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길고긴 연휴가.

 

시댁에서도 더 오래 있게 되겠지. 따로 여행 계획도 없고, 연휴 직전까지 야근을 거듭하는 남편은 쉬고 싶어 할텐데. 아이들은 어쩌지. 장도 넉넉하게 봐둬야하는데, 아직 때가 아니야. 그러니까, 지금은 들어온 애매한 선물들을 정리하고, 배송일을 잘 봐서 책주문을 하는거지. 연휴 동안 읽을 책이 없다면 불안해서 전을 다 태울지도 모르고 미끄덩거리는 토란을 바닥에 쏟을지도 몰라. 고기랑 전감은 월요일에 사는 게 낫겠지. 겹치는 메뉴는 지금부터 피하고. 아, 지금 내 정신 상태는 명절 직전의 불안증이니까, 일단 페이퍼를 좀 써보기로.

 

이런게 의식의 흐름일지도.

 

명절 직전에 맘만 바쁘고, 약속도 많고, 책도 더 사고 있습니다. 어제, 오늘 좋아하는 동화 작가와 동화 평론가의 강연을 근방 도서관에서 찾아들었고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함을, 답보다는 질문을 찾아야 함을, 아이들의 '도덕적 의무'로 짓눌린 어깨를 고민했습니다. 몇 번이나 울컥, 했는지 몰랐어요. 그러니까 강연 듣는 동안, 난 엄마 면서 또 어린이 였으니까요. 강연 선생님께 '유부만두' 닉넴으로 인사드리면서 (아, 정말 닉넴을 멋지게 지었어야 했다고 수년째 후회를 거듭거듭...) 잘했어요, 도장 받는 기분으로 사인을 받았죠.

 

마음 편한 작가와의 만남은 별로 없죠. 아마. 주로 저녁시간, 홍대 근방의 문학행사엔 제 나이대의 독자는 좀 걸리적거리는 아줌마니까요. '애들 밥은 챙기고 왔냐? 남편이 허락은 하더냐?' 라는 말도 들어봤는데, 뭐 그러면서까지 애들 맡기고 남편이랑 약속 정해서 (행사를 기다리면서 책을 다시 읽고 얼마나 설레는데) 두근거리는 맘으로 문학행사를 갔는데, 사실 그 자리에서 겉도는 기분이 드는건 어쩔 수 없어요. 작가들도 거의 다 아저씨들이니까 뭐랄까, 아줌마 독자가 '순수한' 팬으로만 보이고 싶지만 철없고 흉해 보일까 조심하게 되고요. (왜?!) 여성 작가의 행사에서도 더 젊고 당당한 독자들에게 괜히 주눅이 들었어요. 아, 오늘 왜이리 징징대나....

 

그래서 어제, 오늘, 내나이 또래의 엄마/아줌마를 겨냥한 행사가 편안했는지도 몰라요. 아, 그렇지만 미묘한 게 있지요. 보통 엄마들 대상의 강연에선 강사분들이 (책 저자분이나 교수) 아줌마들을 아주 아래로 깔고 강연을 시작하거든요. 예전에 일반인 대상 강연에서 한 교수'님'께서 불성실한 강연 내용과 태도로 시간을 때우기에 환불 받은 적도 있었어요. 일반인, 거기에 '아줌마' 청중은 더 싸게 후루룩 도매급으로 넘어갑니다. 무식하고, 책 안읽고 (저기요, 책 안 읽는다면 여기에 왜 왔겠어요?!), 드라마나 보고, 어려운 건 모른다고 넘겨짚고 정말 유치하고 안웃긴 농담으로 강연이랍시고 합니다. 하아.....그걸 보고 앉았자면, 아, 난 뭐냐, 싶을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어제 그리고 오늘 강연은 안그랬어요. 청중을 무시하지도 않았고 불편하게 만들지도 않았어요. 편안하게 강연 내용에 집중했고요, 내 시간을 충만하게 만들어서 뿌듯했어요. 그러니까, 전 책을 조금 더 주문해 보기로 해요. 택배 기사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이 페이퍼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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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7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8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8 0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제 마음과..이리 동일? ㅎㅎㅎ 언제부턴가 저긴 내 자리가 아니야 하는 마음으로 북토크에 안가게 되더군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실 것 같은 자리만 참석..ㅎㅎ 암튼 저도 택배 아저씨한테 미안한 마음으로 장바구니 챙기고 있습니다. 건투!^^

유부만두 2017-09-28 09:23   좋아요 0 | URL
그쵸. 편안하지 않은 자리에선 온 마음으로 문학행사를 즐기기 어렵더라구요. 쑥님의 택배 상자가 연휴를 잘 채워주길 바랍니다. 건투! (하아~ 이러면서도 또 한숨 나와요. 전전전전전 국국국국 설거지 백만가지...와 착한사람 연기하기;;;;;)

psyche 2017-09-29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에 있다면 이런 저런 문학행사 가보고 좋았을텐데 라고 부러워 했는데 듣고 보니 그런 면이 있을 거 같네. 그나저나!!!! 길고 긴 추석연휴 잘 버텨내길

유부만두 2017-09-29 22:48   좋아요 0 | URL
‘순수한‘ 마음으로만 ‘단순하게‘ 보이지 않으니까요. 나이가 여기 저기서 길을 막기도 하고요.

길고 긴 연휴 이제 막 시작했습니다....벌써 지치고요....

psyche 2017-09-29 23:43   좋아요 0 | URL
페북처럼 sad 버튼이 있어야할 듯.... 좋아요를 누르자니 좀 그렇잖아
 

주인공 콘스탄스 콥 양은 180센티미터가 넘는 거구다. 맘에 든다. 꺆꺅거리며 기절하지 않는다. 체격에서, 시선에서 눌리지 않는다. 그래도 삼십 대의 미혼 여자라 남들의 '걱정'을 들어야한다.

 

동네 부자 망나니와 차사고로 맞부닥치고, 배상을 요구하다 협박을 당하고, 법정 싸움과 수사, 혹은 탐정일을 해내며 남들도 돕는다. 그리고 자신의 과거를 돌아본다. 제목에서 상상한 것처럼 내 집은 내가 지킨다, 라기 보다는 이런 저런 설명과 보호가 붙지만 당당한 그녀가 좋다. 저자인 에이미 스튜어트가 8부작으로 기획하는 콥스 양 시리즈의 첫 이야기. (아, 좋아! 일곱 권이 남아있다!)  밀레니엄 Girl 시리즈의(여주인공의 활약상 이라지만) 여성에 대해 과하게 잔인한 폭력 스토리 보다 마음에 들었다.

 

 콥스 양 시리즈 1권의 교훈, 법률문제에선 전문가를 찾기, 개인 정보는 함부로 내주지 않기, 외판원이나 (기타 타인에게) 함부로 문 열어주지 않기. 재미있는 책은 하루 해를 잡아먹는 것 잊지 말기.

밑줄 사진은 스포 방지를 위해 일부를 가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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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7-09-25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끌린다!

유부만두 2017-09-25 13:10   좋아요 1 | URL
재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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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사탕 그림책이 참 좋아 39
백희나 글.그림 / 책읽는곰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진짜 알사탕! 사춘기 시작하는 막내 마음을 듣고 싶다. 설마 ˝게임! 게임! 야구! 야구!˝ 가 전부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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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찬샘 2017-09-21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책 옆의 사탕은... 이건 어디서 사죠? 애들 읽어줄 때 하나씩 주면 대박인데요. 애들은 이미 알고 있을 사탕인가요?

유부만두 2017-09-21 19:24   좋아요 0 | URL
711 편의점에서 샀어요! ^^

희망찬샘 2017-09-21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 둘다 책이 아니고 사탕이네요

희망찬샘 2017-09-21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들어보는 편의점이닷. 711? 이런 것도 있나 물으니 옆에서 세븐일레븐아니가? 합니다. 그렇군요. ㅎㅎ~~~

유부만두 2017-09-21 19:2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맞아요! 세븐일레븐요! ^^

희망찬샘 2017-09-21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울 아들 지금 711로 고고씽~~~

유부만두 2017-09-21 19:38   좋아요 0 | URL
득템하시길~ (....마법은안 되더라구요;;;;)
 

 

영화 '김광석'을 감독한 이상호 기자의 팟케스트 방송을 들었다. 김광석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이 있다는 이야기는 몇 년전 처음 들었는데, 정말? 그래도 설마..... 싶었다. 아, 한 사람의 죽음을 두고 여러 증거와 거짓말이 있어도 덮히기도 하는구나. 무섭다. 이 나이를 먹도록, 숱한 피 낭자한 소설과 드라마, 영화를 봤지만, 사건들이 실제와 연결될 때는 도망칠 수도 없는 진짜 공포가 시작된다. 설마, 하는 일들이 멀쩡한(?) 사람들이 눈감아준 가운데 벌어진다는 걸 작년에 새삼 배우고도, 또다시 소스라친다.

 

영화 '싸이코'를 몇몇 유명한 장면 말고 제대로 본 적이 없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그 유명한 호수옆 베이츠 모텔도 몇 번 봤는데 별관심 없었지. 어젠 맘먹고 조용히 혼자 영화를 다운받아 봤는데, 기대 이상으로 흥미진진했다. 결말을 알아도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베이츠 모텔의 노먼이 실존 인물로 만든 캐릭터라는 걸, '양들의 침묵'의 그 버팔로 빌과 함께 그 악명 높은 (하지만 난 다행히 몰랐던) 에드 게인이라는 살인자라는 걸 어제서야 알게되는 순간.... 아, 영화는 영화일 뿐이 아니잖아. 너무 무섭다. 어머니와 비이상적 유착관계, 고립된 생활, 그리고 사체에 대한 집착이 이런 끔찍한 살인과 잔여물들을 만들어놨다. 생각을 말고 관심도 주지 말아야 하는데, 이미 실제 피해자들도 있기에 이런 영화나 이야기를 소비하는 행위에 죄책감이 생긴다. 무섭다.

 

 

싸이코 영화는 살인자 노먼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이혼남과 시내 모텔에서 한낮의 만남을 가지는 여자 마리온을 따라간다. 그녀는 지속적인 공간에서의 지속적인 관계를 원했다. 하지만 돈 때문에 여의치 않은 상황. 집적거리는 거부 할아범, 직원 사무실에는 에어컨을 달아주지 않는 (십년 동안 일했다는데) 사장 아저씨, 아리조나에서요! 위협적으로 따라붙는 경찰관, 그리고 그나마 친절해 보였던 노먼은 몰카(찍었을 넘)범에 살인범. 한밤의 외딴 모텔에서 샤워하다 칼에 맞는 마리온. 왜 마리온의 스토리를 이렇게 넣었을까. 순수한 피해자가 아니라고 하고 싶어서? 동정하지 말라고? 노먼보다 뇌리에 남는건 해골 상태 노먼의 어머니와 곧 시체가 될 마리온의 얼굴이다. 싸이코는 노먼인데 두 늙고 젊은 여자 시체만 크게. 왜요. 무섭게.

 

김광석 부인인 서씨가 다시 조사 받기를 바란다. 김광석의 딸이 별일 없이 (이미 많이 겪었을테니까) 살았으면 좋겠다. 서씨의 오빠도 조사받았으면 좋겠고. 억울한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지만, 이미 가버린 사람은 어쩔 수가 없구나. 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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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7-09-20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사에서 이미 김광석 딸은 10년 전 17살 나이로 세상을 뜬 게 밝혀졌다고 나오네요.안타깝죠.15살에 언론에 나와 사진 찍은 게 있더군요.그런지 2년 후에 죽음이라..참..그런데 엄마란 사람은 10년 동안 딸이 미국에서 잘 살고 있다고 했다네요.

유부만두 2017-09-20 17:38   좋아요 0 | URL
아 ... 어째... ㅠ ㅠ

레삭매냐 2017-09-20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쇼킹한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정확인 사인이 규명되었으면 하는 바람
입니다.

유부만두 2017-09-28 09:27   좋아요 0 | URL
네. 이런 저런 이야기가 들리는데, 간 사람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더 나요. 노래는 왜 그리 구슬픈지 몰라요. ㅜ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