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이뤄진다.

간절히 원하면 꿈은 이뤄진다고 난 믿는다.

도서실을 담당하면 꼭 하고 싶은 일 중 하나가 작가 초청이었다.

오늘 그 희망이 이뤄졌다.

올해 도서실을 담당하고나서 하고 싶었던 원화 전시회도 하고, 작가 초대도 해서 난 정말 행복하다.

 

작가를 섭외하고, 원고를 받고, 아이들을 선정하고, 기안을 올리고 강사료 때문에 학교와 옥신각신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고, 자잘자잘하게 신경 쓸 게 많았지만

그토록 하고 싶었던 일을 해낸 감격스러운 날이다.

마지막에 학교에서 작가 강사료를 그것밖에 줄 수 없다 하여

정말 작가님께 죄송하였지만서도 작가님은 개의치 않으신다며 기꺼이 본교를 방문해 주셨다.

 

아이들 하교 지도하는데 사진에서 본 얼굴을 하신 분이 맞은편에서 화분을 들고 가시길래

"혹시 권혁도 작가님이세요?" 라고 물어보니 맞단다. 사진보다 훨씬 더 잘 생기시고, 동안이시고, 인자한 인상이었다.

악수를 먼저 청하셔서 악수를 한 다음 아이들 하교를 시키고,

얼른 실과실로 올라갔다.

작가님은 손수 기르시는 애지중지 애벌레가 있는 화분들을 가져오셨다.

교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난 후, 본격적인 " 세밀화 체험 교실 " 즉 " 작가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작가님은 그동안 본인이 찍어 놓으신 귀중한 사진 자료를 일일이 보여 주시면서

애벌레, 번데기, 우화 과정들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곤충 학자도 아니신데 어쩜 저리 잘 알고 계실까 감탄이 절로 났다.

나비의 종류에 따라 알의 모습도 각양각색.

진주처럼 예쁜 알도 있었고, 청포도 사탕처럼 맛있어 보이는 알도 있었다.

한 개씩 알을 낳는 나비도 있고, 한꺼번에 수백 개를 낳는 나비도 있단다.

요즘 3학년에서 배추흰나비 애벌레를 기르는데 때맞춰 나비의 알, 애벌레, 번데기를 관찰할 수 있어서

살아있는 교육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작가님은 약간 경상도 억양이 남아 있는 말투로 아주 조곤조곤, 재미있게,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설명을 잘해주셨다.

역시 여러 학교를 다녀보신 베테랑 작가이셨다.

 

두번 째 활동은 직접 애벌레, 번데기, 나비, 잠자리 애벌레를 관찰하는 시간이었다.

작가님이 집에서 기르시는 아이들을 데리고 오셨다.

아이들의 환호가 터져 나왔다.

알은 없었지만서도 1령 애벌레부터 5령 애벌레, 번데기, 나비 표본까지

나비의 한살이를 한눈에 관찰할 수 있었다.

내가 옆에 있던 모둠이 관찰하던 호랑나비 애벌레(5령)은 냠냠 맛있게 나뭇잎을 먹더니

똥 싸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어서 우리 모둠 아이들은 신기해서 난리가 났다.

나도 애벌레가 똥 싸는 모습은 처음이라 정말 신기했다.

어떤 아이는 딱딱한지 본다면서 손으로 만져 보지는 못하고 연필로 찔러 보더니 말랑하다고 하였다.

작가님이 붓으로 애벌레를 귀찮게 건드리자 애벌레 머리 뒤쪽에서 노랑 뿔이 톡 나오더니

사과 향기가 났다. (난 코가 막혀 냄새를 못 맡았는데 아이들 말이 사과 향기가 났다고 관찰 일지에 썼다.)

애벌레가 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하는 행위가 정말 신비로왔다.

 

다음은 질의 응답 시간이 있었다.

작가와의 만남을 하기 전에 미리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썼기 때문에 저학년인데도 아이들의 질문이 의외로 날카로왔다.

(1학년~ 3학년이 대상이었고,

독후감은 기존의 독후감과 달리 작가님께 궁금한 점과 책을 읽고나서 스스로 퀴즈를 내는 것이었다.)

왜 작가님이 되셨는지

어떻게 그림을 잘 그리게 되었는지

어떻게 꽃과 나비를 관찰하게 되었는지 등의 질문이 나왔다.

이어서 이번에는 작가님이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는데

어떤 여자 아이가 책을 꼼꼼하게 읽었는지 대답을 척척 해냈다. 알고보니 2학년 아이였다. 헐~~

 

이어서 단체 사진 촬영과 사인회를 가졌다.

작가님은 미리 준비해 오신 세밀화 엽서에 아이들 이름을 일일이 써 주시면서 사인을 해 주셨다.

옆에서 지켜보니 기특하게도 책을 사서 가져온 아이도 여럿 있었다.

기억에 남는 아이는 영아 때 읽은 작가님의 책을 가져와서 사인을 받았다.

어머니가 함께 오셨는데 어찌 그 책을 고이 간직하고 계셨는지.... 참 감동스러운 장면이었다.

25명 일일이 다 사인을 해 주시고, 나에게도 사인을 해 주시고, 엽서도 넉넉하게 주셨다. ㅎㅎㅎ

화분을 차에 실는 것을 도와드리고, 작가님을 배웅해 드렸다.

 

관찰 일지 중에 우수작을 선정하여 권 작가님 책 한 권을 선물로 주려고 한다.

그 전까지는 관찰일지를 대충 하던 아이들이 그 말이 떨어지자 얼마나 관찰 일지를 열심히 쓰던지....

역시 선물이 있어야 한다. ㅎㅎㅎ

 

작가님 말씀처럼

작은 생명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산이나 숲에 가서도 그냥 지나쳐 버릴 것들이 나비, 알, 애벌레, 번데기들이다.

이번 만남을 통하여 징그럽게만 느껴지던 애벌레, 그냥 쓰윽 지나쳤던 알과 번데기들,

잡아서 날개를 뜯기도 하며 못살게 굴었던 잠자리들도

나만큼 소중한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것을 우리 아이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아는 만큼 보인다.

알면 이해하게 된다.

이해하면 사랑하게 된다.

호랑나비 애벌레를 보았다.

나는 애벌레를 싫어하는데 오늘 때문에 좋아졌다.

애벌레는 동글동글 한 똥도 쌌다.

그리고 2령 애벌레를 보았는데 새똥처럼 생겼었다.

권혁도 작가님과 함께 애벌레를 붓으로 자극해 봤는데 노란 뿔 같은 게 나왔다.

또 호랑나비 애벌레가 잎을 갉아 먹는 것도 봤다.

 

- 2학년 아이가 쓴 관찰 일지-

 

애벌레가 똥을 싸니까 참 신기하고 웃겼어요.

그리고 권혁도 작가님이 붓으로 찔러 보았더니 애벌레 머리 뒤에서 노란색 뿔이 나왔다.

냄새를 맡아보았는데 사과 냄새가 났다.

5령 애벌레는 크고 연두색이지만

2령 애벌레는 작고 새똥 같이 생겼다.

똥은 자세히 보면 찐한 청록색이다.

만지면 말랑말랑하다.

호랑 나비 애벌레는 무엇을 먹고 살까?

 

-2학년 아이가 쓴 관찰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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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예준맘 2014-05-22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기회가 자주 있는 일이 아닌것 같아 마음먹고 휴가를 냈었죠..ㅎㅎ
작가님에 대해 검색을 좀 했더니..세밀화로 유명한 분이시더라구요..
꽃과나비라는책을 5년에 걸쳐 만들었다는 내용을 보며 얼마나 많은 인내와 끈기가 필요했을까..
사진같이 그려진 곤충과 꽃의 그림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예원이는 애벌레를 본다는 기대로 엄청 좋아했는데...
4교시 수업 마치고 또 수업같은 걸 하니 좀 힘들었나봐요..
그래도 왕잠자리애벌레가 올챙이를 직접 먹는 것을 보면서 눈을 떼지 못하더라구요...
왕잠자리애벌레 보다는 잡아먹히는 올챙이가 너무 불쌍했는지 두마리 남은 올챙이는
살았으면 좋겠다고 감상평을 적네요..ㅎㅎ

작가님 대답중에 세밀하게 잘 그리려면 자세히 볼 줄 알아야한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어요..
저에게는 또다른 경험의 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퍼남매맘 2014-05-23 17:44   좋아요 0 | URL
예원이 어머니도 3학년이 된 제자 지후 어머니도 휴가 내고 오신 것 보고 저도 감동 받았습니다.
잡아 먹히는 올챙이를 더 걱정하는 예원이 마음이 참 곱습니다.
어머니와 예원이에게 좋은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blanca 2014-05-22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훈훈하고 뭉클한 페이퍼네요...

수퍼남매맘 2014-05-23 17:44   좋아요 0 | URL
칭찬해 주셔서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희망찬샘 2014-05-24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참으로 큰 선물이 된 시간이네요.
아이들과 (교과서)서평 공부하고 있는데, <<티키티키템보>>를 조사해 온 아이가 작성자가 수퍼남매맘님이라고 해서 선생님이 잘 아는 분이야~ 하고 이야기 해 주었어요.

수퍼남매맘 2014-05-25 11:55   좋아요 0 | URL
이렇게 학습 자료로 사용될 줄 알았으면 서평을 더 성심성의껏 쓸 걸 그랬네요.

꿈꾸는섬 2014-05-26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시간이 되었겠어요.^^
이렇게 멋진 기획은 아이들을 더 많이 살찌우겠죠. 부럽네요.

수퍼남매맘 2014-05-26 22:37   좋아요 0 | URL
아이들도 좋아했지만 학부모들도 굉장히 좋아하시더군요.
저에게도 아주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