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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ㅣ 다빈치 art 18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신성림 옮김 / 다빈치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그들을 보는 시선
프리다 칼로 & 디에고 리베라, J.M.G. 르 클레지오 저, 다빈치, 2008.
프리다 칼로의 바비인형이 제작되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칼로의 인형은 칼로가 입었던 옷을 입고 칼로의 상징인 눈썹을 하고 닮은 듯 아닌듯한 자태로 서 있다.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미국 완구회사가 제작했다는데 현재는 가족들의 초상권 제기로 판매금지 상태라고 한다. 가족이라는 얘기에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자녀를 먼저 생각했다. 그들에게 자녀는 없고 그들의 부모도 형제들도 사망했을 테니까. 기사엔 칼로의 조카딸과 가족이 초상권을 독점 소유하고 있다고 되어 있다.
칼로가 살아있다면 어떻게 했을까. ‘영감을 불어넣는 여성’으로 선택되어 자신을 닮은 바비인형의 탄생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초상권 제기로 인해 판매 금지가 되었다는 한국 기사엔 ‘여류 화가’라고 강조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여성을 억압한 관습에 저항한 페미니스트라 소개하면서 ‘여류 화가’임을 절대 놓치지 않는 기사를 보면서 칼로는 뭐라고 말했을까.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클레지오는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의 삶을 자신의 언어로 기술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지만 무게중심은 프리다 칼로 쪽으로 기운다. 프리디 칼로의 전생애를 중심으로 한다면 리베라는 연인이자 남편으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그 영향력은 무시못할 만큼이긴 하다. 화가로서 프리다 칼로의 그림도 책속에 나타나는데 그림 때문에라도 프리다 칼로에 대한 인상이 강하게 남는다. 프리다가 자화상을 주로 그렸기 때문이다. 화가로서는 칼로보다는 디에고의 활동이 방대하고 ‘화가’로서의 명성이 큰 것 같다.
반면에 프리다 칼로는 그림보다도 자신의 생애 자체로 회자된다. 프리다는 한순간도 편치 않고 급박한 삶속에 있었다. 프리다가 살아간 시대는 1907~1954년의 멕시코. 프리다는 화가로서의 명성보다는 유명한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 끔찍한 사고 후에도 굳건히 생을 살아간 여성으로 위치되었던 삶이기도 했다. 이런 프리다에 대한 평가는 차츰 변화되어 혁명가로서 페미니스트로서 강렬한 인상을 전한다.
이십 년이 지난 뒤에도 프리다 칼로는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기막힌 시절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 만났던 모든 이들, 그들이 투쟁하던 이상을 고스란히 기억 속에 간직했다. 사실 그녀의 그림은 혁명적이지 않고 벽화주의 화가들의 웅장한 작품처럼 정치적 참여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혁명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녀의 예술은 참여예술이 아니다. 그녀의 투쟁이 내면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일상과 그녀의 고독한 삶에 대해, 고통의 감옥에 대해, 그녀의 자존심이 입은 상처에 대해, 그리고 남성이 지배하는 멕시코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섯 살에 소아마비로 인해 장애를 갖고 있는 프리다가 18세에 겪은 버스 사고는 ‘끔찍했다’는 한마디 말로 하기엔 프리다의 고통을 너무나 가볍게 만드는 것 같다. 버스와 전차가 충돌하며 금속 기둥이 프리다의 몸을 관통했고 폭발한 버스의 잔해가 프리다의 몸속에 박혔다. 수술은 끝이 없이 반복되었고 회복은 더뎠고 소녀가 가진 꿈도 날아가 버렸다. 늘 침대에 있어야 했던 프리다는 자신의 고통을 그림으로 그리며 삶을 위한 투쟁을 벌였다.
어쩌면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프리다가 화가인 디에고와 결혼하는 일은 없었을지 모르겠다. 프리다에게 있어 그림이 고통을 견뎌내는 힘이었다면 프리다의 그림을 알아봐준 디에고에게서 고통을 나눌 위안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스물 한 살 연상의 바람둥이 화가에 대한 끌림은 의지하고픈 마음과 자유스럽지 못한 자신의 상황을 투사한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어쨌든, 내가 어찌 그 심정을 알겠으며 프리다가 끝없이 한 남자로서 ‘사랑’했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 사랑이 고통을 더하는 데 결코 빠지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디에고의 심각한 여성 편력과 동생과의 불륜을 끝없이 참은 것이 사랑의 힘이었을까. 신체적 고통을 넘어선 정신적 고통을 주는 존재, 디에고 리베라. 프리다 칼로의 남편. 왜 프리다는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 역할을 놓지 못했을까. 상처입은 프리다의 자존심도 고통을 이겨낼 의지도 모두 프리다의 내면에서만 일어나고 있었다. 프리다는 계속 ‘디에고의 여자’를 놓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프리다는 심각한 몸 상태에도 몇 번의 유산에도 아이 갖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또다시 상처받았다. 아이를 낳지 못한 것에. 프리다가 디에고를 떠났을 때는 유산 후였고 여전히 디에고는 자신의 습성을 버리지 못했으니 프리다의 인내심이 다한 것은 디에고 때문이 아니라 그저 자기 자신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혼과 재결합을 제시한 것은 항상 디에고였다. 그래서인지 프리다 칼로의 ‘페미니스트’로서의 부각은 강한 울림으로, 느낌으로 와 닿지는 않는다. 하긴 프리다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자처한 적은 없다.
초기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활동 또한 디에고를 위해, 디에고에 의해서인 것도. 프리다 칼로를 처음 마주했을 때는 프리다에게 강렬하게 매료되었던 것 같은데 프리다의 그림을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시선을 끄는 힘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쩜 프리다에 대한 매혹은 프리다 생애 자체가 주는 스토리에 대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새삼 다시 이 책을 훑어보며 처음과는 달리 프리다의 ‘주체적’인 면을 찾게 된다. 디에고의 엄청난 ‘성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성은 줄어들지 않았고 디에고는 그런 일로는 화가로서 혁명가로서 달리 평가받는 일은 없었다. 오로지 그의 아내 프리다만이 상처입었을 뿐이다.
그런 상처를 프리다는 그림으로 그렸다. 한편으로는 디에고로 인해 상처와 고통받은 아내로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의 고통을 그림으로 형상화낸 것이 의지와 주체적인 표현이기도 하겠다. 이런 면에서 예술이 가진 힘을 느끼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말할 것을 알았던지 프리다는 일기에 이렇게 쓰고 있다. 프리다가 ‘원하는 여인’은 어떤 상이었을까. 프리다는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
광기의 장막 저편에서는 내가 원하는 여인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난 온종일 꽃다발을 만들고 고통과 사랑과 다정함을 그리면서 다른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리라. 그러면 모두들 말하겠지. 불쌍한 미친 여자라고(난 무엇보다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리라). 나 자신의 세계를 건설하겠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는 동안 다른 모든 세계와 조화를 이루리라. 내가 살아갈 날과 시간과 분은 내게 속한 동시에 모든 사람에게 속하겠지. 나의 광기가 작업 속으로 도주할 수단이 되지 못할 테니,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들 작품의 포로로 가둘 것이다. 혁명이란 형태와 색채의 조화이며, 모든 것은 생명의 법칙에 따라서만 움직이고 머문다. 누구도 다른 누군가와 헤어질 수 없다. 누구도 자기 자신만을 위해 싸우지는 않는다. 만물은 전체인 동시에 하나이다. 불안, 고통, 쾌락, 죽음은 존재를 유지할 유일한 방법이고 결국은 하나이다.
쉬이 무너지지 않고 초기 생의 고통을 예술혼에 투영하였던 프리다의 삶은 경이롭다. 아마도 그렇기에 프리다의 삶이 강렬하게 다가올 것이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들 두 화가의 삶이 너무나 비교된다. 내가 그들의 삶을 모르기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이 책을 통해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클레지오 작가는 이들의 삶을 한편의 소설처럼 엮어 놓은 솜씨가 있다. 실존 인물의 삶을 전하는 클레지오의 시각에 영향을 받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프리다의 힘겨운 삶과 그 고통의 면면들이 연민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반면에 디에고는 너무도 열정적이고 천재적인 화가이자 혁명가로 부각되는데 프리다는 늘 디에고에 대한 사랑에 목말라 하는 존재로 그려져 있는 것도 같다. 제 아무리 디에고를 언제고 사랑했다 하지만 늘 디에고로 귀결되는 이 집착과도 같은 사랑은 아름답고 열정적인 사랑으로 다가오기 보다는 환멸스러움을 더하기도 한다. 어쩌면 불편하고도 짠한 이 연민은 이렇게 묘사한 작가의 언어때문 아닌가 싶기도 하다.
부부 예술가의 삶은 전문가적인 역량에선 늘 여성이 남성보다 ‘못한’ 것으로 표현되는 듯하다. 여성의 예술혼은 늘 남성에 ‘의해’ 강화되는 것으로 만든다. 늘 고정적으로 묘사되는 예술가로서의 남성과 여성, 부부들. 그것이 사실일 수밖에 없는 요인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는 점과 더불어 늘 ‘그렇게 보는’ 시각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