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비극 걸작선 - <오이디푸스 왕> 외 3대 비극작가 대표선집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이스퀼로스 외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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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래간만에 천병희의 번역을 보았다. 역시 안정된 문체, 맥락을 밝히는 번역이 좋다. 


아가멤논의 작가는 아이스퀼로스, 기원전 525년 태어난 사람이고 그리스 비극의 창시자로 꼽힌다네. 

트로이로 처들어 가려고 그리스 군대를 모아 아울리스 항에 집결했는대 맞바람이 불어 항해가 불가능한 상태 

사람들을 하릴없이 빈둥거리게 하고 

굶주림에 시달리게 하고 주위를 배회하게 하네

배와 밧줄을 상하게 하니 

점을 친다. 

예언자들 말이 아르테미스가 폭풍을 일으키고 있다하니, 그녀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딸을 제물로 바친다. 

마침내 트로이로 출격 후 10년후 승리하고 돌아오지만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가 딸릐 복수로 아가멤논을 죽인다는 이야기


일이라드를 보면 아가멤논은 정치적 술수에 능한 권력지향적 인간이다.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를 좋아하고, 그것을 과시하는 것도 좋아하는 탐욕적인 인간으로 보여 

아킬레우스가 엄청 싫어하고 보기만 하면 다투던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가멤논 왕의 이야기는 관심도 없었거든, 잘먹고 잘살았을 줄 알았지.

그리스 비극의 원조가 되어 있을 줄이야. 

전쟁을 위해 딸을 제물로 바치니까 그렇지. ㅠㅜ


그리하여 그가 한번 운명의 멍에를 목에 매니

그의 마음의 바람도 방향이 바뀌어 불경하고

불손하고, 부정하게 되었다네. 이때부터 그는

마음이 변해 무슨 일이든 꺼리지 않게 되었다네

치욕을 꾀하는 미망은 사람의 마음을 대담하게

만드는 법......

딸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정말 운명의 멍에를 목에 매는 것이다. 

다른 복수가 있기 이전에 이미 그의 마음이 변해 불경하고, 불손하다, 심지어 무슨일이든 꺼리지 않게 된다. 

인간이 얼굴을 잃은 것이다. 

2500년전 비극이 여전히, 흥미롭다. 


아이스퀼로스의 아가멤논은 여기서 끝나지만, 뒤에보면 

아이스퀼로스가 죽은 다음 세대에 태어난 에우리피데스는 제물로 바쳐진 딸 이피게네이아를 쓴다. 

딸을 제물로 바친 아가멤논은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가 죽이고, 

아빠의 복수를 위해 엄마 클뤼타이메스트라는 아들 오레스테스가 죽인다. 그리고 복수의 여신들에게 쫒겨 

아르테미스에 의해 구사일생 살아난 죽은줄 알았던 누이 이피게네이아를 만나 함께 탈출한다. 

이런 흐름이 더욱 흥미롭다. 

호메로스가 일리아스를 쓰고, 일리아스에 영감을 받아 아이스퀼로스가 아가멤논을 쓰고 

아이스퀼로스에게 영감을 받아 에우리피데스가 이피게네이아를 쓴다. 

여러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조각보처럼 

동일한 기반위에 서로 영향과 영감을 주며 인간의 희노애락, 삶과 죽음, 존속살인과 운명에 대해 

인간의 감성 가장 밑에 있는 이야기의 원형을 그리스 인들이 모두 힘을 합해 기록하고 열광하며 즐긴 것 처럼 느껴진다. 


캇산드라는 프리아모스왕의 딸로, 아폴로 신에게서 예언의 능력을 부여받았으나 신의 구애를 거절한 까닭에 그녀가 하는 예언은 아무도 믿지 않는 벌을 받았다. 

앞날이 보이는 능력이 뛰어난들, 아무도 믿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돌아가는 수레바퀴를 막을 수 없다면, 막는 시늉도 못한다면 

미리 알아버린 비극의 고통과 슬픔을 더 빨리 알아, 더 많이 슬퍼야 하다니. 

차라리 모르는게 낫다. 없느니만 못한 능력이다. 

비극적인 아가멤논 집안으로 끌려온 캇산드라의 운명도 비극이다. 

주연은 아니지만 캇산드라 같은 캐릭터 또한 인간 감성의 근원을 탐색하는 힘이 있다. 



2.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참 끝내주는 상상력이야. 

프로메테우스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인간에게 불을 전해준 사나이. 불이란 참 적절한 상징이다. 

어둠을 밝힐 뿐 아니라, 야만의 세계에서 문명의 세계로 진화가 가능한 도구가 불이다. 

신화의 세계에서 역사의 세계로.

불을 인간에게 전해준다는 것은 지혜와 지식의 도구를 준것이지만 동시에 신들의 세계에 막을 내리는 도구를 준 셈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이성이면서 반항과 저항의 상징이기도 하다. 

감히 제우스에게 반항한 자이고, 그 결과 바위에 묶여 날마다 독수리에게 심장을 먹이로 주어야 한다. 

모든 저항하는 자의 운명에 대한 예언으로 보인다. 



3. 

오이디푸스일가의 비극은 정말 비극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여 자식을 낳는다. 

자신이 죽인 사람이 아버지이고, 아내가 어머니인줄 안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되고 

아들들은 싸워 서로 죽여 한날한시에 죽는다. 

오빠의 장례를 치뤄주다 잡힌 딸은 목을 매서 죽는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에 일가의 비극이 전개돈다. 


존속살인, 그중에서도 아버지를 죽이는 것은 문학의 단골 소재다. 

햄릿도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도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이 소재다. 

그리스 고전이 인간 영혼의 심연을 들추어내는 통찰이 있다. 

오이디푸스 일가는 가족에 대해,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의 지혜를 탐하는 욕망과 저항에 대해 



4.

격렬한 분노가 구제할 길 없는 악이라는 것을 

지금 처음 안 것이 아니라 전부터 나는 잘 알고 있었소.

통치자들의 명령을 고분고분 참고 견딘다면 당신은 

이 나라와 이 집에서 살 수도 있을 텐데. 허튼소리를 

늘어놓다가 나라에서 추방되는 신세가 되었구려 

아이손을 사랑해서 그를 위해 가족을 배신하고 고향을 떠나 이국땅에서 사는 메데이아

무엇보다 아이손이 불가능한 시험을 통과하고 살아남은 것은 모두 메데이아의 도움 때문인대 

이제와서 메에이아에게 말한마디없이 코린토스의 공주와 결혼을 한다니 

분노한 메데이아에게 코린토스의 왕은 추방령을 내리고 

아이손이 찾아와 메데이아를 약올린다. 왜 화를 내냐고. 화내다 쫒겨나게 되었으니 꼴좋다고. 

어처구니가 없는 이 장면 

지는 배신을 해놓고, 그녀는 화도 못내냐. 

메에이아와 아이손이 싸우는 이 장면은 인류역사에서 오래된 부부싸움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이유가 모두 자식들을 위해서라는 저 뻔뻔함, 

가만히 있으면 평생 편안하게 살수 있게 해줄수 있다는 저 모자람  

마지막까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는 저 오만방자함 

닥치고 가만있으면 잘 살게 해줄텐대, 왜 바보처럼 분노하냐는 아이손에게 


고통만 안겨줄 뿐인 행복한 생활과 

미음을 갉아먹는 부는 내게 필요없어요. 

복수하는 그녀는 얼마나 영리하고 대담한지 

물론 그녀들은 그 똑똑함으로 악녀라고 불리지만 


실컷 조롱하시구려! 당신에게는 피난처가 있으니까. 

그러나 나는 의지가지 없이 이 나라를 떠나야 해요. 

얼마나 많은 남성들이 아이손처럼 뻔뻔하고 메에이아 처럼 불쌍한 처지가 되었던가. 


분을 삭이시오. 그래야 당신이 덕을 보게 될 것이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런 황당한 말을 강요받고 감옥에 갇힌듯이 답답했을까. 

끝까지 사과 하지 않고, 참으라고 한다. 

너는 여자고 힘이 없으니, 내가 뭔짓을 해도 참을 수 밖에 없는 처지라는 거지. 


한 헬라스 남자의 감언이설을 믿고 선조들의 집을 

떠났을때 나는 이미 실수했던 거예요. 

모든 여자에게 결혼이란 이런 실수였다. 선조들의 집을 떠나 언제든 배신할 준비가된 남편을 따라 이방으로 가는것. 

그리고 쫒겨나지 않기 위해 분을 삭이고,늙고, 병들어 죽는것. 

그리하여 메데이아의 복수는 시원하고 후련하다. 

그래도 어떻게 자식을 죽이냐고? 현실에서 못하니 연극에서라도 죽일밖에. 


2000년동안 변함없는 인간의 삶을 본다. 그리스 비극을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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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2017-07-12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 주셔서 참으로 감사하네요. 읽어도 읽을때 그때 뿐 이야기가 하도 헷갈려서 항상 이게 저거같고 저게 이거였나 하던 이야기의 네비게이션 역할을 해 주셨네요.그런데 문제는 좀 지나면 또 헷갈릴것 같단 말이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