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자기객관화'라는 말을 들으면 즐겨 보던 드라마 닥터깽에 나왔던 일명 한가인 자뻑 동영상으로 알려진 이 장면이 생각난다. 난 자기 객관화가 아주 잘 되는 사람이거든? 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니. 아, 부럽다, 자기 객관화가 잘 되는 사람이어서, 아니, 자기 객관화가 잘 되고도 행복한 사람이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기 객관화는 어쩌면 잔인한 그 무엇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경우 자기 객관화의 어려움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본다는 행위 그 자체의 난해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들여다 본 행위 그 이후의 결과, 즉 객관화된 자신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는 일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실은 현실보다 조금은 부풀려진 스스로를 자신이라 인식하고 살아가는 일이 많다.

외모의 측면에서 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사진발이 잘 안받는다는 사람'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시야가 반영된 거울을 볼 때는 스스로가 예쁘게 혹은 멋지게 보이다가 자신의 객관화된 모습이 반영된 사진을 볼 때는 스스로의 모습이 꼭 내가 아닌 것만 같이 어색해 보이는 거. 아, 이 사진 정말 이상하게 나왔어, 라고 말을 하는데 정작 주변에서는, 뭘 똑같은데~라고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 (주변 사람들, 참 잔인도 하여라) 그러니까 그녀는, 너무 예쁜 그녀가 정말 그녀였기에, 너무 똑똑하고 능력 있는 그녀가 정말 그녀였기에 자기 객관화의 경지가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 객관화를 견딜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얘기다. 객관화된 자신을 들여다 보면서 즐거울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얘기다.

현실이 아닌, 살짝 이상화된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다가 현실의 어느 지점과 그 자신이 부딪쳐 주저앉게 되는 그 지점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자기 객관화에 다다르지 못한다. 여기서는 '자기 비하'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그나마 자기 비하가 어느 정도 견딜만한 것은 비하의 주체가 비하를 하면서도 그게 사실 어느 정도는 비하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객관화의 지점을 넘어 비하에 이른다는 것 역시 스스로를 견뎌낼 수 있는 고도의 술책은 아닐까.

하지만 가끔은 그런 믿음, 그러니까 자신이 자기 자신보다 좀 더 좋은 사람일 거라는 믿음, 좀 더 나은 사람일 거라는 믿음은 때론 자신을 정말 거기에 다다르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실은 모든 인간은 무의식 중에 객관화된 자신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일런지도 모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8-08-20 0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그러셔도 웬디양님은 재수있어요...(이건 뭥미...암튼 좋은 뜻임..)

웽스북스 2008-08-21 01:05   좋아요 0 | URL
으하하, 믿어도 되는 거죠? ㅜㅜ

Arch 2008-08-20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맨날 사진발이 안 받아, 였는데.. 실은 제게 객관화할 수 있는 눈이 없던 거였어요. 어흑. 마지막 문단, 멋진데요~ 원래 웬디양님이 좀 멋져!

웽스북스 2008-08-21 01:06   좋아요 0 | URL
우후훗 좀멋져,라니, 저의 자기객관화에 도움이 안되는 발언이에요 ㅋㅋㅋ

시니에님 사진빨이 뭐 어때서요 이쁘더만~ (이라고 하면 묘하게 칭찬도 아닌 것이 욕도 아닌 것이의 경게에 서게되죠 그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