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나면 포스트잇을 붙여놓는다. 그럴 수 없을 땐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둔다. 다시 찾아 읽거나 페이퍼를 써야지 생각도 한다. 그렇게 하루 하루가 지난다. 사진폴더에는 이렇게 쌓인 책 페이지 사진이 꽤 된다. 가끔 이게 어느 책에서 나온 구절이더라, 하기도 한다. 이 사진들 처럼.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524/pimg_7936231652201884.jpg)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524/pimg_7936231652201885.jpg)
아, 생각났다. 이건 습관에 대한 책이었다.
서점에 놀러갔다가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기에 들고왔다. 그런데 영 별로여서 곱게 읽고 바로 팔아버렸다. 저 사진 속 구절만 기억난다. 디드로와 나의 연결 고리. (그것도 이제야 생각남)
정리해야 생각이 나는구나. 그렇다면 계속 치우고 정리해야하는데 나는 너무나 게으른 사람. 그러니까 '정리 책'을 조금 더 사두어도 되겠지. 아, 맞다. 어제 읽은 신간 "부끄러움"을 짧게 기록 하려고 했었지.
아니 에르노의 책은 '단순한 열정'과 .... 어떤 한 권을 읽었는데 그게 '집착'인지 아닌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머 어쩌면 좋아)
영화 "논-픽션" 에서 한 작가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서 옛 연인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그 책은 독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한다. 나는 곧장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신간 '부끄러움'을 구입했다.
책은 매우 얇다. 영화 속 '대중'들의 불평처럼 너무 비쌉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524/pimg_7936231652201887.jpg)
책을 여니 판권부분이 거꾸로 보인다. 뒤집어서 펼쳐보았다. 표지가 거꾸로 제본되어있다. 나에겐 파본인데 친구는 "레어템"이라고 좋게 말해줬다. 제대로? 아니면 거꾸로? 들고 읽기 시작하는데 앞에 해설이 길게 (열한 쪽이지만 책 본문은 백십여쪽) 버티고 있다. 에르노의 이 '부끄러움'이 그녀의 작품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 짚고 넘어가라고. 네. 본문 뒤엔 역자 후기가 열쪽이 더 남아있다. 프랑스에서는 에르노의 여러 작품들이 묶여서 나왔다고 했는데 차라리 한 호흡에 (무리겠지만) 읽을 수 있도록 우리도 한 권으로 만들었다면 좋았겠다. 매번 이런 식으로 앞뒤 해설과 설명, 그리고 (거꾸로 붙인) 양장 표지를 만나는 대신.
그녀의 부끄러움은 분명하고 공감하기 어렵지 않았다. 자신의 환경과 그 '수준' 그러니까 사회 계급에 부끄러움을 갖지 않는 열두 살 아이가 있을까. 가난하고 못배운, 억척스럽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부모를 가진 아이. 자신의 배경과 자신을 떼어놓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에 불안한 아이. (나는 지금 이 나이에도 그런데) 그 부끄러움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진열한다는 에르노의 글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프루스트가 떠올랐다. 그의 과거는 에르노와 마찬가지로 '이미지'로 떠오르고 현재의 펜을 붙잡지만 더 아름답게 펼쳐진다. 하지만 농땡이치는 부르주와 사람들의 인간 관계 신경전과 겹겹이 놓인 문화적 레퍼런스 때문에 취하다 취하다 멀미가 났다. 프루스트의 인간들의 부끄러움은 아주 다른 성질의 것이다. 그래서 놓아두었고 나는 나만의 부끄러움? 을 조금 느끼고 있었다. 큰 아이의 군생활 동안 완독하겠다고 해놓고선! 애는 벌써 상병인데! 나는 아직 스완네 옆집에서 어정거리고 있었어!
쨌든,
에르노는 오십이 넘은 현재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열두 살 아이의 환경과 경험을 기록한다. 볼드체의 구절들은 그녀의 부끄러움의 증거들이다. 덤덤하게 하지만 덮어두었던 것을 꺼내고, 발각되는 게 두려웠을 본질 (이라니 너무 거창하지만)을 마주한다. 나쁘지 않다. 열두 살의 에르노와 오십대의 에르노가 그 하나의 사건, 부끄러움의 집약체인 그 끔찍한 기억으로 서로 연결되었고 그 확인은 태연하게 독자 앞에 기술된다. 이런 태도는 이제 21세기에는 별로 놀랍지 않다. 말미의 보스니아 내전을 들며 말하는 '다른' 부끄러움의 설명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오오카 쇼헤이의 '모닥불'는 찾아 읽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