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드님의 글을 보고 따라 읽었다. 그냥 재미로 읽는 책 때문에 정작 읽어야 할 책들을 미루는 죄책감, 쌓여있는 책들에도 불구하고 신간에 눈이 가는 죄책감을 떨칠 수 있겠다 싶어서 읽었다. 게다가 많이 읽는 법을 알려준다고 했으니까. 세상엔 재미있고 멋진 책들이 얼마나 많아!


저자는 빨리 쭉쭉 읽어낼 책, 담지 않고 흘러 내보내는 책, 손에 들고 책장을 넘기며 내용을 이해하는 '지금'의 즐거움에 중점을 둘 책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한다. 경영, 자기계발서 류의 책. 하지만 그렇지 않고 시간과 공을 들여서 읽어야 하는 '다른' 책이 있다고 인정한다. 하루에 두 권 이상 읽고 리뷰 쓰는 자신도 그런 책들은 휴일에만 만난다고. 


그러니까 소설, 9전통적인 의미의) 문학에는 저자의 흐르듯 내 몸을 맡기며 즐기는 독서법을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책을 속도 내서 읽는 쾌감, 그리고 독서 경험을 매일 정리하는 습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배웠다. 책 정리하기와 계획 세우기는 꽤 실용적인 팁이다.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당신의 인생은 극적으로 변해 있을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이 씌여있는 책은 대부분의 경우 인생을 극적으로 변화시켜 주지 않습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계속 하는 책을 저는 신뢰하지 않습니다. - P97

아무리 밑줄을 그어봐야 다시 보지 않는다.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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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구절을 만나면 포스트잇을 붙여놓는다. 그럴 수 없을 땐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둔다. 다시 찾아 읽거나 페이퍼를 써야지 생각도 한다. 그렇게 하루 하루가 지난다. 사진폴더에는 이렇게 쌓인 책 페이지 사진이 꽤 된다. 가끔 이게 어느 책에서 나온 구절이더라, 하기도 한다. 이 사진들 처럼. 



아, 생각났다. 이건 습관에 대한 책이었다. 


서점에 놀러갔다가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기에 들고왔다. 그런데 영 별로여서 곱게 읽고 바로 팔아버렸다. 저 사진 속 구절만 기억난다. 디드로와 나의 연결 고리. (그것도 이제야 생각남)


정리해야 생각이 나는구나. 그렇다면 계속 치우고 정리해야하는데 나는 너무나 게으른 사람. 그러니까 '정리 책'을 조금 더 사두어도 되겠지. 아, 맞다. 어제 읽은 신간 "부끄러움"을 짧게 기록 하려고 했었지. 







아니 에르노의 책은 '단순한 열정'과 .... 어떤 한 권을 읽었는데 그게 '집착'인지 아닌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어머 어쩌면 좋아) 


 영화 "논-픽션" 에서 한 작가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서 옛 연인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그 책은 독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한다. 나는 곧장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던 신간 '부끄러움'을 구입했다. 


책은 매우 얇다. 영화 속 '대중'들의 불평처럼 너무 비쌉니다. 그리고 이런 상태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책을 여니 판권부분이 거꾸로 보인다. 뒤집어서 펼쳐보았다. 표지가 거꾸로 제본되어있다. 나에겐 파본인데 친구는 "레어템"이라고 좋게 말해줬다. 제대로? 아니면 거꾸로? 들고 읽기 시작하는데 앞에 해설이 길게 (열한 쪽이지만 책 본문은 백십여쪽) 버티고 있다. 에르노의 이 '부끄러움'이 그녀의 작품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 짚고 넘어가라고.  네.   본문 뒤엔 역자 후기가 열쪽이 더 남아있다. 프랑스에서는 에르노의 여러 작품들이 묶여서 나왔다고 했는데 차라리 한 호흡에 (무리겠지만) 읽을 수 있도록 우리도 한 권으로 만들었다면 좋았겠다. 매번 이런 식으로 앞뒤 해설과 설명, 그리고 (거꾸로 붙인) 양장 표지를 만나는 대신.


그녀의 부끄러움은 분명하고 공감하기 어렵지 않았다. 자신의 환경과 그 '수준' 그러니까 사회 계급에 부끄러움을 갖지 않는 열두 살 아이가 있을까. 가난하고 못배운, 억척스럽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부모를 가진 아이. 자신의 배경과 자신을 떼어놓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에 불안한 아이. (나는 지금 이 나이에도 그런데) 그 부끄러움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진열한다는 에르노의 글을 읽으면서 어쩔 수 없이 프루스트가 떠올랐다. 그의 과거는 에르노와 마찬가지로 '이미지'로 떠오르고 현재의 펜을 붙잡지만 더 아름답게 펼쳐진다. 하지만 농땡이치는 부르주와 사람들의 인간 관계 신경전과 겹겹이 놓인 문화적 레퍼런스 때문에 취하다 취하다 멀미가 났다. 프루스트의 인간들의 부끄러움은 아주 다른 성질의 것이다. 그래서 놓아두었고 나는 나만의 부끄러움? 을 조금 느끼고 있었다. 큰 아이의 군생활 동안 완독하겠다고 해놓고선! 애는 벌써 상병인데! 나는 아직 스완네 옆집에서 어정거리고 있었어! 


쨌든,


에르노는 오십이 넘은 현재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열두 살 아이의 환경과 경험을 기록한다. 볼드체의 구절들은 그녀의 부끄러움의 증거들이다. 덤덤하게 하지만 덮어두었던 것을 꺼내고, 발각되는 게 두려웠을 본질 (이라니 너무 거창하지만)을 마주한다. 나쁘지 않다. 열두 살의 에르노와 오십대의 에르노가 그 하나의 사건, 부끄러움의 집약체인 그 끔찍한 기억으로 서로 연결되었고 그 확인은 태연하게 독자 앞에 기술된다. 이런 태도는 이제 21세기에는 별로 놀랍지 않다. 말미의 보스니아 내전을 들며 말하는 '다른' 부끄러움의 설명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오오카 쇼헤이의 '모닥불'는 찾아 읽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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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의 8주기를 기념하여 여러 작가들이 짧은 글들을 묶어 냈다. 수필 같기도 소설 같기도 한, 그 안에 박완서를 기리는 마음들.

 

정세랑의 '아라의 소설'은 아라에게, 또 정세랑 작가 본인에게, 그리고 많은 여성 독자들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듯하다. 남성작가들 앞에 줄 서서 사인을 받던, 독자로서의 흑역사를 돌아보며 쓴 웃음을 짓는 나는 이제야 거울 앞에 돌아와 만난 여성 독자들과 여성 작가들에게 손을 내밀며 눈을 맞춘다. 장르라고요? 순수 문학이라고요? 진짜 글쟁이라고요?

 

됐고!

 

진짜 글과 이야기는 허세랑 폼재기 따위 말고 독자가 알아본다고요. 적어도 난 그런 '눈'이 슬슬 뜨이는 것만 같다고. 난 계속 아라의 소설을, 정세랑의 소설을 읽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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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장바구니에 들어있던 만화책을 결재했다. 힘 빼고 그린듯한 그림, 편안하고 예쁜 그림, 느긋한 자세.

 

자세한 작품 소개는 읽지 않았지. 그래서 BL 만화가 소재라는 것도, 할머니와 여고생의 우정 이야기라는 것도 몰랐지. 그러고 시작했는데 여고생이 아니라 할머니에게 감정이입 해버리니 당황스럽지만 어쩌겠어. 다행인 건 유키 할머니 보다 내가 25년 더 남아서 천천히 나오는 연재 만화책을 기다리면서 부지런히 책을 1년에 한 .... 80권쯤 (백 권 쓰려다가 말았다. 나는 나를 알지.) 읽으면서 아흔까지 힘내볼게요?!

 

다음으로 미루지 말것. 그 다음이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오늘만 살 수는 없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버리는 (이제 나를 한참 넘게 커버린 막둥이도, 제대날을 꼽고 있는 상병 큰 아들도) 아이들과 허리 통증에 아구구하는 늙은 남편도 있으니까. 토요일 아침에 혼자 부스스 일어나서 어제의 폭주 (떡.볶.이. 앤드 맥.주. 플러스 감.자.튀.김.)로 부은 몸을 끙, 하고 쇼파에 던지고 만화책을 읽고 이렇게 뭔가를 끄적이고 있다. 맑은 하늘, 오늘은 좀 걸어볼까.

읽기 아깝네. 정말.

 

 

다음은 오지 않을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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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지난 8권에서 정리되는 분위기였고 이번 권은 아쉬워하는 팬들을 달래는 '스페셜' 재방송 같다.

 

'나는 어디든지 갈 수 있어' 라고 힘차게 말하는 '성장한' 스즈를 보여준다. 하지만 스즈와 언니들의 성장이 왜 꼭 결혼, 커플, 출산으로만 표현되는 것일까. 네 자매들 중 한 두 명은 애인 없이 혼자서 독립해서 잘 먹고 잘 사는 게 뭐 나쁠까.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진학, 그리고 대학, 사회인이 되고도 취직과 승진, 연애와 출산, 그리고 노년엔 깨달음과 너그러움이 착착착 이어져야한다는 강박/압박감이 느껴진다. 너무 공식적이다. 번외편으로 실려있는 스즈와 이복/이부 (완전 남남) 남동생과의 십이 년 이후 만남과 추억 더듬기는 더할 수 없이 아쉽다. 왜 스즈 얼굴을 안 보여주지? 왜 스즈의 몸이 축구선수 몸이 아니라 야리야리하지? (왜 ...... 스포를 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만 도와주질 않는거야?)

 

이제 너무 잔잔잔잔....... 하게 가라앉은 파도만 남은 바닷마을. 그래도 나의 애정을 주고있다. 왜? 사람들이 착해. 너무 착해. 다들 '행복'에 매달리고 아끼고 살아. 답답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현실에는 없지. 있어도 나는 귀찮아 질 것만 같고요. 만화책에서만 살아있는 이쁘고 착한 사람들. 아쉬운 마무리지만 그래도 이렇게 해주는 게 10권과 그 이후를 조르지 않게 될 유일한 방법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스즈, 결혼하지마. 그리고 축구 이야기로 돌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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