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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 스스로 ‘정상, 평균, 보통’이라 여기는 대한민국 부모에게 던지는 불편한 메시지
오찬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9월
평점 :
답,답해!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 오찬호, 휴머니스트, 2018.
한국에서 아이를 양육하는 삶은 아주 힘들고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한번만 돌려 생각하면 이만큼 쉬울 수도 있을까, 그런 극과 극의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다. 어쩌면 양육의 다른 가치관이 개입할 여지가 없이 방식이나 태도가 획일적이기 때문일 거다. 좌우를 쳐다보며 결국엔 모든 것이 특정한 대학에 진학하는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으니까. 양육이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교육과 동일시되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아이의 생각은 없는 채로 일관되고 획일적인 목표로 전진하면서 지켜야할 다른 많은 것들은 외면하려니 어렵고 힘든 건 아닐까.
저자는 한국의 육아 문제, 한국 부모들의 육아 행태를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출발선은 ‘출산과 육아’ 즉, 부모 됨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그 이전, 연애와 결혼을 시작점으로 한다. 이는 한국의 육아에 관한 한 결혼 이전의 ‘무언가’에 의한 연장선이라는 저자의 통찰은 결혼한 이에게도 결혼하지 않은 이에게도 공감적 요소가 있을 것이다.
우선 저자는 부모가 되는 선택을 한 이들에게 자식키우기는 일종의 과시적, 증명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비혼이 증가하는 사회에서 결혼을 왜 선택했는가에 대한, 아니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이다. 문제는 비혼에서 기혼자가 되는 그 ‘선택’이 가진 어쩔 수 없음에서 시작한다.
그만큼 비혼자들은 연애-결혼-출산에 대해 가장 현실적으로 고민한 사람이다. 이들이 드러낸 공포, 그러니까 ‘그 부모'와 다른 레일로 들어선 결정적인 계기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존재를 미약하게 만드는 경제적 사정이고 둘째, 면역이 없기에 버티기가 힘들다고 판단한 인간관계의 문제, 마지막은 지금껏 배운 것이 너무나도 무용함을 인정해야 하는 빌어먹을 성 불평등의 세상이다. 이를 감수할 각오가 있어야 기혼자가 된다.
현실은 특히 여성에게 독박 육아와 강요된 모성에 놓이게 한다는 것이다. 이 현실에서 충분히 탈피할 수 있기란 어렵다. 은연 중 수긍하면서 과거로부터 답습된 잘못된 관행에 길들여지고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은연 자기계발의 형태를 띠면서 흘러간다고 저자는 말한다.
비슷한 가치관을 공유했고 이를 실천하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친구들이 결혼 이후 변했다. 기혼자들은 평등이라는 이론을 화석화시키고 전통적 질서, 즉 ‘기울어진 운동장’에 적응하면서 가족의 화목을 도모하고 있었다.
저자가 관찰한 것일 테니 ‘과도한 육아 현장의 사례’는 흥미를 돋운다. 종종 기사로 접하기도 했고 익히 들어왔고 소문으로 접하기도 했던 그 사례들을 보고 있으면 역시나 답답하다. 한국에서는 ‘맘’은 유일하게 모든 것이 통용되고 이해되는 (부정적인 의미의) 만능프리패이며 이유를 막론하고 욕을 들어먹는 벌레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결코 자정되지 않는 이유는 무얼까. 도대체 아무리 생각해봐도 알 수 없다. 부정적인 현상은 난무하는데 그대로 굳어져서 흘러가버린다. 그리고 그 자체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이다.
자녀를 ‘내가’ 보호해야 한다는 범위를 넘어선 ‘내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 한국에는 정말로 많다. 많은 이들이 자녀보호와 자녀소유를 혼동한다. 마치 소유권이 있으니 어떻게 보호하든 간섭하지 말라는 식이다.
저자도 상황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견지하지만 서두에서 말했듯 특별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도대체 답없는 이 현상에 대해서 그저 느끼고, 생각하고, 깨닫는 방법만이 있을 뿐하다. 그러나, 누가 깨닫고 생각한단 말인가. 그냥 끊임없는 도돌이표, 뫼비우스의 띠 같기만 하다.
자녀소유는 ‘내 것’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올바른 사회적 가치에 자녀가 노출될 수 있도록 부모가 더 노력하겠다는 의미여야 한다. 그래야 내 아이 더 바르게 키우겠다는 다짐이 가능하고 내 아이 멋대로 키우겠다는 자기소유의 강박이 사라질 수 있다.
그 노력이란 스카이캐슬과 같이 극단적인 현실을 맞닥뜨리게 되면 형성이 되는 건가?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한데 그동안 엄마 혼자만이 아이를 키워왔기에 문제가 되었나? 육아의 책임이 엄마에게, 모성에게 짐지워진 현실에서 이 책 역시도 이 과도한 자녀소유로서의 육아방식은 엄마가 주도하는 것으로 말한다. 동조자이자 방관자는 아빠다.
가만 생각해보면 서양에서도 ‘모성’이 강요되었다고 얘기하고 육아는 엄마에게 독박된 현실을 부르짖으며 이러한 ‘가부장제’의 가족구조의 해체를 주장해왔다. 그럼에도 나타나는 현실은 다르다. 물론 나라마다 형성된 사회문화적인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토록 심한 차이는 어떤 이유일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