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장바구니에 들어있던 만화책을 결재했다. 힘 빼고 그린듯한 그림, 편안하고 예쁜 그림, 느긋한 자세.
자세한 작품 소개는 읽지 않았지. 그래서 BL 만화가 소재라는 것도, 할머니와 여고생의 우정 이야기라는 것도 몰랐지. 그러고 시작했는데 여고생이 아니라 할머니에게 감정이입 해버리니 당황스럽지만 어쩌겠어. 다행인 건 유키 할머니 보다 내가 25년 더 남아서 천천히 나오는 연재 만화책을 기다리면서 부지런히 책을 1년에 한 .... 80권쯤 (백 권 쓰려다가 말았다. 나는 나를 알지.) 읽으면서 아흔까지 힘내볼게요?!
다음으로 미루지 말것. 그 다음이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오늘만 살 수는 없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버리는 (이제 나를 한참 넘게 커버린 막둥이도, 제대날을 꼽고 있는 상병 큰 아들도) 아이들과 허리 통증에 아구구하는 늙은 남편도 있으니까. 토요일 아침에 혼자 부스스 일어나서 어제의 폭주 (떡.볶.이. 앤드 맥.주. 플러스 감.자.튀.김.)로 부은 몸을 끙, 하고 쇼파에 던지고 만화책을 읽고 이렇게 뭔가를 끄적이고 있다. 맑은 하늘, 오늘은 좀 걸어볼까.

읽기 아깝네. 정말.


다음은 오지 않을 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