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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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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자꾸만 되물었다. 생존 자체가 희망일 수 있겠느냐고. 그러게. 그러고보니, 사실은 우리 모두의 희망은 생존 그 자체인데, 차마 그럴 수가 없어, 자꾸만 그 희망을 다른 것들로 치환해가면서, 그렇게 우리, 생존의 이유를 찾아나가려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가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것을 아무 것에도 치환할 수 없을 때, 생명을 포기하거나, 인간이기를 포기하거나. 

다시 나에게 묻는다. 너라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그저 앞으로 남은 희망이 생존 뿐인 삶을 너라면 살 수 있겠느냐고. 그럴 수 없겠다고 했다. 끝없이 끝없이 걸어도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는 그 길, 어디에 그 무엇이 있다고, 차라리 확신할 수라도 없다면 좋으련만, 아무것도 없을 것임이 너무도 자명한 그 삶을 나는 살아갈 수 없겠다고. 그럴 수는 없다는 나의 대답이 사실은 슬쩍 재수없다. 생존의 절박함 앞에 놓여 있지 않은 자가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그냥 입을 다문다. 여기에 확인사살. 그럼 지금 너는 도대체 생존 이외에 대체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느냐는 물음. 아무것도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무엇도 뚜렷하지 않은 나 역시, 사실은 생존을 위해, 이것 저것을 치환해가며 삶을 견뎌내고 있는 것 같다는 스스로에 대한 의혹을 슬그머니 제기하려다가 이내 부끄러워진다. 

작품이 마지막으로 제시하는 희망 앞에 나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쉰다. 이렇게 희망을 이야기하기에, 그들을 둘러싼 절망의 구조가 너무나 견고하다고. 그들이 계속 걷는 길 역시, 아무것도 없지 않느냐고. 그렇게 걷고, 또 걸어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걸을 수 밖에 없는 삶, 상황이 극화되었을 뿐, 그들만의 것은 아닐게다.  실은 우리가 희망이라 믿으며 내딛는 걸음 역시 견고한 절망의 구조 안에 있다는 걸, 우리 역시 모르고 있지 않다. 그런 우리 앞에 작가는 다시 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발을 다시 내딛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다를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결국 희망은, 희망을 위한 것이 아닌, 삶을 위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의혹을 억누르고, 나는 다시 한 번 믿어본다. 믿지 않고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기 때문에. 그 믿음이라는 가면은 실은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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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2010-01-26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늘쌍 희망이라는 이미지가 필요했던 것 같아. 무서워서, 잠시라도 벌벌 떨지 않으려고 말이지. 그런대 나는 무엇이 그렇게 무서웠을까?

웽스북스 2010-01-26 21:03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믿지 않으면서도. 살아있다는 증거 같은 거. 아. 그걸 알면서도. 또 자꾸만 속이게 되는 거.

차좋아 2010-01-30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가 막힌 리뷰입니다. 영화로 보셨군요. 저느 소설로 봤어요. 일부러 웬디양님 리뷰 여태 안보고 저 소설 다 보고 봅니다. 올 해 본 최고의 책 , 올 해 본 최고의 리뷰 로드^^

웽스북스 2010-03-08 00:49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 그러기엔 너무 1월 30일에 쓴 댓글이다.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