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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자 - The Excution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나는 늘 그런 것들에 관심이 많았다. 자기 의지와 상관 없이 해야하는 일들, 혹은 벌어지고 만 일들이 가져다 주는 상처, 트라우마, 그런 것들이 삶에 미치는 영향들. 사형 집행자들은 아마도 그 정점에 서 있는 자들이 아닐까.
사형 집행자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이 영화의 개봉을 나는 그런 이유로 기다렸다. 이 영화는 내가 기대한 만큼 그들의 이야기를 그려주지 못했다. 몇몇 작위적인 설정들도 눈에 띄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버리는 (어쩌면 불가피했을지도 모르지만) 점들도 그리 꼭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렇다. 뭐. 영화는, 영화다.
그럼에도 한가지 재밌었던 부분은, 그들에게 방어기제가 어떻게 작동하느냐 하는 부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사형 집행시에는 집행자들이 충격과 죄의식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버튼을 누르고, 누가 누른 버튼에 의해 그 사형수가 죽게 되었는지 모르게 되어 있다. 확실히 죄의식에서 벗어나려면 그 버튼을 안누르면 되겠지만, 그러다가 운이 없어 자신의 버튼이 작동 버튼이라면 그나마의 방어막조차 사라지는 상황에 처하게 되니 다같이 누르고 볼일이다.
인간은 참으로 약하기 때문에 강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 자신이 상대를 죽였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죽이지 않은 것이라고 강하게 믿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설령 자신이 죽였다 하더라도, 본인은 정말 나쁜 사람을 죽인 것이기 때문에 정의로우며, (그들이 부정의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는 거기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다, 라는 자각은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삶을 지탱해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준다. 영화에서 조재현이 끝까지 견딜 수 없었던 이유는 스스로 그 보호장치 중 하나를 제거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강했기에 보호장치가 없이도 견딜 수 있다고 믿었던 자는 결국 견뎌내지 못했고, 약했기에, 그 보호장치 속으로 스스로의 영혼을 밀어넣지 않고는 견뎌낼 수 없던 자는 유유히 다시 삶을 지탱해나갈 수 있게 된다.
사형제만큼 이렇게 오래도록 찬반논란이 뜨거웠던 이슈가 있었을까. 영화를 보고 나와 사형제에 대한 의견을 묻는 물음에 선뜻 반대, 라고 대답할 수 없었던 이유는, 반대는 이성적인 영역의 결론이고 찬성은 감정적인 영역의 결론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형제를 주제로 한 스피치를 준비해야 한다면 나는 반대편에 서게 될테지만, 잔인한 행각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무참히 짓밟은 자와 그 피해자들 앞에서, 나는 도무지 쿨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문제란 늘 언제나 대답하기 쉬우면서도 가장 어려운 문제가 아닌가 싶다.
어쨌든 영화는 매우 첨예하고 난해하고 어려운 이슈를 쿨하고 덤덤하게 다뤘다. 그래서 무난했지만, 그러므로 기대 이상의 것은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