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모여 개표방송을 보며 와인을 마셨다. 이윽고 맥주를 마셨다. 평소 마시던 양을 넘었는데도 취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명징해졌다.
이 패배감. 내게 희망할 기운이 남아있다는 것이 놀라웠지만, 그래도 나는 문재인이라는 대통령을 갖고 싶었다. "제 부족함입니다. 여러분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 제가 패배한 것입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개인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양산 댁으로 가셔서 예뻐하는 고양이 강아지들과 행복하세요. 대통령 후보로 나와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은 당신같은 대통령을 가질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분하지만,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난 오늘 밤, 내가 패배한 자라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저 광화문에서 박정희 사진을 들고 환호하는 자가 내가 아니라는 사실이 다행스럽다. 나는 다행히 나로 자랐고, 계속 이렇게 살 거다. 앞으로 살면서 더 많은 패배와 절망을 맛보겠지만. 그렇다고 난 절망을 예측했다며 조소하지도 말고, 절망이 두려워 피하지도 말아야지. 그렇다고 그 절망에 학습되지도, 익숙해지지도 말아야지. 그냥 매번 절망하고, 매번 슬퍼해야지. 그래야지. 정말 그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