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의 단편을 찾아서 읽었다.

 

금성,은 별이 아니라 경주의 옛 이름이다.  삼국통일 후 당나라에 사신을 동행해 갔다가 십 년이 흐른 다음 고향으로 돌아가는 샌님 자은은 답답한 마음에 불안이 가득하다. 그에게 다가서는 백제 출신 유학생 목인공은 친근하게 굴지만 어쩐지 경계하게 된다. 물고기를 닮았다니 좋을리가 없다.

 

선상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사신단에서는 여지껏 챙기지도 않던 자은에게 살인범을 찾으라 명하고 ... 과연 이들은 금성에 무사히 다다를 것인가. 까만 밤, 까만 바다 위의 자은은 자신의 신분도, 얼핏 들리던 울음 소리에도 불안하다.

 

그리고 ... 재밌게 읽는 독자는 이 짧은 이야기의 뒤를 상상해본다. 20부작의 1부만 보고 난 느낌. 감질난다. 재미있는데 이렇게 똑, 끊어버리면 어쩌란말입니꺄. 세랑하는 작가님. 미스테리아는 소장하고 싶은 잡지다. 다 사 모을까, 생각만 하다가 책장을 쳐다보니 밉살스러운 '어린이과학동아'와 '보물찾기' 시리즈들이 버티고 있다. 저것들만 치우면 어찌어찌 미스테리아를 모실 수도 있을거야. 상상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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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영혼의 노숙자” 62화

세랑합니다,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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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아버지들의 마지막 날들..... 이 제목이 곧 내용이다. 제 2차 대전 중 레지스탕스들과 연계해서 영국 정보원 산하에서 활동한 프랑스인들의 이야기. 그들이 견뎌낸 훈련과 전쟁, 그 비극들과 견뎌낸 힘, 전우애,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조국에 두고 떠나온 가족, 아버지. 아버지.

 

진정한 '인간' 이 볼드체로 강조된다.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분연히 일어선다, 그리고 인간 답지 못한 것들을 처단한다. 그 가치의 끝에는 아버지가 있고. 그 아버지들의 마지막은 아들과 연결되고 대를 잇는다. ... 잠깐만요, 딸들은요? 어머니는요? .... 왜 꼭 창녀 이야기는 속죄와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까? 21세기의 불란서 현대 젊은 작가의 소설이 어쩐지 육이오 전쟁 소설 같은 건, 그닥 새롭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기심과 증오, 잔인함이 참된 인간을 누를 때 전쟁이 난다, 그걸 잊지 않아야 하는데 인간의 희망인 '아들'이 있어서 가능하다. 아, 어머니는 아름답지요. 뭐 이런 흔하고 낡은 공식. 그리고 '영웅' 을 한 번 더 뒤집어 보면서 아,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아들이구나, 하지만 으으리이를 외치는 전우들은 정의의 기준점을 슬쩍 깔고 앉아버린다. 소설의 마지막은 어째 훗, 하고 웃음마져 나왔는데 작가의 넘치는 자의식이 설마 그 정도일 줄은 몰랐었기 때문인데요. 어째서 내가 부끄럽고 막.

 

그래, 그저 흥미진진하며 널리 알려지지 않은, 어쩌면 부끄럽고 그래서 더 인간적인 (인간이라는 단어가 정말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로 쓰이는 단어) 인물들의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다. 소설이니까. 하지만 소설이 책장이 넘어가게 만드는 힘이라도 최소한 있어야지. 문장이 멋지거나. 전개가 지루하고 반전이랄 것도 없는데 인물들 마저 평면적이라 다른 친구들에게 차마 권할 수가 없다. 아니, 말리겠어. 이 작가는 첫 소설이 끝인 거 같어. 인물들, 작가가 자기 페르소나와 현실을 범벅해서 녹아들어간 그들의 애국심도 막연하고 모든 레종데트르인 부자관계도 작위적이며 신선한 도구는 (엽서 마저 '새벽의 약속'의 재탕)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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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이 아니라 구정이, 그도 아니라면 3월 봄학기 시작이 진짜 새해의 시작이라고, 올해엔 정말 바지런한 서재 관리를 하겠노라고 (혼자) 결심했는데, 오늘이 벌써 6일이더라고요? 늦더라도 책 읽은 기록을 남겨야지. 돌아서면 잊기에 맘 먹었을 때 써야 함.

 

쿳시는 처음 읽는 작가다. 이름 스펠링도 어려워. COETZEE . 남아프리카의 백인 작가라 태생적으로 인종 문제와 '죄책감'을 쓸 수 밖에 없다. 또 그는 네덜란드 계 후손인데 전통인 아프리칸스어 대신 영어로 글을 쓰니 이래저래 아싸. 자신의 존재에 대한 죄책감은 문장, 단어, 호흡 마다 배어 있어서 무겁다. 해법도 없이 계속 파고 들어가니 가벼울 수가 없다. 그의 찌질한 인간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문득 고개를 들어서 '사랑'이라든가, '자연' 혹은 '순수'를 말하고 싶어하는데 '여인'을 통해서. 흠, 이건 흔한 전개 같다가....

 

'서머타임'에선 작가 쿳시의 사후 그의 전기를 쓰려는 화자가 네 명의 '인생의 여인'을 인터뷰한다. 여인들을 통해서 인간 쿳시, 혹은 작가세계를 다시 살핀다. 과연. 쿳시의 문학 혹은 쿳시 자신의 뿌리는 어디인가. 그는 가난하고 싱글이고 생활력은 없는데 시를 읊고 책을 쓰고 영국인이 아니면서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가르치고 자신을 측은하게 여기는 여자(들)에게 치근거리고 눈치 없이 계속 따라 다니고 그러다 망신을 당하고 그런데 그 망신은 워낙 익숙해.  찌질함으로 포장한 솔직한 고백, 혹은 오만함으로 조근조근 다 적어놓고 모아놓는다. 그래서, 이 사람은 당신/독자와 많이 다릅니까? 하모요, 전 그란 사람 싫어예. 그런데 책은 묘하게 재미있게 읽힌다는 게 신기함. 그 소설 세계가 현실을 그리며 비틀고 계속 주류/비주류, 가해/피해, 변화/전통 을 언급한다. 한없이 고상할 수도 한없이 초라할 수도 있는 소설, 쿳시, 그리고 어쩌면 그걸 읽는 나도. 아니야, 부정하고 싶어.

 

'야만인을 기다리며'가 고갱 그림으로 표지를 삼은 건 흠....이해는 가는데 내가 생각한 줄거리랑은 조금 달랐다. 야만/문명의 경계를 아슬아슬 넘나드는 화자는 서머타임의 작가 혹은 인물 쿳시와도 많이 닮았다. 가해자인 자신의 아이덴디티를 못버려서 괴롭고 또 그 와중에 가해를 계속 하고 있는. 하지만 구원 받고 싶고, 구원자가 되고 싶어한다. 지 안에서 여러 가치들이 막 부닥치고 법석인데 .... 그는 변태라네. 원주민 어린 여자에게 하는 행동은 읽기 더럽다. 그런데 그게 깨달음과 해법을 주는가? 차마 그렇다고 대놓고 얘길 못하지만 슬쩍 그런 척한다. 그러면서 자신을 막 벌준다. 에잇, 나대더니 꼴좋다, 에잇, 그래도 넌 솔직했쟈나?! 웅장한 양심 해방일지 개쪽을 당할지, 이 밥맛이며 찌질한 백인 변태 아저씨는 ... 하지만! 아주 머리가 좋아서 이 소설 혹은 우화를 독자가 중간에 덮지 않게 만든다는 게 또! 신기함. 우리 세상이 소설 속에 언뜻 언뜻 비추기 때문. 야만은 누구? 어디? 왜? 아, 맞다. 노벨 프라이즈.

 

ps)두 소설 모두 다락방 님을 열받게 만들기 충분함. 그런데 또 패스하고 무시하기엔 .... 아깝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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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3-06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 쿳시 소설 좋아했었거든요. 다 너무 인상적으로 읽었던 터라..
역시 제가 읽어보는 게 답이겠어요.

유부만두 2019-03-19 10:50   좋아요 0 | URL
각자 다르게 느끼고 생각하게 될 거에요. 쿳시는 꽤 스마트한 작가인 건 확인했어요.
 

후반부는 덜 재미있게 읽었다. 선거와 정치 이야기가 나오자 버락과 미국 이야기 비중이 많아지고 남의 이야기인 게 확실히 보였다. 일하는 엄마의 노고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딸 아이의 대학입시와 인턴 과정이 그 특수한 가정환경 덕이라는 생각을 피하기 어려웠다. 남의 나라, 남의 인생.

 

그녀의 순수한 열정과 희망에는 박수를 보낸다. 어린이 운동캠페인과 제3세계 여자어린이들의 교육에 힘을 실어준 활동에도 감탄한다. 야무지고 강단있는 사람. 용기있는 사람. 열심히 일하는 사람. 감히 내가 어떤 째끄마한 동질감을 찾아낼 수 있을 리가 없지만.... 참 멋진 사람. 그래도 남의 나라, 남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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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9-02-27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안 읽었지만 남의 나라 남의 인생 뭔지 알 거 같음. 여기 살아고 있어도 남의 인생.

유부만두 2019-02-27 07:48   좋아요 0 | URL
책은 좋았어요. 미셸 오바마가 공동체/사회에 매우 관심을 가지고 미래를 향하는 인물이란 걸 알게됬고요. 하지만 어쨌든 성공한 흑인 어메리컨 이라는 게 저와 거리감을 느끼게 하네요. 어린시절 이야기는 아주 공감하면서 읽었는데 후반부는 ‘미국‘이 (그리고 지금의 트럼프가) 크게 떠올라서 읽는 맛이 덜 했어요. 남의 나라, 남의 인생이죠, 뭐, 결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