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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발자국 -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재능 발견
열두 발자국, 정재승, 2018.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호기심 못지않게 놀라운 재능 하나가 또 있습니다. 바로 ‘강한 호기심을 잠시 느꼈으나 이내 그것을 억누르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을 살아가는 놀라운 억제력’ 말입니다.
내 인생의 첫 발자국이 어땠는지는 전혀 기억에 없다. 왼발이었는지, 오른발이었는지, 보폭은 얼마큼이었는지, 그곳이 어디였는지 모른다. 달에 남긴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보다 환호했을 부모님은 기록대신 기억을 선택했고 그 기억은 이제 흐릿해졌다. 내가 기억해야 할 내 삶의 몇몇 발자국도 흐릿하다. 절절했고 중요했던 그 순간마다 나는 어떻게 판단하고 결정짓고 발자국을 옮겼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이젠 어떤 선택을 하려는 시도를 하려는 일이 드물고 선택의 순간을 회피하려는 때가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서두의 이 문장이 얼마나 강하게 와 닿았는지 모른다. 그 놀라운 억제력을 여전히 발휘하고 있다. 그래서 변화가 없는 건가?!
삶에서 특별히 기억나는 발자국의 순간은 망설임과 맞닿아 있다. 종종거리던 그 순간들은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때였고 그건 엄청난 에너지를 요하기도 했다. 어떤 결정을 위해 창의력을 발휘한 적 있었던가, 그런 여력이 있었는지, 그런 후에 벌어지는 결과를 후회없이 실망없이 수긍하였던가. 이 디테일을 기억해내지 않아도 선택하는 그 순간의 기본 작용을 이해한다면 난, 언제나 같은 패턴으로 움직였으리라. 이 책을 읽었다면 다르게 사고하고 행동했을까.
이 책은 인간의 의사결정에 관한 뇌과학적 작용에 관해 이야기 한다. 창의적인 사람들의 뇌, 의사결정을 주저하고 미루는 이유, 요즘 상황에 딱 들어맞는 의문인 “왜 우리는 미신에 빠져드는가?”와 같은 질문을 통해서 유의미한 대안을 생각하게끔 한다. 우리가 얼마나 획일적인 패턴에 갇혀서 사고하고 있는가를 말이다. 그리고 그런 작용이 뇌가 기민하고 체계적으로 작동하기보다는 오류에 쉽게 빠지며 착각을 일으키는지도 말이다.
인간행동에 작용하는 것이 지식과 감정의 콜라보라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저자를 통해 듣는 ‘뇌’의 작용은 흥미롭다. 익숙한 사례들이 펼쳐질 때마다 공통의 ‘문제’를 안고 있는 인간에게 친근함을 느끼게 된다.
중요한 메시지는 의사결정과정에서 ‘감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성에 비해 감정을 열등하다고 여기지만, 감정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결정을 내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요. 감정이 만들어낸 선호와 우선순위는 의사결정을 할 때 매우 중요하지요. 그걸 섬세하게 파악하는 뇌 영역이 망가지면, 우리는 선택에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피니어스 게이지-쇠파이프가 머리를 관통하여 두개골과 대뇌 전두엽 손상을 입은-의 행동 연구 결과는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뇌의 부분을 알려줌과 동시에 의사결정과정에서 ‘감정’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내 뇌의 어느 부분이 ‘나 지금 작용하고 있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겠지만 뇌가 기능하고 있다는 생각은 일찌감치 사라진다. 뇌의 기능에 대한 이 책을 읽으면서도 그렇다. 감정이란 뇌의 작용인 건가. 뇌의 작용은 그 어떤 것도 가능하게 열린 막연한 원칙과 논리 같은 것으로만 느껴진다. 뇌과학 이야기의 많은 부분이 심리학에서 보는 이야기와 맞물린다. 인간 행동에 대한 ‘이해’는 꾸역꾸역 하게 되는데 문제인식을 실행으로 옮겨가는 일은 여전히, 먼 미래의 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