부, 긴 눈썹과 녹갈색 눈동자. 그렇지만 유령의 집 거울처럼 오즈는 엄마의 왜곡되고 지나치게 확대된 상(像)이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오즈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 아이와 마주하는 것을 거부해 왔다.엄마는 주먹을 꼭 쥔 채 그 자리에 계속 서서 어두운 밖을 바라본다.
후회란 감정을 갖고살아가는 건 힘든 일이고, 그것을 극복하고 나아가는 것도 불가능하다.왜냐하면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어떻게든 이미 벌어진 일을 조금이라도 받아들이기 쉽게 착각을 만들어 내는 것이 그 괴로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방법의 하나지만, 엄마는 그런 착각에 빠지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그런 참회의 결핍이라는 축복을 받지 못했다. 그들의 양심은 끊임없이 아우성을 치고, 그들의 뇌에서는 했어야 할 일〉과 〈했으면 좋았을 일〉들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그들은 지금 자신의 모습을 견딜 수가 없다. 자신들의 진정한 상(像)은 너무나 선명하고, 추하며, 너무 잔혹하고 정직하다. 그리고 나는 어떤 가장된 자아나일말의 무지 없이,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렇게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봐서는 안 되며, 또한 우리의 본성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나서도 안 된다는것을 깨닫는다.엄마와 모와 클로이 언니는 각기 다른 후회로 고통스럽다. 물론 그 근본적인 원천은 시간을 되돌리고 싶고, 운명을 뒤바꾸고 싶고, 그리고 그때의 자신보다 더 나은 자신이기를 바라는 강렬한 욕망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말이다.
「괜찮아, 아가.」 카민스키 아줌마가 달래며 말했다. 「우리는 우리의 반응을 통제하지 못해. 행동만 통제할 뿐이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하며, 그것도 얼마나 감쪽같이 하는지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모든사람이 그렇다. 언제나. 그들은 어떤말을 하고, 그리고 그것과는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
「넌 날 잘 모르잖아.」모가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모조차도 자신의 말이 틀리다는 것을 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면서 인생 전반에 걸쳐 드러내는 것들보다 더 많은것들이 그 비극적인 하룻밤 사이에드러났기 때문이다.
「한 번에 한 발자국씩이요.」 뭔가심오한 경험과 깊은 통찰력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남자의 대답에, 나는모든 고통은 그 근원과 상관없이 다같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당신은 아직 여기 있어요.」 그가 계속 말한다.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1센티미터, 10센티미터씩이라도, 꼭 올바른 방향일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그래도 계속 나아가야해요.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것은 흑백으로만 이루어진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하나의 차원이 사라진 것만 같다. 나는 카일의 냄새가 어떤지 궁금하다. 나는 상상으로 그에게선 아무 냄새가 나지 않을 거라는 결론에도달하고는 만족한다. 남자한테서 아무 냄새가 안 나는 것도 드문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