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나 그 잠깐을 서울/경기 바깥으로 내려갔다왔다고, 이렇게 졸릴수가
그것도 운전은 아빠가 하고 뒷좌석에서 잠만 잔 주제에 건방지다고 해도......
나이라는 게 이렇게 정직하구나
어제도 1시에 바로 쓰러져 자고, 오늘도 책보다가 자다가 뭔가 끄적이다가 다시 자다가
1
가족여행은 금산으로 다녀왔다
나는 출발하기 1주일 전까지만 해도 속초인줄 알았고
출발하는 당일 아침까지도 무주인줄 알았다 -_-
애초에 가려고 했던 속초의 콘도도 대가족을 수용하기가 어려운 관계로
금산에 있는 팬션을 빌렸는데
넓은 잔디밭과 그 앞에 흐르는 강, (인공?)폭포, 절벽 등이
나름 괜찮은 경치를 만들어줬다
아빠쪽 형제분들이 우애가 좋은 건
우리끼리 하는 말로는, 재산이 없어서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만,
재산보다도 이런 우애를 물려주신 할머니 할아버지께 더 감사할 정도로 (라고 생각해야지!)
참 보기 좋은 일 중에 하나다
가끔은 감탄할 정도로 말이다
매년 광복절 때가 되면 온가족이 휴가를 맞춰 함께 간 게
벌써 몇년 째인지 모르겠다
나는 워낙 그런 일에 또 시큰둥한 관계로
이제서야 처음 참여를 했는데
C는 자꾸만 신기한 노릇이라며, 나의 변화를 놀라워했다
순순히 가족여행에 가는 나는 어울리지 않는다나 뭐라나
뭐 그랬던 관계로 나는 가족 여행에서 주로 하는 게 뭐였는지 몰랐는데
세상에, 가장 큰 연례 행사중에 하나가
다같이 개고기를 먹는 거였다니 (!!!!!!!)
우리 집안도 참 안 우아하다 하하하 -_-
군에 복무중인 H가 "누나 나는 개고기 먹으러 가는 건데" 라고 말했을 때
나는 어찌나 화들짝 놀랐는지,
아, 그러니까, 가면 개고기가 있니? 라고 물었더니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H
차에서 내리니 이미 잔디밭에서 어른들이 개고기를 드시고 계시고
나에게도 먹으러 권하시고
안먹는다 하니, 개고기를 못먹으면 조씨 집안의 딸이 아닌데 이상하다며 -_-
쟤가 분명 내숭을 떠는 걸거라며... 나를 바라보는 어른들...
개고기에 핏줄론까지 붙다니, 아 정말 대단한 집안이었구나
어쨌든 개고기를 못먹는 아이들끼리 나와
조씨집안이 아닌 김씨집안의 아들인,
몇년째 개고기 먹기를 시도해왔으나 번번히 실패하시고
결국 스스로 먹을 것을 챙기지 않으면 굶다 가야 하기에 숯불과 삼겹살을 챙겨오신,
고모부의 안내에 따라 삼겹살을 구워 먹고
(다른 숙모들은 몇년 째 가족여행에 와서 개고기만 먹으니까,
안먹을 수 없어서 먹게 됐다,는 변...ㅎㅎ)
고모부 덕에 나도
비오는 날,
야외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그러나 다른 세상인 양, 아늑하게 지붕이 가려진 원두막에서
강을 바라보며 먹는 묵은지에 싼 삼겹살의 맛이라니,
그야말로 우왕ㅋ굳ㅋ
어린 동생들에게 동조를 구하는 눈빛으로
너희들도 개고기는 못먹는구나, 라고 얘기하니
이미 한판 먹고 따라 나온 거였다
그리고 조카 가인이는 삼겹살을 먹으며
고모, 저 오늘 삼겹살까지 총 다섯끼째에요
우왕ㅋ좀짱인듯ㅋ
그럼 오늘 저녁에는 뭘 먹어? 내일 아침에는?
아마 남은 고기로 탕 끓이고 계실걸?
내일은 전골 드신다던데
ㅋㅋㅋ 생각보다 재밌다 우리집안
올해 시집간 H언니 신랑은 아쥬 신고식 하느라 곤욕을 치르고
술은 먹이지, 개고기는 못먹는데 안주가 없지,
생감자를 오독오독 씹어가며 안주를 했더니
어른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는 후문이다
2
가족여행에만 아니라 올림픽에도 시큰둥한 나는
이번 올림픽이 중국 올림픽이어서 시간대가 맞아
그나마 몇개의 경기를 보게됐다
주로 회사 사람들과 박태환 수영, 미국전 야구, 남자복식 양궁, 여자단식 양궁, 여자유도
뭐 이런 것들을 봤었는데
워낙 아는 것도 없고 하여, 주위의 지도편달 하에 봤다.
모두들 좋아했던 박태환을 뒤로하고, 내가 좋아했던 완소 선수는
이현일이었다
유일하게 회사 아닌 곳에서 챙겨본 경기
남자 베드민턴에서 사람들은 별로 금메달을 기대하지 않았고,
결국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고,
동메달을 추가하는 일에도 실패했지만 (기복이 큰 선수 같았다)
저런 병신...! 하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했으니 괜찮다, 라고 말해주는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많아지길
니가해봐, 라는 유치한 대응을 하려는 게 아니라
나의 아쉬움이, 우리의 아쉬움이 아무리 커도
평생을 준비해온 선수의 그것과 같지는 못할텐데
잠깐의 안타까움 때문에 저런 병신...!!! 하는 모습이 많이 보여
선수들의 탈락보다 나는 그게 더 아쉬웠달까
내가 본 이현일 선수는 정말 잘했고,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걸로 된거지
선수들 개개인을 동생같은 마음으로 응원할 뿐
(으흑, 대부분이 동생이라니..ㅜㅜ 이현일은 동갑이지만)
과도한 의미부여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야구로 우리가 미국을 이겨도
한미 FTA로 인한 굴욕적인 한미관계가 뒤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고
우리가 일본보다 높은 올림픽 종합순위를 얻는다 해도
일본은 우리에게 사과하지 않을테니
본질적인 데서 다친 자존심을 엉뚱한 데서 회복해놓고는
열광하고, 잊고, 하는 일같은 건 없었으면
그게 우리가 견뎌왔던 방법이라 해도 말이다
3
사실 여자 양궁 개인 3,4위전을 볼 때 오동포동한 핑크공쥬 윤옥희보다는
눈매가 매섭던 북한선수를 살짝 응원했음을 고백한다, 으흑
남들은 다 무서워, 북한 여전사같아, 지고 가면 맞을것 같아, 라는 반응을 보였으나
나는 그녀가 참말 매력적이던걸
7점 쐈을 때 실은 혼자 아쉬워했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