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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 -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35인의 여성/노동/계급 이야기
낸시 홈스트롬 엮음, 유강은 옮김 / 메이데이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2006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서울에 대규모 집회가 있어 조합원들과 올라갔는데, 어떤 여성기자가 인터뷰를 하자했다.
당시 우리 지회가 한창 진행중이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과 관련한 인터뷰일거라 생각했는데,
“한명숙씨가 총리가 되었는데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어떤 기대를 하느냐.” 고 질문을 해 황당했다.
“별 기대 없는대요.” 했더니 기자는 당황하며 “그래도 같은 여성이니까, 도움이 되는 변화가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않나?”
한번더 물었다. “아니요. 전혀.” 라고 불친절하게 대답하고 인터뷰를 끝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 주겠다고 약속하고 대통령이 된 노무현의 비정규보호법이 사실은 비정규직을 더욱 확대하고 강화하는 법이라 노동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법이라는 것이 이미 만천하에 드러난대다,
그즈음 노무현정부 아래 열사의 이름을 단 죽음이 스물이 넘던 시절이다.
그 아래서 총리를 하는 자가 여성이고 남성이고 그게 뭐 그리 대단할거라고 기대를 한단말인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부르주아 계급의 잘나고 똑똑한 여자들이 자기들보다 못나고 멍청한 동일계급 남자만큼 대우받지 못하는 지분에 대한 투쟁이라고 생각했다.
여성 지배계급을 위해 복무하는 페미니즘이 표가 필요할 때만 몰계급적인 단결을 여성노동자들에게 호소하며 사기친다.
비록 진심은 아닐지라도 표가 필요할 때를 위해서라도 못배우고 가난한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위해 뭔가 이해하고 함께 해줄 것처럼이라도 했어야 하는데,
천박한 대한민국 페미니스트들은 더 큰 권력자의 밑에 줄설줄이나 알았지 노동계급의 여성을 위해서는 위선일지라도 연대한적이 단한번도 없다고 생각했다. 한명숙이 총리가 된들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에 복무하지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위해 일할거라고 손톱만큼도 기대하지 않았다.
가난해서 못배웠지만 공장에서 일하며 그나마 남편에게 당하는 일상적인 폭력에 노출되어 있지만 않아도 다행인 여성들을 위한 페미니즘,
일은 똑같이 하면서 여성이기 때문에 늘 더 작은 임금으로 더 낮은 지위에서 출산이라도 하면 두배의 노동을 감당하면서도 소박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삶을 살아내는 여성을 위한 페미니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사회주의자인 나의 반성은 노동운동진영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서 구체적인 꼴을 갖추었다.
노동해방이라는 평등한 사회구조의 시스템을 꿈꾸는 집단 속에서도 가부장제는 어찌나 견고하던지.
여러차례의 성폭력 사건을 대응하고 내 자신이 금속노조 안에서 두 번의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되고,
현대자동차 아산공장에서 발생한 사내하청 여성노동자의 직장내 성희롱 사건에 대한 피해자 대리인이 되어 활동하며,
나는 이제 사회주의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스스로 마음먹게 되었다.
더 이상 ‘동지’에게 성폭력을 당하며 사회주의를 말하고 실천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부끄러우니까.
‘페미니즘, 왼쪽 날개를 펴다’는 그런 책이다.
슬프고 단단하며 아름다운 그녀들의 이론은 고백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세상의 모든 딸들은 어쩌면 이렇게 동일하게 가슴을 치며 강제된 차별을 내면화 했던 걸까.
모두 나의 이야기 같다.
가난한 여성에게 사회가 요구하는 순종과 복종이 우리를 어떻게 고통스럽게 하는지.
또한 우리는 어떻게 동일한 꿈을 꾸는 남성들에게조차 배제되는지.
계급의 문제를 말할 때 페미니스트들은 가난해서 경멸받았던 자신의 출신성분을 확인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급’도 ‘페미니즘’도 그녀들을 오해할 준비가 되어있는것처럼 보인다.
양쪽 모두로부터 의혹의 눈빛을 받는 것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 답답함으로 숨통을 조여온다.
인간답게 사는 세상에 대한 우리의 전망에 대해 말할때조차 우리는 쉽게 소왼된다.
그리하여 부르주아 페미니즘과 다를뿐 아니라,
가부장적인 사회주의자들과도 다른 내 존재에 대한 확인과 성찰에 심장이 뛰었다.
700여 페이지의 묵직함이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안정감 있는 문장의 번역이 좋다.
1800년대, 노동계급이 투쟁하기 시작했을때부터 급진적인 여성들은 견고한 억압과 차별에 주눅드는 마음을 일으켜 세우며 어떻게 저항했는지,
그녀들의 선동은 때론 흥분하고 때론 도발적이며 자주 가슴이 아프다.
여성노동자들의 망치질 소리가 꽝꽝 울린다.
모든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더라고 모든 선동에 기꺼이 심장이 뛴다.
선동과 고백을 지나 임금노동과 투쟁의 의제들, 성노동자와 노예제, 여성에 대해 은밀하게 진행되는 공적처벌, 제3세계의 여성과 환경정의까지.
다양한 글들에 모두 동의하지 않더라도 모두 진지하게 균형잡혀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여러 문장과 많은 행간에서 눈물이 나는데, 그럼에도 그녀들은 진취적이고 씩씩하다.
맞다. 내몸에 페니스가 없기 때문에 당하는 모욕과 수치심의 냄새는 제발 긍정의 존재로 나를 확인시켜 달라고 몸안에서 오래도록 아우성쳤다.
천천히 밑줄치며 읽어 마땅히 존중되어야 하는 나와 우리를 확인한다.
학문이란 카테고리를 만들어 분류하고 체계화하여 총화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로 이정도의 진지한 이야기와 성찰, 이론을 가려뽑아 묶어낸 낸시에게 고맙다.
번역을 한 유강은의 내공도 내것인냥 자랑스럽다.
더 인간다운 사회의 관계망을 형성하기 위해, 스스로를 긍정하며 살기위해, 내 몸에 대한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지구별에서 얼마나 많은 실험이 용기있고 현명하며 좌충우돌하는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즐겁다. 그리하여 인류에게 익숙한 계급착취와 가부장제를 넘어
‘지구 행성 자체를 파괴할 태세인 전 지구적 자본주의라는 야만적 체계에 대한 대안을 이론화하고 건설할수 있는 거대한 잠재력’에 동참한다.
더 평등하고 아름답게 살고자 분투하는 여성들의 꿈이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