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주의보에 놀라서 열심히 세탁기를 돌렸다. 얼마전 세탁기가 얼어버려서 (기계도 추위를 타는 거였네) 빨래 못하는 이틀을 보냈기에 이번엔 준비를 했다. 그래도 세탁기를 분리를 한다거나, 담요로 덮어주진 못했다. 아침에 보니 쨍하니 추운 다용도실에서 묵묵히 앉아있던데. 아무 말도 없이. 차마 '헹굼' 버튼을 눌러보지도 못했다. 어차피 웅웅 대다가 물이 들어가는 단계까지 가지도 못할테니까. 잔인하게 얼어버린 연결관 이쪽에서 찬 몸통을 더 긴장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도 살짝 전원 버튼을 눌러봤더니 띠리링 환하게 불이 들어온다. 죽지 마라. 난 모든 집안일에서 빨래를 제일 좋아해. 색깔 별로 나눠서 넣고 물 온도 정하기에서 조금 고민하다 적당량의 세제 넣고 물이 들어가고 통이 돌아가면서 거품도 나고 이리저리 빨랫감이 흔들리며 움직이는 걸 세탁기 앞에서 멍하니 보는 것도 좋아해. 이것이 진정한 Soap Opera. 헹굼 단계를 한 번 더 추가하면 물 값, 전기 값 추가지만 조금 더 깨끗해 지는 기분도 들지. 물론 옷감이 쉬이 상해서 큰애 런닝 몇 개는 걸레로 쓰다 버렸지만.

 

오늘은 빨래를 못하네. 너무 추워서.

 

 단편 '낙하하다'를 읽었다. 어제의 전락에 거쳐 오늘은 삼년째 낙하하는 아가씨의 독백. 이 화자는 이미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어떻게 삼년째, 사흘이나 삼십년은 확실히 아닌 시간동안 계속 떨어지고 있을까. 곰곰히 예전일을 곱씹는다. 외로운 사람. 외로운 시간들. 지금도 계속 이어지는 외로운 낙하. 어디 부딪히지도 못하는 움직임. 어쩌면 이건 상승일지도 몰라, 라고 생각을 바꿔봐도 이건 떨어지는 거야.

 

계속 춥다. 부엌 옆 다용도실문 틈으로 찬 바람이 들어온다. 막아버릴까. 단 며칠이라도. 세탁기가 모르게. 아니면 주문을 외워본다. 따뜻해질거야. 봄이 다가오고 있어.

 

 

 

(트위터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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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1-24 09: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세탁기 돌아가는거 멍하고 구경 잘하는데. 남편이 나보고 시골사람이 세탁기 처음보고 신기해서 쳐다보는거 같다고...ㅎㅎ
그건 그렇고 한국이 너무너무 춥다면서. 누가 냉동실보다도 낮은 온도라고 하던데... 무엇보다 건강 챙기길!

유부만두 2018-01-24 10:12   좋아요 0 | URL
으으으 언니 너무 추워요!!!!
오후에 나갈 일이 있는데 벌써 겁이 나요.

세탁기 구경하는 재미를 언니도 즐기시는구나! ^^ 역시 나랑 통하는 친구! 언니, 여름에 꼭 와요. 나랑 서점이랑 맛집 다니고 수다도 떨어요!

라로 2018-01-24 14:57   좋아요 0 | URL
저도 빨래가 젤 좋아하는 가사노동입니디요~~~~^^
글고 저도 세탁기가 돌아가며 빨래하는 것을 기특해 하면서 흐뭇하게 바라보는 사람중 하나에요!!! 쪼그리고 앉아서 보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더라고요. 이게 하녀 기질일까요???ㅎㅎㅎㅎㅎ
어쩐지 우리가 많이 비슷하다 했더니~~~ㅋ
근데 고양이 키우시기로 하신 거에요?? 언제 데리고 오시나요???

유부만두 2018-01-24 22:31   좋아요 0 | URL
데리고 오다니요..... ㅜ ㅜ 그러고 싶지만 저 예쁜 고양이는 트위터 고양이 계정 속 먼곳의 고양이랍니다.
라로님도 빨래를 좋아하시는군요. 전 빨래 세제 냄새도 건조기에 넣는 시트 냄새도 좋아해요. 하녀기질....인가요? 흠...

다락방 2018-01-24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고양이는 만두님과 함께 사는 고양이에요?????

유부만두 2018-01-24 10:42   좋아요 0 | URL
그랬으면 좋겠어요! 세탁기는 있지만 고양이가 아직 우리집에 안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