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고1이던 매디는 동네에서 소문난 렉스와 친구가 된다. 특별한 자매. 몇 명이 더해서 피로 맺어진 진정한 자매로 거듭나기로 맹세한다. 우리는 하나다, 서로를 배반하지 않는다, 영원히 함께 한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세상이, 특히 남자 (새끼)들이 일을 망쳐버린다. 이 책은 그들의 '도깨비불' 같은 기록이다. 


나이가 지긋한 (아...오십이 그렇게 지긋한 건 아닌데 말이죠. 지긋지긋할 수는 있겠지만) 매디가 과거를 돌아보며, 그때의 기록을 정리하는 형식이라 매디의 목소리도 여럿이고 과거와 미래/혹은 현재?의 목소리가 겹치고 교차하면서 등장한다. 카리스마가 남다른 불꽃 같은 렉스의 목소리 마저 매디, 문제 학생이기엔 총명하고 책도 읽고 독설을 쏘아대기도 하는 매디 멍키와 겹친다. 매디는 렉스를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렉스의 눈으로 그 시절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얼결에 독자는 그 둘 사이에 끼어서 그들과 함께, 천인공노할 남자들의 범죄를 (눈을 가릴 수도 없이) 목격한다. 둘은 한 사람 같은데 둘이 분리될 때, 중요한 일이 생긴다. 어른이 된 매디의 기록으로 만나는 옛날의 십대 소녀 (아, 이 단어 말고 다른 말을 찾고 싶지만)들 이야기지만 생생하게 몇십 년을 거꾸로 돌아가서 렉스의 숨결을 맡을 수 있다.낭만주의자 였던 렉스. 그래서 ... 


렉스와 그녀의 폭스파이어는 폭력의 희생자를 위로하고 가해자를 응징한다. 하지만 정의실현이 그들의 최고 가치라기 보다는 '우리끼리 살아남자'가 더 급급했던 불우한 환경의 십대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몰염치한 남성 가해자를 타겟으로 하는데 처음은 만만하고 하찮은 변태 남자 선생, 그 다음엔 친척 아저씨, 그리고 점점 그 상대가 커진다. (어쩐지 이 패턴은 동서고금 차이가 없어보인다) 급기야 가장 상징적인 최강의 상대, 백인 남성 기업인을 대적하게 되면서 (그 시도부터) 폭스파이어는 버거워 무너지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무너진건가? 이 결말은? 


전반부의 챕터별 응징 시리즈는 통쾌하기도 식상하기도 했는데 (이름에서 불꽃단이 떠올랐고) 피해자 상황 묘사가 살벌할수록 소설을 읽기도 힘겹다가 막바지에선 의외로 김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매디, 어디 말해봐. 폭스파이어는 그래서 있긴 했던 거야? 남자를 그토록 증오하고 적대시하면서 은근 '아버지'를 그렸던 건 아니야? 너희들이 자매들 끼리의 연대의식으로 뭉친 건 경우에 따라서, 기분이나 필요에 따라서 였잖아. 왜 여성 어른들을 영입해서 더 안전한 조직을 만들지 않았어? 너흴 조금이라도 이해해줄 여자 어른이 없었다는 게 제일 화가나. 너희 사정이 딱했고 속상하기는 한데, 글쎄 처음부터 너흰 무덤을 파고 들었다는 기분이 들어. 어른이 된 너희들 모습을 봐봐. 


행동하는 주인공과 기록하는 베스트 프랜드, 60년대 이탈리아에 릴라와 레누가 있었고 50년대 미국엔 렉스와 매디. 이토록 자학적으로 세상의 악(을 내뿜는 남자 으른들)에 덤비는 십대 소녀들. 어째 주인공은 폭스파이어 멤버들이 아니라 일련의 사건들, 50년대 미국이었는지도 모른다. 결말은 다행스럽기도 아니기도 한데, 폭스파이어에 찬물을 뿌려 꺼버린 것 같다. 





2013년 영화보다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1996년 영화 '폭스파이어'가 더 궁금하다. (하지만 렉스가 남자랑 저렇게 벗고 포옹하진 않는다고!!!!) 예고편만 봐도 2013년 영화가 책과 더 가까워 보인다. 그래도 두 영화에서의 두 렉스는 외모로 보면 소설 속 매디로 보인다. 둘다 다운로드 하는 데가 없어서 품절된 dvd를 검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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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담보다 칭찬 하기가 더 어렵다. 내 성격이 비뚤어진 탓인지도 모르고, 글 재주가 없어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좋은 책은 "아 좋아요" 말고 더 세세하고 꼼꼼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해보련다. 


이 책 정말 재미있고 매혹적인데 표지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층층이 쌓아 두고 있어서 각 장을 짚어가는 맛과 멋이 꽤 좋다. 


먹는 음식, 주말 음식을 준비하는 태도와 그 재료 (를 구하는 방식)으로 인물의 사회 경제적 위치와 취향을 분석하고, 음식을 통제하고 혹은 통제 당하는 방식과 그에 대항하는 인물의 심리를 읽는다. 


이국적인 식재료, 낯선 향과 맛이 어떻게 삶과 죽음을, 단조로웠던 한 노인의 인생을 다시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또한 미식계에서는 맛 보다 우위에서 점령했던 말이 허세를 벗고 순순히 맛에게 자리를 내 줄 때 비로소 표현되고 드러나는 진짜가 무엇인지 .... 책에서 글과 상상으로 함께 맛보게 해준다. 하지만 비싼 식재료, 상류층을 덮어놓고 따라하는 스노브들이 진정한 문화인이 아니다. 때론 소박하고 값싼 제철 음식이 진짜 맛과 멋, 풍류랄까, 그런 걸 드러내는 법이다. (런던의 고급 주택에 사는 신경외과의가 마신다면 그것이 일이 만원 대 와인이라도 무시할 순 없겠지, 라는 꼬인 생각도 든다. 문화의 대상은 그 향유자의 경제 사회적 위치에 따라서 품평되니까) 


컴포트 푸드, 소울 푸드도 생각하고 함께 읽는다. 엄마 잃은 아이가, 커서도 그 가슴 허전한 청년이 맛있게 먹었던 음식. 때론 우유를 담뿍 머금고 녹아버리는 카스테라, 실은 그 카스테라로 변해버리는 사람들 이야기도 나온다. 몰랐네, 이런 이야기인줄. 푸드 포르노가 넘치는 요즘, 먹고 만들고 상상으로 과식과 괴식을 포식하는 시절을 연 것은 헤밍웨이였다고. 하긴 '노인과 바다'는 청새치와 노인의 밀땅 (생과 사를 건) 연애이기도 하지만 선상의 라임을 짜 뿌리고 먹는 스시 먹방으로도 읽힌다. 음식에 사랑을, 그 고백을 담는데 그게 너무나 보편적인 '가츠동'일 때도 있단다. 이걸 너와 함께 먹고 싶다! 이 맛을 너의 혀에도 얹어 주고 싶다, 는 그 마음. 


몸과 살, 그리고 피. 세계 각국의 육회 이름을 짚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함께 읽고 허삼관 매혈기를 읽으며 간볶음의 철분을 따지다가 중국의 매혈에서 프롤레타리아의 피를 뽑아먹는 자본가, 또 2000년대 중국의 의료산업이 붐을 일으키며 성행했던 매혈, 또 비위생적 관리로 많은 인구가 AIDS에 감염되었고 그 사실을 폭로한 의사는 나라를 떠나야 했던 일도 이야기한다. .... 입가심으로 커피. 


아마 시리즈로 세 권쯤 나왔을 수도 있을 이야기를 이 한 권에 야무지게 담았다. 저자는 문학 박사까지 공부하며 읽고 사유하던 그 오랜 시간 동안 쌓아왔을터다. 이렇게 요약하 쓰는 이유는..... 여러 서재 친구들도 읽어보시라고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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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09-16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께서 추천글을 두 번이나 쓰셨으니 보관함에 살며시 담아 봅니다ㅎㅎ

유부만두 2020-09-17 06:19   좋아요 1 | URL
네! 그리고 살며시 읽어보세요. 파이버 님 입맛에도 맞기를 바랍니다. ^^

2020-09-16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7 0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7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1918년 10월 5일, 리디아는 만 열한 살이 되었다. 가족과 함께 '처음으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볼 꿈에 부풀었지만 도시를 휩쓰는 전염병 "스페인 독감"을 피해 집안에 머물러야 한다. 대신 생일선물로 받은 일기장에 이제 열한 살, 성숙한 사람이 된 기분으로 매일을 기록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 일주일이 지나기전 리디아의 인생, 가족 모두의 인생이 흔들리고 무너진다. 


"기억전달자"의 작가 로이스 로리가 미국역사 프로젝트로 쓴 이 이야기에는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해서 실존과 가상의 인물이 함께 등장한다.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리디아는 고아원으로 가야한다. 하지만 여느 고아원이 아니라 특별한 종교 단체 the Shakers 셰이커 교단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17세기 프랑스에 그 기원을 두고 18세기 영국에서 퀘이커 교단과 연대했으며 1774년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 동부에 정착한 종교단체다.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고 가구나 농장 과일, 허브 등을 생산해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그들의 신은 '어머니'라 성평등의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고. 엄격한 규율과 남녀 분리로 (종교의 창시자 앤 리가 결혼 제도를 장려하지 않는다.) 노동과 신앙 생활로 지상에 완벽한 낙원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예배 중 부르는 찬송가 제목이 바로 "Like the Willow Tree", 버드나무 처럼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자세를 노래한다. 


이 책은 1918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리디아가 겪는 새로운 생활을 따라간다. 가족과 이별하고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과정. 리디아가 읽으며 위안을 받은 책은 역시나 전염병으로 가족을 잃고 낯선 곳에 맡겨지는 메리의 이야기 <비밀의 화원>이다. 제2차 대전 당시 가족을 잃고 수녀원에 맡겨진 어린이의 이야기, 서보 머그더의 <아비가엘>이 연상되기도 했다. 리디아의 상실감과 불안은 상상 이상이지만 이 얇은 책 속의 짧은 기간 동안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금세 안정을 되찾는 듯 보인다. 로이스 로리의 다른 이야기들 보다는 '실제 역사'에 더 치중해서 보여주고 설명하려는 의도가 많다. 아쉽게도 리디아는 덜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대신 차분하게 말, 기록 한다. 게다가 그 기록은 점점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셰이커 공식 기록이 된다. (그래서 개인 소지품이 금지되는 곳이지만 일기장은 허락 받는다) 이 이야기는 11세 어린이가 겪은 힘든 시간의 성장담이라기 보다는 아이가 들어있는 옛 기록 사진을 보여주는 셈이다. 덜 생생한 로이스 로리. 


낯선 종교단체와 전염병 이야기라니 이런 저런 연상되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어려운 시절, 가족 잃은 어린이들을 거두어 먹이고 가르치는 걸 나라와 사회가 하지 못하던 그 시절에 종교단체가 나서서 (아이들의 노동력을 사용하고 일방적으로 가치관을 주입하면서) 이들을 보호했다니 뭐라 평가하기 전에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또한 이 소설의 시기에는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고아들을 기차에 태워 보내는 '고아열차'도 있었다. 서부의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교육과 보살핌이 없던 곳으로 (주로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아이들을 보냈다. 전쟁과 전염병, 가난과 기근에 제일 먼저 내몰리는 것은 어린이들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아이들은 살아갈 힘, 친구, 도움의 손길을 만난다. (적어도 청소년 소설에서는)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지 않는 셰이커 교단의 특성과 세상의 변화 때문에 셰이커 교인은 책출간 2011년엔 3명이라고 나와있지만 2017년 기록에는 2명만 남아있다고 한다. 그들은 또한 세탁기를 발명한 고마운 사람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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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9-15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로이스 로리 책 읽었는데 이 책 완전 신간이군요! 아주 따끈한 신간입니다!

유부만두 2020-09-15 09:47   좋아요 0 | URL
이 책은 2011년에 나왔는데 새 표지 에디션은 올해 나왔어요. ^^

단발머리 2020-09-15 09:51   좋아요 1 | URL
어머나! 오래된 신간이네요😳
 

아이고 게이고. 


예전의 기억은 다 덮어버릴 만큼의 '너무나 친절한' 설명과 엮음과 과한 손질과 재미 없음과 억지와 옛스러움에 이름 값 생각만 나는 오글거림이라니. 코난도 이 지경은 아닐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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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09-13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이 작가님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시고 계셨군요 다작으로 유명해도 항상 어느 정도는 작품 퀄리티를 보장하는 작가님이셨는데....ㅠㅠ 나미야 잡화점 이후로 한동안 안 읽었었어요.... 유부만두님은 히가시노 소설 중 어떤 작품이 가장 좋으셨나요?

유부만두 2020-09-13 23:11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예전 작품의 리커버에요. 전 옛날 ‘용의자 X의 헌신‘ ‘소년탐정단‘ ‘신참자‘를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외 드라마로 나온 갈릴레오 시리즈도 봤고요.
어떤 패턴을 예상하고 읽어서 큰 기대는 없지만 이번 소설은 완독하기 힘들었어요;;;;

파이버 2020-09-13 23:21   좋아요 0 | URL
새로 나온 책인 줄 알았더니 리커버였군요...;;; 저도 ‘용의자x의 헌신‘ 좋아해요 ‘신참자‘는 예전에 드라마로 봤구요.... 다음번에는 부디 좋은 소설 만나시길 바랄게요~!
 

사유를 동반하는 산책 혹은 걷기를 불어로 flanerie라고 하고 그 행위자 flaneur 의 여성형 명사가 없다는 점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 남성 시선의 대상으로 '구경거리'였던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걸으며 철학적 혹은 전복적 시선을 주위에 던졌던 그 길들을 같이 걸으며 그녀들의 예술도 짚어보는 책이다. 더불어 저자 자신의 여러 도시 경험도 서술한다.

 

책의 출간 당시 저자는 30대 후반의 뉴욕 출신으로 파리에 거주(혹은 정착)하는 여성이다. 그는 이 책에서 두 언어 사이를 오가고, 유대교, 유럽 이민자, 미국, 프랑스의 여러 역사와 문화 사이을 오가며 되짚어본다. 하지만 그 시작은 아주 귀여운 백인 여성의 유러피언 판타지로 보였다. 메트로폴리탄 도쿄의 외국인 거주지 호텔/레지던시에서 프랑스인 애인 은행 관리직의 동거인으로 비교적 특권을 누린 위치에서 그 편협함이 어김없이 드러나기 까지 한다. 1999년 스무살 때 파리에 가서 라쿠폴라에서 노트에 뭔가를 적으며 오래 앉아있었다더니.... 몽파르나스, 서울의 고터에 해당하는 그 거리, 나는 왜 기억하는가. 아 그 17세기 돌벽 건물 사이의 골목길, 달큰한 냄새를 풍기던 오전의 카페를 나는 기억하네. 그리고 조금 설렜네. 하지만 동양인 여자에게 더 좁은 골목길, 덜 자유로운 도시였음을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서도 기억한다네. 또 책을 잔뜩 주문했지 머야. (겔혼 책은 번역된 게 없다. 2012년 영화도 품절)

 

저자에 대한 신뢰가 약하니 내용에 집중할 수도 호응을 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도시를 걷는 여성 예술가들 중 런던의 버지니아 울프와 파리의 바르다, (걷기 보다는 주로 뛰고 굴렀다는 이미지인) 스페인 에서의 마사 겔혼의 이야기는 강렬하다. 저자가 처음부터 언급하는 flanerie의 정의가 꽤 넓게 적용되는 듯 하지만 결국 사적인 공간을 떠나 공적인 공간을 자신의 의지로 걷고 타인(주로 남성)의 시선을 견뎌내고 더 나아가 자신의 시선을 던져서 관찰하고 맞서고 비판하며 기록하는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 야말로 내가 이 책에서 만나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종종 끼어드는 이 저자의 어설픈 서술에 내 독서는 방해를 받았다. 게다가 마무리 부분에서 캣콜링을 즐기는 '주체적 여성' 입장 해명이나 '우리 모두는 난민' 서술은 의아함을 한참 건너 뛰어 버린다. 

 

 매일 아이들을 채근해 각각 컴퓨터 앞에 앉히고 끼니를 챙긴 다음 나는 나 대로 책 속으로, 파리로, 뉴욕이나 기원전 그리스나 때론 우주로 날아가, .... 걷는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으로 나의 (날 찾지 말아라) 시공간을 확보하고 숨을 고른다. 책들의 공간과 서재, 작가들, 또 사이버 공간을 걷는다. 교보, 예스, 밀리의 서재, 그리고 나의 본진 알라딘. 이 코로나 시대의 걷기, 남의 시선 따위 무시하고 내 멋대로 생각하며 방랑하기는 최고의 사치 아이템이 되었다. 저자 로런 엘킨은 자신의 이 첫 책에서 (어쩐지 티가 났어) 실망을 불렀지만 이 시국에 이처럼 유혹적인 책을 만나기도 쉽지는 않다. 이제 버지니아 울프의 런던을 걸어야 겠다. 


덧: 현지 시간으로 일요일,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 스무 명 정도의 여성들이(FEMEN) 상의를 벗고 시위를 했다. 가슴엔 "음란함은 니들 눈에 있다" 라고 써놓았다. 며칠 전 가슴이 너무 패인 옷을 입었다고 출입을 거절당한 미술관 관람객 뉴스에 항의하는 시위였다. 시위가 끝나자 다른 관람객들이 박수를 쳐주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https://www.bfmtv.com/paris/des-femen-au-musee-d-orsay-apres-qu-il-a-refuse-l-entree-a-une-femme-a-cause-de-son-decollete_AN-2020091300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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