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 넬리 블라이 시리즈
넬리 블라이 지음, 오수원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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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이 말해준다

넬리 블라이의 세상을 바꾼 10일, 넬리 블라이, 2018.


  정신병원은 항상 음침한 느낌이 든다. 미학적인 설계와 쾌적한 설비를 갖추어 새로 건축했다고 해도 말이다. 정신병원은 어쩌다 무섭고 음침하고 문제가 많다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나. 수많은 다큐에서 실제로,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가상으로 접한 정신병원의 실상이 너무 생생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정신병원이 행하고 있는 다양한 불법적인 행태가 끊이지 않고 드러나고 있어서다. 정신병원 운영자의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는 정신병원 건물, 그 공간 자체를 공포의 공간으로 확정짓는다.

  2020년 봄을 향해 달려가는 시점, 감염병 확산으로 특정 병원의 정신병동에서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 공간에 들어가 확인하고픈 심정이다. 지금 상황과는 많이 다른 110년 전 정신병동을 잠입 취재한 기자가 있다.  <뉴욕월드>지는 뉴욕의 정신병원에 들어가 환자 처우와 관리 방식을 취재해 보도해 달라 요청했고 그 요청을 수락한 기자는 넬리 블라이, 병원 잠입시 이름 넬리 브라운, 본명 엘리자베스 코크레인. 넬리 블라이는 “할 수 있으며 해보겠다고 했고, 실제 그렇게 했다.” 그건, “정신이상자들, 신이 만든 피조물 중 가장 무력한 사람들이 친절하고도 적절하게 진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픈 욕구”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는 넬리 블라이의 블랙웰스 섬의 정신병원 내부 취재기이다. 어떻게 정신병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가를 유머를 곁들여 이야기한다. 정신병원에 들어가려면 환자가 되어야 한다. 거짓 환자 행세를 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넬리 블라이의 심정은 한마디로 말한다면, “정말 끔찍한 기분”이다. 왜냐면.


이렇게 잘생긴 청년 앞에서 정신이상자 연기를 해야 하다니! 정말 끔찍한 기분이었다. 젊은 여성이라면 내 말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넬리의 유머코드는 이야기 곳곳에서 발현된다. 심각한 상황에서 종종 나타난다. 넬리의 환자 ‘연기’는 완벽했는지 몰라도 의사들의 진단은 완벽하지 않았다. 넬리는 쉽게 정신병원에 갈 수 있었다. 하긴 블랙웰스 섬의 정신병원은 환자를 강제로 입원시키고 가혹행위로 악명이 높은 곳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의사들의 능력에 대한 신뢰는 전보다 훨씬 떨어졌고, 정신이상자를 가장하는 내 능력에 대한 확신은 전보다 더 높아졌다. 나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난폭한 행동을 보이지 않는 이상 그 어떤 의사도 정신이상 여부를 제대로 판별하지 못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넬리가 직접 겪고 보고 들은 정신병원의 실태는 끔찍했다. 기본적으로 의사와 간호사는 제대로 일하지 않으며 환자를 거칠게 다룬다. 입소자 중에는 단지 영어를 하지 못해서 들어오게 된 외국인과 남편 말에 따르지 않아서, 갈데없고 일자리가 없어서 수용된 여성도 있었다. 처우는 매우 열악했고 형편없는 식사는 당연했다. 형편없는 식사라고 하니 어떤 형태일지 상상이 가는데, 실제로 최근 코로나 19 사태로 코호트 격리된 병원의 의료진과 환자에게  청도군이 제공한 식사가 떠오른다.

 중국에서 귀국하여 정부가 제공한 식사와 매우, 매우 차이가 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라는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건 엄청난 문제다. 더구나 도시락까지 확인해야 하는 담당자의 말은 직무태만임은 물론이고 업체와의 어떤 유착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 심각한 전염병 사태에 체력과 면역력을 위해서는 더욱 영양가 있는 식사가 제공되어야 하건만 소꿉장난 할 때나 만드는 허구 도시락도 이것보다 나을 듯 싶을 정도이다. 현재에도 이런 형태가 일어나고 있으니 110년 전의 실태는 얼마나 더 열악했을까.

  열흘간의 정신병원의 실태를 꼼꼼하게 관찰하고서 정신병원을 탈출해 실태를 고발한다. 전문가와 함께 병원을 조사하기 위해 방문했을 때 아마도 내부고발자가 있었던 듯 병원은 준비를 갖춰 조사단을 맞았다. 병원에 대한 처벌과 즉각적이고 보다 많은 변화를 이끌어 내지는 못했지만 넬리의 폭로 기사 덕분에 뉴욕시는 환자들을 위한 예산액을 100만 달러 더 책정했다.

  넬리의 잠입취재기에 나타나는 일들은 현재에도 일어나는 일이다. 권력과 유착해 조사를 어물쩡 넘기는 경우까지 참 닮아 있는 모습이다. 여성이 있어야 할 곳은 가정뿐이라는 어느 신문사 기사에 여성을 가두는 것은 국력 낭비라는 항의 편지를 쓴 넬리 블라이. 그곳 신문사 편집장은 반박 기사를 쓴 넬리의 재능을 알아보고 기자로 채용한다. 기레기가 아니라 발로 뛰는 기자로서 넬리 블라이는 성심을 다한다. 그렇게 취재한 정신병원 잠입취재기인 이 기록은 200쪽 정도의 작은 판형인데 분량이 아쉽다는 느낌을 준다. 10일간의 핵심이 담겨 있다고 할 수는 있지만 좀더 세세하고 정밀했으면 좋았겠다. 그곳에서 느꼈던 순간순간의 감정과 상황을 잘 느껴보고 싶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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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5 10: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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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26 17: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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