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10월 5일, 리디아는 만 열한 살이 되었다. 가족과 함께 '처음으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볼 꿈에 부풀었지만 도시를 휩쓰는 전염병 "스페인 독감"을 피해 집안에 머물러야 한다. 대신 생일선물로 받은 일기장에 이제 열한 살, 성숙한 사람이 된 기분으로 매일을 기록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 일주일이 지나기전 리디아의 인생, 가족 모두의 인생이 흔들리고 무너진다. 


"기억전달자"의 작가 로이스 로리가 미국역사 프로젝트로 쓴 이 이야기에는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해서 실존과 가상의 인물이 함께 등장한다.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리디아는 고아원으로 가야한다. 하지만 여느 고아원이 아니라 특별한 종교 단체 the Shakers 셰이커 교단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17세기 프랑스에 그 기원을 두고 18세기 영국에서 퀘이커 교단과 연대했으며 1774년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 동부에 정착한 종교단체다.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고 가구나 농장 과일, 허브 등을 생산해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그들의 신은 '어머니'라 성평등의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고. 엄격한 규율과 남녀 분리로 (종교의 창시자 앤 리가 결혼 제도를 장려하지 않는다.) 노동과 신앙 생활로 지상에 완벽한 낙원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예배 중 부르는 찬송가 제목이 바로 "Like the Willow Tree", 버드나무 처럼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자세를 노래한다. 


이 책은 1918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리디아가 겪는 새로운 생활을 따라간다. 가족과 이별하고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과정. 리디아가 읽으며 위안을 받은 책은 역시나 전염병으로 가족을 잃고 낯선 곳에 맡겨지는 메리의 이야기 <비밀의 화원>이다. 제2차 대전 당시 가족을 잃고 수녀원에 맡겨진 어린이의 이야기, 서보 머그더의 <아비가엘>이 연상되기도 했다. 리디아의 상실감과 불안은 상상 이상이지만 이 얇은 책 속의 짧은 기간 동안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금세 안정을 되찾는 듯 보인다. 로이스 로리의 다른 이야기들 보다는 '실제 역사'에 더 치중해서 보여주고 설명하려는 의도가 많다. 아쉽게도 리디아는 덜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대신 차분하게 말, 기록 한다. 게다가 그 기록은 점점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셰이커 공식 기록이 된다. (그래서 개인 소지품이 금지되는 곳이지만 일기장은 허락 받는다) 이 이야기는 11세 어린이가 겪은 힘든 시간의 성장담이라기 보다는 아이가 들어있는 옛 기록 사진을 보여주는 셈이다. 덜 생생한 로이스 로리. 


낯선 종교단체와 전염병 이야기라니 이런 저런 연상되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어려운 시절, 가족 잃은 어린이들을 거두어 먹이고 가르치는 걸 나라와 사회가 하지 못하던 그 시절에 종교단체가 나서서 (아이들의 노동력을 사용하고 일방적으로 가치관을 주입하면서) 이들을 보호했다니 뭐라 평가하기 전에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또한 이 소설의 시기에는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고아들을 기차에 태워 보내는 '고아열차'도 있었다. 서부의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교육과 보살핌이 없던 곳으로 (주로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아이들을 보냈다. 전쟁과 전염병, 가난과 기근에 제일 먼저 내몰리는 것은 어린이들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아이들은 살아갈 힘, 친구, 도움의 손길을 만난다. (적어도 청소년 소설에서는)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지 않는 셰이커 교단의 특성과 세상의 변화 때문에 셰이커 교인은 책출간 2011년엔 3명이라고 나와있지만 2017년 기록에는 2명만 남아있다고 한다. 그들은 또한 세탁기를 발명한 고마운 사람들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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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9-15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로이스 로리 책 읽었는데 이 책 완전 신간이군요! 아주 따끈한 신간입니다!

유부만두 2020-09-15 09:47   좋아요 0 | URL
이 책은 2011년에 나왔는데 새 표지 에디션은 올해 나왔어요. ^^

단발머리 2020-09-15 09:51   좋아요 1 | URL
어머나! 오래된 신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