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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수의 탄생 ㅣ 일공일삼 91
유은실 지음, 서현 그림 / 비룡소 / 2013년 11월
평점 :
'일등'할 때 '일', '수재'할 때 '수', 이름하여 백 일 수
일등하는 수재가 되어라! 일수의 이름에 담긴 뜻이에요. 초등학교 앞 문구점을 하는 어느 부부에게 아이가 생겼어요. 그것도 남편이 황금색이 수북이 쌓이는 꿈을 꾸고 나서 생긴 아이라 부모의 기대는대단했어요. 엄청나게 부자로 만들어 줄 꿈이 아닐까 기대했지요. 게다가 태어난 날이 7월 7일, 행운의 7이 두 개나 겹치는 날!
<일수의 탄생>주인공 일수의 탄생 비화다. 아버지가 꾼 황금색 꾼 꿈은 실은 황금이 아니라 똥이었고, 일수는 태변을 먹고 태어났다. 황금이 아니라 똥꿈이어서일까 일등하는 수재가 되어라는 부모의 바람과는 달리 일수는 정말 그냥저냥한 중간 아이로 자라났다. 한 마디로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감 없는 아이 그 자체였다. 일수에게 별 기대를 하지 않던 아버지는 일수가 중학교 가던 무렵 돌아가시고, 엄마는 계속 해서 일수가 자신을 돈방석에 앉혀줄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지냈다. 엄마의 기대와는 달리 일수는 중학교, 고등학교 가서도 늘 중간 하는 아이였다. 공고를 졸업한 일수는 군대에 가고, 군대 가서 이런 저런 일들을 전전해 보지만 뚜렷한 기술 하나 배우지 못 하고 제대를 하고, 급기야 엄마가 하는 문구점에 눌러 앉아 있게 된다. 그야말로 청년 실업자 백일수가 된 것이다.
그렇게 자기 앞가림 못 하던 일수에게 인생 역전의 순간이 찾아오는데 어릴 때 배워둔 서예 실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우연히 문구점에 걸린 일수가 쓴 "하면 된다" 라는 붓글씨 액자를 본 어떤 아줌마가 돈을 주면서 가훈을 써 달라고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일수는 가훈업자가 되어 돈벌이를 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재능 하나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던 일수가 드디어 자신이 쓴 붓글씨로 돈벌이를 하니 이 얼마나 경사스러운 일인가! 처음 돈을 번 날, 일수 어머니께서는 정말로 60여만원을 방석에 깐 채로 돈방석에 앉았다. 30년 세월 가까이 일수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어머니, 일수가 번 돈을 만져보니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 이제 돈벌이를 하게 되었으니 일수와 일수의 어머니는 행복할까? 여기서 해피 엔딩이 되었을까?
일수 주변에 여러 인물이 있다. 아버지, 어머니, 서예학원 명필가, 친구 일석.
일수의 탄생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유일하게 있는 그대로의 일수를 존중해 주던 아버지는 일찌감치 하늘 나라로 간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했던 말을 떠올려 보자. " 일수에게 너무 기대하지 마. 대단해지지 않았을 때, 엄마에게 죄 지은 느낌으로 계속 살게 될 지도 몰라. " 너무 큰 기대는 자녀에게 커다란 짐이 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말이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어머니의 기대담은 더욱 커져 가고, 그런 기대감은 일수를 어쩌면 더 정체성 없는 아이로 자라나게 했을 지 모른다. 일수를 가르친 선생님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생기부에 적었던 " 순하고 규칙을 잘 지키는 학생입니다. 교우 관계가 깊어지고 특기를 계발하기 위해 부모님의 각별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말은 일수가 정체성이나 자존감이 약한 아이임을 대변해 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일수 자신도 자아정체감이 없지만 그렇게 된 저변에 어머니의 기대감이 한 몫을 담당한 게 아닐까 싶다. 실패를 하더라도 일수 스스로 선택하게 했더라면 정체감을 좀 더 일찍 찾지 않았을까 싶다.
서예학원 명필가는 일수가 외면하고, 회피하고 싶은 진실을 일깨워 주는 사람이다. 때로는 명필가의 말이 너무 직설적이고 모진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일수도 일수의 어머니도 명필가의 충고를 외면하지만 결국 명필가의 말이 일수의 현재 모습이 맞다. 일수는 서예학원에 다니는 아이들 중에 유일하게 자신이 무슨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지조차 모르는 그런 아이였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모른 채 어머니의 기대에 이끌려 그렇게 살아가는 아이였다. 일수의 말투를 보면 확연해진다. " ~~ 하는 것 같아요"란 말을 늘 쓰는데 명필가는 일수의 그런 점을 꼬집어 주는 역할을 한다. 아주 무서운 스승이라고 할 수 있다. " 너의 쓸모는 누가 정하지?" 라는 명필가의 질문은 그런 면에서 아주 예리하다. 하지만 일수는 명필가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 한다. 아직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많은 시간이 지나 가훈을 써 달라고 찾아온 어떤 꼬마가 " 선생님 가훈은 뭐예요?" 라고 물어볼 때서야 깨닫게 된다. 내가 누군인지 전혀 아는 게 없다는 그 사실을 말이다.
친구 일석이는 일수와는 완전 대조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수와는 달리, 일석이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알고, 꿈도 한결 같고, 중국집 요리사가 되기 위해 어떤 과정을 밟아야 하는지도 척척 알아 스스로 준비하는 그야말로 자기주도적인 인물 그 자체이다. 우리 부모들이 딱 좋아할만한 그런 타입의 자녀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이 닥쳐 오는데, 실연으로 인해 일석이도 큰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30살 일석이의 분명했던 삶이 안개처럼 흐려지고, 일수처럼 " 나는 누구인가?" 를 고민하게 된다.
30년 내내 자신이 누구인지 몰랐던 일수나 30년 동안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했던 일석이의 " 나 찾기 "프로젝트가 이제야 시작된다. 너무 늦었다고? 물론 그런 감이 없잖아 있다. 대부분은 사춘기 때 겪어야 할 고민들인데 이제 서른이 된 그들은 지금에서야 "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을 하고 있으니 혹자는 한심한 인간들이라고 욕할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난 그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이라도 내가 누군지 찾아 나설 용기가 생겼으니 말이다. 인생에 있어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고 한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꼭 " 나 "를 찾길 바란다.
이 책을 한창 재밌게 읽을 때 tv에서 일수와 비슷한 예로 엄마에게 엄청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둘째 아들 이야기를 시청하였다. 남편에게 폭력을 당할 때 유난히 엄마를 위로해줬던 둘째 아들, 그래서 엄마는 둘째를 그 때부터 의지하고 편애하였다고 한다. 둘째는 엄마의 기대가 어릴 때는 정말 좋았지만 사춘기를 겪으면서 너무 부담이 되어 문제 행동을 하기 시작하였단다. 둘째의 폭력에 가정은 매일 전쟁터가 되었다. 그 가정을 보면서 부모의 기대가 아이들에게는 이렇게 커다란 짐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다. " 엄마는 너만 믿어!" 라고 쉽게 내뱉는 말들이 우리 자녀에게는 아주 무거운 바위가 되어 어깨를 짓누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 책을 함께 읽은 딸이 " 엄마, 엄마도 나한테 너무 기대하지 마!" 라 한다.
어디 일수 뿐이겠는가!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이들은 부모에게 정말 눈에 넣어도 안 아프고, 내 모든 것을 줘도 아깝지 않은 존재이다. 부모는 눈이 멀고, 귀가 멀어 자녀야말로 수재이며, 내 기대를 한몸에 받을 존재이며, 언젠가는 나를 호강시켜 줄 것이라며 은근히 기대를 한다. 부모는 자녀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참 힘들다. 내 아이만큼은 그럴 리가 절대 없다고 맹신하곤 한다. 부모는 자녀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이 참 어렵다. 일수 어머니가 그랬다면 일수가 좀 더 일찍 자아를 찾았을 텐데 말이다. 부모의 허튼 기대가 자녀에게 독이 될 줄은 모르고 말이다. 일수의 어머니의 모습이 나에게도 있다. 자녀는 신이 잠시 나에게 맡긴 존재임을 순간순간 잊어버리고 그들을 내 뜻대로 조정하려고 들 때가 너무 많다. 이 책은 부모에게 더 울림을 주는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이 나에게 의미가 더 있었던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제법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깨알 같은 유머가 들어 있는 문장들 덕분이었다. 유은실 작가가 이렇게 유머가 있었나 다시 전작들을 살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마을에 젊은 부부가 살았어요.
부부가 사는 마을은 예로부터 물 맑고 인심이 좋았다는 얘기가 , 구청 홍보 자료에만 있었죠.
마을 개천은 공장 폐수로 오염이 되었고, 인심은 개천 물만큼이나 더러웠어요.
하지만 함께 산 다음부터 아내의 수줍음이 사라졌어요.
입을 크게 벌리고 손뼉을 치며 웃었죠.
아내는 무럭무럭 살이 쪄서, 결혼한 지 오 년 만에 완벽한 항아리 형으로 변신했어요.
둘째 유은실 작가님의 아버지가 교사여서인지 학교 생활을 낱낱이 잘 알고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수가 서예부에 들어가는 일이나, 교사들이 일수 같은 아이들의 특기사항을 적어줄 때 하는 고민들이 그렇다. 그런 세세한 부분들은 실제로 교사이거나 아주 가까이에 교사를 두고 있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는 표현들이다. 보면서 ' 와~ 정말 똑같다'를 연발하였다. 이 책을 읽을 때 나 또한 아이들의 통지표를 작성하느라 고민하던 터였다. 항상 모범생과 꾸러기들은 쉽게 문장이 터져 나오는데 특징이 없는 일수 같은 아이들은 써 줄 말이 없어서 늘 모니터를 째려보곤 한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표현된 것을 보고 정말 공감이 팍팍 되었다.
셋째 나를 돌아보게 하였다. 일수 어머니를 보면서 나에게도 그런 모습들이 내재된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또 명필가를 보면서 교사로서의 나를 돌아본다. 일수와 일수 어머니를 향하여 " 더 이상 발전이 없으니 그만 가르치겠습니다. 댁의 아들은 서예가가 되기 어렵습니다. 일수는 자기 글씨체가 없습니다. 당신 아들은 자기 감정을 몰라. 자기 마음을 담는 게 서옌데,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해. 더 이상 하면 독이 될 거야. " 명필가의 말은 물론 다 맞다. 일수는 서예에 재능이 있지도 않았고, 열정도 없고, 더 이상 하는 게 일수 자신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는 생각에서 고심 끝에 일수 어머니를 향해 이 말들을 했을 것이다. 아마 가르치는 자로서 최소한 양심을 지키기 위해 한 말이었을 게다. 학생이 학원비 내는 돈으로 보였다면 굳이 학원 잘 다니는 일수를 향해 이런 말을 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명필가는 나름 일수와 일수 어머니를 생각해서 이 쪽 길이 아니니 다른 길을 찾아보라는 뜻에서 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명필가의 말은 분명 일수와 일수 어머니에게 상처를 준 것 또한 사실이다. 이렇게 말하는 게 과연 최선이었을까 생각해 본다. 교실에 있는 아이들을 둘러 보면 일수 같이 언뜻 재능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꼭 있다. 자신도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고, 부모도 모르고, 교사인 내가 관찰해도 재능이 잘 안 보이는 이들이 있다. 또 자신의 재능과는 달리 다른 쪽으로 열심히 훈련을 하는 것도 종종 목격한다. 그런 아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찾을 수 있도록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이 책을 보면서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도 상당히 직설적으로 말하는 편이라 전에는 그게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나이가 서서히 들고, 자녀를 낳고 키워보니 꼭 직언을 해 주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서 상대방이 느끼는 게 달라지기도 하고 말이다. 아직은 뭐가 옳은지 모르겠다. 하지만 명필가의 이 말이 불편하게 느껴졌다면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이 내 안에 들어온 게 아닌가 싶다.
<일수의 탄생>은 아직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꿈을 물어봤을 때 선뜻 대답을 못 하는 아이나, 교실에서 존재감 없이 살고 있는 아이, 자녀에게 너무 큰 기대감을 가진 부모들, 아이를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늘 고민하는 교사와 부모, 그밖에 아직도 " 내가 누구인가?" 에 대한 답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