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알약 - 증보판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프레데릭 페테르스 글.그림, 유영 옮김 / 세미콜론 / 201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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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미콜론의 책들을 신뢰하고 있다. 
이번에도 좋았어.  

작자 페테르스는 1974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난 친구다.  
동시대의 다른곳,
에서 살고 사랑을 한다. 그와 그의 도시, 그의 의사선생님이 좋아졌다.
물론 그녀와 그녀의 아들도.
모두 사랑스럽다.


2.
그림이 편안하지 않다. 매우 거칠고 강렬한 붓터치다. 
매우 솔직하고 힘있는 그림이, 어느순간
서정적이다.  


3.
한센병이 무서웠던것은 불치라는 것보다, 죽음에 이른다는 것보다
죽음에 이르도록 격리된다는 거이었다.
몸이 죽기전에 사회가 미리 죽이는 거지.

그랬는데, 에이즈가 이제는 그런 위치다.
불치이고, 사람들과 섞여살지 못하게 하는 천형.

병걸린 사람을 공동체가 보호하고 더불어 치료하지 못하고
격리하고 소외시키는 것은 할 짓이 아니다.  
에이즈라는 병이 그렇게 쉽게 마구마구 전염되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사람들과 함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줘서 고맙다.


4. 
사려깊은 젊은이 화이팅!
페테르스와 카티가 행복하실 바래. 부디,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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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그넘 매그넘
브리지트 라르디누아 엮음, 정진국 옮김 / 까치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1.
이 책의 싸이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세로 50센티, 가로 30센티쯤
책을  펴면 책상위에 꽉차는 사진들이 선명하다.

'결정적 순간'
'참여하는 사진'
'르포르타주'
'보도 사진'
'라이카 카메라와 흑백필름'  


기사가 나가고 난 다음에도 저작권을 유지하고자 연대한 사진가들
직업이 무엇이든 자기가 찍은 사진들을 편집해 에세이집을 남기는 작가들 

"사진가들은 기본적으로 예술을 하려고 매그넘에 가입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세계를 사진에 담아내기를 바라기 때문에 가입한다." 

강렬하다.
순간을 찍어 세상을 담아 삶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하는 느낌의 사진들이 풍요롭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져 무엇을 먼저 먹어야 좋을지 알수없는 화려한 식탁.

 
2.
매그넘 60주년 기념으로 매그넘 회원들끼리 서로 상대편의 사진 6장을 고르고
그 사람에 대한 짧막한 글들을 썼다.
글이 사진 처럼 좋지는 않지만
매그넘 회원들이 가족들로 흔히 비유되는 이유를 알겠다.

서로 애정을 표현하고, 존중하고 예찬하고 흠모하고 아끼며  
서로의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었구나, 열정을 아끼지 않으며
성공한 자들의 가족일기.
자랑한다. 자기네가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지 봐달라고. ^^*

꼼꼼히 읽어도 좋고 사진만 보며 넘겨도 좋다.  

버리고 싶은 사진이 하나도 없다.
모든 사진이 뚫어지게 봐달라고 유혹한다.  
여기나오는 작가들 각자의 사진집을 보고싶다.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나온것이 있나?


3.
1976년 프랑스 교도소 내부를 매그넘 사진작가
장 고미 가 찍어 '구금자'라는 사진집을 냈다.
2009년 우리나라 교도소 내부는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매그넘을 보며, 정말이지 대한민국은 좁은 섬나라 구나!
세상에 기록할 것이 많구나! 


***
이 책을 소장할 수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부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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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1
강도영 지음 / 문학세계사 / 2004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
책장이 빨리 넘어간다.
다음장에 대한 호기심과 스토리의 긴장이 크다.

강풀이 아니라면 굳이 손이 가지 않았을 종류의 책. 
굳이 쉬면서 공포영화 보는 스타일 아닌데,
굳이 봤다. 강풀이라.

영화보다 더 무섭다.
만화가 이렇게 무서울 수 있다는 것도 나로서는 새로운 체험이다.


2.
있는지 없는지 알수 없는 귀신과 저승사자라는 존재를 태연하게 등장시키고
그것이 그런데 허구처럼 보이지 않고  매우 당연하게 늘 그랬던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현대 도시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과 외로움을
너무 잘 표현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덮고 삶으로 돌아간 후
독자들은 문득 자기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강풀의 아파트가 생각나 갑자기 소름끼치게 무서워지는

그러게 무서운것은 극적이거나, 특별하거나, 복잡하거나 그런것이 아니라
무심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이라고.  


3.
강풀같은 작가와 동시대를 사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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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이해남 지회장이 분신하던 가을 나는 감옥에 있었다.


7월에 수배되어 10월말에 연행될때까지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주로 천막에서 살았고, 천막이 침탈당한 후에는 정규직 노동조합에서 살았다. 회사식당에서 밥먹고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조합원들을 만났으니, 대한민국에서 수배된 자가 살기에 현대자동차 공장 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생각했다.  

 
10월 23일 샤워실에서 씻고 나온 나를 얼핏 보기에도 40여명이 넘는 경비들이 샤워실 문밖에 대기하고 있다가 납치해서 정문에 대기중이던 경찰에게 넘겼다.


끝없이 졸음이 쏟아졌다. 깡패처럼 생긴 경비들에게 끌려가 경찰에게 넘겨지는 연행 방식에 화가나 현대자동차 아산공장 사측을 상대로 책임자를 처벌하고 해고자들의 출입을 보장하라는 요구로 단식을 하면서도 마음은 편했다. 더 이상 조합원들의 걱정스런 눈빛이 나를 보고 있지 않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지회 투쟁계획을 제출해야 한다는 숙제가 어깨에서 내려왔다.
어쩌면 그렇게도 잠이 오던지.


그러던 어느날 면회온 조합원이 이해남 지회장이 위독해졌다고 말했다.
“이해남 동지가 어디 아파? 다쳤어요?”
“아니, 아직도 모르고 있었어요? 부지회장 연행되던 다음날인가 분신했쟎아. 대구에서.”
그동안 면회오던 조합원들이 걱정할까봐 일부러 나에게는 말을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을 미루어 짐작하게된 그 조합원은 당황했다.
“나는 당연히 알 줄알았지. 부지회장도 너무 오래 굶지 말라고. 걱정스러워서.”

비가 내렸다.
면회를 끝내고 돌아와 앉은 독방에서, 그래도 꾸벅꾸벅 졸며 내가 미쳤구나, 생각했다.


정직하게 쏘는 눈빛이 맑은 이해남동지, 아산공장 천막으로 연대방문을 와서 수배되어 있는 나와 악수하고 헤어지며 힘주어 잡던 손이 마지막이었다. 깜박깜박 꿈결에 그눈빛이 나를 보고 웃고, 그 손길이 내 손안에 여전히 따듯했다. 강하고 굳센 사람이 왜 스스로에게 불을 지르는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려고 마음먹었을까.

나는 뭐하고 있는걸까. 자본의 질서에 길들여져 살 수 없어 싸움을 하는 동지에게 함께 씩씩하게 싸우면 우리가 이긴다고, 그동안 우리 힘내서 함께 하자고 위로하고 격려하지 못하고, 외롭고 무거운 절망에 끝내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한 우리는 뭘하고 있는 걸까.


참 나쁘다. 내가 이런 마음인데 옆에서 함께 투쟁했던 조합원들과 간부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라고 그런 방식으로 분신을 해. 함께 투쟁하며 더불어 나눈 그 시간과 기억들을 어떻게 감당하고 살라고 분신을 해.  


그러고 죽으면 차가운 땅속에서 이해남 지회장, 동지는 마음이 편할 것 같아. 그러는게 아니지. 그러는게 아니지. 안그래도 노동자로 살아 서러운 동지들에게 할짓이 아니지. 원망스러웠다.


다시는 내동지를 죽음에 이르도록 방치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그 가을과 겨울을 우리는 ‘열사국면’이라고 불렀다. 많은 동지들이 살 수 없어 차라리 죽었다. 


  

 

 

 

 

 

    윤동수 / 삶이 보이는창

 

5년이 흐르고 얼마전 이현중, 이해남 평전이 ‘당신은 나의 영혼’이라는 제목, ‘오, 놀라워라! 우리가 인간이라니!’라는 부재를 달고 나왔다. 이해남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변한 것 없는 세상에 아직 노동자로 삶을 살아내고 있는 조합원들의 이야기로 나는 읽었다.


세원테크 조합원들이 담담하고 진솔하게 그때를 말하는 것이 소박한 문체, 날것 그대로 씌여져 낯익다. 현장의 쇳소리, 냄새, 식당의 반찬, 땟국물에 절어 서로를 바라보던 눈빛까지. 돌아보니 인간이 아닌듯했던 시절, 어떻게 일하고 어떤 심정으로 웃고, 울며 결의하고 투쟁했었는지 생생하게 증언하는 조합원들의 말을 최대한 존중하며 작가는 썼다.


그렇게 서로 동지임을 자랑스러워하면서 힘차게 투쟁했던 동지들을 읽으며 지금, 여전히 막다른 길로 몰려 가파른 싸움을 결의해야 하는 동지들에게 모범이되고 위로가 되는 책이길 바란다. 책자체가 소중한 증언이고 기록일 뿐 아니라, 아직도 끝나지 않고 진행중인 세원테크 조합원들의 삶이 이 땅위에 있기 때문이다.


당시 막 고등학교 졸업하고 세원테크에 입사해 투쟁을 했던 조합원 유철우는 며칠전 동희오토 정문에 있던 비정규직 집회에 연대하러 참가했다가 연행되어 구속되었다. 이제는 스물여섯 더 이상 어리지 않고 젊은 철우를 유치장으로 면회갔더니 생각지도 못한 당부를 거듭한다. 


“누나, 사람들보고 알라딘에 꼭 가입해서 ‘당신은 나의 영혼’ 책에 리뷰달라고 말해줘요.”


단지 집회에 참석한것 뿐인데 연행되어 세원테크 투쟁했을때의 기록을 근거로 전과자라며 ‘특수공무방해’라는 무시무시한 죄의 혐의를 받고 구속된 철우가 유치장 너머로 걱정하지 말라며 순한 눈매로 웃는다.


오, 놀라워라! 우리가 인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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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식이는 현대자동차 아산공자에서 일하는 잘나가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엔진공장에서 생산된 엔진을 의장라인에서 차에 장착할수있게 서브작업을 해주는 일을 했다.  

엔진서브라인은 의장공장의 가장 앞쪽에 전원 비정규직으로만 구성되어 있었고 기식이는 그 라인의 키퍼였다. 보통 사내하청업체들은 사장 밑에 소장, 반장, 조장, 키퍼 이런식의 관리체계를 운영하니까 가장 말단 관리자였던 셈이다.

지금도 가끔 소주한잔 할때면 기식이는 현대자동차가 중국 현지공장을 만들어 라인을 깔고 시운전을 할때 몇 달동안 중국에 가서 중국 노동자들에게 일을 가르쳐주며 관리자비슷한 일을 했었다며 자랑을 한다. 중국의 음식과 추위와 우리보다 훨씬 뒤떨어진 산업화 풍경보다는 주로 자기가 현대자동차의 그 많은 노동자들중에 뽑혀서 중국으로 파견될 정도로 성실하고 일을 잘했다는 것을 뿌듯해하며 자랑한다.

자랑할만 하다. 불량이 나면 큰일 나는 줄알고 멀리서 보고도 달려가 어떻게든 고쳐야 하고, 자기일을 손빠르게 할뿐 아니라 라인 속도에 못따라오는 사람 일까지도 하고, 그러다가 화나면 주변의 노동자들을 다그치며 일좀 잘하라고 성질 내고, 그런 날은 소주도 사고, 원청 관리자들이라도 일을 대충하는 것을 보면 못참고 한마디해서 듣는 극성스럽다는 평가를 자랑스러워 했던 노동자. 그런가하면 중국에 파견되어 일을 하고 온 뒤에는 현대자동차에서 주는 임금을 중간에서 하청사장이 몰래 떼먹으려는걸 며칠을 사장실로 쫓아가 “내돈 아직 입금 안됐어요?” 보채서 기어코 받아냈던 기식이.

“왜냐면, 차는 엔진이 생명이거든 그런데 엔진에 이상이 있어봐. 잘못하면 사람이 다친다니까. 그리고 일은 열심히 해야 재밌어요. 그래도 내돈은 떼먹으면 안되지. 그건 엄연히 내가 중국가서 고생한 돈인데, 받아야 할 임금이 더 있는걸 내가 계산 못할 줄 알고 글쎄 그걸 안주고 입닥을라고 그러더라니까. 그돈 주면서 사장 표정이 얼마나 웃기던지. 똥씹은 표정이더라고. 내, 참 지 돈 주는거야? 현대자동차에서 나한테 주는 돈인데”

노동조합이 만들어진후 한동안 기식이는 지회에 가입하지 않았었다. 초기 가입서를 썼던 조합원들이 탈퇴를 시작하는 시기 지회에 가입했고, 가입하면서는 엔진서브라인의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집단적으로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했다. 가장 앞에서 가장 힘차게 투쟁했던 기식이는 가끔 눈물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한꺼번에 지회에 가입하고 나니까 엔진서브장이 난리가 났었어요. 업체 사장, 정규직 관리자들이 일없이 와서 힐끗거리고, 소장은 와서 삿대질하고 욕하면서 지회조끼 벗으라그러고, 그런데 내가 제일 화가 났던게 뭔지 알아요? 2만원이예요. 2만원.”

지회를 탈퇴하지 않으면 너만 다친다는 면담을 수차례하고 금속노조 조끼를 입고 일하면 징계하겠다는 말에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내가 조끼 벗길 원하면 우리 지회장한테 가서 지침을 철회하라고 말해라. 나는 조합원이기 때문에 지회장이 시키는 대로만 한다.’ 그렇게 대답하고 나와서 다음 타임에는 엔진서브라인의 전체 조합원들이 금속노조 조끼를 벗기는 커녕 붉은 머리띠까지 두르고 일을 하는 바람에 원하청 회사 관리자들의 기를 질리게 했던 기식이가 눈물에 대해 말한다.

“하루는 회사에서 부르더라고요. 그래서 또 뭔 면담을 하자고 하나. 머리띠 사건 이후에 한동안 아무도 귀챦게 안했었는데 이번에는 또 무슨 소리를 하나 가봤죠. 그랬더니 글쎄 나보고 다른 조합원들이랑 같이 지회만 탈퇴해주면 조장시켜주고 2만원 더준데요.”

아무 대답을 못하고 사장 얼굴만 쳐다보다가 나왔단다. 
  
“하여튼 일이 끝나고 혼자 술을 왕창 먹었어요. 술을 먹고 집에 가서 마누라 얼굴을 봤는데 눈물이 막 나와요. 마누라 끌어안고 울었어요. 내가 2만원짜리다. 내가 2만원짜리야. 이말만 계속 하면서 울었어요.”

5년이 흐른후, 지금 동희오토에는 3만원짜리 노동자들이 있다. 어쩌면 그렇게 똑같을까. 조장 대우해준다고 3만원씩 더받는 키퍼들. 노동조합 활동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주변의 다른 동료들도 노동조합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사장과 약속을 한 키퍼들이 그 댓가로 받는 몸값이 3만원이다.

작년 한해 880억의 매출을 올린 기아자동차 모닝을 만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영혼의 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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