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산도르 마라이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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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작가의 소설을 전에도 읽은 적이 있던가? 잘 기억이 안난다. 


운율이 잘 맞는 시처럼 문장은 유려하고, 

동화처럼 단순한 스토리로 삶의 본질을 품위있게 속삭인다. 


"중요한 문제는 언제나 전 생애로 대답한다네. 그동안에 무슨 말을 하고, 어떤 원칙이나 말을 내세워 변명하고, 이런 것들이 과연 중요할까? 결국 모든 것의 끝에 가면, 세상이 끈질기게 던지는 질문에 전 생애로 대답하는 법이네." 

전 생애로 대답해야 하는 질문은 어떤 것일까. 

삶을 해석하고 편집할때 전생애로 대답하는 질문이, 그러고 보니까 있구나. 


헨릭은 41년 동안 그날을 생각한다. 

쌍둥이 형제 같았던 친구 콘라드가 사녕터에서 총으로 자신을 죽이려 했던 다음날 

도망간 콘라드의 집에서 아내 크리스티나와 콘라드가 서로 사랑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는 이해 할 수없다.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배반의 경계가 어디인지. 

이런일이 벌어지게 한 자신의 책임은 무엇인지,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한다. 

마지막 만찬의 테이블과 빛나던 초의 색깔, 세사람이 앉았던 의자의 배치와 먹었던 음식과 술의 향기

처음 콘라드를 만났던 날부터 마침내 콘라드가 총으로 자신을 겨누었던 날까지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무슨일이 있었던 것인지.

헨릭은 그날 이후 중단된 시간 속에 늙어가며 41년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모든 일이 어느날 갑자기 닥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일세."


내 아내와 친구가 사랑에 빠지는 삼각관계의 이야기는 고전적이고 익숙한 스토리다. 

그 흔한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산도르가 특별한 이유는 전 생애로 대답하는 솔직함이 단정하기 때문이다. 

헨릭은 흔한 스토리처럼 친구의 배신에 불같이 분노하지 않는다. 아내의 머리에 총을 쏘지도 않는다. 

그러기에는 너무 친구를 너무 사랑했고, 아내를 너무 신뢰했으며, 스스로 젊고 자신감 넘쳐 오만했거든.  

 

콘라드가 도망 간 후 헨릭은 그를 소리지르고 화내며 쫒아가서 복수하겠다고 결심하지 않는다.

기다린다. 친구가 반드시 돌아올거라 확신하며, 어디서부터, 뭘 잘못했는지 생각하고 생각한다. 

이 지점이 좋다. 


그리하여 마침내 찾아온 친구를 환영하며, 41년 전 마지막 만찬과 오늘을 연결시킨다. 

자기를 확인하고 싶은 인간의 자아는 놀랍게 집요하지만, 한편 연민이 느껴지고 

전 생애로 성찰하는 그의 대답에 동의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콘라드는 듣기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구성한 산도르의 의도를 알겠고, 그것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에 이 구성과 흐름과 마무리에 기꺼이 동의하지만 

뭐랄까. 소설로서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궁금해 진다는 거다. 

헨릭과 콘라드는 전 생애로 답해야 하는 동일한 질문이 있기 때문에 

콘라드도 헨릭처럼 생각할까. 그것이 궁금하다. 


인간과 운명, 이 둘은 서로 붙잡고 서로 불러내서 서로를  만들어 간다네. 운명이 슬쩍 우리 삶으로 끼어든다는 말은 맞지 않아. 그게 아니라 우리가 열어 놓은 문으로 운명이 들어오고, 또 우리가 운명에게 더 가까이 오라고 청하는 걸세.


첫문장 부터 끝 문장까지 맥락을 따라가며 한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책

그래야 더 맛있다. 

뜨겁고, 차갑고, 과하고, 독하고, 넘치는, 열정을 이렇게 담담하고 차분하게 말하다니. 

산도르를 더 읽어봐야 겠다. 

모처럼 장르가 아닌 소설이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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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an 2016-07-29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작가예요. 소설도 좋지만 `하늘과 땅` 산문집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